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집이야!!

'월수입=(주거부담금+생활비) = 적자' 1+1≠2, 1인 가구 둘이 합쳐 2인 가구가 되는 걸 가로막는 ‘헬조선 공식’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집값·생활비 부담이 큰 지역일수록 더 그렇다. 서울의 1인 가구 비중은 2015년 기준 약 30%. 바야흐로 서울은 ‘1인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03. 독거 인생: 1인 가구로 산다는 것

'1코노미 1번지' 신림동

통계청은 2015년 서울의 1인 가구 숫자를 총 111만 가구로 집계했다. 전체 가구(378만 가구) 유형 중 가장 높은 29.5%를 차지한다. 전국 평균(27.2%)보다 2%P 이상 높다. 1인 가구 특유의 소비패턴·트렌드를 일컫는 ‘1코노미(1인+이코노미)’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나홀로 산다" 1인 가구가 대세

서울시 가구수 변화 | 자료: 통계청
1980년 총 183만 가구 중 1인 가구 4.5%, 2인가구 15.3%, 3인가구 34.6%
 2015년 총 378만 가구 중 1인 가구 29.5%, 2인가구 24.6%, 3인가구 21.6%

특히 서울의 1인 가구는 약 절반(약 50만 가구)이 ‘청년(15~39세) 1인 가구’인 게 특징이다. 이혼이나 배우자 사별 등으로 나타나는 중·장년 1인 가구를 훌쩍 앞선다.

주원인은 ‘초혼연령 상승’과 ‘비혼(非婚)’이다. 남성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2000년 25~29세에서 2015년 30~34세로 올라갔다. 같은 기간 20~30대 여성 1인 가구 총량은 두세 배가량 늘어났다. 전문가들이 “당분간 서울에서 ‘1코노미’ 트렌드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청년 1인 가구, 얼마나 늘었나 보니

자료: 통계청 인구총조사

서울에서 ‘1코노미’가 가장 잘 구현돼있는 지역은 관악구 신림동이다. 옛 고시촌이자 신림9동으로 불렸던 현 대학동부터 신림역 인근의 신림5동까지, 1인 가구가 사는 원룸·오피스텔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대부분의 신림동 식당에선 ‘혼밥’ ‘혼술’이 가능하다. 가게에서 먹거리를 소량 판매하는 것도 일상화돼 있어 소위 ‘알봉족’(물건을 낱개나 소량으로 구매하는 소비자)이 살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신림동이 1인 가구촌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낮은 집값’이다. 대전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지난해 이곳에 터를 잡은 박성범(25)씨는 "생활·교통 환경에 비해 집값이 싼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림동에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 전후의 값싼 1인 가구용 원룸·오피스텔이 많다. 박씨는 “다른 지역은 보증금이 보통 1000만원이 넘어간다”고 말했다.

신림동에서 시작된 1인 가구 추세는 최근 인근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20여년간 부동산 중개업을 한 김지희(56·여) 씨는 “약 5년 전쯤부터 신림동을 기준으로 서쪽의 구로디지털단지~동쪽의 봉천·서울대입구·낙성대를 잇는 ‘1인 가구 벨트’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시험 준비생이 많았지만 요즘은 강남·구로·여의도 등으로 출퇴근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많이 산다"는 게 김 씨 설명이다.

돈 없어 혼자 사는데, 혼자 살면 살수록 손해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현실은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과연 1인 가구로 살면 집값 부담이 적을까. 답은 ‘그렇지도 않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34세 청년 1인 가구의 빈곤율은 19.5%로, 부모와 함께 사는 동 연령대 청년(4.3%)보다 5배가량 높았다. 왜일까.

연구원은 “임대료 과부담 탓”이라는 답을 내놨다. 청년 1인 가구의 47%는 월소득 대비 주택임대료(RIR) 비율이 20%를 넘는다. 현대경제연구원도 20~30대 1인 가구의 슈바베계수(소득에서 주거비 지출 비중)가 18.4%로, 40~50대 1인 가구(17.9%)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2014년 기준).

더 심각한 문제는 1인 가구를 짓누르는 주거비용이 계속 요동치고 있다는 점이다.

1인 가구의 비중이 60%가 넘는 광진구 화양동, 관악구 신림동, 서대문구 신촌동, 성동구 사근동, 동대문구 회기동 등의 예를 보자. 이 지역 1인 가구 주택의 ‘평당 주거부담금’(전세가격을 월세로 전환한 값과 월세를 합친 값)은 비(非) 1인 가구 주택에 비해 가격 변동 폭이 훨씬 크고 더 불안정하다.

서울에서 1인 가구로 살려면 다인 가구에 비해 단위 면적당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것이다. 결국 둘이 살 큰 집 구할 돈이 없어 혼자 사는 청년들은 1인 가구로 살면 살수록 더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청년들은 현실이 이런데도 조세·의료 등 국가 복지정책이 2인 이상 가구에 맞춰져있다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직장인 김재훈(37·서울 신당동)씨는 “지난 2년간 연말 정산으로 매년 200만원 이상을 뱉어냈다”며 “사실상 ‘싱글세’란 생각이 들 만큼 세금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건강위험과 주거불안은 1인 가구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별도의 지원 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인터뷰

“청년 1인 가구 주거 복지, 심각하게 파괴”

김경민 교수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청년 1인 가구들은 지금 소득의 40% 가량을 집값로 쓰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25개구의 청년 1인 가구 실태를 조사한 결과 월 소득이 178만원이었다. 하지만 다세대주택을 기준으로 한 주거 비용(월세에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한 값)이 70만원 정도다. 학계에서는 소득 대비 주거비가 30%를 넘어가면 ‘주거 복지가 심각하게 파괴된 수준’으로 본다.

더 큰 문제는 높은 주거 비용 때문에 생애 주기에 걸쳐 주택 구입에 필요한 목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거다. 결혼ㆍ출산에 맞춰 집을 늘려가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결국 제대로 된 1인 가구 주거환경을 조성해줘야 비혼과 저출산 문제도 해결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청년 1인 가구의 주거 비용을 낮추기 위해선 정부가 공적 개발과 민간 개발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1인용 임대아파트 등을 제공하는 동시에 민간 부동산개발자들에게 개발비용ㆍ용적률 등에서 인센티브를 주면 1인 주거환경 개발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청년 1인 가구에게 미국식 ‘주택 바우처’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민에 한 해 소득의 30%가 넘는 주택임대료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주거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향후 전ㆍ월세를 벗어나 내집을 마련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청년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추세라면, 이들이 2인 가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때다.

출렁이는 1인 다세대주택 전·월세 비용

자료: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평당 주거부담금: 전세가격을 월세로 전환한 값을 월세에 합친 값

서울에서 1인 가구가 많은 지역

자료: 서울시
서울에서 1인 가구가 많은 지역

1인 가구 범례 지역

  • 60% 이상: 화양동, 신림동, 신촌동, 대학동, 을지로동, 사근동, 종로 1,2,3,4가동, 회기동, 남영동, 안암동
  • 55~60%: 가산동, 낙성대동, 영등포동, 청룡동, 역삼1동, 대흥동, 서림동, 필동, 명동
  • 50~55%: 서교동, 혜화동, 동선동, 논현1동, 군자동, 장충동, 이문1동, 중앙동, 소공동, 행운동, 서원동, 회현동
  • 45~50%: 광희동, 능동, 숭인1동, 휘경1동, 구로3동, 신사동, 신당동, 조원동, 이화동, 종로5,6가동, 청파동, 가리봉동, 노량진2동

1인 도시의 숙제 늘어나는 1인 가구, 불안한 1인 도시

서울 주거 유형의 도드라지는 특징 또 하나는 40대 미만 여성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서울 여성 1인 가구 수는 57만으로 2000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이중 25.4%가 30세 미만 가구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KB금융경영연구소는 “’앞으로도 혼자 살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여성 비율이 63.1%로 남성(39.3%)보다 훨씬 높았다”고 밝혔다(2017 한국 1인 가구 보고서).

20~30대 여성 1인 가구가 많은 지역은

자료: 서울시
마포구, 서대문구, 성북구, 동대문구, 성동구, 광진구, 강남구, 관악구

혼자 사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세금·집값 뿐만 아니라 안전도 큰 걱정거리다.

연초 트위터 등 SNS에선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란 해시태그가 큰 화제가 됐다. 많은 여성들이 혼자 살며 겪은 불안감, 실제 경험한 신변 위협 사례 등을 이 해시태그를 달고 공유했다.

최근 논현, 마포 등 여성 1인 가구가 많은 지역에 여럿이 함께 집을 나눠 쓰는 ‘셰어하우스’가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