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찬호의 시선] 법원이 땅에 떨어진 권위를 살릴 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의 '세기의 이혼'소송 1심과 2심이 180도 다른 결과가 나오면서 1심을 맡았던 판사의 행보가 다시금 눈길을 끈다.     2022년 12월 6일 1심에서 최 회장에게 2심의 20분의 1인 위자료(1억)·재산분할(665억원)을 내도록 판결한 김현정 판사는 이듬해 초 사표를 낸 뒤 로펌으로 이직했다. 그러자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당시)은 지난해 2월15일 "(김 판사가) 대형 로펌에 간 건 굉장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SK가 이 로펌에 사건을 의뢰한다면 1심 판결 보은으로 보일 수 있다"고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에게 따졌다. 김 처장은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했다. 법원 최고위 관계자가 의원의 추궁에 '전적으로 동감'한 건 이례적이다. 사법부 스스로도 김 판사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 아니겠는가.     전 전 의원이 지적한대로 김 판사가 이직한 로펌에 SK가 사건을 의뢰하는지 여부와 관련해 SK 측은 "해당 로펌은 전부터 SK가 사건을 맡긴 곳으로, 지난해 의뢰도 예년 수준"이라며 억측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믿겠다. 하지만 "(김 판사 로펌행이) 사실관계를 떠나 모양새 자체가 법원의 신뢰를 깎아내린다"는 전주혜 전 의원의 지적은 여전히 귓전에 맴돈다.   사법부의 권위를 의심하게 만든 사례는 또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3심을 담당한 이흥구 대법관의 동향이다. 그는 조 대표와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로 교지 '피데스'에서 함께 활동하는 등 친분이 깊다고 한다. 조 대표는 저서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에서 "(이 대법관이) 법대 동기로 같이 잘 어울렸다. 정의감이 투철했다"고 썼다. 이 대법관은 2020년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조 대표와 친분이) 회피 사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묘하게도 이 대법관이 속한 대법원 3부에 지난 4월 조 대표 사건이 배당됐다. 하지만 12일 현재까지 대법원에 접수된 회피 신청은 없다고 대법원 관계자가 밝혔다. 그는 "이런 경우는 절차가 까다로운 회피 대신 판결에 빠지는 방식으로 피해 가는 게 대법관들 관행"이라면서도 "이 대법관이 그럴지 말지는 오직 본인에 달렸다"고 했다. 한마디로 3심 선고가 나와야만 그의 처신이 뭐였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선고문에 그의 서명이 있다면 회피 안 한 것이고, 없다면 회피한 것이란 얘기다. 이 대법관 말만 믿고 그의 회피를 기대해온 국민으로선 답답한 노릇이다. 이 때문이라도 대법원은 속히 판결을 내려야 한다. 조 대표가 2심에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은 지 넉 달이 지났다.     이런 마당에 민주당은 사법부에 '테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폭거를 가하고 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 부지사가 1심에서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받자 '판사 선출제'니 '법 왜곡죄'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헌법이 못 박은 삼권 분립을 노골적으로 뒤흔드는 린치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런 반헌법적 행태를 서슴없이 할 수 있게 된 환경은 판사들이 자초한 거나 다름없다. 6개월 안에 1심이 선고돼야 할 이재명 대표 선거법 재판부터 무려 16개월이나 지연한 끝에 담당 판사가 사표를 내버리지 않았나.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니 더욱 얕잡혀보이고, 민주당 입맛에 조금이라도 안 맞는 판결을 내리면 'ㅆㅂ' 문자를 받는 신세가 된 것 아닌가.   이 대표는 검사 사칭 사건에서 위증 교사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고, 그의 캠프 출신 인사 2명도 알리바이 관련 위증 교사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이재명의 장비'로 불렸던 유동규조차 정진상·김용으로부터 "핸드폰 버리라" "쓰레기 먹고 입원하라"는 요구를 받지 않았나. 법원은 이렇게 이 대표 본인부터 주변까지 위증교사나 증거인멸 의혹이 만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오직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신속히 재판을 진행해야만 땅에 떨어진 권위를 회복할 길이 열릴 것이다.     이재명 사법리스크 관련 재판들이 유달리 지연되는 상황에서도 검찰은 1심에서 족족 유죄를 얻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이화영(징역 9년6개월), 김용(5년)등 최측근은 물론 '백현동 로비스트' 김인섭(5년·법정구속)과 김만배( 2년6개월) 최윤길(4년6개월) 등 대장동 연루자들이 줄줄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재명 사법리스크의 윤곽이 밑동부터 뚜렷해지는 형국인데, 정작 이 대표는 대장동 1심 재판만 지난해 3월 22일부터 448일째 받고 있다. 사법부가 스퍼트를 내야 할 이유다. 강찬호 논설위원

    2024.06.13 00:34

  • [주정완의 시선] 미래 세대에 연금 적자 덤터기 안 된다

    주정완 논설위원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사안을 시장에서 콩나물값 흥정하듯이 정할 순 없다. 하마터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될 뻔했다. 지난 21대 국회 막판에 결국 여야 합의에 실패한 연금개혁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당도, 야당도 잘한 건 하나도 없다. 이게 국회의원 임기 마지막 며칠을 남겨놓고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일 일인가. 국회의원들이 임기 4년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게 낭비했다는 자기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22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거대 야당은 다수의 특검법을 밀어붙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연금개혁은 하루가 급하다고 정부·여당을 재촉하던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그토록 연금개혁이 절실한 문제였다면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정해 최우선으로 추진했어야 마땅하지 않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연금개혁을 다시 언급하긴 했지만 특검법 등 정치 현안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  「 청년 목소리 외면한 개혁은 ‘개악’ ‘더 내고 덜 받기’가 유일한 해법 새 연금특위, 젊은 의원 중심 돼야 」    마땅한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야당에 끌려다니는 정부·여당은 더욱 무책임해 보인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알맹이 없는 ‘맹탕’ 개혁안을 던져놓고 국회에 공을 떠넘길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견됐던 상황이다.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도대체 연금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가. 미래 세대의 부담을 늘리기 위해서인가, 줄이기 위해서인가. 설마 미래 세대의 ‘등골’을 빼먹기 위해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래 세대에 천문학적인 연금 적자의 덤터기를 씌워선 안 된다. ‘미래 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역사적 과제다.   현재 국민연금은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바로 적게 내고 많이 받아가는 구조다. “국민연금은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먼저 가입한 사람은 큰 혜택을 보겠지만 나중에 가입한 사람은 시쳇말로 국물도 없을지 모른다. 한국연금학회장을 지낸 이창수 숭실대 교수(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는 “현 연금 제도가 일종의 폰지 게임 같아서 후세대에 계속 부담을 전가한다”며 “어느 시점에서는 미래 세대의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좋든 싫든 연금 문제의 해법은 한 가지 길뿐이다. 더 내고 덜 받기다. 다른 방법은 결과적으로 미래 세대의 부담만 키울 뿐이다. 진정으로 미래 세대를 걱정한다면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말을 함부로 꺼내선 안 된다. 현재도 연금 재정의 부실이 심각한데 미래 세대의 더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성세대에 돈을 더 줘야 하나. 미래의 연금 재정을 제대로 계산이나 해보고 이런 주장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당장은 1~2%포인트 차이가 작아 보여도 수십년간 쌓이면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쪽에선 우리 사회의 노인 빈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문제는 국민연금이 아니라 기초연금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복지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여야 합의 사항이 바로 ‘기초연금 지급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하’였다. 이제 와서 가뜩이나 취약한 연금 재정을 더욱 부실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는 건 곤란하다. 정말 가난한 노인들은 젊을 때 힘들게 사느라 연금 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런 노인에겐 아무리 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여도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연금개혁이 사회적 공감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청년 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는 어쩔 수 없지만, 현재 20~30대의 목소리는 충분히 들을 수 있지 않나. 이들에게 연금 재정이 얼마나 부실한 상태인지 실상을 정확히 알려주고 의견을 물어야 한다. 막연하게 국가가 책임질 것이란 식으로 넘어가는 건 안 된다.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막대한 세금 인상이나 천문학적 국가 부채를 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난 5일 개원한 22대 국회는 조만간 연금특위를 새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최대한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특위를 꾸리길 바란다. 지난 국회의 연금특위에선 위원장을 포함한 절반 이상이 60대였다. 특위 위원 13명 중 30대는 단 한 명도 없었고, 40대도 두 명에 그쳤다. 이래선 청년 세대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 다른 사안은 몰라도 적어도 연금 문제만큼은 청년 세대가 의사 결정의 키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주정완 논설위원

    2024.06.07 00:32

  • [안혜리의 시선]훈련이 아니라 고문이었다

    중대장의 무리한 군기훈련 과정에서 고작 입대 10일 된 훈련병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7일 군사경찰 차량이 사고가 난 해당 부대 위병소를 통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실치사가 아니라 살인이다. ' 군대 간 아이가 자대 배치받은 후론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훈련병 가족 커뮤니티 앱 '더 캠프'를 13개월 만에 다시 열었다가 이런 울분 섞인 포스팅을 여럿 봤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해병대 채 상병 특검' 부결에만 정신이 팔렸는지, 입대 열흘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육군 훈련병의 기막힌 죽음에 대해선 형식적인 추모 메시지 한 줄 달랑 내놓고 관심을 끄다시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앱의 자유게시판은 지금 훈련병을 죽음으로 내몬 해당 중대장(대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 요구와 함께 온통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상적인 훈련 중 발생한 피치 못할 사고가 아니라 고문에 가까운 가혹 행위가 벌어진 정황이 속속 사실로 확인된 탓이다. 게다가 군이 사망한 훈련병과 같이 훈련받은 병사들이 아니라 본인 신상이 밝혀질까 불안을 호소하는 문제의 중대장을 보호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  「 왜 입대 10일만에 죽어야 했나 간부의 '화풀이 대상' 삼은 의혹 시대착오적 병사 학대에 분노 」    지난 26일 밤 육군의 첫 공식 발표는 "훈련병이 군기훈련 중 쓰러져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해 이틀만인 25일 사망했다"며 "군기훈련이 규정과 절차에 맞게 시행됐는지 면밀히 조사 중"이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시각 커뮤니티엔 이미 '(완전군장에) 책을 더 넣어 40㎏ 만들어 메고 뺑뺑이와 얼차려를 시켰고, 다리 인대 근육 다 파열됐는데도 게거품 물고 상태가 악화한 후에야 이송돼 골든타임을 놓쳤다, 소변으로 까만 물이 나왔다'는 구체적 내용이 공유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틀 뒤인 28일 부검 결과, 갑작스런 무리한 운동과 과도한 체온 상승 탓에 근육이 녹아내려 콩팥을 망가뜨리고 까만색 소변을 보는 '횡문근융해증' 소견이 나왔다. 또 이날 육군이 해당 중대장과 부중대장(중위) 2명에 대해 과실치사와 직권남용 가혹 행위 혐의 의견을 붙여 강원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하면서,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은 대체로 사실로 드러났다.    그날의 사고를 복기해보면, 문제의 중대장은 훈련병들이 전날 떠들었다는 이유로 한여름 무더위에 맞먹는 섭씨 27.4도 뙤약볕 날씨에 완전군장 상태로 연병장에서 '선착순 뺑뺑이' 구보와 팔굽혀펴기 등을 쓰러질 때까지 시켰다고 한다. 26.5도만 넘어가도 기초체력이 좋지 않은 신병 훈련에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온도지수별 행동기준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완전군장 구보 금지 등 군기훈련 규정까지 전부 위반했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지난 28일 군기훈련 중 사망한 훈련병 빈소를 조문했다. 연합뉴스 특히 훈련병을 직접 통솔하는 조교나 소대장도 아닌 중대장이 직접 이렇게 가혹한 군기훈련을 시키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 분노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이라면 훈련 기간 내내 훈련병이 중대장을 직접 대면하는 일조차 드물다.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이전 기수에서도 문제의 중대장이 훈련병 괴롭히기로 악명 높았다는 커뮤니티의 증언이 잇따르면서, 그동안 군기훈련을 빙자해 훈련병을 본인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불거지고 있다.    관련 규정이 비록 이번 비극을 막지는 못했지만 이런 특정인의 일탈이 야기하는 무고한 인명피해 등 심각한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군기훈련과 관련해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런 규정이 더 철저하게 지켜졌어야 할 신병훈련소에서 왜 완전히 무력화됐는지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사건의 본질은 아니지만 해당 중대장이 여군인 탓에 기 싸움 차원에서 필요 이상의 가혹 행위를 한 게 아닌지도 꼭 확인해야 한다고 본다.    이와 별개로 우리 사회의 군에 대한 잘못된 인식 역시 이번 기회에 바로잡았으면 한다. 훈련병의 안타까운 사망 사고 소식을 전하는 뉴스 댓글마다 "군의 사기" 운운하며 군기훈련 규정을 어긴 간부가 아니라 오히려 해당 훈련병을 탓하는 글이 넘쳐나는 걸 보면 정말 기가 막히다. 주로 자신을 60대 이상이라 밝힌 이들인데, "군대에서 이런 사고는 늘 있는 것"이라거나 "우리 때는 완전군장에 몇㎞ 뛰는 건 예사로 했는데 고작 이런 훈련으로 죽었다는 건 다 억지""요즘 애들이 약해빠져서 군에서는 일상과도 같은 훈련조차 견딜 수 없게 됐으니 한심하다"고 막말을 한다.    훈련을 빙자해 어린 병사들을 '고문'한 중대장에게는 물론, 이런 중대장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현역으로 입대할 정도로 건강했던 청년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다발성 장기 손상과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극심한 고통 속에 사망했는데, 이게 어떻게 정상적인 훈련인가. 그런 군대에 귀한 아들을 보낼 부모는 없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2024.05.30 00:34

  • '여의도 대통령'님, 나라 밖도 좀 둘러보시죠[장세정의 시선]

    장세정 논설위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외교·안보 분야에서 경험한 비화와 소회를 담은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출간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후폭풍이 거세다. 김정은의 말뿐인 비핵화 약속을 진심인양 철석같이 믿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순진무구한 속내를 책으로 확인하고 아연실색한 국민이 한둘이 아닐 듯하다.   회고록을 내는 바람에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인도 타지마할 외유 의혹이 증폭하고 있다. 문답 형식으로 구성된 회고록에서 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발탁한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이 김 여사의 인도 방문을 굳이 질문에 넣고 문 전 대통령이 상세히 답변한 의도가 궁금하다. 행간을 읽어 보면 아마도 서로 조율한 문답을 통해 윤석열 정부와 김건희 여사를 에둘러 비판하려는 계산이 엿보인다. 2018년 11월 인도 유명 관광지인 타지마할을 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황제가 총애하던 부인을 기리기 위한 묘지로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연합뉴스]  하지만 그런 의도는 빗나간 듯하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김 여사의 인도행을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로 나름 포장했다. 그러나 이는 4억원의 혈세를 낭비한 '단독 외유'이자 '혈세 낭비 단독 관광'이라는 여당의 공격을 초래했다.    ■  「 미·중 경쟁 등으로 국제 정세 요동 이재명 대표, 글로벌 안목 키워야 미국·일본·대만 격변 현장 가보길 」   급기야 문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원장을 역임한 박지원 22대 국회의원 당선자는 "제가 모셨던 이희호 여사(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님이 2002년 5월 유엔 총회 초청을 받아 연설했다"며 '김정숙 여사 첫 단독외교'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회고록은 결국 국민의 궁금증과 의혹만 키웠다. 대통령 1호기를 타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타지마할 행과 관련해 과연 무슨 부적절한 일들이 있었을까. '3김 여사 특검'을 통해서라도 진위를 가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4월 11일 부인 김혜경씨와 함께 인천 계양을 선거구에 나온 모습. [중앙포토]  한국 정치에서 골프와 외국 방문은 종종 뒷말을 낳고 뒤탈이 생긴다. 특히 해외에 나가 골프 치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고 정적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그러나 공금으로 쇠고기를 사 먹지 않는다면, 합법적 절차를 거친 경비 지출이라면, 무엇보다 자기 주머니를 열고 귀한 시간을 투자해 해외 견문을 넓힌다면 해외로 나가는 것을 금기시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장려해야 마땅하다.  불나방처럼 여의도 주변만 맴도는 '내수형 정치인'들에게 가능하면 많이 해외로 나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주목한다. 22대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재선 의원이 된 이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여의도 대통령'이란 말이 회자할까.   그가 정치적 영향력을 특정 이념과 당리당략을 넘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로운 방향으로 쓰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처럼 여의도라는 우물 안에 갇혀 있으면 곤란하다. 미·중 전략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미국 대선 동향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살피고 글로벌 안목을 키워야 한다.  기록을 찾아보니 이 대표가 해외에 나간 횟수는 극히 적었다. 경기도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5년에는 호주·뉴질랜드 출장 중에 호주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대장동 게이트' 수사에서 소환됐다. 2015년과 2016년 성남시장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한 기록이 나온다. 2019년 11월 경기도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기록 이후에는 거의 해외 행차가 안 보인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가 지난 2023년 6월 8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관저 만찬에 초청한 자리에서 미중 패권 대결 문제 등에 대한 중국 측의 입장을 낭독하는 모습. [중앙포토]  이 대표가 앞으로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입법 활동을 하느냐에 국가 운명과 국민의 삶이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막강한 야당 지도자가 된 이 대표가 가능하면 꼭 방문했으면 하는 '가상의 버킷 리스트'를 제안해 본다.   미국 실리콘 밸리를 10년 만에 다시 방문해 세상을 뒤흔드는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의 현주소를 점검하면 좋겠다. 왜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 열풍을 보이는지도 따져볼 계기가 될 것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의 동면에서 깨어나 재시동을 걸고 있는 현장도 놓칠 수 없겠다.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나려는 몸부림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파운드리 세계 1위를 질주하는 대만 TSMC 공장을 찾아가면 "중국에 그냥 셰셰(謝謝·고맙다)하면 된다"고 했던 이 대표 자신의 발언을 되돌아보게 될 거다. 혹시 시간이 더 나면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도 좋겠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자극했다"는 단편적 생각을 재고할 기회가 될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4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영수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총선 이후 입장을 길게 낭독했다. [연합뉴스]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표는 당분간 법정 출석에 집중해야 할 테니 해외를 둘러볼 시간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당사자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지만, 설마 눈치 없는 검찰이 '용산 대통령'도 이제는 무시 못 한다는 '여의도 대통령'을 출국 금지했을까.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2024.05.24 00:27

  • [강찬호의 시선] 용산이 “김 여사 수사 막는다” 의혹 벗으려면

    강찬호 논설위원 법무부가 지난주 초 전격 단행한 검찰 인사 후폭풍이 거세다. 검사장급 검사 정기인사는 통상 8~9월에 한다. 그런데도 굳이 부임 8개월밖에 안 된 검사장들을 대거 교체했다. 하이라이트는 김건희 여사 의혹 수사를 지휘해온 서울중앙지검 송경호 지검장과 1~4차장의 물갈이였다. 법무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사 방탄용 인사 아니냐”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수사 실무자인 1차장 산하 형사1부장(명품백 수수 의혹)과 4차장 산하 반부패2부장(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의 거취도 주목된다. 법무부는 24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두 부장의 유임이나 교체 여부를 정할 예정이라는데, 결정을 서둘러 수사에 차질이 없게 해야 ‘방탄’ 의혹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이다.     ■  「 중앙지검장 교체로 방탄 논란 특검 차단하려면 수사 불가피 검찰 수사에 대승적 협조 필요 」    이원석 총장이 이끄는 검찰은 4·10 총선이 끝난 뒤 여야 가리지 않고 수사의 고삐를 조였다. 이화영 전 경기 부지사의 ‘술판 회유’ 주장에 이 총장이 직접 “법망을 찢으려는 시도”라 공격했고, 타이이스타젯 의혹에 대해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의 금전 거래 정황을 추적하며 속도를 높였다. 한편으론 김 여사의 ‘명품 백’ 수사를 인력 보강과 함께 본격화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개시됐던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이 총장은 넉 달 남은 임기 안에 이재명·조국·문재인 관련 의혹 수사의 성과를 굳히는 한편, 야당의 공세가 거센 김 여사 의혹 수사도 깨끗이 매듭짓고 물러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여당 의석이 112석에서 108석으로 줄어드는 22대 국회에선 야당의 특검 공세가 더욱 거세질 상황도 의식해야 했을 것이다.   법조계에선 김 여사 불기소 전망이 우세하다. 명품백 사건은 김 여사를 벌할 조항이 청탁금지법에 없다. 백을 들이댄 목사가 직무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기에 김 여사는 물론 윤석열 대통령도 법적으로 문제될 여지가 박약하다는 것이다. 도이치모터스 사건도 야권은 ‘김 여사 모녀의 23억원 수익’설을 주장하지만, 계좌를 빌려줬던 인사가 무죄 판결을 받는 등 정황을 보면 혐의를 구성하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문재인 검찰은 진작 김 여사를 기소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여권에선 검찰의 김 여사 수사가 윤석열 정부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히려 여사 관련 논란을 털어내 특검을 차단하고, 야권을 역공할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굳이 용산은 수사가 개시되자마자 검찰 라인을 교체해 민주당의 전유물이던 ‘방탄 의혹’을 스스로 뒤집어썼다. 용산 안팎에서 “검찰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 수사는 소극적이면서 김 여사만 두들긴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해괴하다. 검찰은 지난 2년간 민주당을 역대 어느 검찰보다 매섭게 수사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부터 대장동·백현동·성남FC 게이트 및 위증교사,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해 재판을 삼중으로 받게 하지 않았나. 부인 김혜경 씨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측근인 이화영·정진상·김용도 대북 송금·불법 자금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했다. 또 ‘돈 봉투’ 혐의로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와 윤관석 의원을 구속기소 했고 이성만·임종성·허종식 의원을 줄기소했다. 기동민·이수진 의원을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했고, 임종성 의원을 억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노영민·정의용·서훈·박지원 등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들도 탈북 어민 강제 북송과 서해 공무원 피격 의혹 등과 관련, 기소해 법정에 세운 상태다. 타이이스타젯 사건 역시 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서 모 씨의 벼락출세식 취업과 이상직 전 의원의 공공기관장 임명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수사가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실적은 싹 가린 채 검찰이 김 여사에게만 칼을 겨눈다는 괴담이 용산 안팎에 도는 건 수사에 흠집을 내 주저앉히려는 술수란 비난을 사기 딱 알맞다.   공은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넘겨졌다. 그는 전주지검장 시절 타이이스타젯 수사에 성과를 낸 주역이다. 문 전 대통령 전 사위만 3번을 소환했다. 그런 그가 김 여사 수사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잘 진행될 것”이라 했으니, 국민이 납득할 결과가 기대된다. 그러려면 김 여사 조사가 불가피한데, 본인이 직접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는 게 바람직하다. 사건의 본질이 법 이전에 정치이기 때문이다. 검찰 출석을 계기로 김 여사가 국민 앞에 진정성 있게 전말을 설명하고 사과한다면 민심의 시선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공정하고 엄정하게 잘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용산의 대승적인 수사 협조가 절실하다.     강찬호 논설위원

    2024.05.23 00:34

  • [주정완의 시선] 일본 ‘100년 안심 연금’ 우린 왜 못 하나

    주정완 논설위원 한국은 30년밖에 못 버티는데 일본은 90년이 지나도 끄떡없다. 한국 국민연금과 일본 후생연금의 엇갈린 미래 전망이다. 일본의 미래 세대는 최소한 2115년까지 후생연금에 쌓인 돈이 바닥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막대한 연금 부채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한국의 미래 세대와 대조적이다. 일본에도 다양한 문제는 있지만, 적어도 연금 재정의 안정성이란 측면에선 한국의 완패다.   현재대로 가면 한국 국민연금은 파탄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정부는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한 번씩 하는 계산이다. 이걸 보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 적자로 돌아서고 2055년 완전히 바닥이 난다. 2018년 발표한 제4차 재정계산과 비교하면 기금 고갈 시점은 2년이 빨라졌다. 출산율이 예상보다 더 낮아지거나 경제성장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2055년까지도 못 버틸지 모른다. 그 이후에는 천문학적인 국가 부채를 일으키거나 막대한 세금을 걷는 것 외에 뾰족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  「 한국은 2055년 연금 완전 고갈 일본은 2115년까지도 끄떡없어 연금 재정 안정성, 한국이 완패 」    일본도 5년마다 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공개한다. 2019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2115년까지도 후생연금 적립금은 바닥나지 않는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100년의 재정균형 기간을 설정해 연금을 관리하고 있다. 향후 100년간 연금 지급은 문제없으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보내는 셈이다. 공적연금의 안정적 관리로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건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오는 8월에는 새로운 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일본의 연금 재정이 한국보다 훨씬 안정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한마디로 일본 사람들은 한국보다 ‘훨씬 더 내고 훨씬 덜 받기’ 때문이다.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에 사회적 합의로 이뤄낸 연금개혁이 바탕이 됐다.   일본의 공적연금은 2층 구조로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세부적인 부분은 다르다. 1층은 국민연금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으로 치면 기초연금에 해당한다. 다만 누구 돈으로 연금을 주느냐를 보면 결정적 차이가 있다. 한국 기초연금은 전액 국가 예산으로 충당하지만, 일본은 가입자와 국가가 함께 부담한다. 2층의 후생연금은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한다. 한국과 달리 자영업자를 제외한 급여생활자만 가입 대상이다.   20년 전에는 일본도 후생연금이 골칫덩어리였다. 저출산·고령화와 경제성장률 둔화로 막대한 적자가 예상됐다. 대수술이 시급했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 소속의 사카구치 치카라 후생노동상(한국의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 장관)이 나섰다. 그는 ‘연금 100년 안심 플랜’을 제시하며 연금개혁 논의를 이끌었다. 개혁의 핵심은 ▶연금 보험료율의 단계적 인상 ▶경제 상황에 따라 실질 연금지급액을 삭감하는 자동안정장치 도입이었다.   물론 진통이 없진 않았다. 정부 안에서도 후생노동성과 재무성의 입장이 달랐고, 여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고이즈미 총리는 2004년 2월 각의(국무회의)에서 연금개혁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일본 국민은 적어도 100년간 연금 재정의 고갈을 걱정하지 않게 됐다. 현재 일본 후생연금의 보험료율은 18.3%다. 일본 직장인들은 한국 국민연금 가입자(9%)보다 배 이상 많은 연금 보험료를 낸다는 얘기다.   은퇴 후에도 일본 사람들은 한국보다 연금을 적게 받는다. 일단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2019년 기준 61.7%다. 앞으로 경제 사정이 나빠져도 50% 이상은 보장한다는 계획이다. 얼핏 한국 국민연금(소득대체율 40%)보다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일본의 소득대체율 61.7%는 1층(부부 기준)과 2층(외벌이 직장인 기준)의 연금을 합친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노인 부부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합쳐서 계산했다. 2층에 해당하는 후생연금만 따지면 소득대체율은 25% 수준에 그친다.   만일 일본처럼 100년 뒤에도 연금으로 줄 돈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소득대체율을 얼마든지 올려도 좋다. 하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처럼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재정안정을 중시하는 전문가 모임인 연금연구회는 “현 상황에서 소득대체율을 올리게 되면 우리 자녀, 또 그들의 자녀 세대의 희생이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당장은 1~2%포인트의 차이가 작아 보여도 그게 수십년간 누적되면 엄청난 적자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재원 마련 대책도 없으면서 섣불리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건 미래 세대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주정완 논설위원

    2024.05.17 00:30

  • 시대 뒤처진 리더십 스타일이 위기의 한 축 [김성탁의 시선]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4·10 총선에서 야권이 대승하고 여당이 참패한 이후 부쩍 세대 담론이 거론되고 있다. 영·호남 지역 변수를 고정으로 보고 세대 특성이 향후 선거를 좌우할 것이라는 견해다. 고령화로 인한 산업화 세대의 자연 감소로 보수 성향 유권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반면 산업화 이후 세대는 60대에 접어들었는데 40~50대까지 포함해 진보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젊은 세대가 어떻게 분화할지를 남은 변수로 꼽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의하던 한 졸업생이 경호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하고 있다. 뉴스1  세대론에는 함정이 있다. 다수 집단을 특정 정치 성향으로 묶는 것은 과하다. 2022년 대선 때 간발의 차이였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보면 세대론만으로 선거 경향을 예측하는 것은 무리다. 같은 세대라도 경제적 여건 등이 천차만별이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표를 행사할지 알 수 없다.    국내에서 세대론이 등장한 것은 ‘X세대’부터다. 1970년대 태어나 90년대 대학을 다녔다. 민주화 이후 풍요의 시절을 누렸다. 이들의 대학 시절은 86세대와 달리 시위가 계속 이어지던 때가 아니다. ‘오렌지족’이란 말이 회자할 정도로 가치가 다양화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이런 특성을 가진 세대가 중년이 됐다고 진보든 보수든 하나의 군으로 묶이겠는가. 이후 세대의 스펙트럼은 더 세분화했을 것이다.    여당의 대패는 세대별 표심보다 집권 이후 보여준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가 주원인이다. 물가 불안을 포함해 나아지지 않은 경제적 여건과 깊어진 양극화에 대한 대안 미비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값 폭등으로 민심을 잃은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심판을 부른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 'X세대' 중년층도 개인주의 성향 '입틀막', 검찰 인사 등 과거 회귀 권위주의 리더십은 지지 못 받아 」   한국 현대사는 질곡의 과정이었다. 군사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권위주의와 작별하기를 원했다. 민주화 이후 정부에서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늘 지적돼 온 것이 보여주듯 국가는 물론이고 민간 영역에서도 군림하려 드는 리더의 설 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집권한 동력 중 하나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꼽힌다. 상명하복의 권위적 질서가 남아있는 검찰 내부에서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모습에 대중은 환호했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 보여준 모습 중에는 당시와 다른 면모가 많았다.    대표적인 게 ‘바이든’ ‘날리면’ 논란 발언이다. 미국을 방문한 윤 대통령의 발언이 시빗거리가 됐는데, 정작 놀랐던 표현은 다른 것이었다. 외교부 장관 등 고위직들과 회의장을 나서면서 윤 대통령은 ‘이 새끼들이’라는 말을 썼다. 미국 의회가 아니라 국내 야당을 향한 것이었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었는데, 국가 최고 리더가 고위 공직자들과 저런 표현을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것인가 싶어 실망스러웠다.    윤 대통령은 회의하면 90%가량 주도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적인 모임에서도 들으려 하지 않고 혼자 말하는 좌장이 있다면 리더로 인정받기 어렵다. 양팔을 좌우로 벌려 책상 위에 올려놓고 회의를 주재하는 사진도 종종 전해졌다. 그 자체가 권위적으로 비쳤다.    이미 이명박 정부 때 출신 대학이나 특정 인연 등이 반영됐다는 ‘고소영 인사’가 비판받았는데, 윤 대통령은 학교 선후배 등 인연이 있는 이들을 요직에 기용했다. 화룡점정은 ‘입틀막’이었다. 검색받고 입장하는 대통령 행사에서 발언이 부적절했을지라도 국회의원이 사지를 들려 나갔고, 카이스트 졸업식에선 졸업생이 경호원의 두툼한 손에 입을 틀어 막히는 사진이 외신에까지 보도됐다.    진보·보수를 떠나 국민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를 억눌러선 안 된다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쟁취한 성과물이다. '입틀막'에 윤 대통령이 주의를 줬다면 반복되지 않았을 텐데, 당시 대통령실 경호처 차장이 최근 병무청장에 임명된 것을 보면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최근 검찰 인사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당시 정권이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하려 했을 때 반발했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를 하던 이들을 모두 갈아 치우고 핵심 자리에 측근을 앉혔다. 이원석 검찰총장과 상의했는지도 불투명하다. 수능 킬러 문항 배제를 갑자기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출제기관장이 물러났고, 의대 증원 2000명도 서두른 것 아니냐는 시비에 휩싸여 있다.    시대에 뒤처진 리더십은 금방 표가 난다. 국민이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은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인사와 정책 추진 등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낮추고 경청하는 리더십으로 바뀌지 않으면 지지 회복은 요원하다.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 자산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때다.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2024.05.15 00:32

  • [안혜리의 시선]대통령의 확신, 불안한 복지부

    총선을 앞둔 지난달 1일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 개혁과 관련한 51분의 생방송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근거가 있고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정반대의 소리가 나온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여러분,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하십니까?"   4·10 총선을 코앞에 둔 지난달 1일, 정부가 자초한 의료대란으로 국민적 피로감이 쌓여가던 와중에 갑작스럽게 마련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이렇게 국민 공감으로 포장한 전공의 비판으로 시작했다. 대통령은 이날 생방송 51분의 상당 부분을 의대 증원 2000명과 관련해 갈등을 빚고 있는 의사 집단 비판에 할애했는데, 핵심은 "억울하다"는 거였다. 정부 결정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다양한 의료 단체는 이를 수차례 협의해놓고는 자기 밥그릇 챙기느라 환자 내팽개친 무책임한 의사들이 그런 적 없다며 오히려 정부를 비난하고 있어 직접 국민에게 설명한다는 주장이었다.  관련기사 [안혜리의 시선]기어이 의사의 굴복을 원한다면 "일부에서는 정부가 주먹구구식, 일방적으로 2000명 증원을 결정했다고 비난합니다.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하여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이고,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습니다. …논의가 부족했다는 일부 의료계의 주장은 사실을 왜곡한 것입니다. 의료현안협의체,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와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등 다양한 협의 기구를 통해 37차례에 걸쳐 의사 증원 방안을 협의해 왔습니다. 의사인력전문위원회에서는 무려 9차례에 걸쳐 증원 규모, 의대 정원 확대 '규모'와 의대 교육 역량 등을 논의했습니다. …정부는 확실한 근거를 갖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2000명 의대 정원 증원을 결정했습니다. " (담화 일부)     ■  「 "근거·논의 충분" 대통령 담화 후 법원 자료 요청에 정부 우왕좌왕 쓸데없는 밀실 논란 자초한 측면 」  담화에 앞서 2000명 증원이 결정된 2월, 그러니까 기재부가 예산 배정을 하기도 전부터 이런 정부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알리겠다며 예비비를 미리 끌어다 90억원의 홍보비까지 썼다.    일반 국민은 대부분 그러려니 했겠으나 당사자인 의사 집단과 이를 취재해온 언론은 대통령의 강경한 어조의 담화에 의아했다. 증원 규모를 놓고 이런저런 추측이 나오긴 했지만 2000명이란 파격적인 숫자가 처음 공개된 건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이를 공식 발표한 지난 2월 6일 당일이었기 때문이다. 형식상 발표 1시간 전에 보정심 회의를 거치기는 했다. 하지만 위원들은 사전에 숫자와 근거자료를 공유 받기는커녕 회의에 들어가서야 2000이란 숫자를 처음 봤다고 한다. 보정심 뿐 아니라 의료현안협의체에서도 숫자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었다.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이틀 뒤 '담화문 팩트 체크'를 발간해 대통령 발언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했다면 산출 과정을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복지부와 의료계가 만났지만 '규모' 논의는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증원을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은 나름 그 타당성이 양립할 수도 있으나, 팩트를 놓고 정반대로 엇갈린 정부와 의료계 양측의 주장은 그럴 수 없다. 한쪽은 틀린 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7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복지부는 증원 근거와 관련해 여러 회의록 존재 여부에 대해 또 말을 바꿨다. 연합뉴스 상식적으로 대통령이, 그것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생방송 담화에서 여러 차례 반복하며 강조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믿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난달 30일 의대 교수와 전공의·의대생 등이 낸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심문에서 서울고법이 정부 측에 "10일까지 증원 규모 2000명의 근거 등의 자료를 내면 그다음 주 (가처분 인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을 때 사법부의 지나친 정책 간섭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워낙 자신 있게 "근거가 있고 논의도 충분했다"고 했기에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해 의대 증원 자체에 제동이 걸릴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이젠 모르겠다. 증원과 관련해 대통령이 언급한 4개 회의를 주관한 복지부와 교육부가 동시에 회의록이 있느니 없느니, 회의록 작성이 의무니 아니니 하는 본질과 벗어난 발언을 수시로 번복하면서 2000명 증원 근거에 대한 신뢰를 정부 스스로 갉아먹고 있는 탓이다. 이러다간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 내 논의 과정 없이 대통령실 내 일부 강경파 주도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내려보낸 것"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로 판명 날지 모를 일이다. 이는 비단 의료개혁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가처분 결과를 지금 장담하긴 어렵다. 다만 결정과 무관하게 정부의 자료 제출 시한에 앞서 오늘(9일) 열리는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단순히 "근거가 있고 논의를 했다"는 기존 언급을 넘어 누가 어떤 보고를 했으며 이후 불거진 논란에 대해 어떤 사실 확인 절차를 거쳤는지 명확하게 답했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비선 논란에 시끄러운데, 이런 주요 정책까지 그런 쓸데없는 논란에 휘말릴까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2024.05.09 00:34

  • 탈북 고위 외교관은 왜 '기초수급자'로 살았나 [장세정의 시선]

    장세정 논설위원 2019년 9월 망명한 류현우(51)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탈북민이자 이산가족이다. 평양외국어대에서 아랍어를 전공한 뒤 외무성에 들어가 20년가량 일했다.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금고지기'로 불렸던 전일춘(83) 전 노동당 39호실장의 사위다. 아내와 딸을 데리고 탈북했지만, 일부 가족은 함께 오지 못해 이산의 고통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느낀다.  이산과 실향의 아픔 못지않게 류 전 대사는 문재인 정부 시절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았다고 토로했다. "내가 이 나라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며 수차례 자책했다고 한다. 목숨 걸고 망명한 엘리트 외교관은 왜 대한민국을 원망했을까. "2019년 9월 망명한 이후 문재인 정부의 여러 행태에 심한 분노와 스트레스를 느꼈다"는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 장세정 기자  그에게 직접 들어본 탈북 동기는 의외였다. 북한 외무성의 재외공관 축소 방침에 따라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도 비용 절감을 위해 저렴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신줏단지처럼 챙겼던 김일성·김정일 부자 초상화를 이사 와중에 분실했다. 이 사건 때문에 평양 소환령을 받자 탈북을 결단했다고 한다. 북한 정권의 비인간성과 억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 대사 신변보호 못 받고 2년이상 푸대접   탈북 지식인, 역량 맞게 활용해야 」   탈북을 준비하며 남한 유튜브를 검색했다. 태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무역참사로 일하다 2000년에 탈북한 홍순경(87) 전 북한민주화위원장의 경험담을 담은 유튜브 영상이 큰 도움이 됐다. "대한민국에 가면 각자 역량에 맞게 일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하지만 2019년 9월 대한민국 땅을 밟은 뒤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보 당국의 합동 심문을 3개월간 받은 뒤 탈북민이 사회 적응 훈련을 받는 하나원 입소(3개월)도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사회로 배출됐다. 서훈 국정원장 시절이었다. 2021년 6월 4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서 박지원 국정원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등과 기념촬영 하는 모습. 원훈석을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교체해 논란이 됐다. [청와대]  세 식구에게 약 20평짜리 임대 아파트가 배정되자 담당 경찰관이 다녀간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전일춘의 사위인 만큼 테러에 대비한 신변 보호조치를 제공할 법한데도 그런 배려는 없었다. 법이 정한 정착지원금을 받았지만, 직업이 없다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같았다. 임대아파트 월세와 관리비를 내면 생계가 막막했다. 결국 2020년 2월부터 월 110만원(당시 3인 가족 기준)을 받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뜻 있는 교회가 후원금을 보내줬지만, 가족을 먹여 살릴 호구지책이 필요했다. 2020년에 망명한 조성길(49)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도 문 정부가 푸대접하는 바람에 처지가 비슷했다는 후문이다. 코로나19 시절이라 택배기사로 일하면 돈벌이가 괜찮다는 말을 듣고 알아봤지만, 1종 보통 운전면허 따는 것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2021년 1월 국내 언론에 그의 망명 사실이 처음 보도되고, 그다음 달 미국 CNN 방송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핵무기를 생존의 열쇠라고 믿기 때문에 비핵화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증언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북한에 저자세로 일관해온 문 정부가 류 전 대사의 발언에 화들짝 놀란듯했다. 당시 박지원 국정원장 체제에서 한 당국자가 "활동 좀 같이하자"고 제안했지만, 류 전 대사는 "문 정부에서는 아무 일도 안 하겠다"며 거절했다. 탈북 청년 어민 두 명을 비밀리에 강제 북송했고,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 측에 피살됐는데도 사실을 왜곡하는 행태에 분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2021년 2월 미국 CNN방송과 인터뷰하는 모습. '김정은에겐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취지로 증언하자 문재인 정부 측이 상당히 놀랐던 것같다고 전했다. [방송 캡쳐]  이후에도 류 전 대사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김여정 하명법'(대북전단살포금지법)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북한 사정을 증언했다. "대학생이던 1991년 황해도 농촌에서 한·소 수교 삐라(전단)를 보고 소련이 북한을 배반하고 남한과 수교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체험을 공개했다. "대북 전단을 보내서라도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존중해야 북한 주민의 의식이 바뀌고 북한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역설하자 좌파 인사가 "대북 전단은 남북 평화에 도움이 안 된다"며 반박해 논쟁하기도 했다. 결국 이 법은 2023년 9월 위헌 판정을 받았다.     2020년부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여름까지 2년 반 이상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았다. 정권 교체 이후 정부 산하 연구원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일감이 조금씩 들어오면서 수급자 신세를 겨우 벗었다. 그는 "3만4000명이 넘는 탈북민이 각자 재능·역량에 맞는 일을 하며 대한민국에 기여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신원식(가운데) 국방부 장관이 2023년 10월 11일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대화력전수행본부를 시찰한 자리에서 북한의 도발에 '즉강끝'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하며 장병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방부]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도발하면 '즉·강·끝(즉각·강력히·끝까지)'으로 응징하라고 주문해왔다. 류 전 대사 같은 탈북 지식인을 50만 장병들의 사기 진작과 정신 무장을 위한 정훈 교육에 투입하면 어떨까. 북한 정권의 실상을 정확히 알려주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야 할 이유를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 않을까.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2024.05.06 00:30

  • [강찬호의 시선] 이화영 옥중서신 ‘속편’은 언제 나오나

    강찬호 논설위원 “법원과 검찰을 흔들어 사법 시스템을 공격한다고 있는 죄가 없어지지 않고 죄가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중대 부패 범죄자가 허위 주장으로 사법 시스템을 붕괴하려는 시도입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달 23일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의 ‘검찰 술자리 회유’ 주장에 대해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검찰총장이 특정 사건에 이렇게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2003년 송광수 총장이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려는 노무현 청와대를 향해 “내 목을 쳐라”고 맞섰고, 2005년 김종빈 총장이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반발해 사표를 낸 것 외엔 가장 강도가 높다.     ■  「 총선 직전 “검찰이 술자리로 회유” 장소·일시 오락가락, 음주도 번복 검찰총장 일갈 뒤 민주당은 침묵 」    이화영은 지난달 4일 법정에서 “술도 한 번 먹었던 기억이 있다. 소주였고 얼굴이 벌게져 한참 진정되고 난 다음 귀소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변호인은 “종이컵에 입만 대고 내려놓은 것”이라고 음주 사실을 부인했다. 음주 일시도 지난해 6월 30일로 주장했다가 ‘6월 28일, 7월 3일, 7월 5일 중 7월 3일이 유력’으로 바뀌었고, 음주 장소는 ‘1313호 검사실 앞 창고’에서 ‘검사실 내 영상녹화실’로 바뀌었다. 이화영은 1년 반 넘게 재판받는 동안 ‘술판’ 주장을 꺼낸 적이 없다. 그런데 지난달 4일 결심 공판을 나흘 앞둔 마지막 재판에서 느닷없이 이런 주장을 한 것이다. 4·10 총선을 6일 앞둔 시점인 점도 묘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장의 신빙성부터 따져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총선 엿새 뒤인 지난달 16일 “100% 사실로 보인다”며 ‘국기 문란 사건’으로 규정했다. 민주당은 특별대책단까지 구성하고 수원지검을 항의 방문하며 검찰에 포화를 퍼부었다. 그 의도는 능히 짐작됐다. 오는 6월 7일로 예정된 1심 최종 공판에서 이화영이 유죄 선고를 받으면 이 대표의 기소 가능성도 크게 높아진다. 도 차원에서 부지사가 북한과 큰돈이 오가는 위험한 협상에 나섰다면 지사에게 보고하고 지시받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총선 압승으로 자신감이 붙은 가운데 이화영 유죄 선고를 막기 위해 ‘술자리 회유’ 주장을 띄워봄 직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총장의 발언 다음날부터  민주당에서 ‘이화영’이란 말이 쏙 들어갔다.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재명 대표는 ‘채 상병 특검’ 얘기만 했다. 최고위원들도 ‘채 상병’만 입에 올렸다. 그 이후에도 민주당에선 ‘이화영’ 얘기를 듣기 어렵다. 오히려 조국혁신당에서 이 문제를 입에 올리고 있다. 검찰 출신 법조인의 분석이다.   “민주당은 이원석 총장의 작심 발언에 ‘이건 아닌데’라며 당황했을 거다. 검찰은 이화영 조사에 입회한 변호사와 교도관 38명 전원 등의 진술을 일일이 받고, 출두 기록과 교도관 근무일지 등도 제시하면서 이화영 주장을 족족 반박했다. 반면 이화영 측은 장소·일시 등에서 계속 말이 바뀌더니 음주 여부까지 뒤집었다. ‘회유’ 주장이 공갈로 끝나는 형국이다. 민주당도 더 문제 삼았다가는 ‘이재명과 이화영은 한 몸’이란 인식만 굳어질 것을 우려해 공세를 접었을 거다.”   이화영은 골수 운동권 출신으로 이해찬 전 대표 최측근이고 민주당 국회의원을 한 사람이다. 이런 그에게 술과 연어 접대한다고 회유가 될까? 또 이 전 부지사는 문제의 술자리 일시를 6월 30일이나 7월 3일이라고 했는데, 그는 이미 지난해 6월 9일 “이 지사에게 ‘북한이 방북 비용을 요구하는데 김성태가 처리할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변호인 입회하에 검찰에 진술했다. 이렇게 ‘월척’(이 지사의 연루 정황 진술)을 낚은 검찰이 뭐하러 20일 뒤 진술 조작 회유를 한단 말인가. 요즘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세 번 연속 발부되는 피고인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이화영은 법원이 구속영장을 세 번 발부해줬다.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음을 법원이 인정했기에 ‘3관왕’에 오른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요즘 법조계에선 “이화영의 옥중 서신 ‘속편’은 어디 갔나?”란 말이 떠돈다. 이화영은 지난달 22일 A4 2장 분량의 ‘옥중 서신’을 공개하며 “검찰이 ‘전관 변호사’를 동원해 날 회유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변호사로 지목된 인사가 “사실이 아님을 명확히 밝힌다”는 입장문을 내면서 의혹은 확대되지 못했다. 당시 이화영은 ‘옥중 서신’ 옆에 ‘1’이라고 적어 추가 폭로 가능성을 흘렸다. 그러나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옥중 서신 2’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계속하면 법원의 선고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 않았을까.” 검찰 출신 법조인의 분석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2024.05.02 00:34

  • [주정완의 시선] 청년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

    주정완 논설위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제목의 미국 영화가 있다. 같은 제목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2008년)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랐다. 2024년 대한민국에선 이렇게 바꾸고 싶다. ‘청년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는 말이다. 지난 22일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의 발표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날 시민대표단의 다수안으로 발표한 내용에선 청년 세대에 대한 배려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아서다.   특히 태어난 지 얼마 안 됐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에는 핵폭탄급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천하람 국회의원 당선인(개혁신당)이 “미래 세대 등골을 부러뜨리는 ‘세대 이기주의 개악’”이라고 비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22대 국회에서 흔치 않은 30대 당선인인 그는 “미래 세대에 더 큰 폭탄과 절망을 안겨야 하느냐. 이러다가 미래 세대 자체가 없어질지 모른다”라고 토로했다.     ■  「 공론화위 다수안, 개혁 아닌 개악 17년 전 연금개혁 노무현도 배신 미래 세대의 등골 빼먹기 멈춰야 」    공론화위원회의 다수안이 왜 문제인가. 청년 세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무거운 짐을 떠넘기는 독소 조항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현재 40%에서 50%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듣기 좋은 말로 ‘더 내고 더 받기’라고 했지만 겉포장에 속으면 안 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도대체 소득대체율 40%는 언제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원래 이 비율은 70%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12월 이 비율을 60%로 낮췄다. 당시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외환위기의 충격이 역설적으로 연금개혁의 원동력이 됐다.   그래도 연금 재정의 구조적 적자는 심각했다. 이번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7월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그 결과물이다. 여기엔 소득대체율을 단계적으로 40%까지 낮춘다는 내용을 담았다. 물론 노 전 대통령 혼자 다 했다고 할 순 없다.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의 개혁 의지와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았던 유시민 작가는 이런 회고(『한국 대통령 통치 구술 사료집 5: 노무현 대통령』)를 남겼다. 그는 “법안을 만들어 여당(열린우리당)에 주기 전에 먼저 야당(한나라당)하고 협상한 걸 대통령이 일일이 다 보고받았고, 그래서 백지 위임장을 받고 협상해 나갔다”고 말했다. 물밑 협상에서 법안 통과의 대가로 야당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선 “(노 대통령이) 뭐든지 다 해주겠다고 했다. 뭐든지 다”라며 “(협상이) 막힐 때마다 전 과정에 대통령이 개입했다”고 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성사된 게 2007년 2월 9일 당시 노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여야 영수회담이었다. 유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은) 영수회담이란 말 자체를 봉건적이라 그래서 싫어하셨는데 ‘그래도 여야 영수회담을 해줘야 됩니다. 그쪽에서 원하기 때문에’라고 말씀드렸다”고 회고했다. 이날 영수회담에선 공동 발표문까지 채택했다. 여기엔 “국민연금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고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향의 국민연금 제도 개혁”이란 내용이 들어갔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해 4월 국회 본회의에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올라갔지만 야당 의원들의 주도로 부결됐다. 당시 임채정 국회의장은 부결을 우려하면서 법안 상정을 망설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직접 임 의장에게 전화해 “정부가 책임질 테니 표결에 부쳐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법안 부결의 여파로 유 장관은 사퇴하고 한덕수 총리가 야당과의 협상에 나섰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여야 합의에 이른 게 현재의 소득대체율 40%다. 인제 와서 재원 대책도 없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건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것일 뿐 아니라 이른바 ‘노무현 정신’도 배신하는 것이다.   미래가 암울할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나라도 국민연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던 1980년대 얘기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참모의 보고를 받고 이렇게 질색을 했다고 한다. “국민연금이라니, 나라 말아먹자는 얘기 아니오. 국민연금 하다가는 우리도 영국처럼 망해요.” 과도한 연금 적자로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듣던 영국처럼 되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2020년대 대한민국은 1980년대 영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연금 재정의 부실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나라가 거덜 날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적 성향이나 진영을 떠나 연금 적자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주정완 논설위원

    2024.04.26 00:32

  • [안혜리의 시선]'잘못이 잘못이 아닌' 대통령의 남은 3년

    지난 16일 시민들이 서울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국민은 사과를 기대했지만 윤 대통령은 "국정방향은 옳지만 국민체감이 부족했다"며 변화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연합뉴스 '병식이 전혀 없네. '    여당의 4·10 총선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첫 육성 입장표명 자리였던 지난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 생방송 직후 한 젊은 의사가 SNS에 올린 글이다. 이 포스팅을 보자마자 좀 과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까지 썼는지 묘하게 이해가 가는 구석도 있었다. '병식(病識)의 부재'는 병에 걸렸지만 인지를 못 하거나 아예 부정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의학용어인데, 오죽 답답하면 이런 표현까지 썼을까 싶었다. 대통령이 이번에도 또, 진솔한 사과를 기대한 국민을 배반해 화만 더 돋웠으니 하는 말이다.     ■  「 형식·내용 부적절한 담화 반복 강서 보궐 참패 때도 "웬 호들갑?" 총선 참패 불구 태도 변화 없어 」    지금껏 민심과 어긋난 게 어디 사과의 타이밍뿐인가.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할 때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사회적 합의를 구하기는커녕 정부 내의 공론화 과정조차 없이 대통령 혼자 어느 날 뜬금없이 불쑥 관련 이슈를 꺼내 방침을 지시하곤 했다. 이렇게 나온 대통령 말 한마디로 입시(사교육)·연구 개발(R&D)·의료 등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여러 시스템이 한순간에 초토화되다시피 하는 걸 국민은 무기력하게 목격해야 했다. 취임 후 2년 넘게 지속해온 이같은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의 원인을 놓고 그동안 '김건희 여사의 입김'이라느니 '대통령실 내 특정 강성 문고리 권력의 오판', 혹은 '참모의 무능' 등 여러 해석이 분분했다. 공식적인 보고 라인을 통한 결정과 집행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고들 느꼈기에 나온 반응들이다. 이런 추측을 하다 하다 '병식의 부재'라는 상상력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디올백'으로 상징되는 김건희 여사의 부적절한 처신을 작위적 연출의 KBS 사전 녹화 대담으로 어물쩍 넘기려던 것이나, 출국금지까지 당한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피의자인 전 국방부 장관을 굳이 대사로 임명하고 서둘러 출국시켜 외교적 망신을 자초한 일, 1999나 2001은 절대 안 되고 꼭 2000명이어야만 하는 오로지 대통령만 납득 가능한 의대 증원 수 지침 탓에 단 한 발도 앞으로 못 나가고 교착 상태에 빠져버린 의료대란까지….     잘못은 알지만 고집을 꺾기 싫어하는 성정의 발현이거나, 적당히 버티면 해결될 거라는 오판에서 내린 결정일 거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뭐가 잘못인지에 대한 인식이 국민과 사뭇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특히 정권 초부터 반복되는 인사 참사를 볼 때마다 이런 의구심이 더 강하게 든다.    지난해 10월 12일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뒤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여당은 국민의 경고로 받아들였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생각이 달랐다. 연합뉴스 이번 총선 참패의 예고편과도 같았던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몇 주 뒤 대통령 최측근 중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가 들려준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잠시 복기해보자면 국민의힘 소속 김태우 당시 강서구청장의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 3개월 만에 윤 대통령이 무리하게 특별 사면을 하고, 바로 그 보궐 선거의 귀책 사유자를 다시 강서구청장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하도록 한끝에 결국 17.1% 포인트의 큰 차이로 더불어민주당에 완패했다. 여당의 선거 전략 실패라기보다 측근만 계속 돌려쓰는 윤 대통령 인사의 결정적 실패였다. 언론의 비판이 들끓었던 것은 물론이요, 여당 내에서도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경고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작 그런 민심을 가장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윤 대통령이 선거 다음 날 이 최측근에게 "그깟 구청장 선거 하나 진 걸 갖고 웬 호들갑이냐"고 오히려 타박하더란다.     총선 참패와 관련해 겉으로는 참모를 내세워 비공개 대리 사과를 했지만, 이번에도 속으로는 "웬 호들갑이냐"며 의아해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결코 비약이 아니다. 요직을 검사와 지인으로 돌려막는 인사 스타일까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그런 의심을 할 만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 여당의 총선 열세가 점쳐지던 지난달 말, 윤 대통령이 여론은 아랑곳없이 갑자기 없던 자리를 만들어 본인의 20년 지기인 검찰 수사관 출신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시당위원장을 민생특별보좌관에 임명한 게 대표적이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측이 위성정당 비례대표로 지원한 그를 안정적 당선권 밖 순번에 배치한 데 따른 분풀이 인사였다. 국회의원 자리를 거저 주지 않는다고 대통령 측근이 몽니 부리는 꼴도 볼썽사나운데, 대통령이 이를 만류하는 대신 그 엄중한 시기에 없는 자리까지 만들어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다니 정말 뜨악했다. 특히 정권 초기 주 특보 아들을 대통령실에 불러들여 이미 사적 채용 논란을 일으킨 전력을 고려하면 국민 입장에선 더더욱 해석 불가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3년, 정말 걱정된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2024.04.18 00:30

  • [장세정의 시선]생각을 바꾸면 '나라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4·10 총선 최종 성적표를 받은 정치권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성난 민심이 '검찰 정권'을 심판했다"며 환호하고, 다른 쪽에선 "범죄자들의 국회 입성을 막지 못했다"며 탄식한다. 민심이 홍해처럼 좌우로 쫙 갈라졌으니 앞으로 남은 3년 내내 정쟁이 일상이 되고 국민 통합이 요원해져 분열과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듯해 걱정스럽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일각에서는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방치해 조국혁신당이라는 '기생 정당'의 출현을 못 막았다고 지적하고, 승자독식(勝者獨食)의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지 못해 사표(死票)가 양산됐다고 비판한다. 예컨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전국 254개 지역구의 총투표수는 2923만4129표였는데 민주당이 1475만8083표(50.5%), 국민의힘은 1317만9769표(45.1%)를 득표했다. 양당의 득표율 격차는 5.4%포인트에 불과하지만, 지역구 의석은 민주당 161석, 국민의힘 90석으로 차이는 1.78배나 됐다. 선거 제도를 원망하는 목소리는 일리가 있지만, 버스 지나간 뒤의 뒷북일 뿐이다.   ■  「 총선 참패로 윤 대통령 최대 위기 민심 얻을 과감한 쇄신 인사 필요 민정수석 되살려 정밀 검증해야 」   192석의 범야권은 이빨 빠진 사자를 공격하는 하이에나처럼 윤석열 대통령을 공격할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과 '채상병 특검법' 등으로 정치적 압박을 가할 태세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겠지만, 집권 3년 차에 사실상 레임덕 처지인 대통령으로선 방어가 여의치 않을 듯하다. 22대 국회에 진출할 여당 정치인들이 공천권도 없고 힘도 빠진 대통령을 자기 일처럼 감싸주려 할지 의문이다.    벌써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의 탈동조화(decoupling) 움직임이 감지된다. 안철수(분당갑) 당선자는 "채상병 특검에 찬성한다"면서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하면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김재섭(도봉갑) 당선자는 "김 여사에 대한 여러 문제가 국정 운영에 발목을 잡았다"며 "독소 조항 몇 개를 바꾼다면 특검법을 요구하는 국민 요청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김건희 여사가 서울 서초1동 주민센터에서 20대 대선 사전투표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총선을 포함해 지난 2년의 국정을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많은 문제의 원점은 윤 대통령으로 수렴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사자는 좀 억울하겠지만,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중심제에서는 숙명 같은 것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용산 집무실에 올려놓은 팻말(The Buck Stops Here!)을 거론하며 "모든 책임은 나에게 귀속된다"고 의미를 설명하지 않았던가.  윤 대통령은 야권보다 보수 진영의 비판에 더 섭섭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탄핵당한 보수 세력에 혜성처럼 합류해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용기 있게 태클을 걸고 극적으로 정권을 탈환했는데, 인제 와서 보수세력조차 냉담해진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2022년 대선 승리로 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보수의 채권자'가 됐다면, 크게 지지 않아도 될 총선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이젠 '보수의 채무자'가 된 셈이다. 2022년 3월 10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승리가 확인되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어퍼컷 세리모니를 하며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과거는 과거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은 3년의 미래다. 아마추어 골퍼가 얼떨결에 버디를 잡은 직후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오비를 냈다면, 이제 마지막 남은 홀에서 마음을 다잡아 파세이브라도 하면 성공적일 수 있다. 아직 시간도 기회도 있다.  마무리를 잘하려면 결국 인사를 잘해야 한다. 한덕수 총리가 사의를 밝혔고, 이관섭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들도 대폭 교체될 전망이다. 국무위원 중에도 중폭 이상의 개각설이 나온다. 민감한 인사는 양날의 칼이다. 인사를 잘하면 민심을 크게 얻을 수 있고, 잘못하면 대량 실점한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 보이는 윤 대통령으로선 총선 참패로 어수선한 국정 분위기를 바꿀 마지막 기회가 과감한 쇄신 인사 카드다.  검증을 제대로 못 했거나 오기로 밀어붙이는 인사는 정치적 재앙이나 다름없다.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박순애 교육부 장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등 대표적 인사 실패 사례를 되풀이하면 민심을 완전히 잃어 다음 대선까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혈연·학연·지연·근무연 등으로 잘 아는 주변 인물을 중용하는 인사는 단념하고, 누가 보더라도 유능한 인재를 널리 찾아서 쓰는 것이 답이다. 현행 인사 검증 시스템이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면 꼼꼼한 검증이 가능한 민정수석실을 부활하는 결단을 마다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2022년 12월 13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마련된 국무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 총리는 총선 참패 직후 사의를 밝힌 상태다. [대통령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다. 심기일전해 생각을 바꾸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운명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2024.04.15 00:32

  • [강찬호의 시선] 총선 끝나도 이재명-조국 사법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강찬호 논설위원 1972년 11월 미 대선은 공화당 재선 후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압승이었다. 50개 주중 49개 주를 싹쓸이해 선거인단 537명 중 520명을 독식했다. 적수인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의 고향 사우스다코타까지 차지했다. 맥거번은 충격으로 영국 망명 계획까지 세웠을 만큼 궤멸했다.   반년 전 워싱턴포스트의 특종으로 불거진 ‘워터게이트’는 닉슨 태풍에 묻혀 뉴스 화면에서 사라졌다. 워터게이트가 뭔지조차 모르는 미국인이 50%를 넘었다. 의기양양해진 닉슨 행정부는 “국민이 닉슨의 무고함을 인정한 것”이라며 워싱턴포스트를 ‘매카시즘’이라 맹공했다.     ■  「 조국, 내년 2월 내 3심 선고 전망 이재명도 세 가지 재판 결과 주목 법원, 흔들림 없이 ‘법대로’해야 」    그럼에도 워터게이트에 대한 미 법원의 재판은 흔들림 없이 진행됐다. 닉슨 압승 두 달만인 1973년 1월 존 시리카 연방 판사는 한밤중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한 워터게이트 주범 5명에게 법정 최고형인 30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닉슨 행정부가 권력을 동원해 이들의 입을 막을 것을 꿰뚫어본 강수였다. 경악한 5명은 감형을 받기 위해 “‘윗선’이 도청기 설치를 지시해 침입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장될 뻔했던 워터게이트는 이 판결로 재부상했고, 탄핵 위기에 몰린 닉슨은 1년 반 뒤 사임하고 만다. 시리카 판사는 ‘법정 최고형 존’이란 별명과 함께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대선에 압승한 대통령의 파워에 굴하지 않고 ‘법대로’만 직진한 판사 덕분에 민주주의의 이정표가 된 워터게이트 신화가 탄생한 것이다.   대한민국 야권을 대표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역시 총선 와중에 법원의 재판을 받아왔다. 한데 두 사람을 대하는 법원의 행태를 보면 상식 밖인 경우가 많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고 ‘개딸’의 기세가 등등하니 두 사람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카 판사가 봤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우선 조국 대표는 지난 2월 8일 2심에서 뇌물수수·직권남용 등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는데도 구속되지 않았다. 1·2심 다 실형을 선고받고도 구속을 면하고, 당을 창당해 금배지까지 넘보는 건 일반인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2심 김우수 재판장은 “(조 대표가)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면서도 방어권 보장을 위해 구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3심은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필요가 특별히 없다. 피고인이 불출석한 가운데 그가 낸 상고 이유서를 대법관들이 검토하고 판결을 내리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김 판사야말로 법원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제 국민의 눈은 대법원을 향하고 있다. 1·2심 다 유죄 판단에다 양형까지 같은 만큼 법률심인 3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극히 작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하지만 예상 밖의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3심 확정까지는 길면 1년이 걸릴 전망이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3심 처리에 평균 11.7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대장동 게이트와 선거법 위반, 검사 사칭 위증 교사 혐의 등으로 세 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에게도 법원은 ‘특별 대우’를 해 구설에 올랐다.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부터 논란이었다. 또 선거법 사건은 복잡한 내용도 아닌데도 재판이 16개월이나 늘어진 끝에 재판장이 사표를 내는 바람에 총선 전 1심 선고가 불발됐다. 수사기록이 간단해 8~9월께 1심 선고가 점쳐져 온 위증교사 재판도 지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한다.   법원은 이제라도 두 사람에 대해 오직 법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총선에서 이기건 지건 사법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닉슨에 압승을 안겨준 미국인들은 “FBI(연방수사국)가 워터게이트에 끼어들지 못하게 해”란 닉슨의 말이 녹음된 테이프를 법정에 제출하라는 시리카 판사의 결정을 닉슨이 거부하자 대선 1년도 안 돼 그의 탄핵에 찬성하며 등을 돌렸다. 내가 뽑은 사람이라도 법을 어기거나 법원을 능멸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 미국 유권자나 한국 유권자나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우리 민주당은 워터게이트를 언급하기 좋아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참사’를 비판하며 “워터게이트 닉슨을 거울삼으라”고 한 성명(2022년 10월 2일)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보수 공화당 대통령이 진보 민주당 의회의 탄핵 압박에 굴복해 사임한 사건이기 때문일 터다. 그러나 선거에서 압승한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은 ‘법대로’ 판사가 없었다면 워터게이트는 실현될 수 없었을 것임도 명심해야 한다.     강찬호 논설위원

    2024.04.11 02:16

  • [김성탁의 시선] 선거날, 향후 2년 간 선거 없음이 걱정된다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22대 총선 본 투표 날이다. 선거운동 마지막까지 여야는 열심히 지지를 호소했다. 격전지가 상당히 많다고 하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당 지도부나 지역구 후보들이 자신들을 지지해 달라고 목이 터지라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진작 좀 저렇게 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총선 사전투표율이 역대 총선 중 최고치를 보인 것은 뭔가를 위해 투표장으로 몰려갔다는 의미다. 그 속에 여당 심판 여론이 높을지, 야당 심판 여론이 클지는 까봐야 알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2년 정도에 치러지는 총선인 만큼 집권 세력의 그동안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가 판단 기준의 앞줄에 있을 수밖에 없다.     ■  「 누가 이기든 국회가 현안 풀어야 의대정원 문제부터 특위 꾸리길 의원·단체장 매년 뽑으면 어떨까 」    정부·여당이 아주 잘했을 경우 임기 중반 선거에서 야당이 설 자리는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선 정책 결정이나 집행에 직접 관여할 수 없는 야당이 명함을 내밀기는 쉽지 않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현 정부의 성적표가 좋지 않은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총선 결과가 반드시 여론조사와 일치하라는 법도 없다. 단 한 표라도 많으면 이기는 대통령 선거와 달리 총선은 지역구 의석의 합과 비례대표 확보 수로 결정된다. 막판 지지층 결집 여부에 따라 한쪽으로 쏠릴 수도, 큰 격차가 안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범야권이 이기든, 여당인 국민의힘이 이기든 이번 선거가 끝나면 제발 정치권이 국민 생활과 직결된 현안을 해결했으면 좋겠다. 대표적인 게 의대 정원 증원을 포함한 의료 대란이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자 대형병원까지 진료에 차질이 생기면서 뇌 질환 등 중병이 있는 환자들이 검사나 수술이 줄줄이 연기돼 불안에 떨고 있다. 하지만 해결할 역량이 정부에는 없는 것 같다.   대통령이 2000명 증원을 결정한 이후 의료계의 현실을 알고 있을 법한 관련 부처 고위직들마저 원안 사수에 총대를 메느라 바빴다. 진료 현장을 떠난 의료인들의 처사는 부적절하지만, 의사가 부족하다면서 이미 자격을 가진 의사들의 업무 수행을 막아버리는 전공의 면허 정지 강행 카드를 꺼내 드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대통령의 담화 역시 증원 수를 줄이겠다는 것인지 강행하겠다는 것인지 헷갈렸고, 총리가 나서도 대화체 하나 만들지 못하는 지경이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의대들이 학생들의 집단 유급 사태를 막기 위한 시한에 쫓겨 개강하자 “대학들이 수업을 정상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의실은 썰렁하고 의대생 단체는 “행정적 재개일 뿐”이라고 했다. 실제 현장에선 올해 입학한 예과 1학년생들이 교양과목마저 수강을 중단하고 있다. 현장을 알고도 ‘정상화’라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면 기만이고, 현장을 모른다면 무능한 것이다.   결국 해법을 찾으려면 총선에서 어느 쪽이 다수당이 되든 국회가 나서야 할 것 같다. 연금개혁도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하기 어려워 국회에 특위를 두는데, 언제까지 정부에만 맡겨놓을 건가. 선거 기간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숫자에 얽매이지 않는 협상을 말했고, 이재명 대표도 국회 논의를 거론한 만큼 여야가 당사자인 전공의 등 의료계와 환자 단체, 정부 등을 모아 접점을 찾았으면 한다. 정원만 늘린다고 필수과 기피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견을 포함해 필수 의료 살리기 대책을 제대로 만드는 작업도 국회가 주도하는 게 빠른 길이다.   투표소 대파 반입 금지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심각한 물가와 코로나 이후 심해진 양극화 대책 등 민생 현안도 정부에만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경제부총리나 대통령실 경제팀의 역량이 미치지 못한다면 여당인 국민의힘이 야당과 함께 세제와 재정 운용,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 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 문제까지 머리를 맞대면 좋겠다.   이런 기대를 하면서도 우리 국회가 과연 여야 협력을 할 줄 아는 집단인지 회의를 떨칠 수 없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선거와 오늘 총선이 없었다면 각 정당이 국민 여론에 반응이나 했을까. 정부·여당만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선거 공천을 하면서 여론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고 ‘비명횡사’ 공천을 줄줄이 선보였으니 말이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향후 2년 동안 큰 선거가 없다는 게 걱정된다. 자잘한 보궐선거가 있지만, 2026년 9월 지방선거까지 공백기다. 그때까지 또 민생 현안은 제쳐놓고 쌈박질만 계속할까 겁난다. 그러다 또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이 가까워지면 서로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나설지 모르겠다. 해법 찾는 정치를 이번에도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절반씩 나눠 매년 선거로 뽑는 식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해야 계속 국민 눈치를 볼 것 아닌가.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2024.04.10 00:33

  • [주정완의 시선] 공시가격 널뛰기에 빌라는 대혼란

    주정완 논설위원 정부가 세금을 깎아준다는데 뒤에서 울상 짓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빌라라고 하는 다세대 주택을 보유하고 전세 세입자를 들인 집주인들이다. 세금에서 아낀 돈은 수만원에 불과하지만 경우에 따라 수천만원을 토해 내야 할 수도 있어서다. 세입자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전세 계약이 끝나도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빌라 임대 시장과 주택 공시가격의 상관관계를 알아야 한다.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모양이나 면적·구조 등이 천차만별이다. 부동산 업계 용어로는 개별성이 강하다고 표현한다. 빌라는 매매도 활발하지 않다. 그러니 적정한 실거래가를 따지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값이 전셋값 아래로 내려간 ‘깡통전세’가 속출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  「 주택 재산세는 찔끔 내리겠지만 전세보증 축소에 집주인도 불만 서민 ‘주거 사다리’ 훼손 말아야 」    이럴 때 세입자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했다면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런데 HUG는 지난해 5월 전세보증 가입 한도를 주택 공시가격의 126%로 낮췄다. 예컨대 공시가격 1억원인 빌라가 있다면 1억2600만원까지만 전세 보증에 가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전에는 공시가격의 150%가 한도였다. 이런 기준 변경만으로도 전세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한도가 대폭 줄었다.   공시가격은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를 매길 때 기준이 된다. 따라서 공시가격을 내리면 세금도 내려간다. 빌라 집주인이라면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공시가격 인하로 전세보증 한도가 줄어든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연립주택·빌라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국 평균 18.63% 내렸다. 2022년(17.2% 인상)과 비교하면 극과 극이다.   국토부는 올해 공시가격을 전국 평균 1.52%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올해와 지난해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안심할 수 없다. 통상 전세 계약은 2년 단위로 이뤄진다. 2022년 공시가격이 급등했을 때 이뤄진 전세 계약의 만기가 올해 순차적으로 돌아온다.   빌라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보증 가입을 조건으로 세입자를 들이려면 2년 전보다 훨씬 싸게 내놔야 한다. 이런 집에선 기존 세입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현실에선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 다음에 그 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게 잘 안 되면 집주인과 세입자가 모두 곤란해진다. 전세보증 한도 축소가 집주인과 세입자의 분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물론 일차적인 잘못은 2022년과 그 이전에 공시가격을 과도하게 끌어올린 문재인 정부에 있다. 사실 정권 초기엔 그럴 생각까진 아니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했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신의 책(『부동산과 정치』)에서 이렇게 적었다. “내가 근무했던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보유세 강화에 신중했다. 최대한 덜 시끄럽게, 이른바 ‘로우키’로 공시가격의 점진적 인상을 통해 보유세를 강화하려는 전략이었다.”   ‘점진적 인상’이었던 공시가격의 정책 목표는 어느 순간 ‘대폭 인상’으로 변했다. 국토부가 2020년 11월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다.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주택의 유형이나 가격대와 관계없이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게 해주자는 것”이라고 강변했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수현 전 실장도 “사실상 전 국민의 부동산 세금을 올리겠다고 선포한 셈”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공시가격을 대폭 내린 윤석열 정부에게 무조건 좋은 점수를 주기도 어렵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필요하지만, 너무 한꺼번에 되돌리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현재 빌라 시장에선 “사지도, 살지도, 짓지도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빌라는 매매도 잘 안 되고, 전세도 잘 안 나가고, 새로 짓지도 않으려고 한다는 뜻이다.   어차피 모든 국민이 아파트에 살 수 없다면 빌라는 꼭 필요한 주택 유형이다. 다세대 주택으로만 따져도 서울에 83만 가구, 전국에는 229만 가구가 있다. 법적으로 단독주택으로 분류하는 다가구 주택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특히 가진 돈이 적은 서민층이나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등에게 빌라는 그동안 ‘주거 사다리’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과거 전세 위주였던 빌라 임대 시장은 월세 위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1~2월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신규 임대 거래에서 월세의 비중은 70%를 넘었다. 월세가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월세가 갑자기 늘면 집주인은 집주인 대로, 세입자는 세입자 대로 혼란을 겪게 된다. 서민 주거 사다리에 이상 신호가 나타난 걸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주정완 논설위원

    2024.04.05 00:44

  • [안혜리의 시선]'정치재해' 보상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조국혁신당의 비례대표인 조국 대표(가운데)와 박은정 전 검사(왼쪽),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장(오른쪽). 정치보복을 앞세워 지지율을 얻고 있는데, 이들 모두 당선권이다. 연합뉴스 총선이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 열기가 고조되는 게 아니라 국민의 혈압만 치솟고 있다. 각 당은 요동치는 지지율 그래프를 보면서 차지할 의석수와 그로 인한 정치적 역학관계 계산에 여념이 없겠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제 아예 총선 결과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정확히는, 기대를 접었다.    여야 각 정당의 대진표를 보고 있자면 대략 난감이다. 투표하든 말든, 무슨 당을 선택하든 결국 사리사욕·권력욕에 눈 멀어 자기 당 보스의 아부꾼 노릇을 자청하며 충성 경쟁할 사람만 국회에 가득 채워질 게 뻔해서다. 한마디로 표 줄 곳이 없다. 민생에 눈 감은 사상 최악의 21대 국회를 견디고, 거대 양당의 수준 미달 공천 파동과 저질 막말 경쟁을 겨우 참아냈더니 저 앞에 놓인 게 역대급 퇴행적 국회라니. 게다가 이들이 막대한 국민 세금을 받아가며 반드시 저지르고야 말 온갖 분탕질을 생각하면 화가 나다 못해 총선 이후가 정말 두렵다.    ■  「 표 줄 곳 없는 역대 최악 22대 국회 조국·정치 검사의 보복정치 임박 '정치판 중처법' 도입하고픈 심정 」    안 그런가. 어느 당이 몇 석을 가져가는지와 무관하게 이미 안정적 당선권에 든 각 당 비례대표·지역구 후보의 면면만 봐도 22대 국회에서 펼쳐질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국회에 입성한 정치 검사들의 보복 정치, 패싸움 정치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나라를 두 동강 낸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정치 보복을 내걸고 창당한 조국혁신당은 현재 지지율(22%)대로라면 지역구 한석 없이 무려 12석을 확보한다. 비례대표 명단엔 2심 징역 2년을 받은 조 전 장관 본인(2번)은 물론 '윤석열 찍어내기 감찰'로 해임된 박은정 전 부장 검사(1번), 울산시장 선거 개입으로 1심에서 징역형 받은 검수완박 주역 황운하 의원(8번) 등이 포함돼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탄 국회 운영에 지칠 대로 지쳤는데 아예 복수심에 사로잡힌 범죄자들이 모인 이 기묘한 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어떤 난장을 벌일지 벌써 한숨만 나온다. 내놓겠다는 1호 법안이 '한동훈 특검법'이니 할 말 다했다. 여기에 현직 검사 신분으로 조국 북 콘서트에 등장해 윤석열 정부 비판을 쏟아냈던 이성윤 전주시을 후보 등 민주당의 친문 검사 출신 4인까지 가세하면 정말 목불인견이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법원 허락없이 본인 재판은 불출석한채 원창묵, 송기헌 후보와 함께 원주 중앙시장을 방문했다. 22대 국회는 21대보다 더한 방탄 국회가 될 전망이다. 뉴스1 지난 2019년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공정과 정의를 다시 세우고, 내로남불을 일삼는 위선적 인물을 정치권에서 솎아내는 계기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민심의 심판과 사법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인물들이 기존의 몰상식에 더해 몰염치까지 장착하고 막강한 입법 권력을 쥐게 되다니 기가 막히다.    여기엔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당인 국민의힘의 책임이 적지 않다. 표 갈 곳 없다는 고민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콘크리트 보수층마저 선뜻 찍기를 저어할 만큼 오만한 국정 운영이 이어지는데 당은 대통령 눈치 보느라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공천이라도 잘했으면 어느 정도 만회했겠지만 이마저도 혁신과는 거리가 먼 구태 그 자체였다.    명분 없는 의원 꿔주기로 탄생시킨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부실 검증 논란에 한 차례 대대적 조정을 했는데도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동교동계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조카인 한지아 비대위원(11번), 그리고 조정 끝에 13번에서 당선권(16석) 밖(21번)으로 밀리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 법무비서관 강훈 변호사의 딸인 강세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을 공천해 불필요한 '(큰)아빠 찬스' 논란을 만들었다. 이러니 정치적 자신이라고는 후광밖에 보이지 않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인 곽상언 민주당 종로 후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그렇게 기회의 공정을 요구해왔는데 22대 국회는 여야가 합심해 세습 권력의 힘만 보여주게 될 판이다.    지역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의힘은 당초 약속과 달리 현역 85%에 공천을 몰아줬다. 그 과정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마구잡이 돌려막기 공천을 했다. 이러니 '비명횡사'(친이재명 아니면 공천에서 살아남지 못함)로 벼락공천돼 본인 지역구 투표권조차 없는 한민수 민주당 강북을 후보의 흠을 부각하지도 못한다.    이런 의문이 든다. 민생 법안은 외면하고 맹목적 추종이거나 발목잡기만 일삼는 국회의원이 왜 필요한가. 무엇보다 국민은 왜 이걸 지켜보느라 스트레스받아야 하나. 이쯤 되면 웬만한 산업재해는 저리 가라 할만한 '정치재해'를 온 국민이 겪는 셈인데, 정치판 중대재해 처벌법이라도 만들어 수준 미달 정치인들이 국민 뒷목 잡게 할 때마다 당 대표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의 벌금을 물렸으면 좋겠다. 아니면 선거 치를 돈으로 국민에게 정치재해 보험금이라도 주든가. 너무 답답하니 이런 헛된 망상까지 든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2024.03.28 00:28

  • [장세정의 시선] 북한 도발보다 더 불안한 것은…

    장세정 논설위원 지난 22일은 제9회 '서해수호의 날'이었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도발, 같은 해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에서 청년 군인 '55 용사'가 산화했다. 국민과 함께 영웅을 추모하고 안보의식을 북돋우며 국토 수호 결의를 다지기 위해 2016년부터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정부기념일로 지정해 기리고 있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올해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감행한다면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군통수권자의 엄중한 경고를 북한은 흘려들을 공산이 커 보인다. 한·미 동맹과 유엔군사령부 회원국들이 참여해 4~14일 실시한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훈련 기간에 북한은 맞대응 훈련을 해왔다.    ■  「 대남 국지도발 우려 상존하는데 안보에 역행하는 언행 정상인가 '반 헌법 세력'은 투표로 여과를  」  김정은이 6일 군부대에서 소총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도발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노동신문 뉴스1]  특히 지난 18일에는 전술핵탄두 ‘화산-31’을 장착할 수 있는 초대형 방사포(KN-25 단거리 탄도미사일)를 여섯 발 쏜 현장에서 김정은은 "파괴적인 공격 수단들이 상시 적의 수도와 군사력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는 완비된 태세"를 주문했다. 연초에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라고 선언하더니 대남 도발 협박과 무력 적화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막강한 군사력, 북한보다 60배나 강한 대한민국의 경제력 등을 고려하면 북한의 전면전 도발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북한의 과거 행태를 돌아보면 국지 도발 가능성은 상존해도, 봉건 세습 독재 정권의 종말을 재촉할 전면 남침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2013년 9월 당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소리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런데 온갖 기이한 수사법을 동원한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 협박보다 한국 사회를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다. 우리 내부 질서를 교란하고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행태들이다. 과거에는 극소수였지만, 지금은 사회 전반에 편향된 이념의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이석기 의원은 이듬해 터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고, 2014년에는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심판으로 통합진보당이 해체됐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 상위 순번에 ‘통진당 후신’이란 의혹을 받는 진보당 추천 후보가 3명이나 포함돼 찬반 논란이 뜨겁다. 2020년 5월 29일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국회에서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횡령 등 제기된 여러 비리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2심에서도 유죄를 선고 받았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공천으로 21대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 의원이 지난 4년간 보여준 언행도 대한민국 국회의원인지 의구심이 든다. 지난 1월엔 의원회관에서 친북 성향 인사들을 모아 놓고 남북 관계 토론회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북한이 전쟁으로라도 통일을 결심한 이상 우리도 그 방향에 맞춰야 한다"고 발언해 충격을 줬다. 지난 13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윤 의원은 "전쟁 연습은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군사적 충돌을 부를 수 있는 적대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방어 차원에서 진행한 한·미 연례 군사 훈련을 비난해온 북한의 대남 공격 메시지를 국회의원이 앵무새처럼 떠든다면 정상적 언행인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 8일 황운하 의원의 입당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조 대표는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고, 황 의원은 울산시장 선거 관련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은 상태에서 항소심이 진행중이다.[뉴스1]  2019년 9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한 조국 씨는 비례위성정당이 가능해진 선거법의 틈새를 활용해 정당을 만들고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사문서위조, 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업무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도 피해자인 것처럼 큰소리치고 있다. 출마는 자유라지만, 후안무치에 눈 감으면 우리 사회의 법과 도덕은 또 흔들린다.  2015년 8월 4일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매설한 목함 지뢰가 폭발해 하재헌·김정원 하사가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청년 군인의 고통을 위로해줘야 할 정당은 '목발 경품'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정봉주 전 의원에게 공천장을 줬다가 뒤늦게 취소했다. 운동권 세력이 북한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호국 정신을 얼마나 가볍게 보는지 짐작 가능한 장면이다. 정봉주 전 의원이 지난해 1월 31일 국회 행사장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2일 후보등록이 마감되면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됐다. 단순히 의원 300명을 새로 뽑는 이벤트로 끝내서는 안 된다. 유권자로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안에서 흔들고 헌법 가치를 망가뜨리는 세력은 걸러내야 한다. 그래야 자유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무다. 마침 오는 26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태어난 날이다. 그가 이 땅에 전수하고 뿌리내린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2024.03.25 00:47

  • [강찬호의 시선] 여당이 매달릴 건 민심뿐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요즘 수도권에서 유세하는 국민의힘 총선 후보들은 40대 유권자만 보면 철렁한다. “너희 안 찍는다”는 적의에 찬 표정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50대도 절반은 비슷하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20대 남성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날 선 표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4·10 총선이 4년 전 총선과 판박이가 될 공산이 높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석권하고 미래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103석에 그쳐 사상 최악의 참패를 한 그때와 민심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게 국민의힘 후보들의 전언이다. 19일 자정께 지역구를 종일 돌고 귀가한 수도권 여당 현역 의원 후보에게 전화했다.     ■  「 수도권 분위기 싸늘, 여 후보 긴장 독선 이미지 대통령실도 리스크 “의정갈등 피로감…타협점 찾아야” 」    돌아다녀 보니 어떤가. “민심 이반이 정말 심해…. 이 기조로 가면 4년 전 총선처럼 민주당이 180석, 어쩌면 그 이상 먹을 수도 있다.”   민주당도 악재(이재명 사천 파동)가 있지 않나. “유권자들은 거기(민주당)보다 우리(여당)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보더라. 비명 탈당파들이 무소속 출마하면 민주당 표 갉아먹을 것 아니냐고? 많이 못 먹어. 유권자들, 그쪽에 관심 없더라.”   “야당보다 여당에 더 문제가 있다면 그 핵심이 뭐냐”고 캐물었다. “대통령실”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이다. “거리에서 만난 이들에게 피부로 느끼는 가장 심각한 게, 대통령 욕하는 거다. ‘반드시 심판하겠다’는데 섬뜩하더라. 황상무 막말도 문제지만, 이종섭 도피 논란이 크더라. 대사 부임을 도피성 출국으로 규정한 민주당 덫에 완벽히 걸려들었다. 채 상병의 순직을 안타까이 여기는 민심에 불을 붙인 측면도 있다. 조국 신당의 약진도 의외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데 악재임은 분명하다.”   여론조사에 정통한 여권 관계자도 “최근 여당 지지율이 올랐다가 떨어진 건 민주당 공천 파동으로 인한 착시 현상이 걷히면서 정권심판론이 재부상한 때문이라 보면 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열흘 전 민주당을 10%포인트 넘게 따돌리며 피크에 올랐을 때조차 승리 가능한 지역구의 최대치는 135곳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구 의석 254석의 근 절반인 122석이 걸린 수도권 인구 구성이 여당에 워낙 불리하기 때문이다. 30·40세대가 많아졌는데 40대는 워낙 반(反)여당 성향이 강하다. 20·30대는 반여당 성향이 덜하지만, 40대처럼 정치 고관여층이 아닌 데다 여성들은 세대 불문하고 야 당 지지층이 두배 많단다. 그나마 20·30대 남성들이 여야를 반반씩 지지하니까, 이준석 전 대표가 여성을 포기하고 이 세대 남성들에 접근하는 갈라치기 전법을 써서 마케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당은 여성 표심에선 더 멀어졌고, 남성들도 채 상병 수사 외압 논란 등 지난 2년간 정부의 헛발질로 인해 정권에 등 돌린 이들이 늘면서 여당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5차례 총선에서 보수정당이 이명박 대통령 집권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 빼곤 다 참패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럼 국민의힘에겐 패배밖에 남은 길이 없을까. “아니다”라고 이 전문가는 말했다. “야당도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등 중도층이 싫어하는 악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결국 누가 더 민심을 따르고, 누가 덜 더럽냐는 경쟁에서 민심을 붙잡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총선 패배 시 대통령 탄핵 리스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국민의힘에게 이보다 더 절박한 충고는 없다.   대통령실이 황상무 수석 사퇴와 이종섭 대사 귀국을 결단한 20일 낮. 서울 강북권의 국민의힘 후보에게 “분위기 어떤가”하고 물어보았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어제까지 ‘황상무 사퇴 안 시키면 너희 다 죽어’라고 소리치던 분들 표정이 달라졌다. ‘그거라도 해 다행이다’며 손을 잡아주더라. 물가도 너무 올라 걱정했는데 정부가 나서니까 반전이 생기더라. 나흘 전쯤 민주당이 내 지역구 사무실 앞에 ‘사과 한 개 5000원!’이란 현수막을 붙였는데, 오늘 떼버리더라. 사괏값이 조금 떨어지니까 할 말이 없어진 거다.”   민심은 권력 하기에 달렸다. 무시하고 버티면 철퇴를 내리지만, 존중하고 껴안으면 따스한 손길을 내민다. 그 점에서 여당이 특히 명심할 것이 있다. 장기화한 의료대란으로 인한 국민 불안 해소다. 필자가 인터뷰한 여당 후보 4명은 입 모아 말했다.   “대통령이 의사 늘리는 데는 다들 찬성한다. 그런데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너무 오래 끈다는 피로감, 동네 의원도 못 가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크다고 만나는 유권자마다 아우성이다. 이제는 타협해 정부도 의료계도 윈윈하는 결과를 내기 바란다.” 강찬호 논설위원

    2024.03.21 00:28

  • [주정완의 시선] “국민연금 신·구 분리” KDI 처방 검토해볼 만

    주정완 논설위원 여기 마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식당에선 65세 이상 노인에게 밥을 나눠준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젊을 때 적어도 10년간 밥값을 쌓아둔 사람만 밥 먹을 자격이 있다. 65세 이상이라고 다 같은 밥을 주는 것도 아니다. 젊을 때 낸 밥값에 따라 손님을 차별한다. 밥값을 많이 낸 사람은 푸짐하게, 적게 낸 사람은 조금만 밥을 떠준다.   그런데 이 식당은 근본적 결함을 안고 있다. 손님이 낸 밥값보다 비싼 음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밥을 많이 팔수록 이윤은커녕 손해를 본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잠재 부실이 엄청나다. 이런 식이면 언젠가 식당이 망할 수밖에 없다. 마을 젊은이들은 걱정이 앞선다. 밥 한번 먹어보지 못하고 밥값으로 쌓아둔 돈만 날릴지 몰라서다.     ■  「 2055년 완전 고갈은 예고된 재앙 기존연금은 세금으로 지원하되 새 연금은 낸 만큼 받아가게끔 」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를 식당에 비유하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당장은 멀쩡하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현재대로 가면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에 완전히 바닥난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다. 1990년생이 노령연금을 받을 65세가 되면 연금 기금이 한 푼도 남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나 국회나 정치적 부담이 큰 연금개혁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얼마 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두 가지 대안을 냈지만, 내용은 실망스럽다. 하나는 더 내고 더 받기, 다른 하나는 더 내고 그대로 받기다. 둘 다 연금 고갈의 시기를 잠시 늦추는 ‘땜질 처방’일 뿐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손님이 낸 밥값보다 비싼 음식을 제공한다는 문제의 핵심은 여전하다. 오히려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더욱 키우는 ‘독소 조항’까지 들어갔다.   대안은 없을까.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제안에 눈길이 간다. 현재 단일 체계인 국민연금을 둘로 나누는 게 제안의 핵심이다. 식당으로 치면 기존 식당과 새 식당의 둘로 쪼개자는 얘기다. 기존 식당은 어쩔 수 없더라도 새 식당은 운영 체계를 완전히 뜯어고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연금개혁 논의의 틀을 뛰어넘는 신선한 발상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기존 식당(기존 연금)에선 이미 손님에게 약속한 대로 밥을 준다. 이렇게 하면 막대한 적자를 피할 수 없다. 올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609조원이다. 시간을 끌수록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 돈은 전액 국가 재정으로 메운다. 약속을 지키면서도 식당이 망하지 않으려면 이 방법뿐이다.   새 식당(새 연금)에선 손님이 밥값을 낸 만큼만 밥을 준다. 100만원을 낸 사람이라면 원금 100만원에 수익금을 더한 만큼만 돌려받는 식이다. 전문용어로 하면 기대 수익비가 1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신승룡 KDI 부연구위원은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이 높으면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대 수익비 1도 그렇게 나쁜 숫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얼핏 그럴듯하지만 쉬운 길이 아니다.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우선 세대 간 불평등이다. 같은 밥값을 냈더라도 손님이 속한 세대에 따라 식당의 밥이 달라진다. 먼저 태어난 세대는 좋은 밥을 먹겠지만, 나중에 태어난 세대는 그렇지 않다. 출생연도가 늦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감수하는 건 공평하지 않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600조원 넘는 잠재 부실을 메우는 데 들어갈 돈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도 문제다. 최근 저성장 흐름을 고려하면 세금을 대폭 올리긴 어렵다. 대규모 적자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결국 미래 세대에게 막대한 빚을 떠넘기는 셈이다.   세대 내 불평등도 고민해 봐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다. 밥값을 많이 낸 사람의 몫을 일부 덜어내 적게 낸 사람에게 나눠준다. 그런데 새 식당이 밥값만큼만 밥을 준다면 소득재분배가 어렵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사회보험인 국민연금과 민간 저축상품이 뭐가 다르냐는 말이 나올 것이다.   어쨌든 연금 재정의 안정은 KDI 제안의 최대 장점이다. 일정한 한계는 있지만 그냥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기존에 밥값을 낸 사람들은 약속받은 밥을 먹는다. 국가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를 줄 수 있다. 새로 밥값을 내는 사람들은 그 돈을 못 받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강구 KDI 연구위원은 “젊은 세대의 동의를 받으려면 적어도 낸 만큼은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꼭 이대로 하자는 건 아니지만 사실상 겉돌고 있는 연금개혁 논의에 전향적 발상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주정완 논설위원

    2024.03.14 00:30

  • [안혜리의 시선]기어이 의사의 굴복을 원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의사를 향한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6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불법 집단행동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의사들은 "국민 생명을 볼모로 잡는 건 정부"라며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의대 교수가 잇따라 사직 의사를 밝혔다. 경북의대 이식혈관외과 윤우성 교수와 충북의대 심장내과 배대환 교수다. 두 사람 모두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주요 명분으로 삼는 부족한 지역 필수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핵심 인재들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공개적으로 사직 의사를 밝힌 날은 윤 대통령이 경북대에서 열린 16번째 민생 토론회에서 "지역 기반 명문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좋은 의사를 길러내겠다, 대구를 비롯한 지방에서 그 혜택을 더 확실히 누리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당일이었다.    윤 교수는 "외과가, (신장이식 등 혈관질환을 다루는) 이식혈관외과가 필수과라면 그 현장에 있는 우리에게 왜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걸 짊어진 전공의 뒤에 (교수가) 숨는 현실이 부끄럽다"며 사직했다. 배 교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  「 10년 뒤 의사 1만명 늘리겠다고 의사 8000명 면허 취소 옳은가 이미 접어든 필수의료 붕괴의 길 」  젊은 교수들의 사직 소식에 언론은 "수억 원 버는 배부르고 선민의식 가득한 엘리트 의사들의 밥그릇 투쟁에 교수까지 합류했다"는 식으로 비판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사직은 파국으로 치닫는 작금의 의·정 갈등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출발은 지역의료·필수의료 살리기와 고령화하는 의사집단에 새 피 수혈하기였다. 그런데 그 명분이 사라진 건 이미 오래고, 처벌 만능 검사 정부의 의사 군기 잡기로 변질해 가뜩이나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만 의료현장을 떠나게 만들었기에 하는 말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에 반발해 가장 먼저 현장을 떠난 건, 수억 원 버는 성형외과·피부과 개업의들이 아니다.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누려온 의대 교수도 아니다. 정부가 진작에 해결했어야 할 비정상적인 원가 이하 의료수가 구조 탓에 저임으로 중노동을 견뎌온 각 종합병원의 가장 약한 고리인 필수의료 전공의들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원가 이하로 물건을 팔아 계속 적자를 보는 어떤 회사가 비용을 줄여보겠다고 직원 40%를 저임의 수습사원으로 채워놓고는 연속 36시간 잠도 못 잘 만큼의 엄청난 노동강도를 강요해온 것과 같다. 이런 회사에 더는 미래가 없다고 전부 사표를 던졌더니, 사측이 이건 사표가 아닌 불법 파업이라며 사표는 수리할 수 없으니 무조건 근무하라고 윽박지르다 못해 여길 나가면 아무 데도 취직 못 하게 불이익 주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윤 교수가 "모든 걸 짊어진 전공의 뒤에 숨어 부끄럽다"고 한 이유다.    결코 비약이 아니다. 가령 의료진 12명이 투입돼 평균 14~15시간 하는 '고혈류 뇌혈관 우회수술'의 수가는 237만 5000원이다. 수가를 적용받지 않는 성형외과 코 수술보다 훨씬 싸다. 또 '뇌동맥류 결찰술' 수가는 250만원인데, 일본은 1140만원이다. 이렇게 낮은 수가 탓에 수술할수록 병원이 적자를 보는 구조라, 병원은 전문의를 적정 인원만큼 채용하는 대신 공백을 전공의들로 채워왔다.  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응급실 모습. 전공의에 이어 전문의를 딴 전임의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전공의가 대체 불가하지만, 전국 모든 병원이 이런 상황이라 특히 필수의료 전공의는 더더욱 귀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해 말 집계된 2024년도 전공의 지원율을 보면 필수의료 진료과목 지원율 감소 추세에 따라 올해도 소아청소년과 25.3%, 흉부외과 38.5%, 산부인과 67.4%, 응급의학과 79.6%에 불과했다. 환자를 제대로 보려면 꼭 필요한 적정 정원조차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부족한 수만큼 해당 필수의료로 진로를 택한 전공의들이 이미 오랫동안 눈 한번 못 붙이고 어쩔 땐 연속 36시간, 또 누구는 이틀에 한 번 당직을 서는 가혹한 업무환경을 견디며 지금까지 병원을 지켜왔다는 의미다. 이들은 의사면허는 땄으니 선배 수만 명이 그리했듯이 굳이 어려운 전문의를 따지 않고 지금 당장에라도 '진료과목 성형외과·피부과' 간판을 내걸고 얼마든지 쉬운 돈벌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 동안 병원을 지켜왔다. 그런데 돌아온 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방침 첫날부터 대통령·총리·검찰총장 등이 돌아가며 내뱉은 "협상 불가, 면허 취소, 처벌" 발언, 즉 범죄자 취급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아니라 예수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 아닐까.    혹자는 "이번에 윤 정부가 2000명 증원을 관철하면 총선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라며 응원한다. 총선 결과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2000명을 관철하든, 단 1명의 정원도 못 늘리든 이미 소아청소년과에서 목격했듯이 앞으로는 의대 정원과 무관하게 모든 필수의료를 선택하는 의사가 크게 줄어들 것이고, 이미 고령인 현직 전문의들이 다 떠나면 우리 생명을 살릴 의사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던 수준 높고 값싼 한국 필수의료의 붕괴, 우린 이미 그 길에 접어들었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2024.03.07 00:28

  • 총선 과반의 변수...요동치는 수도권과 충청 [김성탁의 시선]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선거는 마치 염전과 같다.” 여야를 넘나들며 국내 정치에 오랫동안 관여해온 한 인사의 말이다. '하얀 금'으로 불리는 천일염을 얻으려면 바탕이 되는 갯벌과 햇볕, 바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닷물을 들이는 갯벌은 지지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이 갯벌에 해당한다. 정치 성향으로 따지면 보수, 진보 성향의 유권자로 분류가 가능하다.    22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정당별 지지율 추이를 보면 4년 전 총선처럼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는 결과는 예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여야 중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정당이 나올 것인지가 관심이다. 151석을 차지하면 국회의장과 주요 상임위원장을 확보하고, 각종 법안 처리에서 유리해진다. 여권은 국정 동력을 살리기 위해, 야권은 집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   강변북로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우상조 기자  최근 개별 지역구에 대해까지 쏟아지는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현시점에서 예상 의석의 향배를 가늠해보자. 확정된 지역구 254석 중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은 28석, 국민의힘의 기반인 영남은 65석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북 남원·임실·순창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하고 호남을 석권했었다. 이번 총선에선 전남 순천을에 이정현 전 의원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여부를 지켜봐야 하지만, 지난 총선과 비슷한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    영남 지역구 65석 중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부산 3석, 경남 3석, 울산 1석을 얻었다. 여권 일각에선 영남 전체적으로 5석가량을 잃을 수 있다는 견해가 있지만, 최근 여론조사 흐름은 민주당에 불리하다. 경남 양산을에 대해 지난달 한국리서치·모노리서치 등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에게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하거나 밀리는 것으로 나왔다. 민주당에 불리하지 않다고 평가 받는 여론조사꽃이 선거구 획정 전인 지난 1월 민주당 현역 의원 지역구인 부산 북·강서갑을 조사한 결과 정당 지지율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크게 앞섰다. 국민의힘에선 5선 서병수 의원이 출마한다.    강원도의 경우 지난 총선에선 미래통합당과 무소속 등 국민의힘 계열이 5석을, 민주당이 3석을 확보했었다. 여론조사꽃의 지난달 말 민주당 현역 의원이 있는 춘천·철원·화천·양구군갑 조사에서 총선 때 찍을 정당의 후보를 묻자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차이는 2.4%포인트였다. 민주당이 3석을 모두 얻었던 제주에서도 서귀포 지역구의 경우 여론조사꽃의 지난달 말 조사 결과 국민의힘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민주당 후보를 뽑겠다보다 16.6%포인트 높았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 때 얻었던 지방 지역구 의석에서 득점 요인이 약해지는 모습이다.   ■  「 여야 텃밭 영남 65석, 호남 28석 민주 이겼던 스윙보터 지역 흔들 견제냐 지원이냐 어떤 바람 불까 」   하지만 지역구 의석수에서 영남이 호남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민주당이 지난 총선 때 국민의힘 텃밭에서 얻은 의석도 극소수여서 이 정도 변수로는 승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민주당의 지난 총선 대승은 수도권과 충청에서의 압승이 핵심 요인이었다. 이번 총선 역시 ‘스윙 보터’인 두 지역에서의 결과로 승부가 결정 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도권 121석 가운데 18석만을 내주고 모두 이겼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 이후까지만 해도 수도권 판세는 야당으로 기우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지지율 조사에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따돌렸다.    갯벌에서 소금이 만들어지려면 햇볕이 필수인데, 선거에서 햇볕은 당이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파열음이 두드러지면서 수도권과 충정 지역 조사에서 민주당 현역 의원 지역구인데도 국민의힘 후보와 접전을 벌이는 경우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 경기 수원은 여당의 험지로 불려왔는데,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달 하순 수원 갑·을·병·정·무 지역구 주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민주당 우세 2곳, 경합 2곳, 국민의힘 우세 1곳으로 집계됐다.    여론조사에서 발견되는 특이점 중 하나는 일부 지역구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매우 높게 나오는데도 정당 지지율이나 후보 선호도에서는 국민의힘이 앞서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총선이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평가 기회가 되곤 했지만, 한동훈 비대위 체제 가동과 의대 증원 이슈 등이 등장하면서 희석되는 경향으로 볼 수 있다. 남은 기간 정부 견제론과 정부 지원론 중 어느 바람이 세게 불지, 여야가 새로운 이슈로 바람을 일으킬지 지켜볼 일이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김성탁 기획취재2국장

    2024.03.06 00:26

  • 쿠바에 뒤통수 맞은 북한의 '두 국가 자충수' [장세정의 시선]

    장세정 논설위원 한국과 쿠바의 수교 선언은 말 그대로 역사적이다. 한·중 수교보다 더 극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 당시 김일성이 받은 충격보다 이번에 한-쿠바의 전격 수교 소식을 접한 김정은의 충격이 더 클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수교 발표 이후 보름 이상이 지나도록 북한이 수교에 대해 아무런 공식 반응을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상이 매우 큰 듯하다. 2018년 11월 방북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난 김정은.[연합뉴스]  사실 한국과 쿠바의 교류 역사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4월 한인 1033명이 구인 광고를 보고 인천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에네켄(용설란) 농장으로 갔다. 이들 중에 288명이 "설탕 산업이 호황이라 사탕수수 농장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믿고 1921년 3월 증기선을 타고 쿠바에 도착했다. 하지만 사탕수수 가격이 폭락하면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며 겨우 연명했다.      ■  「 경제난에도 북한 눈치 보던 쿠바 '두 국가' 선언 직후 한국 손 잡아 북한도 쿠바 용기·결단 배워야 」   한인들은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역만리 타향에서 차츰 뿌리를 내렸다. 지금은 쿠바에 1000명가량 살고 있다. 임천택(1903~1985) 전 쿠바한인회장은 한인 근로자들의 박봉에서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번 수교 이전에도 한국과 쿠바 정부의 교류는 꽤 오래전에 있었다. 1898년 스페인 지배에서 독립한 쿠바가 1949년 7월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했지만, 그동안 공식 수교는 없었다. 6·25전쟁 기간에는 쿠바가 27만 달러를 지원했고, 1957년 당시 풀헨시오 바티스타 쿠바 대통령이 사절단을 한국에 파견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훈장을 수여할 정도로 우호적이었다. 1986년 4월 평양을 방문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최고 지도자와 김일성 북한 주석. [브라질 북한 선전매체 화면 캡쳐]  하지만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공산 혁명에 성공하면서 교류가 단절됐다. 특히 1960년 8월 쿠바가 북한과 수교하면서 쿠바는 중국·러시아에 이은 북한의 3대 해외 외교 전략 거점 역할을 해왔다. 북한은 '반미 사회주의'라는 공통점을 강조하면 미국에 맞서 싸운 '형제국' 쿠바에 10만정의 AK소총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카스트로는 "이 총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지키겠다"고 외쳤으나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를 거치면서 국제정치의 격랑에 휩쓸렸다.  2005년 코트라 아바나무역관 개설을 계기로 한-쿠바 관계에 다시 물꼬가 트였다. 한국 제품들이 쿠바로 흘러 들어갔고, K-팝 등 한류가 열정적인 쿠바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2015년 7월 미국과 쿠바가 수교하고 2016년 3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바나를 방문하면서 한국에도 수교 기회가 찾아왔다.   2016년 6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아바나를 방문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회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6년 6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는 사상 처음 쿠바 땅을 밟았고, 2018년 5월에는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방문하면서 수교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다. 하지만 2019년 트럼프 정부의 경제제재와 2021년 1월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관계가 급랭했다.  그래도 한-쿠바 수교의 최대 장애물은 미국보다 북한이었다. 쿠바가 미국과 수교하자 놀란 북한은 고위급 인사를 쿠바에 대거 파견해서 한-쿠바 수교 견제에 나섰다. 특히 윤병세 장관의 방문 이후 북한의 권력 실세 최룡해가 2016년부터 3년간 네 차례나 쿠바를 방문했을 정도로 북한이 위기감을 드러냈다.     2018년 8월 김정은의 특사로 아바나를 방문한 최룡해가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면담하는 모습.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  줄곧 북한 눈치를 보던 쿠바 측이 지난달 7일 갑자기 "수교하자"며 한국 측에 연락했고, 불과 1주일 만에 유엔에서 대사급 국교 수립을 전격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수교 작업에 참여했던 전직 고위급 외교관은 쿠바의 태도 변화에 대해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에 따른 경제난이 가장 큰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쿠바는 2021년 화폐 개혁에 실패하면서 물가 폭등으로 "먹고 살게 해달라"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또 다른 전직 외교관은 "최근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쿠바로서는 북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해 수교 기회로 활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민족과 통일을 부정한 김정은의 대남 전략 급변침이 자충수가 됐고, 쿠바가 한국과 손잡게 됐으니 뒤통수를 맞은 격이란 얘기다. 2016년 11월 28일 김정은이 주북한 쿠바대사관을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사망에 애도를 표하는 모습. 김정은은 방명록에 '위대한 동지 위대한 전우를 잃은 아픔을 안고 김정은'이라 적었다. [연합뉴스]  당분간 북한은 한-쿠바 수교 쇼크의 돌파구 찾기에 골몰할 것이다. 갑자기 일본에 손을 내밀고, 코로나19 이후 독일·영국·스웨덴·스위스 외교관을 잇따라 초청하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런 땜질 처방으로 북한 정권의 실패와 고립을 감추기 어렵다. 민생 경제를 우선하고 역사의 대세를 받아들인 쿠바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을 배워야 북한도 살 길이 보일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2024.03.04 00:30

  • [세컷칼럼] ‘극강 멘털’ 이재명의 아킬레스건

      관련기사 [강찬호의 시선] ‘극강 멘털’ 이재명의 아킬레스건 글=강찬호 논설위원 그림=심혜주 인턴기자 

    2024.03.02 2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