• [글로벌 아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양쯔충, 26년 전과 오늘의 여성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스멀스멀 떠오르던 기대가 현실이 됐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얘기다. 지난해 봄 개봉 당시 이 작품에서 삶에 찌든 세탁소 주인이자 멀티버스(다중우주)의 구원자로 열연한 양쯔충(楊紫瓊)이 여우주연상을 탈 수 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2일,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녀는 ‘미쉘 여(Michelle Yeoh)’ 이름으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오스카 역사상 첫 아시아 출신 여우주연상이다.   이날 시상식 메시지의 중심에도 여성이 있었다. “여성 여러분,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황금기가 지났다고 말하도록 놔두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자신이 마치 이번 영화를 위해 40년 동안 긴 리허설을 한 것 같다고 밝힌 양쯔충으로서는 긴 연기생활 동안 뼈저리게 노력해 온 내공을 모든 여성과 공유한 셈이다.   지난 12일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밝히는 양쯔충.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예순인 양쯔충은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배우로서 입지가 좁아지지만 그에 더해 나이가 들수록 역할이 쪼그라드는 여배우의 현실을 절감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번 영화 제목이 길어 ‘EEAAO’(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라는 약칭으로 불린다고 귀띔한 양쯔충은 당초 자신의 역할이 동료 남성 배우인 청룽(成龍)에게 갈 뻔했다고도 말했다. 그녀의 데뷔가 청룽과 함께 찍은 손목시계 광고였다니 그 인연도 묘하지만 지금까지 오기까지 다른 남성 톱배우들보다 한참 오래 걸린 셈이다.   양쯔충을 보며 26년 전 제임스 본드 영화 ‘007 네버 다이’ 홍보차 방한한 그녀를 인터뷰한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그녀는 대단한 화제였다. 첫 중국계 본드 걸이었고 위험천만한 액션을 스스로 다 감당했다. 그때 2년 차 새내기 기자였던 기자의 눈에 35살이었던 양쯔충은 카리스마와 원숙미 자체였다. 미인대회 출신답게 타고난 몸매에 시원시원한 언행이 청중을 압도했다.   1970년대 그녀의 고향인 말레이시아 페락(Perak)주 이포(Ipoh)시에 수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자 그녀는 신이 나서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다. 방한 기간 여러 번 만나며 그녀의 쾌활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본받기로 했다. 양쯔충은 당시나 지금이나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하며 여성 간 유대를 강조하고 나이에 구애받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녀가 더 이상 나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길 어느새 쉰이 넘어버린 기자도 간절히 바란다.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2023.03.21 01:02

  • [글로벌 아이] 미·중 대립, ‘제로섬 게임’의 서막

    박성훈 베이징 특파원 지난 13일 양회 폐막 당일 중국 신화통신은 신임 지도부 인사 결정 과정을 담은 7000자 이상의 장문 기사를 실었다. 2022년 4월부터 6월까지 시진핑 주석과 당 중앙위원회 간부들이 300명 이상의 의견과 건의를 들었으며 시진핑 사상의 전면 관철과 정치 경력, 청렴도를 주요 항목으로 선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주요 간부는 5년 이상 장관급 직책을 맡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규정도 포함돼 있었는데 예외가 친강 외교부장이었다. 그는 외교부장 취임 3개월 만에, 전임 왕이 부장과 비교해 5년 빨리 국무위원으로 선발됐다. 전임 주미대사였던 그에 대한 시 주석의 신임이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신호로 해석됐다.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친강 외교부장이 중국 인민공화국 헌법을 꺼내 ‘대만은 중국의 신성한 영토’라는 조문을 읽고 있다. 박성훈 특파원 양회 기간 가장 주목됐던 건 친강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이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건 발언 내용 이상의 느낌이 있다. 표정과 어조, 제스처는 때로 말보다 많은 것을 암시한다. 그는 질문을 듣거나 말을 할 때 표정 변화는 없었다. 전임 왕이 부장이 다소 활기차게, 강조해야 할 대목에 강하게 제스처를 썼던 것과 비교해 시종일관 차분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표현은 날이 서 있었고 특히 미국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인식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친강 부장은 “미국이 말하는 ‘경쟁’은 전면적인 봉쇄와 진압이며 사활을 건 ‘제로섬 게임’”이라고 했다. “중국과 경쟁하지만 갈등 관계는 아니다”라는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그가 신중하게 선택했을 ‘제로섬 게임’이란 표현은 승자독식 구도로 고착화한 미국에 대한 중국의 판단을 드러냈다.   그는 현 상황을 올림픽 경기에 빗대기도 했다. “미국은 올림픽 육상 경기에 나온 상대를 넘어뜨리고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참가시키려 한다. 이는 공정이 아니라 악의적인 반칙”이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다다른 결론. “미국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잘못된 길로 폭주하면 충돌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갈등과 대결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이 계속 압박한다면 중국이 실질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란 백악관을 향한 경고였다.   회견 전날 시 주석의 발언 역시 중국이 더 이상 양국 관계 호전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 주석은 정협 회의에서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국가들의 전면적인 봉쇄와 탄압이 중국의 발전에 유례없이 엄중한 도전을 가져왔다”고 했다. 시 주석이 직접적으로 미국을 언급한 사실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시진핑 3기 미·중관계가 더 혼란에 빠져들 조짐이다. 당장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이달 말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과 회동할지가 관건이다. 박성훈 베이징 특파원

    2023.03.17 00:45

  • [글로벌 아이] ‘사죄’ 그 한 단어의 무게

    이영희 도쿄특파원 ‘사죄’라는 그 단어 하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지난 6일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 방안을 발표한 후 일본 정부의 반응을 취재하면서다. 일본의 ‘호응 조치’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역대 담화를 계승할 것이란 예측이 있었기에 예상 멘트까지 머릿속에 작성해 놓았다. 하지만 이날 국회 질의응답 중 나온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첫 반응은 이거였다.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왔고, 앞으로도 이어가겠다.”   역사에 대한 어떤 내각의 어떤 인식을 이어가겠다는 것인지 의도적으로 흐린 답변. 이후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상의 정부 공식입장 발표에선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로 조금 구체화됐다. 그러나 당시 선언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가 밝혔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는 입 밖으로 절대 내지 않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자, 이 정도면 됐니? 라는 태도, 듣는 쪽이 오히려 모멸감을 느끼는 ‘사과 아닌 사과’였다.   1998년 10월 8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총리가 ‘한·일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징용 문제를 둘러싼 갈등 수습 과정에서 일본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국이 요청했던 두 가지의 호응 조치 중 하나인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는 ‘이미 배상은 끝났다’고 주장해온 일본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 있다. 남은 하나가 ‘사죄’ 표명이었고 그조차 과거 담화에서의 사죄를 계승하는 방식으로까지 레벨이 낮아졌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인색하게 굴어야 하는 걸까. 한국 정부는 이럴 줄 알면서도 “하나는 받아냈다”며 서둘러 해결 방안을 발표한 것일까.   아직 시간은 있다. 16일 도쿄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기시다 총리는 ‘사죄’를 입에 올리지 않을 예정이라 한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사죄 표현을 극도로 피하는 이유는 “새로 사과를 표명해도 한국이 다시 뒤집을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심 쓰듯 하는 ‘간접 사과’는 우려의 현실화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사과에 그토록 반대하는 보수 세력의 정신적 지주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도 2015년 발표한 담화에서 “다음 세대에게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세대를 넘어 과거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과거를 계승하고 미래로 넘겨줄 책임이 있다”고. 이영희 도쿄 특파원

    2023.03.14 00:49

  • [글로벌 아이] 중국 헌법 57조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중국의 봄은 3월 양회와 함께 온다. 두 개의 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말한다. 평소 블랙박스 안에서만 작동하는 중국 정치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2016년 베이징 특파원에 부임한 뒤 올해까지 일곱 번째 양회를 취재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헌법 실물을 두 번 직접 목격했다.   지난 6일 친강 외교부장이 기자회견 도중 헌법을 펼쳤다. 회견의 하이라이트였다.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성한 영토의 일부분이다. 통일조국을 완성하는 대업은 대만 동포를 포함한 전 중국 인민의 신성한 사명이다.” 서문의 두 문장을 읽은 뒤 미국이 대만을 잘못 건드린다면 “중·미 관계는 땅이 흔들리고 산이 요동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3·2008·2013·2018년(왼쪽부터) 역대 중국의 헌법기구 출범을 보도한 인민일보 1면. [사진 인민일보 DB] 5년 전에 지켜본 헌법은 더욱 권위적이었다. 2018년 3월 17일 군 의장대가 거위걸음으로 헌법을 단상에 올렸다. 군화 소리가 장내를 압도했다. 이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헌법에 왼손을 올리고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쥔 채 외쳤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 충성하고, 헌법의 권위를 수호하며, 법이 정한 사명을 이행하고, 조국에 충성하고, 인민에 충성하며,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고 멸사봉공하며 인민의 감독을 받아들이겠다.” 3연임을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을 마친 시 주석은 이날 만장일치로 국가주석에 재선됐다. 대표 2970명이 28개 붉은 전자투표함에 투표하는 동안 기자들은 밖으로 나가야 했다. 중국식 비밀투표였다.   다음날 인민일보 1면이 인상적이었다. 시 주석의 공식 사진과 헌법 선서 사진 두 장이 한 면을 가득 채웠다. 파격이었다. 5년 임기인 전인대는 새로운 회기마다 국가주석과 군사위 주석, 전인대 위원장과 국가부주석을 같은 날 뽑는다. 장쩌민 주석이 군사위 주석직을 넘기지 않았던 2003년에는 후진타오·장쩌민·우방궈·쩡칭훙 네 명의 사진이 똑같은 크기로 실렸다. 2008년 후진타오가 국가와 군 주석을 겸임하며 3명으로 줄었다. 2013년에는 국가부주석이 빠졌다. 두 명 남았다. 2018년 전인대 위원장의 사진까지 빠졌다.   중국 헌법을 살폈다. “모든 권력은 인민에 속한다. 인민이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지방 각급 인민대표대회다(헌법 2조).” 2조보다 57조에 주목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최고 국가 권력기관이다.” 헌법이 전인대의 위상을 규정한 조항이다.   5년 전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헌법상 최고 국가 권력기관의 책임자 사진을 지웠다. 오늘 14억을 대표한다는 전인대 대표 2948명이 국가주석을 다시 뽑는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2023.03.10 00:37

  • [글로벌 아이] 한동훈 장관과 FBI 방문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공직자 인사검증은) 지금 우리(법무부)가 하는 것이고, 미국에서는 FBI(연방수사국)가 하고 있다.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와서 자료를 같이 한번 공유해보려 한다.”   지난해 6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미국 덜레스 공항에 도착해 특파원들에게 한 말이다. 8박 9일 일정 중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FBI 방문과 크리스토퍼 레이 국장 면담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선진 인사검증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며 법무부 산하에 만든 인사정보관리단의 모델이 바로 FBI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국회 법사위에서 야당 의원이 미국 방문 동안 한 게 뭐냐고 문제 삼자, 한 장관은 FBI 국장과 약속 잡기가 쉽지 않은데 그와 만난 것은 쏙 빼고 말하느냐며 서운해했다. 그러면서 FBI 방문이 주된 일정이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미국 워싱턴에서 미 연방수사국(FBI) 크리스토퍼 레이 국장과 만난 한동훈 법무부 장관(왼쪽). [연합뉴스] FBI는 1953년부터 공직자에 대한 인사검증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으니 가서 노하우를 배워올 만했다. 그런데 정작 이를 따라 만들었다는 인사정보관리단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교폭력 문제를 걸러내지 못했다. “본인이나 가족의 소송 같은 문제는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는 한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게 한 장관의 변이다.   그러나 FBI는 검증 대상의 범죄 전과는 물론 가족, 심지어 이혼한 배우자의 행적도 조사한다. 필요하면 직접 인터뷰를 하고, 이들의 소셜미디어도 뒤져본다는 내용은 굳이 FBI 국장을 만나지 않고 홈페이지만 검색해도 알 수 있다.   FBI가 후보자의 적격 여부까지 판단하진 않지만, 가끔 너무 철저하게 파헤친 내용을 숨김없이 전달하다 보니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백악관에서 첫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가 낙마한 마이클 플린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처음 밝혀낸 것도 FBI의 인사검증 시스템이었다. 이런 까닭에 FBI는 트럼프 집권 기간 내내 눈엣가시였고, 심지어 음모론상의 비밀 기득권 세력 ‘딥 스테이트(Deep State)’의 행동대장이라는 비난까지 뒤집어썼다.   당초 인사정보관리단을 정부의 실세 장관 밑에 둔다고 했을 때부터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간 크고 작은 잡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FBI가 지금껏 인사검증을 맡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독립성과 중립성이었기 때문이다. FBI 국장이 이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 안 해준 것인지, 아니면 했는데도 귀를 닫았는지는 한 장관 본인만 알 일이다.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2023.03.07 00:28

  • 양배추 밭에 '41조 씨앗' 심다…日, 반도체 부활 노리는 이곳 [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이영희 도쿄특파원 "신(新) 여객터미널 오픈까지 앞으로 21일!" 지난 2일 일본 도쿄(東京)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걸려 도착한 구마모토(熊本) 공항에는 새로운 터미널 건설을 알리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휘날리고 있었다. 오는 2027년 공항 이용객 480만 명을 목표로 약 183억엔(약 175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은 신공항은 오는 23일 문을 연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예상보다 15분이 더 걸렸다. 택시 기사는 "코로나19 규제 완화 후 국제선이 재개된 영향도 있고, TSMC 공장 건설 이후 방문객이 급증해 교통 체증이 심해졌다"고 했다.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정에 세워지는 TSMC 공장 건설 현장. 전체 공장부지는 도쿄돔의 약 4.5배 규모다. 이영희 특파원   2021년 10월, 대만 반도체업체 TSMC가 이곳에 신규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한 후부터 인구 172만 명의 구마모토현은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지역이 됐다. 아소산 기슭 기쿠요(菊陽)정에 세워지는 21만㎡ 규모의 공장은 착공 2년 만인 올해 말까지 완공, 내년 말 제품 출하를 목표로 24시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TSMC가 1공장 인근에 2020년대 말 완공을 목표로 두 번째 공장을 건설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3일 오전 건설 현장을 찾았다. 드넓은 양배추밭 한가운데 거대한 공사 가림막이 세워져 있고, 인부들과 차량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관리인이 다가와 "공사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멀리서 촬영해 달라"고 주문했다. 완공 후 이 공장에서는 카메라와 자동차 등에 주로 사용되는 12~28 나노미터(nm)의 시스템 반도체를 월 5만 5000장 생산할 계획이다. TSMC 외에도 일본 전자업체 소니와 자동차 부품 업체 덴소가 이 공장에 출자했는데, 생산 반도체의 상당 부분은 출자 기업의 제품 생산에 사용될 전망이다.     ━  "'실리콘 아일랜드' 명성 되찾자"   구마모토는 일본 반도체가 세계 시장을 석권했던 1980년대부터 관련 산업을 이끌어온 도시였다. 화산을 품고 있어 지하수가 풍부하고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1960년대에 NEC와 미쓰비시 반도체 공장이 들어섰고, 2000년대에는 현 TSMC 공장 부지 인근에 소니 세미컨덕터솔루션스 공장과 도쿄일렉트론 규슈 공장이 세워졌다. 구마모토를 중심으로 한 규슈(九州) 일대는 한때 전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10%를 만들어내는 '실리콘 아일랜드(Silicon Island)'로 불렸다. 그러나 한국과 대만 등에 밀려 일본 반도체 산업의 위상이 저하되면서 지역에도 긴 경기 침체가 찾아왔다.    일본 구마모토 TSMC 공장 건설현장. 주변은 양배추밭이다. 이영희 특파원   게다가 2016년 대지진으로 구마모토의 산업 기반이 다수 훼손됐다. TSMC 공장은 이런 구마모토에 부흥의 씨앗을 심고 있다. 규슈파이낸셜그룹은 이번 공장 유치로 인한 경제 효과가 향후 10년 간 4조 3000억엔(약 4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공장 직원 1700명을 비롯해 관련 기업 등에서 총 7500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  日정부, 공장 설립비용 40% 지원    여기엔 반도체 강국으로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 TSMC 제1공장 사업비 1조 1000억엔(약 10조 5000억원)의 40% 정도인 4760억엔(약 4조 5500억원)을 일본 정부가 보조한다. 2020년대 말 완공되는 두 번째 반도체 공장 설립에는 1조엔(약 9조 69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되는데, TSMC는 이번에도 일본 정부와 보조금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구마모토현도 반도체 관련 산업 육성을 중점 과제로 삼고 관련 예산을 이전의 2배 규모로 증액했다.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류몬(龍紋)댐의 사용하지 않는 용수를 활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구마모토현 산업진흥국 반도체입지지원실 모토다 게이스케(元田啓介) 실장은 "공장 운영과 직접 관련된 지원 뿐 아니라 도로 건설 및 공항 확장 등 인프라 확충, 대만에서 입국하는 TSMC 직원들에 대한 생활 지원 등에 현 전체가 나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문 인력 고령화, 대학이 나섰다   반도체 산업 인력 양성에는 교육기관이 나선다. 국립대인 구마모토대는 지난 4월 공과대학에 반도체연구교육센터를 설립했다. 아오야기 마사히로(青柳昌宏) 센터장은 "과거 일본 반도체 산업을 이끌었던 우수한 인력들이 이제는 고령화해 은퇴를 앞두고 있다"면서 "반도체 부흥을 위해서는 새로운 인재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오야기 마사히로 일본 구마모토대 반도체연구교육센터장. 이영희 특파원   이번 학기에는 우선 공대생들을 대상으로 반도체 관련 수업을 개설했는데 1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수업을 신청했을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내년에는 아예 공대 내에 반도체 학부 과정을 신설한다. 일본의 국립대에 관련 학부가 생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의 기반이 되는 공학 이론에서부터 제조의 실무, 공정 관리 등을 교육한다. 아오야기 센터장은 "TSMC 등 관련 기업 인턴십 프로그램 등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제적인 인재 육성을 위해 한국의 카이스트(KAIST) 등과도 연계한다.          ━  "반도체 공장 유치" 지자체 경쟁 치열    규슈 내에 있는 나가사키(長崎)현, 후쿠오카(福岡)현 등도 지역 내 반도체 관련 인력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나가사키현은 인근 지역에서 향후 5년 내 약 2700명의 관련 인재가 필요하다고 보고 올해 반도체 교육과 취업 지원 사업에 총 1억6500만엔(약 15억 7000만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후쿠오카현도 반도체 교육기관인 '후쿠오카현 반도체인재 리스킬링(Reskilling)센터'를 신설한다.   구마모토를 시작으로 반도체 기업 유치를 위한 일본 지자체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도요타·키옥시아·소니·NTT·소프트뱅크·NEC·덴소·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의 대기업 8곳이 설립한 반도체회사 '라피더스'는 최근 2나노미터급의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공장 부지로 홋카이도(北海道) 치토세(千歲)를 낙점했다. 라피더스는 공장 건설에 총 5조엔(약 48조원)을 투자하고, 일본 정부는 연구·개발 비용 등으로 700억엔(약 6800억원)을 지원한다.   관련기사 日 48조원 쏟아붓는 차세대 2나노반도체 공장, 홋카이도 치토세 낙점 반도체는 반토막 났다…2월 수출액 다섯달 연속 감소 위기 일본은 ‘국대급 반도체 회사’ 띄우고, 대만은 쾌속행진 중 구마모토=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2023.03.06 00:42

  • [글로벌 아이] 일본 오무타시 징용 위령비

    김현예 도쿄 특파원 “내가 말입니다. 한국어는 서투른데… 일본어 할 줄 알아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우판근(85) 재일본대한민국민단 후쿠오카(福岡)현 오무타(大牟田) 지부 지단장이다. 일본서 자이니치(在日)로 불리는 재일동포로, 거제도에 살다 네 살 때 일본으로 가족들과 건너왔다. 고등학교 3학년,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면접까지 잘 치르고 돌아와, 되겠거니 싶었지만 결론은 낙방. 조선인이라서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낙방 소식을 전하는 그를 일본인 담임 선생님이 끌어안았다. “지지 마라. 이런 것들에 절대 져선 안 된다.”   그가 20대 초반이던 어느 날, 어느 술집에서 만난 노인이 그의 삶을 바꿔놨다. 혼자 술을 마시던 어르신이 눈물을 흘렸다. 함께 탄광에 끌려왔던 동료가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거였다. 집에 돌아와도 잊히질 않았다. 징용공들의 유골은 어디에 있는 건가. 이들은 어디에서 왔나.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50대가 되면서 민단 간부가 되곤, 위령비를 세워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탄광회사들 명부를 찾고, 당시 한국 ‘면사무소’에 연락해 희생자들의 흔적을 따라갔다. 10년이 걸린 조사 끝, 징용노동자들이 일했던 회사 세 곳과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달 21일 일본 후쿠오카 현 오무타시 아마기 공원에 있는 징용희생자 위령비를 찾은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 [사진 주일 한국대사관] 안될 것 같던 일이 기적처럼 풀리기 시작했다. 위령비는 징용노동자 대부분의 고향인 경기도 여주에서 만들어서 보내기로 했다. 위령비가 들어설 부지는 오무타시가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미쓰이 석탄광업, 미쓰이 동압화학, 전기화학공업 등 기업 세 곳이 건립비를 내기로 했다.   1995년 오무타시 아마기 공원에 세워진 위령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비문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땅에 강제로 징용되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위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추모식도 매년 열기 시작했는데, 시장과 지역 의원, 기업들이 모두 빠짐없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우 지단장은 “한·일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추모식을 거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이곳을 찾은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가 “진정한 화해의 상징”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일본은 파트너”란 3·1절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일본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격인 관방장관은 이 발언을 “잘 알고 있다”며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란 말을 반복했지만 일부 언론에선 강제징용 배상문제에 대해 ‘일본 총리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설까지 실었다. 인구 10만6000여 명의 작은 도시 오무타도 지난 28년간 이어가고 있는 이 화해를 일본 정부가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나. 김현예 도쿄 특파원

    2023.03.03 00:26

  • [글로벌 아이] 케임브리지 대학생의 ‘비건’ 선언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옥스퍼드와 함께 영국 지성의 양대 산맥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최근 먹거리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지난주 대학 학생회가 실시한 투표에서 대의원들의 압도적인(72%) 찬성으로 캠퍼스 내 모든 식당을 식물성 식자재만 사용하는 비건(vegan) 업소로 바꾸자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학생회는 이번 결정이 기후 변화와 생명 다양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 과감한 전환을 위해 대학 당국과 본격적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과연 육류는 물론 우유·달걀 같은 모든 동물 유래 식재료가 케임브리지 대학 식당에서 완전히 사라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 학생들이 대학 내 식당에서 모든 육류를 배제하기로 결정한 후 밝은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Plant-Based Universities] 케임브리지 대학의 먹거리 관련 ‘파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16년 소고기와 양고기가 모든 대학 내 식당에서 추방된 바 있다. 소위 되새김(ruminant) 동물 산업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줄여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영국인 한 명의 연간 평균 육류 소비는 82㎏으로 세계 평균의 두 배에 육박하는 데다 소고기와 양고기는 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육류다. 옥스퍼드 대학도 이미 3년 전 같은 결정을 내렸고, 그에 따른 논쟁과 반발이 이어졌다.   영국 대학들의 이러한 비건 전환 움직임은 ‘식물기반 대학’(Plant-Based Universities)이라는 전국 학생단체가 이끌고 있다. 이 단체는 오는 2024년까지 영국 대학이 제공하는 모든 메뉴에서 동물성 식재료를 배제하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지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자는 담대한 목표를 천명했다. 환경 파괴를 막는 연구에 앞장선 대학 지성인들이 더 이상 먹거리가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설득력이 있는 주장에 네덜란드와 호주 학생들도 동참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축·수산업과 낙농업이 배출하는 지구 온난화 가스가 자동차·항공·철도 등 운송업 전체에서 배출되는 양보다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구 인구가 1% 많아질 때마다 축산업의 동물 개체 수가 2% 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미국의 저명한 비영리 민간 환경 연구기관인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가 주창한 한 문구가 떠오른다. “단 하나의 육류 요리를 식물 기반으로 대체하면 당신의 휴대전화를 2년간 충전할 때 배출되는 지구온난화 가스를 줄일 수 있다.” 작은 실천이 큰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2023.02.28 00:43

  • 시진핑이 공들인 섬…인천공항 넘보는 '세계 1위 면세점' 키웠다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1145만 명. 포스트 코로나 원년을 맞은 지난 1월 중국의 대표적 휴양지 하이난(海南)을 찾은 관광객 숫자다. 지난해 1월 대비 72.1% 늘었다. 펑페이(馮飛) 하이난 성장(省長)은 올해 정부 업무보고에서 관광객과 관광수입 목표로 각각 20%와 25% 증대를 제시했다. 올 한 해 7200만 명의 관광객, 24조8000억 원의 관광수입을 올리겠다는 계산이다. 경제성장률 목표치는 9.5%다. 지난 23일 중국 하이난 싼야 동부 해안에 자리한 싼야 국제 면세시티 3층 화장품·향수 매장에서 중국 여행객들이 구매한 물건을 결제하고 있다. 지난 1월 음력설 연휴 1주일간 하이난 내 12개 국내 면세점은 총 486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싼야=신경진 특파원 중국 하이난 싼야 동부 해안에 자리한 싼야 국제 면세시티 전경. 축구장 17개 면적의 초대형 면세점을 운영하는 차이나듀티프리그룹이 오는 28일 인천공한 면세점의 10년 운영권 입찰에 참여한다. 싼야=신경진 특파원 지난 23일 싼야(三亞) 해변의 국제 면세시티. 축구장 17개(12만㎡) 넓이로, 국영 차이나 듀티프리그룹(中國免稅·CDFG)이 운영하는 내국인 전용 면세점이다. 자오징(趙晶) 마케팅 담당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면세 한도를 연 3만 위안(546만 원)에서 10만 위안(1820만 원)으로 늘렸다”며 “면세 종류도 38종에서 45종으로 늘려 성장을 견인했다”고 자랑했다.     ■  「 하이난 자유무역항 제2 홍콩 꿈꿔 1월 관광객 1145만명, 72.1% 증가 코로나 속 면세한도 늘려 폭풍 성장 시진핑 “소비가 경제 발전의 기초” 한국 기업도 수출 기회 노릴 무대 」  최근 중국의 보복성 소비는 숫자가 잘 보여준다. 지난 춘제(음력설) 기간(1월 21~27일) 하이난 내 12개 국내 면세점 총 매출은 25억7200만 위안(4863억 원)을 기록했다고 하이난 상무청이 발표했다. 하루 평균 681억원 규모다. 2019년과 비교해 세 배 이상 증가했다.   현장에서 만난 내륙 관광객들은 대부분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상하이에서 왔다는 20대 장(張)모씨는 “해외 관광 비자는 아직 번거로워 싼야를 찾았다”며 “면세 쇼핑으로 해외여행 기분까지 만끽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하이난을 기반으로 ‘굴기’(崛起·우뚝 섬)한 CDFG는 세계 면세점 업계의 판도를 바꿨다. 2019년까지 10위권 밖이던 CDFG는 2020년 세계 1위로 치고 올랐다. 2021년 매출은 약 13조 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 2위와 3위인 롯데 면세점과 신라 면세점의 매출액을 더한 것보다도 많았다. CDFG는 여세를 몰아 28일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 참여한다. 향후 10년 운영권을 놓고 한국 업체와 경합한다. 사업제안서(60점)와 가격(40점)을 합산해 결정되는 낙찰 결과는 세계 면세점 업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이난에서 만난 한 중국 면세점 관계자는 “한국 면세점의 주요 고객과 성장 가능성까지 고려한 진취적 판단을 기대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CDFG가 중국 관광객의 한국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중국은 한국이 2002년 도입했던 내국인 면세점 사업을 2011년 뒤늦게 도입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3년 사이에 내국인 면세 한도를 1820만원까지 늘리며 급성장했다. 이제 한국의 간판 면세점 운영권을 넘보는 수준까지 왔다.   중국 면세 산업의 폭풍 성장 배경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있다. 2013년과 2018년에 이어 지난해 4월에도 하이난을 방문한 시 주석은 싼야 국제 면세시티를 직접 찾아 내국인 면세정책을 점검했다. 그는 “소비가 경제발전에서 기초 역할을 더 잘하려면 초(超)대규모 시장의 이점을 기반으로 삼아 더 나은 시장 환경과 법치 환경을 만들고, 신뢰의 경영과 양질의 서비스로 소비자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규제를 풀 테니 기업은 양질의 서비스로 내수를 견인하라는 지시인 셈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이난은 시진핑 시대의 개혁개방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2020년 중국 정부는 대만 면적(3만5960㎢)에 버금가는 하이난 전역(3만3900㎢)을 무관세 자유무역항으로 만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청사진에는 “시 주석이 직접 계획하고, 직접 배치하고, 직접 추진한 개혁개방의 중대 조치”라고 명기했다. 개혁개방의 시범구, 생태 문명 시범구, 국제 여행소비 센터, 국가급 중대 전략 서비스 보장구로 위상을 세웠다. 지난해 4월 11일 시진핑(왼쪽 세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하이난의 열대우림 지역인 우즈산 국립공원을 방문해 생태 관광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오른쪽 두번째가 하이난 자유무역항 건설을 진두지휘하는 선샤오밍 성 당서기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에서 시 주석 방문은 관광객 행렬로 이어진다. 이른바 ‘시진핑 효과’다. 지난 21일 하이난의 한라산 격인 해발 1867m 우즈산(五指山)에서 만난 주훙링(朱宏凌·45) 시 당서기는 “코로나 기저 효과로 춘절 기간 우즈산 관광객이 300% 늘었고 관광 수입은 400% 늘었다”며 “지난해 4월 시 주석이 우즈산을 방문한 영향”이라고 말했다. 대기 오염으로 악명 높은 중국에서 초미세먼지(PM2.5)와 미세먼지(PM10)가 모두 제로(0)인 열대우림 산악 기후를 활용한 로하스(LOHAS, 건강과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생활방식) 관광이 이 지역의 무기다.   제2의 홍콩으로 변신하려는 하이난을 한국의 중견 기업들도 주목하고 있다. 내국인 면세점을 활용해 중국 내수를 공략할 수 있는 교두보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이난을 관할하는 한재혁 광저우 총영사는 “지난해 하이난성 하이커우(海口)에서 열린 중국 국제 소비재 박람회에 이미 19개 한국 기업이 참가해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그는 면세 품목까지 다양해지면서 고가의 명품 브랜드가 아닌 한국 기업이라도 수출 기회를 노려볼 만하다고 했다.   하이난은 관광 이외에도 육·해·공 3대 미래 산업 육성에 나섰다. 조타수는 선샤오밍(沈曉明·60) 하이난 당서기다. 의학박사 출신으로 상하이 부시장, 교육부 부부장(차관)을 역임한 다채로운 이력의 선 서기는 2017년 하이난에 투입됐다. 지난해 4월 성급 당 대회에서 선 서기는 ‘사상 해방’을 앞세우며 “국가적으로 수요가 절박하고 하이난에 유리한 남번(南繁, 여름 작물인 벼·옥수수·목화 등을 가을에 수확한 뒤 겨울 동안 하이난에서 추가 번식하는 바이오산업), 심해, 우주 산업을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3대 미래산업 가운데 주력은 원창(文昌) 우주 위성 발사 기지다. 세계적으로도 숫자가 적은 저위도 위성 발사장으로, 차세대 운반로켓으로 불리는 창정(長征) 5호가 2016년 11월 이곳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싼야의 심해과학공정연구소는 심해 탐사선 ‘펀더우저(奮鬪者)’로 지난해 뉴질랜드 인근 해저 1만1000m 탐사에 성공했다. 하이커우·우즈산·싼야=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2023.02.27 00:41

  • [글로벌 아이] 중국 챗봇에서 본 ‘희망’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중국에서 챗GPT는 사용 불가능 국가로 나온다. 스마트폰으로 인증 번호를 받아 입력해야 하는데 중국 폰으로는 안 된다. 한국 번호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챗GPT에 가입한 건 중국 챗봇의 응답과 비교해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9일 중국 최초의 챗봇 ‘위안위’(元語·ChatYuan)가 출시 6일 만인 돌연 서비스를 중단했다. 무슨 답변이 정부의 심기를 거슬렀을까. SNS엔 챗위안의 캡처 답변이 부스러기처럼 흩어져 있다.   중국 경제 전망에 대한 질문에 챗위안은 “투자 부족과 부동산 버블, 환경 오염, 기업 효율성 저하 등의 문제가 있으며 중국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 중국 정부나 언론에서 비관적 경제 전망은 금기어다. 여론을 흔들고 정권에 대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어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은 침략 전쟁”이라고 했고, 특히 시진핑 주석 장기집권(연임)에 대한 평가를 묻자 “질문에 규칙을 위반하는 용어가 포함돼 있다. 다시 입력해 달라”고 떴다.   챗위안 대화창에 ‘시진핑’을 입력하면 “규정에 위반된 단어다. 다시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챗위안 APP 캡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중국 정부는 ‘사태’나 ‘분쟁’이란 표현을 쓴다. 러시아의 침략이라고 말했다간 공무원 자리를 내놔야 할지도 모른다. 시 주석에 대한 평가는 현지인들과 대화에선 언감생심 꺼내기 어렵다. 그런 질문을 했다간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짐)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같은 질문을 챗GPT에 던져봤다. 꽤 중립적으로 답변한다는 인상이다. “경기 침체, 과도한 부채, 수출입 불균형 등으로 경제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AI 언어모델로서 개인 의견을 제공할 순 없지만 러시아의 군사 행동이 침략 전쟁에 해당한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시 주석에 대한 답변은 정중하지만 날카롭다. “시진핑의 장기 집권은 중국의 정치적인 안정과 국내외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 인민의 자유와 민주성에 문제를 던진다.”   지난 21일 중국 푸단대 자연언어처리실험실이 두 번째 챗봇 ‘MOSS’를 공개했다 하루 만에 문을 닫았다. 3월엔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가 차세대 AI언어모델 ‘원신이옌(文心一言)’을 출시한다.   네티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AI는 정치적 시험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조롱했다. 중국은 챗봇을 가지더라도 검열로 왜곡되는 AI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개방형 AI가 나오면 프로그래머보다 더 많은 콘텐트 검열 직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AI 챗봇이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중국을 보면서 위안이 된다. AI보다 ‘창의적으로’ 검열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국이란 나라가 있으니 말이다. 박성훈 베이징 특파원

    2023.02.24 00:40

  • [글로벌 아이] 살던 집으로 돌아온 대통령 카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건 2001년 여름이었다. 무주택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 ‘해비타트’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 위해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내한한 그를 인터뷰했다. 충남 아산 현장에서 그는 숙련된 솜씨로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했다. 무더위에 연신 땀을 훔치면서도 연장을 놓지 않는 77세 전직 대통령 모습은 인상 깊었다. 그는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과 만난 이후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무르익었는데, 김 주석의 사망으로 회담이 중단된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통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북한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며 열정을 보였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994년 6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받은 선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카터센터] 카터는 재임 기간(1977~81년) 인기가 없었다. 미국인은 그에게 연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재선에 도전한 80년 대선에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가 44개 주에서 이겨 당선됐다. 기록적인 대패였다. 스태그플레이션과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결정타였다. 1932년 이후 48년 만에 단임 대통령으로 불명예 퇴임했지만, 그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 카터센터를 세워 저개발국 선거 참관인 봉사, 질병 퇴치, 인권 증진 등 민주주의 확산과 사회 문제 해결을 소명으로 삼았다.   다시 그의 소식을 접한 건 2021년 여름이었다. 카터 부부가 사는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결혼 75주년 기념식이 열려 하객이 몰렸다는 기사였다. 카터는 백악관에서 나와 인구 700명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1961년 손수 지은 집에서 그대로 산다. 저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방 2개짜리 집은 2년 전 시세가 약 21만 달러(약 2억5000만원)였다. 백악관을 나온 뒤 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온 유일한 미국 전직 대통령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당선 전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일은 드물다. 빌 클린턴은 퇴임 후 아칸소 대신 뉴욕에 자리 잡았다.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도 시카고나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당선 전보다 퇴임 후 더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주택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터는 다른 대통령처럼 수십억 원씩 사례하는 고액 강연이나 기업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았다. “백악관 생활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그 힘을 세상을 바꾸는 데 쓰려고 했다. 그래서 퇴임 후 더 존경받았다.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란 별칭도 얻었다. 그가 적극적 치료 대신 호스피스 관리를 받기로 했다고 알리자 응원이 답지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추모’를 생전에 들을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는 대신 집에서 가족과 이별을 준비하는 마지막 역시 선도적이다. 박현영 워싱턴 특파원

    2023.02.21 01:01

  • [글로벌 아이] 어느 국회의원 후보의 가계도

    이영희 도쿄특파원 본인 자신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오는 4월 23일 열리는 일본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야마구치(山口) 2구에 출마한 자민당 후보 기시 노부치요(岸信千世) 이야기다. 올해 31세인 그의 경력이라고는 게이오대를 나와 후지TV에서 6년간 사회부 기자로 일한 게 전부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 이유’를 늘어놓아야 하는 상황. 그래서 가장 큰 강점을 적기로 한다. 바로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이유, 즉 ‘가문’이다.   그럴 만도 하다. 기시는 일본 최고의 ‘정치 명문가’로 불리는 집안의 종손이니까. 그가 선거용 홈페이지에 올린 ‘가계도(家系圖)’는 화려한 이름들로 채워졌다. 증조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출신으로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요, 증종조부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다. 할아버지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는 외상을 지냈고, 지난해 7월 총격 사건으로 숨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삼촌이다. 아버지는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이지만 외가에 양자로 보내진 기시 노부오(岸信夫) 전 방위상. 삼촌이 갑자기 사망하고 아버지도 건강 때문에 의원직에서 사퇴하면서 그는 아버지의 선거구를 물려받게 됐다.   자신의 ‘가계도’를 선거 홈페이지에 올려 물의를 빚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조카 기시 노부치요 후보. [트위터 캡처] 그가 정치인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는 선거 홈페이지에서 알 수 없다. ‘정책’ 항목에는 ‘꿈이 넘치는 마을 만들기’라는 해맑은 공약이 적혀 있을 뿐이다. “내세울 게 집안밖에 없는 거냐” “지금이 봉건시대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13일 홈페이지를 아예 닫아버렸다. 선거만 아니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지. “가문도 실력이야. 억울하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정치도 가업’이라는 인식이 일본엔 있다. 현직 의원의 3분의 1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현 총리를 포함해 지난 30년 간 총리를 지낸 사람 중 70%가 세습 정치인이라는 통계도 있다. 일본에서 유독 세습정치가 용인되는 이유에 대해 ‘3반’을 요구하는 선거문화 때문이란 해석이 있다. ‘3반’은 지반(地盤·지역조직), 가반(한국어로 ‘가방’, 자금력), 간반(看板·지명도)인데 이로 인해 세습 정치인에게 유리한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돈과 조직, 지명도가 필요한 건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닐 터. 더 큰 원인은 정치를 ‘나의 일’로 여기지 않는 무관심이다. 세습정치가 당연시되면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이는 더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3류’로 평가되는 일본 정치의 변화는 이 악순환을 끊는 데서 시작돼야 할지 모른다. 이영희 도쿄 특파원

    2023.02.17 00:44

  • [글로벌 아이] 중국 샤프파워의 황혼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관련 부처에 문의하라.” 지난 9일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두 차례 말했다. 호주산 석탄이 이날 수입 금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에 입항했고, 내달부터 호주산 랍스터의 수입을 허가했다는 외신 보도의 확인을 피하면서다. 관련 부처 운운은 “알려주지 않겠다”는 외교 레토릭이다. 호주는 이날에도 중국산 폐쇄회로 카메라를 퇴출했다. 호주식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외교를 시연했다.   지난달 30일에는 페트로 파벨 체코 대통령 당선인이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했다. 다음날 마오 대변인은 “중국의 레드라인을 밟았다”며 반발했다. 즉각 보복은 없었다. 2019년 즈데넥 흐리브 프라하 시장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의 보복 공세와 달랐다.   지난 6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오른쪽)이 돈 패럴 호주 무역장관(왼쪽)과 4년 만에 화상 회담을 갖고 무역 현안을 논의했다. [AP=연합뉴스] 중국의 샤프파워(Sharp Power)가 퇴조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그간 정치·외교 갈등을 경제로 보복하는 샤프파워를 즐겼다. 무력을 앞세우는 하드파워는 사용이 제한되고, 소프트파워는 취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차이나 불링(China Bullying)’으로 불리는 샤프파워는 타국의 정부와 기업이 미래 행동에서 중국의 이익을 예상하고 존중하며 따르게 하겠다는 장기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샤프파워 사용을 자제한다. 경제 부진이 배경이다. ‘제로 코로나’ 3년 동안 치른 경제 비용을 만회하고 중진국 함정까지 돌파하려니 보복은 사치가 됐다.   샤프파워 효과도 감소했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대응은 강화됐다. 최신 버전은 ‘집단적 회복탄력성(Collective Resilience)’이다. 재난을 겪은 뒤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탄성·회복력을 집단적으로 갖추자는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제안이다. 그는 포린어페어스 최신호에서 “중국이 단일 회원국을 괴롭힐 때마다 필수 재화에 접근을 차단하겠다고 위협하는 클럽을 조직하자”고 주장했다. ‘집단적 회복탄력성’은 무역전쟁을 위한 전략이 아니므로 방어를 위한 순수한 경쟁 전략으로 다듬자고 강조했다. 다국적 대응만이 향후 중국의 약탈적 행동을 저지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과) 경쟁에서 이기려면 모두 단결해야 한다”는 바이든 미 대통령의 연두교서와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한국이다. 최근 방역 보복처럼 중국발 샤프파워는 여전히 한국을 괴롭힌다. “힘을 바탕으로 진정한 대등 관계가 수립될 때에야 전통적 조공관계를 바탕으로 한 화이사상으로 가꾸어진 중국인들의 한국인 멸시감이 사라질 것이다.” 한·중 수교 직후 한국의 강한 민주역량을 주문했던 고 민두기 서울대 교수의 조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2023.02.14 00:37

  • "검색은 추억서도 사라질 것" 벌써 1억명 삶 바꾼 챗GPT 미래 [김필규의 아하, 아메리카]

    전기나 심지어 불보다도 인류에게 더 심오할 것.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2018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선다 피차이가 인공지능(AI)에 대해 내놓은 전망이다. 그는 "인류가 만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5년이 지난 지금, 피차이의 예상처럼 전 세계인들은 대화형 AI, 챗(Chat) GPT에 열광하고 있다. 모든 질문에 거침없이 답하고, 삶에 조언을 해주며, 농담까지 하는 AI가 갑자기 우리 삶에 들어왔다.     오픈AI는 지난해 주문에 따라 인공지능(AI)이 그림을 그려주는 달리2(DALLE-2) 서비스도 선보였다. '챗GPT가 바꿔놓을 미래'에 대해 표현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달리2는 이런 그림을 내놨다. 김필규 특파원 챗GPT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AI 연구단체 오픈AI가 지난해 11월 30일 출시했다. 무료로 공개했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선 매달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나가고 있지만, 모두에게 AI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출시 후 두 달 동안 이미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1억명을 돌파했다. 이제 미국 매체들은 챗GPT로 인해 미국인들의 생활이 바뀔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  “인터넷 검색이란 말 사라져”     오픈AI의 CEO 샘 알트먼은 최근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앞으로 구글을 통해 검색하는 습관 자체가 사라질 것을 예고했다. 당장 챗GPT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등장할 대화형 AI가 그렇게 할 거라고 했다.     앞으로의 세대는 ‘검색’을 아예 모를 수 있고, 기성세대의 추억에서도 사라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창에 질문을 넣던 방식을 개선하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더 멋진 무언가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  “전문성 갖춘 AI 비서 생기는 것”   현재 챗GPT는 회사가 미리 정해준 데이터만 사용한다. 정치적으로 편향되거나 논란이 될 수 있는 결과는 배제한다.     그러나 앞으로 개인이 데이터 활용 범위와 결과를 지정해 자신만의 챗GPT를 사용하게 된다면, 검색이란 행위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설 수 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각자가 전문 영역을 꿰뚫고 있는 AI 비서를 두게 되는 셈"이라고 전망했다.     오픈AI는 지난해 주문에 따라 인공지능(AI)이 그림을 그려주는 달리2(DALLE-2) 서비스도 선보였다. '챗GPT가 바꿔놓을 미래'를 유화로 표현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달리2는 이런 그림을 내놨다. 김필규 특파원  ━  “프로그래머 10명 중 2명만 필요”     대화형 AI 시대에 상당수 직업은 대체나 소멸을 피할 수 없다.     가장 위협받는 직종은 정해진 순서에 따른 예측 가능한 업무다. 소위 일반 행정직이 포함되는데, 정부나 공공기관의 민원 상담 업무에 챗GPT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경우 해당 업무 인력의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높은 교육수준을 요구했던 직종도 피해갈 순 없다. 작가·기자·번역가·교사·변호사 등이 포함된다. 결국 "같은 정보량을 생산하는 데 있어 지금보다 적은 인력이 필요하며, 노동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게 브루킹스 보고서의 전망이다.     의료 분야에선 이미 챗GPT의 능력이 계량적으로 검증됐다. 캘리포니아주 의료기관인 앤서블헬스의 연구진이 챗GPT에게 미국 의사면허시험을 치르게 했더니 모든 단계에서 약 60%의 정답률을 보이며 통과했다. 일반 의대생이 오픈북 시험으로 봐도 몇 시간이 걸릴 문제를 단 5초 만에 풀었다.   컴퓨터 코딩을 하고 오류를 잡아내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간 10명의 프로그래머가 필요했다면 이젠 AI의 작업을 검토만 할 2명이면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  “늑대는 이미 문 앞에”       기존 정보를 그대로 가져와 인용하다 보니 챗GPT가 작성한 기사에선 ‘팩트 체킹’에 한계를 보였다. 예를 들어 음모론자의 입장에서 특정 사안에 대한 칼럼을 써보라고 하니 완벽한 문장으로 허위 정보를 그럴듯하게 풀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는 챗GPT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온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현재의 개발 속도로 볼 때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것 역시 시간 문제일 수 있다. 로체스터 공대의 펭첸 시 부학장은 대화형 AI가 가져올 변화는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것"이라며 "지금 늑대는 울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문 앞에 와 있다"고 말했다.      ━  챗GPT “나는 AI 개발의 이정표”   챗GPT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겠냐는 질문에 챗GPT는 자신의 발전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필규 특파원   대화형 AI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챗GPT에게 직접 물어봤다. 물론 그동안 인간이 쓴 글을 바탕으로 정리한 답변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AI 개발의 이정표"라고 평가하면서도 인류에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챗GPT의 답변 요약.     오픈AI가 창조한 챗GPT는 AI 개발에 있어 이정표를 세웠다. 우리 삶을 더 편하게 쉽게 해줄 새 가능성을 열었다. 우선 적용될 수 있는 대상은 소비자 대응이다. 민원에 즉각적이고 정확한 대응을 하면서, 인간 노동자들이 좀 더 복잡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 다른 적용 분야는 콘텐트 제작이다. 인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논문이나 기사 등을 빠르게 쓸 수 있다.  그러나 챗GPT같은 기술의 발달은 인간 노동자를 대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킬 거란 우려도 있다. 챗GPT의 발명은 유망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미래에 미칠 영향이 긍정적일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AI 기술이 더 발전하기 전에 윤리·사회적 기준을 검토해야 한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2023.02.13 00:57

  • [글로벌 아이] 어떤 유언

    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미술 시간, 그림을 그렸는데 선생님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칭찬이 돌아왔다. 그가 그린 건 고향 아키타(秋田)현의 단풍이 곱게 든 산.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로 차별과 가난에 움츠러들었던 어린 하정웅의 마음에 빛이 들기 시작했다. 마냥 그림이 좋았다. 그림 속에선 차별도 서러움도 없었지만, 가난만은 이기질 못했다. 밑으로 동생 셋이 있던 그에겐 장남 자리는 무거웠다. 고교 졸업을 하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사회가 대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죽을 힘을 다해 마지막에 사회에서 졸업증을 받으면 되지 않나.’ 하지만 구직조차 쉽지 않았다. 자이니치였던 탓이었다. 절망의 시간이었다.   지난 55년간 1만2000여 점의 그림을 한·일 양국에 기증한 재일 동포 2세 하정웅옹. 허훈 작가의 금강산 앞에서 ‘자이니치’ 화가들의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그러던 그를 하늘이 도왔다. 26살 때다. 전자제품을 팔았는데, 도쿄 올림픽(1964년)이 열렸다. 불티나듯 물건이 나갔다. 이를 밑천 삼아 부동산업에 뛰어들었다. 운 좋게 개발 붐이 일면서 사업은 쑥쑥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인근에 살던 화가 허훈이 찾아왔다. ‘그림을 팔아달라’는 얘기였다. 풍경화 ‘금강산(1961년)’ 이었다. 가본 적 없는 조국의 풍경에 마음을 뺏겼다. 작가가 자이니치란 이유로 그림 중개는 쉽지 않았다. 이 일로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작가들의 그림 세계에 눈뜨기 시작했다. 자이니치 작가들의 그림을 알리고 싶었다. 모국에 제대로 된 미술관이 없다는 걸 알고는 광주시립미술관과 부산시립미술관 등에 하나둘 기증하기 시작했고, 재일 작가들의 작품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 8일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하정웅 콜렉션’ 전시회에서 만난 그는 올해 84세. 서 있는 것이 불편하다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바꾼 그림 앞에선 시간을 잊었다. 지난 55년간 한·일 양국에 그가 기증한 그림은 모두 1만2000여 점. 정작 그는 “세어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사실 많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돈만으론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어요. 난 빈손이지만, 기증하면 우리 모두의 보물이 될 수 있잖아요.” 목소리가 맑았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아픈 굴곡의 시간을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자이니치로 살아온 그는 이번 전시회가 자신의 ‘유언’이라고 했다. 30대 젊은 한·일 작가 두 명의 작품을 소개하며 그가 정한 주제는 끼리끼리. “서로 손잡고 사이좋게, 행복하게, 같은 길을 보며 걸어나가자”는, 젊은이들과 미래에 보내는 메시지란다. 엄동설한 한·일 관계를 풀자는 소리가 봄 새순처럼 곳곳에서 솟아나고 있다. 고국의 젊은이들, 그리고 일본의 청년들에게도 그의 이런 간절한 바람이 닿기를 바란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2023.02.10 00:44

  • [글로벌 아이] 미·중 전쟁 시나리오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지난달 “2년 안에 미국이 중국과 싸우게 될 것 같다”고 예측한 마이클 미니헌 미 공군기동사령관의 메모가 워싱턴을 뒤집어놨다. 미·중 전쟁은 앞서도 많이 예고됐지만, 이번엔 그 예상 시기가 너무 일렀기 때문이다. 발언자가 현역 4성 장군이란 점도 논란이 됐다.   마침 얼마 전 미 공군대학의 제러드 매키니 교수와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장교들 상대로 군 전략 강의를 하는 그는 시기별 미·중 전쟁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2019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병사들이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기념 행진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중앙정보국(CIA)에선 2027년을 예상했다. “내 생각에 명확한 근거는 없다.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그 시점이 거론되지만, 그때까지 중국은 전투력을 현대화하겠단 목표만 제시했을 뿐, 통일 관련 언급은 없다.”   중국이 통일을 목표한 시점은. “2049년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그해를 국가부흥과 중국몽을 이룰 때로 제시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대만과의 통일을 명시했다. 이때까지 평화적이든, 무력으로든 대만을 합병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가장 유력한 건 2049년인가. “그렇지 않다. 사실 앞으로 10년이 걱정이다. 많은 이들이 시진핑 주석의 집권 연장 욕심을 우려하지만, 경제가 더 문제다.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중국 정권은 정당성 유지를 위해 국가주의를 강화하고 긴장을 높일 것이다. 2024년 대만 총통 선거, 2028년 미국 대선 등이 전쟁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   미니헌 사령관의 메모와 궤를 같이하는 예측이다. 공교롭게 지난주 중국은 미국 영공에 정찰 풍선을 띄워 보내면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예정된 중국 방문을 취소했다. 매키니 교수가 말한 발화점이 이것인가 싶을 만큼 양국 간 긴장감은 최고조로 올랐다.   1년 전,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도 미국 내에선 여러 차례 경고음이 나왔다. 정보기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침공 의도를 폭로했고, 침공 시기에 대한 첩보도 유럽 동맹과 공유했지만 결국 침공 자체는 막지 못했다.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해서도 미 정보당국과 군은 구체적 시기를 제시하며 여러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그런 예측이 결과적으로 미·중간의 파괴적 전쟁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풍선 사건’ 같은 것이 터질 때마다 마음 졸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2023.02.07 00:58

  • [글로벌 아이] 비자 발급 중단이 이익인가

    박성훈 베이징 특파원 한국 정부가 중국행 단기 비자 발급 중단을 2월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자국민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PCR 검사로 예방할 수 있는 상황을 비자 중단이란 강수로 대응한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 경제적 피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지난달 제한 조치는 충분히 수긍할만했다. 방역 해제 후 중국에선 거짓말처럼 빠르게 코로나가 퍼졌고 불투명한 통계 속 중국 인구의 최대 80%까지 감염됐을 것이란 추측은 체감상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확산만큼이나 줄어드는 속도도 빨랐다. 춘제 때 2차 확산을 우려했지만 이미 대다수가 걸린 탓인지 큰 충격은 없었다. 베이징 거리에선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이동 중인 승객. 지난 1일부터 한국에서 들어온 항공편에 대해 PCR 검사가 시작됐다. [EPA=연합뉴스] 감소 추세는 입국자 통계에서도 확연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1일 중국발 외국인 입국자 330명 중 3명(0.9%)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31일엔 7명(2.4%), 30일 3명(0.9%), 29일 2명(1.5%)이었다. 지난달 초 103명(31.5%)으로 정점을 찍은 뒤 13일부터 지금까지 한 자릿수다. 정부는 데이터 부족과 춘제 이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양성률이 떨어진 건 고무적이지만 춘제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섣불리 영향을 판단하기 어렵다. 중국 내 확진자·중환자·치명률 수치를 구체화해줘야 재검토해볼 수 있다.”(정기석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왜 PCR 검사로 부족한지, 비자 제한 연장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조치 연장에 중국의 반격은 더 세졌다. 지난 1일부터 한국발 입국자에 대해서만 PCR 검사를 시작했다. 지난달엔 중국 상황의 심각성이라도 내세울 수 있었지만 이달 들어 반박할 말은 더 궁색해졌다. 한덕수 총리의 한발 물러선 듯한 설명에도 힘이 빠졌다. 중국 외교부가 “중·한 양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유감을 표했고 한 총리는 “감내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2월 28일 전이라도 해제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중국 현지 우리 기업들의 여론은 차갑다. 비자 발급 중단으로 필요한 비즈니스 일정은 줄줄이 뒤로 밀리고 코로나 해제로 사업 재개를 기대했던 업체들은 정부가 제한을 풀기만 기다리고 있다. 문호가 열릴 듯하던 중국 콘텐트 시장도 다시 기다려보라는 식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대중 수출은 전년 대비 31.4% 급감했다. 우리가 중국에 맞출 이유는 없다. 철저히 우리 국익만 따지면 된다. 비자 중단은 이익인가 손해인가. 박성훈 베이징 특파원

    2023.02.03 00:40

  • [글로벌 아이] ‘겨울왕국’ 홋카이도와 올림픽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요즘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에 활기가 돌고 있다. 이번 주말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삿포로 눈축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겨울철이 되면서 삿포로·니세코·오타루 등 홋카이도의 유명 관광지는 여행객들의 소셜 미디어 피드로 넘쳐난다. 지난해 10월 해외 입국자 허용 이후 엔화 약세에 고무된 한국·홍콩·동남아 여행객이 몰려오고 있다. 인기 숙소들은 이미 매진됐고, 맛집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일본의 겨울을 대표하는 삿포로는 2030년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 유치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1972년 아시아 처음으로 겨울올림픽을 개최한 전력을 내세워 또다시 이 도시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포부다. 반면 그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 같은 조짐이다. 삿포로시 차원에서의 유치전뿐 아니라 겨울올림픽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삿포로 눈축제’가 열리는 공원 옆 도로변에 2030년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 유치를 홍보하는 포스터가 걸려 있다. 안착히 기자 우선 삿포로 올림픽유치위원회의 입장에서는 팬데믹으로 인해 한 해 늦게 개최된 도쿄올림픽 관련 비리 의혹과 그에 따른 여파로 올림픽 유치에 대한 시민 여론이 비우호적으로 돌아선 것이 큰 부담이다. 현재 위원회는 관련 여론조사가 나온 이후 지난해 말부터 유치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삿포로 시민 중 60%는 겨울올림픽 개최를 원하지 않으며 시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낭비적인 행사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하지 말자는 말이다. 여기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기후변화가 겨울철 스포츠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명분 삼아 당초 올가을 확정하기로 한 2030년 대회 유치지 선정을 2024년으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복잡하게 꼬인 상황은 이게 다가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당초 유치전에 가세하기로 했던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와 캐나다의 밴쿠버도 발을 빼고 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2030년 대회가 2028년 로스앤젤레스 여름올림픽 바로 2년 뒤에 열려 협찬 유치 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2034년 대회를 추진하겠다며 슬그머니 빠지는 모양새다. 밴쿠버는 아예 유치 의사를 접겠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제 삿포로만 남는 형국인데 겨울올림픽 역사상 단독 유치라는 맥빠지는 사태로 흘러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대내외 여건에도 삿포로시는 코앞으로 다가온 눈축제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기자가 지난주 직접 본 삿포로시 중심의 오도리 공원에는 각종 삽과 톱을 들고나온 시민들이 거대한 눈덩이를 조각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조용한 열정으로 불을 지피고 있는 ‘겨울왕국’ 삿포로가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킬지 지켜볼 일이다.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2023.01.31 01:08

  • [글로벌 아이] 82세 대통령 도전과 기밀문서 유출

    박현영 워싱턴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곤경에 처했다. 부통령 재직 시절 기밀문서가 퇴임 후 사용한 개인사무실과 사저에서 발견돼서다. 기밀문서를 소홀히 다룬 건 잘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적 피해가 없고, 단순 실수라면 법적 처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파급력이 큰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기밀문서를 다량 반출한 사건을 바이든 측이 맹비난하며 이슈화했기 때문이다. ‘내로남불’이 비판의 요체다.   백악관은 트럼프와 바이든의 기밀문서 유출은 사과와 오렌지처럼 본질에서 다른 문제라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알고 했고 반환을 거부했으나, 바이든은 유출 사실을 몰랐고 자발적으로 반납했다는 게 핵심이다. 바이든에게도 취약점은 있다. 바이든 측이 문서를 발견한 건 지난해 11월 2일, CBS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건 1월 9일이다. 68일간이나 숨겼다. 법무부를 설득하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투명한 국정 운영을 전면에 내건 바이든에겐 타격이 될 법하다.   올해 80세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4년 재선에 성공하면 82세에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사진은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연설 모습. [AFP=연합뉴스] 이후 점입가경이다. 두 번째 기밀문서 발견도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세 번째, 네 번째 기밀문서가 발견됐다. 연방수사국(FBI)이 13시간에 걸쳐 사저를 수색했다. 바이든은 문서가 자신의 ‘애마’인 코르벳 스포츠카와 함께 잠가둔 차고에 있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실언했다.   누가, 왜 언론에 흘렸을까로 관심이 쏠린다. 바이든의 2024년 대선 출마에 반대하는 민주당 내 세력이 흘렸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시점과 재선 반대 여론이 근거다. 바이든은 다음 달 7일 의회 연두교서를 마친 뒤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계획이었다. 그 직전 기밀문서 유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지난달 CNBC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원의 57%가 바이든 재선 도전에 반대했다. 반대한 민주당원의 61%는 고령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하면 미국 역사상 최고령인 82세에 취임하는 대통령이 된다.   최근 만난 워싱턴 정치권 인사는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의지를 보이면 출마를 말릴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했다. 부정적 여론이 거의 유일한 길이라는 점에서 재선 반대 세력과 기밀문서 유출을 연결하는 시각이 있다. 대통령이 재선 도전 뜻을 꺾은 가장 최근 사례는 1968년 린든 존슨이다. 대통령(지미 카터)이 당내 경선에서 도전자(테드 케네디 상원의원)를 누르고 본선에 진출했다 패배한 1980년 대선 민주당 사례도 있다. 현직 대통령 재선 불출마 기록이 56년 만에 다시 나올지, 대통령의 당내 경선이 44년만에 재연될지가 관전 포인트다.   박현영 워싱턴 특파원

    2023.01.27 00:59

  • [글로벌 아이] 중국의 ‘마지막 세대’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중국에서 ‘사람의 바다’를 두 차례 경험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개막 전날 와이탄(外灘). 불꽃놀이 관중에 밀려 황푸(黃浦)강에 빠지는 줄 알았다. 2015년 여름 후난 사오산(韶山)의 마오쩌둥 생가에서 겪었던 인파도 인상이 깊다.   이랬던 중국마저 지난해 인구가 85만 명 줄었다. 수축 사회에 들어섰다. 감소세가 이어진다면 2100년 미국 인구에 밀릴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세계는 경제 성장의 한 축이 무너진다며 우려한다. 한국도 영향권이다.   저출산이 심화된 중국의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두 여성이 아이를 안은 채 사진을 찍고 있다. 마오쩌둥 초상화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 중국 인구 문제의 뿌리에 마오쩌둥이 있다. 1949년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중국백서』에서 인구를 지적했다. “인구가 너무 많고 식량이 줄면 혁명이 발생한다. 국민당은 해결 못 했다. 공산당 역시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 마오는 『유심(唯心) 역사관의 파산』을 써서 반박했다. 혁명은 인구가 아닌 탄압과 착취 때문이라고 했다. 맬서스는 식량의 증가가 인구의 증가를 따라갈 수 없다고 했지만 소련과 중국의 해방구가 틀렸음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마오는 “인구가 힘”이라고 믿었다. 베이징대 총장 마인추(馬寅初)는 달랐다. 1957년 『신인구론』을 써 마오를 논박했다. 1953년 5억9000만 명에 이른 중국이 인구 조절에 실패하면 경제 발전의 효과가 사라질 것이라며 대책을 촉구했다. 마오는 비판 글을 엄청나게 발표토록 하는 ‘문해전술(文海戰術)’로 압박했다. 고집 센 학자 마인추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마오가 죽고 나서야 한 자녀 정책이 가혹하게 시행됐다. 이후 “한 사람(마인추)을 잘못 비판해 인구 3억5000만이 잘못 늘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제 인구 감소 시대다. 중국 인구사의 대가 차오수지(曹樹基)는 1958~1962년 대기근을 다룬 논문(2005)에서 당시 3250만 명이 ‘비정상적으로 사망했다’고 논증했다. 633만 명이 숨진 안후이(安徽)는 사망률이 18.3%였다. 다섯 중 한 명이 굶어 죽었다. 차오는 “인류의 이성이 대우를 받지 못할 때 같은 재난이 반복된다”고 경고했다.   인구가 줄어든 지난해 ‘마지막 세대(最後一代)’ 바이럴 영상이 중국을 달궜다. 상하이 봉쇄 당시 방역복 경찰이 “격리 거부는 처벌받는다”며 “삼대(三代)가 영향받는다”고 젊은 부부를 위협했다. 남성은 당당하게 “우리가 마지막 세대다. 고맙다”며 문을 닫았다.   ‘마지막 세대’ 파문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족’, 취업과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오포족’이 한국의 사회현상이 된 지 오래여서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2023.01.20 00:36

  • [글로벌 아이] 워싱턴과 국빈방문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지난달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마당에 난방시설을 갖춘 대형 천막들이 세워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만찬에 초대된 400여 명의 손님을 맞기 위한 시설이었다. 행사장은 프랑스 국기색인 빨강·파랑·흰색의 꽃으로 장식됐고, 테이블엔 프랑스제 와인잔이 놓였다. 미국이 호주에 핵잠수함을 지원하면서 호주와 맺은 잠수함 건조 계약이 깨지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유럽산 자동차가 차별받게 되면서 프랑스의 심기는 좋지 않은 상태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과 집무실에서 2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눴고, “유럽을 지휘하는 지도자”란 립서비스도 아끼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회담 전 “IRA는 아주 공격적인 제도”라며 독설을 했던 마크롱 대통령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딱히 결론은 없었지만 IRA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고, 오히려 공동회견 때는 바이든을 향한 프랑스 기자의 날 선 질문에 본인이 대신 나서 답해주기까지 했다. 회담 후엔 “회의적인 냄새만 남긴 브로맨스”(뉴욕타임스)라는 평가도 나왔다.   지난달 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연 국빈만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주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했다. 부인과 동행하지 않은 실무 방문이었고,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시간은 회담 60분, 업무 오찬 54분이 전부였다. 백악관에서 만난 일본 특파원에게 너무 짧은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서로 반대할 게 거의 없어 그랬을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도 회담 중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이견을 가졌는지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울 정도”라며 ‘찰떡 공조’를 과시했다. 일본 입장에선 짧은 시간 오히려 얻어낼 것은 다 얻어냈다는 평가다. 반격능력을 갖추는 새 방위전략에 미국은 전폭적인 지지를 표했고, 핵을 포함한 모든 수단으로 일본을 지켜주겠단 약속도 재확인했다.   대통령실은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워싱턴에선 대통령 내외가 모두 초대받는 마크롱식의 국빈방문을 타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벌써 들린다. 전임 대통령이 못한 상하원 합동 연설도 추진한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납세자 돈으로 대야 하는 국빈방문은 미국 여당 내에서도 반발이 크다. 상하원 합동 연설을 위해선 분열된 의회를 일일이 설득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선 IRA뿐 아니라 최근 불거진 자체 핵무장 이슈 등 시각차를 좁히기 힘든 현안이 많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일본처럼 무작정 보조를 맞추기도 어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방미는 마크롱식일까, 기시다식일까. 물론 대우와 실리를 모두 챙기면 좋겠지만 우리 외교력을 어디 집중할지는 고민해볼 시점이다.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2023.01.17 00:54

  • 기밀문서 반출 특검 조사받는 바이든, 2024년 재선 꿈 앞 '최대 악재'[박현영의 워싱턴 살롱]

      박현영 워싱턴 특파원 지난해 12월 30일 카리브해에 있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세인트크로이 섬의 한 레스토랑 앞. 아내·손주와 식사하고 나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2024년 대선 출마에 관해 묻자 "선거가 다가와?"라고 농담했다. 이어 "2023년은 좋은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델라웨어주 윌밍턴 사저 안 '개인 서재'에서 부통령 시절 기밀문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12월 30일 사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휴가를 마치고 지난 2일 워싱턴에 복귀한 바이든 대통령은 순풍을 탄 듯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뜻밖에 선전했고, 인플레이션은 둔화 조짐을 보이며, 공화당은 내분으로 15차 투표 끝에 겨우 하원의장을 선출하는 등 약점을 드러냈다. 바이든은 2월 상·하원 합동 국정 연설 전후로 대선 재출마 의사를 밝히고 4월께 공식 출마 선언을 하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정치전문 매체 더힐은 보도했다.    ━  CBS·NBC·CNN 등서 속보 잇따라   하지만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급변했다. 부통령 시절 기밀문서가 개인 사무실에서 발견됐다는 CBS뉴스의 첫 보도가 나온 뒤 바이든은 특별검사의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지난 9일 CBS뉴스는 바이든이 2017년 부통령 퇴임 후 개인 사무실로 써온 워싱턴의 '펜 바이든 외교ㆍ글로벌 센터' 옷장에서 지난해 11월 2일 기밀문서 약 10건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발견 시점은 중간선거(11월 8일) 엿새 전이었다. 선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감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날 멕시코시티 기자회견에서 "발견 사실을 보고받은 뒤 그 사무실로 가져간(taken to) 정부 기록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주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문서 유출에 자신이 직접 관련된 건 없다는 인상을 줬다.     하루 뒤엔 NBC뉴스가 기밀문서 두 번째 뭉치가 발견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보도가 나온 뒤 백악관은 두 번째 문서 뭉치가 바이든의 델라웨어주 사저 차고에서 발견됐다고 시인했다. 기밀문서가 차고에 있었던 게 맞느냐는 폭스뉴스 기자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내 코르벳(쉐보레 스포츠카)과 함께 자물쇠로 잠긴 차고에 있었다"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밀문서 반출을 "무책임하다"고 비판한 바이든도 기밀문서를 무분별하게 다룬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발견된 문서는 현재까지 약 20건이다. 가장 민감한 정보를 의미하는 일급비밀(Top Secret)과 특수비밀정보(SCIㆍSensitive Compartmented Information) 문서가 들어 있으며, 우크라이나·이란·영국 관련 정보 메모와 브리핑 자료도 포함됐다고 CNN은 전했다.   메릭 갈랜드 미국 법무장관은 12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부통령 시절 기밀문서 유출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로버트 허 특별검사를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메릭 갈랜드 법무장관은 사건 조사를 위해 로버트 허 특별검사를 임명했다. 특검은 추가로 유출된 문서가 있는지 확인하고, 문서 반출 경위, 지난 6년간 문서에 접근한 사람들과 민감 정보 유출 여부를 수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사저를 전면 수색해야 한다"(공화당 소속 마이크 로저스 전 하원 정보위원장 CNN 인터뷰)는 주장도 나왔다. 백악관은 기밀문서 6장이 사저 다른 방에서 추가로 나왔다고 14일 발표했다. 이틀 전 카린 장피에르 대변인이 "수색은 어젯밤 분명히 끝났다"고 말한 것과 배치된다.    ━  바이든 차남 스캔들과 관련 있나     이번 사건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칠 영향을 단정하긴 이르지만, 백악관이 약속한 투명한 국정 운영과 신뢰에 손상을 입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상식적이고 책임감 있는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해 2020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취임 초기 "나는 실수할 것이다. 내가 실수하면 그것을 인정하고 여러분께 말할 것이다. 내가 그걸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라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기밀문서가 6년간 방치됐고 사저는 코로나19 봉쇄 기간 온라인 대선 유세 베이스 캠프로 많은 사람이 드나든 공적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본다. 유출된 문서 중 우크라이나 기밀 정보가 포함됐다는 점에서 바이든 대통령 차남의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단순 유출로 판명되고 추가 피해가 없을 경우 바이든 대통령은 법적 책임을 피할 수도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특검 수사가 길어질 경우 민주당 내 잠재적 대선 주자들이 움직일 수도 있다. 특검 임명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법적·정치적 불확실성을 맞게 됐으며 그의 재선 도전이 현명한 일인지 민주당원들 사이 논쟁을 되살릴 수 있다고 AP통신은 전망했다.   지난 1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기밀문서 유출 사건 수사할 특별검사에 임명된 로버트 허 전 메릴랜드주 연방 검찰청 검사장. 사진은 2019년 11월 21일 모습. AP=연합뉴스    ━  바이든 특별검사, 공화당 지지자에 맡긴 이유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메릭 갈랜드 법무장관은 공화당원인 로버트 허(50) 특별검사를 임명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를 야당 지지자에게 맡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 언론은 능력 위주로 선발해 불편부당한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했다.    갈랜드 장관은 허 특검을 "검사로서 길고도 뛰어난 경력을 갖고 있다"면서 "연방 검사로서 법무부의 중요한 국가안보, 공직 부패 등 핵심 사건을 감독했다"고 소개했다. 허 특검은 "공정하고 공평하며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판단"으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1973년생으로 한국계인 허 특검은 하버드대를 거쳐 2001년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연방 제9항소법원 알렉스 코진스키 판사와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 서기로 법조계에 입문한 엘리트다. 특검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점이 강점이다.    2017년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의 최고 참모로 일하면서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대선 개입 수사 지휘에 관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명으로 2018년 메릴랜드주 연방검찰청 검사장에 올랐으며,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사임했다.   역설적으로 공화당 내 강경보수 진영에선 불만이고 민주당에선 반기는 분위기다. 바이든의 측근인 벤 카딘 상원의원(메릴랜드)은 "진정한 전문가"라고 칭찬했고, 트럼프의 최측근 인사는 "늪의 괴물(swamp monster)"이라고 비판했다. 법무부와 메릴랜드주 연방검찰청을 오가며 기밀문서 유출, 화이트칼라 범죄, 갱단·마약 등 강력사건까지 수사 및 사법 행정 경험이 두루 풍부하다는 평가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2023.01.16 00:51

  • [글로벌 아이] 기시다 사이클

    김현예 도쿄 특파원 수줍게 웃는 얼굴, 그리고 손가락 브이(V). 샤부샤부 집에서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린 그는 이렇게 적었다. ‘소고기 돼지고기 뷔페 코스, 토요일과 일요일 60세 이상은 1인에 1759엔. 음료는 추가 할인으로 한 사람에 110엔. 여동생이 휴대폰 앱으로 총액서 10% 할인. 80분간 3명이 배부르게 먹고 총 5047엔. 5000엔 우대카드를 내고, 현금 47엔을 지불했어요.’   어른 셋이 먹고 정작 우리 돈 약 430원을 냈다고 자랑스럽게 쓴 트위터 주인은 전직 프로 장기 기사, 기리타니 히로토(桐谷広人·73). 2007년 은퇴 후 그는 유명 인사가 됐는데,  ‘주주우대’ 때문이었다. 일본은 상장사들이 주주우대란 명목으로 쌀·커피 같은 상품이나 할인·상품권 등을 주는데, 기리타니는 매일 주주우대권만 사용해 화제가 됐다. ‘연금에 의존하지 않고 풍족한 노년을 보내는 방법’이라며 쓴 그의 책도 인기를 끌었다.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고 있는 패스트리테일링이 지난 11일 전 직원에 최대 40%의 임금 인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도쿄 긴자 유니클로 매장 풍경. 김현예 기자 동서고금 막론, 알뜰살뜰 살림살이를 불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방인의 눈엔 달리 보인다. 일본인은 주식에 투자해 주가 상승으로 수익을 얻기보다, 안정적인 주식을 사면서 덤으로 주는 ‘혜택’으로 노후 대비를 하고 있어서다.   왜일까. 여기엔 오랜 경기 침체가 있다. 일본 정부는 금리를 제로(0)로 낮춰 시장에 돈이 돌도록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또 있다. 낡은 제도다. 일본은 100주 단위로만 주식투자를 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지갑 얇은 사회초년생에겐 투자는 그림의 떡이다. 유니클로 모회사인 패스트리테일링의 최근 주가는 약 8만엔. 유니클로 주식에 투자하는 데 최소 7600만원은 있어야 한단 얘기다.   돈맥경화의 일본 경제를 살려보겠다고 나선 건 금융맨 출신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다. ‘저축 대신 투자’를 외치고 나섰다. 지난해 주식시장 구조를 재편한 데 이어 최근엔 ‘임금 인상’까지 부르짖고 있다. 물가는 껑충 뛰었는데 ‘일본만’ 오랫동안 임금이 안 올랐으니, 월급을 올려 시장에 돈이 돌도록 하자는 취지다. 화답일까. 패스트리테일링은 전 직원 최대 40% 임금 인상을 선언했다. 변화가 더딘 일본에서 벌어진 파격이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에 이런 문장이 등장했다. ‘올해 주가 상승 사이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닛케이는 과거 일본 주식시장 상승 사이클의 공통점이라며 이런 말도 보탰다. ‘위기 대응에 총리가 대담한 정책을 내놨다.’ ‘기시다 사이클’이 이뤄질지는 미지수지만, 그저 남의 나라 일로 보기엔 뼈아픈 말이지 않나. 김현예 도쿄 특파원

    2023.01.13 00:51

  • [글로벌 아이] 코로나 통계, 누가 중국을 믿나

    박성훈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서 3년째 특파원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막무가내인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중국의 코로나 통계 얘기다. 그간 많은 비판이 쏟아져 식상할 지경이지만 이번에 너무 선을 넘은 듯해 다시 한번 짚고 가고자 한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코로나 감염자 수 공식 발표를 중단한 건 지난달 23일부터다. 하루 전날 12월 1~20일까지 최소 2.5억 명이 감염됐다는 위원회 비공개 회의록이 유출되면서다. 문건의 진위는 이렇게 확인됐다. 21일 하루에만 3699만 명이 감염됐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는데 당일 위원회의 대외 발표는 3030명, 1만분의 1로 축소했다.   중국이 국경을 전면 개방한 8일 상하이에서 중국동방 항공 직원들이 승객들에게 탑승 안내를 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이후 현재는 한 단계 아래인 중국 질병통제센터가 감염자 현황을 발표한다. 8일 기준 신규 확진자는 1만4171명이다. 그러나 쓰촨성 등 중국 지방 질병통제센터가 자체 조사해 발표한 감염자는 전체 인구의 최소 60%, 많게는 80%가 넘는다. 이미 6억 명을 넘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센터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규모 PCR 검사가 시행되지 않고 있고 경증인 사람들은 집에서 자가진단을 하기 때문에 체감과 통계는 다를 수 있다.”   사망자 통계는 더하다. 이미 중국 병원 중환자실과 화장장이 포화 상태를 넘었지만 이날 기준 공식 사망자 수는 3명, 지난 4일은 0명이었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 사망자를 판단하기 위한 글로벌 기준에 두 가지 범주가 있으며, 중국은 그중 하나를 시행한다고 수차례 주장했다. 그런데 두 가지 범주란 오해의 소지가 있다. WHO 질병통계지침은 감염 28일 내 사망을 기준으로 한다. 영국·홍콩이 2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인도는 30일, 대만은 60일 내 감염까지 코로나 사망자로 간주한다. 폐렴 등 직접적 원인에 의한 사망만 인정한다는 건 범주가 아니라 그저 ‘중국의’ 기준이다.   그래서다. 중국이 국경을 전면 개방한 지난 8일 더 이상 격리는 없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중국인이 오는 것도, 중국으로 향하는 것도 망설인다. 불안의 핵심 중 하나가 변이인데 이는 감염자 수가 많은 곳에서 발생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변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회견 때마다 주장하지만 발표가 신뢰를 잃다 보니 변이가 없다는 발표조차 불확실한 것으로 간주된다.   세계 각국이 중국 입국자에 대한 방역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지난 4일 중국 외교부는 “정치적 목적의 검역이다. 정부는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끈했다. 기자들은 놀라기보다는 코웃음을 쳤다. 중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코로나로 중국이 가장 크게 잃은 건 결국 세계의 신뢰다. 박성훈 베이징 특파원

    2023.01.10 0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