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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톤 틴트 대박나자 연매출 800억, 롬앤이 입증한 덕후의 힘[비크닉]
봄, 여름, 가을, 겨울…. 퍼스널 컬러는 성격 특징을 알려주는 MBTI처럼 나를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가 됐습니다. 화장품이나 옷을 살 때 퍼스널 컬러에 맞추는 건 기본이고, 상대에게 어울리는 컬러를 고려해 선물해주는 센스도 필요하다고 해요. 이 퍼스널 컬러를 색조화장품에 적용해 대박이 난 코스메틱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화장품 덕후가 만든 아이패밀리에스씨 색조 브랜드 ‘롬앤’인데요. 기존엔 볼 수 없던 쿨톤 틴트와 다채로운 섀도 팔레트 등을 앞세워 성장하더니 작년엔 출시 7년 만에 연 매출 8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요즘엔 깐깐하다는 일본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어요. 롬앤의 성공 뒤엔 창립 당시부터 함께한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민새롬씨가 있습니다. 브랜드 소개팅 이번엔 성공한 코스메틱 덕후(이하 ‘코덕')의 이야기입니다. 롬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뷰티 블로거, 유튜버인 민새롬 씨. 사진 민새롬 인스타그램 ━ 왜 피부색은 모두 다를까? 색에 미친 미대생 퍼스널컬러에 맞는 제품 조합을 추천해주는 콘텐트. 사진 개코의 오픈스튜디오 네이버 블로그 민새롬씨가 과거 블로그 시절 올렸던 콘텐트 중 하나. 시중에 있는 색조 화장품을 퍼스널 컬러 분류법에 따라 그룹화했다. 사진 개코의 오픈스튜디오 네이버 블로그 민새롬씨는 2012년부터 ‘개코의 오픈 스튜디오’라는 블로그를 운영한 파워블로거였어요. 메이크업도 글로 배우던 시절. 그는 특유의 귀여운 손글씨로 다양한 화장법을 쉽게 설명해 인기를 끌었죠. 가장 독보적이었던 분야는 ‘색조 화장품 분석’이었어요. 퍼스널 컬러라는 개념도 알려지지 않았을 당시 코덕들에게 그는 사람마다 잘 어울리는 색조화장품이 다른지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신기하고 고마운 존재였죠.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에게 색은 자신과 사람들을 구분 짓는 가장 확실한 요소였대요.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20대 얼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도 ‘색’이었다고 해요. "어떤 색감으로 화장해야 좋을까 고민하던 게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어요. ‘왜 친구에게 잘 어울리는 립스틱이 내겐 어울리지 않는 걸까?’, ‘사람마다 입술과 동공 색깔이 달라서가 아닐까’ 궁금한 게 너무 많았어요.” ‘사람마다 잘 어울리는 색이 다른 이유는 고유의 바탕색이 달라서가 아닐까.’ 이런 합리적 의심에 이르게 된 후 만나는 사람마다 팔을 걷어 피부색을 들여다봤다고 해요. 그러면서 같은 컬러라도 고유의 피부색에 따라 누군가는 뱉어내고 흡수하는 등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됐대요. 퍼스널 컬러가 알려진 지금이야 당연한 것으로 통하지만 빨강, 핑크, 주황색 틴트밖에 없던 그 시절엔 새로운 이론이었죠. 국내엔 관련 자료가 부족해 외국 서적을 찾아다니며 전문 자격증까지 땄다고 해요. 그의 덕력은 블로그 콘텐트에서도 묻어나요. 시중에 있는 색조 립스틱과 블러셔 등을 퍼스널 컬러 분류법에 따라 꼼꼼하게 분석하고, 그룹화해 색조합까지 추천했죠. 노하우가 담긴 메이크업 책도 출간했고요. ━ 코덕이 만든 브랜드는 달랐다 민새롬 씨가 운영중인 유튜브 개코의 오픈스튜디오 채널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사진 개코의 오픈스튜디오 캡처 블로그 전성기 시절 그는 내로라하는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가장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지금 회사와 손을 잡았습니다. 롬앤의 롬은 민새롬의 이름에서 가져왔어요. 공식 직함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데 기획부터 제형, 마케팅 전 작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그의 덕력은 롬앤에서 가장 빛을 발했습니다. 롬앤은 웜톤 일색의 한국 색조 시장을 다변화하고 퍼스널 컬러 조합에 맞는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어찌 보면 이건 민새롬 씨가 블로그 시절부터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제품에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10년 전 인기 끌었던 에뛰드 하우스의 틴트. 사진 에뛰드 하우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색조시장엔 극단적이고 쨍한 색만 있었어요. 분명 그 중간에 있는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색이 있는데도 말예요. 아쉬운 마음에 방에서 혼자 컨실러를 섞어보고 립스틱을 섞어가며 직접 색을 만들곤 했죠. 지금은 롬앤 틴트만 100종류가 넘으니 꿈을 이룬 거죠.” 그는 롬앤의 성공 비결로 ‘팬들과 소통’을 꼽았어요. 창업 초기 위기 때 롬앤을 살린 건 팬들이었다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오픈빨이 끝나고 추후 아이템이 없어 너무 막막했어요. 블로그 하던 때처럼 사람들에게 그냥 물었어요. ‘이제 롬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경제적 보상이 없는데도 1700명의 사람은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줬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화장품 단가를 낮췄고, 기존에 없던 다양한 쿨톤 틴트를 내놨어요. 롬앤의 사무실 곳곳에는 ‘감이 떨어지면 소비자 말을 듣자’는 슬로건이 있어요.” ━ 이제 화장품 말고 덕후를 덕질해요 롬앤이 최근 선보인 코덕을 위한 플랫폼 코덕 하우스. 사진 롬앤 홈페이지 브랜드 창립 7년 차. 민새롬은 더는 화장품 덕후가 아니라고 했어요. 몇 달 어렵게 모은 돈으로 산 섀도 팔레트 하나에 행복해하던, 비싼 외국산 립스틱을 친구들과 낚싯줄로 소분해 나눠 갖던 그 시절 민새롬은 아쉽게도 사라졌다는 거예요. 요즘 빠져있는 건 과거의 그를 떠올리게 하는, 아니 자신보다 더 무섭다는 요즘 코덕들이에요. 덕후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무언가에 진심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최근엔 덕후들이 직접 색조 화장품을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 ‘코덕 하우스(이하 ‘코하’)’를 만들었어요. 코덕들은 이곳에서 화장품 경험담을 풀고, 어떤 색조가 나오면 좋겠다는 등의 의견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그들의 의견이 상품이 될 수 있도록 롬앤이 돕는다는 겁니다. 제조공장을 연결해주고 마케팅까지 도와주기도 합니다. 민 씨가 수년에 거쳐 이룬 화장품 개발의 꿈이 코하에서는 보다 쉽게 실현되는 거죠. 자신이 그러했듯 덕후가 세상이 바꿀 거라는 믿음, 덕후들을 존중하는 그의 철학이 담겨있죠. “덕후들은 그저 좋아하는 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순수한 열정이 있어요. 이 순수함이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K뷰티를 이끌었다고 생각해요. 성공한 덕후로서 이제는 차세대 덕후들이 원하는 것, 재밌어 할만한 것을 주고 싶어요. 이제는 덕후들을 덕질하는 셈이죠.” 비크닉 유튜브( https://youtu.be/eHUhN8jpjRk?si=yD91q9lYuGHGBLgS)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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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성장한 CGV, 4DX·스크린X '특별관'이 효자 [비크닉]
엔데믹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는 영화관이 본격적인 수익 다변화에 나서는 가운데, '기술 특별관'이 극장가의 새로운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멀티플렉스 기업 1위인 CJ CGV는 2분기 매출 4017억 원, 영업이익 158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6.1% 증가했고 영업손익은 320억 원 개선돼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CGV의 나 홀로 성장세를 견인한 데엔 4DX와 스크린X를 필두로 한 특별관의 기여도가 컸다는 평가다. 특별관은 일반 2D관에 비해 티켓값이 약 2배 정도로 비싸 평균 티켓 가격(ATP)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4DX와 스크린X를 결합한 '울트라4DX'의 모습. 사진 CJ CGV. ━ 국내 최초 특별관만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국내 영화관 관람객 수는 7267만46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123만7713명) 대비 18.6% 증가했다. 동기간 영화 티켓 매출은 20% 늘어 관객 수 증가율을 넘어섰다. 이는 특별관 이용객이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멀티플렉스 기업 CGV의 기술 특별관 매출 비중 역시 코로나 19 이전인 2019년 16%에서 2023년 현재 31%로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달 25일엔 경기도 용인 CGV죽전을 리뉴얼 오픈한 CGV신세계경기의 6개관 전부를 일반관 대신 4DX와 돌비애트모스, 템퍼시네마, 골드클래스 등 특별관으로만 구성하며 효과 검증에 나섰다. 상영관 전관을 특별관으로 구성한 것은 국내 최초다. 비교적 특별관 수요가 높은 백화점 고객을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성과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전관 특별관'을 확대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CGV신세계경기의 4DX관 전경. CGV신세계경기는 전국 최초로 모든 상영관이 특별관으로만 구성돼 있다. 사진 이상언. ━ '4DX·스크린X' 기술 특별관에 승부수 4DX는 CGV의 자회사 CJ 4D플렉스가 지난 2009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4D 영화 상영 시스템이다. 모션 효과와 환경 효과 등 실감형 4DX를 도입한 CJ 4D플렉스는 현재 68개국 787개 상영관을 보유 중이다. 2011년엔 4D 관련 조직을 자회사 CJ 4D플렉스로 모으고, 특별관 명칭도 4DX로 리브랜딩했다. 4D 영화를 경험(eXperience)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4DX의 관람석에 물이 튀는 실감형 효과가 적용되는 모습. CJ CGV 유튜브 갈무리. 2015년엔 카이스트 연구진과 공동 개발한 특별관인 '스크린X'를 공개했다. 한 면만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기존 상영관과 달리 앞쪽, 왼쪽, 오른쪽 벽 3면을 스크린으로 사용했다. 넓은 시야와 입체감으로 영화의 몰입감을 높인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4DX와 스크린X를 결합한 '울트라4DX'를 선보였다. 최근엔 할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일본, 노르웨이, 터키, 인도네시아 등의 로컬 4DX 영화도 4D플렉스가 직접 제작하고 있다. CGV 측은 "과거엔 CJ 4D플렉스가 제작사에 영화를 4DX로 만들자고 선제안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국내외 제작사에서 먼저 4DX로 제작해달라고 요청한다"며 "특히 일본에선 4DX로 구현한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N차 관람을 하는 등 반응이 뜨겁다"고 부연했다. ━ 바람과 빛, 향기로 채운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 CGV는 다음 달 6일부터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를 4DX 포맷으로 재개봉한다. 이지혜 CJ포디플렉스 4DX PD는 “영화 속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나 실제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하기 위해 상영관을 바람과 빛, 향기로 채운다"며 “포탄이 터지는 장면에선 상영관 앞쪽에 연기를 피우고 열기가 느껴지게 하는 등 다채로운 공간효과를 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4DX 재개봉 포스터. 사진 CJ CGV 4DX·스크린X 기술을 활용해 직접 오리지널 콘텐트도 만든다. 2019년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를 다룬 영화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을 스크린에 올린 후 여러 작품을 제작해 상영 중이다. 지난 2월엔 BTS의 부산 콘서트 실황을 기록한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를, 4월엔 밴드 콜드플레이 공연을 담은 '콜드플레이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를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올 하반기에도 오리지널 콘텐트 4편을 선보인다. ━ 멀티플렉스, 라이프 스타일 공간 사업자로 CGV는 올해 7월 기준 세계 72개국에서 운영하는 특별관 1147개를 2025년까지 1486개로 늘린다는 목표다. OTT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영화관에서만 할 수 있는 고객 경험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기 위해서다. 허민회 CJ CGV 대표는 지난달 20일 올해 사업 전략에 대해 "미래 극장 사업을 선도할 기술 특별관을 강화하고 차별화된 체험을 제공하는 라이프 스타일 공간 사업자로 진화하겠다"며 특별관 사업에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간 사업 포트폴리오도 확대하고 있다. 층고가 높은 상영관을 리모델링한 이색 체험 클라이밍장 '피커스(PEAKERS)', 숏게임 골프 스튜디오 ‘더 어프로치(THE APPROACH)’, 방 탈출 체험 공간 ‘미션 브레이크’, 만화카페 ‘롤롤’, 프리미엄 볼링장 ‘볼링펍’, 하이볼 바 '하이 신촌(HIGH, SINCHON)' 등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서지명 CGV 홍보팀장은 "영화관 사업은 팬데믹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한발 더 나아가 기술·환경 기반의 특별관과 함께 계속 진화하는 새로운 공간 콘텐트가 확대돼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했다"며 "영화를 보는 데 최적화된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이 외에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해 극장 공간을 활용한 한국형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비크닉 '2030여성' 90%가 이 앱 썼다…내게 딱 맞는 '패션 추천' 비결 [비크닉] 테이블마다 헤드폰과 엽서·연필...오픈런 '성수동 카페'의 비밀 [비크닉] 머리 망가지고 땀띠 나도 '헤드폰 패션' 포기 못하는 이유 [비크닉] 날개 없애고 목에 걸고…선풍기 바람 바꾼 게임체인저 [비크닉] 박영민∙박이담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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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한 달 만에 3쇄"…맥도날드 히스토리에 열광하는 이유 [비크닉]
━ 새벽 탈출 고요한 새벽이 되면 나홀로 길거리를 환하게 비추던 맥도날드에 자주 가곤 했다. 사진 한국맥도날드 안녕하세요. 설레면 사고 싶고 맛있으면 먹고 싶은 비크닉 지름신 담당 박영민 기자입니다. 중2병을 앓던 시절, 저는 새벽만 되면 탈출을 꿈꿨어요. 문자메시지로 친구들과 접선 시간과 장소를 공유한 뒤 아무도 모르게 집을 빠져나왔죠. 그때 자주 들렀던 곳이 있어요. 24시간 영업 간판이 반짝이던 ‘맥도날드’였죠. 최근 신간 한 권을 읽고 새벽녘 치즈버거 한입 베어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기업‧경영 스토리 분야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맥도날드 35년 브랜드 스토리』입니다. 맥도날드는 왜 브랜드 스토리북을 만들었을까요. 기업 사사를 어떻게 대중의 눈높이에 딱 맞춰 만들 수 있었을까요. 비크닉이 사사 기획을 주도한 심나리 상무, 박주영 슈퍼바이저를 만나 그 뒷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 ━ 40주년 아닌 35주년을 기념한 이유 키워드로 역사를 풀어가는 35주년 『브랜드 스토리북』 표지. 시대순으로 성장 과정을 서술한 『히스토리북』과 함께 출간했다.사진 한국맥도날드 버거 번처럼 폭신폭신한 표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버거 사진들. 한국맥도날드가 지난달 5일 출간한 책 두 권은 국내 진출 35주년을 기념해 맥도날드의 브랜드 철학과 역사를 담은 사사(社史)예요. 198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1호 점포를 시작으로 하루 40만 명이 찾는 매출 1위 버거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냈어요. 창립기념은 보통 10주년, 20주년, 30주년 등 10년 단위가 중요하잖아요. 왜 하필 ‘35주년’일까요. “회사에 30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들이 한국맥도날드의 역사라는 생각에 모두 공감했어요. 만약 5년 뒤인 40주년에 사사를 만든다면, 그땐 역사와도 같은 직원들이 회사에 없을지 모르겠다는 조바심이 났어요.”- 심나리 한국맥도날드 상무 한국맥도날드 35주년 사사 기획을 주도한 심나리 상무(왼쪽), 박주영 슈퍼바이저(오른쪽). 사진 한국맥도날드 반응은 폭발적입니다. 한국맥도날드에 따르면 브랜드 스토리북은 출간 한 달 만에 3쇄에 들어갔어요. 기업 사사가 서점에 정식으로 유통된 사례는 드문드문 있지만 3쇄를 찍은 건 처음이라고 해요. 마케터나 외식업에 종사하는 업계 관계자뿐 아니라, 서점에서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정독하는 독자들도 많다고 해요. 박주영 한국맥도날드 슈퍼바이저는 “한국 프랜차이즈 외식업 발전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고, 무엇보다 맥도날드를 좋아하고 아끼는 팬들이 찾는 것 같다”며 “독자들이 남긴 서평과 책 리뷰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본다"고 했어요. 판매 수익금 전액을 'RMHC 하우스(장기 통원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아와 가족이 병원 부지 내에서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제 2의 집)'에 기부한다는 점도 흥행 포인트로 꼽혀요. ━ 40만장 사료를 ‘사람’ 이야기로 엮다 심 상무는 사사를 구성하기에 앞서 각 팀이 가지고 있던 내부 자료를 최대한 끌어모았다고 했어요. “옛날 신문부터 온라인 기사까지 약 40만 장에 달하는 사료를 정리했어요. 200여 명이 집필에 참여했고 제작 기간만 열 달이 걸렸는데, 35년의 역사를 담기엔 다소 짧은 시간이었죠.” 한국맥도날드에는 본사와 직영점, 가맹점을 합해 전국 매장 400여 곳에서 총 1만8000여 명이 근무해요. 35년간 함께한 고객까지 합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추억을 간직하고 있죠. (오른쪽부터) 맥도날드 이태원점 서석봉 크루, 신림점 서유란 크루, 신림점 서문수 점장. 사진 한국맥도날드 잡지사 인턴 시절 낮이고 밤이고 ‘맥카페'에서 카페 라떼를 마셨던 소설가의 추억, 책을 쓸 때 24시간 문을 여는 맥도날드의 덕을 톡톡히 봤다는 한 신문사 편집장의 기억, 초등학생 때부터 평생 해피밀 장난감을 모아 온 수집가의 사연까지. 책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요. 공무원으로 30년 넘게 일하다 8년 전부터 서울 이태원점에서 일하고 있는 맥도날드 최고령 서석봉(82) 크루, 3년만 일하자고 마음 먹고 시작했다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응원으로 13년을 근속한 장애인 크루 서유란씨 등 ‘열린 채용'의 가치를 보여주는 크루들의 인터뷰도 은근히 감동적이었어요. 박 슈퍼바이저는 “현재 192명의 장애인 크루와 567명의 시니어 크루가 재직하고 있다”며 “버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버거를 만드는 사람들의 회사’가 우리의 철학"이라고 했어요. ━ 드라이브 스루・배달…맥도날드가 세운 이정표 맥도날드가 했던 ‘최초의 시도’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재밌어요. 맥드라이브(승차 구매)와 맥딜리버리(배달)가 대표적이죠. 1992년 부산 해운대점에 국내 첫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이 도입됐을 때 진입로를 주차장으로 착각한 고객들이 차를 세워놓고 그대로 가버렸던 해프닝이 벌어졌대요. 2007년 등장한 맥딜리버리는 짜장면과 피자뿐이던 배달 음식 개념을 버거와 커피로 확장했어요. 배달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 리더였던 이훈민 점주는 책에서 “주문 전화를 받는 것부터 간단치 않았고, 딜리버리 구역을 정하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질 정도로 지역 일대를 돌아다녔다"고 회상했어요. 한국 현지화를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과 노력도 비중 있게 다뤘어요. ‘창녕 갈릭 버거’, ‘보성 녹돈 버거', ‘진도 대파 크림 크로켓 버거' 등 특산물을 활용해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한국의 맛(테이스트 오브 코리아)’ 프로젝트는 시작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책 앞부분에 실어 강조했죠. 한국맥도날드가 2021년 출시한 ‘한국의 맛' 1호 버거, ‘창녕 갈릭 버거'. 사진 한국맥도날드 “한국 사회에서 책임 있는 회사로 어떻게 잘 자리 잡을 것인가를 고민해 왔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맛을 찾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로컬 소싱을 강화해 지역사회에 대한 공감도를 높이겠다는 의도도 있었어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었죠.” - 심나리 한국맥도날드 상무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맥도날드의 ‘로컬’ 메뉴 수는 115종에 달해요. 한국의 맛 프로젝트 외에도 오래 사랑받는 제품이 많죠. 불고기버거(1997년), 맥스파이시 상하이버거(2003년), 슈슈・슈비버거(2016년), 맥크리스피(2022년) 등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버거’로 통해요. 최근 한국맥도날드의 무기는 ‘K-컬처’예요. 2021년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 맥도날드를 보랏빛으로 물들인 ‘BTS 세트’, 올해 3월 인기 아이돌 뉴진스와 협업한 ‘뉴진스 버거'는 한국에서 개발해 해외로 수출한 사례죠. 심 상무는 “BTS 세트는 글로벌에서 먼저 하고 싶어 했던 프로젝트”라며 “50개 시장에서 판매했는데, 맥도날드 사상 최초의 시도였다”고 했어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가장 가까이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한국 맥도날드의 무기가 되고 있는 거죠. ━ 곱창 버거, 그기 말이 됩니까? 사진 한국맥도날드 인터뷰 도중 앞으로 어떤 ‘한국의 맛' 제품을 개발할 건지 물어봤어요. 심 상무와 박 슈퍼바이저가 갑자기 제 고향이 어디냐고 되묻더라고요. 저는 “대구”라고 답했죠. 그 순간 인터뷰 현장이 ‘한국의 맛’ 아이디어 회의로 변했어요. “대구의 특산물이 뭘까요?” “사과? 아, 그렇지만 이제 사과를 키우기엔 대구가 너무 더우니까요.” “음, 그럼 곱창은 어때요?” “맞아요. 곱창 버거로 하면 되겠는데” “잠시만요, 곱창은 너무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요?” “...역시 그렇겠죠?” “누구나 좋아하는 보편적인 맛이면서도 한 번 먹고 계속 생각나는 맛이어야 한다"를 결론으로 짧은 아이디어 회의는 끝이 났어요. 신메뉴를 개발하려면 콘셉트부터 원재료 선정, 연구개발, 리뷰, 출시까지 수많은 단계를 거치는데, 버거 하나를 출시하기까지 1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콘셉트에 맞는 원재료, 누구나 좋아하되 특성이 살아 있는 맛을 찾는 게 고민의 핵심이죠. 질긴 식감에 특유의 냄새 때문에 곱창 버거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독자 여러분은 어떤 재료가 떠오르나요? ━ 뱀발: 프리미엄 버거의 습격 올해 5월 한국맥도날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맥도날드 직영점 매출은 전년 대비 14.6% 증가한 9946억원을 기록했어요. 가맹점까지 포함하면 매출 규모는 1조1770억원으로 늘어나죠. 1988년 한국에 진출한 후 최대 매출 실적이에요. 드라이브 스루와 배달 등 선제적으로 도입한 서비스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성장세를 끌어올렸다는 평가입니다. 심 상무는 “원재료 가격 상승 등 어려움은 똑같이 겪고 있지만 우리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서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건 좋은 신호로 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업황은 우호적이지 않아요. 엔데믹에도 외식업계는 물가 상승 복병을 맞이해 특수를 미처 누리지 못하고 있죠.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피자·햄버거·샌드위치 및 유사 음식점업의 외식산업 경기동향지수는 87.28을 기록했어요. 경기동향지수가 100 미만이면 경기가 둔화한 상태로 해석합니다. 시장 경쟁도 과열 양상을 띠고 있어요.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쉐이크쉑’, ‘파이브가이즈’, ‘슈퍼두퍼’ 등 고급 수제 햄버거 브랜드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거든요. 심 상무는 “새로운 브랜드가 계속해서 한국 시장에 들어오는 것은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버거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굉장히 커지는 동시에 한국 시장 자체도 성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석했어요. 그는 고급 수제 버거와 맥도날드는 포지셔닝이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어요.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버거를 제공한다’는 게 맥도날드의 가치이자 철학이라는 거죠. 어쩌면 그게 35주년 브랜드북이 팔리는 이유 아닐까요? 비크닉 테이블마다 헤드폰과 엽서·연필...오픈런 '성수동 카페'의 비밀 [비크닉] 머리 망가지고 땀띠 나도 '헤드폰 패션' 포기 못하는 이유 [비크닉] 날개 없애고 목에 걸고…선풍기 바람 바꾼 게임체인저 [비크닉] '기저귀' 런웨이, 언더붑도 히트 쳤다…자크뮈스의 인스타 활용법 [비크닉]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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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다 헤드폰과 엽서·연필...오픈런 '성수동 카페'의 비밀 [비크닉]
식당이나 카페 문을 열었을 때 지나친 소음에 문을 닫고 되돌아 나온 경험이 있나요? 시각적 즐거움도 좋지만, 청각적 편안함을 주는 공간을 찾는 이들이 많아요.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만큼이라도 ‘조용한 쉼’을 원하기 때문이죠. 소리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들이 주목받고 있다. 한 방향을 바라보도록 설계된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 사진 바이닐성수 그래서일까요. 최근 이렇게 ‘소리’에 공을 들인 공간들이 늘고 있어요. 오래된 LP 음반을 트는 카페나, 음악 선곡에 공을 들인 뮤직 바(BAR) 같은 곳이죠. 영화관 중에서도 유독 음질에 집중한 사운드 특화 극장이 있는가 하면, 휴식을 위해 찾는 리조트에 소리로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기도 해요. 오늘은 이렇게 소리가 주인공인 공간들을 둘러보고, 지금 왜 이런 공간들이 주목받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 음악 들으며 ‘필담’ 나누기 서울 성수동 뚝섬역 인근의 ‘바이닐 성수’는 주말이면 긴 웨이팅 리스트가 생길 정도로 인기인 카페예요. 하지만 여느 카페와는 다른 점이 있어요. 커피나 음료를 팔고,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 즐기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공간에 ‘적막’이 흐른다는 점이죠. 비결은 자리마다 있는 턴테이블과 헤드폰입니다. 모두가 창가를 바라보고 나란히 놓여있는 의자들도 한몫하고요. 이곳에 입장하는 손님들은 2시간 동안 자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어요. 뒤쪽에 진열된 LP판 중에서 마음에 드는 음반을 골라 자리에서 헤드폰으로 ‘자신만의 BGM(배경음악)’을 틀어놓고 감상하는 시스템입니다. 모두가 헤드폰 속 음악에 집중하다 보니, 어떤 카페보다도 조용한 것이 특징이에요. 자리마다 놓여있는 턴테이블을 2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다. OST부터 K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반이 구비되어 있다. 유지연 기자 주로 커플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곳만의 특별한 소통 방식도 있어요. 바로 카운터에 마련된 작은 엽서와 연필이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는 헤드폰을 낀 채 ‘필담’을 나누면 되는 거예요. 물론 혼자 와서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요. 이곳은 성수동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평일에만 평균 200여명, 주말이면 하루 400여명이 찾는다고 해요. 오전 11시 오픈하자마자 100여석의 좌석이 빠르게 차 긴 대기 줄이 늘어서는 것은 물론이고요. ━ 서촌의 숨겨진 음악 감상실 서울 경복궁 인근의 ‘온그라운드 뮤직바’는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한 ‘힐링’ 장소로 제격이에요. 서촌 작은 골목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도로변 카페 건물 뒤로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있어요. 간판도 없어서 아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스피크 이지 바’ 같은 곳이죠. 지하 계단을 따라 들어간 내부도 비밀스러운 아지트 같은 분위기에요. 누군가의 응접실에 초대된 듯 아늑하면서도, 어른의 공간 같은 세련된 멋이 흘러요. 실제로 이곳은 조병수 건축가의 건물로, 처음부터 일반에 공개된 1층 카페와 달리 지하 1층 음악 감상실은 개인적으로 음악을 듣는 장소로 쓰려고 만들었다고 해요. 벽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스피커를 두고, 또 한쪽 벽에는 즐겨 드는 LP 음반으로 가득 채웠죠. 약 2년 전부터 개방되면서, 누구나 들러 편안하게 음악을 듣고, 음료도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이 됐어요. 간판없는 서촌의 음악감상실 온그라운드 뮤직바 전경. 사진 온그라운드 뮤직바 온그라운드 뮤직바는 정적이 감도는 조용한 공간은 아니에요. 오히려 음악으로 꽉 찬 공간이죠. 하지만 좋은 스피커로 재생되는 질 좋은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우다 보니, 다른 소리가 차단되는 효과가 있어요. 간접조명만 드문드문 켜져 있는 낮은 조도와 건축가의 응접실답게 르 꼬르뷔지에·임스 등 거장 디자이너의 아트 피스들에 몸을 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죠. ━ 영화를 듣다 ‘보기 위한’ 영화관이 아니라 ‘듣기 위한’ 영화관도 있어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사운즈 5층의 ‘오르페오’가 그곳이죠. 음향을 기반으로 다양한 공간을 운영하는 ‘오드(ODE)’가 만든 음악 콘텐트 전문 상영관이에요. 오드는 하이엔드 및 라이프스타일 오디오를 국내에 소개하고 있는 사운드 플랫폼입니다. 160년 전통의 그랜드 피아노 제조사 스타인웨이앤드선스와의 합작으로 화제가된 덴마크 하이엔드 시스템 스타인웨이 링돌프로 구성되어 있는 오디오 시스템. 사진 오르페오 약 30여석으로 구성된 소규모 영화관 오르페오의 강점은 ‘음향’입니다. 덴마크 하이엔드 사운드 시스템 스타인웨이링돌프를 비롯해 무려 34개의 하이엔드 스피커가 공간 곳곳에 자리하고 있죠.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이 몸을 관통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야말로 압도적인 ‘사운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죠. 김형민 오르페오 담당자는 “외부와 차단된 채 소리에 몸을 맡김으로써, 몰입과 집중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합니다. 오르페오는 일반 영화관처럼 상영 시간표가 있고, 인스타그램이나 카카톡을 통해 예약한 뒤 방문하면 됩니다. 물론 음향이 중요한 작품들이 주로 상영되죠. 최근에는 영화 음악의 거장, 엔리오모리꼬네의 생애를 다룬 ‘엔리오, 더 마에스트로’가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어요. ━ 스마트폰은 잠시 쉬어도 좋습니다 잘 쉬기 위해 소리를 이용하는 곳도 있어요. 강원도 정선의 웰니스(wellness·건강) 리조트, 파크로쉬는 리조트 안에 오디오 룸을 따로 구성해뒀어요. ‘글라스하우스’로 불리는 이곳은 미국 카네기홀 등 세계적 콘서트홀에서 사용하는 메이어사운드 스피커를 설치해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소리 속에서 진짜 ‘쉼’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공간이죠. 전면 통유리를 통해 주변 자작나무 숲을 감상하면서 공간을 꽉 채운 음악 속에서 사색을 즐기는 투숙객들이 많다고 합니다. 글라스하우스는 건강한 쉼을 위한 '사운드 테라피' 공간이다. 사진 파크로쉬 한동안 화려한 인테리어의 공간들이 사람들을 모았다면, 이제는 깊은 소리의 공간들이 사람들을 모으고 있어요. 시각 못지않게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음향의 효과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거죠. 시각적 화려함이 흔해진 만큼, 소리가 좋은 공간을 만드는 차별화 포인트가 됐어요. 또한 이런 소리 특화 공간은 집중력 저하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한 요즘 같은 시대에 의미를 더합니다. 요한 하리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각종 소셜미디어와 멀티 태스킹 등으로 집중력 저하가 사회적 유행병이 되었다고 지적해요. 이 책이 지금 화제가 되는 이유는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가 시시각각 타들어 가는 집중력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죠. 소리 특화 공간은 다시 말해 소리가 없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공간을 채우는 소리를 ‘수신’하기 위해 다른 소리를 ‘발신’하지 않고 오롯이 집중한다는 점에서요. 또한 늘 손을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도 잠시 쉬게 할 수 있죠.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따로 ‘인증샷’을 찍을 수도 없으니까요. 소음 가득한 도심에서 드문 집중과 몰입, 정신적 쉼을 얻어갈 수 있는 소리 특화 공간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관련기사 머리 망가지고 땀띠 나도 '헤드폰 패션' 포기 못하는 이유 [비크닉] 날개 없애고 목에 걸고…선풍기 바람 바꾼 게임체인저 [비크닉] '기저귀' 런웨이, 언더붑도 히트 쳤다…자크뮈스의 인스타 활용법 [비크닉]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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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키워놓고 왜 떠났을까…'배민' 만들고 전설 된 그의 메일엔 [비크닉]
‘평생직장 따윈 없다. 최고가 되어 떠나라’ 최근 배달의민족 창업자 김봉진 의장이 회사를 떠나면서 사내 e메일을 통해 남긴 말입니다. 이 말은 회사 빌딩에 적혀있는 슬로건 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마지막까지 재치있는 명언을 남기는 게 브랜딩의 대가답다. 그런데 배민은 어떻게 되는 거지… 회사를 나가선 무엇을 한다는 걸까.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했고요. 김 의장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배민을 만들었는지 따라가 보면 그 속내를 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브랜드와 함께 떠나는 설레는 여정 비크닉, 이번 주엔 배민 공화국을 만든 김봉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 경영하는 디자이너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립자. 사진 중앙일보 흙수저 출신 창업 신화, 스타트업의 전설…김봉진 의장을 수식하는 단어는 많습니다. 그중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쓰던 말은 ‘경영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저 디자이너를 전공한 경영자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이 단어에 경영철학이 숨겨져 있습니다. 배민은 사업 초기부터 소비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브랜딩에 힘썼는데요. 사용자 경험(UX)과 사용자 환경(UI)을 최대한 직관적으로 만들었고, 특유의 글씨체를 통해 개성을 드러냈어요. 그는 많은 인터뷰에서 “디자인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삶의 풍요로움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어요.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아니라 배달 앱을 창업했느냐고요? 사실 과거에 인테리어 가구 사업을 했지만 실패를 했습니다. 색다른 디자인으로 관심을 모았지만, 사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을 모두 날려버렸죠. 그때 생각했대요.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라도 사업을, 경영을 잘해야겠구나. 배민은 이 가구 사업을 접고 지인들끼리 모여 만든 회사에서 프로젝트 성으로 시작한 거였습니다. 2010년 아이폰이 막 알려질 때였는데, ‘첨단 IT 시대에 왜 음식 전단지는 손수 돌리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음식점 배달 전화번호를 디지털로 옮기는 앱을 만든 거죠. ━ 배민다움의 탄생: 타깃을 좁혀라 2013년 배달의민족 앱 모습. 사진 배달의민족 회사 소개서 그냥 재밌어서 만든 이 어플은 출시 이틀 만에 당시 경쟁자였던 배달통을 꺾고 1등을 합니다. 당장 개발자들 사이에서부터 소문이 자자했대요. 뭔가 독특한 게 나타났다고요. 신기한 게 초창기 배민 앱을 보면 지금과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삐뚤삐뚤한 글씨도, 짜장면 배달 철가방을 든 캐릭터도 익숙하죠. 13년간 자기만의 색깔을 지켜온 겁니다. 바로 이 배민다움이 배달의민족 성공의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전략이 궁금하시죠? 사업 초기 그는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서비스를 실패한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타깃을 계속 좁혀 나갔습니다. 브랜드 마케팅에서 타깃 설정은 중요하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그의 타깃론은 조금 달라요. 시장을 얼마나 좁히냐면 1등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샴푸 시장에서 1위 하기가 힘들잖아요. 점점 구체화 시키는 겁니다. 비듬 시장으로, 그것도 어려우면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그것도 1등이 어려울 것 같으면 고등학생으로 더 좁히죠. 서울지역 2학년 남자 고등학생 중 가계소득 상위 20% 이상 가구는 확실히 잡겠다! 이렇게요. 그래야 조직에 자신감을 주고 타깃을 휘어잡을 수 있다고요. 배민이 배달음식은 누가 시키는가 살펴보니 회사에서는 막내, 친구들 사이에선 만만한 친구가 하더래요. 김 의장은 그들의 첫 타깃을 20대, 홍대 문화에 익숙한, 성격은 친근하고 만만한, 무한도전에 나올법한 등으로 페르소나를 만들었습니다. ━ 풋! 웃기거나, 아~ 감동적이거나 그들에게 먹히는 건 바로 B급감성이다! 생각한 그는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일관성 있게 보여줬습니다. 그가 지난 10여년 간 가장 공들인 것이기도 합니다. 배달의민족 잡지 광고 사례. 사진 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 TV광고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편. 사진 우아한형제들 배민 잡지 광고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여러 고심 끝에 하얀 백지 위에 ‘잘 먹고 한 디자인이 때깔도 좋다’ 텍스트만 한 줄을 넣었대요. 이걸 본 잡지사에서 전화가 왔죠. ‘이거 최종 파일 맞아요?’ 하고요. 잡지 광고는 지금까지도 배민다움을 보여주는 하나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중들에게 배민을 본격적으로 알린 건 TV 광고였습니다. 배우 류승룡이 출연한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CF로 대박을 냈죠. 사실 이 CF는 광고대행사가 본 PT 때 발표하지 않은 쿠키 영상의 일부였는데, 김 의장이 ‘이게 더 재밌는데?’라며 선택한 거라고 합니다. 이후에도 배민은 배민 신춘문예,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 등 유쾌한 브랜드 마케팅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의장이 마케팅할 때 고수하는 원칙이 있대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거나 아~하고 감동을 주거나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요. 내부 구성원들에게도 배민다움을 심었어요. 예를 들면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 우아한형제들 내부 규율 같은 건데요. 9시와 9시 1분은 다르다, 쓰레기는 먼저 보는 사람이 줍는다… 굉장히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내용이 많아 화제가 됐죠. 그는 지난해 사내 유튜브를 통해 “다른 회사의 사내 비전이나 목표를 보면 ‘세계 1등 기업이 되자’처럼 추상적인 경우가 많지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썼다”면서 “논란도 있는 것을 알지만 문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좋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배민만의 문화라고 자부한다”고 밝혔어요.물론 배민의 눈부신 성공에는 명과 암이 있어요.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할 때는 우리가 게르만 민족이냐는 비판도 나왔죠. 배달비 인상 주범이라는 비난도요. ━ 그가 남기고 간 것 김 의장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있어요. 업계에선 회사가 그만큼 안정화됐다는 점을 꼽고 있어요. 하지만 13년 동안 탄탄하게 만들어온 브랜드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고요. 지난해 배민은 4년 만에 흑자전환을 했는데, 영업적으로도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한듯합니다. 앞으로 그는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해요. 그가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을 보면 스타트업 양성에 힘을 쏟을 것 같기도 하고요. 김봉진 의장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 보니 결국 브랜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다움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배민다움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은 창립자가 사라져도, 회사가 바뀌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요. 비단 브랜드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나답게 사는 것은 중요해졌잖아요. 나만의 행복을 느끼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그는 너무 좋은 롤모델인 것 같습니다. 그가 한 강의에서 남긴 말을 공유하며 마칠게요. “경쟁자를 의식하고 견제하다 보면 결국 다 비슷해져요. 내 안에서 찾은 이야기에 집중해보세요. 그래야 차별화가 가능하고 오래 유지할 수 있어요. ”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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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BTS RM도 왔다…"韓 아닌 것 같다" 난리난 의정부 명물 [비크닉]
의정부음악도서관 전경. 박이담 기자 경기도 의정부시를 대표하는 게 뭘까요? 의정부고 학생들의 졸업사진? 이젠 그에 못지않게 유명한 상징물이 있습니다. 바로 의정부미술도서관과 의정부음악도서관입니다. 지난해 방문객은 합해서 약 60만명. 전문 도서관임에도 여느 공공도서관의 두 배가 넘는 이들이 이곳을 찾았어요. 유퀴즈도 찍고, BTS의 RM도 다녀간 곳이죠. 외지에서 온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우리나라가 아닌 것 같다”, “의정부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며 칭찬 일색 후기를 남기고 있죠. 오늘 비크닉에선 두 도서관 건립 프로젝트를 담당한 27년 차 사서, 박영애 의정부시 도서관과 과장을 만나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박영애 의정부시 도서관과 과장. ━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간단한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공공도서관은 1901년 세워진 부산시립도서관이에요. 일제강점기에 서울과 인천 등에 공공도서관이 건립되죠. 하지만 일제 통치의 선전의 장으로 활용됐고, 이용할 수 있는 사람도 한정적이었어요. 해방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전국 곳곳에 공공도서관이 만들어집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수는 1172곳에 달하죠. 공공도서관이 발달하면서 일부 지역에 정보나 과학 분야에 특화한 도서관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술 분야 특화 도서관을 만든 곳은 의정부시가 처음이었어요. 2019년 의정부미술도서관, 2021년엔 의정부음악도서관이 문을 열어요. 의정부미술도서관 내부 전경. 박이담 기자. ━ #기존 도서관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 문법 박 과장은 두 도서관을 기획하기 위해 30개 도시 80여개 도서관을 탐방했다고 해요. 그중 일본의 한 공공도서관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습니다. “당연히 우리 도서관 구조와 비슷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자료실 열람실 구분 없이 큰 공간만 하나 있었죠. 어린이자료실과 종합자료실의 구분조차 없었어요. 심지어 입구에선 음악 공연까지 열리고 있었어요” 거기에서 착안해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로 구성합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며 만남과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 열린 공간이란 의미죠. 두 도서관 건물 전체가 뻥 뚫려있어요. 벽과 칸막이는 최소화했죠.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원형계단. 박이담 기자. 미술도서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원형 계단이에요. 도서관 중앙에서 1층부터 3층까지 연결하며 모든 공간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했어요. 음악도서관에서도 1층 오픈스테이지와 2층을 잇는 계단은 두 층을 연결하는 동시에 관람석으로 사용됩니다. 도서관에서의 경험을 확장하는 공간 문법이에요. “벽과 칸막이로 나뉜 열람실을 생각해보세요. 주변과 단절된 채 가져 온 책만 보며 제한적인 경험만 하게 됩니다. 열린 공간에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발견과 만남이 이뤄져요. 동화를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 그리고 미술 전시회와 음악 연주회까지 말이죠.” ━ #서점처럼 책을 돋보이게 진열하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정면 서가. 박이담 기자. 두 도서관은 책을 단순히 모아둔 게 아니라 돋보이게 전시해놓은 느낌을 줍니다. 책등만 보이는 보통 서가와 달리 표지가 보이도록 놓는 정면서가 덕분이죠. 단점이 있긴 해요. 수십권 꽂을 공간에 두세권만 비치할 수 있거든요. “사람들이 도서관보다 서점 가는 걸 즐기잖아요. 대형서점을 돌아다니면서 그 이유를 찾았죠. 서점은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 표지가 눈에 띄게 배치해요. 서점처럼 책이 돋보이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서가에 조명을 설치한 것도 어떻게 하면 책이 더 눈에 띌까 고민한 결과예요. 도서관 창문도 크게 만듭니다. 그 앞에는 뒷면이 뻥 뚫린 서가를 배치했어요. 자연 채광이 그대로 들어와 책을 빛내도록 한 거죠.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창문 앞 서가. 박이담 기자. ━ #이런 경험을 제공한 도서관은 없었다 이용자 경험에도 신경 썼습니다. 푹신한 바닥에 편안히 앉아 책을 볼 수 있도록 카펫을 깔았어요. 발소리를 줄여주는 효과는 덤이었습니다. 미술과 음악이란 주제도 색다르게 체험하게 만들었어요. 미술도서관 1층 한가운데 영국 현대미술 작가 데이비트호크니의빅북을 펼쳐놨어요. 세로 1m, 펼치면 가로 1.4m에 달하는 이 책의 가격은 무려 400만원. 관람객들은 책을 통해 미술 작품을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죠. 음악도서관에는 지역 정체성을 담았어요. 미군 부대가 있던 의정부시는 힙합, 재즈 등 흑인음악이 발달해 정기적으로 블랙뮤직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합니다. 이 페스티벌과 관련된 음악 앨범을 전시하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어요. 도서관 벽면은 흑인음악의 문화이기도 한 그래피티로 가득해요. 의정부음악도서관 벽면에 꾸며진 그래피티 작품. 박이담 기자. #전국 도서관에서 가장 비싼 물품이 여기에 두 도서관을 만드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고 해요. 공공도서관은 기획부터 개관까지 보통 4년 정도 걸린대요.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총 6년이 소요됐습니다. 기획 및 설계 단계에만 2년을 더 투입합니다. 도서관의 본질인 책을 중심으로 미술에 대한 경험을 확장해나갈 수 있도록 만드느라 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탄생한 대표적인 공간이 지역 신진작가들의 작업 공간인 오픈 스튜디오에요. 이용객은 유리 벽을 통해 예술작품 만드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어요. 여기서 탄생한 작품으로 기획전시를 열기도 합니다. 방탄소년단의 멤버인 김남준(RM) 등 유명인사가 기증한 미술 도서를 모아 꾸민 공간도 의정부 미술도서관에선 빼놓을 수 없는 곳이죠. 의정부음악도서관에는 어쩌면 전국 도서관 물품 가운데 가장 비쌀지도 모르는 특별한 소품이 있어요. 바로 자동 연주 기능까지 갖춘 ‘스타인웨이 피아노’에요. 최고급 피아노의 대명사로 음색이 밝고 화려하기로 유명하죠. 가격은 무려 2억4000만원. 방문객들에게 고품격 음악을 선사하겠다는 의지로 꾸준히 지역 의회를 설득해 얻어낸 거죠. ━ #슬세권에 이렇게 멋진 도서관이 있다면 의정부음악도서관에서 음악 공연이 열리는 오픈스테이지. 박이담 기자. 두 도서관을 만든 박 과장은 올해 초 ‘55회 한국도서관상’을 수상했어요. 도서관 발전에 공적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를 치하하는 상으로 도서관계에선 최고 권위의 상이에요. 전국적으로 주목받은 특화도서관을 만든 공로를 인정받은 거예요. “잘 차려입고 멀리 성수동까지 가지 않아도 편하게 슬리퍼 신고 동네에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 공공도서관이 앞으로 지역사회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하이브리드 공간이 돼야해요. 다양한 콘텐트와 가치를 어떻게 담고 배치할지까지 열렬히 고민해야 합니다.” 의정부 미술·음악도서관이 유명해지면서 박영애 과장도 바빠졌다고 해요. 전국 지자체를 돌며 새로운 도서관을 만든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거든요. 누구나 집 앞 독특한 도서관에서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박이담 기자 park.id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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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까지 터진 '조선 나이키'…힙한 MZ, 왜 이 운동화 꽂혔나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갑은 얇지만 사고 싶은 것은 넘치는 박영민입니다. 얼마 전 서울 홍대 거리를 걷다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신은 스니커즈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큼직한 F자 모양의 로고, 한물간 운동화인 줄 알았는데 돌고 돌아 다시 유행하리라곤 생각을 못 했거든요. 창립 이래 40여년간 한 번도 생산을 멈춘 적이 없었고, 젠Z 세대가 가지고 싶어 하는 힙한 운동화로 변모했습니다. 국산 스포츠화 브랜드 프로스펙스 이야기입니다. 오늘 비크닉에선 프로스펙스가 나이키와 아디다스 틈바구니에서 잊히지 않고 끈질기게 버틴 비결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 조선 나이키, 미제 스니커즈를 인수하다 사진 중앙DB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 적에 신으셨던 추억의 검정 고무신♪" 1992~2006년 만화 잡지 소년 챔프가 연재한 검정 고무신엔 60년대 전후 한국인의 생활상이 나옵니다. 구한말 수입된 고무신은 운동화가 유통되기 시작한 70~80년대까지 국민 신발의 지위를 지켰어요. 메이커 운동화를 가지지 못해 한이 맺힌 학생들이 하얀 고무신에 나이키 마크를 새긴 '조선 나이키'가 유행하던 시절이죠. 국내 고무신 연간 생산량은 1950년(16만 켤레)부터 1960년(1542만 켤레)까지 10년 만에 9548% 성장했어요. 한국전쟁으로 전국에서 피란민들이 몰려들어 노동력이 집중됐고, 원료를 확보하기에도 유리한 항구 도시 부산에서 고무신 공장들이 쑥쑥 큽니다. '왕자표' 고무신을 만들던 국제고무공업사도 그중 하나였어요. 1970년 후반부터 미국·유럽에서 유행하던 운동화가 수입되면서 고무신의 시대가 서서히 저뭅니다. 고무신 기업들은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세계적인 신발 업체의 OEM(주문자생산방식) 기업으로 탈바꿈했죠. 국제고무공업사도 국제화학, 국제상사로 사명을 바꾸고 포니·수페르가 등 운동화 생산에 뛰어들었어요. 프로스펙스와의 인연이 시작된 건 이때입니다. 위탁 생산하던 미국 운동화 브랜드 '스펙스(Specs)'를 인수해 리브랜딩했어요. 브랜드명에 프로(Pro)를 붙여 '프로 규격(Pro-Specs)'이란 새로운 제품을 직접 생산하기 시작한 거죠. ━ 중국·대만·인니로…신발 산업 축이 바뀌다 프로스펙스의 상징인 F자 로고는 우연히 탄생했다. 1980년대 미국 스펙스의 창업자가 방한했을 때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의 로고를 보고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고, 이 의견을 반영해 비상하는 학을 모티브로 만든 것이 지금의 로고로 이어졌다. 사진 프로스펙스 전성기는 80년대 후반이었어요. 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 공식 후원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국민 운동화로 이름을 날렸죠. 수출 시장에서 20년 가까이 내공을 쌓은 덕에 나이키·아디다스 등 외산 브랜드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았어요. 기술력이 뛰어난 '메이드 인 코리아' 운동화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았을 때니까요. 신발산업진흥센터는 "현재 세계 신발 제조 시장 점유율 20%를 기록 중인 대만 파우첸도 당시엔 국제상사의 기술력을 탐낼 정도였다"고 했어요. 호시절은 길지 않았습니다. 90년대부터 국내 신발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기 시작했거든요.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1953년 67달러 수준이었던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90년 약 886% 성장한 6601달러를 기록해요. 임금 수준이 높아지면서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이란 승부수가 사라졌죠. 60년대 주요 신발 생산국 일본의 인건비가 상승하자 한국이 대안으로 부상했듯, 중국·대만·베트남·인도네시아로 신발 산업의 축이 이동합니다. 회사 내부적으로 부침도 여러 차례 겪습니다. 1986년엔 모기업인 국제그룹이 강제로 해체되면서 한일합섬에 매각돼요. IMF 시기엔 한일합섬이 부도나면서 무려 8년간이나 법정 관리에 들어간 끝에 2007년 LS그룹에 인수됩니다.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뀐 것이죠. 진짜 위기는 따로 있었어요. 저가 국산 운동화 이미지에 사람들이 프로스펙스를 외면하기 시작한 거예요. '프로스펙스 살 바에 돈 좀 더 들여 나이키·아디다스 사겠다', '신고 다니기 부끄럽다'는 인식도 생겨요. ━ '프로스펙스 오픈런', 말이 돼? 프로스펙스가 지난해 9월 서울 성수동에 오픈한 팝업스토어 모습. 레트로 체육사 콘셉트로 이목을 끌었다. 사진 프로스펙스 그렇게 점점 잊힌 프로스펙스가 다시 주목받은 건 지난해 9월. 서울에서도 가장 힙하다는 성수동에서였어요. 프로스펙스 팝업스토어에 2주간 8000여명이 찾아오는 진풍경이 벌어졌죠. 한시적으로 판매한 옷과 신발은 출시되자마자 완판됐고요. 11월 서울 여의도 더현대에 오픈한 팝업스토어에도 70년대풍 운동화 한정 판매에 5000여 명이 몰렸어요. 신발을 사기 위한 오픈런 행렬도 이어졌죠. 국산 운동화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이 이례적이란 평가도 나왔어요. 소비자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지난달 21일 서울의 모 직영점을 찾았어요. 마침 신발을 사는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더니 "(프로스펙스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가성비도 좋고 신어 보니 편해서 샀다(김의진, 22세)"고 했어요. 또 다른 소비자도 "가격도 괜찮고, 레트로한 느낌이 평소에 즐겨 입는 스포티한 트레이닝 룩과도 가볍게 잘 매칭할 수 있을 것 같아 샀다(이사라·가명, 25세)"고 했어요. ━ 오래된 것이 신선하다, 레트로의 역설 프로스펙스가 지난해 출시한 70년대풍 레트로 운동화. 사진 프로스펙스 사람들이 추억의 신발인 프로스펙스에 다시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시절 청년기를 보낸 중장년층보다, 10~20대 청년 소비자들에게 더 열렬한 지지를 얻는 까닭은요. 저는 두 가지 이유를 떠올렸어요. 레트로 열풍과 소비 흐름의 변화입니다. 젊은 층에 42년 된 레트로 브랜드는 새로워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감성이 재밌거든요. 오히려 그 시절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신선하죠. LP 레코드, 아케이드 게임 등 슬로우 테크에 열광하는 트렌드와도 연관이 있어요. 프로스펙스는 2018년 젊은 층의 레트로 취향을 잡기 위해 과거 인기 제품을 복각한 오리지널 라인을 선보입니다. 2020년부턴 13년 만에 'F' 로고를 다시 쓰고 있죠. 프로스펙스 홈페이지에서 가장 판매율이 높은 제품들. 대체로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사진 프로스펙스 공식 홈페이지 운동화 시장의 복고 열풍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아디다스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4% 증가한 204억 달러(약 26조6000억원)를 기록했는데, 복고풍 운동화 '스탠스미스'와 '슈퍼스타'가 역주행한 것이 보탬이 됐다는 평가예요. 가성비를 추구하는 가치 소비가 늘어난 점도 프로스펙스 같은 레트로 운동화의 인기 요인이에요. 홈페이지에서 제일 판매율이 높은 신발들의 가격은 대체로 5만원에서 10만원 사이예요. 경기 불황으로 소비 심리가 쪼그라든 틈에 '가성비 운동화' 시장을 잘 공략한 것이죠. 예전엔 브랜드명만 보고 제품을 샀다면, 이젠 질 좋고 합리적인 가격의 상품을 사는 시대가 온 겁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 공격적 투자를 하는 명품과 가방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는 스트릿 캐주얼복 시장, 그리고 신소비를 진작하는 운동화 시장이 성장을 주도할 전망"이라고 내다봤어요. ━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 3년간 LS네트웍스 브랜드 사업(프로스펙스) 실적 추이 올해 3월 LS네트웍스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프로스펙스를 운영하는 브랜드 사업 매출은 지난 3년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1497억원→1651억원→1714억원) 다만, 같은 기간 영업손실 폭은 줄었지만 아직 적자를 유지하고 있어요. (영업적자 283억원→ 94억원→103억원) 일단 프로스펙스 하면 떠오르는 대표 상품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나이키는 조던·에어포스·에어맥스, 아디다스는 슈퍼스타·삼바·가젤이 떠오르지만, '프로스펙스=이것'이 아직 없어요. 나이키가 조던 운동화를 열심히 키워서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했듯, 프로스펙스도 대표 제품을 키우는 게 시급해요. 주인이 두 번 바뀌는 와중에도 40여년을 꾸준히 명맥을 이어 온 참을성, 꺾이지 않는 마음만큼은 인정합니다. 최근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지키려는 노력도 하고 있어요. 프로스펙스의 40년 역사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담은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이름의 브랜드북을 출시했죠. "프로스펙스가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포츠 브랜드라는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십 년 동안 한국 대표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유지해온 전통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중에서 국산 운동화의 마지막 자존심, 프로스펙스의 부활을 한 번 기대해 봐도 좋을까요? ━ 뱀발🐊: 한국인 발의 평균 사진 언스플래시 프로스펙스의 역사를 돌아보면 아쉬운 순간이 있어요. 1990년대 대학가 농구붐이 일면서 농구화로 마케팅에 성공했지만, 이때 제품의 최대 치수를 275mm로 해버리는 실수를 합니다. 발 치수가 275mm를 초과하는 ‘발 큰이’들은 프로스펙스가 아닌 다른 브랜드 농구화를 살 수밖에 없었대요. 현재는 제품에 따라 최대 290mm까지 나오지만요. 한국인의 평균 발 길이는 몇 mm일까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인체 표준정보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을 통해 5~6년 주기로 이를 조사합니다. 사이즈 코리아(Size Korea)에서 자세한 데이터를 볼 수 있죠. 2020~2021년 8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세 이상 한국 성인의 평균 발 길이는 240mm로 집계됐어요. (남성 253.73mm, 여성 232.18mm) 남녀를 통틀어 모집단 9595명 중 최댓값은 297.1mm, 최솟값은 187mm로 나타났죠. 눈여겨볼 점은 양발의 길이가 다르다는 거예요.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 남성의 발 크기는 247.4mm(오른발)·247.6mm(왼발), 여성은 229.6mm(오른발)·228.1mm(왼발)로 나타났어요. 이 통계가 맞는다면 남성은 평균적으로 미세하게 왼발이 더 크고, 여자는 오른발이 더 크대요. 재밌는 사실이죠? 비크닉 "바지 속 비친다" 논란 이겨냈다…요가에 진심이면 생기는 일 [비크닉] 꺽꺽 소리내 울던 자립준비청년…그 속 얘기, 양말이 되다 [비크닉] 커피 머신에서 콜드브루가 나온다고? 캡슐 커피의 진화 [비크닉] 루이뷔통도 반했다…외면받던 '목욕탕 샌들'의 변신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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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꺽 소리내 울던 자립준비청년…그 속 얘기, 양말이 되다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목소리, 'Voice Matters(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 "내 손을 잡아", 자립준비청년이 듣고 싶었던 말 영화 '그래비티'는 10년 전 개봉,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휩쓸며 우주 영화 새 장을 열었습니다. 우주를 탐사하던 라이언 스톤 박사가 사고로 폭파된 인공위성 잔해와 충돌, 우주 미아가 돼 표류하며 겪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잃고 일상과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낀 스톤은 고요한 우주를 갈망했지만 재난을 만나며 역설적으로 나와 타인을 이어줄 관계, 끌어당김(gravity‧중력)의 가치를 깨닫게 되죠. 이 영화에 영감을 받아 나온 프린팅 티셔츠가 있습니다. '내 손을 잡아(Hold my hands)'라는 이름의 이 티셔츠는 18세이면 독립해야 하는 ‘열여덟 어른’, 어느 자립준비청년이 디자인한 겁니다. 한 자립준비청년이 영화 '그래비티'를 보고 영감 받아 디자인한 '내 손을 잡아(Hold My Hands)' 프린팅 티셔츠. 사진 소이프 자립준비청년은 보육원·공동생활가정·위탁가정 등 시설에서 살다 독립한 청년입니다. 보호 아동은 국가가 정한 보호 종료 연령인 만18세(본인 의사에 따라 만 24세)에 시설에서 나와 독립해야 하죠. 티셔츠를 디자인한 이 친구 역시 6년 전 자립을 목전에 준 보호 아동이었습니다. 세상에 홀로서기보다 두려운 건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단절이었어요. 삶의 방향타가 돼야 할 학교 선생님조차 이유 없는 차별적 언행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억울함과 분노, 두려움 등 부정적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그는 봉사활동을 하며 연을 맺은 고대현 소이프 대표이사 앞에서 꺽꺽 소리 내 울었죠. 이미 보육원 등에서 꾸준히 재능기부를 이어가며 아동‧청소년 자립에 관심을 가져온 고 대표는 보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준 한 해 홀로서기에 나서는 자립준비청년만 약 2500명.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이들의 심리적 고립이 큰 문제로 느껴졌습니다. 자존감을 끌어올려 자신의 쓸모 있음,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활발한 사회 교류의 장을 만들어주고 싶었죠. 일회성 지원이 아닌 꾸준히 곁을 내어주며 스스로 일어설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겁니다. 2017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을 통해 '소이프(Stand On Your Feet)’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자립준비청년이 시설 퇴소 후 살고 싶은 내 집, 나의 삶이 형상화된 양말. "올해 3대 명산 등반에 도전해 볼 것"이라는 한 자립준비청년의 바람이 양말 디자인에 담겨있다. 사진 소이프 ━ 열여덟 어른의 속 얘기, 양말 디자인이 되다 소이프는 디자인 기업입니다. 대학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의류회사 매장 직원부터 구매 전문(MD)까지 두루 경험한 창업자 고 대표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창업 이후 6년 넘게 이 회사와 브랜드를 지탱하는 힘은 자립준비청년들입니다. 소이프는 디자인 아카데미를 꾸려 이들에게 필수적인 교육을 해주죠. 교육 대상자는 신청자를 받아 간단한 면담을 거쳐 선정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꼭꼭 숨겨둔 이들의 마음을 끄집어내는 것. 소이프의 전 제품에는 자립준비청년 각각의 마음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데요. 사람에 대한 상처가 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끄집어내는 데 인색한 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고 대표를 포함한 소이프 구성원은 꾸준히 소통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죠. 이 과정에서 나온 열여덟 어른의 갖가지 속 얘기들이 제품 디자인의 주축이 되는 겁니다. 이를테면 색감이 돋보이는 소이프 대표 5종 제품 양말에는 시설 퇴소 후 살고 싶은 내 집, 나의 삶이 형상화돼 있죠. 자립준비청년이 시설 퇴소 후 하고 싶은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형상화한 양말. "테니스를 치면서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는 한 자립준비청년의 바람이 담겨 있다. 사진 소이프 "매일 친구들과 함께 파티할 수 있는 따뜻한 집이면 좋겠어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등산을 해보려고요. 올해 3대 명산에 도전해 볼 거예요", "테니스를 치면서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요", "카메라를 좋아해요. 올해는 사진과 영상 찍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요", "자립 후 해 본 적 없는데 올해부터 제 손으로 직접 요리도 하고 건강해질 거예요" 속 얘기라 하니 거창할 것 같지만 바람은 평범하고 소소하죠. 누구에게는 그냥 실없이 내뱉을 수 있는 이런 바람조차도 웃으며 당당하게 입 밖으로 꺼내는 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곁을 내어주며 진심으로 목소리를 들어줄 이들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양말 등 소이프 전 제품은 자체 온라인 몰, 네이버 쇼핑을 통해 판매되고 있습니다. 판매 수익금의 5%는 자립정착금으로 쓸 수 있도록 국가가 운영하는 아동발달 지원계좌 디딤씨앗통장에 저축해주거나, 긴급하게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개인 통장에 넣어줍니다. 카카오톡 쇼핑하기 상생 브랜드 발굴 프로젝트 1탄에 합류하게 된 소이프. 사진 카카오 쇼핑하기 캡처 ━ 카카오·한국콜마와 협업도 6년간 꾸준히 업을 이어오며 소이프에게도 기쁜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뜻있는 일에 힘을 보태겠다는 대기업들의 연결도 계속되고 있죠. 올 3월에는 카카오의 커머스 사내독립기업(CIC)이 운영하는 '카카오톡 쇼핑하기'에서 먼저 문을 두드려줬습니다. ESG 경영 목적으로 시작하는 상생 브랜드 발굴 프로젝트 1탄에 소이프도 합류하게 됐죠. 상품 컨설팅뿐 아니라 온라인 판로가 확대되는 등 소이프는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된 셈입니다. 화장품 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인 한국콜마는 해마다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후원금을 내놓고 있는데요. 올 11월께 소이프와 협업해 핸드크림 세트(패키지)를 내놓는다네요. 화장품은 한국콜마가 만들고, 패키지 디자인은 소이프 디자인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최근 서울 시내 한 여대 디자인과에 입학한 비또(닉네임)라는 한 자립준비청년이 맡게 될 예정입니다. 비또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는 한 자립준비청년이 디자인한 '비또의 집' 그림. 퇴소 후 살고 싶은 집을 형상화했다. 사진 소이프 ━ 펭귄 무리가 체온을 나누는 '허들링'처럼 자립준비청년에겐 자립정착금 800만~1000만원이 지급됩니다. 자립수당은 월 40만원씩 최장 5년간 지원받을 수 있죠. 홀로서기에 충분한 돈은 아니지만, 적은 돈도 아닙니다. 고 대표는 "외려 지원금이 독이 되고 있다는 얘기가 아이들(자립준비청년)에게서 나오고 있다"며 "고민이 있을 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들, 언제든 도움과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어른, 고민 동반자가 어쩌면 더 절실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소이프는 꾸준한 정서적 연결을 위해 '허들링'이란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허들링은 남극의 펭귄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무리를 지어 체온을 유지하는 공동체 행동을 말하는데요. 매년 30여 명을 기수제로 운영하면서 이들이 다양한 그룹 활동을 직접 기획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각 기수를 이끄는 리더격인 허들링 커뮤니티 매니저(CM) 중 일부는 자신과 같은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비영리 단체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네요. 소이프 명예 졸업을 한 셈이죠. '빌더'도 지난 6년간 소이프 활동을 지원한 든든한 후원군입니다. 자립준비청년에게 지속적인 교육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동참하는 소이프의 정기회원 격인데요. 매월 회비(1‧2‧3‧5‧10만원 중 택일)를 내면 3개월에 한 번꼴로 소이프 양말, 수건 등 갖가지 리워드(보상) 제품을 보내주는 겁니다. 오는 11월께 출시될 한국콜마와의 협업 제품 역시 이곳 사회공헌 담당자가 소이프 빌더로 꽤 오래도록 활동한 인연 덕분이라네요. 소이프가 운영하고 있는 멘토링 프로그램인 '허들링'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도자기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소이프 ━ "저마다 일어서는 방법은 제각각이죠" 고 대표가 소이프를 끌어오며 크고 작은 일을 만날 때마다 되뇌는 마음의 소리가 있습니다. 기다림입니다. 디자인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중간에 이탈하는 자립준비청년도 곧잘 만납니다.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기는 더욱 어렵죠. 매우 큰 돈은 아니지만, 급히 차비 정도 필요하다 건네줬더니 연락을 일시적으로 끊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채근하거나 마음을 조급히 먹진 않습니다. 한 번씩 집으로 불러 따뜻한 밥을 함께 먹기도 하고, 할 수 있는 한 기다려봅니다.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닌 사람을 만나 연을 맺은 게 먼저이기 때문이죠. 인터뷰가 끝날 무렵 고 대표가 소이프 수건 한쪽에 박힌 이미지를 가리키며 얘기합니다. "넘어지면 바로 벌떡 일어서길 바라죠. 누구나 처음부터 바르게, 꼿꼿이 설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추듯 일어서기도 하죠. 저마다 일어서는 방법은 제각각이잖아요. 일률적으로 보지 말고 각자를 존중해 달라는 아이들의 목소리인 거죠" 자립준비청년의 '자립'을 두고 갖가지 모습을 형상화해 담은 소이프 수건. 처음부터 꼿꼿이 서지 않아도, 춤추며 일어서는 등 자립하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진 소이프 비크닉(Bicnic) 관련기사 단짠은 알고 당근맛은 모른다? 풀무원이 미각교육에 뛰어든 사연 [비크닉]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동백기름 팔던 '6남매 억척맘' 남긴 유산 [비크닉] MZ 사이 입소문난 그 반지…매듭장인 할매들, 세계 넘보다 [비크닉] 자립준비청년 정착금 안전하게 굴리려면? [경제 비크닉] '막강한 능력' 가진 침대 회사…소아 병동 탈바꿈 나선 까닭 [비크닉]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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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머신에서 콜드브루가 나온다고? 캡슐 커피의 진화 [비크닉]
여러분은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예요, 아님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인가요? 저는 아.아! 한국인은 커피의 민족이라고도 하잖아요. 우리나라 커피 소비량이 세계 2위래요. 하루 한 잔으로 끝나는 게 아니란 말이죠. 집에서 편하게 커피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고요. 커피 애호가들의 다양한 취향과 높아진 안목을 충족시키기 위해 홈 카페 기술도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캡슐 커피 머신으로 콜드브루의 맛과 향까지 구현하게 됐다고 합니다. 비크닉 브랜드 소개팅 이번주엔 ‘캡슐 커피머신의 진화’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 캡슐 커피의 역사 캡슐 커피머신은 생각보다 오래전에 발명됐어요. 1976년에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식품기업인 네슬레의 직원 파브르가 만들었습니다. 원두에 압력을 가해 내려 먹는 에스프레소는 원래 이탈리아가 원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스위스 사람이 에스프레소를 캡슐에 넣을 생각을 했을까요? 파브르에겐 이탈리아인 아내가 있었는데, ‘커피는 이탈리아지!’라며 커피 부심을 뽐냈나 봐요. 파브르는 정말 그런지 어디 한번 보자면서 로마에 갔대요. 근데 에스프레소를 먹고 반하게 됐대요. 그리고 이 에스프레소를 더 간편하게 먹는 기계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캡슐 커피 머신입니다. 1976년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명한 네슬레 직원 파블레. 사진 하우스오브스위스(houseofswitzerland.org) 이탈리아 사람들이 에스프레소를 만든 것도 커피를 빨리 먹고 싶어서였어요. 그 전까진 커피 열매를 갈아서 가루를 만들고 그걸 필터에 걸러 먹었으니 너무 오래 걸렸거든요. 근데 이탈리아 사람들, 성격도 급한 걸로 유명해요. 좋아하는 커피를 더 빨리 많이 먹고 싶어서 이탈리아어로 '고속', '빠른'을 뜻하는 ‘에스프레소(espresso)’를 만든 거죠. 그게 지금 커피의 표준이 됐어요. 이탈리아의 커피 부심 아시죠? 커피는 자고로 에스프레소라며 그 독한 걸 벌컥벌컥 마시잖아요. (아메리카노는 커피 취급도 안 하고요.) 이 에스프레소의 진한 풍미를, 스위스의 기술로 간편하게 캡슐에 담은 게 ‘네스프레소’입니다. ━ 캡슐 커피 머신의 진화 1976년 당시 에스프레소 머신의 모습. 사진 네슬레 당시 사람들 반응은 어땠느냐고요? 1970년대에는 캡슐 기술도 부족했고, 전통적으로 내려 먹는 필터 커피가 더 좋다는 인식도 컸다고 합니다. 하지만 네스프레소는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 10년 넘게 캡슐 커피 기술을 연마했죠. 시대는 네슬레 편이었습니다. 커피가 급속도로 대중화되면서 집에서도 간편하게 커피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났거든요. 네슬레는 그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커피를 내려 마시면 원두도 보관해야 하고 직접 갈아야 하고 청소하는 것도 불편하잖아요. 다양한 맛을 먹기도 쉽지 않고요. 커피 애호가들이 늘어날수록 간편하게 먹고 싶다는 목소리도 커졌겠죠. 캡슐 커피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커피가 나오고, 취향과 기분에 맞게 원두를 바꿀 수도 있잖아요. 세계적인 배우 조지 클루니가 네스프레소 광고에서 그랬죠. "뭐가 더 필요해?" 전 세계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커피로 콧대 높은 이탈리아 사람들도 편리함에 못 이겨 네스프레소 기계를 들여놓고요. 네스프레소는 1992년 전 세계 특허로 등록해 20년간 캡슐 커피 시장을 장악했어요. 특허 종료가 끝난 시점인 2012년 이후 다른 기업들도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졌죠. 특허는 만료됐겠다, 정상을 지키기 위해선 네스프레소도 무기가 있어야했습니다. 3년 전 업계를 위협할만한 혁신을 선보입니다. 바로 ‘버츄오’ 라인인데요. 동그랗게 생긴 캡슐이 회전하며 풍성한 크레마(거품)를 만드는 게 특징입니다. 흥미로운 건 캡슐 내에 있는 ‘바코드’인데요. 바리스타가 원두와 커피 종류에 따라 추출 방법을 다르게 적용하는 원리를 적용, 캡슐 내 바코드에 최적의 추출 방법을 입력해뒀다고 해요. 기계가 바코드를 인식하면 30여종의 각기 다른 스타일의 커피를 뽑아내죠. ━ 캡슐 커피로 콜드 브루까지? 네스프레소 버츄오 콜드브루. 사진 네스프레소 최근 네스프레소는 ‘콜드 브루’ 스타일 캡슐을 선보이며 기존 캡슐 커피 머신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콜드 브루는 잘 게 간 원두에 상온의 물이나 냉수를 떨어뜨려 만든 커피를 말합니다. 뜨거운 물보다 찬물로 커피를 우려내는 게 더 어렵겠죠? 최소 8시간 이상, 길게는 온종일도 걸린다고 해요. 특유의 깊은 향과 산미 때문에 마니아들이 많죠. 이렇게 만들기 어려운 콜드브루를 몇 분 만에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네스프레소는 바코드에 담았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핫 블룸’ 추출법을 썼다고 하는데요. 네스프레소 담당자는 “첫 추출을 짧은 시간 뜨겁게 시작하여 커피의 바디감을 생성하고 섬세한 아로마를 피워낸다 ”면서 “이후 물탱크에 차가운 물과 혼합하면 쌉싸름한 끝맛이 날아가고 콜드브루 특유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연 캡슐 커피 기계가 콜드브루를 구현할 수 있을까? 바리스타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콜드브루 향이 나요. 다크초콜릿 향도 느껴져요.”-김명선 바리스타 “콜드브루 느낌이긴 하지만, 맛은 강하지 않아요. 차(tea)처럼 가볍게 먹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오현화 바리스타 “콜드브루 향이 있지만 콜드브루가 발효로 나는 쿰쿰한 느낌은 덜 나는 것 같아요.” -신철민 바리스타 콜드브루의 향이 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다만 고온의 압력으로 추출되는 에스프레소와 찬물의 중력으로 만드는 콜드브루 특성에 따른 맛 차이는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국바리스타교육협회 시험 출제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은정 커피 마스터(이제이커피아카데미 대표)는 “머신 자체가 에스프레소 원리를 따랐기 때문에 콜드브루 본연의 숙성된 깊은 맛을 똑같이 구현하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추출 온도를 떨어뜨려 고유의 향이 잘 살아있어 콜드브루 느낌을 대중적으로 즐기기에 좋을 것 같다"고 평가했어요. ━ 마무리 국내 캡슐커피 시장 규모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느냐면요. 2018년 처음 1000억원을 돌파한 이후 2020년에는 1980억원으로, 2년 만에 약 2배로 성장했고요(유로 모니터), 올해는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해요. 이마트에 따르면 2018년 캡슐커피와 원두커피 매출 비중은 49:51이었는데 2019년에는 60:40으로 역전됐고 지난해에 67:33으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해요. 이 추세대로라면 앞으로도 캡슐 커피는 대세가 될 것 같아요. 이 뜨거운 시장에서 네스프레소가 정상을 지키는 데에 콜드브루 캡슐이 한몫할 수 있을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듯합니다.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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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상어 다음 타자는 물범 ‘씰룩’ 페이크 다큐 [비크닉]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 밀리언볼트가 만든 '씰룩(SEALOOK)'의 한 장면. 더핑크퐁컴퍼니·밀리언볼트. 128억 뷰. 유튜브 조회 수 1위 자리에 오른 동요 콘텐트 ‘아기상어’의 기록입니다. 유튜브가 구독자 5000만명 이상 채널에 주는 루비버튼까지 받았다고 해요. 아기자기한 캐릭터와 중독성 있는 음악으로 전 세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겁니다. 더핑크퐁컴퍼니는 이번엔 밀리언볼트와 손을 잡고 유아가 아닌 MZ를 공략합니다. 바로 애니메이션 캐릭터 ‘씰룩(SEALOOK)’인데요. 지난해 12월 유튜브 채널을 열었는데 벌써 구독자가 370만명에 달합니다. 오늘 비크닉에선 씰룩을 만들어 흥행시킨 더핑크퐁컴퍼니 권빛나 사업전략총괄이사와 밀리언볼트 안병욱 감독을 만나고 왔어요. 안병욱 밀리언볼트 감독(좌)과 권빛나 더핑크퐁컴퍼니 사업전략총괄이사(우). 더핑크퐁컴퍼니·밀리언볼트. ━ #아기상어 들으며 큰 시청층을 잡아라 씰룩(SEALOOK) 주인공은 북극에 사는 물범들이에요. 말은 못하지만 저마다 개성이 넘칩니다. 하루종일메롱만 하는 장난꾸러기부터 직접 디제잉하는 음악 천재까지 각양각색이죠. 장르도 다양합니다. 코미디, 호러부터 먹방이나 ASMR(자율감각 쾌락 반응)까지 총망라하죠. 분량이 90초 내외로 짧은 데다 자극적이지 않은 내용이라 부담 없이 볼 수 있어요. 대사 없이 표정이나 행동으로 이야기가 전개돼 언어의 장벽 없이 전 세계 사람이 즐길 수 있죠. 그 덕에 지난 3월 100만 구독자를 달성하더니 최근엔 구독자가 350만을 넘어섰어요. 반년 만에 큰 팬덤이 만들어진 거예요. 이런 성과는 예견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씰룩 기획과 제작을 맡은 밀리언볼트는 라바 제작진이 설립한 회사예요. 라바는 대사 없는 애니메이션의 대명사 격입니다. 국내 애니메이션 최초로 넷플릭스에 공개돼 큰 화제가 됐죠. 유튜브에서 아기상어 신드롬을 일으켰던 더핑크퐁컴퍼니는 캐릭터 및 음원, 유튜브 운영 등 사업화 전략 전반을 담당하고요. 핑크퐁 영문 채널 유튜브 구독자가 5000만명을 넘어서면서 유튜브 본사 로부터 받은 루비 버튼. 더핑크퐁컴퍼니. 주요 타깃은 MZ세대입니다. 아기상어를 들으며 자란 10대부터 유튜브 등 플랫폼에서 유행을 이끄는 30대까지 공략하는 겁니다. 실제로 만 18세에서 34세가 씰룩 소비층의 62%를 차지해요. “더핑크퐁컴퍼니는 글로벌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지향하며 아이부터 어른까지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트를 만들어보자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때 밀리언볼트에서 초기 기획 중이던 씰룩을 알게 됐고요. 씰룩이MZ세대 시청자까지 확장할 수 있는 콘텐트라고 확신했어요” (권빛나 이사) ━ #물범 페이크 다큐 애니메이션의 탄생 한가롭게 빙하 위에서 쉬고 있는 씰룩의 물범들. 더핑크퐁컴퍼니·밀리언볼트. 빙하 위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물범. 하루하루 정신없이 치열하게 사는 현대인과는 대조적인 일상 보내는 이미지인데요. “사람들이 좋아할 캐릭터가 무엇일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강아지·고양이·토끼 캐릭터는 이미 너무 많고, 그동안 소비되지 않은 동물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그러다 빙하에 누워있는 물범 사진을 보게 됐죠. 큰 몸통에 짧은 손이 귀여웠고, 편안하게 누워서는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이 호기심에 상상을 더해보고 싶었어요” (안병욱 감독) 캐릭터로 물범을 낙점하곤 제작진이 동물원으로 총출동했대요. 하루 종일 물범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합니다. 최대한 실제 물범의 행동을 씰룩 캐릭터에 그대로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었죠. 다만, 울음소리는 물개소리도 일부 가져왔다고 해요. 오랜 관찰 결과 물범보다 물개가 내는 소리가 더 귀여웠다고 합니다. 씰룩 작업 중인 안병욱 밀리언볼트 감독. 밀리언볼트. 씰룩의 지향점은 페이크 다큐라고 해요. 과한 설정을 피해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는 콘텐트를 의도했다고 합니다. 그 노력 중 하나로 물범들을 최대한 의인화하지 않기 위해 얼굴 표정 사용을 최소화했어요. 실제 동물처럼 동작이나 몸짓 중심으로 의사소통하는 모습을 담았죠. 그러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대요. 콘텐트를 끝까지 보게 하고, 또 찾게 하는 매력은 결국 재미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직군을 융합하기도 합니다. 보통의 애니메이션 제작팀엔 이야기를 짓는 작가와 이를 시각화하는 스토리보드 아티스트가 따로 있어요. 씰룩에서는 이 두 업무를 ‘스토리 아티스트’가 한 사람이 수행합니다. 아이디어 기획부터 연출까지 모두 담당해 내용과 표현방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한 거죠. 밀리언볼트만의 재미를 발굴하는 시스템도 만들었어요. 애니메이션 기획 초창기부터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콘텐트를 시사하는 방식입니다. “스토리보드를 영상화한 애니메틱스를 만들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받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다는 의견이 다수로 나와야 실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거죠. 이 과정에서 피드백도 받는데, 생각지 못한 재미 요소가 많이 나와 놀라곤 합니다” (안병욱 감독) ━ #8개 언어로 번역, 시작부터 글로벌 타깃 함께 춤추고 있는 씰룩의 물범들. 더핑크퐁컴퍼니·밀리언볼트. “콘텐트는 자체 재미와 공감에 집중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때는 데이터 기반으로 빠른 의사결정으로 시청자와 소통한 게 채널을 흥행시킨 핵심 비결이라고 할 수 있어요.”(권빛나 이사) 실제로 더핑크퐁컴퍼니의 유튜브 채널 운영 담당자는 매일 유튜브 채널 CMS(Content Management System) 데이터를 확인해 클릭률이 높은 콘텐트 썸네일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따로 분류한다고 해요. 그 캐릭터 중심으로 썸네일을발 빠르게 바꾼다고 합니다. 시청자 댓글을 모니터링해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를 뽑아 제목에 반영하기도 하고요. 글로벌 시청자를 위한 배려도 하고 있어요. 한국어를 단순 번역하지 않아요. 콘텐트 주제부터 가사, 스토리라인, 캐릭터, 유머코드까지 해외 언어권에 맞춰 제작하고 있습니다. 씰룩은 한국어·영어, 중국어 간체와번체, 일본어·스페인어· 포르투갈어·인도네시아어 등 총 8개 언어로 각각 제작하고 있어요. 2021년부터 자체적으로 문화감수 태스크포스(TF)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 지역마다 문화적인 감수성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더핑크퐁컴퍼니 구성원 중 해외에서 오래 거주했던 사람들을 모아 새 콘텐트를 만들 때 내용을 감수하게 해요. 해당 문화권별로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편한 내용을 거르는 거죠. ━ #90년대생 임원의 익숙함 깨뜨리기 더핑크퐁컴퍼니는 90년대생 임원들이 탄생한 걸로도 유명해요. 권빛나 사업전략총괄이사, 주혜민 사업개발총괄이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둘은 2014년과 2015년에 입사한 이후 회사의 성장을 이끌며 단기간에 임원 자리에 오릅니다. “더핑크퐁컴퍼니에서 일할 땐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유튜브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찾는 걸 보고 대세가 될 거라 생각했죠. 당장 매출로 연결되는 사업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먼저 뛰어들어서 경험해보자고 판단한 게 성과로 이어진 거 같아요” (권빛나 이사) 이젠 대세가 된 유튜브는 기본이고, 앞으로 대세가 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어요. 씰룩은 틱톡 채널까지 운영하는데 벌써 구독자가 92만명이라고 해요. 씰룩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북극곰과 만난 물범. 더핑크퐁컴퍼니·밀리언볼트. 이렇게 보면 씰룩은 어느 하나 기존 방식을 따르는 게 없어 보입니다. 물범이라는 캐릭터, 페이크 다큐 형식의 애니메이션, 그리고 콘텐트를 사업화하는 사람과 방식까지요. 넘쳐나는 콘텐트 가운데서 성공하는 콘텐트를 만드는 비결은 의외로 단순해보입니다. 기획부터 제작, 사업 모든 과정에서 익숙함을 깨뜨리는 거죠. 문화체육관광부는 2024년이면 캐릭터 시장 규모가 3367억 달러(44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시장을 노리며 제2의 아기상어를 만드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어요. 아기상어의 신화를 씰룩으로 깰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어요. 박이담 기자 park.id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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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은 알고 당근맛은 모른다? 풀무원이 미각교육에 뛰어든 사연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목소리, 'Voice Matters(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 식사 기록을 남기게 된 이유 "밥 먹어야 하지 않아?" "뭐라도 꾸역꾸역 채워 넣긴 해야지." 때가 돼 식사를 챙겨 먹자는 친구의 말에 1초도 고민 없이 이 말을 뱉었습니다. 말하고 돌아서니 그제야 머리가 띵했죠. 바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마치 만두피에 고기소를 집어넣듯 이제껏 내 몸에 음식을 그저 욱여넣고 있었던 겁니다. 배가 고프면 적당한 음식으로 배를 채웠죠. 적당한 음식이라 말하긴 하지만, 열량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달거나 짜거나 맵거나 등 강렬한 맛에 끌려 탐식하기 바빴어요. 당장은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푸짐히 음식을 준비해도, 생각 없이 채워 넣기에 급급했으니 버리는 음식도 많았습니다. '먹고 사는 것’인데, 먹는 데 소홀했고 내 몸을 홀대했죠. 이때부터 매일 식사 기록(섭식 일기)을 남겼습니다. 하루 먹은 음식들을 복기하면서 식습관을 돌아보게 된 거죠. 온전하게 균형 잡힌 세 끼를 먹진 못해도, 적어도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기로 한 겁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방울토마토 등 각종 야채, 과일 등의 원재료를 맛보며 미각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풀무원 ━ 단짠은 알아도 오이, 당근 맛은 모른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먹는 것과 관련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아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수저 사용법, 식사 예절 등 밥상머리 교육에는 그래도 익숙한데요.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어떤 과정으로 식탁까지 오게 됐는지 알기 어렵고, 어른이 되어가면 갈수록 양념장이나 조미료 없는 원재료 본연의 맛을 경험하긴 힘들죠. 여기에 의문을 품고 지난 2010년 풀무원은 '바른 먹거리 교육'을 시작했는데요. (자연의 맛 바른 먹거리, 건강한 맛 바른 먹거리… 입에 금세 붙는 이 노래 기억하실 겁니다) 초창기 바른 먹거리 교육은 식품 포장재 바로 읽기 교육부터 시작했어요. 식품 겉면에 있는 갖가지 영양성분을 바로 알고, 유통기한과 제조연월일을 확인해서 바른 먹거리를 선택하는 법을 알려준 거죠. 이후에는 골고루 먹는 방법에 대해 알렸는데요. '211 식사법'도 그때 나왔습니다. 신선한 채소, 포화지방이 적은 단백질, 거친 통곡물을 2:1:1 비율로 골고루 섭취하는 영양균형 식사법을 아이들에게 전파했습니다. 바른 먹거리 교육의 핵심은 미각 교육입니다. 자연에서 온 식재료 본연의 맛을 알게 해주는 교육이죠. 실제 영국, 유럽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1998년부터 일찌감치 초등학교에서 미각 교육을 의무화했습니다. 직접 먹을 채소를 학교 텃밭에서 기르고 수확해 깨끗하게 씻어서 본 재료 그대로를 맛보는 겁니다. 풀무원은 이 미각 전문 교육을 따와서 어린이들이 오감을 활용해 자연의 맛을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한 거죠. 10여 년이 넘게 무료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돌며 지난해까지 총 8500회가 넘는 교육을 진행해 19만명이 넘는 어린이에게 바른 먹거리 DNA를 전파했습니다. 2015년부터는 교육 대상자를 성인까지 확대했고, 2017년부터는 65세 이상 시니어 바른 먹거리 교육도 운영 중입니다. 풀무원의 '바른 먹거리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이 균형 잡힌 식사법 등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풀무원 ━ 먹으면서 지구 지키기 최근 풀무원은 '바른 먹거리 교육'을 '지구를 지구해' 캠페인으로 확장했습니다. 먹는 일에는 쓰레기 문제, 탄소배출, 환경오염, 생명윤리 등 많은 문제가 사슬처럼 연결돼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알맞게 먹는 게 아니라, 욕심내 먹는 탐식은 내 몸은 물론 내가 사는 환경을 망치게 하죠. 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집단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이 지구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유엔 농업 식량 기구 ‘축산업의 그림자’ 보고서에서는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을 전체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분석했는데요. 배출량을 두고 그 수치가 크다, 작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동물에서 시작된 질병은 인간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죠. 파괴적인 공장식 축산이 들어서게 된 배경을 곱씹어보면 좋을 거 같은데요. 뭐든 적당하면 좋은데 인간의 과도한 육식 사랑 때문입니다. 지난해 한국인의 고기 소비량이 사상 처음으로 쌀 소비량을 추월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추정한 지난해 국내 3대 육류(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1인당 소비량은 58.4kg에 달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고기 사랑이 증가한다면, 낮은 생산비에 많은 고기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공장식 축산은 더 세를 키워나가겠죠. '채식해!' '고기 먹지마!'가 아니라 각자의 식습관을 돌아보며 본인의 건강도 챙기고, 건강한 생태계도 지킬 수 있도록 풀무원이 식탁 위 작은 실천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게 ‘지구를 지구해’ 캠페인입니다. 풀무원이 최근 시작한 '지구식단' 캠페인은 내 건강은 물론 환경까지 고려한 바른 먹거리를 지향한다. 사진 풀무원 ━ "애쓰지 않아도 누구든 쉽게" 식탁 먹거리 혁명 이 캠페인은 지난해 8월 풀무원이 내놓은 지속가능 식품 브랜드 '지구 식단'과 궤를 같이하는데요. 환경에 부담이 적은 식물성 제품, 동물의 행복까지 생각한 동물복지식단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 식단의 '라이크텐더 두부결'의 경우 고단백 결두부로 만들어 고기처럼 촉촉하고 쫄깃한 식감을 느끼게 해 주는 제품인데요. 콩에서 추출한 '식물성조직단백(TVP)'이라는 소재를 풀무원의 기술력으로 가공해 실제 고기와 유사한 맛과 질감을 구현한거죠. 모두 채식할 수 없고 적당한 육식도 필요하다면 올바르게 생산된 동물성 단백질을 제공하는 게 좋습니다. 동물복지 치킨너겟은 넓은 공간에서 자란 가축들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도축되게 하는 등 생산공정에 좀 더 신경 쓴 제품이죠. 넓은 공간에서 자란 동물을 의식 없는 상태에서 도축 하는 등 생산 공정을 고려한 동물복지 식단 대표제품. 사진 풀무원 풀무원은 오는 6월 지구 식단에서 '두부바' 제품을 국내에 새롭게 출시할 계획인데요. 희고 네모난 두부라는 편견을 깨고, 두부에 톳과 각종 야채를 넣어 만든 부드럽고 탱글탱글한 식감의 제품을 추가로 선보인다네요. 이 두부는 이미 일본에서 시장성을 증명했습니다. 지난 2020년 11월 풀무원 일본법인 아사히코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눈에 띄는 판매량을 기록했죠. 적당한 간이 돼 있어 별다른 조리 없이 바로 간편하게 섭취 가능하다는 점 등이 성공 요인이 됐습니다. 성공 사례를 발판 삼아 한국 시장에도 곧 등판 예정이라네요. 이미 독일 등 대체육 시장 파이가 큰 국가에서 활성화돼 있는 버섯 균사를 활용한 대체육 개발에도 공을 들일 계획입니다. 지구 식단 브랜드를 총괄하고 있는 박종희 풀무원 마케팅부문 상무는 "건강과 환경에 관심은 크지만 선뜻 시도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누구든 쉽게 채식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내 몸과 지구를 생각하는 식생활이 거창한 게 아니라, 누구든 시작해볼 수 있을 만큼 진입장벽이 낮고 제품군도 다양해진다면 시장은 더 탄력을 받아 빠르게 성장하겠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세계 대체육 시장 규모는 올해 87억 달러(약 11조 6000억원)가 예상됩니다. 건강 뿐 아니라 환경도 지킬 수 있도록 식탁 위 작은 실천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내놓은 지구식단 제품들. 사진 풀무원 ━ 소신 있는 먹.잘.알을 꿈꾸다 많이 먹는 대식좌, 치킨 한 조각에 포만감을 느끼며 극히 적은 양을 먹고 호리호리한 몸을 유지하는 소식좌들이 주목 받는 시대입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을 다음 주인공은 '소신 있는 먹.잘.알(먹는 것 잘 아는 사람)'이 아닐까요. 음식을 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알고, 필요한 만큼만 먹고, 이 음식이 나의 내면과 외면 나아가 환경과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며 먹는겁니다. 건강한 식생활, 식탁 위 작은 실천을 돕겠다는 식품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바른 먹을거리를 고집하고 나와 환경을 위하는 식습관을 유지하는 게 별나고 까다로운 게 아닌 당연한 일상입니다. 비크닉 bicnic 관련기사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동백기름 팔던 '6남매 억척맘' 남긴 유산 [비크닉] '막강한 능력' 가진 침대 회사…소아 병동 탈바꿈 나선 까닭 [비크닉]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 MZ 사이 입소문난 그 반지…매듭장인 할매들, 세계 넘보다 [비크닉]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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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 무신사 냄새” 무신사가 브랜드 키우는 이곳[비크닉]
무신사 스튜디오 동대문 사무실 전경. 사진 정세희 기자 무신사 냄새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온라인 패션플랫폼 1위 무신사에서 만든 인기 있는 아이템으로만 옷을 입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 때문에 옷 입을 때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난 1월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자고 나온 말인데 아직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는 것 보면 새삼 무신사 파워가 대단하다 싶더라고요. 이번 브랜드 소개팅은 진짜 무신사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바로 '무신사 스튜디오'인데요. 무신사가 운영하는 패션 특화 공유 오피스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여길 거쳐 간 브랜드는 셀 수도 없어요. 안다르, 엘무드, 엠엠지엘 등이 이곳에서 탄생했습니다. 무신사는 이 스튜디오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 걸까요? ━ 패션에 대한 열정만 갖고 오세요 무신사 스튜디오 동대문 내 워크룸에서 입주 기업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정세희 기자 무신사 스튜디오 동대문 사무실 전경. 사진 정세희 기자 이달 15일 오후 제가 방문한 곳은 오는 6월 개점 5주년을 맞는 무신사 스튜디오 1호점 동대문입니다. 2018년 문을 연 동대문점을 시작으로 2022년 한남 1호점, 성수점을, 올해 한남 2호점과 신당점까지 총 다섯개 지점이 생길 만큼 확장했어요. 스튜디오에 들어가자마자 유리창으로 된 ‘워크룸’이라고 쓰인 곳이 보였는데요. 큰 작업 테이블 위에서 디자인한 옷들을 검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은 얼핏 봐도 멋스러워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 동대문점의 경우 2200평 공간에 약 900명의 입주사가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무신사 스튜디오의 가장 큰 장점은 패션업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스튜디오 내에 원단, 패턴, 라벨링 해주는 곳이 있어서 절차마다 업체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스튜디오 입주사 대부분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1,2년차 스몰 브랜드가 많은데, 대규모 원단을 구매하는 부담을 헤아려 소규모 원단, 라벨링을 판매한다고 해요. 훈훈하죠? 그 밖에도 깨알 같지만 패션업 종사자들만 아는 매력 포인트가 많대요. 사무실 내부에는 마네킹, 원단, 소품들이 가득했는데 이를 보관할 선반이 설치돼 있고요. 마음껏 패션 잡지를 볼 수 있는 공간과 미싱질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죠. 디자인한 옷을 쉽게 입어볼 수 있도록 탈의실도 별도로 있더라고요. 지하에는 옷을 촬영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어요. 패션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 공통의 관심사가 모이니 벌어진 일 무신사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협업 사례가 있어요. 지난 3월 여성 패션 브랜드 ‘쿠키시 X 호쿠스포쿠스’ 팝업 스토어를 연 건데요. 지난 2021년 무신사 스튜디오 동대문에 입주한 두 브랜드는 이곳의 기업 간 네트워킹 프로그램에서 만나 가까워졌다고 해요. 밥을 먹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평소 나눴던 아이디어를 그대로 팝업 컨셉으로 잡아 업사이클링 상품을 전시했다고 합니다. 쿠키시 X 호쿠스포쿠스’ 팝업 스토어 모습. 사진 무신사 옷을 제작하고 남은 조각 원단과 상품화되기 어려운 샘플 제품을 활용해 만든 못난이 인형과 티슈 케이스를‘호키시(HOKEESEE)’라는 브랜드로 선보였죠. 이제 막 시작한 스몰 브랜드 입장에서 오프라인에서 직접 아이템을 판매할 수 있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라고 해요. “온라인 기반이다 보니 고객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설명도 하고 싶고 반응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항상 아쉬웠어요. 직접 고객을 만날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황순지 호쿠스포쿠스 대표) 반응도 좋았습니다. 팝업 한 달 만에 역대 최고 매출을 달성했고, 29cm 등 다른 플랫폼뿐만 아니라 롯데백화점에서도 입점 제안이 왔습니다. 직접 소비자들과 만나고 싶어하는 브랜드의 니즈를 반영해, 무신사는 앞으로 다양한 오프라인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팝업을 열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겠죠? 최근 무신사가 부동산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도 결국 오프라인에서 브랜드와 소비자와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넓히기 위함으로 해석돼요. ━ 패션 인큐베이팅, 무신사에 남는 것 참, 다른 공유 오피스에 없는 존재가 있었는데요. 바로 '매니저'였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사무실 관리만 하는 게 아니라 입주한 사람들의 성향과 취향 등을 파악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하거나, 그들의 애로사항을 무신사 측에 전달하기도 하는 일을 해요. 이제 막 패션 사업을 시작하는 브랜드에 매니저는 고민과 비전에 대해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고마운 창구라고 해요. 마을 이장 같기도 하고 아파트 부녀회장 같기도 한 이들 덕분에 이곳이 단순한 비즈니스 공간이 아니라 패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하나의 마을이 됐다고 합니다. “무신사가 다양한 브랜드와 고객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라면 무신사 스튜디오는 제품이 나올 수 있도록 브랜드와 원단, 패턴 등 생산업체와도 연결해주는 공간이에요. 실시간으로 궁금하거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물어보고 해결책을 마련해주는 점도 좋아요. 덕분에 매년 매출이 1.5배 이상 늘었죠.” (FIF 서울 안제영 지점장) 매니저들과 입주 브랜드 간의 단단한 정서적 유대는 무신사가 오래전부터 추구해온 정체성과 통해요. 무신사는 창업 초기부터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꿈꿨거든요. 그들이 성공해야 무신사도 성공한다는 상생 철학이 깊게 자리 잡고 있죠. 이날 만난 임연수 매니저 역시 무신사 스튜디오는 공간 대여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성장을 지원하는 곳이라고 강조했어요. “더 많은 사람이 입주하게 함으로써 돈을 벌려고 했으면 사무실을 더 촘촘히 나눴을 거예요. 하지만 보다시피 무신사 스튜디오는 공간도, 책상도 널찍하게 짰어요. 작업이 잘되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 마무리 애초에 무신사가 지향했던 그들의 냄새는 무색무취가 아닐까요. 무신사는 자체 상품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내 개성 있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탄생했고, 그들의 성장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커왔으니까요. 그래서 패션 비즈니스를 돕는 무신사 스튜디오도 만들고, 패션 장학생도 뽑고, 글로벌 진출을 돕는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하는 거고요. 이렇게 상생을 중요시하는 무신사에게 무신사 냄새라는 말은 꽤 아팠을 겁니다. 만약 무신사 플랫폼 냄새가 너무 강해서 입점 브랜드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는 무신사스럽지 못하다는 거니까요. 소비자도 등을 돌릴 겁니다. 이번 무신사 냄새 논란이 무신사에게는 브랜드 인큐베이팅에 보다 신경을 써달라는 따끔한 충고가 됐길 바라요.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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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수, 냉장고 넣으면 맛없다? 가장 맛있게 마시는 법 [비크닉]
━ 산물 제주도의 돌담. 사진 언스플래시 제주도는 물이 귀한 화산섬입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지대가 빗물이 하천으로 변할 시간도 주지 않고 삼켜버리기 때문이에요. 이따금 암석의 틈을 통해 용천수(湧泉水)가 솟아 나오면, 사람들은 이 샘을 '산물(산에서 온 물, 혹은 살아 있는 물)'이라 부르고 인근에 부락을 이뤄 보물처럼 아꼈어요. 물허벅(물동이), 물구덕(물허벅을 넣어 지고 다니는 바구니), 물팡(물허벅을 놓는 돌 선반) 등 육지엔 없던 물 문화도 생겼죠. 그런데 알고 보면 제주도는 그 어디보다 물이 풍부한 곳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땅 위에 흐르는 물이 없었을 뿐,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선 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거든요. 토목 기술의 발전으로 제주도는 자연 정수된 깨끗한 생수를 맘껏 마시고 이를 육지로도 공급하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오늘 비크닉은 제주도라는 거대한 천연 정수기가 만든 물, '제주삼다수' 이야기입니다. ━ 밥보다 물 귀한 제주…땅 파니 지하수 쏟아졌다 제주삼다수 공장 내 물탱크. 공장은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해 있다. 사진 박영민 삼다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12일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삼다수 공장을 찾았어요. 제주 시내에서 차로 40분 거리, 한라산 중턱의 공장 입구에 들어서니 제주삼다수 로고를 붙인 커다란 은색 물탱크가 보였어요. 공장 안에선 물병을 생산하는 라인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어요. 제주도엔 공병을 만드는 업체가 없습니다. 육지에서 수급하려면 유통비가 더 들기 때문에 직접 병을 만드는 거죠. 원수(原水)를 여과 처리해 병에 집어넣고, 검사 후 라벨을 붙여 출하하면 우리가 아는 생수가 완성됩니다. 연평균 생산량만 100만t에 달하죠. 1995년 12월 제주개발공사가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지하에서 먹는샘물을 취수하고 있다. 사진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삼다수의 시초는 1995년 12월 이 공장 인근 지하 420m에서 취수한 화산 암반수였어요. 천연 지하수의 존재를 확인한 제주도가 강수량이 풍부하고 오염원이 없는 이곳의 땅을 팠더니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쏟아졌어요. 같은 해 '먹는 물 관리법'이 제정되면서 국내 생수 시장이 활짝 열립니다. 제주도는 제주도지방개발공사(현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를 설립, 삼다수 개발과 관리에 들어갔어요. 소비자 조사와 시장 분석을 통해 제주의 이미지를 녹인 제주삼다수를 브랜드명으로 택했어요. 원통 일색이었던 생수 물병을 사각형으로 만들어 디자인도 차별화했어요. 사각병은 일렬로 세웠을 때 빈 곳이 없어 적재 효율도 높죠. ━ "누가 물을 사 먹어?" 보리차 끓여 먹던 한국인 변한 이유 제주삼다수 500㎖ 병들이 공장 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 박영민 제주개발공사는 첫 취수 이후 약 3년여에 걸친 환경영향평가와 공장 준공을 걸쳐 1998년 3월 제주삼다수 500㎖와 2ℓ를 출시했어요. 제주삼다수 측은 "당시는 가정에서 보리차를 끓여 먹던 게 익숙했던 시절이라 '누가 물을 돈 주고 사 먹겠냐'는 우려도 컸다"고 했어요. 그런데 시장에 나온 삼다수의 인기는 예상보다 폭발적이었어요. 판매 첫 달엔 매출 9억원, 다음 달엔 18억원, 그다음 달엔 20억원으로 쑥쑥 성장합니다. 출시 한 달 만에 먹는샘물 시장 약 30%를 점유했어요. 무더위가 시작된 6월부턴 매진 행렬에 재고가 동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죠. 그렇게 25년간 국내 생수 시장 점유율 약 40%를 유지하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다수, 비결은 무엇일까요. 삼다수 측은 제주 청정 자연을 담은 원수의 우수성을 꼽았어요. 땅속에서 화산송이(scoria)와 클링커(clinker)층이 천연 거름망 역할을 한 덕분이에요. 클링커층은 땅이 산 정상에서 삼킨 빗물을 바다로 흘려보내는 통로이기도 하죠. ━ 삼다수는 왜 비싼가 제주삼다수 공장 내부 전경. 사진 박영민 강경구 제주개발공사 R&D혁신센터장이 삼다수에 대한 궁금증에 답을 해줬어요. 삼다수의 장점은? 가장 큰 장점은 깨끗하다는 것이다. 삼다수는 한라산 위쪽인 해발 1450m에서 만들어진 지하수다. 청정 지대인 한라산 국립공원 지하 12km를 흐르며 천연 정수된다. 먹는샘물은 지하수 그 자체가 상품이기 때문에 원수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수가 오염될 가능성은? 잠재 오염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축구장 면적 약 100개 규모의 취수원 주변 토지를 매입했다. 품질 유지를 위해 법이 규정한 기준(연 2회)을 넘어 매일 수질 분석을 진행한다. 106개 관측소에서 3시간마다 시료를 샘플링해 분석하고 생산 시스템을 모니터링한다. 그 정보를 '먹는 물 수질 연구소', '삼다수 스토리' 등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제주도 지층 단면. 평균 2~3m 두께의 용암층과 퇴적층이 시루떡처럼 겹겹이 쌓여 있어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기 좋은 지질 구조를 갖췄다. 사진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사진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삼다수는 왜 비싼가? 비싸다는 건 오해다. 2ℓ 생수 한병이 육지에선 1080원 정도지만 제주 내에선 700원 수준이다.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제주도에 유통되는 물량은 별도로 관리하고 출고가도 낮춰서 공급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바다를 건너면 그만큼 운송비용이 추가된다. 연간 100만t씩 생산하면 지하수가 고갈되는 것 아닌가? 그럴 일은 없다. 삼다수는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다. 고지대에 내려 지하수가 된 빗물 일부를 취수해 만드는데, 그마저도 바다로 흘러간 물이 다시 증발하면 또 비로 변해 다시 지하수가 된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비가 제일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평균 대비 1.5배 이상이다. 비가 지하수로 스며드는 비율도 40%(전국 평균 15%) 수준으로 높다. 지하 수위가 떨어지는 정도 역시 실시간으로 예측하며 관리하고 있다. 삼다수의 목표는? 제주삼다수를 대한민국 대표 상품으로 만들고 싶다. 지금도 중국·일본·미국·인도·필리핀 등 세계 21개국에 수출한다. 제주도민, 나아가 국민이 마실 양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아직 많은 양을 수출할 수는 없다. 연구·개발(R&D)을 통해 생산량을 늘리면 좀 더 많은 지역으로 수출할 수 있을 것이다. 삼다수를 통해 아름다운 섬 제주도를 널리 알리고 싶다. ━ 물을 맛있게 마시는 방법도 있다 사진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같은 생수라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 아셨어요? 미네랄 함량이 높아 센 물(경수)과 반대로 낮아 부드러운 물(연수)이 있죠. '에비앙' 같은 외국 생수는 경수, 삼다수는 연수입니다. 물에는 맛이 없지만, 경도의 차이에 따라 입 안에서 느낌이 달라져요. 경수는 묵직한 대신 살짝 뒷맛이 남고, 연수는 목 넘김이 깔끔하죠. 경수는 조금 차갑게 마셔야 편하게 마실 수 있지만, 연수는 15~18°C 상온에서 마셔도 충분히 물맛을 느낄 수 있어요. 너무 뜨거우면 물맛이 없고, 너무 차가워도 위와 장에 부담을 주죠. 삼다수도 햇빛이 들지 않는 상온에 보관했다가 마셔야 가장 맛있대요. 삼다수, 이젠 차가운 냉장고 대신 서늘한 그늘에 양보하는 건 어떨까요? 비크닉 배틀그라운드 세계관까지 담았다…스토리로 진화하는 롯데월드 [비크닉] 빨대보다 더 해로운 바닷속 천덕꾸러기…폐어망, 가방이 되다 [비크닉] 생리혈 걱정 없이 마음껏 뛴다…나이키 50년간 여성 응원한 이유 [비크닉] 110년 지나도 촌스럽지 않다, 효리네도 쓴 생활명품 [비크닉]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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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혈 걱정 없이 마음껏 뛴다…나이키 50년간 여성 응원한 이유 [비크닉]
캐서린 스위처는 1967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방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성 최초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사진 캐서린 스위처 공식 웹사이트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마라톤에 뛸 수 없었습니다. 달리기를 오래 하면 임신·출산 능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래서 1966년 보스턴마라톤에서 한 여성 선수는 출발선 근처 숲에서 숨어있다가 뛰었고요. 다음해 다른 여성 선수는 뛰다가 감독관에게 제지를 당해 몸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편견과 싸워야 했던 여성 선수들을 오랫동안 지지하고 응원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 브랜드, 최근에는 여자 축구선수를 위한 유니폼을 만들어 공개해 만나고 왔습니다. 브랜드 소개팅 오늘은 여성 스포츠를 지지해온 나이키의 노력에 대해서 다뤄볼게요. ━ 여성만을 위한 최초의 유니폼 나이키가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을 위한 새로운 유니폼을 선보였다. 사진 나이키코리아 지난 3일 서울 광진구 파이팩토리 스튜디오에서 열린 ‘나이키 우먼 2023’ 행사에서 나이카가 공개한 우리나라 여자 축구 대표팀 전용 유니폼입니다. 그냥 딱 봤을 때는 평범해 보이죠. 그런데 여성만을 위한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생리혈이 새지 않는 특수 소재인 페리어드를 사용했다는 겁니다. 생리혈을 흡수해 새지 않고, 재습윤 기능이 있어서 생리하는 날에도 마음껏 뛸 수 있죠. 선수들 몸을 3D로 스캔하고 체형 특징을 모두 반영해서 만든 거래요. 그래서 봉제선, 허리 밴드 등을 다 다르게 만들었죠. 이번 유니폼이 특별한 건 애초부터 여성만을 위해 기획됐다는 것이에요. 그동안은 남성 유니폼에서 사이즈만 다르게 출시했다면 이번엔 처음부터 여자 선수들을 타깃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획됐다는 점이죠. 이를 위해 그동안 나이키가 공들였던 여성 몸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반영됐다고 합니다. 나이키는 수년 전부터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체형의 여성 6만8000여명의 신체를 분석했다고 해요. 운동할 때 뭐가 불편한지, 어떤 걸 해결해주면 더 마음껏 뛸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요. 왼쪽부터 방송인 재재, 안무가 립제이, 육상 정혜림 선수,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 축구선수 지소연·김혜리, 콜린 벨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진 나이키코리아 선수들의 평가는 좋았습니다. 여자 축구 국가 대표 팀 주장 김혜리 선수는 “운동선수 관련 제품은 대체로 남녀 공용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제품을 만드는 것 같아 무척 반갑다”며 “봉제선이나 허리 밴드, 땀 자국 등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선수들의 목소리를 많이 반영해, 좋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 여성 스포츠의 든든한 조력가 나이키의 그동안 행보를 보면 여성 선수 유니폼 제작은 여전히 운동장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여성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여성들이 마음껏 뛸 수 있게 그 장벽을 낮춰주는 것. 나이키가 오래전부터 꾸준히 해왔던 일이거든요. 과거에는 올림픽에서 여성들이 왜 1500m 이상 달릴 수 없느냐고 위원회에 공개적으로 항의했고요. 여성 선수들이 여성 마라톤 종목이 빠진 건 성차별이라고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고발하는 것도 도왔어요. 나이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여자 마라톤은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추가됐고 나이키가 후원한 선수가 우승했어요. 이후에도 나이키는 전 세계에서 135개 이상의 여성 단체와 협력해 차세대 선수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역사회 스포츠 단체에 지원금과 역량 강화 훈련을 제공하고 있죠. 나이키의 모두의운동장 캠페인 포스터 사진 나이키코리아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이 운동하기 좋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나이키 옷 입고 운동하자’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요. 예를 들면 여성들이 운동하기 어려운 환경 그러니까 사회적 편견을 건드는 건데요. 운동은 남성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여성에게 얼마나 좋은 에너지를 주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두의 운동장’ 캠페인이 대표적입니다. 운동은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돼야 한다고 하잖아요. 근데 저만해도 학창시절 체육수업은 쉬는 시간이었거든요. 운동이란 게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얼마나 유익한지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후회하지 않도록, 나이키는 학생들에게 스포츠의 즐거움을 깨닫게 했어요. 이 밖에도 사회적 편견에 흔들리 않고 주체적으로 사는 여성들을 조명하는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캠페인도 있었죠. ━ 여성에 집중하는 이유 축구 선수들뿐만 아니라 여성 스포츠 조력자인 나이키. 근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나이키의 이러한 노력,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단순히 여성 고객 확보를 위한 걸까요? 기업의 활동이라는 게 이윤 창출의 의미 당연히 갖고 있지만, 만약 돈만 생각했다고 하면 프로모션을 늘리는 등 더 직접적인 방법이 있을 겁니다. 게다가 여성 스포츠 장려라는 건 사회 경제 문화와 다 얽힌 문제라, 어찌 보면 굉장히 어려운 숙제거든요. 이러한 어려운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 이건 세상에 나이키의 정신을 드러내는 좋은 수단이 되겠죠. 나이키가 창업 당시부터 강조했던 게 있어요. 바로 ‘신체를 가진 자는 모든 운동선수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운동선수를 응원한다. 그게 여성이든, 흑인이든, 어린이든 상관없다.’ 더 중요한 게 있죠. 그들을 방해하는 장벽을 허물겠다는 것도요. 그러니까 여성 스포츠 장려는 모든 이들의 운동을 응원하는 나이키의 창업 정신인 거죠. 명확한 철학을 갖고서 이를 50년 넘게 꾸준히 진심으로 알리는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걸, 그리고 지갑도 열 수 있다는 걸 나이키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 마무리 나이키는 미디어 행사에서도 그들의 철학을 직접 경험하게 했어요. 기자들은 행사장에 들어가자마자 라커룸에서 스포츠 티셔츠와 레깅스, 그리고 운동화를 받았는데요. 이걸 입어야만 CEO 인터뷰 등 이날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옷이 태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실감한 게 불편한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으니까 뛰고 싶어지더라고요. 그 순간 킴벌리 창 멘데스 나이키 코리아 사장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나이키는 경기장, 코트 위에서 활약하는 엘리트 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과 모든 움직임을 향합니다. 여성들이 어떤 생애 주기에 있더라도 스포츠를 포기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스포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혁신 노력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운동하고 싶은 옷, 신발 등을 만드는 것 자체가 스포츠 장려에 일조하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영리한 브랜드죠?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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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창업주, 동백기름 팔던 '6남매 억척맘' 남긴 유산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목소리, 'Voice Matters(보이스매터, 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 가정의 달 포스터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한 해 시작이 어제 같은데 다음 달이면 5월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가족을 위한 갖가지 행사가 많아 가정의 달이라고 일컫기도 하죠. 온 오프라인에 각종 행사 포스터도 즐비합니다. 알림판을 장식하는 삽화에는 어김없이 부모와 아이로 구성된 3인 가족 또는 4인 가족의 단란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조금 더 신경 쓴다면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더해 6인 가족이 등장하기도 하죠) 그냥 보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어요.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어쩌면 편안한 가정의 모습일 테니까요. 과연 그럴까요? 미성년 자녀를 둔 가구 가운데 열에 둘은 한부모 가정입니다. 미혼, 또는 배우자와 사별이나 이혼 등으로 모자 가족, 또는 부자 가족이 된 거죠. 대가족, 핵가족, 아이 없는 가족처럼 다양한 가족 구성의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관심 밖에 머물거나, 종종 부정적 시선과 마주하게 됩니다. 홀로 당당히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싱글맘, 싱글 대디 연예인들의 활약에 한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이 전보다 많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1960년대 초 고 서성환(가운데) 아모레퍼시픽 창업주가 서울 영등포 공장의 잔디밭에서 여성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육아와 생계의 짐을 짊어진 어머니에게서 곧은 성품과 강한 생활력을 엿본 그는 회사의 모태를 어머니이자 여성이라 말할 정도로 여성과 아동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 20년 희망의 두드림, 그 시작 다양성과 포용이 화두가 된 지금도 이러한데 20여년 전은 어떠했을까요? 이혼이나 사별로 급작스레 생계를 책임지게 된 한부모 가정 여성 가장들은 일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혼자 아이를 보면서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일을 하기도 어려웠고, 어렵사리 일자리를 찾는다 해도 소규모 사업장 임시직이나 아르바이트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돈도 많이 벌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돈도 버는 일로는 장사가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작은 가게 하나 여는 데 필요한 목돈을 은행에서 빌리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죠. 지난 2021년 발표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3년마다 조사)에 따르면 모자 중심 가구가 67.4%로 부자 중심 가구(32.6%)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245만3000원(세금 및 사회보험료 등 제외)으로, 2021년 전체 평균 가구 가처분 소득 416만9000원에 비해 턱없이 모자랍니다. 20년 전에는 이들의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죠. 당장 먹고 사는 것조차 힘겨운데, 세간의 따가운 시선은 이들을 더욱 위축시켰습니다. 막막한 앞길에 출구가 생긴 건 지난 2003년이었죠.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의 유산을 기반으로 지난 2003년 한부모 가정 여성 가장을 위한 '희망가게' 사업이 시작됐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는 평소 여성과 아동복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도 집 부엌에서 동백기름을 만들어 가가호호 팔던 6남매의 억척 맘이었습니다. 1930년대 그의 어머니가 만든 '창성상회', 그곳에 담긴 화장품 제조술과 진심이 태평양을 거쳐 오늘날의 아모레퍼시픽이 된 거죠. 육아와 생계의 짐을 짊어진 어머니에게서 곧은 성품과 강한 생활력을 엿본 고 서성환 창업주는 늘 회사의 모태는 어머니고 여성이다 강조했습니다. 1964년에는 아모레퍼시픽이 방문 판매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는데요. 이때 생계가 어려운 한부모 가정 여성 가장들이 대거 참여했고, 아모레퍼시픽의 비약적 성장에 일조했죠. 경영도 마음 씀씀이도 여성에 맞닿아 있던 고 서성환 선대 회장의 이 같은 뜻을 기리며, 그가 세상을 떠난 2003년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을 비롯한 가족들은 유산 중 5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해 '희망가게'라는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희망가게 대출은 일 년에 총 세 차례 전국적으로 공모를 거쳐 진행됩니다.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의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면접과 기술 심사를 거쳐 선발된 이들에게 창업 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입니다. 보증금을 포함해 최대 4000만원의 창업 자금을 연 1%의 금리로 빌려주는데요. 상환 기간은 8년이고, 상환금과 이자는 또 다른 한부모 가정 여성 가장을 위한 창업 지원금으로 사용됩니다. ━ 20년 만 500개 희망가게, 한부모 가정에 남긴 것 금융 소외층을 대상으로 진행된 착한 대출은 지난 20년간 탄탄히 성장해나갔습니다. 2004년 7월 희망가게 1호점 ‘미재연 정든 찌개'(현재는 폐업)를 시작으로 2011년 100호점, 2013년 200호점, 2016년 300호점, 2020년 400호점, 그리고 지난달 500호점을 돌파했죠. 업종 역시 음식점뿐 아니라 개인택시, 재활용품 가공업체, 피부관리샵, 천연비누 제조 등 다채롭게 확장됐습니다. 아모레퍼시픽과 희망가게를 운영하는 아름다운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존 대출 상환율은 80% 이상, 가게 생존율(3년 이상 영업을 지속하는 비율)은 72%라고 하네요. 희망가게 대출은 일 년에 총 세 차례 전국적으로 공모를 거쳐 진행된다.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의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면접과 기술 심사를 거쳐 선발된 이들에게 창업자금을 대출해준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3년 가까이 진행된 코로나 19 팬데믹은 희망가게 창업주에게는 그야말로 고난의 시기였습니다. 사업 확장은커녕 유지조차 힘겨울 때도 70개 이상의 매장을 새롭게 열었어요. 상환금 유예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죠. 긴급 생활안전자금을 주고 아모레퍼시픽 사내 라이브커머스(실시간 온라인 홈쇼핑)를 통해 창업주 가게의 제품을 파는 등 판로 지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나하나 쌓아 올린 자립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힘을 더한 것이죠. 아모레퍼시픽과 아름다운재단은 지난 20여년을 이어오며 희망가게가 한부모 가정에 남긴 진짜 메시지에 주목합니다. "희망가게는 온전한 자립으로 함께 가는 과정이죠.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통해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삶에 대해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한찬희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한부모가정창업자 분들이)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보다 도움 주는 사업을 함께한다는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사업을 시작하는 분들을 위한 대출 지원사업이지만, 곧 사업이 안정화되고 그 돈이 회수되면 또 다른 분들에게 다시 지원되는 나눔의 선순환이기 때문입니다" (송호준 아모레퍼시픽 CSR 팀장) 금융 소외층 한부모 가정 여성 가장을 대상으로 한 '희망가게' 대출지원사업은 지난 20년 동안 나눔의 선순환을 실현하고 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 정상, 비정상 프레임은 누가 만드나 500호점의 첫 시작을 알린 분부터 가장 최근 창업하신 분까지 만나 뵙고 얘기를 듣고 싶은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전과는 그래도 조금은 달라진 사회 분위기에 내심 많은 분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기도 했죠.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대다수 분은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하셨죠. 혹여 좋은 뜻에서 건넨 자신의 말들이 자녀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컸습니다. 이름과 얼굴이 노출되는 게 아직도 꺼려지는 건 자신보다 자신의 자녀 때문이었죠.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를 통해 이전보다 다채로운 가정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뿌리 깊은 편견과 그로 인한 상처가 걱정되는 것이지요.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이상한 정상가족』(동아시아)에서 친모-친부-아이로 구성된 3~4인 가족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가장 아파하는 건 아동이라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이혼 가정, 미혼 가정 등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가족의 형태가 있으니까요. "저는 제가 자랑스러워요. 요즘" 희망가게 379호점 창업주가 환하게 웃으며 건넨 이 목소리가 더 큰 메아리가 되길 바랍니다.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에게 필요한 건 연민도 동정도 따가운 시선도 아닌 편견 없는 포용이 아닐까요. 비크닉 Bicnic 관련기사 MZ 사이 입소문난 그 반지…매듭장인 할매들, 세계 넘보다 [비크닉]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 편견 때문에 못 봤던 500조 시장…'우영우'들 품는 포용의 패션 [비크닉]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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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사' 실제 인물? 삼성 첫 女임원 출신, 그 책방은 특별했다 [비크닉]
JTBC 드라마 ‘대행사’가 인기를 끌면서 이 사람의 이름도 함께 오르내렸습니다. 드라마 주인공 고아인(이보영 분)의 모델이 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인물. 바로 삼성그룹 최초 여성 임원이었던 최인아 제일기획 전 부사장입니다. 광고는 경쟁 PT로 살아남은 하나의 크리에이티브만 선택되는 시장입니다. 극단적인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그에겐 특별한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요?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 책방을 차린 지 만 7년. 그는 현재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최인아 대표를 만나고 왔습니다. 최인아책방 최인아 대표. 사진 최인아대표 ━ 고객 입장에서 질문하기 최인아책방 책장에는 사람들이 한번쯤 고민할 법한 질문들로 분류된 책들이 놓여있다. 2016년 8월 서울 강남구에 문을 연 최인아책방은 주인의 취향이 가득 담긴 독립서점입니다. 책방에 들어가자마자 마음을 읽은 듯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 ‘스트레스, 무기력, 번아웃이라 느낄 때’… 기존 대형 서점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큐레이팅인데요. 책이 일종의 솔루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반영된 거라고 합니다. “새로운 캠페인을 앞두고 정리가 안 되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어요.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아!’ 할 때가 있었거든요. 채 정리되지 않은 제 안의 생각과 책이 딱 만나 불이 들어오는 거죠.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어떤 해법을 찾는 과정이에요. 책은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죠. 단순히 책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서점이 아닌 ‘책방’을 열기로 했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유튜브를 찾는 디지털 시대. 사람들이 직접 오게끔 해야 했습니다. 광고 생활 30년, 몸에 밴 고객 중심 마인드를 작동시켰습니다. “책방에는 여가를 쪼개서 오는 거잖아요. 필수 활동 제외하면 몇 시간 안 돼요. 백화점 가는 대신, 친구 만나서 노는 시간 대신에 오는 거예요. 게다가 온라인으로 모든 게 가능한 시대, 몸을 움직여서라도 갈만한 가치가 있어야 했어요.” 그는 질문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사람들은 왜 책을 읽을까?’로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책을 살까’는 어쩌면 질문을 가장한 ‘목표’였어요. 독자 입장에서 책을 읽는 의미를 찾는 게 먼저였어요. 우리가 확인한 건 사람들은 어떤 도전을 앞두거나, 고민이 있을 때 책을 산다는 거였어요. 그 고민에 잘 답해야겠다 생각했고, 그래서 나온 게 고민별 분류였어요.” 창립 당시 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12가지 주제를 정하고, 지인에게 책 추천을 받았대요. 더불어 인생의 책을 10권 골라달라 주문했죠. 정성스러운 추천 이유도 함께요. 이 귀한 책 리스트를 밑천으로 책방을 열었습니다. ‘거꾸로 내게 청하면 절대 못 할 일’을 해준 사람이 160여명이 됐대요. ━ 책만 팔지 않아요 [책에 담긴 추천 사유가 담긴 손편지. 사진 정세희 기자] 최인아책방에서는 책만 팔지 않습니다. 회원에게는 추천 이유를 쓴 손편지와 함께 책이 배달돼요. 그리고 매달 저자와 독자들을 만나게 하는 오프라인 북토크를 열고 있죠.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 시간에 다른 걸 하기보다 여기 오는 게 좋아야, 또 그게 반복돼야 생존할 수 있었어요. 책을 중심으로 하는 콘텐트를 만들고, 총체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 챗 GPT에 ‘오프라인 책방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해?’물어보니 딱 이 얘기를 하더군요. 얘는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웃음)” 코로나 위기도 있었지만 최인아책방은 명실상부한 서점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강남 파이낸스센터에 2호점도 생겼는데요. 그는 ‘책만 팔지 않는다’는 방향성이 맞았다는 걸 증명한 시간이었다고 해요. 참, 홍대나 성수 같은 핫플레이스가 아닌 강남을 택한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우리 공간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일하는 자, 고민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강남 파이낸스센터에 자리한 최인아책방 2호점. 사진 최인아책방] ━ 지름길에는 덫이 있다 독립서점의 매력은 주인장의 고민과 신념을 나눌 수 있다는 겁니다. 광고쟁이 시절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도대체 그는 어떻게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었을까요. ‘지도 위의 대한민국은 작지만 구석구석 다녀 보면 참 큰 나라.’ 그가 만든 SK엔크린 광고 카피인데요. 평소 여행을 좋아하던 그가 구불구불한 산을 다니며 느꼈던 경험에서 나온 문구라고 합니다. “유럽은 트인 벌판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서 품고 있는 게 참 많구나. 제 창고에 있던 생각인데, 프로젝트를 만나 끄집어진 거예요. 아이디어는 경험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때를 만나 발현돼요. 그래서 이 창고를 채우기 위해서 항상 질문하고, 안테나를 돌려야 해요.” 가뜩이나 일하는 것도 고단한데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할까요? 그는 ‘지름길에는 덫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열매도 시간과 수고가 들어가지 않은 것은 없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종종 가지 않고 누리는 방법 혹은 수고를 덜 방법을 고민하는 것 같아요. 수고 자체가 어렵기는 하겠죠. 어차피 해봤자 안될까 걱정할 수도 있고요. 계산서는 정확해요. 애쓴 것은 절대 어디 가지 않고 창고에 쌓일 겁니다. 기회를 기다리면서요.” 직장에서 최소한만 일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조용한 사직’ 열풍에 대해 최 대표가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회사에서 시키는 것만 하며 때우는 시간마저도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일부라는 거죠. “마음에 드는 회사에서,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면 그게 가장 좋죠.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사실 더 많거든요. 조용하게 그만둔 듯 지낸다? 그건 조직이 아니라 당신에게 좋지 않아요. 돈은 없다가도 생길 수도 있어요. 시간은 생기는 법이 없어요. 아무리 보톡스를 맞아도 시간이 늘어나지는 않잖아요. 회사에서 보내는 그 시간마저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산이고, 모든 경험은 어디 안 가고 쌓이게 될 거예요. 이건 회사가 아닌 바로 당신에게 좋은 거예요.” ━ 최인아의 독서법 독서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에 응당 들여야 할 시간과 수고를 회피하지 말라고 강조했어요. “책은 질문이에요. 책이 나오기까지는 저자에게 질문이 있었을 거예요. 이를 오랜 시간 천착한 끝에 빠르면 몇 달, 길게는 몇십 년 그가 도달한 어느 정도의 결론을 적은 게 책이거든요. 우리가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그 질문을 찾는 것, 그리고 내 생각을 뭔지 생각해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또 다른 팁은 책을 평가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라는 거예요. 이건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콘텐트를 즐길 때도 해당하는 건데요. 만든 사람의 의도를 읽으며 소통하는 게 흠뻑 누리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책방 주인의 취향이 잔뜩 담긴 책이 궁금하시다고요? 최근에 읽은 일본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추천했어요. “건축학자가 나오는 책인데 저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재해석해 읽었어요.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때, 내가 어떤 뜻이 있는데 이게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절망하잖아요. 하지만 주인공은 아랑곳하지 않아요. 제 인생 오랜 화두이기도 한데, 이를 감각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육체와 정신 이원론자였던 그의 생각을 바꿔준 『움직임의 뇌과학』이라는 책도 함께 소개했어요. ━ 좋은 질문이란 질문을 던지며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어요.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 아는 게 어쩌면 더 필요할지도 몰라요. 성공한 광고인이자, 독립서점계의 브랜드가 된 그가 말하는 잘 질문하는 법을 전합니다. “질문에도 퀄리티가 있어요. How(어떻게)는 주로 따라가는 자의 질문이에요. 하지만 뭔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의 질문은 달라요. 그들은 이게 뭐지? 어디로 가야 할까? What, Why와 친한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품으면 발효가 일어나고, 그 끝에 생기는 게 인사이트예요. 당신의 창고를 좋은 질문으로 채우세요.” [최인아책방의 독특한 큐레이팅. 책방은 독자가 품을만한 질문들을 대신 건네고, 책으로 솔루션을 제공해준다. 사진 정세희 기자]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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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사이 입소문난 그 반지…매듭장인 할매들, 세계 넘보다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목소리, 'Voice Matters(보이스매터, 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 고령사회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어르신들의 장인 정신과 기술이 합쳐진 브랜드가 더 많아지면 좋겠네요.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지난해 10월 비크닉 레터를 통해 교복 업사이클링 브랜드 '리버드(RE:BUD)'에 대해 얘기했는데요. 비크닉 인스타그램에 @blingx2_wendy님이 남겨주신 댓글입니다. 리버드가 특별했던 건 교복 해체 작업, 봉제 등 제품 생산 공정에 시니어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켰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의 손길로 재탄생한 제품이 제값에 팔리고, 그 수익은 다시 시니어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이 되는 등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어요. 비크닉 보이스매터, 오늘은 경상북도 상주로 향합니다. 김영자 할머니(80)가 자전거를 타고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으로 향하고 있다. 남채린 PD ━ 무쓸모의 쓸모, 안방 매듭장인 세상 밖으로 소셜 벤처 알브이핀의 신봉국 대표 고향은 상주입니다. 인구 10만이 채 되지 않는 상주시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33.6%에 달합니다. 정서적 외로움, 빈곤 등 고향의 여성 노인 문제에 주목한 신 대표는 2015년 '마르코로호'라는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신발 하나를 사면 하나가 자동으로 기부되는 '탐스슈즈'처럼,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돈도 버는 소셜 벤처가 집중 조명을 받을 때였죠. '코리안 할매'의 야무진 손재주는 그야말로 모래 속 진주였습니다. 안방 장인을 세상 밖으로 이끌 사업 아이템으로 신 대표는 팔찌를 선택했어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마르코로호 시작을 알렸죠. 할머니들이 야무지게 폴리에스테르 실을 하나하나 교차시켜 만든 매듭 팔찌를 보상품으로 줘 펀딩으로 1100만원을 모았습니다. 할머니 다섯 분과 시작했던 사업은 어느덧 8년 차에 접어들었고, 지금은 상주 시니어 클럽과 손잡고 세를 키우고 있어요. 신 대표는 단순 복지 차원을 넘어 노인을 위한 시장형 일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숙련된 할머니들의 시간당 수입은 최저임금(2022년 기준 9160원)의 2배쯤 된다고 해요.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 특별수당까지 받고요. 평균 주 2회 하루 4시간 정도의 소일거리이지만 용돈 벌이로는 쏠쏠한 셈이죠. 지난 2월 1일 경북 상주에 있는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에서 한 할머니가 폴리에스테르 실을 교차시켜 매듭 팔찌를 만들고 있다. 남채린 PD 돈도 돈이지만 마르코로호와 4년 이상 오래도록 연을 이어온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일의 가치'가 있는데요. 바로 일상의 행복입니다. "가기 전에 집에서부터 이제 또 꾸미잖아. 안 그러면 뭐 생전 화장을 하겠어. 거울도 한 번 더 보고. 옷도 안 입던 거 곱게 차려입고. 가면은 또 이제 앉아서 재미나게 서로 웃으며 얘기도 하고 커피도 한 잔씩 먹고. 다들 일하면서 한 번씩 이래 말해. 웃고 일하는 이 순간이 참말로 좋다고. 가치 있다고." (김영자 할머니, 80세) "내 이거 하는 거 보고 애들이 자꾸 나무래싸. 그러면 이카지. 너도 나이 들어봐라. 한가하면 더 외롭고 안 됐는데, 이런 일거리라도 있으면 너무 재미있고 좋다고. 너도 내 나이 되보믄 다 이해할기다." (강임순 할머니, 76세) 지난 2월 1일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에서 할머니들이 매듭 반지를 만들고 있다. 남채린 PD ━ 따뜻한 혁신, 자발적 소비 이끌다 마르코로호 제품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건 나뭇잎 반지입니다. 무난한 색상이라 매일 착용해도 부담이 없고, 생활 방수가 되는 폴리에스테르 실로 만들어 인기가 많다는데요. 주 고객층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여성이라고 합니다. 마르코로호 홈페이지, 무신사,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을 통해 우정링, 커플링으로 많이 구매한다고 하는데요. 마르코로호 전 제품에는 매듭 할매들이 손글씨로 남긴 감사의 말이 담겨 있습니다. 그 특별한 손편지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죠. 순수익금의 20%는 기부금으로 누적됩니다. 창업 초인 2015년부터 매해 2000만원꼴로 지역 노인을 위한 기부활동을 이어왔다고 해요. 마르코로호의 제품은 일부러 마케팅하지 않아도 저절로 입소문이 났습니다. 의미 있는 선물을 찾던 팬들이 매듭 팔찌나 반지를 선택하고, 연예인들이 그걸 착용하면서 자연스레 알려지는 식으로요. 대기업의 협업 제안도 적잖다고 합니다. 마르코로호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매듭 반지와 이 반지를 만든 할머니가 직접 쓴 손글씨. 사진 마르코로호. ━ 매듭장인 할매들, 해외 시장도 접수할까 창업 8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신 대표는 이제껏 해외 판매 개척을 쉽게 꿈꾸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액세서리 시장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죠. 그 작은 시장의 절반 이상은 예물이 차지하고 있고요. 신 대표 말에 따르면 매듭 액세서리 시장은 겨우 3% 수준이라고 하네요. 이제 사업이 궤도에 올랐고, 할매들의 '손기술'을 해외에도 알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해요. 신 대표는 수출 지원 사업을 활용해 올해 유의미한 결과를 꼭 이루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안방 매듭장인 할매들의 해외 진출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품군을 매듭 액세서리에서 뜨개 제품으로까지 확장하겠다는 포부도 있습니다. 상주뿐 아니라 전국의 더 많은 어르신에게 일할 기회를 드리기 위해서죠. 균일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표준 뜨개 도안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을 회관 등에 뜨개 키트와 표준 도안에 맞춰 제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 등을 함께 보급할 계획입니다. 할머니가 만든 매듭 팔찌들이 수납함 위에 놓여 있다. 사진 마르코로호 브랜드 마르코로호의 대표 매듭 팔찌. 사진 마르코로호 ━ MZ세대 탐구만큼 나이 듦에 대한 탐구도 필요하다 신 대표는 겪어보지 않은 노년에 대해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바람에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해요. 일례로 매듭으로 제작할 제품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상세 설명과 이미지가 담긴 PPT를 만들었지만, 이 정성은 그대로 할머니께 전달되지 못했어요. 글자를 보는 게 어려운 할머니도 있었던 거죠. "이분들이 정서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 할머님들에 대한 이해도가 초창기에는 낮았어요. 내 문제라 인식하는 순간, 단순히 어떤 노인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라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게 편하고 쉬워지더라고요. (웃음)" 2년 뒤면 우리나라도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노인을 그저 젊은 세대가 부양해야 하는 짐으로만 여겨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MZ세대 담론보다 중요한 게 존엄한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비크닉 보이스매터(Voice Matters!)는 기회가 닿는 대로 시니어의 활동 영역을 넓혀가며 고령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브랜드를 만나보겠습니다. bicnic 관련기사 '막강한 능력' 가진 침대 회사…소아 병동 탈바꿈 나선 까닭 [비크닉]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 편견 때문에 못 봤던 500조 시장…'우영우'들 품는 포용의 패션 [비크닉]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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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열광하는 '제로' 소주…설탕 없는데 달콤한 술 맛 비밀은 [비크닉]
━ #INTRO: 헬시플레저 소주로 만든 칵테일. 사진 언스플래시 비크닉 독자 여러분, 술 좋아하세요? 저는 집에서 가끔 보드카와 위스키로 직접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곤 해요. 술의 맛과 향을 즐기는 건강한 취미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초록색 병에 든 독한 술로 '부어라 마셔라' 했던 음주 문화가 술을 즐기는 문화로 점점 바뀌고 있어요. 건강한(Healthy)과 기쁨(Pleasure)를 합쳐 건강을 즐겁게 관리하자는 '헬시플레저'가 주류 시장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죠. 독주하면 떠오르는 소주도 예외는 아니에요. 최근 소주 업계의 트렌드 변화를 알 수 있는 단어는 '제로(Zero)', 즉 무가당 소주예요. 설탕도 넣지 않았는데 달곰한 무가당 소주,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그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지난달 25일,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40240 독도소주' 공장을 찾았습니다. 소주 공장의 이모저모, 비크닉 독자 여러분께 처음으로 공개할게요. ━ #어떻게 만들지?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독도소주 공장. 사진 케이알컴퍼니 이날 방문한 공장에서는 무가당 증류식 소주인 '독도소주 제로슈거'를 생산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모습이었어요. 소주의 원료는 쌀이에요. 쌀을 도정하면서 공장의 하루는 시작됩니다. 평창과 인근 시군구에서 매입한 벼 이삭을 털어 탈곡하고, 껍질(왕겨)을 벗겨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미를 만들죠. 이렇게 도정한 쌀을 짧게는 2주, 길게는 보름간 발효해요. 임진욱 독도소주 대표는 제품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원재료인 쌀의 '향'이었다고 설명했어요. 즐기면서 마실 수 있는 술, 향이 나는 술을 만드는 게 목표였죠. 그래서 쌀을 직접 도정해서 써야겠다고 결심했대요. 독도소주 공장 내부 모습. 사진 박이담 기자 도정한 쌀을 증류하는 모습. 사진 케이알컴퍼니 갓 발효한 쌀은 막걸리 같은 형태의 술이 되는데요, 도수가 무려 70도에 달하는 독주예요. 건더기를 살짝 걸러 한 모금 마시니 입가부터 목까지 확 뜨거워지면서 제법 취기가 올라옵니다. 생쌀의 맛도 느껴지고요. 이 정도도 제법 그럴싸한 술이 완성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소주가 나오기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증류식 소주를 만드는 과정의 시작이거든요. 맑은 소주를 만들기 위해선, 기압을 낮춰 막걸리 형태의 원주(元酒)를 끓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알코올을 빼내야 해요. 이렇게 증류한 원액에 물을 섞는 제성 과정을 거치면 70도짜리 술이 마법처럼 17도, 27도, 37도로 바뀝니다. 이때 섞는 물도 특별합니다. 울릉도 앞바다 해저 1500미터에서 끌어올린 해양심층수에서 농축한 미네랄을 역삼투압 처리해 얻은 순수한 물을 사용한대요. 단맛을 내는 과당(설탕) 대신 에리트리톨, 스테비아, 토마틴 등 천연 감미료를 추가해 달짝지근한 맛을 살리면 그제서야 소주 한 병이 완성됩니다. 단맛을 내지만 체내 흡수는 적은 원료들을 연구했다고 임 대표는 설명했어요. ━ #독도를 알리고 싶었다 독도소주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포장 라인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케이알컴퍼니 독도소주를 기획한 임진욱 대표는 과거 운수 기업 대표였던 시절, '타요 버스', '소녀상 버스' 등을 기획한 아이디어 뱅크였어요. 독도소주를 만들기로 결심한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미국 나파밸리에서 우연히 구매한 와인 덕분이었어요. 재미교포 안재현씨가 2007년 '독도(Dokdo) 와이너리'를 설립해 생산한 '799-805'라는 와인이었죠. "799-805는 독도의 예전 우편번호였어요. 판매 수익의 10%는 독도를 홍보하는 비영리단체에 후원했고요. 나라에서 도와주는 것도 없는데 독도를 알리기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이렇게까지 노력한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독도소주 제로슈거' 라벨 디자인. 케이알컴퍼니 독도소주를 기획한 임진욱 케이알컴퍼니 대표. 사진 케이알컴퍼니 임 대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독도를 알리고 싶어서 독도소주를 만들었어요. 이같은 기획 의도는 소주병 라벨 곳곳에 녹아있어요. 독도의 새 우편번호 '40240', 독도의 위도와 경도, 영어로 '한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The beautiful island of Korea)' 등이요. 한때 독도 앞바다에 살았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춘 '강치', 섬에 독도의 자음과 모음을 풀어 쓴 'ㄷㅗㄱㄷㅗ'도 섬 안에 그려 넣었어요. 독도소주 생산지로 평창을 선택한 것 역시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직관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평창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된 도시니까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독도소주는 독도와 울릉도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꼭 구입해야 하는 필수 아이템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새로운 지역 기념품이 됐어요. 울릉도 지역 7곳의 점포에서 전체 상품군 중 매출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요. 독도소주를 만들어 해외에 수출해 세계인들에게 독도를 알리는 게 꿈입니다. 독도소주를 마시고 ‘독도가 뭐지?’ 정도만 떠올려도 저는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로 소주 경쟁, 더 치열해진다 사진 BGF리테일 건강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젊은 층이 제로 식품에 열광하고 있어서 무가당 소주 시장은 앞으로 더욱 성장할 전망입니다. 독도소주 뿐 아니라 이미 무학, 대선주조, 롯데칠성음료, 하이트진로 등 주류 기업 대부분이 무가당 소주 시장에 진출했어요. 올해부터 주류에도 열량과 영양성분을 표기하는 '주류 열량 자율 표시제'가 확대 시행된 점도 업체 간 경쟁이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무가당 주류가 처음 출시된 지난해 9월 이후 매출이 매달 두 자릿수로 성장해왔어요. 연령별 매출 비중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23%, 30대는 36%. 주로 2030이 찾는 술입니다. 다만, 제로라고 해서 '제로 칼로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류를 함유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열량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무가당 소주 제품의 영양 정보를 살펴보면 당류는 0%이지만 총칼로리는 일반 소주와 비슷한 300여kcal 수준이에요. 소주의 열량을 좌우하는 건 당보다는 알코올이기 때문이죠. 살을 빼고는 싶은데 술을 마시고 싶다면, 제로 소주를 마시는 것보다는 술을 자제하는 것이 더 낫다는 얘깁니다. 과유불급, 술은 기분이 좋을 정도로만 적당히 즐기자고요. 지나친 음주는 몸에 해롭다는 사실, 잊지 말아요! ━ #뱀발: 소주(燒酒)와 소주(燒酎) 사진 중앙일보 비크닉 댓글 캡처 지난해 원소주를 다룬 비크닉 기사에 눈에 띄는 댓글들이 달렸어요.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의 한자를 각각 '술 주(酒)', '전국술 주(酎)'로 달리 표기하는 이유에 대한 작은 논쟁이었어요. (비크닉의 댓글 창이 이처럼 건강한 토론의 장이 되는 건 언제나 팔벌려 환영입니다!) 같은 소주인데 어떤 곳에선 '燒酒'라고 쓰고, 또 어떤 곳에서는 '燒酎'가 되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소주의 한자어를 燒酒로 정의했지만, 시판되는 대부분의 소주병 라벨을 확인해보면 燒酎라는 표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거든요. 책 『술의 여행』의 저자 허시명 평론가는 燒酎가 구한말에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일본식 조어(造語)라고 설명했어요. 1909년에 일본인의 주도로 국내에 주세법이 만들어지면서 일본식 증류주인 소주(燒酎, しょうちゅう)가 소주(燒酒)를 대체하게 됐다는 것이죠. 우리 역사에 소주(燒酒)가 등장한 것은 『고려사』 우왕 원년(1375)이었고, 조선 후기까지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소주는 사실 모두 소주(燒酒)였다는 게 허 평론가의 주장이에요.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도 燒酒는 100번 이상 나오지만 燒酎는 등장하지 않네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소주(燒酒)라는 말은 희미해졌어요. 하지만 전통주의 계보를 잇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우리 소주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을 겁니다. 비크닉 '막강한 능력' 가진 침대 회사…소아 병동 탈바꿈 나선 까닭 [비크닉] [단독] 한국맥도날드, 참치 회사 품 안기나…동원 인수 추진 철저히 계산된 철수였다…오픈런 부른 파파이스 2년만의 귀환 [비크닉] 60만원 불러도 없어서 못판다, 아디다스 '74살 축구화' 뭐길래 [비크닉]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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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능력' 가진 침대 회사…소아 병동 탈바꿈 나선 까닭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목소리, 'Voice Matters(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 잘하는 일로 세상을 이롭게 '선한 영향력'이란 말을 잘 사용하는데요. 저마다 정의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는 각자가 지닌 능력을 비단 자신의 발전뿐 아니라 타인과 사회의 성장을 위해 쏟는 활동이라 풀이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잘하는 일로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행복감을 주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지요. 2~3년 전부터 기업의 이 같은 활동을 'ESG 경영'이라 얘기해왔습니다. 좀 더 좁혀 말하면 ESG 중 S(Social, 사회)에 해당합니다. 본업을 잘해서 재무 가치를 끌어올릴 뿐 아니라 인권 경영, 사회공헌, 소비자 안전 등의 영역도 고려하며 기업의 사회(기여)가치를 함께 끌어올리는 것이죠. 기업의 '선한 영향력'은 이제 필수가 됐습니다. 2년 전 유럽연합(EU)은 소셜 택소노미(Social Taxonomy) 보고서 초안을 마련하고, 무엇이 진짜 사회공헌인지 판별하는 기준을 세웠습니다. 기업이 잘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뿐 아니라, 그 잘하는 일로 세상을 얼마나 이롭게 했는지 객관화시켜 평가하겠다는 포석입니다. 국내에서도 더디지만 소셜택소노미 논의가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는 모양새인데요. 비크닉 Voice Matters는 올해도 잘하는 일로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탠 기업과 브랜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시몬스가 지난해 10월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환아에게 선물한 굿즈(상품) 세트로, 시몬스가 기획한 문구용품들이 담겨 있다. 사진 시몬스. ━ 삼성서울병원과 협업한 ESG 침대 소아·청소년은 국가의 미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출산율 감소의 여파로 소아·청소년 의료 붕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얼핏 보면 이렇다 할 연결 고리가 없을 것 같은 침대회사 시몬스가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더하기로 했습니다. 시몬스침대와 삼성서울병원의 인연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소아암, 중증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소아·청소년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시몬스는 매해 3억원을 기부해왔는데요. 기부금은 주로 수술이나 검사 등 외래 진료, 입원 치료비, 휠체어나 의료기기 구매 등에 활용됐습니다. 기부금으로 치료받은 환자 수만 80여 명에 달한다고 하네요. 시몬스는 단순 기부에 그치지 않는,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다 이달 초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침대를 내놨는데요. 삼성서울병원과 협업한 'ESG 침대'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제품의 정식 이름은 '뷰티레스트 1925'. 지난 1925년 시몬스가 선보인 인기 매트리스 콜렉션 '뷰티레스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 시몬스에서 새롭게 내놓는 신규 매트리스입니다. 단단한 면, 부드러운 면을 모두 가지고 있어 양면 활용이 가능한 게 특징입니다. 시몬스의 다른 매트리스들처럼 1급 발암물질 라돈, 토론 안전 인증과 환경부의 국가 공인 친환경 인증을 받았습니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 소재를 적용했고요. '뷰티레스트 1925'. 사진 시몬스. '뷰티레스트 1925' 소비자 가격의 5%는 차곡차곡 적립돼 2025년 삼성서울병원 별관 자리에 증축 예정인 '소아·청소년 센터'(가칭) 리모델링 기금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제품을 구매하면 소비자 역시 간접적으로 기부에 힘을 보태는 셈이죠. 전국 매장에 해당 제품이 순차적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의미 있는 소비를 원하는 이들 사이에서 관심이 뜨겁다고 합니다. 이제 제품의 빼어난 기능, 성능만으로 시장을 이끌어가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한 제품이 지닌 서사, 이 제품이 세상에 나와 어떤 긍정적 나비효과를 일으키는지까지도 소비자의 깐깐한 선택 기준에 자리 잡은 것이죠. ━ 시몬스의 공간 브랜딩, 소아 병동에도 시몬스가 진짜 잘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공간 브랜딩'입니다. 시몬스는 그 동안 경기도 이천, 부산,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왔는데요. 시몬스 테라스, 그로서리 스토어(식료품점) 등이 대표적 예입니다. 로컬 브랜드와 협업해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그 도시만의 문화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복합문화공간을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으로, 시몬스 브랜드를 오래도록 사랑한 팬(소비자)과 브랜드를 연결하는 일종의 사랑방으로 만든 겁니다. 이 특별한 공간의 기획과 디자인은 모두 시몬스 자체 '디자인 스튜디오'가 도맡았습니다. 지난해 문을 연 시몬스 청담 그로서리 스토어 전경. 이 팝업스토어의 공간 기획·디자인 등은 시몬스 내 자체 ‘디자인 스튜디오’가 맡아 진행했다. 사진 시몬스. 막강한 이 브랜딩 능력을 이번에는 소아 병동 단장에 쓰겠다는 포부인데요. 시몬스는 오는 2025년 증축 예정인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센터'(가칭) 공간 디자인에도 힘을 쏟습니다. 삭막함, 긴장감, 두려움이 감도는 병원이 아니라 환자든 환자 가족이든 누구나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라는데요. 이미 스페인, 영국 왕립 병원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소아·청소년 병동을 작은 미술관 혹은 상상력의 공간으로 활용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이 긴장감을 덜고, 인지 발달에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각종 기하학 도형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거나 은은한 파스텔 색상을 활용해 차분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것이죠. 치료 공간이기 이전에 심적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한 겁니다. 공간을 독특한 감성으로 채워 넣어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던 시몬스가 삭막한 병동을 어떻게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까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는 삼성서울병원 의료진, 관계자 등과 조율하며 찬찬히 밑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공간 브랜딩뿐 아니라 소아·청소년 병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다양화하는 스토리 브랜딩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소아·청소년 병동에는 환자와 환자 가족, 의료진뿐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 매우 힘겹게 일상을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결코 이 모습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병동의 일상에도 소소한 인생사가 있고, 웃음이 있고 행복이 있죠. 우리가 쉽게 보지 못했던 다양한 장면과 이야기를 잘 끌어내 소아·청소년 병동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관점을 다양화하고 싶다고 합니다. "ESG 경영이 대단히 거창한 건 아닙니다. 우리가 잘하는 것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마중물이 되고 싶어요. 삼성서울병원-시몬스의 ESG 협업 모델이 잘 정착되고, 소아·청소년 센터가 자체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자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고 싶습니다." - 김성준 시몬스 브랜드전략기획 부문장- 보이스 매터는 다음에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 브랜드를 찾아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Bicnic 비크닉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 편견 때문에 못 봤던 500조 시장…'우영우'들 품는 포용의 패션 [비크닉] [비크닉] 그린워싱, 무조건 때리는 게 지구에 득일까?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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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계산된 철수였다…오픈런 부른 파파이스 2년만의 귀환 [비크닉]
[파파이스 강남점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 사진 파파이스] 2000년대를 주름 잡던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돌아왔습니다. 짭조름한 양념 가득한 감자튀김과 딸기잼에 찍어 먹는 비스킷이 트레이드 마크였는데요. 바로 파파이스입니다. 2019년 한국 시장을 떠난 파파이스는 올해 1월 강남점을 시작으로 재런칭을 했는데요. 수백명이 줄을 설만큼 오픈런 열기가 뜨거웠다고 해요. 파파이스가 철수 2년 만에 귀환한 이유가 뭘까요? 브랜드 소개팅 이번에는 한국에서 파파이스를 운영하는 넌럭셔리어스컴퍼니 이문경 상무(COO)를 만나고 왔습니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에서 굵직한 히트 상품을 만든 패스트푸드 업계 전설 같은 분이랍니다. 그는 파파이스의 성공적인 재탄생이라는 특명을 받았다고 해요. ━ 철저히 계산된 철수였다 파파이스는 1972년 미국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브랜드예요. 한국에 처음 들어온 건 1994년. 롯데리아(1979), 버거킹(1984), 맥도날드(1988)에 비해서는 좀 늦었지만, ‘케이준’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1976년 파파이스 루이지애나 식당의 모습. 사진 파파이스] 케이준은 과거 프랑스령이었던 미국 남서부 루이지애나의 토속 요리 스타일을 말하는데요. 닭튀김을손으로 반죽을 하고 조미료를 사용하고, 프랑스 시골 요리에 파프리카, 고추와 같은 현지 조미료를 융합한 게 특징입니다. 한국에서는 2000년 초엔 매장 수가 200개가 넘어 패스트푸드 4대장으로 불리기도 했어요. 한국 패스트푸드 역사에서 빠질 수 없던 이 브랜드가 20년 만에 철수한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어요. 알고 보니 이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전략적 후퇴였어요. 처음부터 한국 시장을 완전히 포기할 생각은 없었답니다. 아시아 태평양 트렌드를 이끄는 한국은 어떻게든 키워야 했던 거죠. 그러니까 한국 시장 철수는 사실 새 주인이 마음껏 도약할 수 있도록 하는 밑작업이었대요. 굴욕(?)의 과거와 청산하고 새 출발 하자는 의미였겠죠. 새 주인은 ‘신라교역’이 됐습니다. 이 회사는 50년간 원양어업 사업을 해온 장수 기업인데요. 사업 다각화를 위해 외식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해요. 브랜드 인수를 앞두고 전문성을 높이고자 패스트푸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이문경 상무를 영입했죠. ━ 전 국민이 아는 브랜드보다 강력한 건 없다 외식 유통 회사로 변신하고자 하는 신라교역은 여러 브랜드 인수를 고려했다고 하는데요. 이 중에서 파파이스를 우선적으로 점 찍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파파이스라는 브랜드가 가진 힘입니다. “제가 강력하게 믿는 것 중 하나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브랜드보다 강한 브랜드는 없다’는 거예요. 핫한 브랜드가 힙한 게 아니고 알고 있는 브랜드가 힙한 거예요. 전 국민이 한 번쯤 먹어봤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데요.” 처음부터 무언가를 키우는 것보다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브랜드를 활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거죠. 세대 교체가 이뤄지는 현 시기도 기회라고 생각했대요. “3040대에 파파이스는 추억을 가진 향수를 자극하는 브랜드고, MZ에게는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에요. 고객 관리 측면에 봐도 파파이스는 모든 세대에게 어필이 가능한 거죠.” 치킨버거 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점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했대요. 역으로 보면 이만큼 파이가 지속적으로 늘어난 시장도 없다는 겁니다. ━ 새로운 가성비 시대 사실 파파이스가 한국 시장을 잠시 떠났던 2년 사이 시장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어요. 업계 정상인 맥도날드, 맘스터치 등도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 새 출발을 알린 파파이스의 무기는 뭘까요. 첫 번째 꼽은 것은 미국 남부 케이준 스타일이라는 정체성입니다. 파파이스는 케이준 맛을 한국에 최초로 도입한 정통 루이지애나 스타일이라는 히스토리를 다시 강조할 예정입니다. “LA나 뉴욕 버거는 많이 알려졌지만 남부 스타일은 낯설죠. 케이준은 양념이 강하고 양도 많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제육볶음과 비슷해요. 일종의 그 지역의 소울푸드죠. 이 색다른 미국의 자극적인 맛을 알리고 싶어요.” 가성비가 중요한 패스트푸드 특성상 가격은 핵심 요소입니다. 예전에는 파파이스가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지적이 있기도 했는데요. 그는 ‘이제 돈과 양으로만 계산되는 가성비 시대는 지났다’고 했어요. “물론 가격도 중요하지만요. 똑같은 가격에도 최고의 품질을 제공하고, 여기에 또 다른 가치를 주는 새로운 개념의 가성비가 필요해요. 치킨 회사가 와인 회사와 협업 하는 등 생각지도 못한 협업을 선보이는 등 새로운 실험을 할 예정이에요.” 얼마 전엔 화곡점 3호점도 오픈했대요. 앞으로는 일부 매장은 식사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미는 등 혁신을 시도한다고 해요. 오프라인 매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에서 고객과 만날 준비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파파이스 강남점 외관. 사진 파파이스 ━ 경쟁사 따라 하기 말고 우리만의 것 최근 파파이스 재오픈한 매장 위치를 두고 ‘KFC나 버거킹 등 경쟁 업체를 노리고 일부러 인근으로 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이는 사실이 아니래요. 이 상무는 “무작정 고객을 뺏어오는 경쟁 힘든 것”이라며 과거 버거킹 근무 시절 얘기를 꺼냈어요. “맥도날드가 토마토와 베이컨을 넣은 버거가 인기를 끌 때였어요. 보통은 경쟁사의 그 제품 고객을 뺏기 위해 비슷한 재료, 컨셉을 갖고 경쟁하거든요. 근데 서로 죽이는 경쟁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새로운 컨셉인 콰트로 버거를 내놨어요.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그가 선보인 이 버거는 미국으로 역수출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어요. 파파이스 역시 경쟁사를 따라 하는 경쟁은 안 하겠다는 의미겠죠. 지금 가장 인기 있는 메뉴만 봐도 기존 브랜드와는 다른 느낌이에요. 핵심 메뉴는 ‘치킨 샌드위치’인데요. 브리오슈 번에 케이준 향신료로 염지한 통다리가 들어간 게 특징이래요. 어찌 보면 다소 평범하고 심플해 보이는데요. 어떤 토핑을 얼마나 더 화려하게 넣을까에 집중하는 업계 신메뉴 경쟁과는 다른 전략이죠. “맥도날드는 브랜드적으로나 소비자 특성으로 보나, 효율과 시스템을 중시하는 이과생 이미지예요. 버거킹은 미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술학적이고요. 파파이스는 자기 주도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런 브랜드가 될 거고요.” ━ 마무리 한국인의 주식은 무조건 한식이었던 1980년대 후반, 햄버거는 절대 식사가 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맥도날드나 버거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런치 세트를 먹죠. 이게 치밀한 마케팅의 결과였어요. “20년 전 된장찌개가 5000원도 안 됐을 때 사람들은 왜 배도 안 차는 햄버거를 6000원 주고 먹느냐고 했어요. 절박한 마음으로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한번은 드셔 보시겠어요’ 라고 물었더니, 지나가는 분이 이렇게 답했어요. ‘3000원 정도면 뭐.’ 아! 한식을 이기기 위해서는 가격 문턱을 확 낮춰야겠다.” 바로 맥 런치의 시작이었다고 해요. 지금 업계는 어찌 보면 초심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요. 영양가 있고 맛있는 한식과 싸워야 했던 그때보다 지금은 더 경쟁자가 많은데도 말예요. 파파이스의 부활을 시작으로 치킨버거 업계가 제2의 전성기를 만들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비크닉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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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숍은 살아 움직인다, 비이커가 브랜드를 발굴하는 법 [비크닉]
남과 다르게 입고, 패션 트렌드를 빠르게 캐치하는 '패피(패션피플)'들이 열광하는 곳이 있다. 패션 바이어들이 국내외에서 발굴해 엄선한 옷을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곳, 바로 편집숍이다. 과거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 의류 제품을 선별해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테스트베드'였다면, 편집숍은 이제 브랜드를 발굴·개발하고, 자신만의 상품을 만들어 판매해 수익을 내는 '패션 플랫폼 브랜드'로 변모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성수동에 세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비이커 성수'를 열고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는 편집숍 브랜드 '비이커(BEAKER)'의 이윤경 삼성물산 패션부문 비이커팀 그룹장을 만나 좋은 브랜드를 발굴하는 노하우를 들었다. 지난달 18일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에 문을 연 비이커의 국내 세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비이커 성수'. 사진 비이커 ━ 편집숍의 쓸모는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내는 것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편집숍 브랜드인 비이커는 10년 전인 2012년 서울 청담동과 한남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편집숍 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메종키츠네, 아미, 르메르 등 신(新)명품에 등극한 다수의 글로벌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낫띵리튼, 더오픈프로덕트, 유스, 테켓 등 수많은 국내 신진 브랜드를 직접 키우기도 했다. 브랜드 발굴에 필요한 안목은 어떻게 길러야 할까. 이윤경 그룹장은 "항상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옷을 좋아하고 좋은 패션을 보는 눈은 기본기"라며 "실제로 비이커 바이어 중엔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패션을 소개하는 인플루언서도 많다"고 했다. 패션을 좋아하고 이를 찾는 사람이어야 좋은 브랜드와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그룹장은 "신명품이라 불리는 '잘나가는 브랜드'의 제품들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비이커가 쌓아온 바잉 능력의 결과물이고, 비이커의 지난 10년은 숨어있는 브랜드를 하나씩 찾아가는 여정이었다"며 "패션 트렌드는 멈춰진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인다. 편집숍도 그에 맞춰서 끊임없이 계속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숍의 원동력이자 쓸모는 숨어있던 브랜드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단독 매장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이커 성수'에 비치된 수입 브랜드 의류들. 박영민 기자 ━ 잘 되면 키워보고, 안 되면 빠르게 아웃 비이커는 시장에 안착한 몇 안 되는 국내 편집숍 모델이다. 2019년 손익분기점(BEP)을 넘기며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 사업이 안정 궤도에 들면서 오리지널(PB) 상품도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오리지널 상품이 문턱을 낮췄고, 지금은 비중도 전체 대비 20% 수준으로 올라왔다. 종잡을 수 없는 패션 시장에서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이건 뜨겠다' 싶어 제품을 바잉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이 별로인 제품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땐 제품 구성을 조금씩 바꿔 새로운 분위기로 다시 브랜드를 어필했다. 특정 브랜드의 상품이 100개라면, 100개 모두를 사 오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고객에게 맞는 옷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테스트해볼 수 있어요. 잘 되면 더 키우고, 안 되면 다른 브랜드로 빠르게 '인앤아웃(In and Out)'을 할 수 있어야 해요. 판단력이 중요한 이유죠. '비이커 성수' 1층에 비치된 제품들. 국내외 브랜드 제품이 섞여 있는 구성이다. 사진 비이커 ━ 편집숍 브랜딩, 제대로 보여주는 건 플래그십 스토어 해외 브랜드 일색이었던 편집숍이 지금은 국내 브랜드에도 많은 자리를 내주고 있다. 과거엔 국내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패션 브랜드를 수입해 보여주는 것에 주력했다면, 요즘은 잠재력 있는 '좋은' 국내 브랜드를 찾아내 소개하는 것이 편집숍 트렌드가 됐다. 다만 세계적으로도 패션에 민감하기로 정평 난 한국 패션피플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해외 브랜드보다 경쟁이 매우 치열한 것이 현실. 이 그룹장은 "국내 브랜드는 유행 주기(브랜드가 인기를 얻고 잃는 시간)가 매우 짧다. SNS에서 뜨는 브랜드라고 해서 편집숍에 들여놓았다가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관심에서 멀어지고, 또 다른 브랜드가 뜬다"며 "무신사, W컨셉 등 온라인 플랫폼 덕분에 오프라인 매장이 없어도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이커가 엄선한 국내 브랜드는 공간이 한정적인 백화점 매장 대신 한남·청담·성수 등 플래그십 스토어 세 곳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엔 이유가 있는데, 이 그룹장에 따르면 "매장 수가 많은 백화점 매장 매출이 훨씬 높지만, 비이커를 제대로 보여주는 건 플래그십 스토어"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캐시카우, 플래그십은 편집숍의 DNA가 담긴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서로의 역할이 다르다는 의미. 플래그십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선봉장 역할도 하는데, 이번 성수동에 세 번째 매장을 낸 이유 역시 새로운 지역 발굴 차원에서다. 이 그룹장은 "성수동은 소규모 디자이너부터 명품까지 다양한 콘텐트의 집합체로 변화하는 곳"이라며 "활발하게 젊은 층을 유입할 수 있는 '컬처 블렌딩 유니언'이라는 비이커의 콘셉트와 맞닿아 있어 플래그십 스토어에 적합한 장소"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비이커 성수와 같은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브랜드 '비이커'가 지향하는 컨셉추얼한 이미지와 분위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크닉 로컬과 상생 코드 품었다…진화하는 스타벅스의 공간 마케팅 [비크닉]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단독] '백색가전' 돌아온다…LG전자 다시 색깔 빼는 이유 콜라캔이 초록색이라면? 오뚜기 50년간 노란색 쓴 이유있다 [비크닉]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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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비크닉 'Voice Matters(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의 목소리, 비크닉 Voice Matters. ━ 올해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셨나요? 한해의 끝자락입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보고 다가올 새해를 준비할 텐데요. 몇 년 전부터 연말이면 빠지지 않고 이 질문을 스스로 건넵니다. "얼마나 자신에게 친절했나?"라고요. 살아가면서 '괜찮아' 가면을 자주 쓸 때가 많습니다. 괜찮지 않은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는 게 두려운 거죠. 진짜 마음을 살피지 않고 '괜찮아' 가면을 자주 쓰는 건 사실 자신에게 대단히 불친절한 행동입니다. 건강한 몸을 위해 우리는 좋은 음식을 찾아 먹고 열심히 운동합니다. 마음 건강, 정신 건강(mental health) 역시 마찬가지죠. 시간을 들여 잘 살피고 가꾸어 나가야 하지만, 진짜 마음을 들추고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약하다' 낙인(stigma) 찍힐까 두렵고, 터놓고 말할 대상을 찾기도 힘듭니다. 체계적으로 해법을 제시해주는 마땅한 곳도 없으니 그냥 홀로 견뎌내는 걸 택하는 것이죠. 꾸역꾸역 견디다 뒤늦게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세계질병 부담연구에 따르면 불안 장애, 주요 우울 장애 등 정신 건강 문제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 부담률이 전체 질병 부담률의 15%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챙기고 정신 건강을 살피는 건 모두의 일인데,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왜 자주 잊고 사는 것일까요? 이 근원적 물음에 답하며 무려 10여년간 마음 건강의 중요성을 외쳐온 브랜드가 있습니다. 영국 부티크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의 특별한 10년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조 말론 런던이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지난 10월 틱톡 크리에이터 레니(@itslennie)와 손잡고 만든 글로벌 소셜 임팩트(사회적 영향력) 캠페인 포스터. '자신에게 친절하라(Be Kind)'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사진 조 말론 런던. ━ 향기로 건강한 마음을 만들 수 있다면 우울감을 빠르게 해소하고 기분전환을 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향기죠. 향을 다루는 조 말론 런던은 일시적 기분전환에 도움을 주는 것에서 나아가 건강한 마음, 정신을 위한 보다 근원적인 고민을 일찌감치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2012년부터입니다. 당시 조 말론 런던은 자선 활동을 위한 특별한 향초 콜렉션(The Charity Candle Collection)을 내놨는데요. 지금까지 미국, 캐나다, 일본 등으로 판매 시장을 확대하며 약 300만 달러(39억원)의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제품 판매 수익은 정신 건강 문제 인식 개선에 힘을 보태고 있는 자선 단체 지원금으로 활용되거나,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활용됐습니다. 10년간 꾸준하게 이어졌던 이 의미 있는 행보를 보다 확장하기 위해 최근 이들은 별도로 'Shining A Light On Mental Health(정신 건강 문제에 불을 밝히자)'라는 재단도 발족했는데요. 지난 10월 10일 세계정신 건강의 날을 시작으로 내년 10월 9일까지 총 200만 달러(26억원)를 추가 기부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조 말론 런던 글로벌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 중 100만 달러(13억원)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에 전달될 것"이라며 "이 기금은 130개국 4750만 명의 아동과 보호자를 위한 정신 건강 프로젝트에 쓰일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조 말론 런던이 자선 활동을 위해 지난 2012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향초 콜렉션(The Charity Candle Collection). 사진 조 말론 런던 ━ 멘탈 헬스에 투자한 10년, 이젠 청년을 향해 조 말론 런던은 유니세프의 '아동·청소년 정신 건강을 위한 글로벌 연합(UNICEF's Global Coalition for Youth Mental Well-being)'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정신 건강을 위한 연합은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미흡하다는데 문제 의식을 갖고 각국 정부와 민간 기업의 힘을 모으고자 만들어진 곳입니다. 글로벌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 글로벌 보험사 스위스 취리히 보험그룹도 함께 하고 있죠. 이들은 2030년까지 30개국 3000만 청년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재정 지원 등 직접적 활동을 벌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답니다. 조 말론 런던 글로벌 관계자는 "이 연합의 전략적 멤버가 될 예정"이라며 "브랜드의 독자 활동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더 많은 브랜드가 함께하도록 독려한다는 의미다. 정신 건강을 위한 지난 10년의 노력을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 표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조 말론 런던의 글로벌 앰배서더(홍보대사)인 영국 모델 애드와 아보아(왼쪽)가 캐릭터 레니와 함께 정신 건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 조 말론 런던 조 말론 런던은 지난 10월 틱톡 크리에이터 레니(@itslennie), 영국 모델 애드와 아보아와 협업해 브랜드 최초로 글로벌 소셜 임팩트(사회적 영향력) 캠페인도 시작했는데요. 아보아는 전 세계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정신 건강 커뮤니티 '걸스 토크(Gurl’s Talk)'를 운영하는 액티비스트(활동가)이기도 합니다. 내년엔 아보아와 함께 한국을 포함 APAC(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돌면서 정신 건강 문제 인식 개선을 위한 다채로운 소셜 임팩트 활동 벌일 예정이라는데요. 즉각적인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활동이지만, 10년 넘게 꾸준히 한 주제를 놓고 활동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브랜드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신 건강이라는 주제에 찍힌 부정적인 낙인을 지워내고, 사람들이 정신 건강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을 돌보게 하는 게 우리의 궁극적인 바람입니다" (조 댄시 조 말론 런던 글로벌 CEO) ━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아요" 사회 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마음 건강에 누구든 문제는 생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 바로 알고, 정신 건강 유지를 위해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으며,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보건복지 전문가들은 이것을 '정신 건강 리터러시(Mental Health Literacy)'라 칭하기도 하는데요. 정신 건강 리터러시는 터놓고 말하는 것에서, 누구나 마음 건강과 관련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시작됩니다. 조 말론 런던 사내에서는 별도 교육을 받은 정신 건강 응급 처치 요원(Mental Health First Aiders)도 상주합니다. 동료들의 우울감을 알아차리고 그들에게 적절한 지지의 말과 해법을 건넬 수 있도록, 이보다 앞서 괜찮지 않은 마음을 털어놓고 적극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겠다는 취지에서죠. 마음 건강, 정신 건강은 나약함과 의지력 결핍의 문제는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이 안녕하지 못한가요? 그렇다면 언제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습니다. (It’s ok to ask for help). 자신에게 보다 친절해도 괜찮습니다. (Be Kind to yourself). 조 말론 런던이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지난 10월 틱톡 크리에이터 레니(@itslennie)와 손잡고 만든 글로벌 소셜 임팩트(사회적 영향력) 캠페인 포스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다(It's ok to ask for help)'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진 조 말론 런던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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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캔이 초록색이라면? 오뚜기 50년간 노란색 쓴 이유있다 [비크닉]
━ 신비한 색채 마케팅의 세계 만약 코카콜라 캔이 빨간색이 아니라 초록색이라면? 포카리스웨트가 파란색이 아니라 주황색이면 어떨까요? 뭔가 이상하죠? 컬러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인데요. 컬러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코카콜라는 “코카콜라 맛 자체가 첫 번째 비밀 레시피라면 코카콜라의 레드는 두 번째 비밀 레시피”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마트 식료품 판매대에서 노란색이 보이면 어떤 브랜드가 생각나세요? 브랜드 소개팅 비크닉 이번 주엔 오뚜기의 색채 마케팅을 소개합니다. 1980년대 오뚜기 광고. 사진 오뚜기 유튜브 ━ 색의 힘 색채 마케팅은 색을 활용해서 브랜드 고유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더 나아가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기법을 말해요. 브랜드의 시각적 요소는 로고나 심볼의 모양, 폰트, 색상 등이 있는데 이중 색의 영향력이 80% 이상이라고 해요. 색상에 대한 이미지는 보편성을 띄기 때문에 그 자체로 효과적인 언어가 되죠. 예를 들어 빨간색이 덥고 파란색이 시원해 보인다 등 이런 느낌은 전 세계인이 똑같이 느끼는 거니까요. 그래서 대부분 브랜드가 로고나 인테리어, 제품 패키지, 홈페이지 등에 색상을 활용하고 있어요. 애플의 무지개색 로고 심지어 기업의 정체성이 달라지면 색도 달라져요. 애플의 로고는 원래 무지개색이었어요. 1977년부터 1998년까지 여섯 가지 무지개 띠로 된 사과 모양이었죠. 당시 애플 컴퓨터가 컬러 모니터를 처음 지원한 가정용 컴퓨터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친근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이후엔 애플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애플 모니터가 컬러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없어지자 무지개색을 안 쓰게 됐대요. ━ 오뚜기의 선택은 한결같이 노랑 1960~70년 오뚜기 제품의 모습. 사진 오뚜기 홈페이지 오뚜기는 53년 전 창립 때부터 노란색을 써왔어요. 처음에는 노란색이 입맛을 돋워주는 컬러라서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제품의 통일감을 부여하려고 계속 쓰게 됐다고 해요. 패키지나 로고, 폰트에 노란색을 쓰는 게 컬러마케팅의 전부는 아녜요. 오뚜기는 최근 더 세련된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요. ‘Y100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컬러 프로젝트는 오뚜기 브랜드경험실 부서원들이 회사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노란색 물건을 쓰는 걸 보고 영감을 받은 거라고 해요. 어느 날 사무실을 둘러 보니 동료들 책상에 노란색 물건이 많이 있었대요. 보통 직장인들이 회사의 색을 자발적으로 사용하진 않잖아요. 근데 오뚜기 직원들은 노란색 넥타이를 매고, 명함 케이스, 필통, 노트 등을 쓰고 있었답니다. “그때 느꼈어요. ‘아 이미 우리는 노란색을 자발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네. 이건 브랜드만의 자산이었구나’”(조현국 브랜드경험실 팀장) 오뚜기의 색상을 더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그들은 첫 번째 활동으로 회사 색인 Y100을 활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색채학에서 Y100은 노랑을 의미하는 Y값이 100이면서 C(파랑), M(빨강), K(검은) 컬러는 0 값인, 다른 색의 요소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한 색이래요. “노랑은 회사가 50년 넘게 고집스럽게 지켜온 색이에요. Y100은 이 진심을 보여주는 상징이죠. ” Y100 프로젝트는 지난 3월 LCDC 팝업을 시작으로 7월엔 강남역에서 ‘노랑나랑노랑’이라는 테마로 팝업 스토어를 열어 큰 관심을 모았다고 해요. ━ 옐로우즈 캐릭터까지 확장 오뚜기의 캐릭터 옐로우즈 사진 오뚜기 최근엔 옐로우즈라는 캐릭터를 선보였어요.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보마켓 신촌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습니다. 옐로우즈의 메인 캐릭터는 ‘뚜기’(ttogi)예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오뚜기 로고에 있는 입맛 다시는 캐릭터를 본 딴 것 같더라고요. 묘하게 옛날 느낌이 나면서도 마냥 촌스럽지 않고 현대적인 게 ‘뉴트로’의 정석이었습니다. 김지현 브랜드경험실 팀장에 따르면 기존 로고의 상징과 의미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요즘 트렌드에 맞는, 지속 가능한 세계관을 보유한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고 해요. “어찌 보면 오뚜기의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그래서 오뚜기 구성원들의 애정과 공감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했어요. 다양한 사내 그룹에서 캐릭터 방향에 대한 인사이트를 수집하고 선호도 조사를 통해 시안을 좁혀 나갔어요.” 브랜드를 대표하는 로고에 어린이의 얼굴을 넣은 이유는 곧 오뚜기의 기업 이념과도 맞닿아 있다고 했어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국은 쑥쑥 성장하는 어린이처럼, 맛있는 음식을 통해 마음속 행복을 키워줄 수 있는 기업이 되자는 의미라고 해요. 마요네즈 색깔의 강아지 ‘마요’(mayo), 케첩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의 병아리 ‘챠비’(chabI) 등 다른 캐릭터도 귀엽죠? ━ 젊은 감각으로 리브랜딩 효과 Y100프로젝트에 쓰인 굿즈 사진 오뚜기 현장에는 옐로우즈 캐릭터를 입힌 다양한 굿즈가 전시돼 있었는데요. 의외로 오뚜기 브랜드가 바로 생각나진 않았어요. 오뚜기라는 영어 글씨가 쓰여 있긴 했는데, 그 자체로도 그냥 디자인 요소처럼 느껴졌어요. 그동안 오뚜기 하면 좀 엄마가 쓰는 것 같은, 그래서 믿고 살 수 있긴 하지만 뭔가 올드한 이미지가 조금 있었잖아요. 근데 그 오래된 오뚜기 느낌이 안 나고, 옐로우 테마의 힙한 인테리어 소품 브랜드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의도된 전략이라고 해요. 패키지나 로고를 바꾸지 않았는데도, 브랜드 이미지가 유쾌해지고 젊어지는 효과를 노린 거죠. 실제 팝업 현장에선 주방에서 자주 보던 마요네즈의 노란 뚜껑이나 진라면의 노란 포장지도 왠지 모르게 낯설게 보이더라고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브랜드의 주 영역인 식탁을 벗어나 다양한 공간에서 노랑을 경험하고 오뚜기를 떠올렸으면 했어요” 앞으로 파인아트 작가들과 협업해 노랑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매월 선보이고, 페인트 전문 브랜드와 Y100 컬러 페인트를 만드는 작업도 준비 중이라고 해요. ━ 마무리 하인즈의 초록색 케첩 사진 하인즈 색채 마케팅의 실패 사례도 궁금하다고요? 하인즈의 초록색 케첩, 해태의 노랑 콜라는 창의적인 시도였지만 소비자에게 외면받았어요. 초록색은 식욕을 떨어뜨렸고, 노랑은 탄산음료의 청량감과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색을 고를 때는 물리적, 심리적, 생리학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상품의 이미지와 시장의 특성을 철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해요. 오랜 전통이 담긴 본인만의 색상을 힙한 감성으로 재밌게 풀어내고 있는 오뚜기. 그들의 노랑이 궁금하시다면 31일까지 서울 신촌 보마켓에서 열리는 옐로우즈 팝업을 찾아보세요. 비크닉 2500억 쏟아부은 '마곡 핫플'…40초 만에 매진시킨 LG의 비결 [비크닉] "모닥불 닮은 빛" 2030 감성 자극했다…다시 부활한 백열전구 [비크닉] 야쿠르트 아줌마 유니폼 힙하게 바뀐 이유 [비크닉] '고디바'는 귀족부인 이름이었다…명품 초콜릿이 된 비결 [비크닉]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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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억 쏟아부은 '마곡 핫플'…40초 만에 매진시킨 LG의 비결 [비크닉]
올해 공연예술계의 가장 큰 이슈는 지난 10월 서울 마곡지구에서 개관한 ‘LG아트센터 서울’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개관 공연은 오픈 40초 만에 매진되기도 했죠.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공연장은 무려 2500억원을 들여 5년 가까이 공들여 지으며 화제가 됐고요. LG아트센터는 그 자체로 공연예술계의 최고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번 주 비크닉 브랜드 소개팅에선 LG아트센터 이현정 센터장을 만나고 왔습니다. ━ 예술로, 교육으로 지역 살리기 원래 LG아트센터는 서울 강남 역삼에 있었어요. LG는 서울시와 협의해 마곡 LG아트센터를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기로 약속했습니다. 사실 마곡은 2000년 초까지 서울의 변두리로 저평가 받았던 곳이에요. 지난 2018년 LG 연구개발 인력 2만200여명이 집결한 사이언스파크가 조성되면서 첨단 연구단지로 탈바꿈했죠. 그렇게 한번 마곡을 알린 LG가 이번엔 문화 예술 인프라를 통해 다시 한번 지역 살리기에 나선 겁니다. 역삼 LG아트센터의 성공적인 운영 노하우를 갖고 마곡에 세계적인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LG아트센터 외관. 왼쪽엔 서울식물원이 있고 뒷편에는 LG사이언스파크가 있다. [사진 LG] “역삼에선 도심 한복판에 아트센터 건물 하나만 있었어요. 마곡 주변에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서울식물원이 있어요. 바로 옆에는 LG 연구의 산실인 LG사이언스파크가 있죠. 과학, 자연, 공연예술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문화예술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었어요. 시민들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요.” 건물 자체가 예술과 과학의 연결이란 철학을 담고 있어요. 아트센터 안에는 튜브(Tube)라는 공간이 있는데요. 이곳을 따라가면 국내 최초의 체험형 인공지능(AI) 교육기관인 LG디스커버리랩으로 갈 수 있어요. LG디스커버리랩은 국내 최초 청소년 AI 교육기관입니다. 자율주행 로봇, AI 챗봇 등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죠. ━ 건물 자체가 예술 LG아트센터 외관 [사진 LG] 실제 아트센터에 가보니 건물 자체가 예술 작품이었어요. 1995년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계의 거장 안도 다다오의 숨결이 살아있었죠. 마곡나루역에서 아트센터 지상 3층까지 연결하는 ‘스텝 아트리움’(Step Atrium), 지상층을 대각선으로 연결하는 ‘튜브’(Tube), 곡선 형태로 이뤄진 벽면인 ‘게이트 아크’(Gate Arc) 이렇게 3가지 콘셉트를 바탕으로 설계됐는데요. 빛의 건축가라는 명성에 맞게 해와 함께 빛이 바뀌는 순간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꼭 공연을 보러 오지 않아도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 영감을 주고 싶었어요. 똑같은 커피를 마셔도 분위기 좋은 곳에 있으면 더 맛있고 행복하잖아요. 역삼동은 공연 관람을 위해 많이 오셨지만, 이곳엔 그냥 건물 자체를 즐기러 오셔도 돼요.” LG아트센터 로비 [사진 LG] 저는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공기가 다르다'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말 그대로 좋은 냄새가 났어요. 부드럽고 무게감 있는 우디 향과 꽃 냄새가 어우러진 따뜻한 향이었어요. 알고 보니 LG생활건강 향 전문 연구소인 센베리 퍼퓸하우스와 함께 향기 136을 개발했다고 해요. “코로나19로 공연장을 찾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느낌, 기억을 선사해주고 싶어서 기획했어요.” 이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품 판매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 아트센터를 지을 때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 게 또 있는데요. 바로 접근성입니다. 공연장은 지하철 마곡나루역에서 내리면 바로 나오는데요.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도 시민들이 찾아오기 불편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돈을 더 들여서라도 지하로 연결했대요. ━ 프로그램 고르는 안목 “클래식과 오케스트라, 발레만 되풀이되던 시절, LG아트센터의 무대는 마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었다.” (최우정 팀프 앙상블 예술감독) 애호가들 사이에서 LG아트센터는 창의적인 기획공연으로 명성이 자자해요. 해외 명작을 발굴해 국내에 지속적으로 소개하며 그 안목과 섭외력을 인정받았죠. 3200l 물을 객석에 담아서 지옥과 천국을 보여줬던 단테의 ‘신곡’(2002). 객석 1층과 3층을 비우고 객석 2층에 난간을 무대를 걸쳐 놓게 하고 주인공이 환영처럼 사라지는 연출로 놀라움을 선사했던 ‘검은 수사’(2002)가 대표적입니다. 아트센터장이 뽑은 역대급 공연은 이보 반호프의 ‘로마 비극’(2019)입니다. “무대의 금기를 다 깨는 공연이었어요. 관객들이 무대 위로 언제든지 올라가 연기자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무대 한쪽에선 샌드위치 커피 스낵을 팔았거든요. 6시간 가까운 공연이었는데 관람객들의 집중도가 상당했죠.” 이보 반 호프의 로마 비극 [사진 LG] 예술작품을 고를 때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기존에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이고 놀라운 것을 찾는대요. “ ‘낯설지만 좋은 작품’을 찾으려고 했어요. 특히 세계적인 공연을 시차 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랐어요.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들면 수년이 흐른 뒤에라도 무대에 올렸어요. 이게 쌓이다 보니 관객들이 느끼는 저희만의 ‘결’이 생긴 것 같아요.” ━ 남다른 프로그램 비결, 똑똑한 마케팅 LG아트센터가 과감한 기획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던 마케팅적인 비결이 있었어요. 국내 최초로 선보인 기획 공연 시즌제와 패키지 제도 덕분인데요. 기획 공연 시즌제는 1년간 공연 프로그램 라인업을 한꺼번에 공개하는 거고, 패키지는 이를 자신의 취향대로 묶어서 할인받을 수 있는 제도예요. 관람객 입장에선 더 저렴하게 표를 살 수 있고, 한해 공연 계획을 미리 세울 수도 있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대신 대신 실구매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준 건데요. ‘이거 볼까 말까’ 고민하는 분이 많잖아요. 가격 문턱을 낮춰서 좀 더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게 했어요.” 공연장은 이를 통해 프로그램을 더욱 창의적으로 기획할 수 있대요. “시즌제의 일부 공연은 사람들에게 낯설 수 있어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공연은 관객들이 모르는 경우도 있죠. 결국 극장의 기획 프로그램을 믿고 구매하는 거예요. 저희 입장에선 우리를 믿는 관객들이 확보되니 더 새롭고 창의적인 공연을 과감하게 가져올 수 있어요. 모두에게 좋죠.” 이런 이유로 지금 많은 공연장이 시즌 패키지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답니다. ━ 공연의 주인공을 되찾다, 관람 문화 혁신 LG가 공연 예술에 얼마나 진심인지 드러나는 정책이 있는데요. 바로 초대권 없는 공연장입니다. 초대권은 선물용 공연 티켓을 말해요. 예전엔 공연장에는 초대받은 이들을 위한 VIP석이 많았어요. 하지만 초대권은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회를 없앨 뿐만 아니라, 공연의 질도 나쁘게 했어요. 아무래도 공짜 표는 ‘내돈내산' 보다는 덜 귀하잖아요. 초대석이 비거나, 자리를 채웠어도 관람 도중에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죠. 공연계의 오랜 병폐였지만 아무도 쉽게 바꿀 생각을 못 했죠. 그런데 LG아트센터는 2000년 개관 당시부터 국내 최초로 초대권을 없앴어요. 이러한 파격에 일부는 우려도 하고 비난도 했다는데요. 지금은 공연계 전반으로 초대권 없는 문화가 퍼졌어요. “공연장의 주인은 관객이어야 한다는 어찌 보면 기본에 충실한 정책이었어요. 100% 자발적으로 티켓을 산 관객들은 놀라운 집중력과 매너를 보여줘요. 무대의 아티스트들이 가장 잘 느낍니다. ‘객석 분위기가 남다르다’고 말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선 좋은 공연을 선보일 수밖에 없으니, 선순환이죠.” ━ LG가 얻는 것 LG아트센터는 공익법인인 LG연암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비영리 시설이에요. 공연장으로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란 말이죠. 그렇다면 LG는 아트센터를 통해 무엇을 얻을까요. LG가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얻는 것은 바로 ‘찐 팬’입니다. 마케팅학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고객 경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고객이 브랜드와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는 건데요. LG는 예술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해 자신들의 진정한 팬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팬들이 결국은 예비 충성 소비자가 될 수 있죠. 공연장에 보면 LG시그니처홀(LG전자), U플러스 스테이지(LG유플러스) 등 LG계열사 이름을 본뜬 공간이 있는데요. LG아트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곳이 불리는 일도 많아지겠죠. 공연장에서의 좋은 기억과 함께 말이에요.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