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IMF 부른 정태수 누가 풀어줬더라? 정태수의 자유로운 일생

5조원대 정경유착 비리로 IMF를 초래하고 2252억원 세금을 체납했음에도 자유롭게 출국했다. 95세까지 해외에서 잘 살았다. 21년 만에 잡힌 아들은 아버지의 밀린 세금 대신 '사망증명서'를 내놓았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실화다. 그의 자유의 비결을 키워드로 알아보자.

1980

은마아파트

51세 강릉세무서 주사 정태수는 1974년 '한보상사'를 세웠다. 광산개발로 돈을 벌자 강남 땅을 헐값에 샀다. 1979년 대치동 7만평 부지에 4424가구 초대형 은마타운을 지었다. 그러나 분양률은 52%. 회사 부도 위기였다.

1980년 2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경기가 침체되자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풀었다. 강남 부동산이 폭등했고 은마아파트는 완판됐다. 수천억원 분양대금이 현찰로 들어왔다. 한보는 골프장, 철강업체 등을 인수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장인이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났다.

1991

수서비리

그린벨트 땅을 한보가 사면 어쩐 일인지 곧 아파트 건축 허가가 났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결국 터졌다. 노태우 정권 대표 비리 '수서 비리'다. 한보주택이 1988년 서울 수서 그린벨트 3만 평을 산 뒤, 여야 정치권에 3년간 뇌물을 돌려 아파트 개발 허가를 받아낸 사실이 드러났다.

한보의 뇌물을 받은 청와대 비서관과 여야 국회의원 5명이 구속됐다. '청와대에는 100억이 상납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입을 꾹 다물었고 수사는 이쯤에서 멈췄다.

1991~1993

첫번째 부활 : 집행유예, 사면

다들 한보가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전극이 벌어진다. 정태수 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4년 뒤 YS정부에서 특별사면해 전과 지워짐), 자금난에 빠진 한보에 은행들은 무담보 추가 대출을 해줬다.

법원은 한보주택 법정관리 심사를 2년이나 끌었는데, 이 기간 채무가 동결된 덕에 회사는 빚 갚을 시간을 벌었다. 법원의 최종 판결이 '법정관리 기각'이어서, 정 회장 경영권도 무사했다. 온 우주가 한보를 돕고 있었다.

1995

대통령이 거기서 왜 나와?

정태수를 도운 '우주'의 정체는 정권이 바뀌자 드러났다.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다. 노씨가 대통령 시절 한보∙삼성∙현대∙대우 등에게 돈을 받아 4100억원 비자금을 만든 사실이 드러났다.

한보 정태수 회장은 노씨에 170억원 뇌물을 주고 비자금 관리도 도운 혐의로 1심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정 회장의 뇌물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나서", 비자금 차명 거래는 "은행 업무 방해는 아니어서" 무죄 판결했다. 한 마디로, 정태수는 또 무사했다.

1997

IMF의 서막 : 한보철강 부도

한보는 김영삼(YS) 정권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려 재계 14위 기업이 됐다. 정태수 회장은 충남 아산만을 매립해 세계 5위 규모 제철소를 지으려 했다. 한보의 자금력도 기술도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허가는 신속했고 은행 대출은 관대했다.

한보철강 자기자본금 2000억원, 대출금 5조7000억원. 3% 자금과 97% 빚으로 운영되던 회사는 1997년 1월 23일 결국 부도처리됐다. 은행들이 휘청이고 국제 신용도가 떨어졌다. IMF 경제위기의 서곡이었다.

1997

대통령 아들이 거기서 왜 나와?

한보에 거액을 대출해 준 은행장들이 구속됐고 어떤 이는 자살했다. 한보 뇌물을 받고 은행에 대출 압력을 넣은 혐의로 김우식 내무부 장관과 YS 최측근 홍인길 의원, DJ 최측근 권노갑 의원이 구속됐다. 홍 의원은 명언을 남겼다. "나는 깃털에 불과하다."

대통령 아들 김현철 씨가 '몸통'으로 지목됐다. 검찰 수사와 '무혐의' 결론, 수사진 교체와 재수사를 거쳐 1997년 5월 김현철 씨가 구속됐다. '한보와 연계는 없으나 국정에 개입하고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였다. 현직 대통령 아들 구속은 처음이었다.

1997.01

대통령 비서가 거기서 왜 나와?

'환자복+마스크+휠체어'. 정태수 회장은 '재벌 소환 패션'의 원조다. 한보 부도 직후 정 회장은 경희대병원 특실에 입원했고 직원들이 병실 앞에서 기자 접근을 막았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당시 한보 홍보실 차장)의 모습이 MBC 뉴스에 담겼다. (뉴스영상 00:23부터 등장) 양 원장이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2006년 국회에서 이 일이 언급되기도 했다.

한보철강 이춘발 부사장도 뉴스 영상에 나온다. 문화일보 기자 출신으로 한보 홍보를 맡았던 이씨는 이후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 언론특보를 맡았고 2006년 KBS 이사로 임명됐다.

2002.6

서울대병원장이 거기서 왜 나와?

정태수 회장은 뇌물 공여와 회삿돈 횡령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구치소에 5년도 안 있었다. 자주 입원했고, 여름 3개월을 서울대병원 특실에서 나기도 했다. 2002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고 김대중 정부 특별사면을 받았다. '대장암' 진단 때문이었다.

2년 뒤 진실이 드러났다. 전직 서울대병원장의 부탁을 받은 서울대 교수가 조직검사 없이 정태수의 '대장암' 확정소견서를 써줬고, 정씨 아들은 고맙다며 병원장에게 3000만원을 줬다. 그러나 처벌은 없었다. '증거 부족', '의사 진료는 공무가 아님' 등의 이유였다.

2006

영동대가 거기서 왜 나와?

정태수는 세번째 재기를 노렸다. 비빌 언덕은 강릉영동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한보학원(현 정수학원)'이었다. 1983년 설립한 한보학원은 정태수와 아들들이 줄곧 이사장을 지냈고, 셋째 며느리가 총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 이사장과 총장은 외부인사)

정씨는 영동대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006년 징역3년을 선고받았다. 정씨는 항소했다. 당시 나이 83세. 재판부가 건강을 이유로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아, 불구속 상태로 항소심 재판을 받게 됐다.

2007.4

'인도적 결정'이 왜 나와?

정태수는 세금을 2000억원 이상 밀린 출국 금지자였다. 게다가 교비 횡령 1심 징역형을 받았다. 그런데도 2007년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전성수)는 "일본 가서 치료받고 오겠다"는 정씨의 출국 신청을 허가했다. 당시 재판부 박용우 판사는 (일요서울) 인터뷰에서 "외압은 없었다"며 "인도적 차원의 결정"이라고 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교비 횡령 2심 법원은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으나 피고인은 사라진 뒤였다. 이후 12년간 정씨는 카자흐스탄, 키즈르기스탄, 에콰도르를 활보했다. 2019년 7월, 검찰은 정씨 아들이 낸 정태수 사망증명서를 인정했다. 정태수는 법적으로 사라졌다. 밀린 세금과 모든 죄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