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재호 칼럼] 완전히 새로 짜야 할 저출생 정책설계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스파르타는 기원전 371년 마케도니아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강력한 군인만 키워내는 국가의 인구정책이 전쟁에서 용맹성은 낳았지만, 미약한 영아는 살해하고 결혼도 건강한 남아를 낳는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바람에 결국 국가소멸을 초래한 것이다. 노동력은 노예로 충당하면서 엄격한 금욕주의로 길들었던 스파르타는 정복한 도시의 부가 편입되기 시작하면서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이런 과정에서 가정과 출산을 소홀히 한 스파르타는 100년 만에 인구가 8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며 군대를 충원할 인구마저 부족해 결국 멸망했다. 금욕주의와 강인한 남아선호 정책이 일시적으로는 용맹한 군사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존망에 치명적 약점이 된 것이다.     ■  「 인구 줄어 멸망한 스파르타처럼 국가위기 된 세계 최하위 출생률 저출생 예산 획기적 개편 통해 사교육과 보육 시스템 손봐야 」    세계 최하위의 출생률을 보이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심각하다. 지난 50년간 세계 경제가 약 6배 성장하는 동안 우리 경제는 400배 이상 초고속 성장을 이루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 선진국이 되었지만, 풍요로움과 개인주의의 결과로 비혼과 저출산이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유교적 전통이 강하고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2022년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이고 출생률은 0.78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나타냈다. 1960년 5.95명에 달했던 합계출산률은 2023년에는 0.88명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같은 기간 대만도 5.80명에서 1.15명, 홍콩도 5.07에서 0.77명, 싱가포르도 5.76명에서 1.04명으로 하락해 세계 최하위 수준의 합계출산률을 보인다. 유교적 가족주의 전통으로 자신들이 받은 부모의 헌신을 자녀들에게 해줄 자신이 없는 데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 정부는 저출생 대책 예산으로 작년 46조원을 포함해 2006년부터 총 271조원을 사용했다. 작년 예산을 출생아 수로 나누어보면 1인당 1억8000만원이 넘는 액수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출생률이 끝없이 하락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국책사업이 지정되면 각 부처는 앞 다투어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사업 예산을 이곳에 끼워 넣곤 한다.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를 위해 예산을 챙긴다. 그러다 보면 원래 취지와는 동떨어진 예산 집행이 일어난다. 미국에서도 이런 예산 챙기기 현상을 두고 마치 돼지들이 여물통에 몰려들어 먹이를 탐하는 것과 같다고 해서 ‘돼지 여물통(pork barrel)’이라는 표현을 쓴다.   한 해 수십조 원에 달하는 저출생 대책 사업 예산도 이처럼 엉뚱한 곳에 쓰였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고성장기업 수출 역량 강화 사업, 국방부의 군인력 구조개편 사업, 노동고용부의 청년취업진로 지원 사업 등 저출생과 직접 관련이 없는 다양한 사업에 활용되었다. 이런 나눠먹기식 예산이 저출생 대책 예산의 60%에 달한다고 한다.   젊은 부부들에게 아이 낳기를 꺼리는 이유를 물어보면 사교육비와 보육의 문제가 제일 심각하다고 한다. 2022년 약 26조원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사교육비는 청년 부부의 가계에 너무 큰 부담이 된다. 2021년 OECD 교육통계에 의하면 교육비 전체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OECD 국가 평균이 16%인데 우리는 그 두 배가 넘는 36%에 달한다. 보육도 마찬가지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어린이집과 유치원 방과 이후에도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제도가 미흡해 양가 부모에게 의존한다. 아이들을 돌봐줄 입주 도우미를 구하려면 한 달 300여만 원 가깝게 든다고 한다. 이러니까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갖는 것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이제 저출생 대책을 위한 정책 설계는 완전히 새롭게 짜여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절감과 24시간 보육이 가능한 육아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에듀테크의 발전으로 다양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학교 밖 교육이 사교육 시장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칸 아카데미’(글로벌 비영리 교육 서비스) 같은 무료 과외 교습이 활성화되어 제공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디지털화된 과외 교습 프로그램을 지원해주어야 한다. 또한 게임화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개인 맞춤형 디지털 학습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영유아 보육의 종합적 지원책으로 유보통합을 통해 교육과 돌봄 서비스가 함께 제공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맞벌이 부부가 저녁에도 걱정 없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저출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획재정부도 저출생 대책 예산이 직접 지원에만 활용되도록 엄격히 관리하고 직접 지원도 퍼주기식 포퓰리즘 지원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으로 효과성을 높여야 한다. 세계 최하위 출생률은 국가위기라는 인식하에 종합적인 정책설계가 새롭게 구축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결국 존망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2023.03.22 01:02

  • [이하경 칼럼] 일본의 양심과 지성을 기대한다

    이하경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카드를 다 썼다. 개문발차(開門發車)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일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한 3자 변제’라는 해법을 서둘러 제시했다. 한·일 관계 최대 장애물의 해결 실마리가 마련됐고, 정상의 셔틀 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해제됐고,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완전 정상화가가 선언됐다.   그런데 핵심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직접 사과는 없었다. 피고 기업도 배상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에선 “완승”이라지만 한국에선 “굴욕적인 협상”이라고 한다. 한국 대통령은 지뢰밭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  「 ‘샌프란시스코 강화’ 참여 좌절 전승국 아닌 옛 일본 식민지 취급 한일협정으로도 다시 상처 받아 윤 대통령 용기에 일본 화답해야 」    일본은 한국인이 왜 분노하는지 알고 있는가. 한국은 카이로선언문에 적힌 대로 ‘노예 상태’로 36년을 지냈다. 그래서 패전국인 일본을 상대로 한 연합국 강화회의 정식 멤버로 참가하려고 했다. 임시정부가 2차대전 이전부터 일본과 전쟁 상태에 있었고, 중국에 일본과 싸운 한국인 사단이 있었으며, 상해 임시정부가 선전포고 한 사실을 미국에 알렸다. 지성이면 감천이었을까. 장면 주미대사는 1951년 1월 26일 미 국무부 장관 고문 덜레스로부터 “한국의 참가를 지지할 것”이라는 답변을 얻어냈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의 반대로 참가 48개국에서 제외됐다. 부당하고 원통한 일이었다.   일본은 1951년 3월 27일 강화회의 초안을 받자마자 치밀하게 준비해 4월 4일 미국에 의견서를 전달했다. 전쟁 중인 한국에선 문서가 실무자 책상 서랍에서 잠자고 있었다.  홍진기 법무부 법무국장은 4월 7일 일본 신문에서 한일관계 조항이 빠져있는 초안을 확인했다. 맥아더 최고사령관만 믿고 소극적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참가 의사와 귀속재산 처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담은 의견서가 5월 초 전달됐지만 일본보다 한 달 늦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된 강화조약은 한국을 대만과 함께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분류했다. 옛 식민지라는 뜻이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받고, 사과와 법적 배상을 받으려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한국이 일본의 일부였기 때문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합법’이 돼버린 사실이다. 심각한 상처와 모욕이었다. 사실 미국은 일본과 전쟁 중이던 1942년부터 국무부 극동반을 운영하면서 패전국 일본을 국제사회에 복귀시키는 ‘관대한 평화(soft peace)’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에 부담이 될 한국의 요구를 들어줄 여지는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조약 조인 한 달 뒤인  1951년 10월 두 나라는 한일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초기에 일본은 자국민 50만 명이 한국에 두고 간 재산에 관한 권리, 역(逆)청구권을 제기했다. 조선 내 일본 재산은 85%였다. 일본 측의 구보타 전권대표가 “식민지 시절 유익한 일을 했으므로 일본에도 청구권이 있다”고 하자 한국 측 홍진기 대표는 “전통국제법에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의 권리가 추가돼야 한다”는 ‘해방의 논리’로 반박했다. 일본은 구보타 망언을 취소하고 역청구권 주장도 거둬들였다.   13년8개월 만인 1965년 6월 22일 협상은 타결됐다. 일본은 한국에 무상원조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 달러를 주기로 했다. 이 돈은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식민 지배에 대해서는 “이미 무효”로 정리했다. 한국은 “처음부터 무효”로 해석했다. 일본은 “지금은 무효지만 당시에는 유효하고 합법적이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없었고, 한국인에게는 상처가 하나 더 추가됐다. 이러니 “식민 지배는 불법이며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에 ‘65년 체제’를 뒤흔드는 쇼크였던 것이다. 일본이 강제징용 문제를 회피하는 이유다.   그래도 ‘65년 체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했다. 일본은 50여 차례 사과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는 “일본은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했다.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부당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일본 양심과 지성의 힘이다.   윤 대통령은 상처받은 국민 정서와 충돌하면서까지 양국관계를 위해 용기있게 결단했다. 이제 일본이 화답할  차례다. 윤석열 해법은 문희상 안과 유사하지만 국회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아 소송의 대상이 된다. 피해자의 불복 소송이 벌써 시작됐다. 법원 판결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피해자를 설득하고 위로해야 한다. 면전에서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난제(難題)를 마주한 고뇌를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여론이 반전될 것이다.   한·일은 문명사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지난 세기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충돌했지만 화해했고, 경제·안보 공동체를 만들었다. 양국도 화해와 공존의 아시아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하경 대기자

    2023.03.20 00:56

  • [최훈 칼럼] 한·일 협상의 백그라운드…지금부터 시작이다

    최훈 주필 “한·일 협상은 자산이 아니라 늘 부채다.” 외교가의 금언 중 하나다. 잘해 봐야 본전, 협상 당사자들엔 대부분 치명타였다. 이번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해법 역시 여론(7~8일, 매일경제)은 ‘잘못했다’ 57.9%, ‘잘했다’ 37.8%다. 반면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67.0%, ‘필요 없다’는 37.3%다. 2015년 말 위안부 협상 직후에도 “잘됐다” 26%, “잘못됐다”는 2배 이상인 56%였다. 참 어렵고 복잡 미묘하다.   일본의 입장은 강경했다. 위안부 협상 때는 미국이 일본을 압박도 해가며 적극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엔 미국도 기대 속에 지켜보기만 했다는 협상팀의 전언이다. 특히 포스트 기시다의 유력 주자인 자민당의 모테기 간사장이 “물러서지 말라”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도 혐한 정서가 강한 범아베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협상팀은 이런 얘기를 반복했다. “뭘 합의해 봤자 4년 뒤 한국에 다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다시 다 뒤엎을 텐데 무슨 소용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박근혜 정부 위안부 협정 파기를 계속 환기했다. “골대가 매번 바뀐다”였다.     ■  「 “일단 법적인 문제부터 매듭 풀고 전방위 교류 확산과 성과의 수순” 물꼬 주역 자임한 윤석열 대통령 야당 포함 국민 설득이 성공 관건 」    다시 용산 대통령실. 시간이 흘러가면 우리도 총선 정국이다. 사안의 인화성이 커져갈 수밖에 없다. 중도 온건 성향인 기시다 총리 때 풀고 가는 게 낫고, 그 시기는 지금이라는 게 현실적 판단이었다. 그다음 해법의 디테일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은 이랬다고 한다. “이건 대법원 판결이라는 법적으로 제기된 문제다. 법적으로 초래된 문제가 양국의 안보·경제적 장애물로 에스컬레이트된 사안이다. 근원인 법적 문제를 먼저 풀어놓고, 차후 다른 영역의 양국 관계 진전으로 이어가야 한다.”     2018년 사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을 놓고 거래를 시도했다는 사법농단 사건 당시 외교부를 압수수색한 중앙지검장은 윤 대통령이었다. “당시 지검장인 윤 대통령이 외교부의 강제징용 관련 기록과 자료, 내용을 정독했던 것으로 안다”고 용산 관계자는 전했다. 강제징용 위자료 배상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무관하다는 2012년 김능환 대법관의 판결은 이 모든 사태의 출발점. 윤 대통령은 당시의 부심 대법관에게 “그때 어떤 법적 근거와 논리로 이 판결이 나왔느냐”고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돌아온 답은 “퇴임하는 김능환 선배의 마지막 판결이라 한 번 도와줬다”였다. 어이없는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반도체도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실 미국이 반도체 공정에서 일본·네덜란드를 핵심 파트너로 삼으려는 전략이 포착됐다”며 “경쟁력 있는 일본의 반도체 제작 장비·소재·부품 분야와의 한·일 공조가 시급하다는 기업들 요청이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끼리로 재편되는 새로운 필요도 작용한 셈이다.   꼬인 매듭의 마지막을 자른 건 결국 윤 대통령 몫이었다. “제3자 변제로 법적 문제부터 해결한다. 우리가 주도를 해나가려다 보면 더 양보했다는 감정적, 정치적 저항도 많을 것이다. 다 안다. 하지만 먼저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다 보면 일본이 호응해 오는 걸 이끌어낼 자신이 있다. 법적 문제를 풀고 안보, 교역·투자·신기술의 경제협력, 문화·청소년 교류 등 많은 분야의 관계 진전으로 성과를 한번 내보겠다. 내 책임으로 해결해 보겠다. 물어보면 내가 지침 준 것이라 하라.” 협상 관계자들이 전한 취지였다.   일본 측도 변해 가는 기류다. 윤 대통령의 방일을 맞을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10년을 역임한 누카가 전 재무대신에서 스가 전 총리로 최근 격상됐다. 주요 언론들 역시 “양국 정부가 마음을 열고 지속적 협의를 통해 현안을 하나씩 돌파하자”(요미우리), “한국의 조치를 맞아 일본의 수출 통제 조치를 복원하는 게 합리적”(닛케이), “양국의 미래세대 지원기금에 일본 기업들이 기부한다면 한국 내 반대도 누그러질 것”(아사히) 이란 반응이다. “우리도 징용 피해 지원 재단에 기여하겠다”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의 조치도 눈길을 끌고 있다.   변수는 일본 정부의 과거사 관련 입장. 한국 측이 가장 선호해 온 건 “한국인들의 뜻에 반한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나라를 빼앗기고”라는 문구가 들어간 간 나오토 전 총리(민주당)의 2010년 담화. 반면 현 자민당 정권이 민주당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데 어려움을 표하면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는 ‘윤석열-기시다’의 새 선언이 관측되고 있다.     정상화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과거 위안부 협정 직후 “일본이 잃은 건 10억 엔 뿐”이라는 일본 외상의 발언은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정치적 망언이야말로 판을 깰 뇌관이다. 양국 모두 차분히 큰 성과로 키워가려는 미래지향, 대승적 안목이 필요한 시간이다. 큰 방향 물꼬의 주역을 자임한 윤 대통령 역시 성과를 위해선 야당을 포함한 국민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야 옳다. 성공하는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설득’이다. 최훈 주필

    2023.03.13 01:19

  • [장훈 칼럼] 여당 전당대회, 법치와 인치의 시험대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0. 본론에 앞서 독자들과 만나는 이 지면에 대한 필자의 소회부터 나눠보자.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시간의 약 5분. 독자들께서는 2400자짜리 이 칼럼을 끝까지 읽는 데에 대략 5분 정도의 시간과 집중력을 쓰게 된다.   불과 수십초 짜리 쇼츠가 콘텐트 세계를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디지털 쇼츠 시대에 살아남은 외로운 근대인들이다. 자세를 잡고 앉아 무려 2400자의 문자에 집중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읽기’ 행위는 오늘날 천연기념물처럼 귀해지고 있다. 200여년을 이어온 이 근대적 행위는 요즘 챗GPT에 대한 환호와 경배, 릴스와 쇼츠의 홍수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와 독자들은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에도 읽고 쓸 것이다. 짜릿한 것들은 찰나의 매혹이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은 긴 호흡의 이성적 행위들이라고 믿기에.     ■  「 법치주의자 대통령의 난제 여당 인적 지배로도 법치로도 못 풀어 법치, 인치, 정치세계를 구분하는 유연한 ‘수시변역’ 권력이 해결책 」    #1. 긴 호흡과 장기 맥락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 근대 독서인들이 요즘 생각하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먼 훗날 한국 민주주의의 흥망성쇠를 돌아보게 되는 날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기록될까. 윤 대통령 본인의 희망도, 대다수 지지자의 바람도 하나로 모일 것이다. 법치주의 정부. 민주주의를 괴롭히는 아킬레스건인 다수의 변덕스럽고 무지한 횡포에 맞서 법질서를 고수했던 정부. 역대 정부들이 슬그머니 타협하거나 외면해온 조직화한 강자들(강성 노조, 시민단체)의 반칙에 맞섰던 정부. 평생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윤 대통령으로서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질 만한 역사책 속 자신의 위상일 것이다.   #2. 법치주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픈 윤 대통령의 핵심 프로젝트를 좀 먹는 중대 장애물이 하나 있다. 인치(人治)의 유혹. 민주정치 체제에서 유일하게 전 시민의 참여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대통령의 숙명 같은 그림자는 제왕적 권력의 유혹이다. 그리고 그 유혹의 지름길은 절차와 투명성을 무시하는 인치(人治)의 유혹이다.   윤 대통령에게 인치의 덫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이번 주 전당대회를 앞둔 여당에 대한 인적 지배의 유혹이다. 확고한 물증은 없다. 하지만 어지간한 정치 관심층들 사이에서 의구심은 널리 퍼져 있다. 당 대표 경선규칙의 돌발 변경, 일부 인사들의 경선 포기 과정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3. 여당 전당대회의 결과가 어떤 색깔로 나타나든 간에 대통령-여당 관계는 앞으로도 윤 대통령의 정치 자산과 법치주의 프로젝트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일견 흡족해 보이는 일사불란한 여당도, 집안싸움에 허우적거리는 여당도 모두 윤 대통령에게는 짐이다. 일사불란해 보이던 여당이 총선 이후 돌연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배신의 역사는 반복되어 왔다. 또한 자중지란 속의 여당이 대통령에게 큰 부담인 것은 굳이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터.   #4. 그렇다면 대체 윤 대통령은 대통령-여당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는 것인가. 여당에 대한 인치(人治)도 안 되고 방치도 곤란하다니! 명확한 규정, 엄격한 집행이 몸에 밴 법치주의자 대통령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윤 대통령이 주변을 맴도는, 권력의 꿀이 발린 속삭임을 멀리하고,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역사의 휘파람에 귀 기울인다면 대통령-여당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역사의 휘파람? 역대 대통령들의 고단한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대통령-여당 관계는 정답이 없는 영역이다. 한때 서슬 퍼렇던 전직 대통령도, 정치9단이라던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모두 실패했던 문제가 대통령-여당 관계이다. 너무 꽉 쥐려 해도 실패하고 너무 느슨해도 되는 일이 없는 것이 여당과의 관계다.   #5. 결국 역사가 주는 교훈은 대통령-여당 사이의 민주적 밀당(밀고 당기기)만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민주적 밀당의 세계는 법의 세계와는 사뭇 다르다. 명확한 규칙도 분명한 선악의 구분도 없다. 대통령 리더십과 시민 삶이 걸린 핵심 이슈에서 대통령은 여야의 일치된 지지를 엄격하게 이끌어야 한다.   동시에 여당의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숨 쉴 공간과 여백을 주어야만 한다. 파벌을 짓고 권력 경쟁을 하는 의원들에게, 그리고 어떻게든 주목도를 높여보려는 꿈나무들에게 그들의 공간을 허(許)하라. 물론 법치주의자 대통령에게 쉽지 않은 주문이다.   #6. 필자는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길 바란다. 파국적 분열과 다수결의 숭배로 비틀거리는 한국 민주주의에 법치주의라는 방파제를 착실하게 쌓아놓은 정부가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윤 정부가 살고 한국 민주주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이 난제를 풀어야만 한다. 그 역사적 해법은 바로 법치, 정치, 인치의 세계를 섬세하게 구분하고 상황에 걸맞은 유연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마치 수시변역(隨時變易) 하듯이. 여당과의 밀당은 이러한 수시변역 리더쉽의 시험대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2023.03.06 01:00

  • [고현곤 칼럼] 위기 때마다 은행이 문제였다

    고현곤 편집인 1997년 외환위기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기업이 빚을 내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했다. 은행과 종합금융회사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외화(주로 일본자금)를 빌려 그 돈을 댔다. 금융의 기본을 잊은 채 단기로 차입해 장기로 빌려줬다. 그러다 아시아 신흥국 대외신인도에 문제가 생겼다. 만기 미스매치가 사태를 키웠다. 외화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당시 국내 금융회사가 차입한 외화가 718억 달러. 외채 파티였다. 외화 물꼬를 터주고, 감독에 소홀했던 정부에 1차 책임이 있다. 빚으로 과잉 투자한 기업, 달러가 넘치자 과소비에 나선 국민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근원을 꼽으라면 외채로 이자 장사에 몰두한 은행이었다. 흔히 종금사를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여기지만 은행이 빌린 외화가 훨씬 많았다.   외환위기 여파로 은행은 인수·합병을 거쳐 재편됐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체질은 나아지지 않았다. 세금으로 조성한 공적자금 160조원을 긴급 수혈받았다. 고비를 넘기자 도덕적 해이가 고개를 들었다. 임직원에게 무이자 대출을 해주고, 3년간 임원 보수를 두 배로 올렸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공적자금은 먼저 보는 게 임자’라는 말이 나왔다. 외채 파티에 이은 공적자금 파티였다. 급할 때 정부에 손 벌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흥청망청 쓰고, 대출금리는 다락같이 올리고…. 정부는 당황했다. 국민은 배신감을 느꼈다.     ■  「 외채로 이자 장사…외환위기 초래 금융위기 때 지원받고 돈 안 풀어 좋을 때 쉽게 벌고, 급하면 손 벌려 정부 개입 반발 전에 자신 돌아봐야 」    2008년 금융위기 때 은행은 다시 국민을 배신했다. 어설픈 실력이 바로 드러났다. 입만 열면 초일류 은행, 메가뱅크를 외쳤지만 허울 좋은 신기루였다. 덩치만 커졌을 뿐 이자 장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정작 필요할 때 달러 한 푼을 구하지 못했다. 급기야 외화차입금을 갚아야 한다며 한국은행에 손을 벌렸다. 정부에는 해외차입 지급보증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위기 때마다 하던 대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급보증을 승인하면서 “은행이 고임금을 유지하면서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질책했다. 대통령 한마디에 놀란 은행들은 부랴부랴 보수를 삭감했다. ‘위기 극복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결의문을 발표하는 등 한바탕 쇼를 했다.   그때뿐이었다. 위기를 모면하자 은행 태도가 달라졌다. 혼자 살겠다며 돈을 움켜쥐고 시중에 풀지 않았다. 정부가 압박해도 소용없었다. 2009년 내내 기업은 돈이 마르고, 가계대출 금리는 치솟는 자금 경색이 이어졌다. “은행은 위기 상황에서도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었다.”(이명박 『대통령의 시간』) 얼마 뒤 KB국민과 신한은행 경영자들은 볼썽사나운 경영권 내분까지 벌였다.   지난해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에 이은 고금리가 닥치자 은행이 또 국민을 배신했다. 만만한 취약계층·소상공인을 상대로 이자 장사에 나섰다. 지난해 4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 이자 이익만 39조원을 넘었다. 경영을 갑자기 잘한 게 아니다. 순전히 고금리 때문에 떼돈을 벌었다. ‘횡재세’라도 거둬야 할 판이다. 영업이익 중 95% 안팎을 이자 장사로 채웠다. 선진국 은행은 60%대에 그친다. 지난해 예대금리 차가 2.21%포인트에서 2.55%포인트로 확대됐다. 금리 상승기에 예대금리 차가 커진다는 말은 핑계다. 대출받을 때 대번에 느끼는 것이지만, 은행은 갑이다. 마음만 먹으면 대출 가산금리를 낮춰서 예대금리 차를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이를 외면하고 더 받아낸 이자로 1조원 넘는 성과급 파티를 벌였다. 배짱이 좋은 건지, 타성에 젖은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고 경고하자 사회공헌을 3년간 10조원으로 늘리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알고 보니 실제 지원은 2800억원만 늘린 ‘뻥튀기’ 발표였다. 대출금리를 내리는 시늉을 하면서 예금금리는 더 많이 떨어뜨렸다. 눈가림으로 소나기만 피하자는 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은행 안팎에선 대통령 발언에 불만을 쏟아낸다. ‘민간 기업의 자율성을 해친다.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 공공재 개념도 모르고 한 소리다.’ 관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은행이 자율과 시장경제를 내세우기에는 정부에 손을 너무 자주 벌렸다. 민망할 정도로. 공공재냐, 아니냐 논쟁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한 은행 관계자는 “사기업인 은행에 공익 지출을 강요해 체력이 떨어지면 위기 때 제 역할을 못 한다”고 말했다. 언제 은행이 그런 역할을 한 적이 있었나. 은행은 위기 때마다 버팀목이 아니었다. 시장 지배력에 안주하는 기득권이었다.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실물경제 침체가 깊어지면 은행도 부실이 쌓인다. 어려워지면 정부에 또 손을 벌릴 것이다. 고비를 넘기면 다시 이자 장사와 그들만의 성과급 파티를 할 것이다. 좋을 때는 민간 기업이라며 자기 호주머니 챙기다가, 나빠지면 공익성을 앞세워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후진적 경영 행태다. 기업은 세계 1위가 나오는데 은행은 세계 바닥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은행들 주장처럼 정부 개입과 규제가 없었으면 지금보다 나은 모습을 보였을까. 의문 또 하나. 은행이 곤경에 처하면 정부가 지원해야 하나. 은행은 국민을 돕지 않는데, 국민은 은행을 도와야 하나. 고현곤 편집인

    2023.02.28 01:01

  • [이하경 칼럼] 이재명의 마지막 승부수

    이하경 대기자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청년기에 사선(死線)을 넘나든 인물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법정에 섰다.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할 때 “하도 기가 차서”  피식 웃었다. 방청석에 있던 모친은 그 순간 졸고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의 생사(生死)에서조차 초연했던 저 무욕(無慾)의 인물은 정치인이 돼서도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무수석일 때 공개적으로 “대통령은 험한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직언했던 참모였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가장 신뢰했다. 스무 살 무렵에 얼굴도 모르는 유인태·이철·이현배 등 ‘양심수’의 석방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여러 단체에 돌린 기억이 있다. 4년여 옥고를 치른 유신 체제의 피해자들은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얼마 뒤 풀려났다. 이후 유인태는 그 험한 정치판에 뛰어들어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리얼리스트로 건재하고 있다.     ■  「 불체포특권 폐지 공약 뒤집고 민주당을 방탄용으로 둔갑시켜 방탄·대표직은 치명적 유혹일 뿐 특권 포기로 ‘달라졌다’ 입증해야 」    ‘사형수’ 출신 유인태가 ‘생존’이 지상과제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일갈했다. 공당(公黨)인 더불어민주당을 한 사람을 위한 방탄용 사당(私黨)으로 둔갑시킨 그에게 “국민들에게 좀 감동을 주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돼도 검찰이 추가로 영장을 청구하면 표결 대신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 정도의 모험도 안 하고 자꾸 거저 먹으려고 세상을 그러면 되나. (구속이) 플러스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심(私心)이 없어서 민심을 정확하게 읽어냈다.   그러나 이재명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속해 있다. “오랑캐가 침략을 계속하면 열심히 싸워서 격퇴해야 한다” “국가 권력을 가지고 장난하면 그게 깡패지 대통령이겠느냐”며 험구(險口)를 못 참고 있다.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쌍방울 대북 송금, 정자동 호텔 특혜 등 비리 스캔들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공약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외면하고 있다.   민심은 썰물처럼 떠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이재명 구속수사’가 ‘해선 안 된다’보다 한참 높다. ‘불체포특권 폐지’는 ‘유지’의 두 배다. 체포동의안 부결 움직임에 대해서도 민심이 싸늘하다. 호남에서도 가결 찬성이 반대만큼 나올 정도다. 정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쳐서 국민의 힘과 두 자릿수 차이로 벌어졌다.   실무에 밝은 한 고위 법관은 “진술은 차고 넘치는데 결정적인 직접 증거는 없어 재판이 끝도 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표가 기소돼 시도 때도 없이 법정에 들락거리면 당의 이미지는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失政)은 이재명 스캔들에 흔적도 없이 파묻힐 것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은 시쳇말로 폭망각이다. 민주당에선 “체포동의안은 부결시키되 이재명 대표가 알아서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검찰이 기소하면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지지율이 더 떨어지면 방탄 단일대오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은 내부 총질로 비호감이 된 국민의힘의 구세주, 민주당엔 재앙이 됐다.   열대 사냥꾼의 원숭이 사냥법이 있다. 나무 상자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넣은 뒤 손만 딱 들어갈 정도로 구멍을 뚫어놓으면 음식을 움켜쥔 원숭이의 손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원숭이는 한번 쥔 음식을 절대로 놓지 않기 때문에 눈 뜨고 잡혀 간다. 불체포특권, 당 대표라는 달콤한 열매는 이재명의 정치생명을 노리는 치명적 유혹이다.   이재명은 “어떠한 부당행위도 없었다는 게 오히려 영장에서 드러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 허구의 방탄 도성(都城)에서 걸어나와 판사 앞에서 두 눈 크게 뜨고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 그는 도대체 왜 성남시장 시절의 개인 스캔들로 대통령을 셋이나 배출한 공당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가. 민심은 바로 이 점을 따져 묻고 있다.   이재명은 일체의 합리적 조언에 귀를 닫고 있다. 탐욕에 눈먼 원숭이처럼 사냥꾼의 포획 순간이 예정된 운명이다. 보스 A를 만난 참모가 “우리 보스는 참 유능하다”고 했다. 보스 B를 만난 참모는 “이분을 만나고 난 뒤 내가 유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리더십 연구의 국제적 대가인 고(故) 김인수 교수는 최고의 리더는 A가 아닌 B라고 했다. 그에게 B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당사자도 몰랐던 폭발적인 능력을 끌어내는 비결은 바로 경청(傾聽)이었다.   김영삼은 박정희 유신 정권에 의원직을 제명당했고, 전두환 정권에 맞선 23일간의 단식으로 죽을 뻔했다. 하지만 촌로(村老)들의 울분까지도 천심(天心)으로 받들었고, 마침내 민초(民草)가 주인이 되는 감동의 문민시대를 30년 전에 열었다.   지금 이재명의 언행에는 어떤 감동의 요소도 없다. 민심의 아우성에 귀를 닫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입을 꾹 다물고 귀를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움켜쥔 특권을 내려놓는 돌직구 승부수를 던질 용기가 생길 것이다. “이재명이 달라졌다”는 감동이 느껴진다면 사즉생(死卽生)의 반전도 기대할 수 있다. 이재명도 살고, 민주당도 사는 길이다. 이하경 대기자

    2023.02.27 00:55

  • [염재호 칼럼] 문명의 대전환과 기업의 역할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우리나라 각 사회기관의 역할수행평가에 대한 한국리서치의 작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보다 대기업에 대한 긍정평가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각 기관이 자신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물은 결과, 10개 대상기관 가운데 코로나 등의 영향으로 의료기관이 72%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대기업이 52%로 2위였다. 대학교는 36%, 시민사회단체가 29%, 정부 및 공공기관이 26%, 종교기관이 21%, 언론사가 16%였으며, 정당은 5%에 불과한 신뢰도 수준을 보였다.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액은 300조원으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4.5% 규모다. 현대자동차는 142조원, SK㈜는 134조원, 기아는 86조원, LG전자가 83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만 보아도 우리나라 GDP 총액 2057조원과 비교하면 대기업의 역할이 지대한 것을 알 수 있다.     ■  「 문명전환기 기업의 끊임없는 혁신 경제 기여에 ESG 더하며 신뢰 상승 공적연금 대신 기업연금제 강화 등 사회문제 해결 앞장서는 기업 기대 」    최근 기업들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강조하는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경영으로 획기적인 혁신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신기업가정신을 선포하고, 포스코는 기업시민 활동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이제 기업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지 않고는 장기적인 경제 이익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기에 기업은 다른 어느 사회조직보다 빠르게 혁신한다. 반면 대학, 정부, 언론, 종교기관, 노동조합, 정당 등은 21세기 문명의 대전환기를 맞아도 변화에 무디고 혁신하려는 의지도 약하다. 문명 대전환의 해일이 몰려와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는데도 기득권에 안주해 20세기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최근 기업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관료제적 운영방식을 버리고 21세기형 유연한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판교의 정보·통신(IT)기업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회사에서 피트니스, 사우나, 수면실, 음악감상실, 실내골프연습장, 무료 식음료 코너를 갖추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자기 자리도 없고 출퇴근 시간 제약도 없는 자율근무를 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유연한 휴가제를 채택하기도 한다.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 형제들에서는 근무지 자율선택제를 통해 온라인으로 협업이 가능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근무할 수 있다고 한다. 직원들이 해외에서 한 달 살기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태국 치앙마이, 일본 도쿄, 호주 퍼스에서 현지생활을 즐기고 체험하며 일을 한다. 심지어 일 년 살기를 제주에서 하는 직원도 있다. 이제 디지털 혁명으로 근무환경의 제약 없이 일과 삶이 일체가 되어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혼, 저출산, 높은 실업률, 잦은 이직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기업들도 팔을 걷어붙여야 할지 모른다. 최근 우리나라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연금개혁이 최대 정치이슈가 되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국민연금제도에 심각한 재정적자가 예상되자 미래 세대에게 더 많은 부담을 주고 더 적은 연금을 받게 제도를 개편하려 한다. 이에 젊은이들이 부당하다고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인복지를 정부의 공적연금으로만 해결할 이유는 없다. 독일 기업들은 일찍이 직원들의 노인복지를 앞장서서 풀어나갔다.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로 유명한 독일의 철강회사 크루프는 이미 1858년에 기업 연금제도를 채택했다. 근속 5년이면 최종연봉의 15%, 35년 근속하면 75%, 사망하면 부인에게 50%, 자녀에게 5%가 지급된다. 랜덤하우스, 펭귄북스, BMG음반, RTL방송 등을 소유한 유럽 최대의 복합미디어 기업인 독일의 베텔스만도 기업연금제도를 통해 30년 근속한 직원에게 급여 42%를 평생 지불한다. 더 나아가 회사이익참여제도를 통해 기업의 세전 이익 전액을 종업원들에 나누어주고, 이를 다시 회사에 연 2%의 금리로 대출하되 25년간 출금할 수 없게 한다. 이를 통해 회사는 법인세 부담을 줄이고 안정적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제 국민연금에서 사학연금처럼 직원과 회사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기업연금으로 갈아타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중소기업은 연합회 차원에서 기업연금제도를 만들 수도 있다. 일시적으로 회사의 이익이 늘어날 때마다 보너스 잔치를 하기보다는 회사가 연금이나 이익참여제도 등을 통해 미래를 위한 저축을 해두면 직원들은 노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회사는 어려울 때 자금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요즘 기업의 이직률도 심각하다. 능력 있는 다른 회사 직원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연봉은 끊임없이 상승해 일본기업의 평균연봉을 추월한 지 오래다. 보너스와 연봉의 상승은 인플레이션과 노동생산성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일과 삶이 일체가 되어 직원들이 회사를 가정처럼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장기간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제 국가가 풀지 못하는 미래의 문제를 기업이 앞장서서 풀어서 다른 사회 집단에게도 혁신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주면 좋겠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2023.02.22 00:53

  • [최훈 칼럼] 타이밍 찾아온 한·일 관계 정상화

    최훈 주필 침팬지에게서 인간의 DNA를 역추적하는 학자들이 찾은 흥미로운 본성이 있다. ‘동맹’이다. 대장 수컷이 되려는 침팬지는 슬슬 우군을 만든다. 킹메이커의 환심도 사두고, 나뭇잎 먹이도 나눈다. 그리고 등극의 때를 기다린다. 절호의 순간, 쿠데타다. 영원한 권력? 그런 건 없다. 또 다른 젊은 침팬지가 다시 새 동맹을 노린다. 30여 마리 무리 중 1년에 1000회 이상의 크고 작은 연합들이 목격된다(프란스 드 발 『침팬지 폴리틱스』). 주적에게 맞서 힘을 모으는 게 인류의 생존 본능이다. 자신이 홀로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줄 나라, 완벽한 동맹 상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험해진 미·중 냉전, 틈새를 파고든 북한의 도발, 극도로 불안정한 동아시아. 우리 자력으로 헤쳐나가기엔 모두가 버겁다. 북핵은 오바마부터 바이든까지의 확장 억제 속 ‘전략적 인내’밖엔 길이 없어 보인다. ‘거악의 괴물’ 소련이 스스로 무너지는데 든 인내의 시간은 68년11개월26일이었다. 지금 우리가 자력으로 성취할 외교는 단 하나. 일본과의 관계 복원이다. 우리의 월드컵 16강 진출보다 그들의 8강 좌절에 더 안도할 정도로 밉상인 그 나라와 왜 풀고 가야 하는지, 왜 지금인지의 공감대가 우선이겠다.     ■  「 푸틴의 핵 위협, 중국의 팽창에 일본 내 안보 불안 심리도 급증 정권 득실, 원한·이념보다 ‘필요’   선택지 넓힌 대승적 대화 기대 」    당장 일본이 좀 급하다. “2차대전 이후 가장 급변한 대외정책 전환기”(기시다 총리)라고 한다. 쿠릴열도 4개 섬의 반환을 꿈꾸며 푸틴과 온천에 몸 담갔던 아베. 혐한은 극대화하며  27차례나 푸틴과 만났던 두 마초들의 밀월 시대는 가물해졌다. 푸틴의 핵 위협 이후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분쟁은 오히려 위협이 돼버렸다. 핵무기 피해를 유일하게 겪은 이 나라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트라우마도 겹쳐 있다. 그뿐인가. 그제 일본 홋카이도 서쪽의 배타적 경제구역에 떨어진 북한의 장거리탄도미사일(추정)은 가장 근접한 위기의 실체였다. 기시다는 부친의 고향이자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히로시마에서 5월 19일 G7 정상회담을 주최한다. ‘서방 민주주의 강국과의 연대’‘안전과 평화의 상징’으로 삼으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의 초대를 받을 것인지도 외교적 관심사다.   더 큰 두려움은 중국. 일본인 77%는 “푸틴의 도발이 중국의 대만 무력 행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닛케이신문)했다. 일본 서남단 섬에서 160㎞ 거리가 대만. 목포항에서 신안 가거도보다 조금 멀다. 체감 안보가 우리와는 다른 일본이다. 이미 중국과의 분쟁 지역인 난세이(南西)제도에 병력과 미사일 부대를 증강하고 있다. ‘일본은 방패만, 창은 미국에’로 77년의 공짜 평화를 즐기며 돈만 벌던 그들은 자칭 “새시대의 현실주의 외교”(기시다)로 급변하고 있다. 미사일 반격을 용인하는 사실상의 전쟁 가능 국가로 탈바꿈했다. 국민 65%가 찬성. 금기였던 국방비도 2027년까지 현재의 2배 가까운 증액이다. 일본의 최우선은 지금 안보다. 그 앞 중·러 대륙의 최전방에 한국이 있다. 일본에 가장 완벽한 동맹의 대상은 어디일까.   한국에 삐딱하던 주요 언론들도 달라져 간다. “북핵, 미사일과 중국의 대만 군사 위협이 강화된 지금 일본·미국·한국 간의 협력 강화는 필수적이다. 그 전제가 한·일 관계 개선”(요미우리 1월 20일),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노력을 지지할 것”(닛케이 1월 28일), “일·한 양 지도자의 강제노동 문제 조기해결 모색을 환영한다. 회담을 정례화하고 북한 등의 해결에 함께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아사히 지난해 11월 15일)   두 나라의 화해를 가장 원하는 나라, 미국이다. 중국의 동아시아 팽창 봉쇄의 최종 병기는 한·미·일 동맹이다. “한·일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블링컨 국무장관은 오바마 정부의 부장관 시절 으르렁대던 한·일 관계를 열정적으로 중재했었다. 3국 외교차관들의 20여 차례 회담 끝에 위안부 합의를 유도했다. 바이든 역시 부통령 시절인 2013년 아베 총리와의 회동 후 “한·일 협력과 관계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선언했었다. 그해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 2주 전 “절제하라”고 권고한 이도 그였다. 그는 “박근혜·아베  모두 개인적 친분 속에 나를 믿었기 때문에 깨진 부부관계를 복원시킬 이혼상담사를 했다”(2016년 ‘애틀랜틱’ 인터뷰)고도 했다. 북핵에 가장 확고한 억제 수단인 한·미 동맹을 위해서도 고리인 일본과는 풀고 가는 게 지혜다. 정밀 부품·소재와 첨단산업 공급망의 한·일 공조도 안보만큼 가치가 높아져 있다.   핵심은 강제징용 배상의 해법일 터다. 한국의 지원재단이 먼저 제3자 변제를 하고, 관련 일본 기업들도 배상 기금에 출연토록 하자는 게 정부안의 골격. 무엇보다 피해자 측 설득과 동의에 정부가 최선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사죄성 기금 출연엔 부정적인 일본 자민당에 대한 정무적 대화 채널도 가동돼야 한다. 우리가 먼저 조급해 할 필요는 없겠다. 지금은 한·일 양국이 서로 뭘 도울 수있을지 길고 크게 봐야 할 시간이다. 사방이 미증유의 위협이다. 원한·이념, 국내 정치적 득실보다 미래를 향한 ‘필요’가 동맹의 최우선 기준이다. 양국 모두 그 나머지엔 선택지를 좀 넓혀 주자. 최훈 주필

    2023.02.20 01:10

  • [이하경 칼럼] 연금 지옥의 도래,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이하경 대기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국민연금을 집어삼키고 있다. 연금은 일하는 사람이 은퇴자를 먹여살리는 구조의 사회보험이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은 줄고 은퇴자는 넘쳐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55년에 기금이 바닥난다. 1990년생이 수급 대상인 65세가 되는 해다. 연금제도를 유지하려면 소득의 9%인 현재의 보험료를 2060년 30%(회사가 절반 부담)까지로 계속 올려야 한다. 지금은 가입자 4명이 노인 1명을 책임지지만 2060년에는 5명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드디어 “국민연금을 철폐하고 노후를 각자 책임지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령자들도 선진국 평균 3배에 가까운 노인빈곤율(37.6%)에 신음하고 있다. 청년과 노인이 한목소리로 “나의 미래를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  「 2060년 가입자 부담 5배로 늘어 ‘연금 철폐, 각자 노후 준비’ 주장 희생적 결단 안 하면 해결 불가능 공산화 막은 농지개혁 본받아야 」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정부가 연금 문제를 제기하면 표가 떨어지고 여야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 본격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으나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 향후 수십 년간 지속될 연금개혁의 완성판을 만들겠다”고 했다. 비겁한 전임자들과 다른,  용감한 대통령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 소득의 3%를 내면 70%를 받아 가는 구조로 탄생했다. 98년 김대중 정부의 개혁 이후 25년째 보험료가 9%에 묶여 있다. 독일(18.7%) 일본(17.9%)·영국(25.8%)·미국(13.8%)보다 훨씬 낮다. 윤 대통령의 약속대로 지체없이 수술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미래세대의 고통을 줄이려고 현 세대의 지갑에 손대는 건 정치적 자해(自害)행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보험료를 인상하자는 개혁안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청와대 대변인)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런 직무유기가 새 정부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올해 10월 정부안 확정에 앞서 가동 중인 국회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원회는 시한이 지났지만 단일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혁명적인 사건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수천년 된 지주-소작인의 신분제를 깨고, 빈부(貧富)와 귀천(貴賤)의 경계를 허물어 민주공화국의 대전제를 구축한 농지개혁이다. 해방 이후의 사려깊은 지도자들은 제헌헌법 86조에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라고 꽝꽝 대못을 박았다. 신생 대한민국의 1호 개혁은 농지개혁이었다.   1950년 시행된 농지개혁법은 경작 농민이 수확량의 30%씩 5년간 상환하면 지주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도록 했다. 일제 강점기 소작료는 50%였다. 유상몰수 유상분배였지만 사실상 거져 받은 셈이다. 농지 소유 상한선은 3정보(9000평)로 정하고 소작을 금지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도록 퇴로를 차단한 것이다. 지주계급은 사실상 해체됐다.   토지의 분배 상태가 평등할수록 식량 증산과 교육 보급이 잘 이뤄진다. 우수한 노동력의 양성과 신흥 자본가의 출현도 쉬워진다. 파격적인 개혁의 결과 농촌 인구 상위 4%의 소득이 80% 감소하고 하위 80%의 소득이 20~30% 증가했다. 불평등이 확실하게 완화된 것이다. 일제 당시 200만t 수준이던 쌀 공급량은 1960년 초 350만t으로 증가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주대환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토지혁명”으로 규정했다(『죽산 조봉암 평전-자유인의 길』 이택선).   개혁이 성공한 것은 정파를 초월해 합심했기 때문이다. 반공주의자 이승만 대통령은 뜻밖에도 전향한 공산주의자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그는 헌법 제정 당시 이승만이 주장한 대통령 중심제를 “독재의 폐단이 염려된다”고 결사 반대한 정적(政敵)이었다. 그런데도 “공산당의 유혹에 넘어가는 농민의 마음을 사는 일은 조봉암이 적임”이라고 판단했다. 조봉암은 농지개혁을 “봉건적 사회조직을 근대적 자본주의 제도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국회 속기록)으로 규정했다. 봉건 노예로 살아온 소작농은 내 땅을 가진 근대 자작농이 됐고, 6·25 남침 때 공산군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승만의 냉철한 판단이 김일성의 오판을 이기고 나라를 지켰다.   대지주인 한민당 지도자 김성수는 공산화를 막으려면 개인 재산권 침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교수의 설득이 있었다. 독립운동가였던 한민당 라용균 의원은 자기 농지를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했다. 우파 문학을 대표하는 김동리도 “농지개혁과 주요 기업의 국유를 주장하는 것이 좌익이라면 조선 사람은 전부 좌익”이라며 농지개혁을 지지했다.   중환자가 된 연금을 수술하려면 농지개혁 때처럼 지도자들이 한마음으로 희생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 70% 이상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췄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국민 70%가 반대하지만 “올해 안에 연금개혁을 끝내겠다”며 정치생명을 걸었다. 물거품 같은 지지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공동체의 존속과 통합이다. 오늘의 눈 먼 정치인들은 과연 연금지옥의 도래를 막을 수 있을까. 이하경 대기자

    2023.02.06 00:48

  • [고현곤 칼럼] 지금 재정 긴축할 땐가

    고현곤 편집인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로 옮겨붙었다.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도 역성장이 우려된다. 역성장은 딱 세 차례 있었다. 1980년(-1.7%, 2차 오일쇼크)과 98년(-5.5%, 외환위기), 2020년(-0.7%, 코로나). 2009년(0.7%) 금융위기 때도 역성장은 아니었다. 올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최근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자 ‘별거 아니네’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가를 띄우려고 부추기는 전문가가 많다.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실물경제가 어려워지면 금융시장으로 다시 번지는 건 시간문제다. 외환위기 때 기업과 금융회사가 동반 추락한 기억이 생생하다. 30대 그룹 중 11개가 문을 닫았다. 5대 시중은행(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이 사라졌다.   예나 지금이나 정부의 경기부양 카드는 두 가지다. 금리를 내리는 통화정책과 재정을 푸는 재정정책. 둘 다 여의치 않은 게 문제다.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됐지만, 여전히 5%대로 높다. 2~3%로 안정될 때까지 현 기준금리(3.5%)를 이어가거나 좀 더 올려야 한다. 금융당국이 창구지도를 통해 시장금리를 누르고 있으나 임시방편이다.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미국도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것이지 인하하는 건 아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6.5%. 연준(Fed) 목표인 2%는 한참 멀었다.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79~81년 연준이 기준금리를 11.5%에서 21.5%로 급격하게 올리고도 물가가 2%대 안정을 찾기까지 2년이 더 걸렸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1~2년 후 진정되더라도 금리가 예전 수준으로 돌아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 금리 못 내리면 남는 부양책은 재정 ‘보수=작은 정부’에 얽매여선 안 돼 문재인 정부처럼 마구 쓰지 말고   선별적, 한시적, 적기에 쓰면 효과 」    재정정책도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 때 재정을 축내는 바람에 여력이 없다. 재정을 풀다가 물가를 자극할 우려도 있다. 미묘한 걸림돌이 하나 더 있다. ‘보수=작은 정부, 진보=큰 정부’ 프레임이다. 보수는 재정정책을 쓰지 말고, 긴축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으로 읽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미국 민주당은 공화당보다 좌파이지만, 북유럽과 비교하면 우파다. ‘나는 보수이니 긴축에 찬성’ ‘나는 진보이니 재정확대’ 식의 논리는 단순할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하다.   과거 사례를 봐도 이 프레임은 잘 들어맞지 않는다. 민주당 지미 카터 정부(77~80년)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는 2.3%였다.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81~88년)의 재정적자는 4.1%로 오히려 증가했다. 민주당 빌 클린턴(93~2000년) 때 줄었다가 공화당 조지 W 부시(2001~2008년) 때 다시 늘었다. 통념과는 반대다. 국내에서도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 10년간 GDP 대비 정부 규모는 더 커졌다. 정부 크기를 좌우하는 광의의 조세부담률은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23.7%에서 2017년 25.4%로 증가했다(전주성 『재정전쟁』).   내로라하는 석학들도 이념 프레임에 빠진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중도좌파다. 재정 확대를 주창하는 케인스 학파다. 정치색이 짙다. 민주당을 지지한다. 바이든 정부가 2021년 초 코로나 펜데믹 극복을 위해 1조9000억 달러의 부양책을 내놓았다. 크루그먼은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지 않을 것”이라며 바이든 편을 들었다.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이 닥치자 크루그먼은 “매우 잘못된 예측이었다”고 반성했다. ‘진보=큰 정부’에 갇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실수였다.   그런 면에서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한 수 위다. 그도 민주당 경제통이지만, 재정을 무조건 늘리는 데 반대했다. 서머스는 “1조9000억 달러는 너무 많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위기 당시 정부가 쏟아부은 8000억 달러의 두 배를 넘는 돈이었다. 서머스는 이념과 정파에서 벗어나 경제를 냉정하게 진단한 것이다. 서머스의 완승으로 끝났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대척점에 있다. 문 정부 때 손상된 재정 건전성을 복원해야 하는 책무를 안고 있다. ‘작은 정부, 긴축’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한다. 하지만 경기가 악화하고, 금리를 내릴 수 없다면 마지막 기댈 곳은 재정이다. 문 정부와 무조건 반대로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 상황에 따라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정상적이라면 문 정부 때 아껴 쓰고, 지금 풀어야 하는데…. 거꾸로 가는 듯하다. 문 정부가 잘못한 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일회성 공공근로처럼 효과는 없고 생색만 내는 현금 살포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그 버릇을 못 고쳤다. 최근에도 민주당은 포퓰리즘 성격이 짙은 30조원 추경을 들고 나왔다.   경기를 부양하려면 재정을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경제학 교과서는 ‘3T 지출’을 권하고 있다. 선별적으로(Targeted) 한시적이며(Temporary) 적기에(Timely). 최악의 상황은 올 하반기에도 물가 불안으로 고금리가 계속되고, 정부가 부양과 내년 총선을 의식해 재정지출을 급작스럽게 확대하는 경우다. 두 정책이 충돌하며 불황이 깊어질 수 있다. 더 나빠지기 전에 재정의 역할을 따져봤으면 한다. 경제는 타이밍이다. 고현곤 편집인

    2023.01.31 01:13

  • [최훈 칼럼] 약이 될까 독이 될까, 국민의힘 전당대회

    최훈 주필 ‘핵관’이란 단어가 화제가 됐던 건 이명박 대통령 초기 이동관 대변인부터였다. 출입기자들에게 백브리핑을 하며 이 대변인이 익명을 요청하자 처음엔 ‘청와대 관계자’라고 썼다. 그러다 한 매체가 이 대변인의 발언은 따로 ‘청와대 핵심 관계자’라 인용하자 대부분이 따라가면서 ‘이핵관 이동관’이란 별명이 굳어졌다. 취임 초 류우익 비서실장이 “앞으로 청와대의 모든 공식 발표는 대변인만을 통해서 하라”고 지시한 영향도 있었다. 이 대변인과 달리 다른 수석비서관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 일반 비서관은 ‘청와대 관계자’로 표기하던 시절이었다.   15년이 지나 ‘윤핵관’이란 단어가 정국의 키워드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3월8일 국민의힘 대표를 뽑을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향배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나 친소 관계를 따지는 ‘윤심(尹心)’의 메신저로 매칭이 되면서다. 그런데 ‘윤핵관’ ‘윤심’이란 단어가 향후 한 달을 지배하면 할수록 여당의 내년 총선엔 부정적 영향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을 듯싶다. 대선 승리 때의 부푼 기대와 달리 지금 상황은 여당에 녹록지 않다.   자신이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층이라 답하는 이들은 요즘 31.9%다(한국갤럽, 지난 17~19일 조사). 이 중도층의 대통령 지지도는 부정(63%)이 긍정(29%)보다 높다. 보수층이야 64% 대 31%로 대통령이 잘한다고 평가한다. 진보층은 10% 대 85%로 평가가 야박하다. 중도층의 정서가 진보에 더 가까운 지형이다. 이 중도층 흡인에 실패하면 여당의 내년 총선은 어렵다. 대통령 지지도 기준으론 최대 표밭인 수도권에서 36% 대 55%로 밀리고 있다. 여론의 빅마우스인 30대(22% 대 66%), 40대(24% 대 73%) 50대(35% 대 63%)에서도 열세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로 야당이 죽을 쑤고는 있다. 정당 지지도만으론 여당(37%)이 민주당(32%)을 조금 앞서 있다. 하지만 총선에 다가가 이 리스크가 사라지고 야당의 새 리더십이 구축될 가능성도 있다. “모든 게 다 문재인 탓”도 내년 4월 쯤에는 머쓱해질 수밖에 없다.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구도가 바뀔 수 있다. 경제 상황? 확실히 여당 편이 아니다. 그러니 국민의힘의 새 3·8리더십은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고비다.   100% 책임당원 투표만으로 선거를 치른다고 한다. 평균 민심과는 오차가 있을 터다. 울타리 내에서 오로지 충성, 강경, 극우의 목소리가 다양한 이슈를 압도·지배하는 상황은 늘 참사를 낳았다. 개헌 저지선만 간신히 지켜낸 103석으로 보수 정당 사상 60년 만의 최대 참패가 2020년 총선이었다. 징조는 1년 전부터였다. 문재인 정부의 독주에 밀려 당은 균형을 잃고 속수무책 오른쪽으로만 달려갔다. 통진당 해산 등의 성과로 2019년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황교안 대표는 “태극기부대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라며 사실상 동행을 선언했다. 뒤이어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 등의 ‘5·18 모독 발언’이 터졌다. 총선에서도 후보들의 세월호 유가족 모독, 진보적 30·40대를 “거대한 무지와 착각”으로 공격한 발언 등으로 중도를 밀쳐버렸다.   박근혜 정권 말기의 2016년 총선에선 1년 동안 반박-비박-친박-진박 감별이란 초등생 수준의 코미디를 펼치다 패배했다. 비박의 당 대표가 옥새를 들고 영도다리에 선 사진으로 선거는 끝이었다. 2004년 총선 직전엔 제도권의 이단아였던 노무현에 대한 증오가 당을 지배했다. “탄핵하면 온 국민이 반길 것”이라는 집단의 최면과 광기에 빠져들었다. 깨어 보니 과반을 내준 참패였다. 진보도 강성 좌파로 망해가지만 보수 역시 극우 강경의 피리 부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독(毒)이 되는 길? 이런 맹목적 충성과 집단 최면이다. 윤핵관들의 표몰이와 위원장 기강잡기의 ‘구시대’로 얼룩진다면 총선은 기약이 없다. 공천 거래 등의 폭로전이야말로 최악일 터다. 크고 작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2선 후퇴, 백의종군”을 외쳤던 윤핵관들 아니던가. UAE의 300억 달러 투자 유치, 노조 개혁, 탈원전·부동산 정책의 정상화 등 대통령의 고군분투를 여당의 분란과 퇴행으로 뒤덮게 되면 안 하느니만 못한 전당대회다.   약(藥)이 되는 길? 시대와 함께 가는 새로운 보수의 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늘 국민에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국민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보수정당인 영국 보수당의 개혁 선언문이다. 기업 투자 활성화, 규제의 축소, 공공지출 삭감과 세금 감면, 자유시장의 확대, 폐쇄적 노조의 개혁, 포퓰리즘의 추방 등이  보수가 국민에게 약속해야 할 기회다. 복지 확대와 보수가 양립할 길도 찾아야 한다. 이미 노동·연금·교육 개혁의 역사적 과제를 선언한 여권이 아닌가. 이준석 대표의 퇴장으로 사그라든 청년층의 활발한 보수정치 참여, 충원 역시 대한민국 보수의 과제여야 한다. 작은 완장 다툼일랑 넘어서 달라. 새로운 개혁적 보수의 길을 가겠다는 약속과 비전의 열띤 경쟁을 기대한다. 그게 정통 보수의 전당대회여야 한다. 최훈 주필

    2023.01.30 01:07

  • [염재호 칼럼] ‘뷰카 시대’의 사회시스템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설날도 지나 2023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올해는 윤석열 정부 2년 차를 맞아 우리나라가 새로운 도약을 할 기회다. 문명사의 대전환을 맞이한 요즘을 ‘뷰카 시대’라고 한다. 사회가 급변하고(volatile), 불확실하고(uncertain), 복잡하고(complex), 모호한(ambiguous) 상태라는 영어 첫 글자를 따서 뷰카(VUCA)라는 것이다. 21세기 사회는 확실히 20세기 사회와 다르다. 마치 금속 인쇄술의 등장으로 종교개혁과 르네상스가 촉발됐던 것처럼 디지털 전환은 인류의 문명을 급속히 바꿔나가고 있다. 20세기 사회시스템 안에 머물러 있으면 사회가 급변하고,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모호해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이런 뷰카의 시대를 어떻게 맞아야 하나?   윤석열 정부는 노동, 교육, 연금개혁을 3대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국회에서도 선거제 개편을 위시한 정치 개혁을 위한 초당적 모임이 출범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87년 민주화 체제를 넘어 새로운 정치시스템을 만들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이념을 앞세운 이전투구의 이익 정치, 승자독식의 일방적 정치로 원칙과 절제의 정치 미학이 실종된 지 오래다.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도 사라지고 편 가르기와 극단적 팬덤 정치만 남았다. 이제 정치개혁 없이는 우리나라 미래가 암담할 뿐이다.   사회시스템 개혁은 뷰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필수 과제다. 새로운 사회시스템 구축이 미래를 위해 가야 할 길이라면 기득권의 저항을 넘어서는 사회적 합의를 반드시 이끌어내야 한다.     ■  「 급변·불확실·복잡·모호 시대 도래 문명사적 전환이자 비가역적 변화 기존 사회시스템 획기적 개편해야 정치·노동·교육·연금 개혁 필수적 」    18세기 말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20세기 사회시스템도 과학적으로 체계화했다. 일을 세부 전문화하는 미시적 공법이 발달했고, 이를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발전했다. 삶의 터전이 집에서 공장으로 바뀌었고, 제조업 노동직뿐 아니라 이를 관리하는 사무직도 늘어났다. 노동은 시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임금은 일한 시간을 기준으로 지불됐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비대칭적 권력관계 때문에 노동조합이 등장했고 20세기 노동시스템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아 일의 특성은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했고, 정규직·호봉제·연공서열·종신고용 같은 경직된 노동시스템의 효율성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됐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20세기에는 대량생산 체제에 걸맞은 교육의 효율성이 강조됐다. 현상을 보고 깨닫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교육보다 대형 강의실에서 전공지식을 앵무새처럼 외우면서 배웠다. 배운 지식을 회사에서 30년 정도 써먹고 은퇴하는 것이 20세기 교육과 직업의 사회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이제 단순 지식을 반복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컴퓨터의 몫이 됐다. 심지어 20세기 직업의 85%가 소멸한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더 이상 형식지를 일방적으로 전수하는 교육방식은 유효하지 않다.   연금도 직장 은퇴 후의 삶을 보장해주기 위한 20세기 사회시스템이다. 하지만 저출산이 만연하고, 평균수명 70세에서 100세 시대로 생애주기가 획기적으로 바뀌면서 20세기식 연금제도는 부정합의 사회시스템이 되었다. 연금재정 고갈문제는 독일식 기업연금 제도와 같은 새로운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   회사에서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협업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20세기 직무관리의 규칙과 기준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글로벌 기업들은 직원들의 업무 시간보다는 업무의 질을 평가한다. 재택근무나 자율근무가 보편적 시스템이 되었다.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와 글로벌 경영전문대학원 인시아드(INSEAD)의 에린 마이어(Erin Meyer) 교수의 저서 『규칙 없음』을 보면 넷플릭스에서는 대량생산 체제에서 효율적으로 직원을 관리하던 관료제화된 규정을 모두 없애고 자율적으로 일하게 한다. 출퇴근뿐만 아니라 심지어 휴가 시기나 기간도 직원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많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보다 인재 밀도를 강조하는 헤이스팅스는 직원들을 모두 프로페셔널로 인정해서 근무 장소나 시간보다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일의 결과만 평가한다. 이처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뷰카 시대를 성공적으로 맞을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를 권장하던 기업들이 다시 직원들을 출근시킨다고 한다. 이는 아직도 관리자들이 시간을 중심으로 일을 관리하고 대면으로 업무를 아무 때나 지시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이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아직도 20세기형 관리자의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문제다. 21세기는 시키는 일만 하는 노동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일을 자율적으로 하고 업무 성과로 평가받는 프로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이제 선진사회로 도약하기 위해 20세기 사회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할 때가 됐다. 비가역적 변화의 흐름에 저항하면 뷰카의 시대에 살아남기 어렵다. 새해에는 정부와 기업 모두 21세기 뷰카시대에 걸맞은 사회시스템을 구축하고 우리는 모두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2023.01.25 00:54

  • [이하경 칼럼] 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자멸한다

    이하경 대기자·부사장 힘든 개혁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건 위험하다. 천지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동시에 시동 걸었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에도 승부수를 던졌다. 전임자들이 눈치만 보고 미뤄 둔 고난도 숙제다. 정권의 명운을 건 전방위 개혁에 성공하면 이 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이다. 개혁이 ‘혁명’으로 명명(命名)될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다룬 소설 『하얼빈』을 쓴 김훈 작가와 마주했다. 그는 “몸이 가벼워야 혁명을 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안중근은 “이토가 하얼빈에 오는데, 함께 가서 죽이자”고만 했다. 우덕순은 바로 동의했다. 어떤 대의명분도 토론하지 않았지만 거사는 오차 없는 현실이 됐다. 윤석열도 기득권 세력에 포획되지 않았기에 가벼운 몸으로 ‘혁명’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 아닐까.   용감한 대통령의 제1 과제는 노동개혁이다. 일자리와 경제, 인간 존엄의 문제가 걸렸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을 차별하는 것은 현대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런 착취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노동개혁”이라고 딱부러지게 정리했다. ‘연대를 통한 약자 보호’라는 존재 이유를  잊은 지 오래인 타락한 노동귀족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  「 윤 대통령 기득권 무관…개혁 올인 통합·입법이 무기, 야당 손잡아야 개혁 성공, 보복 악순환 단절 가능 실패한 예언자의 길 가면 안 된다 」    윤 대통령은 광주지검 검사 시절 기아차 노조 비리를 수사했다. “노조사무실이 검찰청보다 더 좋았다. 정규직은 편안하게 버튼만 누르고 어려운 일은 하청 노동자 차지였다. 지검장은 (인권·노동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을 의식해 벌벌 떨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소신대로 하라’고 격려했다. 수사가 끝난 뒤에는 ‘너무 잘했다. 수사 검사 전원을 희망하는 근무지로 보내줘라’라며 격려했다.” 윤 대통령이 최근 몇몇 사람에게 털어놓은 일화다. 대우조선 노조를 돕다가 구속까지 됐던 노 전 대통령의 입장 전환은 국정 최종 책임자다웠다. 윤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결단하는 데 힘이 됐을 것이다. 대통령이 앞장서면서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도 단호해졌다.   교육개혁에도 발동이 걸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무회의 도중 “교육부에서 지방 국립대에 사무국장을 보내서 총장이 눈치 보게 만드는 교육부가 정상입니까”라며 “사무국장 파견제도를 없애지 않으면 교육부를 없애겠다”고 호통쳤다. 교육부 고위직의 ‘꿀보직’ 27개가 사라졌다.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후보자였을 때 “원상 복구시키면 청문회를 수월하게 통과시켜 주겠다”고 속삭이던 ‘교육 마피아’는 납작 엎드려 있다.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도 정치적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한덕수 총리는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찾아와서 기시다 총리를 포함한 일본 관계자 전원을 설득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어떤 개혁도 야당과의 협력이 필수다. 흩어진 여론을 모으고 입법으로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자멸한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의 무기는 통합과 입법이다. 싫더라도 절반의 국민을 대표하는 야당의 의견을 경청하고 타협해야 한다.   철학자인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저서 『타자의 추방』에서 “같은 것의 창궐은 악성종양이 아니라 혼수상태처럼 작동한다”며 “동일자(同一者)는 타자(他者)에 대한 차이 때문에 형태와 내적 밀도, 내면성을 지닌다”고 했다. 타자의 공간을 허용하는 관용의 원칙을 포기할 때 민주주의는 몰락한다.   권력의 시간은 유한하다. 힘이 빠지는 순간 입안의 혀처럼 굴던 아첨꾼들은 뒤도 보지 않고 떠날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어떤 가치도 공유한 적이 없다. 오직 한 줌 이익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들었던 군상(群像)이었을 뿐이다. 베드로처럼 첫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아니 삼백 번이라도 부인할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임기 말에는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아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힘이 없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직도 유골이 자택에 머물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황혼은 무상하고, 허망하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린 알렉산더의 결단력이 부러운가. 하지만 황제는 먼저 숙고하는 인간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을 스승으로 모셨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고, 베개 밑에 둔 호메로스의 『일리어드』를 반복해서 읽었다. 이민족을 포용하고 헬레니즘 대제국을 건설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윤 대통령도 특유의 결단력에 더해 숙고하는 지도자가 되기 바란다.   나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人)의 장막을 찢고 나와야 한다. 결사적으로 타자를 만나고, 야당과 반대자를 환대해야 한다. 내게 결핍된 다른 세계의 관점과 에너지를 수용해야 한다. 무풍(無風)은 죽음을 의미한다. 역풍(逆風)이라도 바람이 불어야 배가 전진할 수 있다. 카산드라처럼 자멸한 예언자가 되는 가혹한 운명을 피할 수 있다. ‘혁명’에 성공하고 퇴임 후 보복의 악순환도 끝내는 유일한 길이다. 이하경 대기자·부사장

    2023.01.16 01:00

  • [세컷칼럼] 면피 사회

    최훈 주필 힘든 게 맞다.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말이다. 1994년 10월 사형수 10명의 집행 현장(1997년이 마지막이었다)에 초임 시절 입회했던 전직 검사장의 기억. “죽음에 앞서선 다 내려놓고 용서를 구할 줄 알았다. 그러나 다수가 마지막 순간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더라. 사회와 법에 대한 증오가 남은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왜 주범 대신 공범인 나만 가야 하느냐는 원망도 있었다. 그 주범은 당신의 앞 순서였었다는 말만은 차마 하지 못하겠더라. 양치질도 못했는데 왜 이리 급하냐는 불만서부터…. 사회와 남에 대해 응어리져 남은 적개심까지.”   극단적 사례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 세상에서도 잘못이란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고개를 숙인 뒤 되돌아올 사회적 소외와 눈총, 뒤이을 정신적·물질적 손실은 두렵기 마련이다. 남의 실수에 대해 유독 관용이 부족한 우리 문화도 큰 몫을 할 터다. 책임지려는 용기를 평가하긴커녕 SNS를 통한 좌표찍기와 신상털기 등 융단폭격을 가한다. 회복과 재기가 어려운  폐인이 될 때까지…. 그러니 내 잘못이 아니라는 모든 구실과 정황을 동원하기 바쁘다. 그 주변에 있던 누군가를 희생양 삼기에 골몰한다. 휴일 교회마다 사제들이 “내 탓이오”를 외치게 하지만 인간은 그냥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  「 일상이 ‘책임회피’ ‘남탓’인 세태 나랏일 공직, 자기 책임 분명해야 자신이 일의 주인이길 포기하면 성장·성공 기회는 영원히 사라져 」    우리 신문·방송의 뉴스 제목·자막의 오른쪽(혹은 바로 아래쪽)은 늘 ‘면피(免避)’로 채워진다. 제기된 문제의 해결 과정은 실종이다. 공격과 방어만 있다. 나라의 일상 에너지 대부분이 면피에 소모된다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아마 경복궁이 무너져도 정쟁과 SNS의 논란 끝에 최종 책임은 결국 ‘부실공사 대원군’이 져야 하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면피가 고착된 나머지 이젠 검찰 수사, 법원의 마지막 심판마저도 부정하려는 혼돈을 맞고 있다.   민초들이야 그렇다 치자. 나랏돈 쥐어주고 나랏일 맡긴 공직은 그 권한만큼 명확히 책임져야 순리다. 한 발 쏘는 데 20억원 든다는 군의 현무2-C 미사일이 훈련 발사 직후 뒤로 날아가 인근 골프장 페어웨이에 떨어진다. 북핵에 대응할 주력 무기였다. 전시의 국민 안위에 관련된 중대 문제다. 그러나 3개월 넘도록 군, 방사청, 국방과학연구소, 제조업체 중 누가 책임을 말하거나 어떤 점검, 보완이 추진 중인지 알 길이 없다. “무기 제작상 일부 장치 결함으로 추정된다”는 합참의장의 한마디가 전부다. 제작상 결함이라니. 유체이탈이다. 무인기 용산 상공 침투는 면피를 넘어 ‘은폐’ 의혹마저 일고 있다.   159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사고 이후 단 한 명의 공직자도 “내 탓이오” 외친 이가 없었다. 지난 6일 이상민 행안장관이 정부 대표로 사과하기까지 두 달 넘게 용산의 구청장·경찰서장 강제 구속이 전부였다. 지난 정권의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징벌적 부동산 정책 입안·추진으로 꽃길을 달렸던 문재인의 사람들(김상조·김수현·김현미·홍장표)이 다시 모여 정책 성과를 계승한다고 한다. ‘책임’ 아닌 ‘계승’이다. 그 포럼 이름은 다산이 강진 유배 때 기거했던 사의재(四宜齋). 18년 유배 중 다산이 친족·제자들에게 보낸 성찰의 편지엔 이런 구절이 있다. “폐족들은 글공부를 하고 행실을 삼가 착한 본성을 지켜나가지 않을 바엔 차라리 오그라들어서 없어져버려야 한다. 그자들과 관계가 있다 하여 멀리 끊어버리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우리 곁엔 유독 책임회피 속담들이 많았다. 26개라는 통계도 있다. “핑계없는 무덤 없다” “처녀 애 낳아도 할 말은 있다” “서투른 목수 연장 탓, 서투른 무당 장고 탓한다” “글 못하는 사내 필묵 탓, 떡 못하는 계집 안반(案盤, 떡 등을 치는데 쓰이는 나무받침) 탓, 장님 넘어지면 지팡이 탓” “잘살면 제 탓, 못살면 조상 탓 산소 탓” “밥 질면 나무 탓, 늦잠 잔 며느리 탓.” 지금의 1등 속담? 역시 ‘내로남불’이다.   학자들은 그 원인을 생각해 봤다. 장유유서, 군사부일체의 수직적 유교 문화 아래 자신의 선택과 자유란 게 미미했다. 집단에 숨는 자기 부재의 복종 속에서 자기 책임은 명확지 않았다. 억눌린 인간의 생존? 핑계로 방패삼는 것이었다. 자아 확대가 아니라 자아 도피가 체질화돼 공과 사, 이성과 감정 구분이 어려워졌다는 해석이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 세력에 명확한 책임을 묻지 못했다거나 군부독재 시절의 정경유착, 부동산 투기 등 부정한 수단들이 여과없이 부로 이어진 세상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체념적 현실 도피가 굳어져 왔다는 해석도 나온다.   책임을 피하는 건 곧 자기가 그 일의 주인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잠시, 아니 운 좋으면 영원히 화와 손실을 피할 수 있겠다. 하지만 주인이기를 늘 포기하는 이들에게 일의 기회, 성찰과 성장의 시간, 그리고 다시 이익이 주어질 가능성이란 없다. 정치인·공직에 특히 요구되는 으뜸의 덕목. 실명의 정책과 자기 책임이다. 주인이길 포기하는 이들에게 어찌 나라 책임을 맡길 수 있겠는가. 새해엔 면피 사회에서 벗어나 스스로 책임지는 사회로 조금씩 성숙해져 가길 바란다.   글=최훈 중앙일보 주필 그림=김은송 인턴기자   최훈 주필

    2023.01.11 23:55

  • [최훈 칼럼] 면피 사회

    최훈 주필 힘든 게 맞다.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말이다. 1994년 10월 사형수 10명의 집행 현장(1997년이 마지막이었다)에 초임 시절 입회했던 전직 검사장의 기억. “죽음에 앞서선 다 내려놓고 용서를 구할 줄 알았다. 그러나 다수가 마지막 순간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더라. 사회와 법에 대한 증오가 남은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왜 주범 대신 공범인 나만 가야 하느냐는 원망도 있었다. 그 주범은 당신의 앞 순서였었다는 말만은 차마 하지 못하겠더라. 양치질도 못했는데 왜 이리 급하냐는 불만서부터…. 사회와 남에 대해 응어리져 남은 적개심까지.”   극단적 사례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 세상에서도 잘못이란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고개를 숙인 뒤 되돌아올 사회적 소외와 눈총, 뒤이을 정신적·물질적 손실은 두렵기 마련이다. 남의 실수에 대해 유독 관용이 부족한 우리 문화도 큰 몫을 할 터다. 책임지려는 용기를 평가하긴커녕 SNS를 통한 좌표찍기와 신상털기 등 융단폭격을 가한다. 회복과 재기가 어려운  폐인이 될 때까지…. 그러니 내 잘못이 아니라는 모든 구실과 정황을 동원하기 바쁘다. 그 주변에 있던 누군가를 희생양 삼기에 골몰한다. 휴일 교회마다 사제들이 “내 탓이오”를 외치게 하지만 인간은 그냥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  「 일상이 ‘책임회피’ ‘남탓’인 세태 나랏일 공직, 자기 책임 분명해야 자신이 일의 주인이길 포기하면 성장·성공 기회는 영원히 사라져 」    우리 신문·방송의 뉴스 제목·자막의 오른쪽(혹은 바로 아래쪽)은 늘 ‘면피(免避)’로 채워진다. 제기된 문제의 해결 과정은 실종이다. 공격과 방어만 있다. 나라의 일상 에너지 대부분이 면피에 소모된다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아마 경복궁이 무너져도 정쟁과 SNS의 논란 끝에 최종 책임은 결국 ‘부실공사 대원군’이 져야 하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면피가 고착된 나머지 이젠 검찰 수사, 법원의 마지막 심판마저도 부정하려는 혼돈을 맞고 있다.   민초들이야 그렇다 치자. 나랏돈 쥐어주고 나랏일 맡긴 공직은 그 권한만큼 명확히 책임져야 순리다. 한 발 쏘는 데 20억원 든다는 군의 현무2-C 미사일이 훈련 발사 직후 뒤로 날아가 인근 골프장 페어웨이에 떨어진다. 북핵에 대응할 주력 무기였다. 전시의 국민 안위에 관련된 중대 문제다. 그러나 3개월 넘도록 군, 방사청, 국방과학연구소, 제조업체 중 누가 책임을 말하거나 어떤 점검, 보완이 추진 중인지 알 길이 없다. “무기 제작상 일부 장치 결함으로 추정된다”는 합참의장의 한마디가 전부다. 제작상 결함이라니. 유체이탈이다. 무인기 용산 상공 침투는 면피를 넘어 ‘은폐’ 의혹마저 일고 있다.   159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사고 이후 단 한 명의 공직자도 “내 탓이오” 외친 이가 없었다. 지난 6일 이상민 행안장관이 정부 대표로 사과하기까지 두 달 넘게 용산의 구청장·경찰서장 강제 구속이 전부였다. 지난 정권의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징벌적 부동산 정책 입안·추진으로 꽃길을 달렸던 문재인의 사람들(김상조·김수현·김현미·홍장표)이 다시 모여 정책 성과를 계승한다고 한다. ‘책임’ 아닌 ‘계승’이다. 그 포럼 이름은 다산이 강진 유배 때 기거했던 사의재(四宜齋). 18년 유배 중 다산이 친족·제자들에게 보낸 성찰의 편지엔 이런 구절이 있다. “폐족들은 글공부를 하고 행실을 삼가 착한 본성을 지켜나가지 않을 바엔 차라리 오그라들어서 없어져버려야 한다. 그자들과 관계가 있다 하여 멀리 끊어버리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우리 곁엔 유독 책임회피 속담들이 많았다. 26개라는 통계도 있다. “핑계없는 무덤 없다” “처녀 애 낳아도 할 말은 있다” “서투른 목수 연장 탓, 서투른 무당 장고 탓한다” “글 못하는 사내 필묵 탓, 떡 못하는 계집 안반(案盤, 떡 등을 치는데 쓰이는 나무받침) 탓, 장님 넘어지면 지팡이 탓” “잘살면 제 탓, 못살면 조상 탓 산소 탓” “밥 질면 나무 탓, 늦잠 잔 며느리 탓.” 지금의 1등 속담? 역시 ‘내로남불’이다.   학자들은 그 원인을 생각해 봤다. 장유유서, 군사부일체의 수직적 유교 문화 아래 자신의 선택과 자유란 게 미미했다. 집단에 숨는 자기 부재의 복종 속에서 자기 책임은 명확지 않았다. 억눌린 인간의 생존? 핑계로 방패삼는 것이었다. 자아 확대가 아니라 자아 도피가 체질화돼 공과 사, 이성과 감정 구분이 어려워졌다는 해석이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 세력에 명확한 책임을 묻지 못했다거나 군부독재 시절의 정경유착, 부동산 투기 등 부정한 수단들이 여과없이 부로 이어진 세상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체념적 현실 도피가 굳어져 왔다는 해석도 나온다.   책임을 피하는 건 곧 자기가 그 일의 주인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잠시, 아니 운 좋으면 영원히 화와 손실을 피할 수 있겠다. 하지만 주인이기를 늘 포기하는 이들에게 일의 기회, 성찰과 성장의 시간, 그리고 다시 이익이 주어질 가능성이란 없다. 정치인·공직에 특히 요구되는 으뜸의 덕목. 실명의 정책과 자기 책임이다. 주인이길 포기하는 이들에게 어찌 나라 책임을 맡길 수 있겠는가. 새해엔 면피 사회에서 벗어나 스스로 책임지는 사회로 조금씩 성숙해져 가길 바란다. 최훈 주필

    2023.01.09 00:56

  • [고현곤 칼럼] 공기업 낙하산, 그 끝없는 기득권 파티

    고현곤 편집인 공기업에 입사하려면 한국사·국어·IT 등 각종 자격증을 따야 한다. 가산점을 얻기 위해서다. 학원비, 교재비, 응시료, 그리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겨우 스펙을 갖춰도 수백 대 1 경쟁을 뚫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면접은 고사하고, 1차 관문인 서류 전형에서 대부분 탈락한다. 운 좋게(?) 붙어도 금세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 열심히 일해도 ‘사원에서 사장까지’ 이런 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공기업 사장이 되려면 정부부처를 거쳐야 한다. 더 쉬운 방법은 정치권이나 권력의 언저리에서 맴돌다가 자리를 꿰차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성이 없고,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다. 기회만 닿으면 공기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정치판으로 달려간다. 어차피 오래 있을 회사도 아니고, 내 돈도 아닌데 직원들과 마찰을 빚을 이유가 없다. 노조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적당히 타협한다.     ■  「 사장은 정치인·관료, 적자 내도 멀쩡 청년들,‘사원에서 사장’꿈도 못 꿔 역대 정부 이어 윤 정부도 낙하산 새해 ‘공정과 상식’ 지켜질지 볼 것 」    ‘공공기관 운영 법률’을 적용받는 350개 공기업의 한 해 예산은 761조원이다. 위험천만한 낙하산 기관장이 국가 예산(올해 638조원)보다 많은 돈을 굴린다. 경영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공기업 순이익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조원 줄었다. 부채는 같은 기간 493조원에서 583조원으로 늘었다.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지난해 정부가 공기업에 지원한 세금만 109조원이다.   정부가 매년 경영실적을 평가해 등급을 매기지만, 공기업 기관장은 꿈쩍도 안 한다. 솜방망이 처벌에다 ‘블랙리스트’ 방탄까지 둘렀다. 지난해 경영실적이 나빠 해임을 권고받은 기관장은 해양교통안전공단 딱 한 곳이었다. 실적 부진으로 경고를 받은 기관장도 토지주택공사 등 3곳에 불과했다. 적자를 내도 자리를 지킨다. 심지어 성과급도 받는다. 민간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이삼걸 강원랜드 사장, 김경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원경환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2020년 총선에서 떨어진 후 이듬해 사장 자리를 꿰찼다. 꿩 대신 닭. 이들 3사는 2021년 적자를 냈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역대 정부는 공기업을 전리품으로 여겼다. 챙겨줄 사람 넣어주고, 적당히 빼먹고. ‘욕하면서 배운다’고 보수·진보 정부 모두 똑같았다. 국민을 우습게 여긴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공기업 낙하산과 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취임사에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낙하산 인사가 역대 어떤 정부보다 많았다. 지난해 임기 막판까지 정기환 마사회장(문 정부 정책기획위원), 윤형중 한국공항공사 사장(국가정보원 1차장), 김제남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시민사회수석)을 내리꽂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때 “공공기관 낙하산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공약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정권 초에 독한 마음 먹고 낙하산 악순환을 끊지 않는 한 공염불이다. 정치권과 정부, 노조가 나눠 먹는 오랜 이권 카르텔을 깨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약탈 정치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반세기 넘게 누적돼온 경제발전과 삶의 방식에 녹아있다.’(강준만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지금까진 새 정부도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빈자리가 나오자 낙하산 인사로 채웠다. 윤 대통령이 정치한 지 얼마 안 돼 챙겨줄 사람이 많지 않다고 떠들었던 평론가들만 머쓱해졌다.   지난해 말 취임한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은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다. 1차 공모에서 에너지를 잘 몰라 탈락했으나 결국 사장에 올랐다. 세계는 에너지 위기다. 중차대한 시기에 에너지 문외한이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가스공사 사장을 맡았다. 그는 2012년 총선 때도 대전에서 낙선한 뒤 이듬해 코레일 사장을 꿰찼다. 당시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임기 3년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나 중도 하차하고,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갔다.   정용기 지역난방공사 사장은 국회의원·구청장을 지냈다. 에너지와 관련이 없다. 윤석열 대선 캠프 정무특보로 합류했다가 지난해 대전시장 당내 경선에서 떨어졌다. 다시 반년 만에 지역난방공사 사장이 됐다.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노량진 학원을 전전하는 청년들은 이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식으로 ‘공기업 파티’를 끝낼 수 있을까.   올해와 내년, 문재인 정부 기관장의 임기가 속속 만료된다. 당장 새해 초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예탁결제원 사장 자리가 빈다. 선거 캠프 출신, 전직 관료 등 낙하산 하마평이 무성하다. 공기업 외에도 정부 영향력 아래 ‘짭짤한’ 자리가 부지기수다. 건설·금융과 무관한 이은재 전 의원이 취임해 논란을 빚은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 같은 자리다.   내년 4월 총선때 그만두는 사람, 낙선 뒤 자리를 기웃거리는 사람이 얽히고설킨다. 한바탕 난장판이 될 게 틀림없다. 공기업이 망가지든 말든 이들 관심은 출세와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기득권이다. 국민은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상식’을 지켜보고 있다. ‘내로남불의 끝판왕’ 문재인 정부와 얼마나 다른지도 따져볼 것이다. “기득권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는 윤 대통령 신년사가 빈말이 아니었으면 한다. 고현곤 편집인

    2023.01.03 00:48

  • [염재호 칼럼] 은유가 지배하는 세상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한 해가 또 저물어간다. 세계화의 물결이 도전을 받으며 곳곳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난 한 해였다. 미·중갈등으로 세계시장 질서에 균열이 생겨 글로벌 밸류 체인이 붕괴하고 새로운 판짜기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기술패권을 앞세워 중국을 견제하며 쿼드·나토 등 동맹세력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항해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협력으로 서방세력을 견제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의 침략 전쟁은 일 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신나치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탈나치화하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라고 주장하며 탱크와 장갑차에 Z 표식을 하고 전쟁을 치른다.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은유의 활용이다.     ■  「 은유가 지배하는 반지성적 사회 본질 성찰보다는 느낌대로 판단 촛불·태극기 등 넘쳐나는 은유들 정치적 선동 수단 오용은 막아야 」    인스타그램·틱톡 등 사진이나 영상, 그리고 간결한 메시지로 소통하는 이 시대의 특징은 은유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오랜 시간 깊게 성찰하는 대신에 순간적으로 느끼는 대로 판단해버리는 감성적 사회가 되었다. 쉽게 가짜뉴스를 믿고 엉터리 주장에 동조한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감성에 호소하여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낸 다음, 진실은 묻어둔 채 은유의 이미지만 남기고 빠르게 사라져버리는 반지성적 사회가 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지성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우리는 질병의 본질보다 질병이 가진 상징과 은유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간파했다. 19세기에 만연했던 결핵은 예민하고 비쩍 마른 사람들에게 나타나서 동정심의 감성을 유발하는 질병의 은유를 갖고 있다. 그래서 20세기 말 결핵이 사라지는 바람에 문학과 예술이 쇠퇴하고 있다는 어느 비평가의 말을 손택은 인용한다. 반면에 암은 결핵처럼 낭만적이라기보다는 투쟁과 전투의 은유를 가진 음울한 질병이다. 암적인 존재라는 은유처럼 암은 흉포한 에너지를 가진 질병으로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하는 악을 지칭할 때 종종 쓰인다.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에이즈에 대한 은유는 에이즈를 바이러스로 보지 않고 타락한 성적 문란으로 야기된 저주의 질병으로만 인식했다. 이처럼 질병을 은유로 이해하기 때문에 질병을 치료보다는 불안·공포·원망의 대상으로 본다.   은유는 이성적 판단능력을 흐리게 만든다. 중세 종교재판의 마녀사냥처럼 집단적 광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19세기 말 프랑스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의 스파이 혐의에 대한 재판에선 유대인에 대한 은유가 드레퓌스로 하여금 종신유배형을 받게 했다. 소설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서한으로 반발했다. 이 일로 프랑스 사회는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양분되어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되고,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사회 분열의 상징이 되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타이틀 42’는 코로나 위험을 명분으로 불법 이민자를 즉각 추방하는 정책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근거로 정치적 은유가 증폭돼 동양인에 대한 혐오범죄에 그치지 않고 남미 불법 이민자 추방으로까지 확산됐다. 실업과 구조조정도 이민자들로 인한 피해라는 이미지로 중하층으로 전락한 백인 위주 경제적 약자들을 부추기곤 한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엠마뉘엘 토드(Emmanuel Todd)는 『샤를리는 누구인가?』에서 2015년 1월 프랑스 전역에서 일어난 시위를 분석했다. 프랑스의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무슬림 풍자만화에 대한 테러에 “내가 샤를리다”라는 피켓을 들고 수백만 명이 이슬람의 비문명성을 비난하며 시위를 벌인 것이다. 하지만 토드는 샤를리의 은유가 사실은 사회경제적으로 위기를 느끼는 프랑스의 중간계층이 이슬람 혐오로 결집한 것으로 분석했다. 단순히 표현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신공화주의, 좀비 가톨릭 중간계층이 뭉친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에게도 은유의 망령들이 현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간첩·반공·반체제·새마을·유신 등의 은유가 있었다면 지금은 더 많은 은유가 세상에 떠돈다. 광우병·세월호·탈원전·적폐청산·토착왜구·촛불·태극기·이태원 등 본질보다 은유가 우리의 판단을 지배한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은유로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데 여념이 없다. 나타난 현상의 본질에 천착하기보다는 은유를 만들어내고 이를 확대재생산하여 증폭시킨다. 대중은 객관적 판단은 유보하고 편 가르기에 내몰려 은유 구조에 함몰되어 버린다. 사회를 객관적이고 보수적으로 지켜주어야 할 언론인과 법조인들이 정치에 감염되어 사실 확인보다는 은유를 양산해낸다. 그리고 지식인이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객관적으로 양쪽을 비판하면 양비론의 처세술이라고 비난한다.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에 은유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일차세계대전 이후 혼란기에 반유대주의 은유를 앞세워 나치즘으로 독일민족을 선동한 히틀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은유는 시적 언어의 아름다움으로만 활용되어야 한다. 은유가 정치적 선동과 구호로 남용되는 현상은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막아야 한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2022.12.28 00:56

  • [이하경 칼럼] 윤석열 노동개혁 ‘도둑맞은 노동’ 될 수 있다

    이하경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개혁의 깃발을 올렸다. 화물연대 총파업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해 스스로 철회하게 만든 뒤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대통령은 “노노(勞勞) 간의 착취적인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라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직격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대기업 정규직의 40%를 겨우 넘는 수준의 임금을 받는 불합리한 임금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노조부패 척결’을 선언했다. 국민의힘은 노조 회계를 공인회계사가 맡고 결산과 운영 상황 자료를 행정관청에 보고하도록 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잇따른 조합비 횡령 사건으로 수세에 몰린 민주노총에 비상이 걸렸다. 공정과 정의라는 윤석열다움이 뜨겁게 부활하고 있다.     ■  「 문재인 못한 것, 윤 승부수 던져 민심은 민주노총 부패 척결 지지 생각 다른 노동계와도 대화하고 중간·진보 마음까지 얻어야 성공 」    윤 대통령은 광주지검 검사로 근무할 때 기아차 노조 채용비리를 수사했다. 이후 “언젠가는 노동계의 부패를 일소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민주당의 오랜 우군이었고, 박근혜 정권을 몰아낸 ‘촛불’ 탄핵 집회의 주도세력이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무소불위의 성역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민주노총에 빚진 것이 없기에 단숨에 칼을 뽑아든 것이다. 여론은 눈치를 보지 않는 윤 대통령의 편이다.   문제는 집권당의 부실한 뒷심이다. 윤석열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개인기로 운좋게 정권을 되찾았지만 탄핵당한 정당의 패배의식과 적당주의는 여전하다.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연금 수령액을 삭감하는 개혁을 했다. 그러나 기존 공무원 연금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미래 공무원의 연금만 후려쳤다. 비겁한 껍데기 개혁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집권당 몫인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위원장을 아무도 맡지 않으려고 했고, 주호영 정책위의장이 ‘강제 임명’됐다. 민주노총 산하 공무원노조의 위세에 벌벌 떨었던 보수정당의 흑역사(黑歷史)다. 윤 대통령이 이런 오합지졸을 거느리고 노동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윤 대통령에게는 민심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있다. 민주당도 민주노총을 끝까지 감싸기는 어려울 것이다. 승산이 있는 싸움인 셈이다. 다만 민심이 끝까지 내 편으로 남아 줘야 한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층은 민주노총을 혼내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중간층과 진보 민심의 풍향은 조금 다르다. 민주노총의 악습에는 불만이 있지만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에 대한 냉담한 태도에는 반발할 것이다. 일탈한 노동운동을 바로잡는다면서 노동 그 자체를 죽이면 개혁은 저항에 부닥친다. 문제는 집권당이 노동친화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다르다. 강자에게는 강하지만 약자에게는 항상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이다. 평생의 지인들은 “수도승 같고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어쩌다 선물을 받더라도 모두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곤 했다. 결혼 당시 전 재산이 2000만원이었던 이유일 것이다.   고(故) 노회찬 의원이 이 세상에 돌아온다면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윤 대통령의 노동개혁을 열렬히 지지할 것이다. 노회찬은 극단을 버리고 끝없이 중도의 길로 나아가면서도 항상 힘 없는 소수의 편에 섰다.  2012년 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는 새벽 4시에 6411번 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는 여성 청소 노동자들을 소환했다. “한 달에 85만원을 받는 투명인간인 이분들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라며 자책했다. 노회찬처럼 리얼리스트인 윤 대통령의 마음도 같을 것이다.   세상의 어떤 고통도 직접 겪고 있는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내가 당신 처지를 더 잘 안다”면서 “내 말대로 하자”고 하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은 모든 걸 가진 청년이 ‘가난’이라는 빈자(貧者)의 남루한 영역까지 욕심낸 악행(惡行)을 혹독하게 비난하고 있다.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 개혁은 ‘도둑맞은  노동’의 지옥문을 열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이채필 전 노동부 장관이 친윤 의원 모임에서 제대로 쓴소리를 했다. 그는 “나는 정부 주도로 노동개혁을 일방 추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나 사례를 잘 알고 있다”며 “진정으로 노동개혁을 하려면 노사 등 각계 인사의 다양한 의견을 초기 단계부터 수렴해야 한다”고 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윤 대통령은 성탄절을 앞두고 지상에서 가장 외로운 이들을 위로했다. 보호 종료 후 홀로서기를 앞둔 자립 준비 청년과 보호아동들에게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났지만 인류를 위해 사랑을 전파했다”고 했다. 예수는 왜 익숙한 열두 제자가 아니라 하필이면 자신을 그토록 박해하던 로마시민 바울을 선택했을까. 왜 그를 통해 기독교를 세계 종교로 확장했을까. 이방인(異邦人)과 손을 잡아야 나의 좁은 세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노동개혁을 했는데 노동자가 더 외로워진다면 그건 개혁이 아닌 개악이다. 따뜻한 선의에서 출발한 노동개혁이 부디 ‘도둑 맞은 노동’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하경 대기자

    2022.12.26 00:56

  • [최훈 칼럼] 사랑받을까, 무서워질까

    최훈 주필 부모나 회사의 부장·사장이건 리더 자리의 이들이라면 늘 겪는 고민이 있다. 베풀어주고 밑의 열 중 하나의 잘못을 짐짓 모른 척도 하며 감싸안아 이끌어갈까, 아니면 욕 좀 먹는 건 개의치 않고 자신의 힘과 권위에 모두 순종토록 해 무질서를 용납지 않을 것인가. 사랑받을까, 아니면 무서울 것인가쯤이겠다. 유독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유년기부터 겪어 온 우리 다수야 전자를 먼저 꼽을 수 있겠다. 그래서 일도 잘 풀리고 본인이 그럴 만큼의 덕성을 지닐 수 있다면야 말이다. 그러나 권력을 쟁취, 유지해야 하는 약육강식의 정치에서 그 정답을 헤아리기란 좀 어려워진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처음엔 사랑받는 지도자를 꿈꾼 듯했다. “경쟁은 끝났다. 모두 하나가 되자.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며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 당선 소감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취임 직후 “영수회담에서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만들겠다. 바른 길로 간다면 정부·여당의 성공을 먼저 두 팔 걷고 돕겠다”고 했다. 그러나 거기가 마지막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진영 갈라치기로 반반 쪼개진 나라다. 소득주도성장·탈원전·최저임금·부동산 정책 등 지난 5년의 구도를 뒤엎어야 하는 윤 대통령이 다수의 사랑을 받는 길을 택하기란 애초에 불가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 대통령 모두 처음엔 사랑 꿈꾸다 강성 야당·노조 벽에 무서움으로 ‘무서운 통치가 더 안전하다’지만 반복되는 무서움 늘 불운한 결말 」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더 이상 불법을 방치하진 않겠다.” 최근 민주노총의 파업과 민주당의 무한 정치 공세에 맞닥뜨린 윤 대통령은 아마도 단호하고 무서운 리더의 길을 택한 듯 보인다. 제1 야당과의 협치·대화도 이재명 대표를 최종 겨냥한 검찰의 대장동 수사와 여야의 날선 대치 속에 물 건너간 듯하다. ‘핵 공갈’의 김정은에겐 한층 결연해졌다. “처음부터 그리 하라 뽑아준 것 아니냐”는 보수진영의 환호에 윤 대통령 지지율은 30%대에서 서서이 올라가고 있다. 총선 주도권을 향한 기싸움이 거세질 내년부터 ‘강(强) 대 강(强)’이야 더욱 강해질 터다.   이 어려운 선택에 자신 넘친 정답을 낸 이는 마키아벨리였다. “사랑받을까, 두려워질까. 이 둘을 모두 결합하기는 어렵다. 둘 다가 될 수 없다면 통치자는 두렵게 여겨지는 게 사랑받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란다. “인간은 원래 은혜를 잘 모르며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라 위험을 멀리하고 제 이익만 탐하기 때문”이다. “잘 대해 주거나 위험이 멀리 있을 때야 당신의 사람이고 목숨까지 바칠 기세지만 당신이 위험에 처하면 모두들 등을 돌릴 것”이란 이유다. 그러니 “자신의 힘을 믿어야 하며 결단을 주저할수록 신중함은 악을 휘몰아 온다”고 했다(『군주론』). 뭐 독실한 신자 아니라면 그런 인간의 군상을 부인하기도 쉽지는 않다.   역대 대통령을 보자. 취임 초엔 다 사랑받길 소망했다. “지지하지 않은 모든 분도 제 국민으로 섬기겠다”(문재인), “정부와 국민이 서로 믿고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겠다”(박근혜),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이 따로 없다.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겠다”(이명박), “도약의 디딤돌은 통합, 저부터 야당과 대화·타협하겠다”(노무현). 그러나 야권, 반대 진영의 아수라장(또는 본인들의 실수로) 속에 좌절·분노하면서 무서움의 유혹은 찾아온다.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박근혜 탄핵 수사를 시작으로 문 대통령은 5년 내내 대통령 2명, 비서실장·국정원장·장관 등 200명 이상을 구속했다. 폐족들의 멸문(滅門)을 묵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무적의 레이저 광선’이란 별명을 들었다. 통합진보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화, 역사교과서 국정화, 개성공단 폐쇄 등 정치적 적에겐 관용이 없어졌다. 유승민·김무성 등 같은 편도 삐딱한 이들은 레이저를 맞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무회의에서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던 한 장관이 들은 단 한마디는 “그만하세요”였다. 밉보인 한 언론사는 여당의 집중 공세 속에 최고위 간부가 망신당하며 물러나야 했다. 인자한 겉보기와 달리 가장 무서웠던 대통령? 문재인이었다. 반대 진영의 제언엔 철벽을 쌓았다. 모든 공직을 자기편만 골라 쓰며 포용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 하긴 검찰·경찰·국세청·공정위 등등. 남 잘되게 하긴 그래도 누굴 망가뜨리기에 대통령이란 그 수단이 너무 많다.   마키아벨리가 원래 무서워지라고 제안했던 대상은 혁명·암살만 없으면 임기가 영원한 군주들이다. 무서워도 그럭저럭 먹고살게만 해주면 자신의 안위가 크게 위험스럽진  않을 터다. 그러나 5년 단임 대통령이라면 다르다. 가장 무서웠던 전두환·박정희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모두 마지막이 불운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운은 또 어떨까.   마키아벨리가 자기 해답이 좀 과하다 싶었던지 사족을 붙여놓았다. “그러나 통치자는 사람들에게 단 한 번 해를 가해야지 이를 매일 반복해선 안 된다. 무서움의 강도(强度)란 건 계속 커져 가기 마련이다. 가혹함은 단 한 번 단호할 때만 제대로 쓰인 것이다.”   대통령도 자기의 길이 있을 터다. 자신보다 나라를 우선하는 원칙 위의 두려움이라면 택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이 늘 반복되는 두려움만은 아니기를 기대해 본다. 그 모든 것의 역사적 책임 역시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참 어렵긴 하다. 사랑이냐, 두려움이냐. 최훈 주필

    2022.12.20 01:05

  • [이하경 칼럼] 마상(馬上)의 절대자는 민심을 품을 수 없다

    이하경 대기자 요즘 중국인들은 장쩌민 주석 시대에 누렸던 표현의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다. 두 주일 전 타계한 장쩌민은 재임 중이던 1997년 11월 1일 하버드대에서 유창한 영어로 연설했다. 샌더스홀 밖에서는 “일당독재 물러가라” “장쩌민 돌아가라”라는 함성과 야유가 들려왔다. 〈뉴스위크〉 기자가 “시위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밖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하는 것뿐이다.” 청중들은 뜻밖의 유머에 웃음을 터뜨렸고, 관대함에 매료됐다. 세계가 중국의 친구가 됐다.     ■  「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출발선 한국, 미국과 같고 중국과 다르다 대통령은 ‘핵관’ 교언영색 경계를 불편한 진실 수용해야 민심 얻어 」    지난달 중국에서는 ‘백지혁명’ 시위가 벌어졌다. ‘바나나껍질 새우 이끼’라는 구호가 있었다. 발음으로는 ‘시진핑 하야’였다. 검열과 단속을 피하기 위한 풍자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황제가 벌거벗고 있음을 모두가 알게 됐다”고 했다. 14억 중국인들은 저 넓은 세계의 자유를 알고 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가 실종된 시진핑 체제의 퇴행에 절망하고 있다.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은 1996년 현직인 장쩌민 주석과 만나 “서방에선 중국의 발전이 세계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중국 위협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발전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세계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장쩌민은 이렇게 세계와 공존하겠다는 열린 사고로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지식인, 노동자·농민뿐 아니라 자본가의 이익까지 대변한다는 파격적인 ‘3개 대표론’을 선포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정당을 유럽식 사회주의 정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한국 재벌체제의 장점을 벤치마킹한 국영기업 통폐합 조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의 결단이 뒤를 이었다. 올해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 중국이 136개로 미국의 124개를 추월한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다.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체제는 불평등 해소를 위한 공동부유론을 내세웠다. 경직된 권위주의로 급선회했고, 국제사회와 불화하고 있다. 양회(兩會)에 참석해 짝퉁 판매업자 엄벌을 촉구했던 알리바바의 마윈 같은 기업가들은 존재감이 전혀 없다.   하지만 민심은 무섭다. “대중은 먹고살 만하면 민주주의를 요구한다”(No Bourgeois, No Democracy)는 배링턴 무어의 경험칙은 여전히 힘이 세다. ‘넥타이 부대’의 가세로 ‘체육관 대통령 시대’를 끝장낸 1987년 6월항쟁의 드라마가 중국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지율 정체에서 벗어나 국정운영 동력을 회복하고 있다. 화물연대 불법 파업에 대한 엄정한 대처로 민심의 호응을 얻은 결과다. 그러나 언론과의 불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MBC 보도가 지나쳤던 것도 사실이지만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 것은 너무 나갔다. 대통령직(presidency)을 존중하지 않은 MBC 기자의 질문 태도도 문제지만 가림막을 설치하고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것도 지나쳤다. 다른 언론들에게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언론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언론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1984년 마오쩌둥주의자 그레고리 존슨이 성조기를 불태웠지만 연방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은 “성조기를 불태웠다고 처벌한다면 성조기가 상징하는 미국의 표현의 자유가 훼손될 것”이라고 했다. 표현의 자유가 미국 민주주의의 대전제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현역 의원 71명이 몰려간 여당 친윤 모임 ‘국민공감’에서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쓴소리를 했다. “(이승만 대통령 몰락 이유는) 아첨하는 집권자들 때문에 장관들 얘기나 국민들 얘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온갖 ‘핵관’들의 교언영색(巧言令色)을 경계하고, 못마땅한 언론이 불쑥불쑥 제기하는 불편한 진실일수록 끝까지 경청해야 한다.   대통령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프루덴차(prudenzia)’, 즉 “정치의 다양한 상황을 이해하고 변화의 기회를 알아챌 수 있게 하는 인식의 힘”(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을 보여줘야 한다. 이게 안 되면 정치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타협의 예술이 아니라 권력을 탐하는 시정잡배의 흥정으로 전락할 것이다.   ‘검투사’ 윤석열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공정과 정의의 화신이었다.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얻었다. 이제는 지상(地上)으로 내려와 범부(凡夫)의 남루한 일상을 어루만져야 한다. 스스로 부처가 되고, 예수가 되어 공생애(公生涯)에 투신해야 한다. 그러면 아부꾼들의 거짓말 대신 민심의 절규만 들릴 것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출발선이다. 권위주의 중국과 확실히 다른 점이다. 권력자에게는 불편하겠지만 권력의 오만과 일탈을 막아준다. 언론과 불화하는 마상의 절대자는 결코 민심을 품을 수 없다. 이하경 대기자

    2022.12.12 00:49

  • [고현곤 칼럼] 대통령, 작은 싸움에서 벗어날 때

    고현곤 편집인 윤석열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중단한 지 보름이 지났다. 논란이 있지만, 대통령 발언을 둘러싼 소모적 정쟁이 줄어든 건 분명하다. 중단 후 2주 동안 대통령 지지율이 33.4%에서 38.9%로 올라간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도어스테핑은 국민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순기능보다 논란을 증폭시키는 역기능이 컸다. 대통령이 실언하고, 반대 진영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흠집을 내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방송사 패널과 유튜버들은 ‘아니면 말고’ 식의 분석을 늘어놓으며 대통령 발언을 확대 재생산했다.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걸 지켜보는 국민은 피곤했다.   대통령이 아침마다 오만 가지 질문을 받는 것부터 아슬아슬했다. 대변인이 해도 될 만한 문답까지 직접 해야 했다. 대통령이 수많은 현안을 모두 꿰뚫고 있을 수는 없다. “언론에 장관들만 보이고 대통령은 안 보인다는 얘기가 나와도 좋다”는 대통령 뜻과도 사뭇 다른 상황이었다. 정상적인 소통이 아니다. MBC와의 돌발 설전은 대통령 입장에선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었다. 언론은 유감을 표했다. ‘도어스테핑도 안 할 거면 용산으로 왜 옮겼느냐’고. 원론적으로는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어설픈 도어스테핑, 곁가지로 흐르는 도어스테핑이 국정 운영과 소통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의문이다.     ■  「 준비 안 된 어설픈 도어스테핑 중단 후 논쟁 줄고 지지율 올라 재개하면 소모적 정쟁 또 늘 것 노동·연금·교육 큰 싸움 집중하길 」    무엇보다 대통령실은 도어스테핑을 제대로 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미국은 기자들이 백악관 탑승장에서 헬기를 타러 오는 대통령에게 짧은 질문을 한다. 대통령이 답변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 이 모든 선택이 대통령의 전략이다. 스치듯 지나가며 답하는 것 같지만, 대변인이나 각 부처와 정교하게 조율한 메시지를 내놓는다. 그 짧은 문답을 위해 참모들이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한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정부의 최종 입장이란 무거운 무게를 갖기 때문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 도어스테핑을 하면 크고 작은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 자신도 도어스테핑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 검사 시절 법조 기자들을 허물없이 대하는 식으론 한계가 있다. 대통령의 표정, 제스처, 어법, 이 모든 게 국가의 메시지다. 그런 면에서 매끄럽지 않았다. 진솔하게 얘기하면 상대방이 선의로 받아들일 것 같지만 세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피터 드러커)   아쉬운 건 감정을 쉽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인사 실패 비판에 대해 “전 정권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고 손가락을 흔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검찰 중용에 대해 “과거엔 민변 출신으로 도배했다”고 응수했다. “선거 때도 지지율은 별로 유념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대통령의 언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직설적, 감정적이었다. “본인에게 맞지 않는 상황에 대해 참지 못하는 성격이 아닌가 싶다”(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는 얘기가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도어스테핑을 재개하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게다가 눈에 불을 켜고 실수하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내심 도어스테핑 중단이 아쉬울 것이다. 탁현민 문재인 정부 의전비서관은 도어스테핑 중단에 대해 “허무한 종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019년 문 대통령 기자회견 당시 경기방송 기자의 돌발 질문을 갖다 붙였다. “청와대는 그것을 이유로 기자회견을 하지 말자거나 그 기자가 예의가 없으니 제재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1년에 고작 두세 차례 기자들을 만났다. 불통 대통령이다. 그를 통 크게 소통한 대통령으로 묘사하는 것은 낯 뜨겁다.   그보다는 대통령의 언어를 쓰지 않다가 실패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미묘한 현안에 쉽게 흥분했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구사해 소모적인 논쟁거리를 만들고, 싸우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곤 언론 탓을 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대통령의 거칠고 역설적인 화법이 국가 운영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기자들의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형식, 격식, 언어 파괴를 통해 변화를 시도했으나 결과는 민심 이반이었다.   윤 대통령은 작은 싸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그는 싸우면서 컸다. 법과 원칙을 앞세운다. 물러서지 않는다. 사과에도 익숙하지 않다. 이런 스타일이 조국·추미애와 싸울 때는 먹혔다. 대통령인 지금은 좀 다르다. 누구와 다투면 같은 급이 된다. MBC와 싸우는 순간 MBC의 맞상대가 된다. 자칫 작은 싸움에 힘을 빼다 큰 것을 놓칠 수 있다.   민주노총 파업에서 드러났듯 굵직한 현안이 널려 있다. 국민은 노동·교육개혁을 누가 어디서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연금개혁은 개편안 마련 시기를 내년 하반기로 잡았다. 그때는 총선 정국이다. 정상적인 논의가 어렵다. 손에 잡히는 규제 개혁과 공공부문 개혁도 보이지 않는다. 저출산과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자유’를 외쳤지만, 국민을 어떻게 자유롭게 할 건지 분명치 않다. 집권 7개월 지나도록 진짜 큰 싸움은 시작도 안 했다. 고현곤 편집인

    2022.12.06 01:12

  • [염재호 칼럼] 다양성 모순의 시대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지금 우리는 다양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20세기에 인류는 경제성장만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달려왔다. 세분화된 전문성과 과학적 관리법을 통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20세기에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발전가치는 인류 전체에 심각한 폐해를 끼쳤다. 대량소비로 쓰레기, 공해, 지구온난화 등 지구생존까지 위협하는 문제를 21세기 인류에게 남겨준 것이다.   인류 문명이 디지털화로 재편되면서 산업시스템이 바뀌었다. 20세기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21세기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변화되었다. 획일적이고 소수가 지배하던 사회가 개별화되고 다양한 사회로 바뀌었다. 지상파 3사가 방송 채널을 독점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종편을 비롯하여 100개가 넘는 채널이 열려 있다. 신문도 한두 가지 종이신문을 구독하던 시대에서 여러 개 신문의 다양한 뉴스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선별해 볼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다. 다문화가정도 크게 늘어 더는 단일민족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어렵게 되었다. 상품도 백화점이나 상점이 아니라 다양한 홈쇼핑이나 온라인 쇼핑을 통해 구매한다. 차이와 다름을 강조하는 다양성의 시대가 된 것이다.     ■  「 다양성 증가와 편향된 팬덤현상 공감능력 상실한 다양성의 모순 다양성 정치화로 부족주의 심화 공감능력 결여로 공동체 몰락 」    가치의 다양성도 확대되고 있다. 원래 사람의 반쪽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던 반려(伴侶)의 개념이 이제는 사랑스러운 놀이의 대상이었던 애완(愛玩)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애완견이라 불리던 것이 반려견이 되어 강아지가 가족의 일원이 되고 있다. 배우자나 자녀 대신 반려견과 반려묘와 생활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결혼 축의금을 받을 수 없는 비혼주의자들이 비혼을 선언하면 비혼 축의금을 주는 문화도 생겼다.   성에 대한 개념도 빠르게 변화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태어날 때 타고나는 남녀 두 가지밖에 없던 생물학적 성별 섹스(sex)에서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성별인 젠더(gender)가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미국에서는 이제 자신의 이름 뒤에 젠더로 성별을 구별하는 he, his, him과 she, her, hers를 적어야 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병원 소아과 의사였다가 보건부 차관보가 된 레이첼 레빈은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아버지이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성 정체성을 밝힌 최초의 고위관료가 되었다. 언론에서도 그를 지칭할 때 she라고 부른다. 성 소수자의 정체성은 레즈비언, 게이뿐 아니라 양성애, 트랜스젠더 등 다양하게 분류되어 최근에는 9개 정도까지 구별된다.   이처럼 기존에는 무시되거나 묻혀 왔던 다양한 가치들이 인정받는 다양성의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다양성이 확대되고 개별적 가치가 존중받는 뉴노멀이 등장하는 반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공감 능력은 퇴보하는 다양성 모순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다양성 가운데 한 가지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다른 다양성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젠더갈등, 세대갈등, 계층갈등, 지역갈등에서 보듯 상대를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심각하게 퇴화하고 있다. 특히 다양성이 정치화될 때 사회는 비판적 판단능력을 상실하고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매도하는 부족정치가 부활하는 것을 보게 된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한다. 특정 이념이나 가치에 함몰된 개인이나 집단이 SNS 등을 통해 사고의 편향적 확대 재생산을 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팬덤 현상으로 비판의식을 상실하고 무조건적인 지지와 환호를 외칠 때 다양성의 가치는 훼손된다. 야수처럼 다른 집단에 대한 적대감과 공격본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우리를 덕후와 같이 좁은 영역의 가치에 몰입할 수 있는 자유도 보장해 주지만 다른 다양성에 대한 무관심과 적대의식을 키우는 동굴 속의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진화생물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공감의 시대』에서 영장류가 다른 동물에 비해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고도의 상호의존성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원래 이기주의의 본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계몽된 이기주의’를 통해 공동체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다름을 인정하는 공감 능력 없이는 공동체는 성장·발전할 수 없다. 상대주의 가치를 강조한 카를 포퍼도 선민사상에 기반을 둔 일방향성 역사주의가 비타협적 급진주의와 전체주의를 야기했다고 한다. 포퍼는 말한다. “우리는 짐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인간으로 남기를 원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열린 사회로의 길이다.” 소수가 즐기는 다양성의 가치뿐 아니라 다수가 유지하는 기존의 가치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다양성의 긍정적인 면이다.   민주주의 위기는 승자독식의 다수결 정치 시스템에 기인한다. 소수 극렬지지층을 동원하여 정치권력을 잡으려는 포퓰리스트의 야심은 공동체를 파멸로 이끌 수밖에 없다. 다양성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포용과 양보 없이 경쟁과 승자독식에 빠질 때 그 공동체는 몰락하게 된다. 지금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2022.11.30 00:58

  • [이하경 칼럼] 사면초가의 이재명 대표가 부활하는 길

    이하경 대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가장 드라마틱한 서사(敍事)를 가진 정치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두 살 때 험한 세상에 던져졌던 소년공(少年工) 출신이다. 가난과 고통·눈물의 시간을 견뎌내고 변호사가 됐고, 성남시장을 거쳐 경기지사로 선출됐다. 공약 이행률 1위의 일 잘하는 도지사였다. 정권교체론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24만 표 차로 추격했다.   후보 때는 기본소득·기본주택 등 기본 시리즈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대표가 되자 ‘기본사회’를 화두로 던졌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 조건을 보장하자는 ‘보편적 복지’ 담론이다. 기득권층에 유리하게 설계된 한국 사회의 균형을 잡아 주는 평형수 역할을 할 것이다. 변방에서 출발한 흙수저지만 실력자에게 굽실거리면서 권력의 곁불을 쬔 적이 없다. 반사체(反射體)가 아닌 발광체(發光體)임을 쉴 새 없이 입증해 단숨에 중앙정치의 핵심에 진입했다.     ■  「 특권에 기댄 방탄은 민심과 충돌 당 진로와 국정 운영에 리스크 초래 개인 자격으로 결백을 입증해야 사퇴 결단도 극적 반전의 승부수 」    그런 이 대표가 대장동 사건으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를 맞았다. 정권이 바뀌자 ‘눈치 9단’ 개발업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대장동 지분은 이재명의 선거·노후 자금”이라는 폭탄발언까지 나왔다. 당사가 압수수색을 당했고, 측근 정진상·김용은 구속됐다.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해 몸이 수척해졌다. 그가 집권했다면 이런 배신은 없었을 것이다. 승자가 독식하는 세상의 염량세태(炎涼世態)다.   아직 최종적 진실을 알 수 없지만 이 대표는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바(ABBA)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이든, 정치든 “패자는 물러나야 한다(Loser must be away)”는 지혜를 망각한 건 불찰이었다. 그는 불체포 특권을 누리기 위해 연고가 없는 인천 계양구을로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이 있는 총괄선대위원장이었는데도 당 대표에 출마해 당선됐다. 명분 없는 생존형 선택이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참패의 최대 원인은 ‘이재명과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등의 공천 정당성 미흡’(23.2%)이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 대표 일가족은 지금 대장동 사건으로 계좌추적을 당하고 있다. 검찰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날아오면 169석을 가진 민주당은 혼돈에 빠질 것이다. 성남FC 후원금, 쌍방울 뇌물 사건도 대기 중이다. 대표 개인의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체포동의안을 세 번씩이나 부결시키면 여론은 민주당을 집어삼킬 것이다.   이 대표는 “최소한의 유감 표명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내부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5월 안희정이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으로 수사받을 때 “안희정씨는 나의 최측근이 맞다. 오래전부터 나의 동업자이자 동지였다. 나를 위해 일했고 나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부하의 범죄를 “내 책임이오”라고 인정한 것이다. 안희정은 재판의 최후진술에서 “저를 무겁게 벌해 승리자라고 해도 법과 정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 달라”고 했다. 대장동 주역 유동규는 “개발이익이 이재명 측에 갔다”고 하고, 이 대표는 “나도 (유동규를) 믿었다가 배신당했다”고 했다. 노무현· 안희정의 순수함은 보이지 않는다.   이 대표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당을 희생시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피의자’ 야당 대표이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협치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리스크가 고스란히 국가 리스크가 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패배 후 처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세 번째 도전한 대선의 패배가 확정된 1992년 12월 19일 새벽 3시에 깨끗하게 거취를 정리했다. 부인 이희호 여사는 그가 구술한 정계 은퇴 성명을 눈물로 받아 적었다. “저는 또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임을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중략) 저에 대한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고 조용한 시민생활로 돌아가겠습니다.”   반대자들까지 눈물을 흘렸다. 언론은 “정치 거목” “지조의 정치인” “민주화 외길 40년”이라며 아쉬워했다. 김대중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트러블 메이커’에서 ‘영웅’으로 바뀌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김대중을 초대해 “국민들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기여한 업적을 길이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은 의원직을 사퇴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떠났다. 지체 없는 결단은 훗날 정계 복귀와 대권 재도전에 큰 도움이 됐다.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이라면 공당의 정치적 자원을 사용(私用)하고, 국정 운영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정치적 직권남용이고 횡령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개인 자격으로 수사받고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 대표직 사퇴도 극적인 반전의 승부수가 될 수 있다. 살아서 돌아온다면 날개를 달고 차기 대통령에 다가서게 된다.   특권에 기대서 자신을 지키려는 것은 소인배의 허망한 시도다.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고 전력질주해 온 ‘발광체’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살고 죽는 것은 스스로에게 달렸다. 승부사 이재명의 지혜로운 결단을 기대한다. 이하경 대기자

    2022.11.28 00:46

  • [최훈 칼럼] 정치의 품격 나라의 품격

    최훈 주필 “갑작스러운 상실은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동시에 앞을 보게 합니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한 반성·논의라면 우리가 잃은 이들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충분히 겸손해야 합니다. 정치적 이해나 점수 따기의 수단, 다음 뉴스 시간의 사소한 기삿거리가 되지 않도록 합시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서로의 말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공감의 본성을 단련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서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희생을 명예롭게 해주는 방식입니다.”   우리 누군가의 이태원 희생에 대한 성찰이 아니다. 11년 전 미 투산 총기난사의 희생자 추도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 연설이다. 총기 규제와 범행 음모를 놓고 격렬히 싸우던 나라의 앞날과 희생자들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사고 25일 째, 정략·면피로 날을 세우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착하게 좀 사세요” “그럼 죄를 짓지 말든지” “암덩어리” “입에서 오물이 튀어나온다” “허접한 잡설 입닫아라”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 “평생 남 뒷조사나 해서 감옥에 처넣은 검사가” “너나 잘하세요”···.   우리 국회의 적나라한 민낯들이다. “행정부조차 전 정권의 알박기 인사가 가득해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게 중진 여당 의원이 전한 민의의 전당이다. 윗물 탓일까. 모두의 상처 보듬어야 할 성직자들까지 가세한다.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고. 섬뜩하다. 찢긴 유족의 가슴 아랑곳 않고 희생자의 이름을 흩뿌린다.     ■  「 분열과 증오 일상화된 사회 윗물인 정치의 탐욕이 진원 함께 추락 국격도 만신창이 공감·통합으로의 회복 절실 」    하루라도 화 안 내면 손해본다. 분노의 금단현상이다. 사회학자들 표현대로 ‘세계 유일의 화병(Hwabyeong)이란 걸 지닌 앵그리 사회’다. 증오의 앙금인 우리의 한 해 고소·고발은 49만 건으로 일본의 50배다. 조국 사태 직후인 2020년 12월엔 정치권의 소송 남발로 월 5만 건을 넘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고였다. 진원? 정치다. 이념·지지정당·빈부·남녀·학력·세대·종교 등 7개 항목의 갈등 체감지수가 모두 1위(영국 킹스칼리지, 2021년 조사)인 세계 선두권의 오명으로 이어져 왔다. 같은 국기, 다른 부족들로 갈리며 ‘국가란 무엇인가’ 의문은 퍼져 간다.   분열의 씨앗, 우리 땅에 많이 뿌려져 왔던 건 사실이다. 전체 반상(班常)의 구도였던 조선은 그 자체가 양극화 사회였다. 식민지 시대 일본은 대한제국 출신의 고위 관리들 중용하며 고의적 갈라놓기를 악화시켰다. 급기야 “인민의 평등”을 유혹한 북한 공산주의와의 분단, 전쟁의 치명적 상처가 내재됐다. 인권침해, 정경유착은 박정희 근대화 속도의 후유증이었다. 늘어난 풍요 속에 힘센 자, 가진 자를 향한 불신도 자라갔다. 산업화 주축과 민주화 세력의 오락가락 쟁투 속에 한 발짝의 전진 없는 통합이었다. 최악의 인사·정책 갈라치기의 문재인 정부부터는 헤어나오기 힘든 갈등의 수렁 속 꼴이다. 나라의 품격도 함께···. 1인 가구, 고립된 개인화의 시대 흐름에 따라 소득·세대·성별·정체성의 등 돌리기도 가속이다. 곳곳이 적대적 공존뿐이다.   그러니 정치의 책임이다. 국가의 품격? 정치의 그것에 비례할 뿐이다. 시대가 여의도와 용산에 요구하는 품격은 공감(共感)이다. 내편으로의 묻지마 공감만이 지금의 우리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이해·존중해 보려는 것이 진정한 공감이다. 스스로 정직해야 가능한 격이다. 또 하나는 정파나 자기보다 국가와 공동체를 우선하려는 통합이다. 헌신, 자기희생을 우선해야 할 터다.   2008년 미 대선후보인 존 매케인에게 한 청중이 “(경쟁 후보인) 아랍인인 오바마를 믿을 수 없다”고 외쳤다. 매케인은 즉각 “아니다. 그는 품위 있는 가정의 시민이다. 단지 나는 근본적 이슈에 대한 의견이 그와 다를 뿐”이라고 꾸짖었다. 반대가 극심했던 이라크 증파안을 지지하면서 “조국이 전쟁에서 지는 것보다 내가 대선에서 지는 게 낫다”고 했다. 그대로 그는 졌다. 매케인의 사후, 언론들은 그러나 “그는 정파보다 국가를 늘 우선했다(He put country over party). 애국이었다”고 기록했다.   기민당의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가장 빛난 장면도 이 지점이다. 그는 2015년 사민당 슈뢰더 전 총리의 자서전 발표회를 직접 찾아갔다. 이색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슈뢰더의 노동·복지 개혁이 독일 경제에 큰 도움을 주었다”며 “현재 국가의 성공은 슈뢰더의 헌신이 뿌리였다”고 평가한다. 혁신적인 하르츠 개혁으로 재집권에 실패한 슈뢰더가 정권을 넘겨줬던 경쟁자는 메르켈이었다. 자신의 후임 총리로 내정된 사민당 숄츠를 자신의 마지막 G20 정상회의에 데려가 타국 정상들과의 소통을 도와줬다. 메르켈의 품격이었다.   품격도 습관이다. 한국 정치 74년, 민주화 35년. 이런 사례를 떠올리기조차 힘들다. 마음속에 믿음이 아로새겨진 공감과 존중, 통합의 기억. 별로 없다. 사람과 사회, 국가의 품격은 결국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부디 후대들이라도 품격 사회의 시민 대접 받도록 해줘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나라의 운명 좀 생각하며 사시라. 정치인들이여. 최훈 주필

    2022.11.22 0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