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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망가지고 땀띠 나도 '헤드폰 패션' 포기 못하는 이유 [비크닉]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들이 사는 건 나도 사고 싶어 하는 마케터 한재동입니다. 역대급 폭염으로 고통받는 요즘, 커다란 헤드폰을 목에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덩달아 저도 몇 년 전 사두었던 헤드폰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블루투스 이어폰보다는 더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이어폰보다 훨씬 무겁고, 머리도 망가지고, 정말 더웠습니다. 멋쟁이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야 한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걸까요? 오늘은 이런 불편함을 극복한 헤드폰 유행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얼마 전 타계한 일본의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 제품은 소니 MDR-Z7. 출처 thefader.com 애플이 만들면 유행이 된다, 에어팟 맥스(Airpods Max) 에어팟 맥스는 2021년 1월에 출시한 애플 최초의 무선 헤드폰이에요. 71만 9000원이라는 출시가격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오버이어(Over-ear : 귀를 덮는 식으로 착용하는 헤드폰) 타입의 헤드폰이 유행하지는 않았던 시기라 에어팟 맥스의 실패를 점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더구나 가격에 비해 통화 음질 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고, 무엇보다 너무 무거웠어요. 에어팟 맥스는 384g으로 타사 제품에 비해 100g 이상 더 나갑니다. 스마트폰은10g만 해도 엄청난 차이로 보는데, 그 10배인 100g 무거운 걸 목에 걸고 다닌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에어팟이 있어도 에어팟맥스를 구매하는 애플매니아가 많다. 출처 언스플래시 하지만 연예인 걱정만큼 쓸 데 없는 게 애플 걱정이었습니다. 우려와 달리 셀럽들이 하나둘 에어팟 맥스를 착용하며 유행이 시작되었어요. 아이폰과 맥북 등 기존 애플 제품과의 호환성이 좋아 소위 애플 생태계에 묶인 사람들도 에어팟 맥스를 구매했습니다. 에어팟 맥스가 패션아이템으로 자리 잡자, 논란이 되었던 가격과 성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에어팟 맥스를 다른 음향기기와 비교하지 않고, 하이엔드 브랜드의 액세서리로 인식하기 시작했거든요. 오버이어 헤드폰의 유행을 이끈 에어팟 맥스는 출시 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지금 에어팟 맥스를 사도 되는지 리뷰하는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고요. 올해 하반기로 알려졌던 에어팟 맥스 2세대 출시일이 불투명해지면서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에어팟 맥스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애플 제품이 나오면 구매할 수밖에 없고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라는 ‘애플병’의 대표사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헬스장에서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Beats by Dr. Dre 비츠 바이 닥터 드레(Beats by Dr. Dre, 이하 비츠)는 세계적인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닥터 드레와 음반사 인터스코프 대표 지미 아이오빈이 합작해서 2006년에 런칭한 음향기기 전문 브랜드입니다. 헬스장에 가면 비츠의 헤드폰을 끼고 운동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어요. 대부분 몸이 좋은 남성들이고요. 비츠의 성공은 스타 마케팅의 교과서적인 예시예요. 다른 브랜드에 비해 짧은 역사에도 셀럽을 이용해서 단시간에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에미넴이나 레이디 가가와 같은 유명 뮤지션은 물론 스포츠 스타에게 제품을 협찬해 이슈를 만들어 냈어요. NBA 스타들이 경기 전에 몸을 풀며 착용하는 걸 본 수많은 농구팬들이 그들을 따라 비츠를 쓰고 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박태환 선수가 런던 올림픽에 착용하고 나와서 국내에서도 ‘박태환 헤드폰’이라 불리기도 했고요. 화려한 색상의 제품이 많은 비츠 헤드폰. 출처 Unsplash 화려한 디자인과 닥터 드레라는 브랜드가 결합해 승승장구하던 비츠는 2014년 당시 애플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약 3조 원에 인수합병되었어요. 사실 비츠는 브랜드와 디자인을 소유하고 OEM 방식으로 생산한 뒤 음향 튜닝을 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그래서 고가임에도 종종 음질 논란이 있었어요. 하지만 애플에 인수된 뒤에는 이런 기술 논란은 없어지고, 애플의 인프라를 활용한 전 세계적인 A/S도 가능해졌습니다. 2016년에는 미국 무선 헤드폰 점유율 46%로 1위에 올랐어요. 에어팟 등 블루투스 이어폰 시대가 개막하고 에어팟 맥스의 유행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2021년 기준 미국 시장 점유율 2위(15.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헤드폰 유행의 가장 큰 수혜자, 소니(SONY) 오버이어 헤드폰 유행에는 ‘노이즈캔슬링’이라는 기술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노이즈캔슬링이란 외부 소음을 상쇄하는 기술로, 원래 비행기 제트엔진 소음 해결을 위해 개발되었다고 해요. 소니는 이런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탑재한 헤드폰을 최초로 판매한 브랜드입니다. 원래 음향으로 유명했던 회사인데다가, 노이즈 캔슬링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구현한 소니의 무선 헤드폰은 오버이어 헤드폰 유행 전부터 꾸준히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헤드폰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오디오 애호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죠. 가격도 40만 원대로 프리미엄 헤드폰 중에서 합리적인 편에 속합니다. 소니 코리아에 따르면 2022년 매출이 전년 대비 158.8%가 증가했다고 해요. 국내 판매 1위의 헤드폰 소니 WH-1000XM5. 출처 소니 특히 소니는 한국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 점유율은 11%, 6위에 그치는 데 비해 한국 점유율은 53%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요. 제품 사양과 가격 경쟁력의 우위, 그리고 MZ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Y2K(2000년대)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 때문이라고 해요. 소니 헤드폰 구매자 34%가 15~24세, 47%가 25~34세인데요. 소니 헤드폰의 폭발적 성장이 MZ세대의 전폭적인 사랑 덕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BTS 뷔가 사랑한 헤드폰, 보스(BOSE) 보스는 미국의 세계적인 음향기기 브랜드입니다. 음악 애호가였던 창업자 아미르 보스 박사는 기존의 스테레오 스피커들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음향기기를 직접 만들기 위해 보스를 설립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스피커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보스는 단숨에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어요. 보스는 오디오 기술의 개척자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오디오 시스템을 비롯한 노이즈 캔슬링 기술도 보스의 발명품이에요. 보스 헤드폰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2.5%(3위)입니다. 무선 헤드폰이지만 유선 케이블로 연결할 수 있어서 비행기에서도 사용할 수도 있고요. 보스 전용 애플리케이션으로 헤드폰의 다양한 기능을 쓸 수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BTS 멤버 뷔가 착용해서 ‘뷔 헤드폰’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블루투스 이어폰이 보편화되면서 보스는 위기를 맞아요. 에어팟 등장 이후 성장이 멈추고 매출은 줄어들어 2018년 40억 달러였던 매출이 2022년 30억 달러로 떨어졌습니다. 한때 9000여 명에 달했던 직원은 6000명대로 줄었어요. 트렌드의 변화가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국내에서 뷔 헤드폰으로 유명해진 보스의 NC700. 출처 Unsplash 헤드폰 유행은 계속될까? 헤드폰 유행은 패션계에 불고 있는 레트로 트렌드와도 연결돼요. 그렇다면 패션 트렌드가 바뀌면 ‘헤드폰 코디’ 유행도 끝일까요? 아마 그렇게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헤드폰을 찾는 사람들이 노이즈캔슬링을 중요한 기능으로 생각하는 것에 힌트가 있어요. 바로 헤드폰이 외부와의 차단을 통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도구라는 점입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이 지하철에서 헤드폰을 쓰고 외부와의 차단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 장면, ‘아일랜드’에서 주인공이 집중하기 위해 사제복에 헤드폰을 쓰고 구마 의식을 치르는 장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 목에 걸고 있던 헤드폰을 머리에 쓰는 순간 ‘방해금지’라고 외부에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이 헤드폰을 쓰고 있는 장면. 출처 중앙일보 프리미엄 헤드폰 패션 유행 덕에 많은 사람이 고품질의 음향기기를 경험하게 되었어요. 몰랐으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계속 좋은 음질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황금귀’가 된다면 헤드폰뿐만 아니라 스피커 등 프리미엄 음향기기 전체 시장이 커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비크닉 날개 없애고 목에 걸고…선풍기 바람 바꾼 게임체인저 [비크닉] '기저귀' 런웨이, 언더붑도 히트 쳤다…자크뮈스의 인스타 활용법 [비크닉] 다 키워놓고 왜 떠났을까…'배민' 만들고 전설 된 그의 메일엔 [비크닉] 유재석, BTS RM도 왔다…"韓 아닌 것 같다" 난리난 의정부 명물 [비크닉] 한재동 비즈솔루션본부 마케터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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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없애고 목에 걸고…선풍기 바람 바꾼 게임체인저 [비크닉]
━ 집콕 필수템 엔데믹 후 첫 여름휴가 시즌이지만 ‘집콕'이 대세인가 봅니다. 올해 여름휴가 계획을 묻는 질문에 '집에서 보내겠다'는 답변이 1위를 기록했어요(컨슈머인사이트 조사, 성인 3419명 대상). 고물가로 지갑 열 엄두가 안나서일 수도 있겠지만, 폭염과 잦은 폭우 등 변화무쌍한 날씨 탓도 있겠죠. 오늘 비크닉은 전기료 부담이 적어 24시간 내내 함께 할 집콕 휴가 필수템, 선풍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TV, 냉장고, 휴대전화 등 우리 곁의 모든 제품처럼 선풍기도 오랜 세월을 지나며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답니다. 시대별로 선풍기 판을 바꿔온 게임체인저들을 소개할게요. ━ 부의 상징이었던 1960년대 선풍기 금성사의 국내 1호 선풍기. 12인치 크기의 알루미늄 날개, 쇠파이프를 휘어 만든 몸통이 특징이다. 사진 LG전자 선풍기가 '금(金)풍기'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믿어지나요? 1960년대 후반까진 선풍기가 부의 상징이었답니다. 당시 한 대 가격은 쌀 다섯 가마니와 맞먹었거든요. 선풍기가 근로자 평균 월급보다 비쌌어요. 미제, 일제 선풍기는 이보다 두 배나 더 비싸서 외제를 사려면 두 달치 봉급을 털어도 모자랐죠. ━ 1970년대 파란 날개, 클래식 선풍기 대중화 D-301은 단명했지만, 점차 국가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선풍기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립니다. 1970~80년대에 클래식 선풍기가 집집마다 빠르게 보급돼요. 푸른 날개에 쇠로 된 촘촘한 보호망, 탁탁 돌아가는 타이머 버튼까지. 팬에 손가락을 넣으면 다칠 수 있어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선 그물망도 씌웠죠. 선풍기 대중화를 이끈 신일 선풍기(왼쪽). 최근엔 클래식 디자인을 재현한 탁상용 선풍기(오른쪽)도 출시했다. 사진 신일전자 신일전자가 70년대 스타일로 재현한 탁상용 선풍기도 레트로 열풍을 타고 인기예요. 더 놀라운 건, 아직도 예전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신일전자 관계자는 "아직도 선풍기를 고치기 위해 회사로 직접 제품을 들고 찾아오는 고객들이 많다"며 "시원한 에어컨이 있어도 낡은 선풍기를 고쳐 쓰려는 건, 풍요롭진 않지만 따뜻한 정을 나누고 살았던 옛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어요. ━ 2000년대, 값싼 중국산의 습격 국내 선풍기 시장의 특이점은 중견 가전기업의 장악력입니다. 신일전자(1위), 한일전기(2위) 등이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반면 대기업은 수십년간 중견기업의 벽을 넘지 못했어요. LG는 2005년 선풍기 사업에서 손을 뗐고, 삼성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죠. 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도 일찍부터 선풍기를 만들었지만, 오로지 선풍기 하나에 집중해 오랜 시간 모터, 날개 기술 개발 등 제품 연구・개발(R&D)을 지속해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중견기업들을 넘지 못했다"며 "대신 수익성이 높은 에어컨・세탁기・냉장고 등 대형가전 분야를 강화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고 설명했어요. 2000년대엔 잘나가던 선풍기 명가들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저렴한 중국산 제품이 습격한 겁니다. 일명 '깡통 모터'를 탑재한 저급한 제품뿐이라 판매량이 많진 않았지만, 국산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가격은 시장을 뒤흔들 수준의 충격파를 줬죠. 저가 중국산의 습격은 국내 선풍기 명가들이 믹서기, 청소기 등 소형 생활가전 시장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어요. ━ 2009년, 날개 없는 다이슨 선풍기 등장 2009년 다이슨이 출시한 날개 없는 선풍기는 선풍기 디자인의 틀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다이슨코리아 2000년대 후반엔 선풍기 디자인도 한층 진화합니다. 2009년 영국 가전기업 다이슨이 출시한 '날개 없는 선풍기'가 선발대였죠. 다이슨 선풍기는 본체 내에 있는 날개가 원형의 루프(loop)를 통해 바람을 분사하는 방식으로 선풍기 디자인의 틀을 깼어요. 다이슨은 '선풍기는 날개가 있어야 한다'는 통념을 뒤집은 동시에, 선풍기의 정의를 '공기의 흐름을 전달하는 제품'으로 바꿨어요. 이 제품이 출시되기 전까지 100여년간 시중에 판매돼 온 선풍기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전형적인 디자인 일색이었거든요. 바람이 고르지 않게 분사되기도 했고, 어린 아이들이 선풍기 안으로 손을 넣으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우려도 있었죠. ━ 2013년 '강남 선풍기' 된 발뮤다 프리미엄 선풍기 검은색과 흰색의 깔끔함이 특색인 발뮤다 선풍기. 사진 한국리모텍 다이슨이 전에는 없던 디자인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했다면, 일본 발뮤다는 '날개 있는' 선풍기 디자인의 고급화를 시도합니다. 2013년 국내에 출시한 제품이 일명 '강남 선풍기'로 유명세를 타면서 프리미엄 선풍기의 표준이 됐어요. 검은색과 흰색의 깔끔한 조화가 특색이죠. 발뮤다 선풍기하면 떼어놓을 수 없는 건 '저소음'입니다. 소음과 발열이 적으면서도 풍량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BLDC 모터를 탑재한 것이 승부수였죠. 과거엔 AC(교류)모터나 DC(직류)모터를 탑재한 제품이 많았지만, 최근엔 발뮤다처럼 많은 선풍기 제조사들이 BLDC 모터 선풍기를 출시하고 있어요. 전력 소모도 적어 전기료 절감 효과도 있답니다. 출발점은 가까웠지만 다이슨과 발뮤다는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듯 해요.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는 이후 선풍기에 공기청정기와 가습 공기청정기 기능을 결합한 제품으로 진화했어요. 이젠 선풍기라기보다는 공기청정기에 가깝죠. 반면, 발뮤다는 선풍기 본연의 기능을 지키고 있어요. ━ 2010년대 중반, 미국발 에어서큘레이터 인기몰이 에어서큘레이터를 최초로 개발해 대중화한 미국 가전기업 보네이도의 에어서큘레이터. 사진 보네이도코리아 선풍기도 점차 기능별로 분화했어요. 2010년대 중반부턴 에어서큘레이터(공기 순환기)가 인기몰이합니다. 선풍기와 비슷해 보여도 나선형 구조의 앞망, 블레이드, 가드링 측면 두께 등 선풍기와는 구조 자체가 다르죠. 3~4m의 짧고 넓은 패턴의 바람을 내보내는 선풍기와 달리, 에어서큘레이터는 15m 이상의 고속 직진성 바람을 내보내거든요. 예전엔 에어컨과 함께 사용하는 '보조 가전'이란 인식이 강했지만, 실내 온도를 균일하게 조절해 줘 쾌적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는 입소문에 2020년엔 국내 판매량만 100만 대를 기록, 필수 가전으로 올라섰다는 평가입니다. ━ 선풍기를 입다…손풍기, 목풍기에 발풍기까지 해를 거듭할수록 선풍기의 모습은 더 다양해지고 있어요. 2014년 등장한 손풍기(손선풍기)가 그 예입니다. 펜데믹으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하면서 소비자들이 열광했고, 마스크를 벗은 후에도 그 인기는 여전합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손풍기는 지난해 국내에서 1000만대 이상 판매됐어요. 손풍기. 사진 카카오프렌즈 요즘 10~20대가 좋아하는 휴대용 선풍기는 목에 걸어 사용하는 목풍기(넥밴드형 선풍기)예요. 넥밴드 이어폰처럼 생긴 목풍기는 말 그대로 목에 걸어 사용할 수 있어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요. 가격은 1만원 중반대에서 4만원 후반대까지 다양하죠. 최근엔 책상 위에서 사용하는 USB 선풍기를 비롯해 발바닥으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나오는 발풍기도 등장했어요. 전원, 풍량, 회전 버튼을 손 대신 발로 터치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죠. 앞으로 선풍기는 어디까지 진화할까요. ━ 뱀발: 선풍기, 살인 누명을 벗다 선풍기 괴담, 들어본 적 있어요?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켜놓고 잠들면 산소가 부족해져 사망할 수 있다는, 우리나라에만 떠돌던 도시괴담이에요. 지금은 허무맹랑한 헛소리라는 걸 알지만, 예전엔 일반인이든 전문가든 너나할 것 없이 선풍기 괴담에 진심이었어요. [비크닉] 선풍기 "선풍기를 켜 놓은 채 잠들었다가 사망한 사람이 벌써 4명이나 된다.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켜 놓고 잔다는 것은 일종의 자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덥더라도 선풍기를 켜 놓고 잠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매스컴도 여러 번 경고했다" -1973년 7월 27일자 중앙일보 칼럼 '안전피서' 중에서 서울 모처에서 숨진 한 시민의 사망 원인이 선풍기 때문이었다는 기사(중앙일보, 1972년 7월 18일)를 읽어보면, 무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통풍이 잘 안 되는 방 안에서 오랫동안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희(稀) 산소 현상으로 호흡에 심각한 장애를 줄 수도 있다’고 설명한 소견이 나와요. 서울 모 대학병원 의사도 “통풍이 안 된 방에서 선풍기를 틀고 잘 경우 산소결핍 현상인 ‘호흡성 산증(respiratory acidosis)’을 일으킬 수 있다"고 조언했어요.(중앙일보, 1973년 7월 27일) '선풍기=질식사' 이론은 이후 30여년간 정설처럼 유지됐어요. 1999년 8월 10일자 중앙일보 '잠못 이루는 열대야 기승…선풍기 사망 잇따라' 기사를 끝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켜 사망에 이르렀다는 기사는 쏙 사라집니다. 우린 이제 다 알죠. 선풍기와 질식사는 관련 없다는 걸요.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무더운 날씨가 심장에 부담을 줘 여름에 돌연사가 종종 발생하는데, 우연히 선풍기를 켜놨기 때문에 이런 속설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며 "선풍기를 튼다고 산소가 소모되는 게 아니므로 밀폐된 공간이라 해도 선풍기 때문에 질식한다는 우려는 근거가 없다"고 했어요. 다만, 실내에서 장시간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사용하면 호흡기 점막이 건조해지면서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조심은 해야겠어요. 비크닉 '기저귀' 런웨이, 언더붑도 히트 쳤다…자크뮈스의 인스타 활용법 [비크닉] 다 키워놓고 왜 떠났을까…'배민' 만들고 전설 된 그의 메일엔 [비크닉] 유재석, BTS RM도 왔다…"韓 아닌 것 같다" 난리난 의정부 명물 [비크닉] 오픈런까지 터진 '조선 나이키'…힙한 MZ, 왜 이 운동화 꽂혔나 [비크닉]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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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레몬이 '스포츠웨어의 샤넬'이 된 비결 [비크닉]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벌써 무더운 날씨에 다가오는 여름이 두려운 한재동입니다. 매년 많은 분이 저지르는 실수처럼 저도 여름을 준비하기 위해 회사 앞 헬스장을 등록했는데요. 막상 다니다 보니 헬스장 GX 프로그램인 요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장비부터 구매하는 중년 남성답게 자연스럽게 요가복 쇼핑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알고 보니 요가를 위한 용품에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스포츠 하면 익히 알고 있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놀라웠어요. 오늘은 요가복 시장에서 열풍을 일으켜 다른 스포츠까지 확장하고 있는 애슬레져(애슬레틱atheletic과 레저leisure를 결합한 용어) 웨어 브랜드 룰루레몬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합니다. 룰루레몬 이태원 스토어 팬츠월. 출처 룰루레몬 세상에 없던 재질과 디자인의 요가복 룰루레몬의 창립자 데니스 칩 윌슨(Dennis Chip Wilson)은 스케이트와 스노보드 등 레저를 즐기는 운동복 판매 사업가였습니다. 그는 42세가 되는 해 그간의 사업들을 정리했어요.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참여한 요가 수업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가 1998년, 룰루레몬이 세상에 나오기 1년 전이었어요. 당시 요가복으로 판매되는 제품은 극히 드물었어요. 사람들은 아무 운동복이나 입고 왔고, 윌슨도 헬스장에서 주는 옷을 그대로 입었다고 합니다. 요가는 정적이지만 매우 많은 땀이 나오는 운동이에요. 윌슨이 입은 옷들은 땀을 흡수하지 못했고 활동성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여느 레깅스도 스트레칭을 하면 원단이 늘어나 비침이 있어 요가를 할 때 입기에는 불편했어요. 윌슨은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 끝에 듀폰사의 고탄성 우레탄 섬유 라이크라와 나일론의 최적 혼합비율을 찾아냈습니다. 그게 바로 지금의 룰루레몬을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 ‘루온(Loun)’이라는 소재예요. 땀 흡수와 배출이 빠르고, 착용감과 신축성이 좋았습니다. 룰루레몬의 루온을 소재로 한 레깅스. 출처 룰루레몬 홈페이지 룰루레몬 요가복의 또 다른 차별성은 바로 ‘플랫 심(flat seam)’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이에요. 심은 옷감을 연결하는 솔기라는 뜻인데, 운동할 때 땀에 젖은 솔기는 매우 불편합니다. 윌슨은 철인 3종 경기복을 디자인했던 기억을 되살려 평면 솔기로 레깅스를 만들어요. 그리고 위치를 힙라인 쪽으로 배치해서 몸매가 돋보일 수 있도록 합니다. 세상에 없던 소재와 디자인으로 기존 제품과는 차별화를 이룬 룰루레몬의 레깅스는 타사 제품들의 세 배에 가까운 가격에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브랜드에도 페르소나가 필요하다 이름은 오션, 32세의 전문직 미혼 여성으로 연봉 10만 달러에 자신의 콘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여행과 패션을 좋아하고 하루에 한 시간 반을 운동하는 데에 씁니다. 오션은 룰루레몬의 페르소나에요. 30대라고 할 만도 한데 왜 딱 32살일까요? 룰루레몬은 목표 고객층이 스스로 되고 싶은 뮤즈를 매우 예리하게 설정한 거예요. 오션처럼 되고 싶어 하는 고객들은 룰루레몬을 구매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창업자 윌슨은 “ 22살 여성은 오션 같은 여자가 되기 위해 룰루레몬을 입고, 42살 여성은 10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 룰루레몬을 입고 싶을 것”이라고 했어요. 룰루레몬이 페르소나를 오션으로 정한 것은 창업자 윌슨이 요가 클래스에서 만난 많은 여성들을 관찰하고 대화하며 얻게 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룰루레몬이 가장 잘한다는 커뮤니티 마케팅으로 이어졌어요. 룰루레몬 초기에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임대료를 충당하려고 영업이 끝난 후에 요가 클래스에 공간을 대여해주며 시작되었어요. 차츰 요가 강사에게 시제품 착용과 피드백을 받고, 고객과 소통하는 창구로 변모했죠. 현재 룰루레몬 매장에서는 요가를 비롯한 러닝과 크로스핏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클래스를 경험해 볼 수 있어요. 룰루레몬의 요가 클래스. 출처 룰루레몬 룰루레몬이 매장을 늘리는 데에는 매출 증대 외에도 매장을 지역의 커뮤니티 허브로 삼아 더 많은 사람이 웰빙(well-being)을 누리게 한다는 목적도 있다고 합니다.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땀 흘리고(Move), 관계를 맺고(Connect), 성장(Grow)해서 건강하고 행복한 ‘스웻라이프’를 전파하겠다는 거죠. 수많은 요가 셀럽과 피트니스 관계자로 구성된 룰루레몬 앰배서더들이 스웻라이프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요가에 진심이면 생기는 일 룰루레몬은 유명 모델을 쓰지 않아요. 대신 룰루레몬 앰배서더로 선정된 요가와 피트니스 종사자들을 모델로 기용합니다. 보통의 패션 브랜드들이 하는 마케팅 공식을 따라가지 않고 요가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들이 제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해요. 한정된 공간의 매장을 벗어나 공원이나 숲, 모래사장 등 야외뿐만 아니라 대형 쇼핑몰이나 만리장성과 같은 관광지 등 다양한 공간에서의 요가 이벤트 등을 열기도 합니다. 만리장성에서 열린 요가 클래스. 출처 룰루레몬 차이나 SNS 매장에서는 직원들은 에듀케이터라고 하고 고객을 게스트라고 부릅니다. 에듀케이터는 일반적인 접객을 통해 제품을 파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해요. 고객이 즐겨하는 운동과 숙련도 등 상황에 맞는 제품 추천과 피팅을 도와주고, 매장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천해서 요가를 비롯한 운동이 삶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게 돕습니다. 나아가 직접 지역 커뮤니티의 트레이너들과 소통을 통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역할도 하고요. 에듀케이터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바로 고객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하는 창구가 되는 것입니다. 피팅룸에서 혼잣말로 하는 불평까지 수집하는 걸 목표로 삼고 다양한 고객의 목소리를 본사에 전달해 제품개발과 마케팅에 반영한다고 해요. 이를 바탕으로 에버럭스, 럭스트림, 눌루와 같은 최첨단 소재의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고가이지만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제품을 보여주는 룰루레몬에 먼저 반응한 것은 셀럽들이었어요. 킴 카사디안, 켄달 제너 등이 룰루레몬 레깅스를 입고 파파라치들에게 노출되었고, 심지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룰루레몬의 아우터를 즐겨 입었습니다. 유명 인사들이 스스로 룰루레몬의 홍보대사로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을 증명하다 룰루레몬은 나이키 등 많은 브랜드들이 근래에 도입하고 있는 D2C(Direct to Customer) 방식의 판매를 사업 초기부터 도입했습니다. 유통업체의 가격 인하 정책 때문에 브랜드 평판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 직접 고객과 마주해서 의견을 받고 그들의 경험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어요. 2010년대에 들어 요가 붐이 일며 룰루레몬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침없이 성장해 가던 룰루레몬에게도 위기가 있었어요. 위기는 내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13년 룰루레몬의 바지 속이 비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옵니다. 보풀 등 연달아 제품 품질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룰루레몬은 문제가 된 제품들을 리콜했어요. 논란을 수습하려던 창업자는 고객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해서 문제를 키우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취임한 CEO도 스캔들에 휘말려 낙마했고요. 성장세가 주춤해지고, 월가에서는 룰루레몬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습니다. 그때 등장한 구원투수가 바로 현재의 CEO 캘빈 맥도널드이에요. 룰루레몬의 현재 CEO 캘빈 맥도널드(Calvin McDonald). 출처 룰루레몬 맥도널드는 2018년 취임한 뒤 확장을 위한 세 가지의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첫째는 여성 위주의 제품군을 남성까지 확장하고, 둘째는 온라인몰과 매장을 연결해 충성 소비자를 늘리고, 셋째는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로 했어요. 2023년까지 남성 매출과 온라인 매출 2배 성장, 글로벌 매출 4배 성장을 목표로 했습니다. 조직 내 R&D 부서를 재가동하며 품질 관리도 박차를 가했고요. 룰루레몬은 목표를 예상보다 일찍 달성했습니다. 22년 기준으로 남성 제품의 매출 비중은 25%를 상회하고, 자사 온라인몰의 매출 비중은 44%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어요. 중국을 비롯한 해외 진출도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모두에게 위기였던 팬데믹은 원마일웨어(one-mile-wear : 집에서 1마일 반경 내에서 입을 수 있는 옷) 열풍을 일으키며 룰루레몬에는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팬데믹 시대의 대성장, 앞으로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팬데믹 시기 호황을 누린 100대 기업에 선정할 정도로 룰루레몬은 호황을 누렸어요.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자 사람들은 비즈니스 복장을 애슬레저 웨어로 대체했고, 그중 가장 독보적인 브랜드가 룰루레몬이었기 때문입니다. 매장이 폐쇄되어 매출 감소가 우려되었지만 자사 브랜드몰의 온라인 판매가 급증하며 결과적으로는 큰 성장을 이루었죠. 팬데믹이 끝나고 외부 상황에 의한 호재는 끝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히려 최대실적을 기록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건강한 삶에 대해 관심이 커지며 애슬레저 장비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중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룰루레몬은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기도 한데, 홈 피트니스 영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거울을 통해 요가 코치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 ‘미러’를 인수했습니다. 고객 멤버십 프로그램을 런칭했고, 골프 및 테니스 등 스포츠 카테고리를 더욱 확장했어요. 아직 한국에는 미출시 되었지만, 북미에는 슈즈도 발매했습니다. 룰루레몬이 4월 연 익선동 팝업스토어 전경. 출처 룰루레몬 룰루레몬은 더 많은 사람이 제품을 입어보고, 건강한 삶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해요. 제품과 가치관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과연 요가를 넘어 세계 최고의 종합 스포츠 브랜드가 되겠다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지켜볼까요? 비크닉 꺽꺽 소리내 울던 자립준비청년…그 속 얘기, 양말이 되다 [비크닉] 커피 머신에서 콜드브루가 나온다고? 캡슐 커피의 진화 [비크닉] 루이뷔통도 반했다…외면받던 '목욕탕 샌들'의 변신 아기상어 다음 타자는 물범 ‘씰룩’ 페이크 다큐 [비크닉] 한재동 비즈솔루션본부 마케터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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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뷔통도 반했다…외면받던 '목욕탕 샌들'의 변신
버켄스탁과 디올(DIOR)이 협업한 샌들. 사진 디올 홈페이지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갑은 얇지만 사고 싶은 것은 넘치는 박영민입니다. 요즘 부쩍 더워졌죠? 6월 초인데 낮 최고기온이 섭씨 30도를 넘기도 합니다. 계절감을 잊은 날씨 때문에, 혹은 다가올 여름 휴가를 위해 부랴부랴 여름옷 쇼핑을 하고 있진 않나요? 저도 최근에 급하게 티셔츠 하나와 반바지 하나를 샀습니다.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반바지로 다리를 드러내니 한껏 시원하긴 한데, 거울에 비친 모습이 왠지 밋밋했어요. 여름 패션과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 목이 긴 양말이 옥에 티였죠. 이럴 때 필요한 아이템은 샌들이에요. 맨발로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슬리퍼에 발목을 감싸는 밴드, 여름에 신었을 때 이보다 시원한 신발은 없죠. 샌들도 스테디셀러가 있습니다. 한 번도 안 신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신어본 사람은 없다는 샌들. 여름이 돌아오면 한 번쯤 떠올리는 독일의 버켄스탁(Birkenstock)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버켄스탁이 무려 250여년의 역사를 지닌 브랜드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버켄스탁은 한때는 '목욕탕 샌들'이라며 외면받을 때도 있었지만 애슬레저룩(일상생활과 레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패션)이 뜨면서 다시 사랑받고 있어요. 돌아보니 이 브랜드가 뜨고 졌던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브랜드 뜨고지고'를 연재하며 브랜드의 흥망성쇠 포인트를 분석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오늘 비크닉에선 버켄스탁이 어떻게 실패하고 어떻게 그를 극복해 성공했는지 알려드릴게요. 독일 라겐버그의 교회 기록 보관소에 보존돼 있는 버켄스탁 창립자 요한 아담 버켄스탁의 모습. 사진 버켄스탁 홈페이지 ━ 18세기 독일에 버켄스탁이라는 구두장이가 있었다 여름 신발의 대표 주자인 버켄스탁, 250년 전인 1774년 독일의 작은 마을인 라겐버그 출신의 한 신발 공이 창업했어요. 당시 한반도는 조선 중기(영조 50년)였다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유서 깊은 브랜드죠. 오래된 독일 브랜드들이 그러하듯, 버켄스탁이라는 이름도 브랜드 설립자인 요한 아담 버켄스탁에서 땄습니다. 창립자 요한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른 나이에 교회에서 시작한 구두장이의 길은 버켄스탁 가문의 가업이 됐습니다. 교회 밖으로 나온 건 1896년, 4대인 콘래드 버켄스탁이 프랑크푸르트에 신발 공장을 두 곳을 설립하면서입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는 온천 관광객이 많았고, 콘래드 버켄스탁은 미끄러운 사우나 바닥을 잘 걸어 다닐 수 있는 샌들을 만들었어요. 콘래드는 이상적인 신발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한 사람입니다. 15년간 사람들의 발바닥 모양을 본뜨다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평가되는 안창을 개발했죠. 라텍스와 코르크를 혼합한 오늘날의 버켄스탁이 탄생한 겁니다. 푹신하면서도 안정감 있게 발을 감싸고, 오래 신을수록 신는 사람의 발 모양대로 밑창이 변하죠. 그러던 중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부상병을 위한 신발로 널리 알려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버켄스탁을 접했습니다. 전쟁 중 편한 안창을 경험한 퇴역 군인들이 전후에도 버켄스탁을 찾았어요.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고, 독일에선 가정마다 버켄스탁 한 두 켤레씩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국민 신발이 됐죠. 한때 버켄스탁은 양말을 신고 샌들을 착용하는 '아재'들의 전유물이었다. 사진 언스플래시 ━ 기능성 신발이란 꼬리표…아뿔싸, 200년을 갈 줄이야 인체공학적인 샌들로 사랑을 받은 버켄스탁. 하지만 무기인 '편안함'은 패션이 될 수 없었습니다. 1960년대엔 190여년 만에 최대 시장인 미국에 진출했지만, 기능성 신발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건강용품 상점에서 판매됐어요. 일반인보다는 오랜 시간 동안 서 있는 직업을 가진 특수 업 종사자들이 선호하는 신발이었죠. 패션과는 거리가 먼 기능성 신발이란 꼬리표는 버켄스탁에 꽤 아픈 손가락이었을 겁니다. 다양한 연령을 타깃할 수 있는 확장성이 없기 때문이죠. 이게 꽤 오래 갑니다. 양말에 버켄스탁을 신은 중년 남성의 꼴불견다움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면서 '아재' 혹은 '패션테러리스트'의 전유물인 독일제 샌들로 전락하고 맙니다. 버켄스탁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콘래드가 경영에서 물러나고 그의 아들인 칼 버켄스탁이 경영에 뛰어들면서 디자인을 신경쓰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애리조나', '마드리드'가 모두 칼이 만든 제품이죠. 2000년대에 들어서는 200년 이상 브랜드를 운영해 온 버켄스탁 가문이 경영권을 누가 갖느냐의 문제로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치열한 밥그릇 싸움 끝에, 2012년부턴 브랜드 소유권만 가문이 가지고 경영은 전문 경영인이 맡습니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는 2021년 2월 40억 유로(약 5조4000억원)에 버켄스탁을 인수했다. 사진 언스플래시 ━ 250년 브랜드 정체성에 루이뷔통도 빠져들다 올리버 라이헤르트와 마르쿠스 벤츠 베르크 두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버켄스탁은 180도 달라집니다. 홍보·마케팅 부서도 만들고 밑창에 쉽게 닳는 코르크 대신 고무를 넣어보는 등 디자인도 손을 봤죠. 타 브랜드와의 협업도 도전합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셀린느와 협업한 샌들을 출시하면서 인지도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어요. 이후에도 지방시·발리·질 샌더·발렌티노·아크네 스튜디오·디올·아더에러 등 무수히 많은 브랜드와 협업했어요. 결과적으로 전문 경영인 체제는 버켄스탁의 신의 한 수였습니다. 2012년 1000만 켤 수준이었던 판매량이 2017년 2500만 켤레 수준으로 2.5배나 성장했거든요. 2019년부턴 팬데믹으로 애슬레저룩과 원 마일 웨어(집 반경 1마일 이내에서 입는 간편한 옷)가 대세로 떠오르며 편안한 신발이란 장점이 탄력을 받아요. 이를 눈여겨보던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인 프랑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는 2021년 2월 40억 유로(약 5조4000억원)에 버켄스탁을 사들입니다. 벨기에 사모펀드 CVC 캐피탈 파트너스와 막판까지 각축전을 벌이는 등 인수전도 치열했죠. 인수에 성공한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버켄스탁은 신발업계에 몇 안 되는 상징적인 브랜드”라며 “오랜 전통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 흥망 포인트💡: '편안함'에 졌다가 다시 '편안함'에 떴다 '발이 가진 본연의 기능을 보호하면서 가장 편안한 신발을 만들겠다'는 경영 신념을 250여 년간 지킨 덕분에 명품 브랜드가 된 버켄스탁. 이 브랜드의 흥(興)과 망(亡)을 가른 건, 첫째도 둘째도 '편안함'이란 정체성이었습니다. 발 건강을 위한 편한 신발이라는 이미지가 오랜 시간 각인되면서, 코로나 시대 웰빙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다시 화려하게 복귀하기 전까지 패션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시절도 길었습니다. 하지만 발바닥에 무리가 가지 않는 편한 신발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었어요. LVMH가 버켄스탁을 갖고 싶었던 이유도 250여년 유지한 이 정체성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을 한 신발을 출시하긴 했지만, 브랜드 철학과 일치하는 브랜드가 아니면 함께 작업하지 않는 것도 버켄스탁이 지키는 철학이랍니다. 이쯤 되면 참 한결같은 브랜드죠? 미국 오리건주 포트록 동굴에서 출토된 샌들. 원형이 보존된 가장 오래된 신발이다. 사진 오리건대학교 자연문화사박물관 ━ 뱀발🐊: 최초의 신발 인류 최초의 신발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바로 답을 말하자면, 이 신발의 형태에 대해선 아무도 모릅니다. 남아 있는 자료가 별로 없어서죠. 다른 유물들에 비해 신발의 자료를 찾기 힘든 이유는, 신발에 사용된 재료들이 나무껍질이나 짐승의 가죽 등 부패하기 쉬운 것들이라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럼 우리는 언제부터 신발을 신었을까요. 책 『가장 인간적인 것들의 역사(율리우스 립스 저)』에 따르면 인류는 대략 4만년 전부터 신발을 신고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신발은 나무껍질이나 짐승의 가죽으로 발을 감싸는 정도였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에요.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잭 챌리너 저)』에 따르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신발은 미국 오리건주 포트록(Fort Rock) 동굴에서 발견한 샌들이에요. 기원전 1만500년에서 9300년쯤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이 신발은 발등과 발목을 끈으로 묶을 수 있는 지금의 샌들과 거의 비슷한 형태죠. 오래된 것은 버켄스탁뿐만이 아니었나 봐요. 비크닉 아기상어 다음 타자는 물범 ‘씰룩’ 페이크 다큐 [비크닉] 단짠은 알고 당근맛은 모른다? 풀무원이 미각교육에 뛰어든 사연 [비크닉] “이게 진짜 무신사 냄새” 무신사가 브랜드 키우는 이곳[비크닉] 삼다수, 냉장고 넣으면 맛없다? 가장 맛있게 마시는 법 [비크닉]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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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그라운드 세계관까지 담았다…스토리로 진화하는 롯데월드 [비크닉]
우리나라 테마파크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창경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어요. 일제가 1909년 창경궁에 동식물원을 비롯한 탑승시설을 설치합니다. 이름은 창경원으로 격하하죠. 현대적인 테마파크는 1970년대와 80년대 고도성장 시기 등장합니다. 국민 소득과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에 걸맞은 규모와 테마를 가진 어린이대공원, 자연농원, 롯데월드가 차례로 문을 열어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전성시대를 누렸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가라앉기도 했습니다. 펜데믹 여파로 타격을 입은 데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되면서 글로벌 테마파크와 경쟁도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죠. 한편에선 우리만의 스토리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어트랙션(놀이기구)이 많아져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 속에서 롯데월드가 새로운 스토리를 담은 어트랙션을 새롭게 내놨다고 해요. 오늘 비크닉에서는 그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롯데월드의 신규 어트랙션 '배틀그라운드 월드 에이전트'을 즐기는 모습. 롯데월드. ━ 슈퍼마리오 제친 우리나라 게임, 현실에 등장하다 7500만장. 국내 게임제작사인 크래프톤이 내놓은 배틀그라운드의 2021년말 기준 판매량이에요. 출시 4년 만에 이룬 업적이에요. 역대 비디오 게임 판매순위 5위에 해당하죠. 1980년대 나온 일본의 히트 게임 슈퍼마리오 판매량(5800만장)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입니다. 배틀그라운드는 한때 동시접속자가 31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어요. 부산광역시 인구에 육박하는 게이머들이 한데 모인 셈이죠. 국내 게임사 크래프톤이 개발한 배틀그라운드. 크래프톤 공식 홈페이지. 배틀그라운드의 성공 비결은 흥미로운 스토리에 있어요. 한 러시아인이 생존 게임을 개최하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00명의 게이머들은 고립된 지역에 맨몸으로 떨어집니다. 이곳에서 각자만의 전략을 세워 전투를 진행하며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경쟁합니다. 치열하게 생존하려는 과정에서100인 100색의 이야기가 탄생합니다. 이를 공유한 영상들은 유튜브, 트위치 등 콘텐트 플랫폼에서까지 인기몰이하기도 해요. 이런 이야기를 온라인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게 하면 어떨까요. 롯데월드는 이런 발상을 실제 행동에 옮깁니다. 지난 2020년부터 배틀그라운드를 어트랙션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해요. 그 결과물인 ‘배틀그라운드 월드 에이전트’가 올해 5월 5일 어린이날 맞아 오픈합니다. 이렇게 개발하는 데만 약 100억원을 투자했다고 해요. ━ 가장 오래 경험하는 어트랙션 약 12분. 배틀그라운드 어트랙션 체험에 소요되는 시간입니다. 다른 롯데월드 어트랙션 탑승시간은 어느 정도일까요. 아트란티스는 1분 48초, 혜성특급은 2분 15초, 자이로스윙은1분 45초라고 해요. 여기에 비하면 배틀그라운드는 왜 이렇게 길어진 걸까요. 이제 롯데월드 어트랙션 개발팀장에게 물어봤어요. 이제 롯데월드 어트랙션 개발팀장. 박이담 기자. “배틀그라운드 세계관을 최대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체험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실제 게임이 진행되는 단계를 각 3분 내외로 진행되는 세 가지 라이드(탈 것)로 구현했어요. 라이드와 라이드 사이도 자연스레 연결되도록 해서 시간이 더 소요되죠.” 개략적인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먼저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장소로 이동하는 군용기에 탑승하고, 생존을 위해 직접 전투를 벌이고, 마지막으로 해당 지역에서 벗어나는 차량을 타는 순서로 구성됩니다. 몰입을 위해 외부 개입도 최소화했어요. 스토리를 따라 스스로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를 ‘워크스루(Walk-thrugh·걸어서 체험하는 형태)’ 어트랙션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다양한 기술까지 적용했습니다. 수송기 탑승을 현실감 있게 구현한 모션시뮬레이터, 전투 체험을 실감 나게 표현한 미디어월 등이 도입됐어요. 롯데월드의 신규 어트랙션 '배틀그라운드 월드 에이전트'을 즐기는 모습. 롯데월드. 스토리도 세계관은 살리되 일부는 새롭게 기획했다고 해요. 배틀그라운드는 보통 혼자 내지 소수로 플레이하잖아요. 현실적으로 소수만 즐길 수 있는 어트랙션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롯데월드의 배틀그라운드는 한 번에 16명이 함께 미션을 수행해요. 이를 위해 배틀그라운드 제작사와 추가로 스토리를 개발한 거죠. 재미난 영화나 소설의 속편을 볼 때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의도했다고 해요. “통상적인 어트랙션 개발은 2년이 걸리는데 배틀그라운드는 3년이 걸렸습니다. 지식재산(IP)을 가진 크래프톤과 컨셉을 기획하는 데만 1년 가까이 공을 들였기 때문이죠. 개발 과정에선 기존 배틀그라운드의 세계관은 물론 디자인 자원까지 가져와 배틀그라운드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노력했습니다.” ━ 우리나라 게임에 손 내미는 이유 롯데월드가 우리나라 게임을 현실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지난해 11월에는 넥슨과 손잡고 ‘카트라이더 레이싱 월드’라는 어트랙션을 내놨어요. 카트라이더는 넥슨이 2004년 내놓은 게임이에요. 귀여운 캐릭터들이 카트를 타고 경주를 벌이는 방식입니다. 이 카트를 현실에 그대로 구현한 겁니다. 게임 속 모습과 동일한 카트 8대를 나눠타고 직선, 곡선이 뒤섞인 트랙을 질주하는 거예요. 지난해 롯데월드가 내놓은 어트랙션 '카트라이더 레이싱 월드'. 롯데월드. 사실 롯데월드의 초기 컨셉은 ‘작은 지구마을’이었대요. 세계 각 나라의 볼거리를 가져와 한곳에서 즐기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놀이기구 이름에 국가 이름이나 상징이 많은 이유에요. 후렌치 레볼루션, 스페인 해적선, 파라오의 분노, 신밧드의 모험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트랙션을 하나둘씩 교체하면서 초기 컨셉이 무너지는 문제가 벌어져요. 인기를 끄는 어트랙션도 자이로드롭이나 아트란티스 같은 스릴 위주 대형 시설물이었죠. 탄탄한 스토리도 부재했고, 기존 어트랙션과 조화를 이루기도 어려웠어요. 해외에서 탄탄한 컨셉과 스토리를 가진 테마파크를 경험한 고객 눈높이를 맞추기에 역부족이 된 겁니다. “테마파크 사업에서 콘텐트의 힘이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해외 유명 테마파크들도 새로운 콘텐트 발굴을 위해 유명 IP와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있어요. 일반적인 롤러코스터를 만들더라도 색다른 IP와 융합해 스토리가 있는 세계관 내에서 구현하려는 거죠. 롯데월드도 콘텐트 자구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국내 게임사와의 협업도 롯데월드의 스토리를 확장해나가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게임사는 좋은 스토리 파트너라고 할 수 있어요. 게임 속에는 새로운 세계관과 방대한 스토리를 담겨 있죠. 그 안에 활용할 수 있는 콘텐트가 무궁무진한 셈이에요. 게임을 즐기는 수많은 팬도 잠재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특히, 배틀그라운드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해 해외에도 팬이 많아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 미국의 디즈니랜드를 직접 찾아가듯 배틀그라운드 팬이 배틀그라운드 어트랙션을 체험하러 우리나라 롯데월드를 찾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매력적인 스토리와 세계관을 가진 IP의 힘이죠. 앞으로도 롯데월드는 매력적인 IP 발굴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해요. 롯데월드의 매직캐슬 전경. 롯데월드. ━ 테마파크의 미래 특정한 주제로 놀이시설이나 이벤트를 기획해 즐거움을 주는 비일상적인 공간. 테마파크의 정의에요. 테마파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비일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거대한 공간과 다채로운 어트랙션으로 입장하기만 하면 탑승객은 곧바로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죠. 최근엔 같은 무기를 지닌 경쟁자가 많아졌어요. 클릭 몇 번이면 접속할 수 있는 게임이나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가 대중화됐고요. 집 근처엔 쇼핑시설뿐 아니라 볼거리까지 가득한 복합쇼핑몰까지 곳곳에 들어섰습니다. 이런 위협이 오히려 테마파크에 좋은 자극이 될 거예요. 더 실감 나는비일상을 만드는 데 힘 쏟을 거예요. 이를 도와줄 기술도 발달하고 있고요. 특히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어요. 롯데월드는 후렌치레볼루션 등 주요 어트랙션에 VR 기술을 적용한 바 있죠. 이들 기술은 테마파크가 구현하려는 세계관과 이야기를 더 몰입력 있게 만들어주는 거죠. 롯데월드의 공식 캐릭터인 로티와 로리. 롯데월드. 자기만의 색깔 있는 IP를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관찰됩니다. 세계관과 스토리를 직접 만드는 거죠. 롯데월드도 개장 때부터 선보였던 로티와로리라는 캐릭터가 있어요. 1990년엔 이 둘을 주인공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죠. 이 밖에도 30개가 넘는 캐릭터가 더 있더라고요. 롯데월드는 이 캐릭터를 중심으로 롯데월드만의 세계관을 정립해나가는 작업도 착수할 거라고 해요. 박이담 기자 park.id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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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보다 더 해로운 바닷속 천덕꾸러기…폐어망, 가방이 되다 [비크닉]
━ 플라스틱 빨대보다 바다에 해로운 이것 2021년 개봉한 넷플릭스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씨스피라시(Seaspiracy)'는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플라스틱 빨대가 아닌 폐어망이라고 주장합니다.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된 플라스틱 빨대는 바다 쓰레기의 0.03%에 불과하지만, 폐어망은 무려 50%를 차지한다는 지적에 세계가 경악했죠. 절반이라는 수치엔 논란의 여지도 있어요. 큰 바다에 버려진 수많은 플라스틱 중 폐어망의 비중이 정확히 몇 퍼센트일지 가늠하긴 퍽 어려운 일일 테니까요.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버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폐어망이 바다 생물들에 고통을 가하고 있고 해양 오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크고 튼튼해 잘 분해되지도 않는 이 바다 쓰레기를 처리하겠다고 나선 기업들이 있어요. 폐어망을 수거해 친환경 재료로 탈바꿈하는 자원 순환 소셜 벤처 '넷스파', 또 그 재료로 가방으로 만드는 친환경 패션 스타트업 '플리츠마마'입니다. 비크닉이 이들을 밀착 취재했어요. 폐어망이 가방으로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을 독자 여러분께 자세히 소개해 드릴게요. 사진 플리츠마마 ━ 석유서 얻는 나일론, 버려진 폐어망서 뽑는다 폐어망의 실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0일 아침 일찍 부산 다대포항을 찾았어요. 일회용으로 사용되다 그대로 바다에 버려진 폐어망들이 어촌 곳곳에 방치돼 있었죠. 한구석에선 넷스파 직원들이 직접 수거한 폐어망을 선별하는 데 한창 열중하고 있었답니다. 멀찍이서 보면 초록색이었던 폐어망,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느다란 초록색 실과 좀 더 굵고 진한 초록 실, 그리고 흰 로프 등 세 종류의 합성수지가 얽히고설켜 있었어요. 각각 산업 곳곳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나일론(PA6),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죠. 넷스파가 부산 다대포항에서 수거한 폐어망. 나일론, PE, PP가 얽히고설켜 있는 형태다. 사진 홍성철 폐어망의 나일론을 잘게 부숴 이렇게 작은 입자의 플레이크(flake)를 만든다. 사진 홍성철 가방은 나일론으로 만들고요, PE와 PP는 전자제품의 재표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해요. PE, PP와 나일론 사이를 가위로 싹둑 잘라 분리했어요. 이후 원료들을 컨베이어 벨트에 투입해 거칠게 부수고(파쇄), 잘게 갈았더니(분쇄) 플레이크(flake)라는 작은 입자로 바뀌었어요. 송동학 넷스파 이사는 "나일론은 석유를 정제해 만드는 합성수지인데, 폐어망을 재활용해 만들면 석유로 만드는 과정과 비교해 탄소를 73% 줄일 수 있다"며 "이를 숫자로 환산하면 1t당 30년 된 소나무 680그루를 심는 효과"라고 설명했어요. 플리츠마마가 폐어망으로 만든 가방들. 사진 플리츠마마 ━ 폐어망을 왜 가방으로 만들까 플레이크를 화학 약품으로 세척하고 원사(실)를 만드는 공정은 섬유·의류 기업 효성티앤씨가 담당해요. 넷스파와 효성티앤씨가 협업해 만든 실로 플리츠마마가 서울 홍대에 위치한 공장에서 가방을 제작하죠. 폐어망은 국내에서 처리할 방안이 사실상 없어 어민들에게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어요. 30여 년 전엔 이를 압축해 중국 등으로 수출했는데, 1992년 발효된 바젤 협약으로 국가 간 폐기물 이동이 금지되면서 반출할 수도 없게 됐죠. 폐어망을 소각하거나 매립한다 해도 비용이 발생할뿐더러 또 다른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왕종미 플리츠마마 대표. 사진 플리츠마마 플리츠마마는 지난해 11월 폐어망으로 만든 제품을 처음으로 출시할 수 있었어요. 2020년,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페트병을 업계 최초로 재활용해 선보인 지 2년여 만의 일이죠. 페트병에서 폐어망으로 자원 선순환 구조를 넓힌 결실이었죠. 폐어망 가방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왕종미 플리츠마마 대표와 직원들이 생각해 냈어요. 왕 대표는 “페트병은 주변에 널려 있지만, 폐어망은 되게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꼈다”며 "폐어망이 페트병보다 바다를 더 오염시킨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활용할 방법을 연구했다"고 했어요. 그는 "국산 폐페트병 자원을 선순환하는 구조를 가장 먼저 만들어 냈듯, 폐어망으로도 해보고 싶었다"며 "예쁜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도 많지만, 예쁜 제품을 얼마나 의미 있게 만드느냐도 중요하다. 가치와 의식도 소비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덧붙였어요. ━ 자원 선순환이 패션 키워드로 플리츠마마는 요즘 새로운 재활용 소재를 찾고 있어요. 이를테면 여름에 편의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이스 컵 같은 것들이죠. 왕 대표는 "아이스 컵은 투명해 보이지만 첨가물이 들어 있어 재활용이 어렵다. 기름기나 세제가 묻어 있는 플라스틱, 색을 입힌 플라스틱도 장섬유로 뽑을 수 없어 활용도가 낮았다"며 "이들을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것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 생각해 여러 기업과 손잡고 연구하고 있다"고 했어요. 플리츠마마가 외치는 자원 선순환에 투자자와 소비자도 공감하고 있어요. 2018년 6월 브랜드를 론칭한 지 약 4년여 만에 누적 투자액 5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매출도 연평균 150%씩 성장하고 있어요. 플리츠마마 외에도 국내외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이 시장에 관심을 보여 향후 친환경 소재를 재활용한 신기한 아이템들이 빛을 볼 전망입니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는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리사이클링 메시와 공장에서 재단하고 남은 가죽 조각을 재활용한 리사이클링 가죽으로 스니커즈를 만들고 있고요. 코오롱FnC의 남성복 브랜드 '시리즈'와 패션 브랜드 '카네이테이'는 버려지는 군용 텐트를 사용해 만든 가방·지갑·모자·앞치마 등을 출시했어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제품에 관심이 늘어나면서 관련 업계에선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12%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어요. 2050년엔 시장 규모가 60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에요. 사진 언스플래시 ━ 뱀발: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되다 리사이클링(Recycling, 재활용)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불필요한 물질을 수거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뜻합니다. 소재 자체를 녹이거나 재처리해 새로운 소재로 환원하는 것. 폐페트병을 수거해 세척, 실을 뽑아 옷이나 가방으로 만드는 것도 재활용의 일종이죠. 플리츠마마가 폐어망으로 만든 가방은 어망의 나일론을 재활용한 제품이에요.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링을 합친 단어인 업사이클링(Upcycling, 새활용)은 쓸모가 사라진 물질에 새로운 디자인을 불어 넣어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재의 물성을 바꿔 활용하는 것이 아닌, 쓰고 남은 제품을 새 디자인의 제품으로 만든다는 게 재활용과 다른 점이에요. 버려진 옷을 리폼해 독특한 무늬의 커튼으로 만들거나, 고장 난 무지개색 우산을 자르고 이어 붙여 무지개색의 지갑을 만드는 것 모두 새활용이죠. 트럭용 방수포와 자동차 안전벨트, 폐타이어로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이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브랜드예요. 비크닉 생리혈 걱정 없이 마음껏 뛴다…나이키 50년간 여성 응원한 이유 [비크닉] 110년 지나도 촌스럽지 않다, 효리네도 쓴 생활명품 [비크닉]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동백기름 팔던 '6남매 억척맘' 남긴 유산 [비크닉] 정장 빼입고 타야 제맛…'신사의 나라' 장인이 만든 자전거 뭐길래 [비크닉]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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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지나도 촌스럽지 않다, 효리네도 쓴 생활명품 [비크닉]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주 작은 물건의 브랜드도 지나치지 못하고 관찰하는 직업병 앓이 중인 한재동입니다. 요즘 사무실에는 종이컵이 사라지고 다들 각자의 텀블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요. 얼마 전 멋쟁이 후배가 텀블러를 새로 샀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바로 스타벅스와 스탠리(STANLEY)가 콜라보레이션해서 출시한 텀블러였어요. 국내에서는 이 브랜드가 낯선 분들도 계시겠지만, 스탠리는 미국에서는 대를 이어서 물려주는 국민 보온병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캠핑의 인기와 친환경 인식의 확산으로 전 세대에 고루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탠리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된 생활명품 스탠리. 출처 홈페이지 전쟁에서 활약한 최초의 금속보온병 스탠리의 역사는 1913년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William Stanley Jr)가 기존 보온병들이 유리를 사용했던 것을 개선, 최초의 금속 보온병을 발명하면서 시작됩니다. 올해로 110년째를 맞이하는 오래된 브랜드에요. 이전의 유리 보온병이 충격에 약했던 것에 비해 충격에도 강하고 진공 이중벽 구조로 되어 있어 오랜 시간 보온과 보냉이 가능했습니다. 1915년 대량생산체제를 갖추자, 20세기 초 미국 산업 발전의 역사와 맞물려 본격적인 사랑을 받게 돼요.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군의 군수품으로 납품됩니다. 물과 음식을 보관해줄 뿐만 아니라 약을 옮기는 목적으로도 사용되며 기능을 널리 알리게 돼요. 특히 연합군의 가장 핵심 전력인 B-17 폭격기 조종사들이 사용하면서 스탠리 보온병은 미군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스탠리 보온병은 미국의 아웃도어 라이프의 상징과 같다. 출처 얼리어답터 그렇게 미국인 라이프 스타일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돼요. 미국인이 일하러 갈 때 집에서 뜨거운 커피를 담아가는 보온병이 보인다면 스탠리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조셉 쿠퍼(매튜 매커너히)가 트럭에 들고 타는 보온병도 바로 스탠리의 것입니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 보았어요. 기능성이 브랜드의 상징이 되다 스탠리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기능성입니다. 몇십 년을 써도 고장이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오발 된 총알을 스탠리가 막아주어 소중한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도 있어요. 요즘 같은 리뷰 전성시대에는 특히나 이런 강점이 돋보입니다. 캠핑 커뮤니티나 유튜브만 찾아봐도 스탠리 제품의 기능성에 대해 간증하는 콘텐트가 넘쳐나거든요. 개척과 탐험이 있는 현장에서 스탠리 보온병의 기능은 빛을 발했어요. 미국 뉴욕 9.11 메모리얼 뮤지엄에는 1리터짜리 스탠리 클래식 보온병 2개가 전시돼 있어요. 뉴욕의 대표적인 마천루인 세계무역센터를 만든 근로자들의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건설 현장에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음식이 식지 않도록 스탠리 보온병에 식사와 뜨거운 음료를 넣어서 주었다고 하죠. 스탠리가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하는 데에 일조한 셈입니다. 뉴욕 메모리얼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는 스탠리 보온병. 출처 Stanley Station 창업자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는 현대보온병의 기초가 되는 진공 단열병을 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보온병의 역사는 사실상 스탠리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훌륭한 기능성이라는 스탠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많은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이어집니다. 스탠리가 만들었다고 하면 일단 품질은 확실한 거니까요. 스타벅스와는 꾸준히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출시하고 있고, 슈프림과 MINI 등 다른 산업군의 브랜드 콜라보레이션도 다수 진행되었습니다. 2017년 스타벅스와 스탠리의 콜라보레이션 텀블러. 출처 하입비스트 110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아야 클래식이지 스탠리는 대표적인 네 개의 시리즈가 있습니다. 우선 가장 유명한 클래식 시리즈는 100년 전 초기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다음으로 어드벤처 시리즈는 클래식 시리즈를 좀 더 작고 가볍게 만들어 휴대하기 편하게 했습니다. 세 번째 마스터 시리즈는 성능을 강화한 제품으로 보온 보냉 시간과 내구성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렸어요. 마지막 고(GO) 시리즈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편하게 제품을 개선했습니다. 그중 가장 인기가 좋은 제품은 스탠리의 상징적인 색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해머톤 그린(Hammertone Green)의 클래식 시리즈 제품들이에요. 1953년 처음 출시된 해머톤 그린 컬러는 블랙, 실버, 네이비부터 밝은 색상까지 다양한 컬러 중에도 많은 사랑은 받고 있습니다. 무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여요. 스탠리 제품의 시그니처 컬러 해머톤 그린. 출처 cncmall 스탠리 애호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디자인이 투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시류에 영합하지 않아서 좋다는 내용이 눈에 띕니다. 11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디자인이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에요. 좋은 디자인만큼이나 수없이 바뀌었을 유행에도 전통을 고수하는 뚝심 또한 대단합니다. 스탠리의 스테디셀러 도시락가방과 보온병 출처 shopee.com 예능 '효리네민박'에서 스탠리 보온병을 사용하는 장면. 사진 JTBC 캡쳐 텀블러가 패션이 되어버린 시대 2017년 JTBC 예능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스탠리의 보온병과 파인트를 사용하는 장면이 방송에 나갔어요. 덕분에 스탠리는 ‘이효리 보온병’으로 불리며 캠핑을 즐기는 사람 외에도 꽤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ESG, 가치소비 등이 개념이 등장하며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할 때였지요.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이제 텀블러를 패션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유명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이나, 본인이 좋아하는 IP 굿즈 텀블러 등을 가지고 다니며 본인의 취향을 드러내고 있어요.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된 생활명품 스탠리. 출처 홈페이지 스탠리 기존 고객층이 가진 이미지는 제품의 기능성을 중시하고 캠핑 등 아웃도어 레저를 즐기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스탠리의 새로운 소비자는 일상에서의 활용성은 물론 친환경을 비롯한 가치까지 모두 만족하는 브랜드를 찾는 고객일 가능성이 커요. 그것이 스탠리가 새로운 제품 라인업 개발과 환경보호에 대한 메시지 전달에 노력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비크닉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동백기름 팔던 '6남매 억척맘' 남긴 유산 [비크닉] 정장 빼입고 타야 제맛…'신사의 나라' 장인이 만든 자전거 뭐길래 [비크닉] 인터스텔라 '머피'로 이름 날렸다…전쟁 군용시계의 대변신 [비크닉] 검정 커버에 고무 밴드…연간 1000만개 팔리는 노트 비결 [비크닉] 한재동 비즈솔루션본부 마케터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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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머피'로 이름 날렸다…전쟁 군용시계의 대변신 [비크닉]
#INTRO: 영화 속 그 물건 비크닉 독자 여러분, 영화 좋아하시나요? 저는 여유가 생길 때면 늘 영화를 찾습니다.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소진된 영혼을 충전시키고 싶을 때도 영화는 늘 좋은 파트너가 되어 주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영화의 감동적인 스토리 라인이나 치밀한 구성 외에도 눈여겨 보는 것이 생겼어요. 바로 영화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물건’입니다. 예를 들면 영화 인셉션의 ‘팽이’나 반지의 제왕의 ‘반지’ 같은 것 말입니다. 스토리의 중심에서 사건을 이끌어 가기도, 앞으로 일어날 일의 암시적 단서가 되기도 하죠. 오늘의 비크닉은 우리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물건 중 영화에 수없이 등장하는 시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가장 유명한 영화 속 시계. 이름이 궁금하면 레터를 계속 읽어주세요. 사진 해밀턴 혹시 이 시계를 보고 떠오르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인터스텔라”를 외치셨다면 정답! 이 시계를 만든 브랜드는미국에서 시작해 지금은 스위스를 본거지로 하는 시계 브랜드 ‘해밀턴’이죠. 이들의 시계는 지금까지 500여 편이 넘는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했어요. 1932년 작 ‘상하이 익스프레스’부터 ‘진주만’ ‘다이하드’ ‘스파이더맨’ ‘스페이스 오디세이’ ‘맨 인 블랙’ ‘마션’ ‘나는 전설이다’ 등 많은 영화에 상징성을 가지고 등장한 시계들이 바로 해밀턴의 작품이었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쿠퍼 역의 매튜 매커너히가 딸 머피(매켄지 포이)를 달래고 있다. 이 영화에선 해밀턴의 시계 2개가 등장하는데, 영화 흥행과 함께 이 시계들도 함께 유명해졌다. 매튜 매커너히의가 손목에 찬 시계는 그 중 하나인 '해밀턴 카키 파일럿 데이 데이트'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해밀턴, 어떤 시계야? 대체 해밀턴은 어떤 브랜드길래 이렇게 많은 영화에 시계를 등장시킨 걸까요. 역사는 18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은 스위스에 본사와 시계 생산 기지를 두고 있지만, 처음 브랜드가 설립된 곳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예요. 서부 개척시대 이후 미국의 산업을 일으킨 철도업계가 당시 해밀턴의 시계를 사용했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해밀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전쟁이 터지자 군인들은 같은 시간 부대가 이동해야 하는 작전 등을 수행하기 위해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 곧 ‘시계’가 필요했어요. 당시엔 포켓워치 외엔 개인화된 이동식 시계를 보기 힘들었는데, 해밀턴은 미군을 위해 포켓워치를 손목에 착용할 수 있도록 형태를 변형해 군에 공급했죠. 군인을 위한 손목시계는 육군, 해군, 공군 모두에게 유용하게 사용됐어요. 군과의 인연은 제2차 세계대전에도 이어져,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42~45년엔 아예 상용 시계 제작을 중단하고 100만개 이상의 군용 시계를 제작했답니다. 육해공을 모두 공략한 해밀턴의 다음 순서가 바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여느 시계 브랜드처럼 단순하게 출연자의 손목에 판매용 시계를 채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어요. 영화와 TV 시리즈의 시나리오 단계부터 함께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합니다. 할리우드에 시계 제작팀을 파견해 영화감독과 소품감독이 원하는 시계를 만들어 줘요. 영화의 일부분이 되기 위해 몇 년의 시간이 걸려도 제작진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시계 제작에 몰두합니다. #인터스텔라의 그 시계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가장 유명한 시계는 아마도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한 시계일 겁니다. 인터스텔라는 앞서 말한 영화 인셉션을 만든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의 작품인데요. 인셉션에서 현실과 환상을 연결해주는 장치로 팽이를 썼다면, 인터스텔라에선 시간을 넘나드는 주요한 장치로 시계를 선택했습니다. 시공간을 넘어 아버지와 딸을 연결하기 위해 시계만큼 적당한 매개체가 없었던 거죠.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극중 등장한 두 개의 시계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된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영화에는 두 개의 시계가 등장하는데요, 주인공 쿠퍼 역의 매튜 매커너히가 착용한 해밀턴의 ‘카키 파일럿 데이 데이트(Khaki Pilot Day Date)’와 그의 딸 머피가 착용한 ‘카키 필드 머피(Khaki Field Murph)’예요. 레터 맨 처음에 보여드린 게 바로 머피의 시계 카피 필드 머피예요. 먼저 아버지 매튜 매커너히가 착용한 카키 파일럿 데이 데이트에 관해 이야기해 볼게요. 시계는 지름 42mm 스틸 케이스에 무브먼트는 H-40을 사용하고 있어요. 80시간 파워리저브로 일반적인 시계 대비 2배에 가까운 연속 동력을 가지고 있죠.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이 다이얼에 날짜와 요일을 보여주는 가독성 좋은 파일럿 시계입니다. 극 중 전직 파일럿이었던 쿠퍼의 캐릭터에 더없이 잘 어울리죠. 시계 뒷면은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 백으로 디자인해 시계 속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어요. 쿠퍼의 시계, 해밀턴 카키 파일럿 데이 데이트. 사진 해밀턴 #인류를 구한 메신저...머피! 머피! 사실 더 유명한 시계는 딸 머피가 찼던 ‘해밀턴 카키 필드 머피’예요. 인터스텔라 마니아들 사이에선 ‘머피(Murph)’란 애칭으로 불리는데, 지금까지도 영화에 등장한 가장 유명한 시계로 손꼽힌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등장한 스펙 그대로의 시계 ‘해밀턴 카키 필드 머피 42mm’. 사진 해밀턴 머피는 영화에서 두 사람의 유대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였어요. 극중 나사 팀은 환경 변화로 인류의 미래가 위험해지자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납니다. 이때 팀에 합류한 쿠퍼가 딸에게 남긴 시계가 바로 머피였죠. 쿠퍼는 5차원 공간 안에서 모스 부호를 사용해 머피의 시계 초침을 움직여 딸에게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를 통해 찾아낸 양자 데이터로 인류는 지구를 탈출할 수 있게 돼요. 이 모든 것이 시계를 통해 이루어진 겁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위해 커스텀 제작한 시계 '머피'의 드로잉 이미지 인터스텔라의 팬들은 영화 속 시계를 가지고 싶어했어요. 안타깝게도 개봉 당시 머피는 영화 소품으로 제작된 시계로 시중엔 판매하진 않았었거든요. 팬들의 빗발친 요구에 해밀턴은 영화 개봉 5년 뒤인 2019년 대중을 위한 카키 필드 머피를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직경 42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블랙 다이얼, 80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하는 H-10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장착한 영화 속 시계를 그대로 재현했죠. 시계 초침에는 머피가 지구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공식을 계산해낸 뒤 외쳤던 “유레카” 문구가 모스 부호로 프린트돼 있어요. 하지만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호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아마 알아볼 수 없을 거예요. 시계에 얽힌 영화 스토리를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어 영화 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느끼게 해줘요. 영화 팬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38mm 사이즈의 ‘해밀턴 카키 필드 머피’. 시계는 출시되자마자 품절될만큼 인기를 끌었다. 사진 해밀턴 지난해 11월엔 이 카키 필드 머피의 38mm 케이스 버전 시계 ‘38MM 카키 필드 머피’가 출시됐어요. 오랜 시간 영화 팬들이 해밀턴에 “38mm 머피를 출시해주세요” “언제 머피의 38MM 버전이 나오나요” “해밀턴은 팬들의 의견을 듣고 있나요?”라며 요청한 결과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서 보여준 직경 42mm는 가독성 좋은 파일럿 워치의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손목이 가늘거나 여성의 경우엔 다소 큰 감이 있었거든요. 영화를 좋아한 팬들이 남녀 구분 없이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는 크기가 바로 38MM 사이즈였던 겁니다. 시계를 구성하는 스펙은 42mm와 같아요.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빈티지 스타일의 수퍼-루미노바® 코팅 처리된 핸즈가 달린 블랙 다이얼, 검정 가죽 스트랩까지 핵심적인 디자인 코드를 고스란히 반영했어요. 해밀턴 인터내셔널의 비비안 슈타우퍼 CEO는 이 시계를 출시하면서 “팬들과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38mm 머피는 이런 해밀턴 생각을 잘 구현해낸 타임피스”라고 말했어요. 영화에서 현실까지, 시계가 가지는 힘이 참 대단합니다. 영화 속 시계의 세계를 들여다보니 영화의 매력이 더 강해지지 않나요? 저는 이번 주말 인터스텔라를 다시 한번 볼 생각입니다. 앞으로 해밀턴의 시계가 어떤 영화에 또 등장하는지도 궁금하고요. 무엇이든 ‘의미’가 담기면 특별한 존재가 되죠. 우리 주변의 물건에 이렇게 의미를 담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나도 모르게 특별한 역사를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머피가 아버지의 시계로 인류를 구한 것처럼요. 비크닉 검정 커버에 고무 밴드…연간 1000만개 팔리는 노트 비결 [비크닉] '대행사' 실제 인물? 삼성 첫 女임원 출신, 그 책방은 특별했다 [비크닉] MZ 사이 입소문난 그 반지…매듭장인 할매들, 세계 넘보다 [비크닉] 책이 스스로 움직인다?…교보문고의 스마트한 진화 [비크닉]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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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커버에 고무 밴드…연간 1000만개 팔리는 노트 비결 [비크닉]
━ #INTRO: 손으로 쓰는 기록의 힘 사진 인스타그램 @lallayena. 몰스킨 제공 수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고 기억해야 하는 세상, 독자 여러분은 무엇으로 일상을 기록하나요? 저는 스마트폰에 메모하는 사람이었어요. 간단한 기록을 위해 가방을 열고 노트를 꺼내 펜을 드는 건 무척 번거로운 일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스마트폰에 담은 메모는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반면 수첩에 손으로 적은 글은 꼭 한 번 더 보고요.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는 기록이란 걸 깨달은 순간, 노트와 펜을 다시 꺼내 들게 됐어요.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지키며 사랑받는 노트 브랜드가 있습니다. 둥근 모서리의 단단한 검은색 커버와 고무 밴드, 특별한 것 없는 디자인에도 연간 판매 개수만 1000만개에 달하죠. 오늘 비크닉은 종이에 펜으로 글씨를 써 내려 갈 때 느껴지는 감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는 노트, 이탈리아의 노트 브랜드 몰스킨(Moleskine)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흰 종이 이상의 가치를 만든 마케팅 사진 몰스킨 몰스킨의 시초는 1800년대 프랑스 파리의 작은 문구점에서 판매하던 이름 없는 검정 노트입니다. 고흐, 피카소, 채트윈, 헤밍웨이가 몰스킨(프랑스어로 '모조 가죽') 재질로 만든 노트를 즐겨 썼다고 전해지면서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쓰는 노트의 대명사가 됐어요. 그 후 한동안 잊혔던 이 노트를 1997년, 이탈리아 사업가인 마리오 바루치와 프란체스코 프란체스키가 재현합니다. 그런데 세상엔 몰스킨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노트가 있었어요. 몰스킨의 상징인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경쟁하는 제품도 많았죠. 하지만 '노트'하면 떠오르는 대표 브랜드는 없었답니다. 몰스킨은 이 점을 파고들어 당시는 생소했던 문구의 브랜드화를 추진해요. 19세기 파리 공방에서 만들던 검은 표지의 단순한 수첩에 '고흐와 피카소가 사랑한 노트'라는 스토리를 새기고 고급 노트 브랜드로의 차별화를 시도합니다. "먼저 어디에서 판매할 것이냐가 중요했어요. 단순한 메모용 노트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창의성을 표현할 제품이라면 소비자들은 어디에서 그 물건을 사려고 할까요? 바로 서점이었습니다." -아리고 베르니 몰스킨 CEO 차별화의 시작, 노트를 문구점이 아닌 서점에서 판매한다는 전략이었어요. 당시 서점은 매출이 정체돼 어려움을 겪고 있어 몰스킨이 입점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죠. 브랜드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몰스킨은 책에서 볼 수 있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수첩에 붙여 판매했어요. 이를 신선하게 바라본 소비자들이 점점 몰스킨에 열광하기 시작했죠. ━ #보이지 않는 디자인까지 생각하다 사진 인스타그램 @saeronai. 몰스킨 제공 품질에도 고급 노트 이미지를 불어넣었어요. 한눈에 몰스킨 제품임을 알려주는 검은색 양피 커버와 그를 묶는 고무밴드, 부드러운 필기 감촉을 느낄 수 있게 중성 처리한 두툼한 미색의 속지. 그리고 속지는 일일이 실로 꿰어 커버와 단단히 제본해 낱장을 넘길 때도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게 했죠. 모든 노트엔 품질 관리 번호를 매겨 하자가 있으면 정품 확인을 거쳐 새 제품으로 교환해줍니다. 품질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또 다른 전략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 것. 같은 크기 같은 용도의 노트가 아닌, 저마다 다른 취향을 담은 노트를 선택할 수 있게 했죠. 휴대성과 편의성을 생각해 포켓, 라지, 엑스라지 등 쓰임새에 맞춰 다양한 크기의 노트를 만들었어요. 무지의 단단한 하드 커버, 다양한 컬러의 소프트 커버, 새로운 질감의 텍스타일 커버 등 재질도 선택할 수도 있죠. 일상을 기록하는 데일리, 위클리 레이아웃부터 월별 일정을 기록하는 먼슬리 레이아웃까지. 속지 레이아웃도 다양하게 제작했어요. 그 안에서도 가로형, 세로형, 프로형으로 세분화했죠. 연초 다이어리를 미처 구매하지 못한 소비자를 위해 7월부터 다음 해 12월까지 사용할 수 있는 '18개월 다이어리'도 활용도가 높아 꾸준히 사랑받는 아이템이에요. 외형을 넘어 보이지 않는 디자인에도 주목했어요. 최근 제품 디자인은 외형을 꾸미는 걸 넘어 가치까지 담은 디자인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답니다. '꾸밈'의 기술이 아닌, 삶의 태도로서의 디자인이죠. 예컨대, 몰스킨은 노트의 첫 장에 분실 시 사례금을 직접 주인이 써넣는 디자인을 적용했어요. 노트의 가치를 사용자가 스스로 매길 수 있도록 한 거죠. ━ #아날로그를 지키며 디지털 전환 사진 몰스킨 몰스킨에 따르면 이 브랜드의 글로벌 연 매출은 2021년 18.9%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엔 무려 30.2%나 성장했어요. 디지털 시대에도 사랑받는 노트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요. 몰스킨은 지난 10여년 전부터 아날로그 제품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상품을 선보이며 디지털 기록 세대의 취향에 맞춰 체질 개선에 나섰어요. 몰스킨 표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아날로그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죠. 2010년 수첩에 적은 필기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앱을 개발, 디지털화에 시동을 걸었어요. 2013년엔 문서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에버노트와 제휴해 몰스킨 노트에 기록한 내용을 스마트폰·태블릿PC와 동기화할 수 있는 제품을 출시했죠. 2015년엔 어도비와 손잡고 노트에 그린 그림을 스마트폰 앱으로 옮긴 뒤 작업을 이어서 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어요. 손으로 그린 그림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와 연동,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를 통해 디테일한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죠. 디지털 환경에서 아날로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기록 방식인 셈이에요. 한국 몰스킨 마케팅 담당자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아날로그가 지닌 감성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 같다"며 "너도나도 똑같은 화면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직접 손끝으로 날것의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얻는 신선함과 개성이 아날로그가 지닌 묘미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어요. ━ #뱀발: 빈 책 사진 언스플래쉬 몰스킨은 자사 노트를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이라고 표현해요. 단순히 메모하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수첩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기록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창조적인 작업으로 완성해나가는 책이란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몰스킨의 쓰이지 않은 책은 노트의 우리말인 '공책'의 의미와도 닮았어요. 공책은 이름 그대로 빈 책(空冊)이라는 뜻이거든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공책은 하나의 '상품'일 뿐이지만, 한 장 한 장 생각을 써 내려 가면 나만의 작품이 됩니다. 지금 문득 떠오른 생각을 펜을 들어 비어 있는 책에 생각과 지식을 채워 넣어보는 건 어떨까요. 비크닉 '대행사' 실제 인물? 삼성 첫 女임원 출신, 그 책방은 특별했다 [비크닉] MZ 사이 입소문난 그 반지…매듭장인 할매들, 세계 넘보다 [비크닉] 책이 스스로 움직인다?…교보문고의 스마트한 진화 [비크닉] MZ 열광하는 '제로' 소주…설탕 없는데 달콤한 술 맛 비밀은 [비크닉]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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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임영웅도 등장했다...전세계 열광한 '남다른 머리' 세계 [비크닉]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새해를 맞아 자타공인 중년 남성이 되어버린 마케터 한재동입니다. 월급 빼고 모든 것이 다 오르는 요즘에도 저의 위시리스트는 쉬지 않고 채워지고 있는데요. 그중 저를 포함한 또래 친구들의 가장 큰 고민을 담고 있는 아이템인 탈모 샴푸도 있습니다. 사실 ‘탈모 샴푸’는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에요. ‘탈모 증상 완화 기능성 화장품’이 정확한 표현입니다(※하지만 저 역시 표현이 너무 길어 이하 탈모 샴푸라 칭하겠습니다). 원래는 별도의 허가가 필요 없는 의약외품이었다가, 2017년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탈모 증상 완화 기능을 평가받아야 하는 기능성 화장품으로 분류되면서, ‘증상 완화’라는 기능성 표시가 들어가게 되었어요. 관심이 없을 때는 잘 몰랐는데 탈모 시장, 들여다 보니 어마어마한 시장이더라고요. 국내 탈모 시장만 2021년 기준으로 1조 1000억원 규모라고 합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탈모 인구 수가 10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고요. 오늘은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탈모 샴푸 시장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탈모는 정확한 진단과 함께 유형별로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다. 사진 pixabay 탈모 샴푸가 뷰티업계의 블루오션이 된 이유 탈모의 사전적 정의는 ‘모발이 있어야 할 곳에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실 잘 감이 안 오죠? 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 권오상 교수에 따르면, 한국인의 경우 평균적으로 약 10만 개의 머리카락이 있다고 합니다. 머리카락은 매일 조금씩 빠지는데요, 하루에 약 50~100개 정도는 정상이고, 그 이상이면 탈모 증상으로 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탈모 증상이 있다고 생각해도 병원을 바로 찾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한국의 경우 약 7.3년, 평균 4.2회의 자가 치료를 시도한 뒤에 병원을 찾는다고 합니다. 다만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고요, 미국(3.4회)과 독일(2.3회) 등 서구권 국가들도 차이가 있을 뿐 자가 치료를 먼저 시도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자가치료법은 헤어제품 활용이에요. 모바일 리서치 기관 오픈서베이가 20~50대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3%가 모발 건강문제로 고민했다’고 답했습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탈모와 두피 건강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그런데 반전은 실제로 이를 해결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위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시도하는 두피관리 방법으로 ‘헤어제품 사용’이라는 응답이 나왔어요. 막상 탈모 방지를 위해 병원에 가거나 식이요법을 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헤어 제품을 바르고 뿌리는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식약처에 탈모증상 완화 기능성 화장품 심사 건수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탈모 관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탈모 관련된 헤어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는 커졌습니다. 기업들이 이걸 놓치지 않았죠. 이제는 기존 헤어 제품을 생산하던 뷰티업계뿐만 아니라 종근당·유한양행 등 전문 제약사도 탈모 시장에 뛰어 들었습니다. 식약처의 심사를 신청한 탈모 증상 완화 기능성 화장품의 수도 꾸준히 증가해 22년 상반기에만 818건으로 최근 1~2년간 연평균 32.7%씩 늘어났어요. 진열대 가득 채운 제품들…분위기가 달라졌다 거침없이 성장하는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소비자의 머릿속에 각인된 브랜드는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좀 알려진 건 손흥민과 GD, 임영웅 등을 모델로 써서 이슈가 됐던 ‘TS샴푸’ 정도예요. TS샴푸가 빅 모델을 기용한 건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같은 국내 화장품업계 강자들 사이에서 브랜드 각인 효과를 주기 위한 승부수였어요. 결과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로모니터의 통계 자료(2020년)에 따르면, 국내 샴푸시장 점유율은 아모레퍼시픽 ‘려’가 12.4%, TS트릴리온 ‘TS샴푸’가 12%, LG생활건강 ‘엘라스틴’이 9.1%, 와이어트 ‘닥터포헤어’가 8.5%, 애경산업 ‘케라시스’ 8.2% 순으로 나타났거든요. 특히 TS샴푸와 닥터포헤어는 ‘탈모 샴푸 시장의 양대산맥’이라 불릴 만큼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국내 시장은 고객층이 좁은 편입니다. 탈모 샴푸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해도 남성 잡지에서 ‘에디터가 추천하는 제품’ 기사나 블로그 리뷰 정도예요. 그것도 예전에 비하면 정보가 많아진 겁니다. 탈모 샴푸의 타겟 고객 연령대가 낮아져 20~30대를 위한 제품이 늘어난 덕분이었죠. 대형마트의 진열장 한 편을 모두 탈모 샴푸가 채웠다. 사진 한재동 탈모 샴푸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기 전인 10여년 전만해도 이마선이 올라가기 시작한 중년 남성이 주요 고객이었습니다. 그러다 머리 숱이 풍성한 GD가 모델로 나와서 탈모가 오기 전 예방을 위해 두피관리를 위한 탈모 샴푸 광고를 찍는 시대가 왔습니다. 지금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의 탈모를 위한 헤어 제품이 나오고 있어요. 대형마트와 H&B스토어에는 탈모 샴푸로 가득 채운 진열대가 등장했습니다. 문 열린 한국 시장, 눈여겨볼 해외 브랜드는 우리나라 시장에는 글로벌 탈모 샴푸 브랜드를 찾기 어려워요. 그 이유는 제도적인 영향이 큽니다. 위에 말한 것처럼 탈모 샴푸를 유통하려면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요, 또 대표적인 원료 성분인 ‘미녹시딜’을 외국과 달리 약국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이에요. 하지만 한국 탈모 시장의 빠른 성장세를 보면 빠른 시일 내에 글로벌 브랜드들이 앞다퉈 국내 시장 진출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게 바로 보슬리엠디(BosleyMD)라는 브랜드입니다. 보슬리엠디는 1974년 미국 모발이식 전문가인 보슬리 박사가 설립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모발 복원 전문 기업입니다. 북미 지역에만 70개 이상의 모발이식 센터를 운영하는데, 40년 이상 경험을 가진 탈모 전문 연구원들과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관리 제품 따로, 스타일링 따로 분리돼 시장이 형성된 우리나라에선 꽤나 부러운 시스템이죠. R&D에 집중할 수 있는 규모 있는 기업이 만드는 제품으로 탈모 증상을 관리하고, 또 일반 헤어샵에서는 하기 힘든 탈모인의 헤어 스타일링까지 제공하는 종합 서비스 말입니다. 탈모 관련 브랜드 보슬리엠디(BosleyMD)는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한 것이 장점이다. 사진 보슬리엠디 보슬리엠디는 처음엔 클리닉에서만 사용하던 전문적으로 쓰이던 제품만 생산했었는데요.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또 기술 발전으로 일반 헤어 제품으로 구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자, 이곳의 이안 머피(Ian Murphy) CEO는 메디컬 제품 성격이 강했던 자사 제품을 소비자와 친숙하게 리브랜딩 합니다. 고객이 스스로 자기 모발에 맞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든 거죠. 디펜스·두피케어·리바이브 등 탈모 상황에 따른 선택도 가능하게 하고, 헤어 스타일링을 위한 젤·스프레이 같은 제품들도 만들었어요. 현재 탈모에 관해서는 업계에서 가장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팬데믹 후 여성들의 탈모 샴푸 수요가 늘고 있다. 사진 보슬리엠디 흥미로운 것은 특히 이들의 고객 중 상당 수가 여성이라는 점이에요. 브랜드 측에 따르면 여성 대상 제품 매출이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전체 매출의 절반에 육박한다고 하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코로나 19 이후 미국에서도 탈모에 대한 20~30대의 관심이 급증하면서, 특히 여성 탈모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간 탈모 샴푸 시장의 비주류였던 여성들이 갑자기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다양한 제품 구성을 가지고 있던 보슬리엠디가 선택을 받게 되었죠. 생리학적 이유로 여성이 쓰기 어려운 미녹시딜 같은 화학 성분 대신 자연 유래 성분을 활용해 제품을 개발하는 등 탈모로 고민하는 여성을 위한 제품을 보유하고 있었거든요. 현재 국내에서 보슬리엠디를 구매하는 방법은 해외직구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 사용 후기들이 꽤 올라와 있어요. 후기의 상당 수가 여성 사용자가 올린 것입니다. 한국 탈모 샴푸에 만족하지 못한 여성들이 장벽을 스스로 넘어 세계 시장의 탈모 샴푸를 찾아 나선 것이죠. 탈모 샴푸 시장의 미래가 궁금해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탈모 샴푸의 치료 효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발을 씻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의약품으로 오인·혼동할 수 있는 ‘탈모 치료’ ‘탈모 방지’ ‘발모·육모·양모’ ‘모발 성장’ ‘모발 두께 증가’ 등의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죠. 앞에 언급된 것처럼 ‘탈모 증상 완화 기능성 화장품’이 공식적인 표현이고, 치료는 병원에서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대선 때 탈모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쟁점이 된 것처럼 아직 우리 사회에서 탈모 치료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선 샴푸같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부터 시도할 거예요. 더구나 우리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시니어들은 나이가 들어도 자기를 가꾸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탈모 샴푸 시장은 서부시대 골드러쉬를 연상하게 해요. 누가 금맥을 찾게 될지 궁금합니다. 비크닉 "적은 돈으로 명품 산다"...'문구 덕후' 불러 모은 핫플 비결 [비크닉] 편집숍은 살아 움직인다, 비이커가 브랜드를 발굴하는 법 [비크닉] 로컬과 상생 코드 품었다…진화하는 스타벅스의 공간 마케팅 [비크닉]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한재동 비즈솔루션본부 마케터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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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돈으로 명품 산다"...'문구 덕후' 불러 모은 핫플 비결 [비크닉]
━ #INTRO: 새로운 마음 새해의 문턱, 1월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저는 13년 전 스무 살이 됐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꼭 이맘때쯤 칼바람이 부는 1월의 겨울이었어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세상에 나아갈 준비에 한창이던 친구들을 뒤로하고, 재수 종합학원으로 첫걸음을 하던 우울한 재수생이었죠. 고3 내내 썼던 제도 샤프를 버리고, 대형 서점으로 가 새로운 샤프펜슬과 샤프심을 고르고 또 골랐어요. 가고 싶었던 대학 문턱에서 미끄러진 것이 샤프 탓이겠냐마는, 새것을 사니 새로운 마음가짐이 들어 좋더라고요. 샤프를 사서 돌아오는 발걸음에 기분만큼은 산뜻했던 저처럼, 문구 하나에 가슴 설레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 있어요. 비크닉 새해 첫 레터는 '문구 덕후'가 차린 문구점, 포인트오브뷰(Point of View)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포인트오브뷰 플래그십 스토어. 사진 포인트오브뷰 ━ #연필과 지우개를 스토리텔링하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자리한 포인트오브뷰. 연필, 샤프, 볼펜, 종이, 지우개 등 필기구와 그를 사용하는 '공간'을 꾸미는 오브제까지, '문구'라 하면 떠오르는 모든 제품을 한곳에 모아둔 문구 편집숍 브랜드예요. 2018년 성수동 카페 '오르에르'의 2층 한 구석, 20평 정도 되는 곳에 조그맣게 차린 판매대가 포인트오브뷰의 출발이었어요. 간판도 없이, 아는 사람만 아는 점포 속 또 다른 점포였죠. 지난해 11월 새단장을 해 공간을 확장하면서 지금은 180평, 3층짜리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해요. 포인트오브뷰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 1층 모습. 사진 포인트오브뷰 '창작을 위한 도구를 제안하고 스토리텔링하는 곳.' 브랜드를 기획하고 만든 김재원 대표는 포인트오브뷰를 한 마디로 이렇게 설명했어요. 브랜드명 포인트오브뷰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관점’이라는 뜻이에요. 이곳을 찾는 소비자들의 관점이자, 도구를 보는 이들의 관점이기도 하죠. "연필로 종이에 글이나 그림을 그렸을 때 어떤 사람은 사각거리는 느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물 흐르듯이 부드러운 촉감을 좋아하죠. 포인트오브뷰는 그러한 다양한 관점에 맞춰서 상품을 제안하는 곳입니다." 포인트오브뷰의 상징은 세잔느의 사과다. 사과 정물화를 즐겨 그린 세잔느는 여러 각도에서 관찰한 사과를 작품에 녹였다. 사진 박영민 ━ #써본 이와 써보지 않은 이의 경험치는 달라 포인트오브뷰의 상징은 사과예요. 애플(Apple)이 아닌, 프랑스의 화가 '세잔느의 사과'죠. 정물화의 대가인 세잔느는 일평생 사과 그림을 그렸어요. 그는 사과를 한 각도에서 본 것이 아니라 앞, 뒤, 옆, 위에서 각각 본 시점을 하나의 프레임에 그려 넣었어요. 하나의 오브젝트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작품에 녹아 있죠. 브랜드의 상징인 사과를 그려 넣은 다이어리, '애플 저널'에도 포인트오브뷰가 도구를 대하는 관점이 숨어있어요. 성경처럼 측면을 금박과 은박으로 길딩(Guilding, 박 인쇄)한 것이 특징인 제품이죠. "다이어리에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도할 때의 마음으로 빗대어 표현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에요. 포인트오브뷰의 대표 상품 '애플 저널'. 측면을 금박과 은박으로 인쇄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 박영민 "한번은 가게를 방문한 학생들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 세상에 문진(文鎭, 종이가 바람에 날리지 않게 눌러두는 물건)이라는 것을 돈을 주고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라고요. 그 학생에게 문진은 쓸모없는 것이라 돈을 주고 산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얘기였죠. 문진을 사러 일부러 가게에 방문하는 고객도 물론 있어요. 문진을 써본 사람과 써보지 않은 사람의 경험치는 달라요. 그 역시 관점의 차이인 거죠." 제품의 배치 등 고객의 관점에서 공간 구성을 신경 쓴 점도 특징입니다. 포인트오브뷰를 방문한 사람들은 마치 해리포터의 도서관 같은 인테리어에 끌려 가게 곳곳을 산책하듯 물건을 살펴보죠. 문을 열고 들어가 처음 본 것이 연필이라면, 바로 근처에서 연필과 어울리는 노트를 금세 찾을 수 있어요. 물론, 군데군데 숨어있는 예측할 수 없는 구성 또한 포인트오브뷰가 추구하는 공간의 매력입니다. 노트를 둘러보다가 옆으로 돌아섰는데 갑자기 유리구슬 오브제가 툭 튀어나와 호기심을 유발하죠. 당장 제품을 구매하진 않아도, 공간을 체험하는 것만으로 잠재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에요. 제품에 대한 관점을 설명하는 짤막한 토막글도 제공한다. 사진 박영민 ━ #문구 덕후를 불러 모은 비결 포인트오브뷰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다는 성수동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가 됐어요. 또 다른 매장인 여의도 '더현대 서울' 점포에도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요. 그런데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도, 상품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MD도 없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광고비를 써본 적도 없죠. 광고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을 가게로 불러 모은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선, 문구는 비교적 호불호가 나뉘지 않는 제품이에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사용하는 것이 바로 펜과 종이죠. 김 대표는 "적은 돈으로도 잘 만든 ‘명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라고 부연했어요. "좋은 자동차를 구입하려면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를 지불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10만원이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품질의 볼펜과 노트를 살 수 있어요." 포인트오브뷰에 방문한 한 소비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문구에 대한 관점을 메모지에 기록했다. 사진 박영민 ━ #좋은 도구를 보는 안목 "어릴 때부터 문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부모님께 용돈으로 100원을 받으면 친오빠는 슈퍼마켓으로 가서 100원짜리 과자를 사 먹었지만, 저는 문방구에 들러 100원으로 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애썼어요. 문방구 사장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젠 꿈을 이뤘네요. 도구가 바뀌면 창작물도 달라진다는, '도구빨'을 믿어요." 포인트오브뷰엔 문구 덕후인 김 대표가 직접 써보고 괜찮았던 제품들로 가득해요. 김 대표의 문구 콜렉션인 셈이죠. 이렇게 모은 제품 가짓수는 1만여개가 넘어요. 김 대표는 "좋은 제품을 보는 안목을 가지려면 일단은 많이 써봐야 한다"고 했어요. 또 "이 세상에 흩어져 있는 창작을 위한 도구들을 모아 이런 상품도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며 "문구를 잘 만드는 나라의 제품을 가져와 소개하고, 우리가 또 잘 만들 수 있는 제품은 직접 개발해 고객들에게 제안하고 싶다"고 덧붙였어요. 사진 언스플래시 ━ #뱀발: 성수동과 젠트리피케이션 "큰 공간과 작은 공간, 이상한 공간이 혼재하는 것이 성수동의 매력이었어요. 세련된 공간과 노포가 함께인 곳. 청담동이나 한남동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죠." 김 대표는 2018년, 포인트오브뷰가 성수동에 처음 발을 디뎠던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요즈음 성수동의 분위기는 그 때와는 사뭇 달라졌어요. 몇 달 새 골목골목마다 스티커 사진 숍 같은 프랜차이즈 점포가 많이 들어섰고요. '팝업스토어는 성수동에 차려야 한다'는 불문율이 생기면서 가게를 여는 것보다 '대관'을 하는 게 돈이 되는 동네로 바뀌고 있어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원주민이 내몰리고, 프랜차이즈가 들어와 자리를 메우는 현상)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죠. "스티커 사진 숍 같은 것도 있으면 좋지만, 그런 공간이 '성수동의 콘텐트'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팝업 또한 '변주' 콘텐트일 뿐, 메인 콘텐트는 아니죠. 메인 콘텐트를 만드는 공간도 함께 늘어나야 변주 콘텐트도 힘을 받아요. 포인트오브뷰가 그 역할을 미약하게나마 돕고 싶어요." 브랜드와 공간, 동네가 성장하는 것은 모두 콘텐트의 힘이라 믿는 김 대표. 콘텐트를 '돌보며' 성수동의 생명력을 연장하겠다는 포인트오브뷰의 원대한 계획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비크닉 편집숍은 살아 움직인다, 비이커가 브랜드를 발굴하는 법 [비크닉] 로컬과 상생 코드 품었다…진화하는 스타벅스의 공간 마케팅 [비크닉]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단독] '백색가전' 돌아온다…LG전자 다시 색깔 빼는 이유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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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디바'는 귀족부인 이름이었다…명품 초콜릿이 된 비결 [비크닉]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달콤함을 사랑하는 마케터 한재동입니다. 일상에 지칠 무렵 달콤한 초콜릿 하나면 당 충전이 되죠. 브랜딩을 업으로 하다 보니 초콜릿에도 관심 가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하이엔드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GODIVA)’예요. 초콜릿은 애초 귀족계층만이 먹을 수 있는 최고급 디저트였습니다. 그래서 벨기에, 프랑스 등 서유럽에는 장인들이 만들던 초콜릿 브랜드들이 있었어요. 고디바도 그중 하나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급 초콜릿 브랜드로 자리 잡았죠. 오늘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최고의 초콜릿 브랜드가 된 고디바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고디바 골드 컬렉션. 사진 고디바 코리아 브랜드 네이밍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고디바의 시작은 1926년, 조셉 드랍스라는 벨기에의 유명 쇼콜라티에가 가족과 함께 시작했어요. 그의 초콜릿은 인기를 끌어 사업은 승승장구했습니다. 벨기에의 대표 초콜릿으로 자리 잡아가던 1945년 브랜드명을 ‘고디바(GODIVA)’로 변경했습니다. 고디바 부인(Lady GODIVA)’의 이야기는 유명하죠. 고디바 부인은 11세기경 영국 코번트리(Coventry) 지방을 다스리던 레오프릭 영주의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과도한 세금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구하고자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행진합니다. 사람들은 고디바 부인의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문과 창을 닫고 그 용기와 희생에 경의를 표했다고 해요. 고디바 브랜드 명의 모티브가 된 ‘레이디 고디바(Lady GODIVA)’. 사진 고디바 홈페이지 드랍스는 ‘고디바 부인’ 이야기의 고귀함을 담아 초콜릿을 생산한다는 의미로 브랜드 이름을 고디바로 정했다고 합니다. 스토리텔링과 제품이 잘 연결되고 지향하는 브랜드 방향성에 걸맞은, 브랜드 네이밍의 교과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어요. 이름 따라간다고 하던가요? 이후 고디바는 최고급 초콜릿의 대명사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벨기에 초콜릿 가게, 세계적 명품이 되기까지 고디바 최초의 매장은 1956년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광장에 있었어요. 창립자인 드랍스는 쇼콜라티에 명인이면서도 뛰어난 브랜딩 마케터로서의 감각이 있었습니다. 매장 디스플레이가 블랙과 크림색으로 고급스러웠다고 해요. 시즌 한정 제품을 선보이기도 하면서 고디바 초콜릿이 특별한 선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브뤼셀 그랑플라스 광장의 고디바 매장. 사진 고디바 코리아 1958년 프랑스에 첫 번째 해외 매장을 오픈하고, 1966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고디바는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하게 돼요. 1972년에는 백화점과 하이엔드 브랜드 매장이 즐비한 뉴욕 5번가에 북미 첫 번째 부티크 매장을 엽니다. 무려 티파니와 까르띠에 매장 사이라고 하니, 명실상부한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게 된 셈이에요. 같은 해 일본에서도 도쿄 미츠코시 백화점에 매장을 오픈하면서 아시아에서도 본격적인 프리미엄 초콜릿 시장을 개척하게 됩니다. 고디바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하이엔드 전략의 성공 덕분에 1988년 미국에만 56개 매장을 운영했고,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2007년까지 꾸준히 성장하며 전 세계 매출 5억 달러의 브랜드로 성장했죠. 이후 터키의 일디츠 홀딩스사에 인수됩니다. 창업자를 계승한 타협 없는 장인 정신 고디바의 초콜릿은 엄선된 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해요. 최고급 카카오 원두, 프로방스 지방과 그리스에서 나는 아몬드를 씁니다. 헤이즐넛은 피에몬테 산을 쓰며, 과일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냉동방식 대신 자연 건조방식을 택한다고 해요. 그리고 이런 최상의 재료의 맛을 살릴 수 있는 특유의 초콜릿 제조법을 사용한다고 알려졌습니다. 고디바 글로벌 셰프 쇼콜라티에 팀. 사진 고디바 홈페이지 세계화 과정에서 많은 브랜드가 제품 퀄리티가 떨어지는 경험을 하는데요. 고디바는 엄격한 제품 생산과 운영을 통해 품질을 관리하고 있대요. 아직도 초콜릿의 제조는 창업자 드랍스의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불어 맛의 진화를 위해 ‘고디바 글로벌 셰프 쇼콜라티에 팀’을 구성해서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하이엔드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비결 고디바가 한국에 들어온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어요. 명품들이 입점하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층에 2012년 시그니처 매장을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프리미엄 초콜릿 유행을 이끌었습니다. 그사이 고디바는 한국에 다양한 시즌 프로모션을 진행했는데요. ‘수능’을 테마로 눈길을 끄는 마케팅이 대표적이에요. 원래 수험생에겐 잘 붙으라는 의미에서 엿을 선물했지만, 피로 회복에도 좋고 먹기 편한 초콜릿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디바는 그 지점에 착안해서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했어요. 유명 강사와 수험생 응원 영상을 찍고, 스트레스 해소와 집중력 향상 등 초콜릿의 효능에 집중해서 ‘수능 간식’으로 포지셔닝 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로 유명한 배우 손석구가 ‘수능해방기’라는 영상을 내보내기도 했어요. 고디바를 카페 브랜드로 알고 계시는 분도 많으실 겁니다. 더현대서울, 도산공원, 삼청동 등 핫플레이스에 프리미엄 카페 매장이 운영되고 있거든요. ‘초콜렉사’와 같이 SNS에서 유명한 초콜릿 음료부터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메뉴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저 같은 초콜릿 덕후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성지와 같아요. 도산대로에 있는 고디바의 스테이지 바이 고디바 매장. 사진 고디바 코리아 고디바는 올해 또 다른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9월 하이엔드 브랜드 매장이 몰려있는 도산대로에 카페와 디저트 코스를 '2in1' 콘셉트로 결합한 ‘스테이지 바이 고디바(Stage by GODIVA)’를 열었어요. 카카오 베이스의 음료 등 다양한 카페 메뉴와 샴페인과 더불어 달콤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디저트 코스 바'가 있다고 해요. 최정상의 위치에서도 늘 새로운 달콤함을 경험하게 만드는 고디바의 다음 도전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관련기사 [비크닉] 장난감을 뛰어넘은 90살 레고의 매력 덤플링(dumpling) 아닌 '만두' 즐기는 글로벌 힙스터 [비크닉 영상] 100년간 젤리만 팠다, 하리보의 이유 있는 고집 [비크닉] 600번대 번호표 비밀...더현대 서울 어떻게 '팝업 맛집' 됐을까 [비크닉] 한재동 비즈솔루션본부 마케터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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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크닉] 장난감을 뛰어넘은 90살 레고의 매력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가 오면 아이 선물 쇼핑할 재미에 들뜨는 딸바보 마케터 한재동입니다. 어릴 적 산타 할아버지에게 바라던 최애 선물은 늘 레고였습니다. 가장 가지고 싶었던 레고 해적선은 가지지 못했지만 작은 모델들을 모아 상자에 넣어 이것저것 다양하게 만들며 놀던 추억이 있어요. 어느새 딸의 선물로 레고를 고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세월 참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레고는 훨씬 나이가 많았습니다. 올해가 레고 9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하는군요. 요즘 뉴스에는 ‘레고랜드’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던 레고를 이런 식으로 뉴스에서 볼 줄은 몰랐지만, 쟁점이 되니 레고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분들도 많아진 것 같아요. 오늘은 논란이 되고 있는 레고랜드 사태와는 별개로, 마케터이자 팬의 입장에서 브릭 완구의 절대자로 군림하고 있는 레고(LEGO)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레고 브릭. 사진 레고 홈페이지 레고의 처음은 브릭이 아니었다 레고는 ‘STUD’라는 결합을 위해 튀어나온 단추 모양 돌기가 있는 플라스틱 블록입니다. 블록을 쌓거나 연결해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것을 브릭 완구라고 해요. 그리고 레고는 브릭 완구의 대명사고요. 그런데 사실 레고가 처음부터 플라스틱 블록을 만든 것은 아니에요. 레고의 시작은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Ole Kirk Kristiansen)’이 1932년 덴마크의 빌룬트에서 운영하던 목공소였습니다. 올레의 목공소 주력 사업은 원래 주택 건축과 리모델링이었지만, 대공황으로 기존 사업이 어려워지자 대신 목재로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요. 이 결정이 바로 장난감 왕국 레고의 시작이었습니다. 장난감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목공소는 위기를 넘겼고, 1936년 회사의 이름을 LEG GODT(덴마크어로 잘 놀다라는 뜻)에서 영감을 받은 ‘LEGO’라고 짓게 돼요. 1930년대 초반의 레고의 목재 장난감. 사진 레고 홈페이지 레고의 목재 장난감 사업은 승승장구해요. 심지어 2차세계대전 기간에도 장난감을 생산해서 매출이 늘었다고 합니다. 1946년 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물질의 등장에 레고는 또 한 번의 큰 도전을 해요. 비싼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사는 등 과감한 투자를 통해 플라스틱 브릭 완구를 개발합니다. 그리고 1949년 레고 최초의 플라스틱 브릭이 나오게 돼요. 초반의 레고 플라스틱 브릭은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지금처럼 단단하게 연결되지 못하고 쌓아 놓는 수준이었거든요. 그러다 1958년 브릭을 튼튼하게 연결할 수 있는 신기술 ‘Stud and Tube’가 개발되며 레고는 브릭 완구의 절대 강자가 됩니다. 최초의 플라스틱 브릭 Automatic Binding Bricks. 사진 레고 홈페이지 레고의 위기 탈출 넘버원 레고는 1960년대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공장과 판매처를 확장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합니다. 듀플로와 같은 영유아 대상 제품의 성공, 역할극을 가능하게 한 미니 피규어의 개발 그리고 시티, 캐슬, 스페이스와 같은 메가 히트 브릭 테마의 출시 등 전 세계 완구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죠. 레고 오너 일가는 창립자의 아들과 손자까지 3대에 걸쳐 기업을 이어받으며 90년대까지 레고의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2008년 출시된 레고 시티 50주년 제품, 패키지 모델은 창업자의 손자인 3대 오너 켈 커크 크리스챤센(Kjeld Kirk Kristiansen). 사진 레고 홈페이지 90년대 중반이 지나 레고의 독점 특허가 만료되자 호환되는 저가 플라스틱 블록을 생산하는 경쟁자가 등장했어요. 결정적으로 비디오 게임이라는 게임체인저가 등장합니다. 레고의 성장세는 더뎌지며 결국 98년 처음으로 적자가 나기 시작했어요. 레고는 이를 사업 다각화로 극복하려는 실수를 범합니다. 의류와 시계부터 출판 미디어 게임에까지 진출하고 테마파크인 레고랜드를 사업을 확장합니다. 결국 2004년 파산 위기를 맞고 바비인형 제조사인 마텔(Mattel)에 인수된다는 소문까지 돌게돼요. 이때 레고가 위기를 극복한 이야기는 꽤 유명합니다. 많은 마케팅 스터디에서 주제가 되었어요. 우선 3대에 걸친 창업주 가족 오너가 물러나고 맥킨지 출신의 전문경영인을 기용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Back to the Brick(브릭으로 돌아가자)”라는 메시지와 함께 무리하게 확장한 사업들을 정리했어요. 테마파크 지분을 매각하고 의류와 시계 사업도 정리했어요. 비디오 게임 쪽 인력도 축소했습니다. 제품을 지나치게 다양화하며 생긴 특수 브릭들을 줄이고 기본 브릭의 활용률도 올리며 효율성을 챙겼지요. 스타워즈 시리즈의 인기 제품 ‘밀레니엄 팔콘’. 사진 레고 홈페이지 내부의 비효율을 정리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외부 IP를 받아들여 신규제품을 출시했습니다. 그간 독자적인 캐릭터로 성공을 해왔던 레고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해요. 힘든 과정을 거쳐 출시된 외부 IP의 첫 번째 제품이 ‘스타워즈’ 인데, 공전의 히트를 하게 됩니다. 이후 해리포터, 배트맨, 스파이더맨, 반지의 제왕 등 레고는 키덜트라 불리는 성인층까지 고객을 확장합니다. 레고의 매력 예송논쟁 : 유명 IP의 구현인가, 무한한 창의성인가 성인 레고 팬을 ‘AFOL(Adult Fan of Lego)’이라고 불러요. 레고가 추정한 세계 AFOL의 수는 100만 명이 넘고, 연간 레고 판매량의 2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도 이제는 레고가 취미라는 성인들을 꽤 접할 수 있는데요. 키덜트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뉘앙스가 사라지며 “어른이 왜 애들 장난감을 가지고 노냐”는 말은 정말 옛날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인들이 레고에 열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유명 IP를 브릭으로 구현할 때 느끼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타워즈, 디즈니, 마블 캐릭터는 물론이고 건축물을 정교하게 구현한 레고 아키텍처 시리즈와 유명 스포츠카 등을 구동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레고 테크닉 시리즈는 많은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어요. 현재욱 레고코리아 시니어 브랜드 매니저의 인터뷰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년 이후로는 인테리어 소품, 명화, 식물 등까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제품까지 범위를 넓혔다고 해요. 덕분에 지난해 글로벌 매출은 전년 대비 27% 증가했고요. 성인팬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제품중 하나인 ‘보태니컬 컬렉션’. 사진 레고 홈페이지 반면 레고의 매력은 역시 창의성이라는 분들도 많아요. 프라모델처럼 정해진 매뉴얼대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다양한 작품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겁니다. 이 주장을 대표하는 분들을 브릭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요. 브릭 아티스트란 브릭으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작가를 뜻하는데, 이들 중 레고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작가들을 ‘LCP(LEGO® Certified Professional)’라고 해요. 세계적으로 22명인데 김성완, 이재원 등 한국 작가가 두 명이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MBC에서 방영되었던 브릭아트 프로그램 ‘블록버스터:천재들의 브릭전쟁’. MBC홈페이지 화면 캡쳐 2017년 LCP ‘네이선 사와야(Nathan Sawaya)'의 전시가 흥행하면서 국내에도 본격적인 브릭아트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어요.‘브릭캠퍼스(Brickcampus)’같은 전시 콘텐트가 흥행했고, 공중파 예능에서 브릭아트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제작 되기도 했습니다. 매뉴얼 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팬과 창의적인 레고의 매력을 강조하는 팬 사이에 대립이 있을지 모르지만, 레고 입장에서는 두 팬층 모두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는 고객이라는 것입니다. 팬들이 스스로 축제를 만드는 브랜드 아이들은 브릭을 완성하면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레고의 팬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서로의 브릭 작품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소규모 동호회 모임처럼 열리던 것이 커져 2000년에는 최초의 브릭 컨벤션 ‘브릭페스트(Brickfest)’가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열렸습니다. 수많은 세계의 브릭 컨벤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레고 본사가 있는 덴마크의 스케르벡에서 열리는 ‘스케르벡 팬 위켄드(Skærbæk Fan Weekend)’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부터 ‘브릭코리아 컨벤션’이 10년째 열리고 있어요. 레고는 팬들이 직접 컨벤션을 개최하도록 관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어서, 레고가 직접 개최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레고사의 이름을 걸고 다양한 후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고 컨벤션 ‘스케르벡 팬 위켄드’. skaerbaekcentret.dk 레고가 대체 불가한 브랜드 위상을 가지고 있다지만, 정작 고객 관계에 있어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어요. 특히 이번 인플레이션으로 가격 인상을 할 때 국내 고객의 불만이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올해 8월 1일 일부 상품의 가격을 최대 25% 정도 인상했는데, 고객들이 제대로 된 공지를 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레고 커뮤니티들에서는 해당 사태에 대해 고객과의 소통에 소홀한 레고코리아의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10년뒤, 100살의 레고는 어떨까요?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안에서 레고를 가지고 놀게 되면서 레고 매출은 2021년 전년 대비 27% 성장한 74억 유로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팬데믹으로 모든 장난감 업계가 호황을 맞는 상황이었어요. 레고의 성장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장기적으로 아이들의 시간을 점유하는 ‘경쟁 놀이’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바로 ‘디지털’이고요. 레고는 이미 다양한 디지털 전략을 시도했어요. 2004년 가상공간에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LEGO Digital Designer)’라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해서 팬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2007년에는 레고의 팬들이 자기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투표 등을 통해 상용화까지 가능한 ‘레고 아이디어스(LEGO Ideas)’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기도 했어요. 자신만의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는 레고의 인터랙티브 블록 ‘비디요(VIDIYO)’. 레고 홈페이지 증강현실을 이용한 인터랙티브 블록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 닌텐도와 협업을 통해 인터랙티브 블록 ‘레고 슈퍼 마리오’를 출시했고, 2021년에는 증강 현실 기술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는 ‘비디요(VIDIYO)’를 내놓기도 했어요. 디지털과 융합해 직접 만드는 즐거움을 주겠다는 전략이 보입니다. 닐스 크리스티안센 레고 CEO는 2021년 CNBC와 인터뷰에서 “단순히 온라인에서 레고를 파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 디지털 생태계와 그 미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건 장기적인 여정”이라고 말했어요. 절체절명의 위기들을 극복해온 아흔 살 베테랑 레고가 십 년 뒤 백 살이 되었을 때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비크닉 100년간 젤리만 팠다, 하리보의 이유 있는 고집 [비크닉] 600번대 번호표 비밀...더현대 서울 어떻게 '팝업 맛집' 됐을까 [비크닉] '알루미늄' 상처날수록 더 멋지다? 고급 여행가방의 대명사 [비크닉]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한재동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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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핸드크림 다 써봤지? 韓 연매출 914억, 스킨케어계의 애플 [비크닉]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쇼핑하러 가면 아내보다 더 신나게 돌아다니는 마케터 한재동입니다. 브랜드 매장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거든요.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수많은 매장 중에서도 유독 눈을 사로 잡는 곳이 있습니다. 열과 오를 맞춰 가지런히 진열된 갈색 병들이 가득한 브랜드 매장이에요. ‘갈색병’이란 말 한마디에 벌써 눈치 채셨을 겁니다. 오늘은 품질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깐깐함과 미니멀하고 정갈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유명한, 호주의 스킨케어 브랜드 ‘이솝(Aesop)’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이솝 조지타운 매장 전경. 사진 이솝 인스타그램 ━ 진짜 '고객 경험'을 경험한 썰 '고객 경험'은 요즘 마케팅에서 자주 접하는 용어예요. 간략하게 정의하면, 고객이 제품을 선택해 구매하고, 사용하면서 겪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도 리포트나 제안서에서 많이 보고 쓰는 말인데, 실제로 크게 와닿은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지인 선물을 사기 위해 이솝 매장에 들렀다가 '아, 이게 바로 고객 경험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제품을 사는 과정이 '쇼핑'이 아니라 마치 해외 '고급 리조트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받는 것 같았거든요. 우선 매장 외관부터 제품을 팔기 위한 다른 여느 매장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이솝의 매장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인테리어가 가장 큰 특징으로, 수납의 미학을 보여주려는 듯 설계된 선반 위엔 가지런히 놓인 갈색병이 가득합니다. 이 모습이 어찌나 인상적인지, 다른 특별한 인테리어 오브제가 필요하지 않아요. 또 매장 안에는 아로마 향이 가득해요. 입구를 열고 발을 내딛는 순간, 콧속부터 머릿속까지 환기됩니다. 여러 갈색병이 정갈하게 줄지어 서있는 이솝의 진열장. 사진 이솝 홈페이지 직원은 '컨설턴트'라고 불러요. 물건을 팔기 보다, 매장을 찾은 사람에게 알맞는 제품을 찾아준다는 역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컨설턴트는 방문객에게 1:1로 붙어서 접객을 합니다. 이들의 서비스는 다른 브랜드와 결이 달라요. '고객은 너무 다가가면 부담스러워하고, 무관심하면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 나빠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백화점의 고객서비스 매뉴얼이에요. 그래서 고객과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이솝은 매우 적극적으로 고객에게 다가갑니다. 고객과의 시간을 위해 과감히 대기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제품을 추천해요. 필요하다면 매장의 싱크대에서 손을 닦으며 제품을 테스트해 보기도 합니다. 이걸 이솝에서는 싱크데모(Sink Demo)라고 하는데요, 이를 위해 모든 이솝 매장엔 싱크대가 설치돼 있어요. 싱크대가 중요한 인테리어 요소가 되기도 하고요. 싱크데모를 위해 매장 한 가운데 자리잡은 대형 싱크대. 사진 이솝 홈페이지 ━ 깐깐한 헤어 디자이너의 욕심 지금은 글로벌 스킨케어 브랜드이지만 이솝의 첫 시작은 호주의 작은 미용실이었습니다. 창립자 데니스 파피티스(Dennis Paphitis)는 '아마데일 헤어살롱'이라는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손님을 가려 받을 정도로 동네에서 까다로운 헤어 디자이너로 유명했던 그는 당시 사용하던 헤어 제품이 성에 차지 않았어요. 화학약품 일색이었던 염색약이나 스타일링 제품은 냄새가 고약하고 피부에도 좋지 않았거든요. 늘 불만이 가득한 그에게 어느날 귀인이 등장합니다. 다름 아닌 그의 미용실 직원이었던 수잔 산토스(현재 이솝의 글로벌 최고 고객 책임자)예요. 수잔은 "제품이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고, 데니스는 실제로 그 말을 들었어요. 염색약에 천연 에센셜 오일을 섞어서 효과와 향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어 버린 겁니다. 이렇게 시작한 게 바로 1987년 탄생한 이솝이에요. 깐깐한 데니스는 식물성 원료를 기본으로 한 헤어 제품개발에 몰두했고, 이후 스킨·바디·핸드·향수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1990년 이솝의 베스트셀러인 핸드크림 '레저렉션 아로마틱 핸드밤'과 2001년 화장수 '파슬리 씨드 안티 옥시던트 페이셜 토너' 등 히트작과 함께 꾸준히 성장했지만, 이솝은 여전히 호주의 작은 브랜드에 불과했어요. 이솝에게 세계 무대를 날 수 있는 날개가 달린 것은 가치관이 통하는 파트너를 만나고 나서부터였어요. 파트너는 바로 브라질의 국민 뷰티 기업 '나투라앤코(Natura&co)'. 나루라앤코는 환경보호와 기업의 윤리적 역할에 진심인 세계 4위 글로벌 뷰티 그룹사입니다. 2012년 이솝은 나투라앤코에 인수합병됐는데요. 뷰티업계의 화려한 마케팅 관례에 따르지 않고, 제품에 집중하며 친환경·순환경제·윤리적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솝에게는 정말 잘 맞는 파트너였죠. 덕분에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브랜드 정체성이 잘 유지됐어요. 대기업에 흡수된 많은 브랜드가 자신을 잃고 위기를 맞는 것과는 달랐죠. 이솝의 베스트셀러 파슬리 씨드 안티 옥시던트 페이셜 토너. 사진 이솝 홈페이지 ━ 과장하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오직 철학대로 변화와 혁신. 많은 브랜드가 좋아하는 말이지만, 이솝에겐 가장 경계하는 표현입니다. 이솝은 출시된 제품을 리뉴얼 하거나 혁신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아요. 사실 이건 자신감의 표현이에요. 처음부터 '완벽했다'는 거죠. 보통 이솝은 제품 하나를 개발하는데 3~4년, 길게는 10년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렇게 제품을 출시하면, 보통의 마케터는 긴 개발 기간과 완벽한 효능을 강조해 알리고 싶어 합니다. 유명한 모델을 기용해 깨끗한 피부를 클로즈업해 보여주고, 사용한 좋은 원료를 보여주며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총동원하기도 하죠. 그런데 이솝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신들이 사용한 유기농 원료에도 ‘자연주의’ ‘유기농’이란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고객의 혼란을 줄 수 있단 이유에서죠. 오히려 홈페이지에 ‘식물 기반 원료를 과학 기술에 기초해 만들었다’고만 말해요. 그런데 이렇게 하니까 오히려 더 신뢰를 얻었어요. 이들의 담백함과 과장하지 않는 태도에 말이죠. 마케팅의 방향도 브랜드 자체를 고급스럽게 꾸미거나, 제품을 강조하는 다른 뷰티 브랜드들과 결이 달라요. 목표 자체가 균형 잡힌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솝의 철학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케팅 콘텐트가 피부 건강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친 지적인 영역까지 다양해요. 이솝의 매장이나 패키지, 뉴스레터에 인사이트를 주는 명사들의 격언이 사용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솝 매장에서는 인사이트를 주는 격언이 늘 걸려 있다. 사진 이솝 홈페이지 이런 이솝의 마케팅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는 호주의 주간지 ‘새터데이 페이퍼(Saturday Paper)’와 2016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에세이 공모전입니다. The Lucky Country를 쓴 호주 작가 도널드 혼(Donald Horne)의 이름을 딴 ‘혼 프라이즈(The Horne Prize)’가 매년 진행되는데요. 주제는 호주인의 삶 전반에 대한 것으로, 수상작은 호주 이솝 매장에 비치된다고 합니다. 지난해엔 음악과 연계된 재미있는 시도도 했어요. 향수 ‘아더토피아’ 출시를 기념해 인터넷 라디오 플랫폼 월드와이드 에프엠에 ‘ 이솝 라디오마티크 믹스테이프(Radiomatique Mixtapes)’를 런칭했어요. 향기와 소리의 만남을 주제로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60분가량의 플레이리스트를 업로드합니다. 아티스트들의 인종, 장르, 지역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에세이 공모전 ‘The Horne Prize’ 당선작은 호주 이솝 매장에 비치된다. 사진 이솝 트위터 ━ 강박에 가까운 브랜딩이 만들어 낸 우아함 심플함과 일관성으로 유명한 브랜드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많은 분이 애플이라고 하겠지만, 이솝 또한 복수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이솝의 제품은 심플한 패키지에 담겨 있어요. 갈색병에 붙어있는 베이지색 라벨에는 장식이라고는 검은 띠 한줄이 전부이고, 헬베티카 폰트로 간결하게 제품 설명이 적혀있습니다. 가장 최소한의 디자인을 한 것 같지만, 그 단촐함이 곧 이솝의 브랜딩이 되었어요. 이제는 많은 신생 브랜드가 이를 따라 하려고 하죠. 또한 친환경이라는 메시지가 일관적으로 적용됩니다. 이솝이 갈색병을 쓰는 이유는 빛과 자외선 투과를 막아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어요. 이로 인해 방부제를 최소한으로 사용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죠. 병과 종이 박스 또한 재활용한 재료로 만들고, 일회용 쇼핑백 대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패브릭 주머니에 담아 줍니다. 인쇄물도 모두 식물성 콩기름 잉크만을 사용하고요. 심지어 매장 인테리어도 폐점하는 다른 매장의 가구를 재활용합니다. 이솝의 브랜딩에서 가장 독특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품 디스플레이 방식입니다. 보통 매장 디스플레이는 제품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적은 수의 제품을 전시하고 많은 여백 공간을 확보해요. 이솝은 정반대입니다. 선반에 많은 수의 제품을 홀수 단위로 정갈하게 배열해 둡니다. 이솝 매장 직원(컨설턴트)들의 중요한 일의 하나가 제품의 열과 오를 맞추는 것이라고 해요. 통일성 있는 갈색 병들이 모던한 인테리어의 매장에 정갈하게 전시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풍성함과 우아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솝은 전 세계 각지에 시그니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들과 협업해서 같은 형태가 아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매장에서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문화를 반영해서 고객과의 유대감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해요. 우리나라에도 현재 14개의 시그니처 매장이 있습니다. 가마를 연상시키는 벽돌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솝 사운즈 한남. 사진 이솝 홈페이지 삼청동 거리와 조화를 이루는 이솝 삼청. 사진 이솝 홈페이지 성수동의 분위기와 맞으면서도 이솝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이솝 성수점. 사진 이솝 홈페이지 ━ 한국에서의 폭발적인 매출 성장 비결은 이솝의 아시아 제너럴 매니저 프레데리크 세일러가 매거진B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매출이 큰 시장’이라고 해요. 2005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꾸준히 성장했지만, 최근 2년간의 성장률은 폭발적이에요. 이솝 코리아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년 매출은 547억, 21년 매출 914억으로 연평균 성장률이 86%에 달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오프라인에서의 고객 경험에 공 들이는 이솝의 매출 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 채널에서의 활약 덕이 큽니다. 이솝의 베스트셀러인 '레저렉션 아로마틱 핸드밤'은 카카오톡 선물하기 판매량 상위 3위 내에 꾸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선물하는 풍조가 널리 퍼지며 얻은 호재였어요. 그럼 그간 오프라인에 집중한 이솝의 브랜딩은 잘못된 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이솝의 뛰어난 제품과 고객서비스, 브랜드가 가진 철학을 꾸준히 패키지와 매장을 통해 구현해 둔 결과가 온라인 매출을 통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만원 대의 작은 핸드크림이 인기 선물 아이템으로 등극한 데에는, 이솝이라는 브랜드 후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죠. 이것이 바로 온라인 시대에도 오프라인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뷰티 부분 인기 아이템인 ‘레저렉션 아로마틱 핸드밤’. 이 핸드크림을 통해 이솝에 입문하는 사람이 많다. 사진 이솝 홈페이지 프레데리크 세일러는 매거진B 인터뷰에서 "매장에서 제공하는 진실한 서비스를 지키는데 가치를 두면서 더 쉽게 제품을 살 방법을 제공하겠다"고 목표를 밝힙니다. 사실 쉽게 쇼핑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대부분 개발돼 있죠. 하지만 그것을 오프라인과 균형을 맞추며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브랜드는 아직 없어요. 이솝이 과연 그것을 어떻게 해낼지 궁금합니다. 비크닉 성수동 검은 'ㅅ' 건물의 정체…'몸값 4조' 무신사의 이런 실험 [비크닉] 그 흔한 토스터·선풍기 10배 주고 산다…발뮤다 '감성가전' 비결 [비크닉] "인생사진 건진다"…뙤약볕에 몇시간 줄서도 웃음 터지는 이곳 [비크닉] 쓰레기로 만든 가방이 추앙 받는 이유, 프라이탁 [비크닉]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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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검은 'ㅅ' 건물의 정체…'몸값 4조' 무신사의 이런 실험 [비크닉]
또 다른 무신사의 공간 탄생 여러분 혹시 지난 주말 성수동 가보셨나요? 성수동의 '핫플' 리스트에서 또 한 곳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름하여 ‘E( )PTY(엠프티)’. 영문명 중간에 있는 괄호에 쌓인 빈칸( )은 오타가 아닙니다. 의도된 이름 표기, 맞습니다. 위치는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에서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검은색 멋진 건물입니다. 원래 이곳은 ‘대신상사’라는 인쇄소가 있던 자리예요. ㅅ자 모양의 박공지붕 형태는 살리면서 건물 전체를 1년에 걸쳐 리모델링했어요. 브랜드 컬러인 검은색에 통유리를 사용해서 세련된 느낌을 잡았죠. 오늘은 이곳, 무신사의 새로운 공간을 들여다 봤습니다. 지난 9월 3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문을 연 '엠프티' 매장. 오래된 인쇄소 건물을 1년에 걸쳐 리모델링했다. 박공지붕 뒤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하단부를 통유리로 처리해, 마치 사각 박스가 박공지붕 건물 위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 무신사 온라인 지존 무신사가 오프라인부터? 엠프티는 무신사가 새롭게 만든 온·오프라인 패션 커머스 플랫폼입니다.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잠재력이 있는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를 집중해서 소개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디자이너들이 만든 옷·가방·액세서리 등을 모아 보여주는 감각적인 셀렉트샵(편집샵)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번 성수동 매장은 엠프티의 오프라인 매장인데요, 오는 16일 온라인 플랫폼을 론칭하기 전에 먼저 공개했습니다. 자, 여기까지 봐도 기존 무신사와는 확실히 다른 점이 포착되지 않나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신사가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오프라인’을 가장 먼저 내세웠다는 겁니다. 이것은 확실히 무신사의 행보 중 새로운 실험입니다. 기업가치 4조의, 지난해 거래액 2조3000억원을 기록한, 국내 온라인 패션 커머스 생태계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무신사가 온라인에 앞서 오프라인으로 첫 단추를 끼웠으니 말입니다. 자신의 특기인 온라인 커머스에 더해 이번엔 오프라인 영역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인데요, 무신사의 새로운 꿈틀거림이 느껴집니다. 물론 무신사가 오프라인 공간을 선보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미 지난해 홍대입구 인근에 무신사 스탠다드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큰 성공을 거뒀어요. 이를 발판으로 올해 6월엔 강남역 부근에 2호점까지 확장했고요. 하지만 무신사 공간의 시작은 사실 공유 오피스 ‘무신사 스튜디오’부터로 봐야 해요.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국내 디자이너를 위한 공간으로, 동대문을 시작으로 지금은 성수동·한남동까지 3곳의 공간을 운영 중이랍니다. 앞서 2019년엔 무신사에 입점한 브랜드들의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홍대 경의선 숲길 인근에 만든 복합문화공간 '무신사 테라스'도 있었죠.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번 엠프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영역에서 각각 쌓아온 노하우를 한데 결합한 완전체로 보여요. 따로 놀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탄생부터 하나로 묶었어요. 무신사 플래그십 스토어 스탠다드 홍대 외부. 사진 무신사 무탠으로 공부했다 바로 이전 작(作)인 무신사 스탠다드 스토어를 먼저 살펴볼게요. 무신사 스탠다드 스토어는 오픈한 지 1년 만에 100만명 이상이 다녀갔을 정도로 성공을 거뒀어요(홍대점 기준). 2호점인 강남점이 오픈하는 날도 입장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설 만큼 인기를 끌었죠. 하지만 이곳은 온라인에서 이미 5년 차에 접어든 ‘검증된’ 브랜드를 들고 나간 공간이었어요. 무신사 스탠다드는 최초 연간 거래액 1조원의 원동력이 될 만큼 브랜드 인큐베이팅, 디자이너 협업, 물류통합시스템까지 무신사가 가진 노하우를 쏟아부은 자체 브랜드(PB)예요. 2017년에 시작해 이미 무신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할 만큼 성공했죠. 그런데 무신사는 왜 온라인에서 성공한 PB를 들고 오프라인 세계로 나갔을까요. 홍대점을 냈던 지난해 상황을 보면, 무신사는 그 1년 전인 2020년 이미 매출 3319억원에 영업이익 455억원을 넘길 만큼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어요. 10~20대 남성 소비자를 정조준한 무신사 스탠다드의 슬랙스(양복바지)는 이미 100만장 이상 팔린 상태였고요. 하지만 온라인 시장에도 한계는 있죠. 전년 대비 51%라는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채널을 도입하는 게 필요했어요. 이때 선택한 게 바로 오프라인 매장이었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도 무신사의 오프라인 매장은 반가웠어요.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좋아하는 지금 소비자들에게 온라인에서 익숙한 브랜드를 몸으로 ‘경험’하는 새로운 공간이 생긴 것이니까요. 브랜드를 몰랐던 사람에겐 온라인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를 처음 만나는 기회이기도 했죠. 다시 무신사의 입장으로 돌아오면, 무신사 스탠다드 스토어는 온라인의 오프라인 확장 실험이었어요. 이미 성공한 ‘내 브랜드’를 기반으로 하기에, 어느 정도의 성공은 분명 자신할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대표 상품 슬랙스는 오프라인 확장 후 더 많이 팔려서 지금까지 누적판매 300만장을 기록했습니다. 또 다른 공간 무신사 테라스는 형태로만 보면 엠프티와 가장 가까워요. 입점 브랜드의 옷과 콘텐트를 오프라인에서 보여준다는 것을 대전제로 잡고 있거든요. 무신사 테라스는 팝업스토어와 페스티벌 등 브랜드가 자신의 콘텐트를 보여줄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임을 내세웁니다. 무신사는 테라스의 입점 브랜드를 별도 카테고리로 정리해 운영하는 등 이곳에서 온·오프라인 융합을 위한 여러 실험을 했어요. 무신사 테라스로 실험 결과를 얻고(1단계), 이를 기반으로 무신사 스탠다드 스토어를 열어 성공적인 오프라인 매장 운영 경험(2단계)을 축적했죠. 이렇게 쌓은 노하우를 응집한 결과물이 바로 엠프티(3단계)인 겁니다. 엠프티 내부 모습. 박공지붕 모양을 그대로 살린, 벽 한 면을 꽉 채운 미디어 패널은 이곳의 콘텐트를 담아내는 공간이다. 사진 무신사 새로운 실험, 디자이너 편집샵 지난 3일 공개한 성수동 엠프티 매장은 ‘국내와 해외 시장을 아울러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하는 독창적인 셀렉트숍’을 표방하고 있어요. 무신사가 "기성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담은 새로운 도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었을까요. 해외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미 명품을 소개하는 ‘무신사 부티크’도 있는데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엠프티를 총괄하는 전영용 무신사 트레이딩 브랜드 사업본부장이 해줬어요. “덩치가 큰 무신사는 이제 메인 스트림(주류 패션)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소개하고 싶은 디자이너 브랜드와 편집숍은 감도가 중요한데, 그것을 담을 수 있는 별도의 그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국내 브랜드만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어 해외 디자이너에까지 영역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았어요. 대만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제3세계 브랜드도 조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거든요.” 엠프티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 채워 나가겠다는 의미를 이름에 담았어요. 이미 유명한 브랜드보다 자신만의 철학을 보유한 브랜드를 중심으로 큐레이션을 선보이겠다는 것이죠. 시작을 함께 한 브랜드는 약 60여 개 정도, 내년 봄·여름 시즌은 80개까지 늘릴 예정입니다. 구성은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 70%, 나머지 30%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잠재력 있는 국내 브랜드로 채웠어요. 브랜드 선택 기준은 무엇보다 스토리텔링! 지금 매장에서 보여주는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아뜰리에 미미' '미스타' '나타샤 징코'가 바로 이 기준으로 선택한 브랜드들입니다. 전 사업본부장은 “내년엔 영국의 도버스트리트 마켓과 공식 협약을 맺고, 런던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봄 시즌부터 선보일 예정”이라고 귀띔해줬어요. 무신사가 새로 만든 국내외 디자이너 편집숍 플랫폼 엠프티. 사진 무신사 무신사, 다 계획이 있구나 여기까지 살펴본 엠프티는 시작부터 글로벌을 타깃으로 하고 있었어요. 온라인 플랫폼의 영문 버전을 동시에 론칭하는 이유도 한국 브랜드는 해외에, 해외 브랜드는 국내에 소개하겠다는 목적이 있죠. 한국에서 벗어나 이젠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으로 발돋움 하고 있었습니다. 엠프티의 전개 주체에서도 전략이 녹아 있어요. 엠프티는 무신사의 자회사 '무신사 트레이딩'이 전개해요. 전신은 알파인더스트리·로우로우 등 여러 패션 브랜드의 온라인 총판을 가진 '이누인터내셔날'로, 무신사가 2019년 인수해 플랫폼에서 소개할 해외 브랜드를 선별, 연결하는 창구로 운영하다가 지난달 초 사명을 아예 무신사 트레이딩으로 바꿨어요. 20년 가까이 해외 브랜드를 수입 전개한 업력을 가진 회사로 탄탄하게 엠프티의 초석을 세운 겁니다. 회사가 다른 만큼 엠프티는 독립된 플랫폼이자 커머스 브랜드로 운영해요. 본체인 무신사가 가진 브랜드 유통·마케팅 인프라는 지원받지만요. 엠프티의 공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층에 있는 가로 11m 세로 6m 규모의 LED 미디어 파사드예요. 박공지붕 모양까지 그대로 살린 화면인데, 여기에 엠프티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디지털 영상으로 보여줘요. 매장에 들어간 사람이 뒤를 돌아보면, 현실과 완전히 구분된 온전한 ‘엠프티 월드’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죠.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들어와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요. 옷과 함께 보여주는 아트북과 프린트 베이커리의 아트피스들. 사진 무신사 결국은 콘텐츠 이 화면을 보고 엠프티에 대한 많은 물음표가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왜 그 어렵다는 해외 디자이너 편집샵을 할까’ ‘왜 공간부터 열었을까’ 같은 질문에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콘텐트’라는 답을 내놓더군요. 무신사가 잘하는 10~20대가 함께 즐기는 패션 콘텐트를 만드는 거잖아요. 해외 패션 브랜드에 무신사의 콘텐트를 입히는 작업이 이곳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걸 의심할 필요가 없었어요. “처음부터 일반적인 것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의 미션 중 하나는 ‘브랜드를 가장 예쁘게 보여주는 스팟’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오프라인 공간 구성 원칙에 따르지 않았고, 나라나 남성·여성도 구분하지 않고 걸었어요. 쇼핑백도 매 시즌 다르게 디자인해요. 이런 모든 것이 하나의 콘텐트라고 생각하거든요.” _ 전영용 무신사 트레이딩 브랜드 사업본부장 국내 브랜드 소개도 소홀하진 않았어요. 눈에 띄는 것은 무신사가 엠프티를 통해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와 협업한 상품을 소개한다는 계획인데요. 이미 충성도 높은 여성 고객을 보유한 '유노이아’와는 단독으로 남성 라인을 선보였어요. 또 다른 여성복 ‘2000아카이브’와는 단독 상품을 출시하고 콘텐트를 협업한답니다. 지금 국내에 있는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 중심의 굵직한 패션 편집숍은 신세계의 분더샵, 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텐꼬르소꼬모와 비이커 정도를 꼽을 수 있어요. 여기엔 이유가 있는데, 패션으로 잔뼈가 굵은 대기업들이 아니고서는 디자이너 편집샵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취급하는 제품은 소비자에게 ‘잘 모르는 브랜드인데, 가격은 비싸다’는 평을 피하기 힘들거든요. 하지만 감도를 유지하기 위해 매 시즌 새로운 상품을 선보여야 해서 운영사 입장에선 재고 부담이 상당합니다. 그렇다고 한 점만 팔아도 매장이 유지될 정도로 상품 가격이 비싼 건 또 아니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선 편집숍의 생명력이 길지 않았어요. 과연 엠프티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무신사니까 오히려 잘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도 좋은 토종 편집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으니까요.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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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한 토스터·선풍기 10배 주고 산다…발뮤다 '감성가전' 비결 [비크닉]
━ #INTRO: 감성 제대로 건드린 생활가전계의 애플 혼자 산 지 벌써 6년. 요즘 부쩍 퇴근 후 불 꺼진 집에 들어가면 사무치는 외로움이 찾아옵니다. 어둡고 조용한 집이 싫어 조명 기능이 있는 스피커를 샀어요. 소리를 빛으로 보여주는 감성템, '발뮤다 더 스피커'랍니다. 음악에 맞춰 호롱불처럼 춤추는 것이 특징이죠. 영롱하게 반짝이는 불빛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지친 하루를 위로 받는 것 같습니다. '죽은 빵도 살린다'는 스팀 토스터, 혹시 들어보셨나요? '발뮤다 더 토스터'인데요, 이것 역시 지금까지 한국에서 36만대나 판매된 발뮤다의 대표적인 감성 가전이랍니다. 그런데 이 토스터,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희망소비자가격이 무려 33만9000원. 다른 가전 브랜드의 토스터와 비교하면 3배에서 많게는 10배나 비싸요. 하지만 토스터 가격은 발뮤다의 세계에선 귀여운 편에 속합니다. 선풍기(54만9000원)와 오븐레인지(69만6000원)를 생각하면 말이죠. 한국에서만 36만대가 팔린 '발뮤다 더 토스터'. 사진 발뮤다 가격이 이렇게 비싼데도 사람들이 저처럼 발뮤다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에게 토스터가 생활에 없으면 안 되는 필수 가전도 아닌데 말입니다. 선풍기는 또 어떤가요. 다들 집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선풍기가 특별해 봤자 뭐 얼마나 특별할까 싶은데, 취향 좋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워너비’ 가전 중 하나가 바로 50만원이 넘는 발뮤다의 선풍기라고 합니다. 이쯤하면 분명 이 브랜드, 가격이란 허들을 쉽게 넘겨버릴만한 치명적인 매력을 보유한 게 분명해 보이죠? 외로운 제 방을 캠핑장으로 만들어준 '감성 가전', 이번 주 비크닉은 '소형 가전계의 애플', 프리미엄 가전 기업 발뮤다(BALMUDA) 이야기입니다. 지난 2019년 서울에서 열린 첫 한국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테라오 겐 발뮤다 CEO. 사진 발뮤다 ━ #매출 4분의 1이 한국서 발생하는 브랜드 2003년 '록밴드 기타리스트'란 특이한 이력을 가진 테라오 겐(寺尾玄)의 1인 기업으로 출발한 발뮤다는 공기청정기, 서큘레이터, 선풍기, 토스터, 오븐레인지, 조명 등 총 16개 종류의 생활가전을 판매하고 있어요. 국내에선 스팀 토스터, 그리고 최근엔 전기주전자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최근 발뮤다가 한국에서 존재감을 더욱 넓히고 있습니다. 올해 2분기 한국 시장에서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한 겁니다. 일본 전자공시시스템(EDINET)에 따르면 2분기 발뮤다의 한국 시장 매출은 총 14억500만엔(약 138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종전 최대 매출을 기록했던 지난해 4분기(10억4800만엔)와 비교하면 약 38% 증가했어요. 2020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의 발뮤다 매출 추이. 올해 2분기에 한국에서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와 올해 2분기 발뮤다의 지역별 매출 비중. 한국 시장의 비중이 24.1%로 2.4%p 증가했다. 발뮤다에게 한국은 고향인 일본 다음으로 중요한 시장이자, 가장 큰 해외 시장입니다. 올해 2분기 한국 시장의 매출 비중은 발뮤다의 전체 매출의 4분의 1에 달합니다. 지난해 동기와 비교하면, 일본 시장 비중은 4.8%포인트가 줄어든 반면 한국 비중은 2.4%포인트가 늘었죠.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발뮤다의 국내 총판을 맡고 있는 한국리모텍 라보람 전략마케팅사업부서장은 "발뮤다만의 디자인과 감성이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본다"며 "집에서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타고 고급 가전 브랜드로 국내 시장에 안착했다"고 말했어요. 공기청정기 '발뮤다 더 퓨어(BALMUDA The Pure)'. 사진 발뮤다 ━ #생활가전을 인테리어로 만들다 발뮤다의 매력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디자인'입니다. 특징은 한마디로 심플(Simple).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은 시선을 잡아끕니다. 일본 제품이지만, 미니멀 감성의 북유럽 가구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제품 이름도 디자인처럼 단순하고 직관적입니다. 토스터는 '발뮤다 더 토스터(The Toaster)', 전기밥솥은 밥을 뜻하는 일본어 '고항(ご飯)'에서 따온 '발뮤다 더 고항(The Gohan)', 청소기는 '발뮤다 더 클리너(The Cleaner)', 스피커는 '발뮤다 더 스피커(The Speaker)'죠. 홈 인테리어가 중요해지면서 디자인은 가전의 중요한 구매 요인이 됐습니다. 김승인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는 2020년 생활가전이 홈퍼니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보고서에서 '가전의 가구화(化)'란 개념으로 2030세대의 가전 구매 양상을 설명했습니다. "최근 가전은 기술발전에 의한 ‘스마트’ 흐름을 지나 가구와 일체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수한 기능은 기본이고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가전이 집안의 전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주목 받는다"라고요. 발뮤다와 비슷한 포지셔닝을 통해 성공한 브랜드 사례도 많습니다. '날개 없는 선풍기'로 인기몰이를 한 영국 가전 다이슨(DYSON), 백색(白色) 일색이었던 냉장고 시장에 오렌지·핑크·레드 등 강렬한 컬러 디자인으로 충격을 준 이탈리아 가전 스메그(SMEG)도 디자인을 앞세워 가전의 가구화에 일조한 브랜드들입니다. 무선 선풍기 '발뮤다 그린팬S'. 사진 발뮤다 틀을 깬 기능은 발뮤다의 매력을 증폭시킵니다. 먼저 토스터를 볼게요. 세로로 빵을 꽂는 기존 토스터와 다르게, 발뮤다의 토스터는 오븐형으로 설계됐어요. 물을 넣고 구우면 증기가 분사돼 딱딱하게 굳은 빵도 갓 구운 것처럼 따뜻하고 촉촉하게 만들어 주죠. 기분좋은 자연 바람을 만들어내는 선풍기(발뮤다 그린팬S)는 전선때문에 옮기기 힘든 불편함까지 해소해주려고 무선으로 만들었답니다. 실제 사용자들은 디자인에 '홀려' 구매했다가 기능이 좋아 만족감이 높아졌다는 반응입니다. 지난 2년간 토스터를 사용해온 직장인 김지유씨(28)는 "디자인이 예뻐 부엌 인테리어용으로 장만했는데, 식빵 굽는 것뿐아니라 간단한 베이킹까지 가능해서 지금은 기능에 더 만족한다"고 했어요. 지난 여름을 발뮤다 선풍기만으로 버텼다는 박종서씨(43세)도 "간결하고 깔끔한 디자인에 반해 제품을 구매했는데, 무선 선풍기라 집안 곳곳에서 이동하면서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했어요. 최성운 대진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는 2020년 발뮤다의 디자인을 연구한 논문에서 "발뮤다, 스메그 등 생소했던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집중해 기존 다국적 가전 기업들을 위협하는 상황"이라며 "이들은 독창적인 기업경영전략과 그에 상응하는 디자인 철학을 중심으로 소비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증기와 열로 딱딱하게 굳은 빵도 다시 촉촉하게 되살려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발뮤다 더 토스터'의 주요 기능이다. 사진 발뮤다 ━ #"우리는 특별한 경험을 나눈다" 사실 발뮤다가 처음부터 한국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는 아니었습니다. 2012년 발뮤다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가전 브랜드일 뿐이었어요. 당시 발뮤다가 한국에 출시한 제품은 선풍기와 서큘레이터 등 여름 가전. 낮은 브랜드 인지도와 높은 가격 탓에 판매량은 부진했죠. 반전은 후발 주자로 출시된 공기청정기였습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공기 청정 수요가 급증하던 상황. 발뮤다는 친환경성을 전면에 내세웠고, 제품 리뷰(체험기)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쏟아지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토스터, 전기주전자 체험기를 통해 발뮤다에 대한 '특별한 경험'의 문구들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죽은 빵도 되살린다', '집에서도 티포트 없이 핸드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처럼요. 물론 발뮤다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이긴 했습니다만, 생생한 실제 사용 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어요(저도 죽은 빵 한번 살려보고 싶더라고요). 가격이 아닌 경험의 가치로 경쟁하는 탈(脫) 염가 전략은 '고급 가전' 이미지를 굳히는 데 효과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등 특급호텔에 제품을 납품하면서 ‘럭셔리 가전’이란 이미지도 더해지니 가격은 더이상 문제되지 않았어요. 발뮤다를 국내에 들여온 한국리모텍은 이점에 착안해 체험기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것으로 마케팅 방향을 잡았습니다. 라 부서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리뷰가 공유되면서 매출로 이어졌고, 팬덤이 생겼다"면서 "샤프·파나소닉 등 많은 기업들이 한국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가전이 아니라, 경험을 판다'는 게 테라오 겐 발뮤다 CEO의 경영 철학이에요. 디자인 존재감을 가진 물건이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겁니다. 그는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가전 제품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의 소비자는 편리함보다 새롭고 경이로운 경험을 찾고 있다"고 말한 바 있어요. 토스터를 개발할 때 기능을 '빵을 간편하게 굽는 것'에서 '빵을 굽고 식사를 더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으로 초점을 바꾼 이유죠. 쓸쓸한 저녁, 힐링을 주는 ‘발뮤다 더 스피커’. 사진 발뮤다 ━ #발뮤다가 넘어야 할 언덕 그런데 발뮤다의 미래가 지금처럼 마냥 밝을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발뮤다를 둘러싼 환경이 좋지 않아요. 환율 리스크 때문입니다. 미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현재 달러당 137엔을 넘었습니다. 연초 대비 약 18%나 높고, 2002년 4월 이후로 가장 약세죠.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제품을 더 싼 가격에 수출할 수 있어 일본 기업엔 호재입니다. 그런데 발뮤다는 원가 절감을 위해 일본이 아닌 국외(중국·대만 중심)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한국·일본·북미로 수출하는 오프쇼링(Off Shoring) 방식을 고수합니다. 하지만 최근 엔저 현상으로 일본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 대비 가격 경쟁력이 낮아졌어요. 아직까지 발뮤다의 최대 시장은 일본인데, 국외에서 생산해 '수입'해야 하니 더 비싼 가격에 살 수밖에 없어 사람들이 구매에 망설이게 되죠. 테라오 겐 CEO도 지난 8일 2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외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일본으로 판매하는 방식이 우리의 최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발뮤다는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7.3% 감소한 8억엔(약 78억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발뮤다가 일본으로 생산 기지를 옮길 가능성은 높지 않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발뮤다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발뮤다폰'. 사진 발뮤다 홈페이지 캡처 최근 시작한 스마트폰 사업에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발뮤다는 지난해 11월 가전기업 교세라, 통신기업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공동 개발한 스마트폰 '발뮤다폰'을 출시했습니다. 직선이 없는 발뮤다 특유의 디자인이 돋보이는 제품이죠. 하지만 발뮤다는 출시 한 달 만에 제품에서 전파 인증과 관련한 미비점을 발견,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이후 문제를 해결하고 판매를 재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판매가 부진한 이유는 낮은 성능 대비 높게 책정된 가격. 자급제 기준 10만4800엔(약 102만원)이죠.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로 퀄컴 스냅드래곤765를 선택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스냅765는 LG전자가 지난 2020년 출시한 'LG 벨벳', 같은 해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원플러스가 출시한 가격 30만원의 가성비 스마트폰인 '원플러스Z'에 탑재된 칩과 같습니다. 시바타 나오키 일본 기업 전문 칼럼니스트는 "발뮤다폰의 성능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다"며 "미들(중저가) 스펙에도 높은 가격 정책을 그대로 고수해 10만엔이 넘는 고가로 출시한 것이 문제"라고 분석했습니다.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발뮤다폰 사업, 그리고 환율 리스크. 발뮤다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요.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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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로 만든 가방이 추앙 받는 이유, 프라이탁 [비크닉]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가득 찬 위시리스트와 귀여운 월급봉투에 고통받는 마케터 한재동입니다. 오늘은 MZ세대들의 소비 특징인 ‘가치소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요. 이왕이면 좀 더 ‘가치로운 소비’를 하겠다는 건데, 사실 떠오르는 브랜드는 하나뿐이었습니다. 오늘 이야기해 볼 브랜드는 가치소비에서 가장 유명한 스위스의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입니다. ━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시조새이자 절대자, 프라이탁 홍대나 이태원, 성수 같이 핫한 거리에는 👆 위 로고가 달린 투박한 메신저 백을 맨 힙스터 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프라이탁이라는 가방 브랜드인데요. 이 가방을 메고 있는 사람이라면 열이면 열, 브랜드에 관해서 물어봐 주길 바라고 있을 겁니다. 왜냐구요? 브랜드에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거든요. 먼저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부터 말씀드릴게요. 프라이탁은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가방 브랜드입니다. 업사이클링(Upcycling)이란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해요. 스위스의 디자이너 프라이탁 형제는 비에 젖지 않는 자전거 가방을 찾다가 트럭의 방수천으로 직접 가방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게 바로 프라이탁의 시작이었죠. 방수천으로 가방의 몸통을 만들고, 자동차 안전벨트와 자전거 고무 튜브 등을 조합했습니다. 1993년, 이렇게 만든 가방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면서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시초(중앙일보.2017.06)이자 ‘절대자’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프라이탁이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시조새인건 알겠는데, 왜 절대자냐구요? 재활용을 통해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많이 등장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드릴게요. 폐현수막 등을 이용해서 잡화를 만드는 스페인의 누깍(Nukak), 재활용 원단 등을 이용한 핀란드의 패션 브랜드 글로베 호프(globe hope), 폐지를 이용해 다양한 굿즈를 만드는 미국의 홀스티(holstee)가 있어요. 한국에도 2012년 코오롱Fnc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가 등장했어요. 그런데 제가 환경보호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던 탓인지 위의 브랜드들은 이번에 공부하면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바꿔 말하면, 저처럼 친환경 브랜드 초보자일지라도 ‘업사이클링’ ‘환경보호’라고 했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브랜드가 프라이탁뿐이라는 겁니다. ━ 광고를 왜 해요? 고객이 알아서 홍보해주는데😄 한국 잡지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매거진B의 창간호 〈프라이탁〉 [사진 매거진B 홈페이지] 프라이탁은 어떻게 이런 명성을 쌓은 걸까요.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은 자발적 홍보를 일으키는 팬덤입니다. 프라이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세계의 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 같은 힙스터들이 팬이 되고, 그 팬들은 스스로 확성기가 되어 프라이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이블처럼 여기는 잡지 ‘매거진B’의 창간호 주제도 바로 프라이탁이었으니까요. (매거진B를 만든 조수용 카카오 전 대표 역시 틈만 나면 프라이탁을 사모았던 프라이탁 매니아였다고 합니다.) 저 같은 마케터들은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이런 ‘바이럴 마케팅’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프라이탁의 경우는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그것도 정말 열심히 자신이 프라이탁의 고객이고 팬임을 열심히 알리더라구요. 왜 그럴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이들의 욕구를 명확하게 설명해 준 ‘원의 독백’ 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프라이탁에 대한 영상을 발견했어요. 영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 거리에서 프라이탁을 맨 사람을 보면 속으로 ‘오, 취향 좀 좋은데~’ …중략… 비즈니스 미팅에 나갔을 때 상대방이 프라이탁을 메고 나오면 이 사람의 실력에 대해 근거 없는 신뢰가 막 솟아 그게 제가 프라이탁을 사는 이유입니다. 프라이탁 메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거든요. “ 유튜버 임승원의 프라이탁 브이로그에 MZ세대가 열광했고, 그는 무신사 콘텐트 PD로 스카우트 되었다. [사진 유튜브 ‘원의 독백’ 캡처] 영상에서 임승원 씨는 본인이 프라이탁을 메고 다니는 이유를 감각적이면서도 위트있게 풀어냈어요. 영상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건 얼마짜리 브랜드 필름일까?’ 였습니다. 그런데 광고가 아니었어요. 프라이탁의 팬으로서 제작한 브이로그였습니다. 프라이탁에 대한 매력을 광고보다 더 잘 보여주고 있지만요. 프라이탁은 매체 광고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브랜드입니다. 광고 없이도 팬덤을 만들어낸 그들의 저력이 무엇인지, 이제 그 수수께끼가 풀렸네요. 수많은 힙스터 팬덤이 대신 광고를 해주고 있으니까요. 돈으로 인플루언서를 고용해서 바이럴 마케팅을 진행하려면 수백에서 수천만 원이 드는데, 프라이탁은 이걸 공짜로 하고 있습니다. ━ 개념도 있어보이고 싶고,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것을 갖고 싶다. 그럼 왜 팬덤이 생겼는지를 알아볼까요. 핵심은 프라이탁이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인데요, 여기서 ‘미닝아웃(Meaning-out)’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닝아웃은 'Meaning(신념)’과 'Coming out(알리다)'의 합성어로,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이 소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을 뜻해요. 요즘 MZ세대가 가치소비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이미 기사들을 통해서 많이 보셨죠? 이것이 프라이탁을 메면 바로 해결됩니다. 자신이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자기 입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거든요. 프라이탁 로고만 보여주면 모든 설명이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프라이탁의 인기 아이템 메신저백 JAMIE [사진 FREITAG 공식 인스타그램] 더군다나 현재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에 프라이탁이 잘 어울려서 MZ세대들에게 더 인기를 얻는 면도 있어요. 와이드 팬츠에 크롭티로 대표되는 Y2K 패션과 아메리칸 빈티지가 유행이라 프라이탁의 빈티지한 맛이 잘 어울리죠. 미닝아웃을 하면서도 지금의 패션 트렌드에 너무 잘 맞는 거예요. MZ세대가 프라이탁에 열광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업사이클링 제품이 가진 특성, 바로 ‘세상에 하나 뿐이라는’ 제품의 개별성이에요. 트럭 방수천을 재활용하기 때문에 모두 다른 원단을 쓰고 있어서 같은 모델이라도 각기 다른 패턴의 아이템이 나오게 돼요. 공식 홈페이지와 오프라인에 팔리는 가방들은 특정 모델의 사이즈별로 전시되는 게 아니라 각각의 개별 상품으로(ex. F40 JAMIE_03130) 판매됩니다. 원단 오염이 적거나 인기있는 컬러는 나오자마자 매진되고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드는 가방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파는데, 이 과정 속에서 브랜드에 대한 애정은 점점 더 커지고 결국 프라이탁에 ‘입덕’하게 됩니다. ━ 비싸도! 사기 힘들어도! 웰컴 투 프라이탁 유니버스 많은 사람이 프라이탁 유니버스의 문 앞까지 갔다가 가장 먼저 가격을 보고 돌아서게 됩니다. 가장 인기 있는 메신저백은 10만원 후반대에서 30만원 후반대 정도인데요. ‘재활용’이라는 말에 사실 저렴한 가격을 기대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기분인 분들도 계실겁니다.(제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쌀 이유가 있습니다. 프라이탁 매장은 업사이클링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만족시키는 공간만을 선택한다. [사진 프라이탁 홈페이지 캡처] 업사이클링 제품의 경우 일반 제품 대비 재료수급과 제작에 공이 많이 들어갑니다. 버려진 방수천과 자전거 타이어를 재활용하려면 꼼꼼하게 세척하고 분해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하죠. 이 과정을 모두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하니 인건비가 많이 듭니다. 게다가 프라이탁은 무려 세계에서 가장 인건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에서 만드는 가방이었습니다. 프라이탁 유니버스의 두 번째 관문은 극악의 구매 난이도입니다. 오프라인에서 프라이탁을 구매하려면 국내에 4곳(서울 3곳, 제주 1곳)인 매장에 방문해야 하는데, 사람이 많아서 대기시간이 긴 편이에요.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하리라는 보장도 없죠. 그렇다면 온라인 구매는 어떻게 하느냐. 영어로 된 공식 홈페이지나 29cm 등 커머스 플랫폼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마저도 인기 있는 컬러와 패턴의 디자인들은 금방 매진돼 살 수가 없습니다. 운 좋게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발견해서 구매에 성공한다 해도 제품을 받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상 받아보니 온라인에서 봤던 컬러가 아니고, 생각(각오?)했던 것보다 제품이 너무 더러워서 실망했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제품들이 중고 거래 시장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주요 중고 거래 플랫폼의 주요 키워드에 프라이탁이 올라갔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요. ━ 구매로는 부족해요, 프라이탁을 추앙해요. 온라인에 본인이 보유한 프라이탁 제품을 리뷰하는 콘텐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 유튜브 CHAESO 채소] 이런 모든 관문을 넘은 분들이 바로 거리에서 프라이탁을 메고 다니는 분들입니다. 생각보다 장벽이 높죠? 그래서인지 프라이탁의 브랜드 팬덤은 자부심이 세기로 유명합니다. 누군가 프라이탁에 대해 비판하면 팬들이 수호 기사가 되어 출동합니다. 댓글로 브랜드의 입장을 항변해 주거나, 환불 방법등을 친절히 알려주기도 합니다. 프라이탁이 십만 홍보대군을 양성한 것도 아닐테니, 다른 브랜드의 홍보담당자들이 보면 얼마나 부러울까요. 위에 소개한 유튜버 ‘원의 독백’ 프라이탁 편 영상 뒷부분에 보면 프라이탁을 사는 자기 자신을 ‘비합리적’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몇십만 원 짜리 가방을 산다고 가정해보죠. 당연히 흠집은 없는지, 마감이 잘되어 있는지 꼼꼼히 따지게 될 겁니다. 그런데 프라이탁은 사용감이 있는 원단과 제품의 흠집이 전제된 제품이에요. 다른 브랜드의 제품이었다면 바로 반품을 했을 만한 하자예요. 프라이탁이 아니었다면 비합리적인 소비지만, 프라이탁이니까 합리적인 소비랄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고 하실분도 계시겠지만 매거진 B 프라이탁 편 마지막 장에 나오는 문장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프라이탁은 다른 가방과 다르다(A bag and a Freitag, is clearly different.)” 프라이탁을 산다는 건 가방을 사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이미지, 넓게는 문화를 사는 겁니다. 자신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스토리를 몇십만 원 주고 사는 거지요. 트렌드를 앞서가던 힙스터들은 기꺼이 본인의 이미지를 위해 지갑을 열었지만, 이제는 많은 MZ세대들도 이런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어요. 럭셔리 브랜드를 사려고 백화점 오픈런을 하는 것과 인기 있는 프라이탁 모델을 사기 위해 매장과 온라인몰에 발품을 파는 것은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쓰레기로 만들어지는 가방이 최고급 럭셔리브랜드와 같은 ‘추앙’을 받고 있다니, 새삼 브랜드에 입혀진 스토리의 힘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비크닉 '좋아요' 850만개 받은 제니 신발…악어 고무신의 인기 비결 잘나가는 유튜버들 키워낸 자선 음악가?…'브금대통령' 정체 [비크닉] 농심 '비건미트' 어디까지? 닭다리·가슴살 육질차까지 재현한다 [비크닉] 캠핑 용품계의 에르메스, 알고보니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 [비크닉]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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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유튜버들 키워낸 자선 음악가?…'브금대통령' 정체 [비크닉]
━ BGM Provided by OO 언젠가 유튜브에서 국내 인기 영상 카테고리를 유심히 살펴본 적 있어요. 조회수가 꽤 잘 나온다 싶었던 브이로그 3개를 연달아 시청했고,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영상 설명 부분에 적혀있는 'Music provided by(음원 제공) 브금대통령.' 먹방, 여행, 애완동물 등 주제는 다르지만 BGM(배경음악) 출처는 브금대통령으로 통일! 게다가 영상에 출처만 명시하면 누구든 무료로 음원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한 번 더 놀랐죠. (혹시 자선사업가는 아니죠?) 브금대통령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달 29일 직접 이들을 만났어요. 음원 사업을 시작한 계기부터 콘텐트를 만드는 과정, 앞으로의 꿈 이야기까지 직접 들을 수 있었답니다. '브금대통령'이 누굴까 정말 궁금했다. [유튜브 리비(Leeby) 채널] ━ 베테랑 작곡가 뭉치니…3년 만에 구독자 33만명 브금대통령 멤버들. 왼쪽부터 '지니', '영구', '지우', '오케왕', '야말'. [사진 브금대통령] 브금대통령은 2019년 1월에 탄생한 음원 제작·공급 플랫폼이에요. 멤버는 '지니', '지우', '야말', '영구', '오케왕' 이렇게 다섯 명. 영화·드라마 OST부터 클래식, 가요, 게임 음악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작곡가들이랍니다. '함부로 애틋하게',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우리들의 블루스' 등 드라마 OST, 가수 윤아의 솔로 앨범, '불후의 명곡', '슈가맨' 등 셀 수없이 많은 작업에 참여했죠. 음악이란 공통분모를 품에 안고 있다가 맘이 맞는 사람들끼리 뭉친 지 어언 3년 반. 구독자 약 33만명, 지금까지 만들어 배포한 음원만 700곡이 넘어요. 각자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다 보니, 저마다 하나씩 특기가 있어요. 클래식을 전공한 오케왕은 관현악의 아름다운 선율을 곡에 즐겨 사용하죠. 게임 음악 감독인 지우는 코믹하고 극적인 음악을 즐겨 만들고요. 지니는 가사가 있는 보컬 송을, 영구는 귀여운 느낌의 배경음악을, 야말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전자음을 만드는 데 소질이 있어요. ━ 공짜 음원, 왜 만드나요? "빛을 보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곡이 아까웠어요." 성장하는 1인 미디어 시장을 유심히 지켜보던 멤버들, '버려지는 고품질 음악을 비용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란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입소문을 타고 우리 음악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시장 생태계도 커질 테니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겠단 생각이었죠." 비슷한 채널? 많아요. 음원 보유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아트리스트'(Artrist)와 '에피데믹사운드'(Epidemic Sound) 같은 외국 채널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이들은 유료 플랫폼이에요. 무료도 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러리'(Youtube Library)같은 곳이요. 장르·분위기를 검색하면 수백 개의 무료 BGM을 찾을 수 있죠. 브금대통령만의 무기는 무엇일까요?' 멤버들은 '한국형 감성'이라고 답했어요. "아트리스트 같은 곳에서 배포하는 음원이 우리 감성과 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넷플릭스' 같달까요. '뭐가 많은데…참 볼 게 없다' 그런 느낌 있잖아요." 음악의 감성에도 국경이 있다는 것. 다년간 영화·드라마 OST를 제작해온 브금대통령은 우리의 음악 감성에 빠삭해요. 외국에선 흉내 낼 수 없는 한국형 감성, 브금대통령의 아이덴티티죠. ━ 음원 크리에이터라 불러줘 제작자가 구독자와 소통하는 '크리에이터' 면모도 차별점이에요. "'이 곡은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을까?' 궁금해하는 구독자들이 많아요. 얼굴을 직접 보여주고, 댓글이 달리고, 그럼 또 답글을 달고. 음원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죠." "처음엔 '우린 작곡가야. 음악으로 승부를 보자'고 했었는데, 유튜브 생태계에 점점 빠져들다보니 우리 얼굴을 비추고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엄청 중요하단 걸 알게 됐어요." 처음부터 얼굴을 까진(?) 않았어요. 초창기엔 나름 신비주의를 유지했답니다. 그런데 구독자들이 궁금해했대요. 구독자 수 10만명을 넘겼을 때쯤, '그래, 얼굴 한 번 보여주자' 결심했죠. 질문에 답하는 Q&A 영상이 구독자들과의 첫 만남이었어요. '상상했던 이미지와 달라서 재밌다.' '감성적인 음악 코드 때문에 여성인 줄 알았는데 남자 다섯이라니 당황스럽다.' '생각보다(?) 연령대가 높아 흠칫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죠. ■ 「 💡 BGM, 어떻게 만드나요? 브금대통령이 음원에 삽입할 멜로디를 악기로 연주하고 있다. [사진 브금대통령] "장르를 정하고 음상이 떠오르면 작곡 프로그램인 '큐베이스'에 밑그림을 그려요. 코드와 리듬을 추가하고, 필요하면 그때그때 악기를 연주해 멜로디를 만들고요. 모든 과정이 끝나면 1분 30초의 음원이 완성되죠. 어떤 곡은 4시간 만에 제작할 때도 있고, 또 안 되는 날은 2주 이상 걸리기도 해요. 곡이 안 써질 땐 정말 아무것도 못 하죠.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고요." "가장 큰 고민은 장르. '어떤 장르의 곡을 만들어야 할까'가 최대 고민이죠. 요즘 가장 '잘 팔리는' 장르는 코믹하고, 귀엽고, 발랄한 음악이에요. 일상을 담백하게 담는 브이로그가 많아져서죠. 브금대통령 구독자들은 어두운 음악보다는 밝은 음악을 선호해요." "음원을 다운로드하는 방법도 간단해요. 브금대통령 유튜브 채널을 구독한 뒤, 유튜브(구글) 계정으로 홈페이지에 로그인하면 인증 절차 없이 모든 음원을 받을 수 있어요." "며칠간 공들여 음악을 업로드했는데 조회수가 저조할 땐 아찔해요. '이건 되겠다' 생각했던 음원에 반응이 없으면 서운하죠. 반대로, 대충 작곡한 음원의 조회수가 폭발할 때도 있어요. 그런 불확실성이 유튜브의 묘미 같기도 해요." 」 ━ BGM은 인스턴트 음악? 이젠 작품으로 봐주더라 요즘 멤버들은 "댓글 읽는 맛이 난다"고 해요. "대중이 생각보다 듣는 귀가 트여있어요. 어릴 때부터 드라마, 영화, TV 쇼·예능 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다 보니, 퀄리티 높은 음원에 귀가 익숙해져 있죠." 크리에이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대요. BGM을 삽입하는 실력이 느는 게 보인다고요. "예전엔 발랄한 여행 브이로그에 우중충한 음악을 사용해 음악이 영상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죠. 최근엔 콘텐트 퀄리티가 전체적으로 높아지면서 분위기에 꼭 맞는 음원을 골라 넣더라고요." 대중이 BGM을 보는 시선도 변했어요. 예전엔 길거리나 TV에서 흔하게 들려오는 '인스턴트(일회성) 음악'으로 흘려들었는데, 이젠 가요·클래식 같은 '작품'으로 봐준대요. 멤버들은 "언젠가부터 저희가 만든 음원의 제목까지 기억해주더라"며 "일할 때, 운동할 때, 낮잠을 잘 때 듣는 음악으로 저희 음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했어요. 기억에 남는 댓글도 많죠. '음악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난다'던 한 구독자의 댓글을 잊을 수 없대요. '지금은 나이가 드셔서 몸도 편찮으신데,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있던 그 시간이 떠오른다'는 글이었어요. "울컥했죠. 그런 댓글을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초심으로 돌아가요. 저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BGM에 감정이입을 하더라고요. 항상 감사해요." 이런 댓글을 보면 초심으로 돌아간다. [브금대통령 유튜브 캡처] ━ 그래서, 수익은 얼마? 국내 음원 제작·공급 플랫폼 시장을 연구한 조사 보고서는 아직 없어요. 유튜브 구독자 수(33만명)로 가늠해보면, 브금대통령이 이 분야 1위죠. 궁금했어요. 국내 대표 음원 플랫폼, 구독자 33만명인 브금대통령은 대체 얼마를 벌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쉽게도 숫자를 들을 순 없었어요.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돈을 못 벌고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죠. 멤버들은 "30만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채널이라고 생각해서 일반 크리에이터들과 비교를 많이 한다"면서도 "브금대통령은 '시청' 중심의 채널이 아니기 때문에 구독자 수 대비 수익이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어요. 유튜브 채널 수익은 구독자 수뿐만 아니라 재생 시간과 댓글 수 등 여러 가지를 종합해 결정돼요. 브금대통령의 평균 영상 시청 시간은 30초~1분 남짓. 음원을 찾기 위해 앞부분만 조금씩 골라 듣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죠. 그래서 BGM을 제작할 때 곡의 도입부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대요. 수익은 미미하지만, 멤버들은 브금대통령 운영을 주업이라고 생각해요. 부업보다 적게 버는 주업, 생업보다 더 열정을 쏟아도 괜찮을까요? "관점의 차이 아닐까요. 하루 24시간 더 많이 공들이고 투자하는 시간이 주업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은 '픽사베이'(Pixabay), 폰트는 '나눔 글꼴', 브금(BGM)은 이제 '브금대통령'을 떠올려주세요. 브금대통령의 음원을 이용하는 연령층은 주로 18~34세. 요즘 흔히 말하는 'MZ세대'가 사용자의 60% 이상을 차지해요. "구독자들이 나이가 들어 5년 뒤, 10년 뒤에 지금을 회상할 때 저희 음악이 떠오른다면 좋겠어요. 어디에서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는, 앞날이 창창한 친구들과 함께라서 설렙니다. 그렇게 보면 저희 비전은 성대한 편이죠." 브금대통령 이용자 성별·연령 통계. 이용자의 62.6%가 18~34세다. 브금대통령은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채널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음악 바닥엔 능력 있고 곡도 잘 쓰지만 인지도가 낮은 작곡가들이 아직 많아요. 그들을 수면 위로 올려보고 싶어요. 그럼 구독자들도 더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 가지 더, 유명해지고 싶대요. 외출했을 때 누군가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는 것. 솔직한 바람이죠? 인지도를 높여서 앨범도 내고 더욱 큰 채널로 성장하는 '종합 미디어 콘텐트 플랫폼.' 브금대통령의 꿈은 실현될까요? ━ 뱀발🦎: 대통령과 상표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문' 브금대통령, 그 이름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어요. 채널명 '대통령'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청와대의 상징인 봉황 장식을 엠블럼으로 쓰고 싶었대요. '이게 될까?'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청와대에 연락을 했어요. 돌아온 답변은 차가웠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대통령 명칭과 봉황 장식은 개인이 상업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요.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의 상징인 봉황을 상표로 사용할 수 없다던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은 사실일까요? '봉황'은 안 되고, '대통령'은 됩니다. 상표법 34조 3항에 따르면 '국가·공공단체 또는 이들의 기관과 공익법인의 비영리 업무나 공익사업을 표시하는 표장(表裝)으로서 저명한 것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는 상표등록을 할 수 없어요. 대한민국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장인 '봉황문'(鳳凰紋)은 1967년 제정된 대통령 공고에 표장으로 명시돼있죠. 반면, 대통령을 가리키는 '헌법기관', '국가원수' 등의 명칭을 상표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어요. 대통령 세 글자를 이용해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브금대통령과 같은 수많은 대통령들이 간판을 내려야 할 일은 없을 겁니다. 비크닉농심 '비건미트' 어디까지? 닭다리·가슴살 육질차까지 재현한다 [비크닉]2년만에 매출 50억→500억…"미쳤네" 말 나온 마뗑킴의 비밀 [비크닉]캠핑 용품계의 에르메스, 알고보니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 [비크닉][비크닉] 키워드로 읽는 2022 칸 국제광고제 결산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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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용품계의 에르메스, 알고보니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 [비크닉]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물욕의 화신, 마케터 한재동입니다. 코로나에서 일상을 찾은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가 아예 놀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늘 어려움 속에도 답을 찾잖아요? 언제나 그랬듯이요! 코로나시대 주목받던 놀이 중 하나가 바로 ‘캠핑’이었죠. 몇십 년을 집돌이로 산 저도 캠핑 용품을 살 정도였으니 정말 유행이 되었나 봐요. 무엇인가 시작하면 소위 ‘장비 빨’부터 세우는 저이기에 가장 잘나가는 캠핑 용품 브랜드가 무엇인지 알아보다가 발견한 브랜드가 있어요. 캠핑 고수 지인의 소개에 따르면 ‘캠핑 용품계의 에르메스’ 헬리녹스(Helinox)입니다. ━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진 캠핑의자 ‘체어원’ 헬리녹스의 스테디셀러 체어원 [사진 helinoxstore] ‘캠핑을 시작할래!’라고 결심해도 막상 뭐부터 사야 할지 막막합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도 여름에 하는 시즌성 특별판매가 아니면 캠핑 용품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요즘같이 쇼핑 정보가 우리 주변에 켜켜이 쌓인 시절도 없었으니까요. 유튜브나 네이버만 검색해도 캠핑 초보부터 고수까지 갖춰야 할 필수품들을 정리해둔 콘텐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홈쇼핑이나 캠핑 편집숍에 달려가 전시된 세트를 통째로 구매하면 된다고요? 유통업체와 사회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 고마운 일이지만 합리적 소비라고 할 수는 없겠네요. 캠핑은 각자 즐기는 형태가 달라서 무턱대고 산 캠핑 용품은 대부분 먼지만 쌓이게 된다고 하는군요. (차라리 당근으로 보내주세요…) 수많은 캠핑 용품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건 바로 캠핑의자입니다. 간단한 피크닉부터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내는 일정까지, 의자는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예전의 캠핑의자는 아무리 접어도 너무 부피가 크거나 무거웠어요. 가볍게 만들면 부서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2012년 나온 헬리녹스의 캠핑의자 체어원은 접으면 성인 남자 신발 정도의 크기에 1kg도 안 되는 무게로 145kg을 지탱할 수 있었어요. 체어원은 캠퍼들이 그간의 캠핑의자에 가지고 있던 불만을 완벽하게 해결하며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했고, 미국 시장에서 먼저 입소문이 났습니다.(중앙일보, 2016.05) 세계 소비시장의 중심인 미국에서 먼저 이슈가 되었으니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는 문이 열린 것이나 다름없었죠. 그런데 어떻게 신생 브랜드가 그간 어떤 캠핑 용품 브랜드도 만들어 내지 못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 헬리녹스의 재미난 스토리가 있습니다. ━ (히든)챔피언! 알루미늄에 미치는 니가~! 헬리녹스는 DAC(동아 알루미늄)라는 국내 중소기업이 만든 브랜드예요. 그렇다면 DAC는 어떤 기업이냐? 전 세계 텐트 폴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고 있는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을 개발하는 회사에요. 이렇게 대중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기업을 히든 챔피언이라고 해요. DAC가 생산하는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텐트폴 [사진 helinoxstore] 히든 챔피언으로 순조로운 성장을 하던 DAC가 자체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은 라제건 대표의 경험 때문이라고 해요.(한경BUSINESS, 2019.05) 라 대표는 텐트 설계도 직접 했어요. 미국 과학잡지에 라 대표가 개발한 텐트가 소개되었는데, 정작 라 대표나 DAC에 대한 소개는 빠지고 텐트 브랜드 직원들의 인터뷰만 실렸다고 합니다. 당시 분위기상 부품 업체는 뒤에 숨어 있는 게 당연했거든요. 그런데 직접 개발한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인터뷰에는 핵심 기술마저 틀리게 나왔던 거죠. DAC는 더는 뒤에 숨지 않기로 했어요. 2011년 브랜드를 설립하며 전면에 나서요. 그리스의 태양신 헬리오스와 밤의 여신 녹스의 이름에서 모티브를 딴 헬리녹스라는 브랜드가 탄생했습니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고 해요. 무게를 300g에서 200g으로 줄인 등산 스틱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고 합니다. 2012년 ‘체어원’ 개발, DAC 라제건 대표의 아들 라영환 현 헬리녹스 대표의 합류 이후 반전이 시작됐어요. ━ 슈프림! 나이키! 포르쉐! 협업을 원하는 브랜드들이여, 줄을 서시오~! 언제부턴가 잘 나가는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자체가 해당 브랜드 가치의 척도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신생 브랜드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와 콜라보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요. 반면 명품 브랜드는 아무나랑 콜라보레이션을 하지는 않겠죠? 그런데 10년 남짓 된 이 헬리녹스가 그간 해온 콜라보레이션 히스토리를 보면 힙한 브랜드가 넘쳐나요. 2016년, 누구나 아는 하이엔드 스트릿 브랜드 ‘슈프림’과 콜라보레이션이 진행됩니다. 슈프림과 콜라보레이션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그 이상의 의미예요. 캠핑 용품에서는 헬리녹스가 업계 탑티어(Top Tier)임을 슈프림이 인정한다는 것으로 대중들이 받아들이게 되거든요. 헬리녹스와 슈프림의 콜라보레이션 아이템 [사진 헬리녹스 공식 인스타그램] 슈프림 이후 각 업계 최고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이어집니다. 나이키ACG 같은 아웃도어 패션, 럭셔리 스포츠카 포르쉐, 디즈니 등이 있어요. 그리고 2021년 BTS와 콜라보레이션한 제품이 발매됩니다. 헬리녹스와 BTS의 콜라보레이션 3P Tent [사진 helinoxstore] 전세계적인 팬덤을 가진 BTS 덕분에 아웃도어에 한정되어 있던 헬리녹스라는 브랜드를 널리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캠핑에 관심 없던 BTS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헬리녹스에 대해 문의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남편들은 BTS덕에 고가의 캠핑 장비를 구매할 수 있어 신났다는 밈(meme)이 돌기도 했어요. ━ 업의 본질에 집중하는 마케팅 마케터로서 질투를 느낄 정도로 잘 한 사례도 있어요. 2019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의 프로젝트입니다. '유리 피라미드' 30주년 기념행사로 야외 영화 상영 이벤트가 있었는데요. 여기에 헬리녹스 의자 1000개를 깔았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깔린 헬리녹스의 캠핑 의자도 장관이었지만, 그걸 또 헬리녹스가 잘 살렸어요. 이벤트에 쓰인 캠핑 의자를 모두 수거해서 세척하고 번호를 매겨 리미티드 에디션 빈티지 제품으로 판매했습니다. 물론 모두 매진 되었고요.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30주년 기념 이벤트 'Cinema Paradiso Louvre' [사진 helinoxstore] 루브르와의 협업은 결국 캠핑의자, 제품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진행되기 힘든 이벤트였습니다. 그만큼 헬리녹스는 캠핑 용품이라는 업의 본질, 즉 제품의 퀄리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요. 브랜드 모토를 ‘Sitting is Believing’, 앉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의지는 캠핑 용품 업계에서 드물게 HCC(Helinox Creative Center)라는 오프라인 체험 공간을 운영하는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한남동에 있는 헬리녹스 크리에이티브 센터에서 다양한 캠핑 용품을 체험할 수 있다. [사진 helinoxstore]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캠핑 용품을 사려면 전문 편집숍이나 인터넷을 이용해야 합니다. 캠핑 용품 브랜드에서 자사의 제품들을 한데 모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반면 헬리녹스는 서울 중심부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자사의 전 제품을 한 곳에서 체험하고 각종 이벤트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도 캠핑 고수 지인 손에 이끌려 몇 번 갔었는데요. 이것저것 앉아보기도 하고 캠핑 장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었습니다. 캠핑이 취미인 분들께는 이미 상당히 유명한 핫 플레이스라고 하는군요. ━ 브랜드를 왜 만들어야 하냐고 묻거든 고개를 들어 헬리녹스를 보게 하라 헬리녹스는 지난 2년간 매년 30% 이상의 매출 성장을 이루어냈어요. 물론 코로나 때문에 캠핑 시장이 급성장한 덕이 클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에는 지난 2년과 같은 가파른 성장세는 아니더라도, ‘캠핑’이 하나의 주목받는 취미가 되어 캠핑 용품 시장을 점차 키울 것으로 예상돼요. 캠핑 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포지셔닝을 가진 헬리녹스의 소비자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나리라는 예측으로 이어집니다. 더구나 헬리녹스는 지금도 쉬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콜라보레이션으로는 할 수 있는 최고의 브랜드들과 모두 한 것 같은데도 말이에요. 감히 예상하건대 이런 콜라보의 목적은 아마도 아직 캠핑을 모르는 상대 브랜드의 팬덤을 흡수하기 위한 게 아닐까요? 캠핑에 대해 전혀 모르던 BTS팬들이 헬리녹스를 공부하게 만든 것처럼, 새로운 캠핑 인구를 발굴하는 겁니다. 헬리녹스 아웃도어 필드오피스, 캠핑은 심지어 야외에서 업무 볼 아이템이 있는 심오한 세계 [사진 helinoxstore] 제조업자개발생산(ODM)을 주력으로 하던 히든 챔피언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협업하고 싶어 줄을 서고 있는 브랜드가 되기까지, 헬리녹스는 교과서 성공사례에 나올만한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헬리녹스의 2021년 매출은 539억으로 모기업인 DAC(동아알루미늄)의 매출 384억을 넘어섰어요. 브랜드 설립을 고민하고 계신 경영자분들이 계신다면 고개를 들어 한남동의 헬리녹스를 바라보라고 하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이렇게 헬리녹스가 계속 성장할 수 있다면 어쩌면 마케팅원론에 성공사례로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한재동 중앙일보 BP팀 마케터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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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판매량 CD 넘었다…아이유 '꽃갈피 LP' 300만원 되는 마법 [비크닉]
━ 3000원이 50만원으로, 잠든 LP 깨워보자 [사진 언스플래시] 어릴 때 집 거실에 커다란 턴테이블 전축이 있었습니다.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 같은 올드팝이 늘 흘러나왔죠. MP3 세대인 저는 LP를 듣는 부모님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무결점에 고음질 음악이 촌스러운 지직 소리보단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세월이 흐르고 이제 전축이 있던 자리는 TV와 사운드바가 차지했고요. 소장용 LP 몇 개는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 뒀어요. 문득 잠들어 있는 LP의 가격이 궁금해 시세를 알아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부모님이 1985년 학창 시절에 3000원을 주고 중고로 구입한 '신중현과 엽전들' LP의 가격이 자그마치 50만원. 80년대 500원이었던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5000원으로 약 10배 올랐다는 점을 감안해도 물가 상승폭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죠. 소중히 보관만 했을 뿐인데, 희귀 명반 콜렉터가 됐달까요. 보물찾기에 성공한 저는 어머니께 달려갔어요. “이거 50만원이래요! 팔까요?” 그런데 어머니는 팔 수가 없대요. 3000원짜리가 50만원이 돼도 팔지 못하는 이유, LP 한 장에 그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죠. ━ LP 사러 줄 산다고? 2022년 맞아? 지난해 미국 LP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51.4% 성장했다. [자료 MRC데이터] LP 붐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음반 판매량 조사업체 MRC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LP 앨범은 4170만 장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4% 성장했어요. 재작년엔 1986년 이후 36년 만에 CD 앨범 판매량을 넘어섰고요. 돈이 몰리는 곳엔 리셀러가 있습니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LP도 재테크 수단이 됐어요. 작년 초반까지 3만7000원이었던 비틀즈 베스트 LP 앨범, 이젠 7만8000원에 팔리죠. 아이유 ‘꽃갈피’ LP는 중고 시장에서 약 300만원에 거래됐고요. 음반 업계에 따르면 중고 거래액을 제외한 국내 LP 시장 매출 규모도 2020년 약 600억∼700억원대에서 지난해 1000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돼요. 오래된 신중현 아저씨의 LP가 50만원에 팔리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수요가 있으니 가격이 오른 것이겠죠? LP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신당동에 위치한 레코드샵 '모자이크'를 찾았어요. LP 매니아들 사이에서 소문난 중고 LP 명반 판매점이죠. 유창한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 사장이 커피 한 잔 하라며 반겨주더라고요. 커티스 캄부 모자이크 사장은 "7년 전부터 레코드샵을 운영하다가 이 곳에 정착한 지는 2년이 됐는데, 요즘 들어 새로운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물건이 들어오는데, 전국에서 온 손님들이 일요일마다 가게를 들어오기 위해 줄을 선다"고 설명했어요. 가게 내부엔 희귀 명반부터 빈티지 음반, 제3세계에서 건너온 소울, 펑크, 제3세계 LP로 가득했죠. 턴테이블에서 '지직'하며 흘러나오는 하우스 뮤직에, LP를 감싼 포장지를 만질 때마다 바스락하는 소리가 좋았고요. 유행하는 아이돌 신보는 없지만, 가게 주인의 취향에 맞춘 희귀 LP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어요. 서울 신당동 레코드숍 '모자이크'에서 판매하는 희귀 LP [사진 박영민] ━ 잡음도 음악이 되더라 더 대중적인 취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 종로3가의 '서울레코드'가 떠올랐어요. 모자이크가 콜렉터를 위한 유니크한 감성의 LP 판매점이라면, 1970년대 중반에 문을 연 서울레코드는 LP의 쇠락과 부활을 지켜본 산증인이에요. 황승수 서울레코드 대표는 창업 당시 이 곳의 직원이었대요. 그는 "10년전 쯤엔 당시 50~60대 손님들이 LP를 많이 찾았는데 처음엔 취향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그런데 지글지글 모닥불 타는 소리도 듣다 보니 좋더라. 잡음도 음악이 되더라"고 추억했어요. 황 대표는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요즘은 부모님과 자식 세대가 함께 가게를 찾는다는 것"이라며 "옛날 분들은 그리움, 젊은 층은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LP의 매력"이라고 했어요. 그는 "개인별로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돌 신보나 클래식 명반 모두 골고루 잘 팔린다"며 "우리 또래는 어릴 때 팝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 젊은 층은 분위기 있는 재즈를 많이 듣는 게 또 재밌다"고 했죠. ━ 이 편한 세상에 레트로 붐이라니 생각해보면 우린 정말 편한 세상에 살고 있어요. 스마트폰 하나로 음악도 들을 수 있고 배달도 시킬 수 있고 쇼핑도 할 수 있죠. 반면 아날로그는 한없이 불편합니다. 그런데도 LP와 같은 레트로 붐이 지금 세대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냥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서요. 불편하지만 그 방식이 주력이었던 시대가 그리워서. LP를 들으면 훨씬 더 인간적이었던 삶, 순수했던 옛 시절을 되찾는 느낌이 들어요." (이재경, 59세, 서울레코드 단골) 최근 LP 붐의 또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건 MZ세대예요. 예스24가 지난해 LP 구매자 연령을 집계했더니 20~30대가 약 40%를 차지했어요. 이날 방문한 모자이크, 서울레코드, 김밥레코즈 등 총 세 곳의 레코드숍 모두 주 고객층이 20대 젊은 친구들이더라고요. MP3부터 스마트폰까지 디지털로 음악 듣는 게 익숙한 젊은 세대가 아날로그 유물인 LP에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서울 종로3가 레코드숍 '서울레코드'에서 황승수 대표가 판매 중인 LP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박영민] 연남동 김밥레코즈에서 만난 하소윤(24)씨는 아이돌 신보 LP를 구경하러 아침부터 일찍 경기 의정부시에서 올라왔어요. 그는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소장하고 싶은데 구매 전 실물로 제품을 직접 보기 위해 왔다"며 "와보니 디자인도 다양하고 앨범 자켓도 큼지막해서 보는 맛이 있다"고 했어요. 옆에서 재즈 음반을 살펴보던 전재영(29)씨는 "어머니가 노라 존스(미국의 유명 재즈 아티스트)의 노래를 좋아하셔서 선물을 사드리려고 가게를 방문했다"면서도 "직접 턴테이블로 음악을 감상하니 너무 좋아서 내가 살 재즈 음반도 살펴보고 있다"고 했고요. MZ세대가 LP 시장의 주 고객층으로 떠오르면서, 음반 산업계는 LP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어요. 아이유, 블랙핑크, 방탄소년단 등 인기 아이돌 가수들도 잇따라 LP를 발매했고요. 가수 아이유의 소속사인 이담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소장하고 싶은 젊은 친구들에게 LP는 스트리밍 음악에 비해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준다"며 "소장한다는 측면에서 30cm 크기의 브로마이드 같은 LP의 앨범자켓이 매력적일 것"이라고 했어요. ━ LP 붐, 아직 꿈만 같아 서울 성수동 '마장뮤직앤픽처스' 공장에서 한 직원이 LP의 원재료인 PVC를 프레싱하고 있다 [사진 박영민] 뒤늦게 찾아온 LP 붐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사람들, 누굴까요? LP를 만드는 사람들이죠. LP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 지난달 24일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마장뮤직앤픽처스 LP공장을 찾아갔어요. 이 곳은 국내 유일의 LP 제작공장이자 클래식 LP를 프레싱할 수 있는 전세계 몇 안 되는 LP 제조사예요. 마침 싱어송라이터 심규선의 음반을 제작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어요. 직원 10명이 수동 프레기 머신 2대 앞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어요. 프레스기의 온도는 자그마치 100도 이상. 이 기계에 재료를 넣으면 동그란 모양의 PVC 덩어리인 ‘마더’가 나오는데요. 외국에서는 하키볼처럼 생겼다고 해서 '퍽(puck)'이라고 하고, 이 곳에선 햄버거라고 부른대요. 어감이 귀엽지 않나요? LP는 한 장 제작하는 데에 통상 약 1주일 정도의 과정이 걸려요. 제작 의뢰후 납품 과정까지 계산하면 약 3~6개월이 소요되고요.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서죠. 디지털 음원을 LP라는 아날로그 음원으로 옮기기 위해 소릿골을 새기는 커팅 작업을 하면, 소릿골이 새겨진 ‘래커’를 본떠 대량 생산을 위한 스탬퍼를 만들어요. PVC 덩어리를 정확한 압력과 온도로 압축한 후, 검수해 포장하면 LP 한 장이 완성돼요. "LP 붐을 체감하게 된 시점은 2020년 하반기였어요. 500장씩 주문하던 수량이 1000장, 2000장, 1만장, 10만장으로 쭉쭉 늘었죠." 하종욱 마장뮤직 대표는 "가요와 클래식 명반 재발매뿐이었던 업계 흐름이 신보 발매에 열중하고 있다"며 "2016년 설립 당시 2만장이었던 연간 생산량은 지난해 약 20만장을 기록했다"고 설명했어요. 5년 새 10배나 성장한 거예요. 그래서 공장은 매일 2교대, 야간근무로 대응하고 있대요. 필요할 땐 철야 작업도 하고요. 공장이 설립된 지 벌써 6년, 추억 속 LP를 다시 찾는 이들 덕분에 요즘 직원들은 누구보다 바쁘면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는 최근 몇 년 새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대중문화를 관통한 레트로 붐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 구석 어딘가가 뭉클해지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 뱀발: 우크라 전쟁이 LP에 미치는 영향 [사진 언스플래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유가 상승 등 원료 수급 악재로 LP 만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LP의 원재료인 PVC의 가격은 약 30% 이상 상승했어요. 도금 과정에서 필요한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 소재로도 쓰이기 때문에 물량 확보가 쉽지 않고, 생산원가도 2년 전보다 약 3배 올랐어요. 니켈 등 재료 수급 문제 때문에 LP 발매가 미뤄지는 경우도 있어요. 국내 LP 제조 원가는 유럽이나 중국에 비해 높은 편이에요. 하 대표는 "가격 경쟁력을 고려해 아직은 납품 단가를 올리지 않고 있지만 (사태가 지속되면) 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어요. 비크닉전지현도 썼다…年매출 3220억 '괴짜' 한국인의 선글라스 [비크닉]전 작품 1초만에 완판…왜 이리 핫할까, 샘바이펜 페이크 아트 [비크닉]줄서서 사는 박재범 '원소주'…이 남자의 '힙한 비법' 통했다 [비크닉][비크닉] 그린워싱, 무조건 때리는 게 지구에 득일까?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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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도 썼다…年매출 3220억 '괴짜' 한국인의 선글라스 [비크닉]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n년차 마케터 한재동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런 고백이지만 취미는 쇼핑이고, 첫 직장은 백화점이었습니다. 말그대로 ‘덕업일치’였죠. 좋아하던 것이 일이 되면 안 된다는데 쇼핑은 예외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모든 브랜드에 과도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가지고 싶은게 많지만 한정된 자원의 슬픔을 아시나요? 차라리 모르는 것이 약일지도….) 물욕을 자극하는 힙한 브랜드의 마케팅 스토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아이웨어 브랜드의 새 장을 연 ‘젠틀몬스터’입니다. ━ 창립 10년만에 백화점 명품존에 들어간 토종 안경 젠틀몬스터 2022 컬렉션 잘 나가는 브랜드를 찾으려면 백화점 정문에서 잘 보이는 매장을 찾으면 됩니다. 보통 그 자리에는 명품의 대명사 ‘에루샤(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가 있거나, 그들이 입점해 있지 않다면 그 뒤를 잇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있어요. 백화점 1층에선 브랜드 간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자리전쟁이 벌어지죠. 젠틀몬스터도 그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젠틀몬스터는 백화점 1층의 한가운데에서 다른 매장과는 차별화 되는 톡특한 공간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세계적인 명성의 디자이너가 뉴욕이나 밀라노에서 만든 브랜드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10년 남짓 된 국내 브랜드라는 사실!(국뽕이 차오른다….) ━ ‘안경은 패션아이템?’ 처음에는 안 될 것 같았다! 젠틀몬스터를 만든 김한국 대표는 2000년대 후반, 금융 대기업을 그만두고 도전을 위해 작은 영어교육업체 이직한 소위 ‘괴짜’였는데요. 위기에 처한 회사의 돌파구로 아이웨어 사업을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2011년 2월 스눕바이(2017년 아이아이컴바인드로 사명 변경) 법인을 설립하고 두 달 뒤 젠틀몬스터를 론칭합니다. 사업 초기 매출 1억 원이 채 넘지 않고 전전긍긍하던 그는 입소문을 낼 요량으로 유명 타투이스트와 협업을 추진합니다. 그는 아는 연예인에게 제품을 전해 달라는 김 대표의 부탁을 “디자인이 예쁘지 않다”는 말로 거절했다고 해요(DBR, 2014.11). 이에 김 대표는 충격을 받고 디자인 개발에 총력을 다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분이 바로 젠틀몬스터의 귀인일 수도 있겠네요. 당시 안경 산업은 안경점과 제작업체 간의 카르텔로 신생 업체 진입이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근처 안경점에 가서 시력을 측정하고, 추천해주는 안경테 중에 가장 잘 맞는 안경을 사는 형태였거든요. 하지만 젠틀몬스터가 디자인 개발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한 뒤인 2012년 tram c2, matroos 등 디자인이 이쁘다는 평가를 받는 제품들이 등장했습니다. 고객이 먼저 제품을 찾게 되자 안경 산업의 카르텔은 깨지기 시작했어요. ‘안경은 패션아이템’이라는 젠틀몬스터의 전략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 거죠. ━ 별에서 온 그대, 천송이 선글라스로 품절대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한 장면. [사진 SBS] 2013년 드라마 ‘별그대’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요. 주인공 천송이를 연기한 전지현씨가 치킨에 맥주를 먹는 장면 때문에 중국 관광객이 한국 여행을 와서 치맥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전지현씨가 입는 모든 옷과 액세서리가 품절 되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인기 있던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젠틀몬스터의 ‘DIDIDI’였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PPL이 아니라 코디가 디자인이 예뻐서 가져다 쓴 것이라고 합니다. 디자인에 역량을 집중한 덕을 본 거죠. 이렇게 갑자기 떠버리면 식는 법도 빠르다고 하죠? 그러나 젠틀몬스터는 반짝스타가 아니었습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젠틀몬스터의 인기는 여전했고, 오히려 더 도약하게 됩니다. ━ 퀀텀프로젝트, 이게 말이 돼? 퀀텀 프로젝트 '공간의 잠식'(2014년 4월). [사진 젠틀몬스터 페이스북] 그 저력을 15일~25일마다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의 패션 인스톨레이션을 교체한 퀀텀프로젝트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패션 인스톨레이션’은 패션과 설치미술(installation art)이 접목된 개념이에요. ‘예술과 의상의 접점으로서 공간과 오브제, 메시지가 통합된 작업’(마진주, 2019)울 가리키죠. 퀀텀(quantum)의 사전적 개념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량의 단위'의 의미인 ‘양자'입니다. 공간이 속도감을 갖고 빠르고도 창의적으로 변화하는 걸 보여주겠다는 실험 정신에서 시작됐죠. 경영효율을 생각하면 해서는 안 되는 프로젝트인데, 젠틀몬스터는 브랜딩을 위해 강행했다고 해요. 디자인 스튜디오 패브리커, 최도진 아트 디렉터가 차례로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전문가 및 기업과 협업했어요. ‘이야기가 느껴지는 매장’이라는 컨셉을 잃지 않으면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퍼포먼스를 활용해 다양한 감각 경험을 제공하고, 방문객과 상호작용이 이뤄질 수 있게 만들었죠. 결과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총 36가지의 컨셉을 보여준 퀀텀프로젝트는 입소문을 타며 젠틀몬스터의 팬덤을 만들어냈습니다. 젠틀몬스터 계동 목욕탕 매장 젠틀몬스터는 현재 한국에서 공간마케팅을 가장 잘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화점 입점 매장도 다른 브랜드와 달리 독특한 매장 구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가로수길과 홍대의 플래그십스토어와 다양한 장소에서의 팝업스토어를 통해 주방·대중목욕탕·세탁소 등 실험적인 콘셉트의 공간마케팅을 실험했고, 항상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브랜드 가치를 쌓아 올린 결과, 2017년 루이비통의 모기업 LVMH 계열 사모펀드 L캐터톤아시아의 700억 원 프리 IPO 투자로 이어졌어요. 다양한 콜라보레이션도 이어졌습니다. 펜디, 몽클레어와 같은 명품 브랜드들부터 알렉산더왕, 헨릭 빕스코브, 블랙핑크 제니 등 인플루언서와의 협업은 큰 화제가 되었어요. 그중 전자통신회사 화웨이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게임과의 콜라보레이션들은 보통의 패션브랜드의 공식을 비트는 도전이었습니다. ━ “세상을 놀라게 하라” 예측불허 행보 2017년 스킨케어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tamburins)’를 런칭하기도 했습니다. 탬버린즈는 제품 퀄리티에 대한 찬사와 공간연출, 특히 매장의 ‘향’에 까지 신경을 쓴 디테일에 역시 젠틀몬스터의 세컨드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좀 예상이 가능했는데…. 2021년 젠틀몬스터는 디저트 브랜드‘누데이크(NUDAKE)’를 하우스 도산에 런칭했습니다. 요즘에는 구찌·루이비통 등이 국내에서 팝업으로 레스토랑을 오픈하는데요, 한발 앞선 시도였습니다. 누데이크 도산 [사진 젠틀몬스터 페이스북] 하우스 도산은 젠틀몬스터가 ‘퓨처 리테일’을 표방하며 서울 압구정로에 마련한 공간입니다. 젠틀몬스터 매장과 탬버린즈에 누데이크까지 입점해 있어요. 젠틀몬스터 로봇 랩이 1년여 연구해 만들었다는 육족 로봇 THE PROBE도 전시돼 있습니다. ‘끊임없이 소비자의 감정을 자극시키고자 하는 브랜드의 도전 정신’을 상징한다고 해요. 하우스 도산 [사진 젠틀몬스터 페이스북] 커피 맛 때문이 아니라 스타벅스의 문화코드 때문에 스벅을 마시는 것처럼, 젠틀몬스터의 아이웨어에 열광하는 이유도 젠틀몬스터만의 문화코드에 팬들이 호응하기 때문일 겁니다. 단순히 디자인 좋은 아이웨어를 넘어 공간·음식·뷰티까지 아우르는 종합 라이프스타일을 아트와 테크로 풀어내는 ‘엣지’가 팬덤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요. ━ 젠틀몬스터의 성공은 계속 될 수 있을까? 젠틀몬스터는 당분간 계속 핫하고 힙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연히 백화점에서도 좋은 자리에 위치할 가능성이 크고요. 2021년 12월 31일 기준 아이아이컴바인드 및 종속회사의 자산총액은 4827억원, 지난 한 해 매출 3220억원에 달합니다. 매출 1억원도 못 내던 브랜드가 10년 남짓만에 드라마틱하게 성장한 거죠. 젠틀몬스터가 만약 대기업의 신사업 공식에 따라 기획되었다면 공간 마케팅 프로젝트는 효율이라는 명분으로 좌절되었을 거예요. 사실 재무재표 숫자 너머의 이미지가 지금의 젠틀몬스터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준 저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런면에서 젠틀몬스터는 비용 효율에 고통 받는 수많은 마케팅 실무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브랜드일 것 같습니다. 젠틀몬스터-중국 상하이 매장 지금까지가 젠틀몬스터가 보여준 것이 드라마틱한 성장 스토리라면, 이제는 K패션 브랜드에서 벗어나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는 포지셔닝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젠틀몬스터는 이미 중국과 미국 등 해외 7개국에 진출했고, 전체매출의 75%가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해외 진출 전략에서도 공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젠틀몬스터는 하우스 도산을 시작으로 상하이에서 더 크고 새로운 하우스를 오픈했어요. 과연 젠틀몬스터는 계속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을까요? 이 레터 저장해두시고 나중에 다시 젠틀몬스터의 성장 스토리를 찾아보기로 해요. 다음에 또 만나요!😀 한재동 중앙일보 BP팀 마케터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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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작품 1초만에 완판…왜 이리 핫할까, 샘바이펜 페이크 아트 [비크닉]
20세기 초 러시아 형식주의의 문학적 수법 중 '낯설게 하기'라는 것이 있어요. 친숙한 사물, 관념을 특수화해 전에 없던 낯선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장치죠. '낯익은 것'들로부터 '낯선 모습'을 발견했을 때 우린 그것이 원래 알고 있던 것임에도 거리감을 느끼고 집중하게 됩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과정에서 추가되는 새로운 해석에 주목하기 때문이에요. 일러스트 아트 세계에서도 일상의 모습을 위트 있는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실력이 탁월해 사랑받는 작가가 있습니다. 미쉐린, BIC, 오뚜기 등 친숙한 브랜드의 캐릭터부터 길가에 활짝 핀 꽃과 표지판까지, 이 사람에겐 모든 것이 작품의 재료가 됩니다. 누군지 아시겠다고요? 맞아요 '나 혼자 산다'에 나왔던 그 분. 지금 가장 핫한 일러스트레이터, '샘바이펜'(SAMBYPEN)이라는 활동명으로 잘 알려진 김세동 작가예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매일 지나가도 새로운 것들, 자칫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포착해서 그림을 그려요. 꽃, 표지판 같은 것들이요. 해석보다는 직관적으로 보고 즐기는 게 좋아요." 김세동 작가(샘바이펜) [사진 Speeker] 1992년생으로 올해 31살인 김 작가. 학창시절을 유럽과 미국에서 보낸 그는 지금 MZ세대가 가장 주목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성장했어요. 군데군데 알록달록한 색감을 잘 쓰기도 하지만, 익숙한 소재를 재료로 삼아 세련되게 표현하는 데 강점이 있죠. 친숙한 영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유머러스하게 패러디하는 데도 능숙하고요. '미쉐린 맨'으로 알려진 비벤덤을 재해석한 작품이 대표작이에요. 지난 2015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김 작가의 작품은 내놨다 하면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어요. 지난달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부산 2022'에 출품한 7점도 모두 단 1초만에 완판됐죠. 기업들의 러브콜도 끊이지 않아요. 지난해엔 글로벌 패션 하우스 브랜드인 MCM과 협업한 '리미티트 에디트 컬렉션'이 SNS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요. 최근엔 줄 서도 못 구한다는 '원소주'의 한정판 패키지를 디자인했어요. [샘바이펜 인스타그램] [샘바이펜 인스타그램] '상업화된 현대사회 속에서 익숙한 것들이 미묘한 이질감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을 '페이크 아트'(FAKE ART)라고 불러요. 순수 미술(Fine Art)과 대비되는 개념이죠. "'순수 예술'이라는데, 진짜 순수한가요 그게? 전 그림 그리는 어린이들이 더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핫할대로 핫해진 그가 이번엔 글로벌 데님 브랜드 '리바이스'와 콜라보했어요. 꽃 모양의 자수와 리바이스를 형상화한 그래피티 페인팅을 리바이스 데님 트러커 자켓, 베트윙 로고 티셔츠, 501 데님, 스테이루즈쿨 진에 새겼죠. 리바이스가 김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희정 리바이스트라우스코리아 이사는 "국내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마침 Z세대의 주목도가 높은 샘바이펜이 제격이라 생각해 제안했다"며 "샘바이펜만의 그래피티 컬러감이 리바이스 데님과 꼭 어울릴 거 같았다"고 했어요. 지난 3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김 작가를 만났습니다. 그 누구보다 핫한 그, '인기 있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엔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겸손함까지 갖췄더군요. 나만의 스타일이 탄생하기까지의 고민의 과정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답니다. 비크닉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페인팅이랑 그래픽 디자인, 그래비티 작업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 샘바이펜이라고 합니다. 활동명 샘바이펜은 사실 인스타그램 닉네임인데, 이제는 활동명이 됐네요. 활동명 '샘바이펜'에 담긴 의미가 궁금해요. 10년 전쯤, 스무 살 쯤에 '후드 바이 에어'(Hood By Air, HBA)란 브랜드가 있었어요. 지금의 오프화이트와 비슷한 느낌인데, 사람들이 잘 몰랐던 브랜드였거든요. 당시에 한국에선 아무도 입지 않는 HBA의 의류를 처음 사서 혼자 입고 다녔는데 그게 되게 좋았습니다. (남들과 다른 것을 좋아하는) 제 성향이 반영된 HBA 브랜드의 이름을 패러디한 거죠. 그리고 제가 군대에 있었을 때 모나미 펜으로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간부 휴대폰을 빌려서 (그림을) 촬영해서 SNS에 업로드하고 그랬습니다. 김세동 작가 [사진 정성룡 포토그래퍼] 요즘 굉장히 핫한 아티스트인데. 원래 엄청 안 핫했었어요.(웃음) 그냥 계속 작업을 꾸준히 하다 보니 TV에도 출연하고. 인기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스물 여섯쯤에 나이키와 처음으로 협업했어요. 작업은 힘들지만 나이키라는 브랜드에서 (저를) 알아봐주고 연락해줬다는 점을 생각해서 그 때 '이 일을 계속 해도 되겠다'란 생각을 했어요. 아직도 그래피티가 생소하단 사람들이 많아요. 원래 그래피티를 주력으로 하진 않았어요. 처음엔 페인팅(회화)으로 시작했다가 영역을 확장한 겁니다. 친한 분들의 식당, 편집숍에서 연습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어요. 그래피티란 영역이 되게 폐쇄적이거든요. 예전엔 그 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아티스트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작품 세계를) 표현한 건데, 이젠 반대로 (작품보다) 아티스트들이 더 폐쇄적인 느낌이에요. '그래피티를 하려면 작가 얼굴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등의 암묵적인 룰이 있죠. 룰을 깨고 싶었습니다. 김세동 작가 [사진 정성룡 포토그래퍼] 리바이스와의 이번 협업에서 고려한 것은? 사실 깊은 의미보다는 어차피 (데님도) 소비되는 제품이니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어요. 골프를 오래했는데, 연습장을 갈 때 공원을 지나서 가요. 엄청 작은 길인데도 지나다보면 숲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꽃이라든지, 표지판이라든지, 무심결에 지나치면 볼 수 없는 것들에서 새로운 느낌을 찾려고 해요. 그런 직관적인 느낌으로 작업해봤어요. 취향에 맞게 예쁘게 입고 재밌게 놀러다니셨으면 좋겠어요. NFT에 작품을 등록할 계획은 없나요?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너무 다들 하니까 마음이 좀 그래서요. 좀 나중엔 할 수도 있겠어요. NFT 인기가 시들해지면요. 그 땐 사람들이 안 할 거니까요.(웃음) 앞으로 계획은? 하반기엔 개인전 준비로 바쁠 것 같아요. 개인전은 10월쯤 열 계획입니다. 기대해주세요. 비크닉줄서서 사는 박재범 '원소주'…이 남자의 '힙한 비법' 통했다 [비크닉][비크닉] 그린워싱, 무조건 때리는 게 지구에 득일까?10만원 폰케이스, 왜 잘 팔리나…'명품 인싸템' 신경쓴 두 가지 [비크닉]당신이 구하던 삶은? 29CM 첫 브랜드 캠페인 기획한 이 사람[비크닉]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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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 폰케이스, 왜 잘 팔리나…'명품 인싸템' 신경쓴 두 가지 [비크닉]
스마트폰 케이스도 명품이 있다. 제품 하나가 5만~10만원대에 달하는 커스텀 폰 케이스 브랜드 '케이스티파이(CASETiFY)'다. 올해 플래그십 스토어 세 곳을 열고 한국에 진출한 케이스티파이의 창업자 웨슬리 응(Wesley Ng) 최고경영자(CEO)를 지난 4일 국내 언론 최초로 만났다. "세상에 단 하나…나를 표현해주는 제품이 팔리죠." 웨슬리 CEO는 2011년 '갖고 싶은 폰 케이스를 커스터마이징(맞춤 제작) 할 수 있다면 어떨까'란 아이디어 하나로 친구와 함께 창업했다. 케이스 재질, 색상, 레터링까지 입맛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 개성을 드러내는 MZ 세대가 열광했다. 현재는 아이폰, 갤럭시 케이스를 비롯해 스마트 워치 밴드, 블루투스 이어폰 케이스를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성장했다. 케이스티파이에 따르면 한국은 180개국 중 미국에 이어 매출 비중 2위다. 매달 전년 동월 대비 세 자릿수 매출 증가율을 기록 중이다. 개인 취향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주문 제작형 제품에 관심이 늘어난 덕이다. 웨슬리 CEO는 "소비자가 브랜드에 기대하는 바가 변했다”며 “폰 케이스는 자기표현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웨슬리 응(Wesley Ng) 케이스티파이 CEO. [케이스티파이 제공] 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폰 케이스의 본질에도 집중했다. 케이스티파이의 제품은 미 육군 납품 규격, '밀스펙(밀리터리+스펙)'을 충족한다. 출시 전엔 2~3m 낙하 테스트를 한다. 안전성을 높이는 소재를 연구해 품질에 맞춘 디자인을 만들었다. 제품의 상징인 '림 로고(rim logo)' 디자인도 폰 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는 "품질만큼은 절대 양보 못 한다"며 "우리의 사명(使命)은 최고의 보호 성능을 아름다운 디자인, 개성의 표현과 결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도 품질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다. 회사는 지난해 10월 출범한 '리케이스티파이(Re/CASETiFY)' 프로그램을 통해 16만개의 케이스를 재활용했다. 플라스틱 2만8000㎏을 업사이클링해 탄소 배출량 3900톤을 감축했다. 소비자의 업사이클링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후원하고, 사용한 케이스를 반납하면 할인 쿠폰을 준다. 친환경을 선호하는 MZ 세대 가치관에 꼭 들어맞는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기까지 인고의 시간도 보냈다. 초기엔 폰 케이스 따위가 특별할 게 있냐는 반응이었다. 지쳐가던 CEO는 미디어에 문을 두드렸다. 유명 매체들에 100건 이상의 설명자료와 제품을 보내는 게 일과였다. 미국 IT미디어 매셔블(Mashable)이 처음으로 리뷰(제품 사용기)를 업로드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그는 "하루는 제품 단 한 개도 팔지 못해 사업을 계속해야 할까 생각했다"며 "대가도 없이 보낸 자료를 미디어가 보도해주면서 다시 힘이 났다"고 회상했다. NFT 아트를 삽입한 폰 케이스. [케이스티파이 제공] 개성이 자산이란 믿음으로 지난 3월엔 NFT(대체 불가능 토큰) 시장에 도전했다. 소비자가 구매한 NFT 아트를 케이스에 삽입할 수 있는 'NFT 유어 케이스(NFT Your Case)' 플랫폼을 론칭했다. 예술을 현실로 불러오는 피지털(Phygital, 오프라인 공간을 뜻하는 '피지컬'과 '디지털'의 합성어) 캔버스다. QR코드로 NFT 소유권을 인증할 수도 있다. 웨슬리 CEO는 "미디어 아티스트의 자기표현 방식 중 하나란 관점에서 NFT는 자연스러운 연장선"이라며 "모방할 수 없는 혁신을 주도하는 케이스티파이의 행보를 지켜봐 달라"고 했다. 케이스티파이는 전 세계 14곳인 스토어를 2년 내 100곳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에선 리테일 매장을 통해 존재감을 키우는 게 목표다. 1월 서울 가로수길, 2월 여의도 더현대, 4월 잠실 롯데월드몰 등 상반기에만 3곳을 오픈했다. 웨슬리 CEO는 "오프라인이 제공하는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며 "케이스티파이가 추구하는 가치를 한마음 한뜻을 가진 소비자들이 한곳에 모여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매장 수를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아직 창작자이자 디자이너"라며 "서울의 젊은 학생들과 아티스트들이 모여 공동으로 작업하고, 우리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허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젊은 창작자와 사업가들이 아이디어를 얻으러 들르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 케이스티파이는 한국에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비크닉당신이 구하던 삶은? 29CM 첫 브랜드 캠페인 기획한 이 사람[비크닉][비크닉] 탄소배출량 8% 차지하는 패션 산업, 친환경이 될 수 있을까[비크닉] 게임보이와 함께였던 인생 최고의 순간[비크닉] 꼬북칩 성공 이끈 비밀은 ‘100대 0’의 법칙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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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크닉] 게임보이와 함께였던 인생 최고의 순간
━ #INTRO: 당신의 가장 좋았던 시절은 언제인가요? '회고절정'이란 말, 들어봤어요? 회고(回顧), 뒤를 돌아보니 절정(絶頂), 내 삶 중 최고의 순간이었던 시절. 회고절정(reminiscence bump)은 유난히 기억에 남는 순간을 뜻하는 인지심리학 용어랍니다. 내 성격과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시기,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과 사물은 평생 흔적을 남깁니다. 긴 인생 여정에서 오늘의 경험은 어떤 흔적으로 남을까요? 제게도 회고절정의 아이템이 있어요.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죠.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학교에 가지고 왔던 '게임보이 컬러'가 너무 갖고 싶었어요. 전자 상가에 가서 게임기를 사려면 왕복 반나절은 기차를 타야 했지요. 게임기를 사러 홀로 교외로 나갔던 그 순간이 제 인생의 회고절정 아니었을까요? [사진 픽사베이] ━ 배보다 배꼽이 큰 게임팩의 감질나는 매력 게임기 하나에 이 세상 모든 게임이 들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닌텐도는 게임을 하려면 값비싼 게임 타이틀을 사야 해요. 20년 전 게임보이 컬러의 본체는 약 9만원, 타이틀은 2만~4만원대였어요. '포켓몬스터', '마리오' 등 오리지널 타이틀의 가격은 대체로 4만원이 넘었죠. 타이틀 세 개만 사도 본체 가격을 뛰어넘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죠. 그래서 타이틀을 하나 사면 여러 번 리셋해서 플레이하곤 했답니다. 재밌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교환도 했어요. 지금은 중고거래 플랫폼이 활성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중고품을 구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거든요. 전자 상가를 기웃거리며 갖고 싶은 게임 타이틀 팩을 수첩에 적곤 했답니다. 지금도 어떤 것이 갖고 싶으면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하는 게 습관이에요. 게임보이 [사진 닌텐도] ■ 「 게임보이 GAMEBOY 1989년 4월 출시된 닌텐도 게임보이는 1억대 이상 판매된 휴대용 게임기의 시조다. 닌텐도는 게임보이 출시 당시 "달리는 자전거에서 떨어져도 고장 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었다"며 내구성을 강조했다. 초기 모델은 흑백 액정을 탑재했고, 1998년 10월에 반사형 TFT(박막 트랜지스터) 컬러 액정을 탑재한 '게임보이 컬러'가 출시됐다. AA 건전지 4개로 약 35시간 플레이가 가능했고, '테트리스'와 '포켓몬스터' 등 히트작에 힘입어 지금까지 총 1억1869만대가 판매된 장수 게임기다. 」 ━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닌텐도가 인기몰이했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게임보이 컬러로 닌텐도에 입문했어요. 그렇지만 게임보이보다 ‘패미컴’이 익숙한 분들도 많겠죠? 패미컴은 TV에 연결해서 대화면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닌텐도 스위치의 조상이에요. 지금까지 이어지는 닌텐도의 게임 비즈니스를 만든 것도 패미컴이죠. 패미컴의 인기를 끌어올린 주역은 1985년 9월 출시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어요. 마리오, 루이지를 조작해 쿠파 일당이 납치한 피치공주를 구하는 액션 게임이죠.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풍부한 액션, 귀에 남는 배경음악이 매력 포인트예요. 닌텐도는 패미컴과 마리오의 성공을 발판삼아 이후 게임보이, 슈퍼 패미컴, 닌텐도64, 닌텐도DS, 위(Wii) 등을 차례로 생산합니다. 패미컴 [사진 닌텐도] ■ 「 패미컴 FAMILY COMPUTER 패미컴(한국명: 컴보이)은 닌텐도의 첫번째 가정용 소프트 교환식 게임기로, 1983년 7월 15일 출시됐다. 출시가는 1만4800엔, 우리 돈으로 약 15만원이었다. 본체에 탈착 스위치, 컨트롤러에는 십자 버튼과 마이크를 장착한 것이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패미컴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등 히트작을 기반으로 출시 후 20년 이상 생산돼 전 세계에서 총 6191만대가 판매됐다. 」 ━ 어른이 돼도 닌텐도 게임보이, 닌텐도DS, Wii 등 닌텐도와 시간을 보내니 훌쩍 어른이 됐어요. 학업에, 직장 생활에 시간을 뺏겨 게임을 할 시간은 줄었지만, 신작 타이틀을 볼 때마다 뜨거운 추억이 솟아오른답니다. 최근엔 콘솔 플랫폼인 '닌텐도 스위치’' 빠졌어요. 스위치는 패미컴과 게임보이의 장점을 합친 새로운 게임 플랫폼이에요. 언제 어디서든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성을 갖췄고, 패미컴처럼 TV에 연결해 큰 화면으로 게임을 즐길 수도 있죠. 스위치는 콘솔형 휴대용 게임기란 독보적인 포지션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어요. 닌텐도에 따르면 이 게임기는 2017년 출시 후 지난해까지 총 1억354만대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했죠.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 소니의 플랫폼보다 더 빠르게 판매량 1억대를 달성했고, 전작인 Wii의 판매량인 1억163만대도 넘었습니다. 스위치용 타이틀도 지난해까지 총 7억6641만장 판매됐어요. 닌텐도 스위치 OLED 모델 [사진 닌텐도] ■ 「 닌텐도 스위치 NINTENDO SWITCH 스위치는 닌텐도가 출시한 Wii U와 3DS의 뒤를 잇는 8세대 닌텐도 게임기다. 2017년 3월 3일 일본,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남아공, 홍콩에서 1차 발매됐고, 같은 해 12월 1일 한국에서 정식 발매됐다. 2019년 9월 20일엔 가정용 기능을 뺀 염가판 라이트(Lite) 모델이, 2021년 10월 8일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몇 가지 개선이 이뤄진 고급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모델이 출시됐다. 가장 많이 판매된 게임 타이틀은 같은 기간 총 4335만 장 팔린 '마리오카트8 디럭스'다. 」 닌텐도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난투를 벌이는 크로스오버 격투 액션 게임 '슈퍼 스매시 브라더스 얼티밋' [사진 닌텐도] ━ 포켓몬, 마리오, 젤다…닌텐도의 보물들 판매량에 날개를 단 닌텐도, 비결은 무엇일까요? 닌텐도 마니아인 저는 '누구나', '새로운', '좋아하는' 이 세 가지 키워드를 꼽고 싶어요. 닌텐도의 게임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요. 살벌한 스토리라인이 없고 밝은 분위기가 특징이죠. 새로운 기술로 UX(사용자 경험)를 키우는 전략도 유효했어요. 골판지 완구인 '라보(LABO)', RC카를 AR(증강현실)로 조종하는 '마리오 홈 서킷'이 그 예죠. 포켓몬, 마리오, 젤다 등 자체 IP(지식재산권) 덕분이기도 해요. 수십 년째 사랑받는 IP를 보유한 덕분에 닌텐도는 IP 기반인 게임 시장의 꼭대기에 있어요. 게임 업계가 인기 IP에 목말라 있는 상황에서 성공이 보장된 오리지널 타이틀을 꾸준히 출시하며 성과를 냈죠. 20년 전 패미컴, 게임보이에서 구동됐던 포켓몬, 마리오, 젤다 시리즈는 10년, 20년 뒤에도 소비자를 사로잡을 겁니다. ━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시대…특유의 폐쇄성은 숙제 닌텐도를 말할 때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키워드가 있죠. 폐쇄성입니다. 닌텐도는 패미컴부터 스위치까지 철저하게 독자적인 사양에 기반을 둔 제품만을 출시해왔어요. 반도체, 운영체제(OS) 등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모두 말이에요. 특유의 폐쇄성은 포켓몬·마리오 등 히트작이 탄생하면서 결과적으로 득이 됐죠. MS·소니가 양분하던 게임기 시장에서 포켓몬, 마리오를 앞세워 삼국지 구도를 만들었고요. 독점 IP로 만든 게임이 인기를 얻으면서 게임기 판매를 견인한 거예요. 그런데 닌텐도가 마주한 지금은 과거와 다릅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충분히 즐길만한 게임이 쏟아져 나오면서 소비자들이 게임기를 외면하기 시작한 거예요. 패러다임이 변했죠. 관련해서 2015년 일본 최대의 게임 행사인 도쿄 게임쇼에서 발표된 재밌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과 콘솔 게임을 비교한 건데요.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콘솔 게임의 모바일 게임 이용자 수는 콘솔보다 2배나 많았어요. 별 4점 이상 높은 평가를 받은 게임도 모바일이 6개인 데 반해 콘솔은 3개뿐이었죠. 스마트폰 혁명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상품과 비즈니스가 소비자 선택을 기다리죠. 잠깐 한눈을 팔거나 의사결정이 조금만 늦어도 뒤처질 수 있어요. 여전히 자신들만의 게임 콘텐트로 역전을 꿈꾸는 닌텐도. ‘오락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회사의 모토, 계속 지킬 수 있을까요? 닌텐도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마리오 화투' [사진 닌텐도] ━ #뱀 발: 닌텐도는 화투를 만드는 작은 회사였다 닌텐도는 1889년 9월 23일 야마우치 후사지로라는 사람이 담배 가게를 개조해 창업한 화투 제조사로 출발했어요. 닌텐도를 일개 화투 회사에서 세계적인 비디오 게임 회사로 키운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2002년 퇴임 전, 지난 52년의 소회를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원이 회사에서 장난감을 만드는 것을 우연히 보고 사업을 전환했다. 닌텐도의 성공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일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사명 닌텐도(任天堂)의 의미처럼, 변화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던 가치관이 닌텐도의 일등 공신 아닐까요?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