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우리안의 ‘그렌펠 타워’ 서울, 그곳이 불안하다

Series2 소방차는 달리고 싶다

Intro

2015년 의정부 화재사고. 화마(火魔)가 도시형 생활주택 3개동 253가구를 덮쳐 134명이 죽거나 다쳤다.

화재가 발생한 대봉그린과 드림타운Ⅱ는 각각 88가구 규모였지만 주차공간은 각각 17대에 불과했다. 주차장이 부족하다 보니 좁은 이면도로는 언제나 불법 주차 차량으로 가득했다.

의정부 화재사고 당시 진입로의 형태

전체 도로폭 5m, 소방차 폭(리어미터 포함)은 대형소방차 약 3m, 중형 소방차 약 2.6m, 소형 소방차 약 2.5m 네이버 로드뷰(2014년 11월) 참조

2016년 6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전까지 연면적 660㎡ 이하의 도시형 생활주택을 지을 땐 폭 4m의 진입도로만 확보하면 됐다. 대형 소방차의 폭은 약 3m. 폭 4m 도로 좌우에 불법주차 차량이 한 대라도 있으면 진입이 불가능하다. 의정부 화재 때도 좁은 도로와 거주자 우선 주차 차량, 불법 주차 차량이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Chapter 1

소방차 못 가는 길, 전국 1490곳

화재 진화를 위해서는 소방차가 달려갈 수 있는 소방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 몸에 침입한 세균을 잡기 위해선 백혈구가 돌아다닐 수 있는 모세혈관이 신체 곳곳에 막힘 없이 뚫려 있어야 하듯 말이다.

실제로 소방공무원 102명 중 41%는 신속한 화재 진압에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소방차 진입이나 배치 등 소방활동 공간 협소문제’를 꼽았다. *주) ‘화재취약지구의 화재안전성 개선방안연구’, 『한국방재학회논문집』(제15권 5호)

우리의 소방도로 ‘모세혈관’은 잘 뚫려 있을까?

소방차 진입 곤란·불가 지역

소방청(옛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중형이상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지역은 전국에 1490개소, 도로 길이로 685㎞나 된다. 서울~대구 왕복 거리의 도로에 소방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셈이다. 더구나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지역의 60%는 사람이 살고 있는 주거지역이다. 그만큼 화재 발생 시 인명피해 가능성이 높다.

서울의 경우 소방청은 총 471곳을 소방차 진입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지역(진입불가 165곳)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2015년 조사 결과는 달랐다. 소방차가 집입하기 힘든 곳이 총 1183곳으로, 소방청 조사 결과보다 배 이상 많았다.

Chapter 2

1547km 막힌 화재 ‘모세혈관’

소방기본법은 소방차가 접근할 수 있게 모든 건물이 도로를 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축법에도 건물이 최소 4m 이상의 도로와 접해야 한다고 돼 있다. 세부 기준을 정하는 소방청은 도로폭 3m를 소방차 진입 곤란지역으로, 도로폭 2m를 진입불가 지역으로 분류한다. chapter 1에 나온 전국 1490개소(서울 471개소)의 소방차 진입 곤란ㆍ불가지역은 이를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도로폭이 4m는 돼야 소방차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소방차의 좌ㆍ우 회전 반경이나 전봇대 등 장애물이 있을 경우 등을 고려할 때 도로폭이 최소 3.25m는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오픈 데이터 운동을 펼치는 ‘코드 나무’의 도움을 받아 서울의 4m 미만 도로를 전수 조사해 봤다.

서울의 폭 4m 미만 도로 얼마나 되나

서울시 도로 데이터를 확인할 결과, 총 연장 1547km가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4m 미만 도로였다. 화재진화를 위한 미세혈관 곳곳이 막혀있는 셈이다.

구별로 확인을 해 보면 4m 도로 구간이 가장 많은 곳은 은평구였다. 은평구는 전체 도로 336.9㎞ 가운데 168.3㎞가 폭 4m 미만이었다. 전체 도로의 약 49.9%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어 성북구(30.1%)ㆍ중랑구(29.7%)ㆍ강북구(27.9%) 등의 순이었다. 강남구는 3.8㎞(0.8%)로 전체 25개 구 중 도로 사정이 가장 나았다.

*주) = 전체 도로 길이, = 4m 미만 도로 길이
전체 구를 확인하고 싶으면 ‘서울화재위험지도’를 참조

Chapter 3

골든타임 넘긴 화재 연 928건

좁은 도로가 문제인 것은 화재 ‘골든타임’(화재 발생 후 5분내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면 초동 진화 가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골든타임 놓치면 늘어나는 사상자와 피해액

※ 소방출동대 골든타임 이전 도착 대비

소방차가 골든타임을 넘겨 화재 현장에 도착한 경우, 골든타임 전에 도착했을 때보다 화재 건당 평균 사상자수가 1.48배(0.044명 → 0.065명), 피해 액수가 약 3.63배(292만원 → 1061만원) 증가한다. 화재가 성장기를 거쳐 최전성기(플래시오버)에 도달하면, 다른 건물로 번지며 화재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기 때문이다.

화재성장곡선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5년 서울에서는 5921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중 소방차가 5분 이내 도착한 경우가 5310건, 5분을 넘긴 경우가 611건이었다.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한 비율이 11.5%나 된 것이다. 2010년~2014년 평균은 2.7%였다.

지난해에는 사정이 더 악화됐다. 총 6443건의 화재가 발생했는데, 소방차가 3분 이내 도착한 경우가 1972건, 5분 이내 3543건, 10분 이내 880건, 20분 이내 44건, 30분 이상 4건이었다. 화재 건수도 늘었고 골든타임 5분을 넘긴 비율도 14.4%(총 928건)으로 높아졌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이에 대해 “교통 상황이나 도로 상황인 변한 탓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4.4%의 골든타임 초과 화재. 만약 이 화재가 인명 피해를 포함한 대형화재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중앙일보와 코드나무는 서울연구원의 ‘황금시간 목표제 검증 및 평가 용역’ 보고서(2016)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울 각 지역에 불이 났을 때 도로사정ㆍ교통량 등을 고려해 골든타임 내에 소방차가 도착하기 힘든 지역을 확인해 봤다. 평균 교통량, 표준노드링크, 네트워크별 평균 이동속도, 이동 소요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간대별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다.

소방차 도착에 5분이상 걸리는 지역(시간대별)

소방차 도착에 5분이상 걸리는 지역
(시간대별)

= 소방차가 골든타임 내 도달하기 힘든 지역
= 골든타임 준수 지역 = 119안전센터

위 이미지는 교통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소방차가 5분이내 도달하기 힘든 곳을 시간대별로 분석한 결과다. 출근 시간(오전 7시~8시)과 퇴근시간(오후 6시~8시)에 소방차가 도착하기 힘든 붉은 지역이 많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소방차가 골든타임을 맞추기 가장 어려운 시간대는 오후 7시 전후다. 이 시간대에 불이 나면 소방차가 골든타임 내에 화재 장소에 도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오후 7시 기준 골든타임 초과 도착지역 비율 37.5%). 실제 서울시 평가용역 보고서도 오후 6시~7시를 ‘소방력 출동이 원할하지 않은 시간대’로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긴급차량이 출동할 때 긴급차량전용도로(Fire-Lane)을 이용하고 교통신호를 통제해 교통혼잡상황에서도 골든타임 준수가 용이한 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소방관이 방송과 수신호로 일반차량 운전자에게 양보를 요청해야 한다. 서울소방재난 본부에 따르면 소방관 64%는 “일반차량들이 소방차에 양보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Chapter 4

소방차는 달리고 싶다

고무줄을 당겨보면 계속 늘어나다 한 순간 탁하고 끊어진다. 탄성 한계점에 도달해서다. 비가 많이 와서 둑이 무너질 때도 마찬가지다. 한 순간 둑이 무너지고 피해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화재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커지던 화재가 ‘플래시 오버’라 부르는 최전성기에 도달하면 쉽게 진화가 힘들어 진다. 정부가 ‘골든 타임’을 정하고 초동 진화에 소방력을 집중하는 이유다.

하지만 소방차가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모세혈관’은 좁고 불안하다. 정겨운 골목길은 불이 났을 때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애물단지가 된다. 무심코 한 불법 주차, 주차난 해소를 위해 도입된 지정주차제도는 비상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장애물이 된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정부가 소방관에게 불법주차 단속권한을 줬지만 실효성이 없다”며 “불법주차 차량 한 대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성촌 소방대장 이성촌 소방대장
서울 은평소방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건물로 진입한 대원 7명이 무너진 건물에 깔렸지만 불법주차차량 때문에 포클레인이 진입하지 못해 1명 밖에 구하지 못했다. 사이렌을 울리며 차를 빼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 2001년 3월 홍제동 화재사건을 떠올리며 (2017년 5월, JTBC '잡스')
서울 화재위험 지도 인터렉티브 링크 우리 안의 ‘그렌펠 타워’ 서울, 그곳이 불안하다

발행일 : 2017.08.17

  • 기획 정원엽, 코드나무 김승범
  • 데이터 분석 및 지도 시각화 코드나무 김승범
  • 개발 전기환, 김승섭, 원나연
  • 3D 심정보
  • 디자인 임해든, 김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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