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와 울산 접경의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 마을 주민 김미선(64)씨가 개 2마리와 함께 몽돌해변을 걷는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집 앞 해변을 산책한게 벌써 37년째다.
그새 이 마을 해변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옛날에는 하서해수욕장이라 불렸다. 2㎞ 떨어진 수렴리 인근까지 그림 같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산책을 할 때면 개들이 모래 위를 신나게 뛰어다녔다. 여름에는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 해변에 돗자리를 깔고 놀았다. 하지만 지금 백사장은 간 데 없고 방파제 쌓을 때 쓰는 테트라포드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하서해수욕장이란 이름 자체가 사라졌다.
태풍이 오면 이 옹벽을 넘어요. 파도가. 옹벽이 다 깨져서 몇 번째 (다시) 한 거 에요.
"태풍이 오면 이 옹벽을 넘어요. 파도가. 옹벽이 다 깨져서 몇 번째 (다시) 한 거 에요."
집 앞 백사장이 사라지면서 버려진 주택도 있다. 경북 경주시 감포읍 나정항 바닷가에는 80여㎡ 크기의 민박집 한 채와 낡은 주택 하나가 위태롭게 서있다. 민박집 주인 이모(81) 할머니는 시름이 깊다.
바다가 자꾸 뭍으로 들어와 백사장을 다 가꼬가부렸심더. 민박집 손님도 다 쫓아내고 내 집까지 빼앗아갈라고 카네예. 해녀 탈의실도 보이소. 걱정 아입니꺼...
"바다가 자꾸 뭍으로 들어와 백사장을 다 가꼬가부렸심더. 민박집 손님도 다 쫓아내고 내 집까지 빼앗아갈라고 카네예. 해녀 탈의실도 보이소. 걱정 아입니꺼..."
민박집·해녀 탈의실에서 바다까지 거리는 채 1m도 되지 않는다. 대문을 나서면 바로 바다인 셈이다. 파도가 심한 날이면 바닷물이 민박집 앞으로 튀어 오른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100 걸음은 걸어 나갈 수 있는 백사장이 있었어예. 그랬는데 매년 백사장이 줄어들더니 저렇게 집하고 바다가 딱 붙어버렸다 아입니꺼. 황당합니더.
"10년 전까지만 해도 100 걸음은 걸어 나갈 수 있는 백사장이 있었어예. 그랬는데 매년 백사장이 줄어들더니 저렇게 집하고 바다가 딱 붙어버렸다 아입니꺼. 황당합니더."
이씨는 최근 3년간 10번 넘게 자갈을 사다가 집 담과 바다 사이에 퍼부었다. 바다가 집으로 곧 들이닥칠 것만 같아서다. 그는 "집이 곧 잠겨버릴 것만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길 건너 슈퍼마켓 주인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파도가 높게 이는 날엔 바닷물이 2차선 도로를 넘어 가게 문 앞까지 튀기 때문이다. 경상북도가 앞 바다에 수중 방파제(잠제·이안제) 300여개를 설치했지만 별 도움이 안 됐다. 방파제 일부는 벌써 물에 잠겼다.
레일바이크 타러 사람들이 많이 왔죠. 하지만 3~4개월간 운영을 못했을 땐 관광객이 3분의 2 정도 줄었어요.
"레일바이크 타러 사람들이 많이 왔죠. 하지만 3~4개월간 운영을 못했을 땐 관광객이 3분의 2 정도 줄었어요."
강원도 강릉 정동진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강세호(63)씨 얘기다. 국내 대표 해맞이 명소인 정동진의 레일바이크는 지난 1월 선로 100여m가 무너졌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전체 5.1㎞ 중 절반인 2.8㎞ 구간에만 바이크가 다닌다.
하서해수욕장이 사라지고 정동진 레일바이크 선로가 무너진 건 해안침식(海岸浸蝕) 때문이다. 파도·바람 등의 영향으로 바닷가 모래와 토양·암석이 깎여 들어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해변에서 침식이 일어나면 해안선이 육지 쪽으로 후퇴하게 된다. 정동진에선 바다가 20~30m 길이의 백사장을 집어삼켰다. 그 탓에 주변 지반이 약해졌고, 옹벽이 무너지며 선로 붕괴로 이어졌다.
해안침식은 바닷가 주민들의 삶을 위협한다. 백사장은 폭풍·해일 등으로부터 육지를 보호한다. 침식으로 해안선이 후퇴하고 연안 수심이 깊어지면 이런 보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백사장이 사라지면 관광객도 줄어든다. 지역의 부가가치가 떨어지고 바닷가 주민들은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된다.
전국에서 해안침식이 가장 심한 곳은 경북 울진군이다. 5년간 11개 조사 대상 지점에서 22만4415㎡의 해변이 사라졌다. 경북 포항시에서도 화진·영일대 등 8개 해변 19만3670㎡가 바다로 바뀌었다. 강원도 강릉시에선 경포·안목 등 25개 지점 13만2285㎡, 고성군에선 송지호·삼포 등 26개 지점 8만9027㎡의 해변이 바다가 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최근 5년새 경북 55만2317㎡, 강원 39만4341㎡ 등 동해안 120여 곳 총 94만6658㎡의 해변이 사라졌다. 축구장(면적 7140㎡) 132개에 달하는 면적이 바다에 잠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