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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데이트] 정당 '신장개업'의 달인은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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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통합파가 손잡고 만드는 신당의 명칭이 바른미래당으로 확정됐습니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13일 통합 전당대회 격인 ‘수임기관 합동회의’를 마치면 간판을 내리게 됩니다. 국민의당(2016년 2월 2일 창당)은 만 2년, 지난해 1월 24일 창당한 바른정당은 약 13개월 만입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통합추진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를 열어 통합신당 PI(정당이미지) 발표행사를 열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PI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통합추진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를 열어 통합신당 PI(정당이미지) 발표행사를 열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PI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당은 이미 일부 의원들이 탈당해 민주평화당을 창당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상태입니다. 양측이 예정대로 창당하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1963년 현재의 중앙선관위원회가 창설된 이래 각각 203, 204번째 등록하는 정당이 됩니다.

민주평화당 창당대회가 열린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지원 의원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민주평화당 창당대회가 열린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지원 의원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한국은 정당의 역사가 70년에 접어들었지만, 각 정당의 수명은 평균 3년으로 아주 짧은 편입니다.
당의 간판(黨名)이 자주 바뀌는 정치문화 탓입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100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미국과는 매우 대조적이죠.

2016년 7월 18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무대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은 1854년 창당했다. 조선 철종 5년에 해당되는 해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

2016년 7월 18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무대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은 1854년 창당했다. 조선 철종 5년에 해당되는 해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

실제 한·미·일 삼국의 여당의 역사를 볼까요.
미국의 공화당(1854년)은 164년이고, 일본의 자유민주당(1955년)은 63년입니다. 반면 한국의 더불어민주당(2015년)은 3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주요 국가별 여당 역사

주요 국가별 여당 역사

수명이 가장 길었던 정당은?

우리 정치사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길게 유지된 정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창당한 민주공화당(1963~80년)입니다. '무려' 17년 5개월간 유지됐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87년 체제’ 이후엔 한나라당(97~2012년)이 14년 4개월로 가장 오래 이름을 이어갔습니다.

제6대 대선일인 1967년 5월 3일 밤, 공화당사에서 개표 진행 상황을 지켜보는 박정희 대통령(왼쪽)과 김종필 당 의장. 초반부터 큰 표 차로 앞서가자 두 사람의 표정이 밝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시소게임이 아니어서 기자들이 별 재미가 없겠다“는 농담을 던졌다.[중앙포토]

제6대 대선일인 1967년 5월 3일 밤, 공화당사에서 개표 진행 상황을 지켜보는 박정희 대통령(왼쪽)과 김종필 당 의장. 초반부터 큰 표 차로 앞서가자 두 사람의 표정이 밝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시소게임이 아니어서 기자들이 별 재미가 없겠다“는 농담을 던졌다.[중앙포토]

반면 “100년 가는 정당”을 외치며 야심 차게 출발했던 열린우리당은 3년 9개월 만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나마 '평균 수명'보다 9개월 가까이 더 존속했던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을까요.

그래픽에서 볼 수 있듯 이합집산이 잦았던 민주당 계열이 보수정당보다 당명을 자주 교체했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쪽이 상대적으로 소수세력이다 보니, 선거 등을 앞두고 다른 세력과 연합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요 정당사

대한민국의 주요 정당사

정치인들이 간판을 바꾸거나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신장개업에 나서는 것은 대개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①다른 세력과의 연합 ②대선 출마나 개인 영향력 강화 ③탈당입니다.

이번에 창당에 나선 바른미래당은 타 세력과의 연대하는 사례입니다. 반면 이에 반발해 나온 민주평화당은 탈당에 해당하겠지요. 1995년 당시 여당이던 자유민주당이 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꿨던 것은 민정계를 축출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당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벌어졌습니다.

신장개업의 달인은 누구?   

그렇다면 신장개업에 가장 많이 나섰던 정치인은 누구였을까요? 1945년 해방 이래 현재까지 활동한 주요 정치인을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6회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는 50여년의 정치 인생 중 신한민주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창당을 주도했습니다.

주요 정치인들의 '신장개업'

주요 정치인들의 '신장개업'

여기엔 DJ의 의지도 작용했습니다. 해공 신익희 선생이 55년 창당한 민주당에서 정치생활을 시작한 DJ는 민주당이라는 명칭에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3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에서 이탈하며 87년 평화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92년 대선 패배로 정계에서 은퇴했다가 95년 복귀한 뒤엔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었지만 97년 (꼬마) 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하자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해 ‘민주당’을 회복했습니다.

1995년 9월 5일 새정치국민회의 창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 [중앙포토]

1995년 9월 5일 새정치국민회의 창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 [중앙포토]

이런 영향 때문인지 야권은 이후에도 열린우리당(2003년), 새정치민주연합(2014년) 등을 창당했지만, 번번이 민주당이란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

(※중앙선관위의 중앙당 등록일람표에 따르면 DJ의 창당은 4회입니다. 하지만 이 자료는 등록 당시 대표자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실제 창당 주역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주도한 민주공화당도 선관위 자료에서는 정구영 전 의원이 창당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 기사는 선관위 자료를 기본으로 하되, 논문과 신문기사 등 당시 정치적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를 참고해 재구성했습니다.)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당시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당시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다음으로는 DJ의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YS가 4회로 뒤를 이었습니다.
YS는 신한민주당-통일민주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을 만들었습니다. 신한민주당과 통일민주당은 DJ와 YS가 공동창업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DJ는 87년 대선을 목전에 두고 대선 출마를 위해 통일민주당에서 나와 평화민주당을 만들어 독립했습니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만났다. 이들은 2년 뒤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각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중앙포토]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만났다. 이들은 2년 뒤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각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중앙포토]

이들과 함께 3김 시대를 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3회(민주공화당-신민주공화당-자유민주연합)였습니다.
눈길을 끄는 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입니다. 정치 경력이 6년에 불과하지만, 창당은 3회나 했습니다. 기업가 출신답게 '신장개업'에 일가견을 보여준 셈입니다.

그 외 노회찬 의원이 민주노동당-진보신당-통합진보당-정의당 등 4회 창당을 했고, 돌출 행동으로 화제를 유명세를 탔던 '본좌' 허경영 씨도 진리평화당-공화당-민주공화당(2000년 창당)-경제공화당 등 4차례 '개업'을 했습니다.

경제공화당 허경영 전 대선후보 [중앙포토]

경제공화당 허경영 전 대선후보 [중앙포토]

그 뒤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총재,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각각 2회로 뒤를 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정치 거물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범 김구 선생은 각각 자유당과 한국독립당 등 하나의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경제학에는 '메뉴비용(Menu cost)'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각종 환경 변화에 따라 물건이나 서비스 가격을 조정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가리킵니다. 단순한 가격뿐 아니라 명칭 변경, 새로운 전략 수립, 추가 광고비용, 단골이 빠져나가는 손해 등 넓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에 따르면 정당 '간판'을 자주 바꾸는 것은 당의 브랜드 가치를 손상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권장할만한 일은 아닙니다.

새누리당이 지난해 2월 13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아모리스홀에서 제7차 전국위원회를 열고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는 것을 확정했다. 오른쪽부터 인명진 비대위원장, 정우택 전 원내대표, 이현재 전 정책위의장. [중앙포토]

새누리당이 지난해 2월 13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아모리스홀에서 제7차 전국위원회를 열고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는 것을 확정했다. 오른쪽부터 인명진 비대위원장, 정우택 전 원내대표, 이현재 전 정책위의장. [중앙포토]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정당 이름을 자주 바꾸는 이유는 뭘까요? 그만큼 한국의 정당 브랜드 가치가 낮다는 방증은 아닐까요?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디자인=임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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