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 부동산의 나라 대한민국 리포트

#해방촌맛집 #해방촌까페 #해방촌술집 #해방촌루프톱…. 인스타그램에서 해방촌(서울 용산구 용산동 2가)을 검색하면 25만개 이상의 이미지가 검색됩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오래된 골목길, 그곳에 숨은 힙하고 트렌디한 가게들, 방송인 노홍철의 책방이 있고 가수 정엽이 운영하는 루프톱이 있는 곳. “홍대는 한물갔고 이태원은 식상하다”는 이들에게 해방촌은 ‘요즘 가장 핫(Hot)한 동네’입니다. 한데 혹 생각해 보셨나요? 해방촌이 원래 관광지가 아니라 엄연한 주택가라는 사실, 인스타그램 사진 속 그 작고 낡은 집에 실제 매일매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요. 그들에게 묻습니다.
해방촌, 지금 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

01연예인들이 산 그곳, “평당 7000만원”

미군 기지와 접한 해방촌 초입. 짙은 고동색 옹기가 옹기종기 쌓여 있는 곳을 지나면 외국어 간판이 가득한 거리가 나온다. 미국식 ‘J 버거’ 등 세계 각국 로컬 음식점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 소위 ‘햄버거 길’이다. 거리 곳곳 음식점 테라스마다 맥주를 즐기는 외국인들이 가득하다.

서울시 용산구 용산2가동 해방촌 위치도

하지만 ‘햄버거 길’은 ‘진짜 해방촌’이 아니다. ‘햄버거 길’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급경사를 10분쯤 올라야 나오는 해방촌 오거리에 가야 ‘진짜 해방촌’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래된 달동네와 트렌디한 공방, 루프톱 바가 공존하는 해방촌의 속살 말이다. 해방촌 오거리의 랜드마크는 신흥시장이다. 퇴적된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해방촌의 역사와 변화를 한 눈에 보여주는 곳. 1968년 문을 연 이 재래시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생기고 인터넷 쇼핑ㆍ배송이 인기를 끌며, 하루가 다르게 쇠락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사실상 시장으로서의 기능 자체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한 물 갔던 신흥시장은 2015년부터 ‘엉뚱하게’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외지인들, 특히 연예인들이 문 닫은 가게나 창고를 하나 둘 사들이면서다. 가수 정엽이 가게를 매입했고, 방송인 김제동은 전세로 점포를 얻었다. 방송인 노홍철은 시장 바로 옆 건물을 사들였다. 정엽은 이미 해방촌 다른 곳에도 건물을 사서 루프톱 레스토랑 겸 까페를 운영하고 있다.

값은 어떨까. 정엽은 지난해 신흥시장 내 상점을 평당 약 3600만원(총 4억원대 중반)에 사들였다. 하지만 올해는 호가가 더 뛰었다. 한 해방촌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신흥시장 안은 평(3.3㎡)당 5000만원, 도로변은 평당 7000만원까지 달라고 해. 임대료도 예전 월 70만원하던 게 지금은 200만원을 받고. 파출소 앞 방앗간 건물은 식당으로 바뀐 뒤 요즘 월세만 450만원이라고 하더라고.”

일성상회의 박일서(76)씨는 “옛날에는 시장 창고로 쓰던 곳도 이젠 권리금을 받고 팔아. 신흥시장 50년 역사에 권리금이 생긴 건 올해(2017년)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좌) 2014년 영양탕집, (우) 2017년 카페 사진
2014년 영양탕집이던 시장 내 건물(좌)은 2017년 현재 까페(우)로 운영되고 있다. [해방촌마을기록단 제공]

02외지인 투기장 된 해방촌

외지인들의 ‘해방촌 부동산 쇼핑’ 실태를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신흥시장~해방촌 공영주차장 사이에는 총 79개 건물이 있다. 이중 다세대 주택인 빌라 5동과 무허가ㆍ가건물 6곳을 제외한 68개 건물의 등기부등본을 모두 떼봤다. 그 결과 68개 건물 중 36곳이 주인이 바뀌었고 새 건물주 중 35.3%(24곳)가 외지인이었다. 신흥시장만 놓고 보면 총 47개 상가주택(1층 상가, 2~3층 주택) 중 18개가 외지인 소유였다.

외지인 소유주 약 3명 중 1명은 중 강남 3구에 살았다. 이들이 소유한 건물은 근저당이 하나도 설정돼 있지 않았다. 모두 빚 지지 않고 자기 돈으로 건물을 샀다는 뜻이다. 해방촌 공인중개사 A씨는 “강남이나 이촌동에서 오는 분들은 20억 원 정도 현금을 싸들고 와서 (투자) 물건을 찾는다”고 말했다. 외지인 소유 건물의 또 다른 특징은 유독 손바뀜이 잦다는 것이다. 최근 2번 이상 주인이 바뀐 건물 13곳 중 9곳이 외지인 소유였다. 해방촌 지역잡지 ‘남산골 해방촌’ 관계자는 “타지 사람이 건물을 샀다가 한달 만에 되판 경우도 있다”며 “자꾸 주인이 바뀌는 통에 계속 호가만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는 최근 들며 크게 늘었다. 주인이 바뀐 36곳 가운데 20곳이 2005년 이후, 그중 14건은 최근 3년새 매매됐다. 해방촌 전체 부동산 시장도 비슷하다. 최근 8년 이 지역 단독(다가구 포함) 주택 매매 현황을 전수 분석한 결과, 2012년 단 7건이던 것이 이듬해부터 급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3년 16건, 2014년 35건, 2015년 61건, 2016년 49건이 매매됐다. 올해도 8월말까지 총 36건이 거래됐다.

03집값 뛰는데 전ㆍ월세는 안 올라, 그 이유는

찾는 사람이 많으면 부동산 값은 뛰게 마련이다. 해방촌 단독가구 가격은 5년새 평당 1000만원이 올라 현재 평당 2700만원에 육박한다. 올해 가장 비싸게 팔린 집(평당 5500만원)은 강남 대치동 단독가구 최고가 기록(평당 3927만원)을 앞섰다.

5년새 땅값 평당 1000만 원 뛰어

한 해방촌 주민은 이런 ‘부동산 열풍’을 두고 “미쳤다”고 말했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 A씨는 “상권 개발 후 상업용으로 용도를 변경할 생각이거나 시세차익을 노린 게 아니면, 낡은 단독(다가구)에 그 정도 돈을 지불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시세차익을 노리고 가격을 띄우는 기획(부동산)이 의심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아래 그래픽에서 보듯 해방촌의 전ㆍ월세는 그리 높지 않다. 매매가와 비교해 전세는 30%, 월세는 20% 수준이다. 서울의 일반적인 매매가 대비 전세 비율(평균 70%)보다 훨씬 낮다. 최근 크게 뛴 집값과 비교하면 전세 비율은 약간 올랐고, 월세 비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평당 매매가는 급등, 전월세는 그대로

도시개발전문가 B씨는 이에 대해 “집 거래는 잘 되는데 전ㆍ월세가 안 오른다는 말은 건물이 낡았다는 말이다. 집을 고치면 전ㆍ월세를 올려받을 수 있지만, 주인이 그럴 의지가 없는 거다. 어차피 전ㆍ월세로 돈 벌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뒀다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그때 팔아 목돈을 챙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방촌 주민 C씨는 “집을 수리하면 건물주는 세입자가 (안 나가고) 눌러살까 두렵고, 세입자는 건물주가 월세 올려달라고 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집값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해방촌의 전ㆍ월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도시개발전문가 B씨는 “머잖아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집을 산 투자자들이 지금은 그냥 놀리고 있지만, 이 지역 건물 값이 오르고 상권이 생기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며 “집을 되파는 과정에서 상가로 바꿀 가능성이 높고, 그때 주민들이 대거 내몰리릴 것”이라고 말했다.

해방촌 전ㆍ월세가 싸다지만 원주민 입장에선 이미 적잖이 올랐다는 주장도 있다. 해방촌 15평 주택의 평균 전세는 2011년 6785만원에서 올해 1억 1639만원이 됐다. 월세는 보증금 2368만원에 월 36만원에서, 올해 보증금 2665만원에 월세 52만원으로 뛰었다. 이제 해방촌 어디든 평균 월 50만원 이상은 내야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집도 늘었다. 2011년 각각 100건, 65건이었던 전ㆍ월세 신고건수가 2016년에는 각각 136건, 120건로 바뀌었다. 신고를 안 하는 삯월세 등까지 고려하면 이 지역 월세 거주자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04‘생활 공간’이 ‘관광지’로 변해

요즘 해방촌은 전체가 공사판이다. 신흥시장 등 곳곳에 공사 가림막이 쳐있다. 최근 3년간 이 지역 인허가 건수는 총 39건. 건축 일을 하는 해방촌 주민 D씨는 “허가가 필요없는 리모델링 등까지 포함하면 실제 공사 건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소위 ‘뜬다’는 곳은 전부 다 공사 중”이라는 것이다. 대체 무슨 공사를 하는 걸까.

신흥시장은 최근 3년새 상점 47곳 가운데 약 절반이 용도 변경됐다. 그중 17개가 외지인들을 상대로 하는 카페ㆍ공방 등이었다. 해방촌 다른 곳의 사정도 비슷하다. ‘해방촌 마을기록단’에 따르면 해방촌 오거리~해방촌 성당 사이 생활형 상점(지역 주민들이 쓰는 물건ㆍ식자재 등을 파는 상점)이 점점 줄고 있다. 2010년 65%였던 비율이 2016년 53%로 줄었다. 반면 외지인 상대 상점 비율은 24%에서 33%로 늘었다. 문방구ㆍ약국 등이 있던 자리에는 대신 커피전문점ㆍ외국음식점 등이 들어선 것이다. 해방촌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 공간’에서 외지인들이 찾는 ‘관광지’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방촌 상점 59곳(해방촌오거리~해방촌성당)의 용도 변화

생활 공간이 관광지가 되면 젠트리피케이션이 생긴다. 해방촌마을기록단의 조사에 따르면 신흥시장은 원래 1층 상점, 2~3층 주택 구조지만, 시장이 쇠락한뒤 많은 상점이 주거공간으로 쓰였다. 지난해의 경우 1~3층에 총 80가구가 살았다. 이중 15곳은 장애인ㆍ기초수급자ㆍ독거노인 등이 사는 집이었다. 이들은 보증금 100만~300만원에 월세 20만원 가량을 내고 살았지만, 최근 이 동네 불고 있는 ‘부동산 열풍’에 하나 둘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마을기록단 측은 “현재 상가 계약이 만료되는 1~2년 후에는 더 많은 주민들이 집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방촌의 지난해 전입자는 1372명, 전출자는 1860명이었다. 동네에 새로 들어온 사람보다 나간 사람이 488명이나 많다는 의미다. 이런 순(純)전출 규모는 최근 5년간 계속 늘고 있다.

05해방촌의 오늘, 도시재생의 내일

해방촌은 낡고 오래된 동네다. 주택 실수요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최근 부동산 거래가 급증하며 집값이 뛴 이유는 무엇일까? 길 건너 경리단길 상권의 확장, 루프톱의 인기, 연예인 자본 유입 등 여러요소가 있지만, 공공 개발 계획도 한 몫했다.

해방촌은 원래 남산 숲이 있던 곳이다. 광복 후 월남민들이 모여 살며 ‘해방촌’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당시 판자와 미군 전투식량 박스(하꼬, はこ)로 집을 지었던 데서 ‘하꼬방’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랬던 남산 달동네에 처음 부동산 열풍인 분 것은 2003년이다. 인근 용산 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발표되고 남산을 중심으로 녹지축이 형성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평당 호가가 4000만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해방촌을 고향 삼아 살아온 주민들은 녹지축에 반대해 계획을 무산시켰다. 이후 해방촌에는 외국인과 예술가, 사회단체, 수유너머R 같은 연구단체 등이 찾아와 자리를 잡았다. 자생적인 ‘도시재생’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하지만 녹지축 논란 이후 줄어드는가 싶던 부동산 바람은 2015년을 기점으로 다시 불기 시작하고 있다.

해방촌은 2015년 총 1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되는 ‘서울형 도시재생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공공자금을 투입해 자생적으로 시작된 해방촌 ‘재생’을 더욱 촉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마중물’은 외부의 투기 자금을 끌어들이는 부작용을 낳았다. 지속가능한 주거문화를 연구하는 이상욱 어반하이브리드 대표는 “원래 주택가였던 곳에 관광객이 찾아 오면 그 관광객을 쫓아 상업자본이 들어온다. 여기에 공공자본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더해지면 투기자본이 유입된다”고 말했다. 해방촌 주민 C씨는 “정부 제도와 정책을 보고 부동산 투기자금이 들어왔고, 미디어가 이를 부추겨 원래 살던 사람들은 주거를 위협받고 있다”며 “공공자금이 주민을 내쫒는 ‘관(官)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해방촌이 겪고 있는 이런 부작용이 다른 곳에서도 그대로 재연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총 50조원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투입해 ‘도시재생뉴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달 25일까지 사업계획을 접수 받아 연말께 시범사업지를 선정할 예정이다. 도시재생뉴딜을 주도하고 있는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앞서 해방촌 등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을 설계한 장본인이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도시재생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은 재생사업을 기존 재개발 사업처럼 받아들이게 되고 그 결과 투기성 자본이 몰리게 된다. 지금의 해방촌은 사실 거품이다. 평당 5000만원은 강남 역삼동보다 비싼 가격이다. 이런 평당 단가를 맞추려면 상업화가 진행될 수 밖에 없고 주거나 기존 커뮤니티 생활권은 와해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속도전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부작용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도시재생뉴딜이란 호재를 만난 투기성 자본은 이미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도시재생 후보로 꼽히는 지역은 이미 매물이 씨가 말랐다. 정부의 강력한 투기 억제책에 거래는 줄었지만 호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는 게 부동산 업계 얘기다.

해방촌, 그리고 정부와 투기자본의 ‘돈 벼락’이 쏟아질 도시재생뉴딜지역 500여곳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발행일 : 2017.10.19

  • 기획 정선언, 김현예, 정원엽, 조혜경
  • 자료도움 해방촌마을기록단, 남산골해방촌
  • 사진 우상조
  • 디자인 임해든, 유수경
  • 개발 전기환, 원나연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