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짠은 알고 당근맛은 모른다? 풀무원이 미각교육에 뛰어든 사연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목소리, 'Voice Matters(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 식사 기록을 남기게 된 이유 "밥 먹어야 하지 않아?" "뭐라도 꾸역꾸역 채워 넣긴 해야지." 때가 돼 식사를 챙겨 먹자는 친구의 말에 1초도 고민 없이 이 말을 뱉었습니다. 말하고 돌아서니 그제야 머리가 띵했죠. 바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마치 만두피에 고기소를 집어넣듯 이제껏 내 몸에 음식을 그저 욱여넣고 있었던 겁니다. 배가 고프면 적당한 음식으로 배를 채웠죠. 적당한 음식이라 말하긴 하지만, 열량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달거나 짜거나 맵거나 등 강렬한 맛에 끌려 탐식하기 바빴어요. 당장은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푸짐히 음식을 준비해도, 생각 없이 채워 넣기에 급급했으니 버리는 음식도 많았습니다. '먹고 사는 것’인데, 먹는 데 소홀했고 내 몸을 홀대했죠. 이때부터 매일 식사 기록(섭식 일기)을 남겼습니다. 하루 먹은 음식들을 복기하면서 식습관을 돌아보게 된 거죠. 온전하게 균형 잡힌 세 끼를 먹진 못해도, 적어도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기로 한 겁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방울토마토 등 각종 야채, 과일 등의 원재료를 맛보며 미각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풀무원 ━ 단짠은 알아도 오이, 당근 맛은 모른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먹는 것과 관련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아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수저 사용법, 식사 예절 등 밥상머리 교육에는 그래도 익숙한데요.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어떤 과정으로 식탁까지 오게 됐는지 알기 어렵고, 어른이 되어가면 갈수록 양념장이나 조미료 없는 원재료 본연의 맛을 경험하긴 힘들죠. 여기에 의문을 품고 지난 2010년 풀무원은 '바른 먹거리 교육'을 시작했는데요. (자연의 맛 바른 먹거리, 건강한 맛 바른 먹거리… 입에 금세 붙는 이 노래 기억하실 겁니다) 초창기 바른 먹거리 교육은 식품 포장재 바로 읽기 교육부터 시작했어요. 식품 겉면에 있는 갖가지 영양성분을 바로 알고, 유통기한과 제조연월일을 확인해서 바른 먹거리를 선택하는 법을 알려준 거죠. 이후에는 골고루 먹는 방법에 대해 알렸는데요. '211 식사법'도 그때 나왔습니다. 신선한 채소, 포화지방이 적은 단백질, 거친 통곡물을 2:1:1 비율로 골고루 섭취하는 영양균형 식사법을 아이들에게 전파했습니다. 바른 먹거리 교육의 핵심은 미각 교육입니다. 자연에서 온 식재료 본연의 맛을 알게 해주는 교육이죠. 실제 영국, 유럽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1998년부터 일찌감치 초등학교에서 미각 교육을 의무화했습니다. 직접 먹을 채소를 학교 텃밭에서 기르고 수확해 깨끗하게 씻어서 본 재료 그대로를 맛보는 겁니다. 풀무원은 이 미각 전문 교육을 따와서 어린이들이 오감을 활용해 자연의 맛을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한 거죠. 10여 년이 넘게 무료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돌며 지난해까지 총 8500회가 넘는 교육을 진행해 19만명이 넘는 어린이에게 바른 먹거리 DNA를 전파했습니다. 2015년부터는 교육 대상자를 성인까지 확대했고, 2017년부터는 65세 이상 시니어 바른 먹거리 교육도 운영 중입니다. 풀무원의 '바른 먹거리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이 균형 잡힌 식사법 등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풀무원 ━ 먹으면서 지구 지키기 최근 풀무원은 '바른 먹거리 교육'을 '지구를 지구해' 캠페인으로 확장했습니다. 먹는 일에는 쓰레기 문제, 탄소배출, 환경오염, 생명윤리 등 많은 문제가 사슬처럼 연결돼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알맞게 먹는 게 아니라, 욕심내 먹는 탐식은 내 몸은 물론 내가 사는 환경을 망치게 하죠. 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집단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이 지구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유엔 농업 식량 기구 ‘축산업의 그림자’ 보고서에서는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을 전체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분석했는데요. 배출량을 두고 그 수치가 크다, 작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동물에서 시작된 질병은 인간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죠. 파괴적인 공장식 축산이 들어서게 된 배경을 곱씹어보면 좋을 거 같은데요. 뭐든 적당하면 좋은데 인간의 과도한 육식 사랑 때문입니다. 지난해 한국인의 고기 소비량이 사상 처음으로 쌀 소비량을 추월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추정한 지난해 국내 3대 육류(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1인당 소비량은 58.4kg에 달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고기 사랑이 증가한다면, 낮은 생산비에 많은 고기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공장식 축산은 더 세를 키워나가겠죠. '채식해!' '고기 먹지마!'가 아니라 각자의 식습관을 돌아보며 본인의 건강도 챙기고, 건강한 생태계도 지킬 수 있도록 풀무원이 식탁 위 작은 실천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게 ‘지구를 지구해’ 캠페인입니다. 풀무원이 최근 시작한 '지구식단' 캠페인은 내 건강은 물론 환경까지 고려한 바른 먹거리를 지향한다. 사진 풀무원 ━ "애쓰지 않아도 누구든 쉽게" 식탁 먹거리 혁명 이 캠페인은 지난해 8월 풀무원이 내놓은 지속가능 식품 브랜드 '지구 식단'과 궤를 같이하는데요. 환경에 부담이 적은 식물성 제품, 동물의 행복까지 생각한 동물복지식단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 식단의 '라이크텐더 두부결'의 경우 고단백 결두부로 만들어 고기처럼 촉촉하고 쫄깃한 식감을 느끼게 해 주는 제품인데요. 콩에서 추출한 '식물성조직단백(TVP)'이라는 소재를 풀무원의 기술력으로 가공해 실제 고기와 유사한 맛과 질감을 구현한거죠. 모두 채식할 수 없고 적당한 육식도 필요하다면 올바르게 생산된 동물성 단백질을 제공하는 게 좋습니다. 동물복지 치킨너겟은 넓은 공간에서 자란 가축들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도축되게 하는 등 생산공정에 좀 더 신경 쓴 제품이죠. 넓은 공간에서 자란 동물을 의식 없는 상태에서 도축 하는 등 생산 공정을 고려한 동물복지 식단 대표제품. 사진 풀무원 풀무원은 오는 6월 지구 식단에서 '두부바' 제품을 국내에 새롭게 출시할 계획인데요. 희고 네모난 두부라는 편견을 깨고, 두부에 톳과 각종 야채를 넣어 만든 부드럽고 탱글탱글한 식감의 제품을 추가로 선보인다네요. 이 두부는 이미 일본에서 시장성을 증명했습니다. 지난 2020년 11월 풀무원 일본법인 아사히코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눈에 띄는 판매량을 기록했죠. 적당한 간이 돼 있어 별다른 조리 없이 바로 간편하게 섭취 가능하다는 점 등이 성공 요인이 됐습니다. 성공 사례를 발판 삼아 한국 시장에도 곧 등판 예정이라네요. 이미 독일 등 대체육 시장 파이가 큰 국가에서 활성화돼 있는 버섯 균사를 활용한 대체육 개발에도 공을 들일 계획입니다. 지구 식단 브랜드를 총괄하고 있는 박종희 풀무원 마케팅부문 상무는 "건강과 환경에 관심은 크지만 선뜻 시도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누구든 쉽게 채식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내 몸과 지구를 생각하는 식생활이 거창한 게 아니라, 누구든 시작해볼 수 있을 만큼 진입장벽이 낮고 제품군도 다양해진다면 시장은 더 탄력을 받아 빠르게 성장하겠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세계 대체육 시장 규모는 올해 87억 달러(약 11조 6000억원)가 예상됩니다. 건강 뿐 아니라 환경도 지킬 수 있도록 식탁 위 작은 실천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내놓은 지구식단 제품들. 사진 풀무원 ━ 소신 있는 먹.잘.알을 꿈꾸다 많이 먹는 대식좌, 치킨 한 조각에 포만감을 느끼며 극히 적은 양을 먹고 호리호리한 몸을 유지하는 소식좌들이 주목 받는 시대입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을 다음 주인공은 '소신 있는 먹.잘.알(먹는 것 잘 아는 사람)'이 아닐까요. 음식을 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알고, 필요한 만큼만 먹고, 이 음식이 나의 내면과 외면 나아가 환경과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며 먹는겁니다. 건강한 식생활, 식탁 위 작은 실천을 돕겠다는 식품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바른 먹을거리를 고집하고 나와 환경을 위하는 식습관을 유지하는 게 별나고 까다로운 게 아닌 당연한 일상입니다. 비크닉 bicnic 관련기사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동백기름 팔던 '6남매 억척맘' 남긴 유산 [비크닉] '막강한 능력' 가진 침대 회사…소아 병동 탈바꿈 나선 까닭 [비크닉]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 MZ 사이 입소문난 그 반지…매듭장인 할매들, 세계 넘보다 [비크닉]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
“이게 진짜 무신사 냄새” 무신사가 브랜드 키우는 이곳[비크닉]
무신사 스튜디오 동대문 사무실 전경. 사진 정세희 기자 무신사 냄새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온라인 패션플랫폼 1위 무신사에서 만든 인기 있는 아이템으로만 옷을 입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 때문에 옷 입을 때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난 1월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자고 나온 말인데 아직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는 것 보면 새삼 무신사 파워가 대단하다 싶더라고요. 이번 브랜드 소개팅은 진짜 무신사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바로 '무신사 스튜디오'인데요. 무신사가 운영하는 패션 특화 공유 오피스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여길 거쳐 간 브랜드는 셀 수도 없어요. 안다르, 엘무드, 엠엠지엘 등이 이곳에서 탄생했습니다. 무신사는 이 스튜디오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 걸까요? ━ 패션에 대한 열정만 갖고 오세요 무신사 스튜디오 동대문 내 워크룸에서 입주 기업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정세희 기자 무신사 스튜디오 동대문 사무실 전경. 사진 정세희 기자 이달 15일 오후 제가 방문한 곳은 오는 6월 개점 5주년을 맞는 무신사 스튜디오 1호점 동대문입니다. 2018년 문을 연 동대문점을 시작으로 2022년 한남 1호점, 성수점을, 올해 한남 2호점과 신당점까지 총 다섯개 지점이 생길 만큼 확장했어요. 스튜디오에 들어가자마자 유리창으로 된 ‘워크룸’이라고 쓰인 곳이 보였는데요. 큰 작업 테이블 위에서 디자인한 옷들을 검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은 얼핏 봐도 멋스러워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 동대문점의 경우 2200평 공간에 약 900명의 입주사가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무신사 스튜디오의 가장 큰 장점은 패션업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스튜디오 내에 원단, 패턴, 라벨링 해주는 곳이 있어서 절차마다 업체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스튜디오 입주사 대부분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1,2년차 스몰 브랜드가 많은데, 대규모 원단을 구매하는 부담을 헤아려 소규모 원단, 라벨링을 판매한다고 해요. 훈훈하죠? 그 밖에도 깨알 같지만 패션업 종사자들만 아는 매력 포인트가 많대요. 사무실 내부에는 마네킹, 원단, 소품들이 가득했는데 이를 보관할 선반이 설치돼 있고요. 마음껏 패션 잡지를 볼 수 있는 공간과 미싱질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죠. 디자인한 옷을 쉽게 입어볼 수 있도록 탈의실도 별도로 있더라고요. 지하에는 옷을 촬영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어요. 패션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 공통의 관심사가 모이니 벌어진 일 무신사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협업 사례가 있어요. 지난 3월 여성 패션 브랜드 ‘쿠키시 X 호쿠스포쿠스’ 팝업 스토어를 연 건데요. 지난 2021년 무신사 스튜디오 동대문에 입주한 두 브랜드는 이곳의 기업 간 네트워킹 프로그램에서 만나 가까워졌다고 해요. 밥을 먹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평소 나눴던 아이디어를 그대로 팝업 컨셉으로 잡아 업사이클링 상품을 전시했다고 합니다. 쿠키시 X 호쿠스포쿠스’ 팝업 스토어 모습. 사진 무신사 옷을 제작하고 남은 조각 원단과 상품화되기 어려운 샘플 제품을 활용해 만든 못난이 인형과 티슈 케이스를‘호키시(HOKEESEE)’라는 브랜드로 선보였죠. 이제 막 시작한 스몰 브랜드 입장에서 오프라인에서 직접 아이템을 판매할 수 있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라고 해요. “온라인 기반이다 보니 고객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설명도 하고 싶고 반응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항상 아쉬웠어요. 직접 고객을 만날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황순지 호쿠스포쿠스 대표) 반응도 좋았습니다. 팝업 한 달 만에 역대 최고 매출을 달성했고, 29cm 등 다른 플랫폼뿐만 아니라 롯데백화점에서도 입점 제안이 왔습니다. 직접 소비자들과 만나고 싶어하는 브랜드의 니즈를 반영해, 무신사는 앞으로 다양한 오프라인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팝업을 열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겠죠? 최근 무신사가 부동산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도 결국 오프라인에서 브랜드와 소비자와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넓히기 위함으로 해석돼요. ━ 패션 인큐베이팅, 무신사에 남는 것 참, 다른 공유 오피스에 없는 존재가 있었는데요. 바로 '매니저'였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사무실 관리만 하는 게 아니라 입주한 사람들의 성향과 취향 등을 파악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하거나, 그들의 애로사항을 무신사 측에 전달하기도 하는 일을 해요. 이제 막 패션 사업을 시작하는 브랜드에 매니저는 고민과 비전에 대해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고마운 창구라고 해요. 마을 이장 같기도 하고 아파트 부녀회장 같기도 한 이들 덕분에 이곳이 단순한 비즈니스 공간이 아니라 패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하나의 마을이 됐다고 합니다. “무신사가 다양한 브랜드와 고객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라면 무신사 스튜디오는 제품이 나올 수 있도록 브랜드와 원단, 패턴 등 생산업체와도 연결해주는 공간이에요. 실시간으로 궁금하거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물어보고 해결책을 마련해주는 점도 좋아요. 덕분에 매년 매출이 1.5배 이상 늘었죠.” (FIF 서울 안제영 지점장) 매니저들과 입주 브랜드 간의 단단한 정서적 유대는 무신사가 오래전부터 추구해온 정체성과 통해요. 무신사는 창업 초기부터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꿈꿨거든요. 그들이 성공해야 무신사도 성공한다는 상생 철학이 깊게 자리 잡고 있죠. 이날 만난 임연수 매니저 역시 무신사 스튜디오는 공간 대여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성장을 지원하는 곳이라고 강조했어요. “더 많은 사람이 입주하게 함으로써 돈을 벌려고 했으면 사무실을 더 촘촘히 나눴을 거예요. 하지만 보다시피 무신사 스튜디오는 공간도, 책상도 널찍하게 짰어요. 작업이 잘되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 마무리 애초에 무신사가 지향했던 그들의 냄새는 무색무취가 아닐까요. 무신사는 자체 상품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내 개성 있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탄생했고, 그들의 성장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커왔으니까요. 그래서 패션 비즈니스를 돕는 무신사 스튜디오도 만들고, 패션 장학생도 뽑고, 글로벌 진출을 돕는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하는 거고요. 이렇게 상생을 중요시하는 무신사에게 무신사 냄새라는 말은 꽤 아팠을 겁니다. 만약 무신사 플랫폼 냄새가 너무 강해서 입점 브랜드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는 무신사스럽지 못하다는 거니까요. 소비자도 등을 돌릴 겁니다. 이번 무신사 냄새 논란이 무신사에게는 브랜드 인큐베이팅에 보다 신경을 써달라는 따끔한 충고가 됐길 바라요.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
생리혈 걱정 없이 마음껏 뛴다…나이키 50년간 여성 응원한 이유 [비크닉]
캐서린 스위처는 1967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방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성 최초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사진 캐서린 스위처 공식 웹사이트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마라톤에 뛸 수 없었습니다. 달리기를 오래 하면 임신·출산 능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래서 1966년 보스턴마라톤에서 한 여성 선수는 출발선 근처 숲에서 숨어있다가 뛰었고요. 다음해 다른 여성 선수는 뛰다가 감독관에게 제지를 당해 몸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편견과 싸워야 했던 여성 선수들을 오랫동안 지지하고 응원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 브랜드, 최근에는 여자 축구선수를 위한 유니폼을 만들어 공개해 만나고 왔습니다. 브랜드 소개팅 오늘은 여성 스포츠를 지지해온 나이키의 노력에 대해서 다뤄볼게요. ━ 여성만을 위한 최초의 유니폼 나이키가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을 위한 새로운 유니폼을 선보였다. 사진 나이키코리아 지난 3일 서울 광진구 파이팩토리 스튜디오에서 열린 ‘나이키 우먼 2023’ 행사에서 나이카가 공개한 우리나라 여자 축구 대표팀 전용 유니폼입니다. 그냥 딱 봤을 때는 평범해 보이죠. 그런데 여성만을 위한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생리혈이 새지 않는 특수 소재인 페리어드를 사용했다는 겁니다. 생리혈을 흡수해 새지 않고, 재습윤 기능이 있어서 생리하는 날에도 마음껏 뛸 수 있죠. 선수들 몸을 3D로 스캔하고 체형 특징을 모두 반영해서 만든 거래요. 그래서 봉제선, 허리 밴드 등을 다 다르게 만들었죠. 이번 유니폼이 특별한 건 애초부터 여성만을 위해 기획됐다는 것이에요. 그동안은 남성 유니폼에서 사이즈만 다르게 출시했다면 이번엔 처음부터 여자 선수들을 타깃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획됐다는 점이죠. 이를 위해 그동안 나이키가 공들였던 여성 몸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반영됐다고 합니다. 나이키는 수년 전부터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체형의 여성 6만8000여명의 신체를 분석했다고 해요. 운동할 때 뭐가 불편한지, 어떤 걸 해결해주면 더 마음껏 뛸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요. 왼쪽부터 방송인 재재, 안무가 립제이, 육상 정혜림 선수,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 축구선수 지소연·김혜리, 콜린 벨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진 나이키코리아 선수들의 평가는 좋았습니다. 여자 축구 국가 대표 팀 주장 김혜리 선수는 “운동선수 관련 제품은 대체로 남녀 공용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제품을 만드는 것 같아 무척 반갑다”며 “봉제선이나 허리 밴드, 땀 자국 등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선수들의 목소리를 많이 반영해, 좋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 여성 스포츠의 든든한 조력가 나이키의 그동안 행보를 보면 여성 선수 유니폼 제작은 여전히 운동장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여성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여성들이 마음껏 뛸 수 있게 그 장벽을 낮춰주는 것. 나이키가 오래전부터 꾸준히 해왔던 일이거든요. 과거에는 올림픽에서 여성들이 왜 1500m 이상 달릴 수 없느냐고 위원회에 공개적으로 항의했고요. 여성 선수들이 여성 마라톤 종목이 빠진 건 성차별이라고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고발하는 것도 도왔어요. 나이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여자 마라톤은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추가됐고 나이키가 후원한 선수가 우승했어요. 이후에도 나이키는 전 세계에서 135개 이상의 여성 단체와 협력해 차세대 선수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역사회 스포츠 단체에 지원금과 역량 강화 훈련을 제공하고 있죠. 나이키의 모두의운동장 캠페인 포스터 사진 나이키코리아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이 운동하기 좋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나이키 옷 입고 운동하자’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요. 예를 들면 여성들이 운동하기 어려운 환경 그러니까 사회적 편견을 건드는 건데요. 운동은 남성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여성에게 얼마나 좋은 에너지를 주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두의 운동장’ 캠페인이 대표적입니다. 운동은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돼야 한다고 하잖아요. 근데 저만해도 학창시절 체육수업은 쉬는 시간이었거든요. 운동이란 게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얼마나 유익한지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후회하지 않도록, 나이키는 학생들에게 스포츠의 즐거움을 깨닫게 했어요. 이 밖에도 사회적 편견에 흔들리 않고 주체적으로 사는 여성들을 조명하는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캠페인도 있었죠. ━ 여성에 집중하는 이유 축구 선수들뿐만 아니라 여성 스포츠 조력자인 나이키. 근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나이키의 이러한 노력,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단순히 여성 고객 확보를 위한 걸까요? 기업의 활동이라는 게 이윤 창출의 의미 당연히 갖고 있지만, 만약 돈만 생각했다고 하면 프로모션을 늘리는 등 더 직접적인 방법이 있을 겁니다. 게다가 여성 스포츠 장려라는 건 사회 경제 문화와 다 얽힌 문제라, 어찌 보면 굉장히 어려운 숙제거든요. 이러한 어려운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 이건 세상에 나이키의 정신을 드러내는 좋은 수단이 되겠죠. 나이키가 창업 당시부터 강조했던 게 있어요. 바로 ‘신체를 가진 자는 모든 운동선수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운동선수를 응원한다. 그게 여성이든, 흑인이든, 어린이든 상관없다.’ 더 중요한 게 있죠. 그들을 방해하는 장벽을 허물겠다는 것도요. 그러니까 여성 스포츠 장려는 모든 이들의 운동을 응원하는 나이키의 창업 정신인 거죠. 명확한 철학을 갖고서 이를 50년 넘게 꾸준히 진심으로 알리는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걸, 그리고 지갑도 열 수 있다는 걸 나이키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 마무리 나이키는 미디어 행사에서도 그들의 철학을 직접 경험하게 했어요. 기자들은 행사장에 들어가자마자 라커룸에서 스포츠 티셔츠와 레깅스, 그리고 운동화를 받았는데요. 이걸 입어야만 CEO 인터뷰 등 이날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옷이 태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실감한 게 불편한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으니까 뛰고 싶어지더라고요. 그 순간 킴벌리 창 멘데스 나이키 코리아 사장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나이키는 경기장, 코트 위에서 활약하는 엘리트 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과 모든 움직임을 향합니다. 여성들이 어떤 생애 주기에 있더라도 스포츠를 포기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스포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혁신 노력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운동하고 싶은 옷, 신발 등을 만드는 것 자체가 스포츠 장려에 일조하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영리한 브랜드죠?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동백기름 팔던 '6남매 억척맘' 남긴 유산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목소리, 'Voice Matters(보이스매터, 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 가정의 달 포스터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한 해 시작이 어제 같은데 다음 달이면 5월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가족을 위한 갖가지 행사가 많아 가정의 달이라고 일컫기도 하죠. 온 오프라인에 각종 행사 포스터도 즐비합니다. 알림판을 장식하는 삽화에는 어김없이 부모와 아이로 구성된 3인 가족 또는 4인 가족의 단란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조금 더 신경 쓴다면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더해 6인 가족이 등장하기도 하죠) 그냥 보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어요.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어쩌면 편안한 가정의 모습일 테니까요. 과연 그럴까요? 미성년 자녀를 둔 가구 가운데 열에 둘은 한부모 가정입니다. 미혼, 또는 배우자와 사별이나 이혼 등으로 모자 가족, 또는 부자 가족이 된 거죠. 대가족, 핵가족, 아이 없는 가족처럼 다양한 가족 구성의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관심 밖에 머물거나, 종종 부정적 시선과 마주하게 됩니다. 홀로 당당히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싱글맘, 싱글 대디 연예인들의 활약에 한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이 전보다 많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1960년대 초 고 서성환(가운데) 아모레퍼시픽 창업주가 서울 영등포 공장의 잔디밭에서 여성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육아와 생계의 짐을 짊어진 어머니에게서 곧은 성품과 강한 생활력을 엿본 그는 회사의 모태를 어머니이자 여성이라 말할 정도로 여성과 아동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 20년 희망의 두드림, 그 시작 다양성과 포용이 화두가 된 지금도 이러한데 20여년 전은 어떠했을까요? 이혼이나 사별로 급작스레 생계를 책임지게 된 한부모 가정 여성 가장들은 일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혼자 아이를 보면서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일을 하기도 어려웠고, 어렵사리 일자리를 찾는다 해도 소규모 사업장 임시직이나 아르바이트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돈도 많이 벌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돈도 버는 일로는 장사가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작은 가게 하나 여는 데 필요한 목돈을 은행에서 빌리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죠. 지난 2021년 발표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3년마다 조사)에 따르면 모자 중심 가구가 67.4%로 부자 중심 가구(32.6%)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245만3000원(세금 및 사회보험료 등 제외)으로, 2021년 전체 평균 가구 가처분 소득 416만9000원에 비해 턱없이 모자랍니다. 20년 전에는 이들의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죠. 당장 먹고 사는 것조차 힘겨운데, 세간의 따가운 시선은 이들을 더욱 위축시켰습니다. 막막한 앞길에 출구가 생긴 건 지난 2003년이었죠.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의 유산을 기반으로 지난 2003년 한부모 가정 여성 가장을 위한 '희망가게' 사업이 시작됐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는 평소 여성과 아동복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도 집 부엌에서 동백기름을 만들어 가가호호 팔던 6남매의 억척 맘이었습니다. 1930년대 그의 어머니가 만든 '창성상회', 그곳에 담긴 화장품 제조술과 진심이 태평양을 거쳐 오늘날의 아모레퍼시픽이 된 거죠. 육아와 생계의 짐을 짊어진 어머니에게서 곧은 성품과 강한 생활력을 엿본 고 서성환 창업주는 늘 회사의 모태는 어머니고 여성이다 강조했습니다. 1964년에는 아모레퍼시픽이 방문 판매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는데요. 이때 생계가 어려운 한부모 가정 여성 가장들이 대거 참여했고, 아모레퍼시픽의 비약적 성장에 일조했죠. 경영도 마음 씀씀이도 여성에 맞닿아 있던 고 서성환 선대 회장의 이 같은 뜻을 기리며, 그가 세상을 떠난 2003년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을 비롯한 가족들은 유산 중 5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해 '희망가게'라는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희망가게 대출은 일 년에 총 세 차례 전국적으로 공모를 거쳐 진행됩니다.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의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면접과 기술 심사를 거쳐 선발된 이들에게 창업 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입니다. 보증금을 포함해 최대 4000만원의 창업 자금을 연 1%의 금리로 빌려주는데요. 상환 기간은 8년이고, 상환금과 이자는 또 다른 한부모 가정 여성 가장을 위한 창업 지원금으로 사용됩니다. ━ 20년 만 500개 희망가게, 한부모 가정에 남긴 것 금융 소외층을 대상으로 진행된 착한 대출은 지난 20년간 탄탄히 성장해나갔습니다. 2004년 7월 희망가게 1호점 ‘미재연 정든 찌개'(현재는 폐업)를 시작으로 2011년 100호점, 2013년 200호점, 2016년 300호점, 2020년 400호점, 그리고 지난달 500호점을 돌파했죠. 업종 역시 음식점뿐 아니라 개인택시, 재활용품 가공업체, 피부관리샵, 천연비누 제조 등 다채롭게 확장됐습니다. 아모레퍼시픽과 희망가게를 운영하는 아름다운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존 대출 상환율은 80% 이상, 가게 생존율(3년 이상 영업을 지속하는 비율)은 72%라고 하네요. 희망가게 대출은 일 년에 총 세 차례 전국적으로 공모를 거쳐 진행된다.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의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면접과 기술 심사를 거쳐 선발된 이들에게 창업자금을 대출해준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3년 가까이 진행된 코로나 19 팬데믹은 희망가게 창업주에게는 그야말로 고난의 시기였습니다. 사업 확장은커녕 유지조차 힘겨울 때도 70개 이상의 매장을 새롭게 열었어요. 상환금 유예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죠. 긴급 생활안전자금을 주고 아모레퍼시픽 사내 라이브커머스(실시간 온라인 홈쇼핑)를 통해 창업주 가게의 제품을 파는 등 판로 지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나하나 쌓아 올린 자립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힘을 더한 것이죠. 아모레퍼시픽과 아름다운재단은 지난 20여년을 이어오며 희망가게가 한부모 가정에 남긴 진짜 메시지에 주목합니다. "희망가게는 온전한 자립으로 함께 가는 과정이죠.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통해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삶에 대해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한찬희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한부모가정창업자 분들이)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보다 도움 주는 사업을 함께한다는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사업을 시작하는 분들을 위한 대출 지원사업이지만, 곧 사업이 안정화되고 그 돈이 회수되면 또 다른 분들에게 다시 지원되는 나눔의 선순환이기 때문입니다" (송호준 아모레퍼시픽 CSR 팀장) 금융 소외층 한부모 가정 여성 가장을 대상으로 한 '희망가게' 대출지원사업은 지난 20년 동안 나눔의 선순환을 실현하고 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 정상, 비정상 프레임은 누가 만드나 500호점의 첫 시작을 알린 분부터 가장 최근 창업하신 분까지 만나 뵙고 얘기를 듣고 싶은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전과는 그래도 조금은 달라진 사회 분위기에 내심 많은 분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기도 했죠.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대다수 분은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하셨죠. 혹여 좋은 뜻에서 건넨 자신의 말들이 자녀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컸습니다. 이름과 얼굴이 노출되는 게 아직도 꺼려지는 건 자신보다 자신의 자녀 때문이었죠.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를 통해 이전보다 다채로운 가정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뿌리 깊은 편견과 그로 인한 상처가 걱정되는 것이지요.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이상한 정상가족』(동아시아)에서 친모-친부-아이로 구성된 3~4인 가족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가장 아파하는 건 아동이라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이혼 가정, 미혼 가정 등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가족의 형태가 있으니까요. "저는 제가 자랑스러워요. 요즘" 희망가게 379호점 창업주가 환하게 웃으며 건넨 이 목소리가 더 큰 메아리가 되길 바랍니다.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에게 필요한 건 연민도 동정도 따가운 시선도 아닌 편견 없는 포용이 아닐까요. 비크닉 Bicnic 관련기사 MZ 사이 입소문난 그 반지…매듭장인 할매들, 세계 넘보다 [비크닉]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 편견 때문에 못 봤던 500조 시장…'우영우'들 품는 포용의 패션 [비크닉]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
'대행사' 실제 인물? 삼성 첫 女임원 출신, 그 책방은 특별했다 [비크닉]
JTBC 드라마 ‘대행사’가 인기를 끌면서 이 사람의 이름도 함께 오르내렸습니다. 드라마 주인공 고아인(이보영 분)의 모델이 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인물. 바로 삼성그룹 최초 여성 임원이었던 최인아 제일기획 전 부사장입니다. 광고는 경쟁 PT로 살아남은 하나의 크리에이티브만 선택되는 시장입니다. 극단적인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그에겐 특별한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요?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 책방을 차린 지 만 7년. 그는 현재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최인아 대표를 만나고 왔습니다. 최인아책방 최인아 대표. 사진 최인아대표 ━ 고객 입장에서 질문하기 최인아책방 책장에는 사람들이 한번쯤 고민할 법한 질문들로 분류된 책들이 놓여있다. 2016년 8월 서울 강남구에 문을 연 최인아책방은 주인의 취향이 가득 담긴 독립서점입니다. 책방에 들어가자마자 마음을 읽은 듯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 ‘스트레스, 무기력, 번아웃이라 느낄 때’… 기존 대형 서점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큐레이팅인데요. 책이 일종의 솔루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반영된 거라고 합니다. “새로운 캠페인을 앞두고 정리가 안 되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어요.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아!’ 할 때가 있었거든요. 채 정리되지 않은 제 안의 생각과 책이 딱 만나 불이 들어오는 거죠.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어떤 해법을 찾는 과정이에요. 책은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죠. 단순히 책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서점이 아닌 ‘책방’을 열기로 했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유튜브를 찾는 디지털 시대. 사람들이 직접 오게끔 해야 했습니다. 광고 생활 30년, 몸에 밴 고객 중심 마인드를 작동시켰습니다. “책방에는 여가를 쪼개서 오는 거잖아요. 필수 활동 제외하면 몇 시간 안 돼요. 백화점 가는 대신, 친구 만나서 노는 시간 대신에 오는 거예요. 게다가 온라인으로 모든 게 가능한 시대, 몸을 움직여서라도 갈만한 가치가 있어야 했어요.” 그는 질문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사람들은 왜 책을 읽을까?’로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책을 살까’는 어쩌면 질문을 가장한 ‘목표’였어요. 독자 입장에서 책을 읽는 의미를 찾는 게 먼저였어요. 우리가 확인한 건 사람들은 어떤 도전을 앞두거나, 고민이 있을 때 책을 산다는 거였어요. 그 고민에 잘 답해야겠다 생각했고, 그래서 나온 게 고민별 분류였어요.” 창립 당시 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12가지 주제를 정하고, 지인에게 책 추천을 받았대요. 더불어 인생의 책을 10권 골라달라 주문했죠. 정성스러운 추천 이유도 함께요. 이 귀한 책 리스트를 밑천으로 책방을 열었습니다. ‘거꾸로 내게 청하면 절대 못 할 일’을 해준 사람이 160여명이 됐대요. ━ 책만 팔지 않아요 [책에 담긴 추천 사유가 담긴 손편지. 사진 정세희 기자] 최인아책방에서는 책만 팔지 않습니다. 회원에게는 추천 이유를 쓴 손편지와 함께 책이 배달돼요. 그리고 매달 저자와 독자들을 만나게 하는 오프라인 북토크를 열고 있죠.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 시간에 다른 걸 하기보다 여기 오는 게 좋아야, 또 그게 반복돼야 생존할 수 있었어요. 책을 중심으로 하는 콘텐트를 만들고, 총체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 챗 GPT에 ‘오프라인 책방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해?’물어보니 딱 이 얘기를 하더군요. 얘는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웃음)” 코로나 위기도 있었지만 최인아책방은 명실상부한 서점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강남 파이낸스센터에 2호점도 생겼는데요. 그는 ‘책만 팔지 않는다’는 방향성이 맞았다는 걸 증명한 시간이었다고 해요. 참, 홍대나 성수 같은 핫플레이스가 아닌 강남을 택한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우리 공간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일하는 자, 고민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강남 파이낸스센터에 자리한 최인아책방 2호점. 사진 최인아책방] ━ 지름길에는 덫이 있다 독립서점의 매력은 주인장의 고민과 신념을 나눌 수 있다는 겁니다. 광고쟁이 시절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도대체 그는 어떻게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었을까요. ‘지도 위의 대한민국은 작지만 구석구석 다녀 보면 참 큰 나라.’ 그가 만든 SK엔크린 광고 카피인데요. 평소 여행을 좋아하던 그가 구불구불한 산을 다니며 느꼈던 경험에서 나온 문구라고 합니다. “유럽은 트인 벌판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서 품고 있는 게 참 많구나. 제 창고에 있던 생각인데, 프로젝트를 만나 끄집어진 거예요. 아이디어는 경험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때를 만나 발현돼요. 그래서 이 창고를 채우기 위해서 항상 질문하고, 안테나를 돌려야 해요.” 가뜩이나 일하는 것도 고단한데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할까요? 그는 ‘지름길에는 덫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열매도 시간과 수고가 들어가지 않은 것은 없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종종 가지 않고 누리는 방법 혹은 수고를 덜 방법을 고민하는 것 같아요. 수고 자체가 어렵기는 하겠죠. 어차피 해봤자 안될까 걱정할 수도 있고요. 계산서는 정확해요. 애쓴 것은 절대 어디 가지 않고 창고에 쌓일 겁니다. 기회를 기다리면서요.” 직장에서 최소한만 일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조용한 사직’ 열풍에 대해 최 대표가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회사에서 시키는 것만 하며 때우는 시간마저도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일부라는 거죠. “마음에 드는 회사에서,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면 그게 가장 좋죠.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사실 더 많거든요. 조용하게 그만둔 듯 지낸다? 그건 조직이 아니라 당신에게 좋지 않아요. 돈은 없다가도 생길 수도 있어요. 시간은 생기는 법이 없어요. 아무리 보톡스를 맞아도 시간이 늘어나지는 않잖아요. 회사에서 보내는 그 시간마저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산이고, 모든 경험은 어디 안 가고 쌓이게 될 거예요. 이건 회사가 아닌 바로 당신에게 좋은 거예요.” ━ 최인아의 독서법 독서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에 응당 들여야 할 시간과 수고를 회피하지 말라고 강조했어요. “책은 질문이에요. 책이 나오기까지는 저자에게 질문이 있었을 거예요. 이를 오랜 시간 천착한 끝에 빠르면 몇 달, 길게는 몇십 년 그가 도달한 어느 정도의 결론을 적은 게 책이거든요. 우리가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그 질문을 찾는 것, 그리고 내 생각을 뭔지 생각해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또 다른 팁은 책을 평가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라는 거예요. 이건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콘텐트를 즐길 때도 해당하는 건데요. 만든 사람의 의도를 읽으며 소통하는 게 흠뻑 누리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책방 주인의 취향이 잔뜩 담긴 책이 궁금하시다고요? 최근에 읽은 일본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추천했어요. “건축학자가 나오는 책인데 저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재해석해 읽었어요.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때, 내가 어떤 뜻이 있는데 이게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절망하잖아요. 하지만 주인공은 아랑곳하지 않아요. 제 인생 오랜 화두이기도 한데, 이를 감각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육체와 정신 이원론자였던 그의 생각을 바꿔준 『움직임의 뇌과학』이라는 책도 함께 소개했어요. ━ 좋은 질문이란 질문을 던지며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어요.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 아는 게 어쩌면 더 필요할지도 몰라요. 성공한 광고인이자, 독립서점계의 브랜드가 된 그가 말하는 잘 질문하는 법을 전합니다. “질문에도 퀄리티가 있어요. How(어떻게)는 주로 따라가는 자의 질문이에요. 하지만 뭔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의 질문은 달라요. 그들은 이게 뭐지? 어디로 가야 할까? What, Why와 친한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품으면 발효가 일어나고, 그 끝에 생기는 게 인사이트예요. 당신의 창고를 좋은 질문으로 채우세요.” [최인아책방의 독특한 큐레이팅. 책방은 독자가 품을만한 질문들을 대신 건네고, 책으로 솔루션을 제공해준다. 사진 정세희 기자]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
MZ 사이 입소문난 그 반지…매듭장인 할매들, 세계 넘보다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목소리, 'Voice Matters(보이스매터, 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 고령사회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어르신들의 장인 정신과 기술이 합쳐진 브랜드가 더 많아지면 좋겠네요.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지난해 10월 비크닉 레터를 통해 교복 업사이클링 브랜드 '리버드(RE:BUD)'에 대해 얘기했는데요. 비크닉 인스타그램에 @blingx2_wendy님이 남겨주신 댓글입니다. 리버드가 특별했던 건 교복 해체 작업, 봉제 등 제품 생산 공정에 시니어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켰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의 손길로 재탄생한 제품이 제값에 팔리고, 그 수익은 다시 시니어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이 되는 등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어요. 비크닉 보이스매터, 오늘은 경상북도 상주로 향합니다. 김영자 할머니(80)가 자전거를 타고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으로 향하고 있다. 남채린 PD ━ 무쓸모의 쓸모, 안방 매듭장인 세상 밖으로 소셜 벤처 알브이핀의 신봉국 대표 고향은 상주입니다. 인구 10만이 채 되지 않는 상주시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33.6%에 달합니다. 정서적 외로움, 빈곤 등 고향의 여성 노인 문제에 주목한 신 대표는 2015년 '마르코로호'라는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신발 하나를 사면 하나가 자동으로 기부되는 '탐스슈즈'처럼,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돈도 버는 소셜 벤처가 집중 조명을 받을 때였죠. '코리안 할매'의 야무진 손재주는 그야말로 모래 속 진주였습니다. 안방 장인을 세상 밖으로 이끌 사업 아이템으로 신 대표는 팔찌를 선택했어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마르코로호 시작을 알렸죠. 할머니들이 야무지게 폴리에스테르 실을 하나하나 교차시켜 만든 매듭 팔찌를 보상품으로 줘 펀딩으로 1100만원을 모았습니다. 할머니 다섯 분과 시작했던 사업은 어느덧 8년 차에 접어들었고, 지금은 상주 시니어 클럽과 손잡고 세를 키우고 있어요. 신 대표는 단순 복지 차원을 넘어 노인을 위한 시장형 일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숙련된 할머니들의 시간당 수입은 최저임금(2022년 기준 9160원)의 2배쯤 된다고 해요.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 특별수당까지 받고요. 평균 주 2회 하루 4시간 정도의 소일거리이지만 용돈 벌이로는 쏠쏠한 셈이죠. 지난 2월 1일 경북 상주에 있는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에서 한 할머니가 폴리에스테르 실을 교차시켜 매듭 팔찌를 만들고 있다. 남채린 PD 돈도 돈이지만 마르코로호와 4년 이상 오래도록 연을 이어온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일의 가치'가 있는데요. 바로 일상의 행복입니다. "가기 전에 집에서부터 이제 또 꾸미잖아. 안 그러면 뭐 생전 화장을 하겠어. 거울도 한 번 더 보고. 옷도 안 입던 거 곱게 차려입고. 가면은 또 이제 앉아서 재미나게 서로 웃으며 얘기도 하고 커피도 한 잔씩 먹고. 다들 일하면서 한 번씩 이래 말해. 웃고 일하는 이 순간이 참말로 좋다고. 가치 있다고." (김영자 할머니, 80세) "내 이거 하는 거 보고 애들이 자꾸 나무래싸. 그러면 이카지. 너도 나이 들어봐라. 한가하면 더 외롭고 안 됐는데, 이런 일거리라도 있으면 너무 재미있고 좋다고. 너도 내 나이 되보믄 다 이해할기다." (강임순 할머니, 76세) 지난 2월 1일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에서 할머니들이 매듭 반지를 만들고 있다. 남채린 PD ━ 따뜻한 혁신, 자발적 소비 이끌다 마르코로호 제품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건 나뭇잎 반지입니다. 무난한 색상이라 매일 착용해도 부담이 없고, 생활 방수가 되는 폴리에스테르 실로 만들어 인기가 많다는데요. 주 고객층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여성이라고 합니다. 마르코로호 홈페이지, 무신사,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을 통해 우정링, 커플링으로 많이 구매한다고 하는데요. 마르코로호 전 제품에는 매듭 할매들이 손글씨로 남긴 감사의 말이 담겨 있습니다. 그 특별한 손편지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죠. 순수익금의 20%는 기부금으로 누적됩니다. 창업 초인 2015년부터 매해 2000만원꼴로 지역 노인을 위한 기부활동을 이어왔다고 해요. 마르코로호의 제품은 일부러 마케팅하지 않아도 저절로 입소문이 났습니다. 의미 있는 선물을 찾던 팬들이 매듭 팔찌나 반지를 선택하고, 연예인들이 그걸 착용하면서 자연스레 알려지는 식으로요. 대기업의 협업 제안도 적잖다고 합니다. 마르코로호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매듭 반지와 이 반지를 만든 할머니가 직접 쓴 손글씨. 사진 마르코로호. ━ 매듭장인 할매들, 해외 시장도 접수할까 창업 8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신 대표는 이제껏 해외 판매 개척을 쉽게 꿈꾸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액세서리 시장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죠. 그 작은 시장의 절반 이상은 예물이 차지하고 있고요. 신 대표 말에 따르면 매듭 액세서리 시장은 겨우 3% 수준이라고 하네요. 이제 사업이 궤도에 올랐고, 할매들의 '손기술'을 해외에도 알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해요. 신 대표는 수출 지원 사업을 활용해 올해 유의미한 결과를 꼭 이루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안방 매듭장인 할매들의 해외 진출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품군을 매듭 액세서리에서 뜨개 제품으로까지 확장하겠다는 포부도 있습니다. 상주뿐 아니라 전국의 더 많은 어르신에게 일할 기회를 드리기 위해서죠. 균일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표준 뜨개 도안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을 회관 등에 뜨개 키트와 표준 도안에 맞춰 제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 등을 함께 보급할 계획입니다. 할머니가 만든 매듭 팔찌들이 수납함 위에 놓여 있다. 사진 마르코로호 브랜드 마르코로호의 대표 매듭 팔찌. 사진 마르코로호 ━ MZ세대 탐구만큼 나이 듦에 대한 탐구도 필요하다 신 대표는 겪어보지 않은 노년에 대해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바람에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해요. 일례로 매듭으로 제작할 제품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상세 설명과 이미지가 담긴 PPT를 만들었지만, 이 정성은 그대로 할머니께 전달되지 못했어요. 글자를 보는 게 어려운 할머니도 있었던 거죠. "이분들이 정서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 할머님들에 대한 이해도가 초창기에는 낮았어요. 내 문제라 인식하는 순간, 단순히 어떤 노인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라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게 편하고 쉬워지더라고요. (웃음)" 2년 뒤면 우리나라도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노인을 그저 젊은 세대가 부양해야 하는 짐으로만 여겨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MZ세대 담론보다 중요한 게 존엄한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비크닉 보이스매터(Voice Matters!)는 기회가 닿는 대로 시니어의 활동 영역을 넓혀가며 고령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브랜드를 만나보겠습니다. bicnic 관련기사 '막강한 능력' 가진 침대 회사…소아 병동 탈바꿈 나선 까닭 [비크닉]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 편견 때문에 못 봤던 500조 시장…'우영우'들 품는 포용의 패션 [비크닉]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
MZ 열광하는 '제로' 소주…설탕 없는데 달콤한 술 맛 비밀은 [비크닉]
━ #INTRO: 헬시플레저 소주로 만든 칵테일. 사진 언스플래시 비크닉 독자 여러분, 술 좋아하세요? 저는 집에서 가끔 보드카와 위스키로 직접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곤 해요. 술의 맛과 향을 즐기는 건강한 취미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초록색 병에 든 독한 술로 '부어라 마셔라' 했던 음주 문화가 술을 즐기는 문화로 점점 바뀌고 있어요. 건강한(Healthy)과 기쁨(Pleasure)를 합쳐 건강을 즐겁게 관리하자는 '헬시플레저'가 주류 시장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죠. 독주하면 떠오르는 소주도 예외는 아니에요. 최근 소주 업계의 트렌드 변화를 알 수 있는 단어는 '제로(Zero)', 즉 무가당 소주예요. 설탕도 넣지 않았는데 달곰한 무가당 소주,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그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지난달 25일,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40240 독도소주' 공장을 찾았습니다. 소주 공장의 이모저모, 비크닉 독자 여러분께 처음으로 공개할게요. ━ #어떻게 만들지?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독도소주 공장. 사진 케이알컴퍼니 이날 방문한 공장에서는 무가당 증류식 소주인 '독도소주 제로슈거'를 생산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모습이었어요. 소주의 원료는 쌀이에요. 쌀을 도정하면서 공장의 하루는 시작됩니다. 평창과 인근 시군구에서 매입한 벼 이삭을 털어 탈곡하고, 껍질(왕겨)을 벗겨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미를 만들죠. 이렇게 도정한 쌀을 짧게는 2주, 길게는 보름간 발효해요. 임진욱 독도소주 대표는 제품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원재료인 쌀의 '향'이었다고 설명했어요. 즐기면서 마실 수 있는 술, 향이 나는 술을 만드는 게 목표였죠. 그래서 쌀을 직접 도정해서 써야겠다고 결심했대요. 독도소주 공장 내부 모습. 사진 박이담 기자 도정한 쌀을 증류하는 모습. 사진 케이알컴퍼니 갓 발효한 쌀은 막걸리 같은 형태의 술이 되는데요, 도수가 무려 70도에 달하는 독주예요. 건더기를 살짝 걸러 한 모금 마시니 입가부터 목까지 확 뜨거워지면서 제법 취기가 올라옵니다. 생쌀의 맛도 느껴지고요. 이 정도도 제법 그럴싸한 술이 완성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소주가 나오기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증류식 소주를 만드는 과정의 시작이거든요. 맑은 소주를 만들기 위해선, 기압을 낮춰 막걸리 형태의 원주(元酒)를 끓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알코올을 빼내야 해요. 이렇게 증류한 원액에 물을 섞는 제성 과정을 거치면 70도짜리 술이 마법처럼 17도, 27도, 37도로 바뀝니다. 이때 섞는 물도 특별합니다. 울릉도 앞바다 해저 1500미터에서 끌어올린 해양심층수에서 농축한 미네랄을 역삼투압 처리해 얻은 순수한 물을 사용한대요. 단맛을 내는 과당(설탕) 대신 에리트리톨, 스테비아, 토마틴 등 천연 감미료를 추가해 달짝지근한 맛을 살리면 그제서야 소주 한 병이 완성됩니다. 단맛을 내지만 체내 흡수는 적은 원료들을 연구했다고 임 대표는 설명했어요. ━ #독도를 알리고 싶었다 독도소주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포장 라인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케이알컴퍼니 독도소주를 기획한 임진욱 대표는 과거 운수 기업 대표였던 시절, '타요 버스', '소녀상 버스' 등을 기획한 아이디어 뱅크였어요. 독도소주를 만들기로 결심한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미국 나파밸리에서 우연히 구매한 와인 덕분이었어요. 재미교포 안재현씨가 2007년 '독도(Dokdo) 와이너리'를 설립해 생산한 '799-805'라는 와인이었죠. "799-805는 독도의 예전 우편번호였어요. 판매 수익의 10%는 독도를 홍보하는 비영리단체에 후원했고요. 나라에서 도와주는 것도 없는데 독도를 알리기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이렇게까지 노력한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독도소주 제로슈거' 라벨 디자인. 케이알컴퍼니 독도소주를 기획한 임진욱 케이알컴퍼니 대표. 사진 케이알컴퍼니 임 대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독도를 알리고 싶어서 독도소주를 만들었어요. 이같은 기획 의도는 소주병 라벨 곳곳에 녹아있어요. 독도의 새 우편번호 '40240', 독도의 위도와 경도, 영어로 '한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The beautiful island of Korea)' 등이요. 한때 독도 앞바다에 살았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춘 '강치', 섬에 독도의 자음과 모음을 풀어 쓴 'ㄷㅗㄱㄷㅗ'도 섬 안에 그려 넣었어요. 독도소주 생산지로 평창을 선택한 것 역시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직관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평창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된 도시니까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독도소주는 독도와 울릉도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꼭 구입해야 하는 필수 아이템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새로운 지역 기념품이 됐어요. 울릉도 지역 7곳의 점포에서 전체 상품군 중 매출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요. 독도소주를 만들어 해외에 수출해 세계인들에게 독도를 알리는 게 꿈입니다. 독도소주를 마시고 ‘독도가 뭐지?’ 정도만 떠올려도 저는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로 소주 경쟁, 더 치열해진다 사진 BGF리테일 건강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젊은 층이 제로 식품에 열광하고 있어서 무가당 소주 시장은 앞으로 더욱 성장할 전망입니다. 독도소주 뿐 아니라 이미 무학, 대선주조, 롯데칠성음료, 하이트진로 등 주류 기업 대부분이 무가당 소주 시장에 진출했어요. 올해부터 주류에도 열량과 영양성분을 표기하는 '주류 열량 자율 표시제'가 확대 시행된 점도 업체 간 경쟁이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무가당 주류가 처음 출시된 지난해 9월 이후 매출이 매달 두 자릿수로 성장해왔어요. 연령별 매출 비중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23%, 30대는 36%. 주로 2030이 찾는 술입니다. 다만, 제로라고 해서 '제로 칼로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류를 함유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열량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무가당 소주 제품의 영양 정보를 살펴보면 당류는 0%이지만 총칼로리는 일반 소주와 비슷한 300여kcal 수준이에요. 소주의 열량을 좌우하는 건 당보다는 알코올이기 때문이죠. 살을 빼고는 싶은데 술을 마시고 싶다면, 제로 소주를 마시는 것보다는 술을 자제하는 것이 더 낫다는 얘깁니다. 과유불급, 술은 기분이 좋을 정도로만 적당히 즐기자고요. 지나친 음주는 몸에 해롭다는 사실, 잊지 말아요! ━ #뱀발: 소주(燒酒)와 소주(燒酎) 사진 중앙일보 비크닉 댓글 캡처 지난해 원소주를 다룬 비크닉 기사에 눈에 띄는 댓글들이 달렸어요.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의 한자를 각각 '술 주(酒)', '전국술 주(酎)'로 달리 표기하는 이유에 대한 작은 논쟁이었어요. (비크닉의 댓글 창이 이처럼 건강한 토론의 장이 되는 건 언제나 팔벌려 환영입니다!) 같은 소주인데 어떤 곳에선 '燒酒'라고 쓰고, 또 어떤 곳에서는 '燒酎'가 되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소주의 한자어를 燒酒로 정의했지만, 시판되는 대부분의 소주병 라벨을 확인해보면 燒酎라는 표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거든요. 책 『술의 여행』의 저자 허시명 평론가는 燒酎가 구한말에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일본식 조어(造語)라고 설명했어요. 1909년에 일본인의 주도로 국내에 주세법이 만들어지면서 일본식 증류주인 소주(燒酎, しょうちゅう)가 소주(燒酒)를 대체하게 됐다는 것이죠. 우리 역사에 소주(燒酒)가 등장한 것은 『고려사』 우왕 원년(1375)이었고, 조선 후기까지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소주는 사실 모두 소주(燒酒)였다는 게 허 평론가의 주장이에요.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도 燒酒는 100번 이상 나오지만 燒酎는 등장하지 않네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소주(燒酒)라는 말은 희미해졌어요. 하지만 전통주의 계보를 잇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우리 소주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을 겁니다. 비크닉 '막강한 능력' 가진 침대 회사…소아 병동 탈바꿈 나선 까닭 [비크닉] [단독] 한국맥도날드, 참치 회사 품 안기나…동원 인수 추진 철저히 계산된 철수였다…오픈런 부른 파파이스 2년만의 귀환 [비크닉] 60만원 불러도 없어서 못판다, 아디다스 '74살 축구화' 뭐길래 [비크닉]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
'막강한 능력' 가진 침대 회사…소아 병동 탈바꿈 나선 까닭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목소리, 'Voice Matters(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 잘하는 일로 세상을 이롭게 '선한 영향력'이란 말을 잘 사용하는데요. 저마다 정의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는 각자가 지닌 능력을 비단 자신의 발전뿐 아니라 타인과 사회의 성장을 위해 쏟는 활동이라 풀이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잘하는 일로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행복감을 주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지요. 2~3년 전부터 기업의 이 같은 활동을 'ESG 경영'이라 얘기해왔습니다. 좀 더 좁혀 말하면 ESG 중 S(Social, 사회)에 해당합니다. 본업을 잘해서 재무 가치를 끌어올릴 뿐 아니라 인권 경영, 사회공헌, 소비자 안전 등의 영역도 고려하며 기업의 사회(기여)가치를 함께 끌어올리는 것이죠. 기업의 '선한 영향력'은 이제 필수가 됐습니다. 2년 전 유럽연합(EU)은 소셜 택소노미(Social Taxonomy) 보고서 초안을 마련하고, 무엇이 진짜 사회공헌인지 판별하는 기준을 세웠습니다. 기업이 잘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뿐 아니라, 그 잘하는 일로 세상을 얼마나 이롭게 했는지 객관화시켜 평가하겠다는 포석입니다. 국내에서도 더디지만 소셜택소노미 논의가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는 모양새인데요. 비크닉 Voice Matters는 올해도 잘하는 일로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탠 기업과 브랜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시몬스가 지난해 10월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환아에게 선물한 굿즈(상품) 세트로, 시몬스가 기획한 문구용품들이 담겨 있다. 사진 시몬스. ━ 삼성서울병원과 협업한 ESG 침대 소아·청소년은 국가의 미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출산율 감소의 여파로 소아·청소년 의료 붕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얼핏 보면 이렇다 할 연결 고리가 없을 것 같은 침대회사 시몬스가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더하기로 했습니다. 시몬스침대와 삼성서울병원의 인연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소아암, 중증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소아·청소년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시몬스는 매해 3억원을 기부해왔는데요. 기부금은 주로 수술이나 검사 등 외래 진료, 입원 치료비, 휠체어나 의료기기 구매 등에 활용됐습니다. 기부금으로 치료받은 환자 수만 80여 명에 달한다고 하네요. 시몬스는 단순 기부에 그치지 않는,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다 이달 초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침대를 내놨는데요. 삼성서울병원과 협업한 'ESG 침대'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제품의 정식 이름은 '뷰티레스트 1925'. 지난 1925년 시몬스가 선보인 인기 매트리스 콜렉션 '뷰티레스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 시몬스에서 새롭게 내놓는 신규 매트리스입니다. 단단한 면, 부드러운 면을 모두 가지고 있어 양면 활용이 가능한 게 특징입니다. 시몬스의 다른 매트리스들처럼 1급 발암물질 라돈, 토론 안전 인증과 환경부의 국가 공인 친환경 인증을 받았습니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 소재를 적용했고요. '뷰티레스트 1925'. 사진 시몬스. '뷰티레스트 1925' 소비자 가격의 5%는 차곡차곡 적립돼 2025년 삼성서울병원 별관 자리에 증축 예정인 '소아·청소년 센터'(가칭) 리모델링 기금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제품을 구매하면 소비자 역시 간접적으로 기부에 힘을 보태는 셈이죠. 전국 매장에 해당 제품이 순차적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의미 있는 소비를 원하는 이들 사이에서 관심이 뜨겁다고 합니다. 이제 제품의 빼어난 기능, 성능만으로 시장을 이끌어가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한 제품이 지닌 서사, 이 제품이 세상에 나와 어떤 긍정적 나비효과를 일으키는지까지도 소비자의 깐깐한 선택 기준에 자리 잡은 것이죠. ━ 시몬스의 공간 브랜딩, 소아 병동에도 시몬스가 진짜 잘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공간 브랜딩'입니다. 시몬스는 그 동안 경기도 이천, 부산,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왔는데요. 시몬스 테라스, 그로서리 스토어(식료품점) 등이 대표적 예입니다. 로컬 브랜드와 협업해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그 도시만의 문화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복합문화공간을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으로, 시몬스 브랜드를 오래도록 사랑한 팬(소비자)과 브랜드를 연결하는 일종의 사랑방으로 만든 겁니다. 이 특별한 공간의 기획과 디자인은 모두 시몬스 자체 '디자인 스튜디오'가 도맡았습니다. 지난해 문을 연 시몬스 청담 그로서리 스토어 전경. 이 팝업스토어의 공간 기획·디자인 등은 시몬스 내 자체 ‘디자인 스튜디오’가 맡아 진행했다. 사진 시몬스. 막강한 이 브랜딩 능력을 이번에는 소아 병동 단장에 쓰겠다는 포부인데요. 시몬스는 오는 2025년 증축 예정인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센터'(가칭) 공간 디자인에도 힘을 쏟습니다. 삭막함, 긴장감, 두려움이 감도는 병원이 아니라 환자든 환자 가족이든 누구나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라는데요. 이미 스페인, 영국 왕립 병원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소아·청소년 병동을 작은 미술관 혹은 상상력의 공간으로 활용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이 긴장감을 덜고, 인지 발달에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각종 기하학 도형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거나 은은한 파스텔 색상을 활용해 차분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것이죠. 치료 공간이기 이전에 심적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한 겁니다. 공간을 독특한 감성으로 채워 넣어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던 시몬스가 삭막한 병동을 어떻게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까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는 삼성서울병원 의료진, 관계자 등과 조율하며 찬찬히 밑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공간 브랜딩뿐 아니라 소아·청소년 병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다양화하는 스토리 브랜딩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소아·청소년 병동에는 환자와 환자 가족, 의료진뿐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 매우 힘겹게 일상을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결코 이 모습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병동의 일상에도 소소한 인생사가 있고, 웃음이 있고 행복이 있죠. 우리가 쉽게 보지 못했던 다양한 장면과 이야기를 잘 끌어내 소아·청소년 병동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관점을 다양화하고 싶다고 합니다. "ESG 경영이 대단히 거창한 건 아닙니다. 우리가 잘하는 것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마중물이 되고 싶어요. 삼성서울병원-시몬스의 ESG 협업 모델이 잘 정착되고, 소아·청소년 센터가 자체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자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고 싶습니다." - 김성준 시몬스 브랜드전략기획 부문장- 보이스 매터는 다음에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 브랜드를 찾아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Bicnic 비크닉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 편견 때문에 못 봤던 500조 시장…'우영우'들 품는 포용의 패션 [비크닉] [비크닉] 그린워싱, 무조건 때리는 게 지구에 득일까?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
철저히 계산된 철수였다…오픈런 부른 파파이스 2년만의 귀환 [비크닉]
[파파이스 강남점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 사진 파파이스] 2000년대를 주름 잡던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돌아왔습니다. 짭조름한 양념 가득한 감자튀김과 딸기잼에 찍어 먹는 비스킷이 트레이드 마크였는데요. 바로 파파이스입니다. 2019년 한국 시장을 떠난 파파이스는 올해 1월 강남점을 시작으로 재런칭을 했는데요. 수백명이 줄을 설만큼 오픈런 열기가 뜨거웠다고 해요. 파파이스가 철수 2년 만에 귀환한 이유가 뭘까요? 브랜드 소개팅 이번에는 한국에서 파파이스를 운영하는 넌럭셔리어스컴퍼니 이문경 상무(COO)를 만나고 왔습니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에서 굵직한 히트 상품을 만든 패스트푸드 업계 전설 같은 분이랍니다. 그는 파파이스의 성공적인 재탄생이라는 특명을 받았다고 해요. ━ 철저히 계산된 철수였다 파파이스는 1972년 미국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브랜드예요. 한국에 처음 들어온 건 1994년. 롯데리아(1979), 버거킹(1984), 맥도날드(1988)에 비해서는 좀 늦었지만, ‘케이준’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1976년 파파이스 루이지애나 식당의 모습. 사진 파파이스] 케이준은 과거 프랑스령이었던 미국 남서부 루이지애나의 토속 요리 스타일을 말하는데요. 닭튀김을손으로 반죽을 하고 조미료를 사용하고, 프랑스 시골 요리에 파프리카, 고추와 같은 현지 조미료를 융합한 게 특징입니다. 한국에서는 2000년 초엔 매장 수가 200개가 넘어 패스트푸드 4대장으로 불리기도 했어요. 한국 패스트푸드 역사에서 빠질 수 없던 이 브랜드가 20년 만에 철수한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어요. 알고 보니 이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전략적 후퇴였어요. 처음부터 한국 시장을 완전히 포기할 생각은 없었답니다. 아시아 태평양 트렌드를 이끄는 한국은 어떻게든 키워야 했던 거죠. 그러니까 한국 시장 철수는 사실 새 주인이 마음껏 도약할 수 있도록 하는 밑작업이었대요. 굴욕(?)의 과거와 청산하고 새 출발 하자는 의미였겠죠. 새 주인은 ‘신라교역’이 됐습니다. 이 회사는 50년간 원양어업 사업을 해온 장수 기업인데요. 사업 다각화를 위해 외식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해요. 브랜드 인수를 앞두고 전문성을 높이고자 패스트푸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이문경 상무를 영입했죠. ━ 전 국민이 아는 브랜드보다 강력한 건 없다 외식 유통 회사로 변신하고자 하는 신라교역은 여러 브랜드 인수를 고려했다고 하는데요. 이 중에서 파파이스를 우선적으로 점 찍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파파이스라는 브랜드가 가진 힘입니다. “제가 강력하게 믿는 것 중 하나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브랜드보다 강한 브랜드는 없다’는 거예요. 핫한 브랜드가 힙한 게 아니고 알고 있는 브랜드가 힙한 거예요. 전 국민이 한 번쯤 먹어봤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데요.” 처음부터 무언가를 키우는 것보다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브랜드를 활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거죠. 세대 교체가 이뤄지는 현 시기도 기회라고 생각했대요. “3040대에 파파이스는 추억을 가진 향수를 자극하는 브랜드고, MZ에게는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에요. 고객 관리 측면에 봐도 파파이스는 모든 세대에게 어필이 가능한 거죠.” 치킨버거 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점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했대요. 역으로 보면 이만큼 파이가 지속적으로 늘어난 시장도 없다는 겁니다. ━ 새로운 가성비 시대 사실 파파이스가 한국 시장을 잠시 떠났던 2년 사이 시장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어요. 업계 정상인 맥도날드, 맘스터치 등도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 새 출발을 알린 파파이스의 무기는 뭘까요. 첫 번째 꼽은 것은 미국 남부 케이준 스타일이라는 정체성입니다. 파파이스는 케이준 맛을 한국에 최초로 도입한 정통 루이지애나 스타일이라는 히스토리를 다시 강조할 예정입니다. “LA나 뉴욕 버거는 많이 알려졌지만 남부 스타일은 낯설죠. 케이준은 양념이 강하고 양도 많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제육볶음과 비슷해요. 일종의 그 지역의 소울푸드죠. 이 색다른 미국의 자극적인 맛을 알리고 싶어요.” 가성비가 중요한 패스트푸드 특성상 가격은 핵심 요소입니다. 예전에는 파파이스가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지적이 있기도 했는데요. 그는 ‘이제 돈과 양으로만 계산되는 가성비 시대는 지났다’고 했어요. “물론 가격도 중요하지만요. 똑같은 가격에도 최고의 품질을 제공하고, 여기에 또 다른 가치를 주는 새로운 개념의 가성비가 필요해요. 치킨 회사가 와인 회사와 협업 하는 등 생각지도 못한 협업을 선보이는 등 새로운 실험을 할 예정이에요.” 얼마 전엔 화곡점 3호점도 오픈했대요. 앞으로는 일부 매장은 식사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미는 등 혁신을 시도한다고 해요. 오프라인 매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에서 고객과 만날 준비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파파이스 강남점 외관. 사진 파파이스 ━ 경쟁사 따라 하기 말고 우리만의 것 최근 파파이스 재오픈한 매장 위치를 두고 ‘KFC나 버거킹 등 경쟁 업체를 노리고 일부러 인근으로 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이는 사실이 아니래요. 이 상무는 “무작정 고객을 뺏어오는 경쟁 힘든 것”이라며 과거 버거킹 근무 시절 얘기를 꺼냈어요. “맥도날드가 토마토와 베이컨을 넣은 버거가 인기를 끌 때였어요. 보통은 경쟁사의 그 제품 고객을 뺏기 위해 비슷한 재료, 컨셉을 갖고 경쟁하거든요. 근데 서로 죽이는 경쟁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새로운 컨셉인 콰트로 버거를 내놨어요.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그가 선보인 이 버거는 미국으로 역수출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어요. 파파이스 역시 경쟁사를 따라 하는 경쟁은 안 하겠다는 의미겠죠. 지금 가장 인기 있는 메뉴만 봐도 기존 브랜드와는 다른 느낌이에요. 핵심 메뉴는 ‘치킨 샌드위치’인데요. 브리오슈 번에 케이준 향신료로 염지한 통다리가 들어간 게 특징이래요. 어찌 보면 다소 평범하고 심플해 보이는데요. 어떤 토핑을 얼마나 더 화려하게 넣을까에 집중하는 업계 신메뉴 경쟁과는 다른 전략이죠. “맥도날드는 브랜드적으로나 소비자 특성으로 보나, 효율과 시스템을 중시하는 이과생 이미지예요. 버거킹은 미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술학적이고요. 파파이스는 자기 주도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런 브랜드가 될 거고요.” ━ 마무리 한국인의 주식은 무조건 한식이었던 1980년대 후반, 햄버거는 절대 식사가 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맥도날드나 버거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런치 세트를 먹죠. 이게 치밀한 마케팅의 결과였어요. “20년 전 된장찌개가 5000원도 안 됐을 때 사람들은 왜 배도 안 차는 햄버거를 6000원 주고 먹느냐고 했어요. 절박한 마음으로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한번은 드셔 보시겠어요’ 라고 물었더니, 지나가는 분이 이렇게 답했어요. ‘3000원 정도면 뭐.’ 아! 한식을 이기기 위해서는 가격 문턱을 확 낮춰야겠다.” 바로 맥 런치의 시작이었다고 해요. 지금 업계는 어찌 보면 초심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요. 영양가 있고 맛있는 한식과 싸워야 했던 그때보다 지금은 더 경쟁자가 많은데도 말예요. 파파이스의 부활을 시작으로 치킨버거 업계가 제2의 전성기를 만들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비크닉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
편집숍은 살아 움직인다, 비이커가 브랜드를 발굴하는 법 [비크닉]
남과 다르게 입고, 패션 트렌드를 빠르게 캐치하는 '패피(패션피플)'들이 열광하는 곳이 있다. 패션 바이어들이 국내외에서 발굴해 엄선한 옷을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곳, 바로 편집숍이다. 과거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 의류 제품을 선별해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테스트베드'였다면, 편집숍은 이제 브랜드를 발굴·개발하고, 자신만의 상품을 만들어 판매해 수익을 내는 '패션 플랫폼 브랜드'로 변모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성수동에 세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비이커 성수'를 열고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는 편집숍 브랜드 '비이커(BEAKER)'의 이윤경 삼성물산 패션부문 비이커팀 그룹장을 만나 좋은 브랜드를 발굴하는 노하우를 들었다. 지난달 18일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에 문을 연 비이커의 국내 세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비이커 성수'. 사진 비이커 ━ 편집숍의 쓸모는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내는 것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편집숍 브랜드인 비이커는 10년 전인 2012년 서울 청담동과 한남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편집숍 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메종키츠네, 아미, 르메르 등 신(新)명품에 등극한 다수의 글로벌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낫띵리튼, 더오픈프로덕트, 유스, 테켓 등 수많은 국내 신진 브랜드를 직접 키우기도 했다. 브랜드 발굴에 필요한 안목은 어떻게 길러야 할까. 이윤경 그룹장은 "항상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옷을 좋아하고 좋은 패션을 보는 눈은 기본기"라며 "실제로 비이커 바이어 중엔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패션을 소개하는 인플루언서도 많다"고 했다. 패션을 좋아하고 이를 찾는 사람이어야 좋은 브랜드와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그룹장은 "신명품이라 불리는 '잘나가는 브랜드'의 제품들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비이커가 쌓아온 바잉 능력의 결과물이고, 비이커의 지난 10년은 숨어있는 브랜드를 하나씩 찾아가는 여정이었다"며 "패션 트렌드는 멈춰진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인다. 편집숍도 그에 맞춰서 끊임없이 계속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숍의 원동력이자 쓸모는 숨어있던 브랜드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단독 매장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이커 성수'에 비치된 수입 브랜드 의류들. 박영민 기자 ━ 잘 되면 키워보고, 안 되면 빠르게 아웃 비이커는 시장에 안착한 몇 안 되는 국내 편집숍 모델이다. 2019년 손익분기점(BEP)을 넘기며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 사업이 안정 궤도에 들면서 오리지널(PB) 상품도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오리지널 상품이 문턱을 낮췄고, 지금은 비중도 전체 대비 20% 수준으로 올라왔다. 종잡을 수 없는 패션 시장에서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이건 뜨겠다' 싶어 제품을 바잉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이 별로인 제품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땐 제품 구성을 조금씩 바꿔 새로운 분위기로 다시 브랜드를 어필했다. 특정 브랜드의 상품이 100개라면, 100개 모두를 사 오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고객에게 맞는 옷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테스트해볼 수 있어요. 잘 되면 더 키우고, 안 되면 다른 브랜드로 빠르게 '인앤아웃(In and Out)'을 할 수 있어야 해요. 판단력이 중요한 이유죠. '비이커 성수' 1층에 비치된 제품들. 국내외 브랜드 제품이 섞여 있는 구성이다. 사진 비이커 ━ 편집숍 브랜딩, 제대로 보여주는 건 플래그십 스토어 해외 브랜드 일색이었던 편집숍이 지금은 국내 브랜드에도 많은 자리를 내주고 있다. 과거엔 국내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패션 브랜드를 수입해 보여주는 것에 주력했다면, 요즘은 잠재력 있는 '좋은' 국내 브랜드를 찾아내 소개하는 것이 편집숍 트렌드가 됐다. 다만 세계적으로도 패션에 민감하기로 정평 난 한국 패션피플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해외 브랜드보다 경쟁이 매우 치열한 것이 현실. 이 그룹장은 "국내 브랜드는 유행 주기(브랜드가 인기를 얻고 잃는 시간)가 매우 짧다. SNS에서 뜨는 브랜드라고 해서 편집숍에 들여놓았다가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관심에서 멀어지고, 또 다른 브랜드가 뜬다"며 "무신사, W컨셉 등 온라인 플랫폼 덕분에 오프라인 매장이 없어도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이커가 엄선한 국내 브랜드는 공간이 한정적인 백화점 매장 대신 한남·청담·성수 등 플래그십 스토어 세 곳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엔 이유가 있는데, 이 그룹장에 따르면 "매장 수가 많은 백화점 매장 매출이 훨씬 높지만, 비이커를 제대로 보여주는 건 플래그십 스토어"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캐시카우, 플래그십은 편집숍의 DNA가 담긴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서로의 역할이 다르다는 의미. 플래그십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선봉장 역할도 하는데, 이번 성수동에 세 번째 매장을 낸 이유 역시 새로운 지역 발굴 차원에서다. 이 그룹장은 "성수동은 소규모 디자이너부터 명품까지 다양한 콘텐트의 집합체로 변화하는 곳"이라며 "활발하게 젊은 층을 유입할 수 있는 '컬처 블렌딩 유니언'이라는 비이커의 콘셉트와 맞닿아 있어 플래그십 스토어에 적합한 장소"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비이커 성수와 같은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브랜드 '비이커'가 지향하는 컨셉추얼한 이미지와 분위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크닉 로컬과 상생 코드 품었다…진화하는 스타벅스의 공간 마케팅 [비크닉]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단독] '백색가전' 돌아온다…LG전자 다시 색깔 빼는 이유 콜라캔이 초록색이라면? 오뚜기 50년간 노란색 쓴 이유있다 [비크닉]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
"나에게 친절하세요" 10년간 '마음 건강' 외친 이 브랜드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비크닉 'Voice Matters(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의 목소리, 비크닉 Voice Matters. ━ 올해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셨나요? 한해의 끝자락입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보고 다가올 새해를 준비할 텐데요. 몇 년 전부터 연말이면 빠지지 않고 이 질문을 스스로 건넵니다. "얼마나 자신에게 친절했나?"라고요. 살아가면서 '괜찮아' 가면을 자주 쓸 때가 많습니다. 괜찮지 않은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는 게 두려운 거죠. 진짜 마음을 살피지 않고 '괜찮아' 가면을 자주 쓰는 건 사실 자신에게 대단히 불친절한 행동입니다. 건강한 몸을 위해 우리는 좋은 음식을 찾아 먹고 열심히 운동합니다. 마음 건강, 정신 건강(mental health) 역시 마찬가지죠. 시간을 들여 잘 살피고 가꾸어 나가야 하지만, 진짜 마음을 들추고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약하다' 낙인(stigma) 찍힐까 두렵고, 터놓고 말할 대상을 찾기도 힘듭니다. 체계적으로 해법을 제시해주는 마땅한 곳도 없으니 그냥 홀로 견뎌내는 걸 택하는 것이죠. 꾸역꾸역 견디다 뒤늦게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세계질병 부담연구에 따르면 불안 장애, 주요 우울 장애 등 정신 건강 문제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 부담률이 전체 질병 부담률의 15%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챙기고 정신 건강을 살피는 건 모두의 일인데,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왜 자주 잊고 사는 것일까요? 이 근원적 물음에 답하며 무려 10여년간 마음 건강의 중요성을 외쳐온 브랜드가 있습니다. 영국 부티크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의 특별한 10년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조 말론 런던이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지난 10월 틱톡 크리에이터 레니(@itslennie)와 손잡고 만든 글로벌 소셜 임팩트(사회적 영향력) 캠페인 포스터. '자신에게 친절하라(Be Kind)'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사진 조 말론 런던. ━ 향기로 건강한 마음을 만들 수 있다면 우울감을 빠르게 해소하고 기분전환을 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향기죠. 향을 다루는 조 말론 런던은 일시적 기분전환에 도움을 주는 것에서 나아가 건강한 마음, 정신을 위한 보다 근원적인 고민을 일찌감치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2012년부터입니다. 당시 조 말론 런던은 자선 활동을 위한 특별한 향초 콜렉션(The Charity Candle Collection)을 내놨는데요. 지금까지 미국, 캐나다, 일본 등으로 판매 시장을 확대하며 약 300만 달러(39억원)의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제품 판매 수익은 정신 건강 문제 인식 개선에 힘을 보태고 있는 자선 단체 지원금으로 활용되거나,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활용됐습니다. 10년간 꾸준하게 이어졌던 이 의미 있는 행보를 보다 확장하기 위해 최근 이들은 별도로 'Shining A Light On Mental Health(정신 건강 문제에 불을 밝히자)'라는 재단도 발족했는데요. 지난 10월 10일 세계정신 건강의 날을 시작으로 내년 10월 9일까지 총 200만 달러(26억원)를 추가 기부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조 말론 런던 글로벌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 중 100만 달러(13억원)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에 전달될 것"이라며 "이 기금은 130개국 4750만 명의 아동과 보호자를 위한 정신 건강 프로젝트에 쓰일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조 말론 런던이 자선 활동을 위해 지난 2012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향초 콜렉션(The Charity Candle Collection). 사진 조 말론 런던 ━ 멘탈 헬스에 투자한 10년, 이젠 청년을 향해 조 말론 런던은 유니세프의 '아동·청소년 정신 건강을 위한 글로벌 연합(UNICEF's Global Coalition for Youth Mental Well-being)'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정신 건강을 위한 연합은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미흡하다는데 문제 의식을 갖고 각국 정부와 민간 기업의 힘을 모으고자 만들어진 곳입니다. 글로벌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 글로벌 보험사 스위스 취리히 보험그룹도 함께 하고 있죠. 이들은 2030년까지 30개국 3000만 청년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재정 지원 등 직접적 활동을 벌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답니다. 조 말론 런던 글로벌 관계자는 "이 연합의 전략적 멤버가 될 예정"이라며 "브랜드의 독자 활동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더 많은 브랜드가 함께하도록 독려한다는 의미다. 정신 건강을 위한 지난 10년의 노력을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 표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조 말론 런던의 글로벌 앰배서더(홍보대사)인 영국 모델 애드와 아보아(왼쪽)가 캐릭터 레니와 함께 정신 건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 조 말론 런던 조 말론 런던은 지난 10월 틱톡 크리에이터 레니(@itslennie), 영국 모델 애드와 아보아와 협업해 브랜드 최초로 글로벌 소셜 임팩트(사회적 영향력) 캠페인도 시작했는데요. 아보아는 전 세계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정신 건강 커뮤니티 '걸스 토크(Gurl’s Talk)'를 운영하는 액티비스트(활동가)이기도 합니다. 내년엔 아보아와 함께 한국을 포함 APAC(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돌면서 정신 건강 문제 인식 개선을 위한 다채로운 소셜 임팩트 활동 벌일 예정이라는데요. 즉각적인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활동이지만, 10년 넘게 꾸준히 한 주제를 놓고 활동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브랜드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신 건강이라는 주제에 찍힌 부정적인 낙인을 지워내고, 사람들이 정신 건강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을 돌보게 하는 게 우리의 궁극적인 바람입니다" (조 댄시 조 말론 런던 글로벌 CEO) ━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아요" 사회 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마음 건강에 누구든 문제는 생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 바로 알고, 정신 건강 유지를 위해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으며,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보건복지 전문가들은 이것을 '정신 건강 리터러시(Mental Health Literacy)'라 칭하기도 하는데요. 정신 건강 리터러시는 터놓고 말하는 것에서, 누구나 마음 건강과 관련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시작됩니다. 조 말론 런던 사내에서는 별도 교육을 받은 정신 건강 응급 처치 요원(Mental Health First Aiders)도 상주합니다. 동료들의 우울감을 알아차리고 그들에게 적절한 지지의 말과 해법을 건넬 수 있도록, 이보다 앞서 괜찮지 않은 마음을 털어놓고 적극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겠다는 취지에서죠. 마음 건강, 정신 건강은 나약함과 의지력 결핍의 문제는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이 안녕하지 못한가요? 그렇다면 언제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습니다. (It’s ok to ask for help). 자신에게 보다 친절해도 괜찮습니다. (Be Kind to yourself). 조 말론 런던이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지난 10월 틱톡 크리에이터 레니(@itslennie)와 손잡고 만든 글로벌 소셜 임팩트(사회적 영향력) 캠페인 포스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다(It's ok to ask for help)'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진 조 말론 런던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
콜라캔이 초록색이라면? 오뚜기 50년간 노란색 쓴 이유있다 [비크닉]
━ 신비한 색채 마케팅의 세계 만약 코카콜라 캔이 빨간색이 아니라 초록색이라면? 포카리스웨트가 파란색이 아니라 주황색이면 어떨까요? 뭔가 이상하죠? 컬러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인데요. 컬러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코카콜라는 “코카콜라 맛 자체가 첫 번째 비밀 레시피라면 코카콜라의 레드는 두 번째 비밀 레시피”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마트 식료품 판매대에서 노란색이 보이면 어떤 브랜드가 생각나세요? 브랜드 소개팅 비크닉 이번 주엔 오뚜기의 색채 마케팅을 소개합니다. 1980년대 오뚜기 광고. 사진 오뚜기 유튜브 ━ 색의 힘 색채 마케팅은 색을 활용해서 브랜드 고유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더 나아가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기법을 말해요. 브랜드의 시각적 요소는 로고나 심볼의 모양, 폰트, 색상 등이 있는데 이중 색의 영향력이 80% 이상이라고 해요. 색상에 대한 이미지는 보편성을 띄기 때문에 그 자체로 효과적인 언어가 되죠. 예를 들어 빨간색이 덥고 파란색이 시원해 보인다 등 이런 느낌은 전 세계인이 똑같이 느끼는 거니까요. 그래서 대부분 브랜드가 로고나 인테리어, 제품 패키지, 홈페이지 등에 색상을 활용하고 있어요. 애플의 무지개색 로고 심지어 기업의 정체성이 달라지면 색도 달라져요. 애플의 로고는 원래 무지개색이었어요. 1977년부터 1998년까지 여섯 가지 무지개 띠로 된 사과 모양이었죠. 당시 애플 컴퓨터가 컬러 모니터를 처음 지원한 가정용 컴퓨터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친근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이후엔 애플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애플 모니터가 컬러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없어지자 무지개색을 안 쓰게 됐대요. ━ 오뚜기의 선택은 한결같이 노랑 1960~70년 오뚜기 제품의 모습. 사진 오뚜기 홈페이지 오뚜기는 53년 전 창립 때부터 노란색을 써왔어요. 처음에는 노란색이 입맛을 돋워주는 컬러라서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제품의 통일감을 부여하려고 계속 쓰게 됐다고 해요. 패키지나 로고, 폰트에 노란색을 쓰는 게 컬러마케팅의 전부는 아녜요. 오뚜기는 최근 더 세련된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요. ‘Y100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컬러 프로젝트는 오뚜기 브랜드경험실 부서원들이 회사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노란색 물건을 쓰는 걸 보고 영감을 받은 거라고 해요. 어느 날 사무실을 둘러 보니 동료들 책상에 노란색 물건이 많이 있었대요. 보통 직장인들이 회사의 색을 자발적으로 사용하진 않잖아요. 근데 오뚜기 직원들은 노란색 넥타이를 매고, 명함 케이스, 필통, 노트 등을 쓰고 있었답니다. “그때 느꼈어요. ‘아 이미 우리는 노란색을 자발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네. 이건 브랜드만의 자산이었구나’”(조현국 브랜드경험실 팀장) 오뚜기의 색상을 더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그들은 첫 번째 활동으로 회사 색인 Y100을 활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색채학에서 Y100은 노랑을 의미하는 Y값이 100이면서 C(파랑), M(빨강), K(검은) 컬러는 0 값인, 다른 색의 요소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한 색이래요. “노랑은 회사가 50년 넘게 고집스럽게 지켜온 색이에요. Y100은 이 진심을 보여주는 상징이죠. ” Y100 프로젝트는 지난 3월 LCDC 팝업을 시작으로 7월엔 강남역에서 ‘노랑나랑노랑’이라는 테마로 팝업 스토어를 열어 큰 관심을 모았다고 해요. ━ 옐로우즈 캐릭터까지 확장 오뚜기의 캐릭터 옐로우즈 사진 오뚜기 최근엔 옐로우즈라는 캐릭터를 선보였어요.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보마켓 신촌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습니다. 옐로우즈의 메인 캐릭터는 ‘뚜기’(ttogi)예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오뚜기 로고에 있는 입맛 다시는 캐릭터를 본 딴 것 같더라고요. 묘하게 옛날 느낌이 나면서도 마냥 촌스럽지 않고 현대적인 게 ‘뉴트로’의 정석이었습니다. 김지현 브랜드경험실 팀장에 따르면 기존 로고의 상징과 의미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요즘 트렌드에 맞는, 지속 가능한 세계관을 보유한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고 해요. “어찌 보면 오뚜기의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그래서 오뚜기 구성원들의 애정과 공감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했어요. 다양한 사내 그룹에서 캐릭터 방향에 대한 인사이트를 수집하고 선호도 조사를 통해 시안을 좁혀 나갔어요.” 브랜드를 대표하는 로고에 어린이의 얼굴을 넣은 이유는 곧 오뚜기의 기업 이념과도 맞닿아 있다고 했어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국은 쑥쑥 성장하는 어린이처럼, 맛있는 음식을 통해 마음속 행복을 키워줄 수 있는 기업이 되자는 의미라고 해요. 마요네즈 색깔의 강아지 ‘마요’(mayo), 케첩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의 병아리 ‘챠비’(chabI) 등 다른 캐릭터도 귀엽죠? ━ 젊은 감각으로 리브랜딩 효과 Y100프로젝트에 쓰인 굿즈 사진 오뚜기 현장에는 옐로우즈 캐릭터를 입힌 다양한 굿즈가 전시돼 있었는데요. 의외로 오뚜기 브랜드가 바로 생각나진 않았어요. 오뚜기라는 영어 글씨가 쓰여 있긴 했는데, 그 자체로도 그냥 디자인 요소처럼 느껴졌어요. 그동안 오뚜기 하면 좀 엄마가 쓰는 것 같은, 그래서 믿고 살 수 있긴 하지만 뭔가 올드한 이미지가 조금 있었잖아요. 근데 그 오래된 오뚜기 느낌이 안 나고, 옐로우 테마의 힙한 인테리어 소품 브랜드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의도된 전략이라고 해요. 패키지나 로고를 바꾸지 않았는데도, 브랜드 이미지가 유쾌해지고 젊어지는 효과를 노린 거죠. 실제 팝업 현장에선 주방에서 자주 보던 마요네즈의 노란 뚜껑이나 진라면의 노란 포장지도 왠지 모르게 낯설게 보이더라고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브랜드의 주 영역인 식탁을 벗어나 다양한 공간에서 노랑을 경험하고 오뚜기를 떠올렸으면 했어요” 앞으로 파인아트 작가들과 협업해 노랑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매월 선보이고, 페인트 전문 브랜드와 Y100 컬러 페인트를 만드는 작업도 준비 중이라고 해요. ━ 마무리 하인즈의 초록색 케첩 사진 하인즈 색채 마케팅의 실패 사례도 궁금하다고요? 하인즈의 초록색 케첩, 해태의 노랑 콜라는 창의적인 시도였지만 소비자에게 외면받았어요. 초록색은 식욕을 떨어뜨렸고, 노랑은 탄산음료의 청량감과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색을 고를 때는 물리적, 심리적, 생리학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상품의 이미지와 시장의 특성을 철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해요. 오랜 전통이 담긴 본인만의 색상을 힙한 감성으로 재밌게 풀어내고 있는 오뚜기. 그들의 노랑이 궁금하시다면 31일까지 서울 신촌 보마켓에서 열리는 옐로우즈 팝업을 찾아보세요. 비크닉 2500억 쏟아부은 '마곡 핫플'…40초 만에 매진시킨 LG의 비결 [비크닉] "모닥불 닮은 빛" 2030 감성 자극했다…다시 부활한 백열전구 [비크닉] 야쿠르트 아줌마 유니폼 힙하게 바뀐 이유 [비크닉] '고디바'는 귀족부인 이름이었다…명품 초콜릿이 된 비결 [비크닉]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
2500억 쏟아부은 '마곡 핫플'…40초 만에 매진시킨 LG의 비결 [비크닉]
올해 공연예술계의 가장 큰 이슈는 지난 10월 서울 마곡지구에서 개관한 ‘LG아트센터 서울’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개관 공연은 오픈 40초 만에 매진되기도 했죠.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공연장은 무려 2500억원을 들여 5년 가까이 공들여 지으며 화제가 됐고요. LG아트센터는 그 자체로 공연예술계의 최고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번 주 비크닉 브랜드 소개팅에선 LG아트센터 이현정 센터장을 만나고 왔습니다. ━ 예술로, 교육으로 지역 살리기 원래 LG아트센터는 서울 강남 역삼에 있었어요. LG는 서울시와 협의해 마곡 LG아트센터를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기로 약속했습니다. 사실 마곡은 2000년 초까지 서울의 변두리로 저평가 받았던 곳이에요. 지난 2018년 LG 연구개발 인력 2만200여명이 집결한 사이언스파크가 조성되면서 첨단 연구단지로 탈바꿈했죠. 그렇게 한번 마곡을 알린 LG가 이번엔 문화 예술 인프라를 통해 다시 한번 지역 살리기에 나선 겁니다. 역삼 LG아트센터의 성공적인 운영 노하우를 갖고 마곡에 세계적인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LG아트센터 외관. 왼쪽엔 서울식물원이 있고 뒷편에는 LG사이언스파크가 있다. [사진 LG] “역삼에선 도심 한복판에 아트센터 건물 하나만 있었어요. 마곡 주변에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서울식물원이 있어요. 바로 옆에는 LG 연구의 산실인 LG사이언스파크가 있죠. 과학, 자연, 공연예술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문화예술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었어요. 시민들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요.” 건물 자체가 예술과 과학의 연결이란 철학을 담고 있어요. 아트센터 안에는 튜브(Tube)라는 공간이 있는데요. 이곳을 따라가면 국내 최초의 체험형 인공지능(AI) 교육기관인 LG디스커버리랩으로 갈 수 있어요. LG디스커버리랩은 국내 최초 청소년 AI 교육기관입니다. 자율주행 로봇, AI 챗봇 등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죠. ━ 건물 자체가 예술 LG아트센터 외관 [사진 LG] 실제 아트센터에 가보니 건물 자체가 예술 작품이었어요. 1995년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계의 거장 안도 다다오의 숨결이 살아있었죠. 마곡나루역에서 아트센터 지상 3층까지 연결하는 ‘스텝 아트리움’(Step Atrium), 지상층을 대각선으로 연결하는 ‘튜브’(Tube), 곡선 형태로 이뤄진 벽면인 ‘게이트 아크’(Gate Arc) 이렇게 3가지 콘셉트를 바탕으로 설계됐는데요. 빛의 건축가라는 명성에 맞게 해와 함께 빛이 바뀌는 순간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꼭 공연을 보러 오지 않아도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 영감을 주고 싶었어요. 똑같은 커피를 마셔도 분위기 좋은 곳에 있으면 더 맛있고 행복하잖아요. 역삼동은 공연 관람을 위해 많이 오셨지만, 이곳엔 그냥 건물 자체를 즐기러 오셔도 돼요.” LG아트센터 로비 [사진 LG] 저는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공기가 다르다'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말 그대로 좋은 냄새가 났어요. 부드럽고 무게감 있는 우디 향과 꽃 냄새가 어우러진 따뜻한 향이었어요. 알고 보니 LG생활건강 향 전문 연구소인 센베리 퍼퓸하우스와 함께 향기 136을 개발했다고 해요. “코로나19로 공연장을 찾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느낌, 기억을 선사해주고 싶어서 기획했어요.” 이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품 판매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 아트센터를 지을 때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 게 또 있는데요. 바로 접근성입니다. 공연장은 지하철 마곡나루역에서 내리면 바로 나오는데요.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도 시민들이 찾아오기 불편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돈을 더 들여서라도 지하로 연결했대요. ━ 프로그램 고르는 안목 “클래식과 오케스트라, 발레만 되풀이되던 시절, LG아트센터의 무대는 마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었다.” (최우정 팀프 앙상블 예술감독) 애호가들 사이에서 LG아트센터는 창의적인 기획공연으로 명성이 자자해요. 해외 명작을 발굴해 국내에 지속적으로 소개하며 그 안목과 섭외력을 인정받았죠. 3200l 물을 객석에 담아서 지옥과 천국을 보여줬던 단테의 ‘신곡’(2002). 객석 1층과 3층을 비우고 객석 2층에 난간을 무대를 걸쳐 놓게 하고 주인공이 환영처럼 사라지는 연출로 놀라움을 선사했던 ‘검은 수사’(2002)가 대표적입니다. 아트센터장이 뽑은 역대급 공연은 이보 반호프의 ‘로마 비극’(2019)입니다. “무대의 금기를 다 깨는 공연이었어요. 관객들이 무대 위로 언제든지 올라가 연기자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무대 한쪽에선 샌드위치 커피 스낵을 팔았거든요. 6시간 가까운 공연이었는데 관람객들의 집중도가 상당했죠.” 이보 반 호프의 로마 비극 [사진 LG] 예술작품을 고를 때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기존에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이고 놀라운 것을 찾는대요. “ ‘낯설지만 좋은 작품’을 찾으려고 했어요. 특히 세계적인 공연을 시차 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랐어요.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들면 수년이 흐른 뒤에라도 무대에 올렸어요. 이게 쌓이다 보니 관객들이 느끼는 저희만의 ‘결’이 생긴 것 같아요.” ━ 남다른 프로그램 비결, 똑똑한 마케팅 LG아트센터가 과감한 기획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던 마케팅적인 비결이 있었어요. 국내 최초로 선보인 기획 공연 시즌제와 패키지 제도 덕분인데요. 기획 공연 시즌제는 1년간 공연 프로그램 라인업을 한꺼번에 공개하는 거고, 패키지는 이를 자신의 취향대로 묶어서 할인받을 수 있는 제도예요. 관람객 입장에선 더 저렴하게 표를 살 수 있고, 한해 공연 계획을 미리 세울 수도 있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대신 대신 실구매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준 건데요. ‘이거 볼까 말까’ 고민하는 분이 많잖아요. 가격 문턱을 낮춰서 좀 더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게 했어요.” 공연장은 이를 통해 프로그램을 더욱 창의적으로 기획할 수 있대요. “시즌제의 일부 공연은 사람들에게 낯설 수 있어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공연은 관객들이 모르는 경우도 있죠. 결국 극장의 기획 프로그램을 믿고 구매하는 거예요. 저희 입장에선 우리를 믿는 관객들이 확보되니 더 새롭고 창의적인 공연을 과감하게 가져올 수 있어요. 모두에게 좋죠.” 이런 이유로 지금 많은 공연장이 시즌 패키지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답니다. ━ 공연의 주인공을 되찾다, 관람 문화 혁신 LG가 공연 예술에 얼마나 진심인지 드러나는 정책이 있는데요. 바로 초대권 없는 공연장입니다. 초대권은 선물용 공연 티켓을 말해요. 예전엔 공연장에는 초대받은 이들을 위한 VIP석이 많았어요. 하지만 초대권은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회를 없앨 뿐만 아니라, 공연의 질도 나쁘게 했어요. 아무래도 공짜 표는 ‘내돈내산' 보다는 덜 귀하잖아요. 초대석이 비거나, 자리를 채웠어도 관람 도중에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죠. 공연계의 오랜 병폐였지만 아무도 쉽게 바꿀 생각을 못 했죠. 그런데 LG아트센터는 2000년 개관 당시부터 국내 최초로 초대권을 없앴어요. 이러한 파격에 일부는 우려도 하고 비난도 했다는데요. 지금은 공연계 전반으로 초대권 없는 문화가 퍼졌어요. “공연장의 주인은 관객이어야 한다는 어찌 보면 기본에 충실한 정책이었어요. 100% 자발적으로 티켓을 산 관객들은 놀라운 집중력과 매너를 보여줘요. 무대의 아티스트들이 가장 잘 느낍니다. ‘객석 분위기가 남다르다’고 말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선 좋은 공연을 선보일 수밖에 없으니, 선순환이죠.” ━ LG가 얻는 것 LG아트센터는 공익법인인 LG연암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비영리 시설이에요. 공연장으로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란 말이죠. 그렇다면 LG는 아트센터를 통해 무엇을 얻을까요. LG가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얻는 것은 바로 ‘찐 팬’입니다. 마케팅학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고객 경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고객이 브랜드와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는 건데요. LG는 예술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해 자신들의 진정한 팬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팬들이 결국은 예비 충성 소비자가 될 수 있죠. 공연장에 보면 LG시그니처홀(LG전자), U플러스 스테이지(LG유플러스) 등 LG계열사 이름을 본뜬 공간이 있는데요. LG아트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곳이 불리는 일도 많아지겠죠. 공연장에서의 좋은 기억과 함께 말이에요.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
"모닥불 닮은 빛" 2030 감성 자극했다…다시 부활한 백열전구 [비크닉]
━ #INTRO: 겨울 냄새 얼마 전, '겨울 냄새'가 무엇인지 묻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어요. '스키장 냄새'와 '크리스마스 케이크 냄새'부터 '싸늘하면서도 청량한 아침 공기에 따뜻한 탄 내를 조금 섞은 느낌'이라는 공감각적인 설명까지. 글 하나에 달린 십수 개의 기억과 경험이 눈길을 끌었죠. 제가 기억하는 겨울 냄새는 '모닥불 냄새'예요. 추운 겨울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탁탁, 새끼불이 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들숨에 기분이 말랑말랑해지는 바로 그 냄새. 100만년 전부터 동굴 생활을 하면서 모닥불에 익숙해진 덕분일까요. 타는 모닥불을 좋아하는 감성은 우리 DNA에 깊게 새겨진 것 같아요. 사진 일광전구 우리 일상에도 모닥불을 닮은 빛이 있어요. 모닥불을 산업적으로 해석한 백열전구예요. 백열전구의 뿌리는 자연이에요. 130여년 전 백열전구를 발명했을 때 대나무를 탄화해 필라멘트로 사용했고, 2700K의 밝기는 일출 후 두 시간 이내의 청량한 아침 빛의 밝기와 같죠. 사라진 줄만 알았던 백열전구를 아직도 판매하고, 트렌디한 감성의 LED 조명에도 백열전구의 고운 빛깔을 담으려 노력하는 곳이 있어요. 반세기가 넘는 시간 조명 한길을 걸어온 일광전구입니다. 오늘 비크닉에선 모닥불을 닮은 빛을 만드는 국내 유일의 백열전구 제조사, 일광전구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LED가 조화라면, 백열전구는 생화 대구 성서공단에 위치한 일광전구 본사. 사진 일광전구 "백열전구는 낭만을 만드는 전등입니다. 그 밑에선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거든요. 감성이 필요한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에서 지금도 백열전구나 초를 비치하는 이유죠. LED와 같은 전자 조명은 결코 흉내를 낼 수 없는 것, 그걸 지켜내고 싶었어요. 빛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회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 성서공단에 위치한 일광전구는 1962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백열전구를 생산해온 곳, 올해로 환갑을 맞았어요. 구성원은 총 27명밖에 안 되지만, 300여종이 넘는 전구와 등기구를 직접 생산해 판매하는 알짜 기업이랍니다. 제품뿐 아니라 패키지, 브랜드 로고 등 디자인이 독특하고 감성적이죠. 백열전구 속 필라멘트의 디자인이 독특하고 감성적이다. 사진 일광전구 김홍도 일광전구 대표는 백열전구를 '생화', LED를 '조화'라고 소개했어요. 백열전구는 나무를 태우듯 필라멘트를 태워 빛을 내기 때문에 자연 그 자체를 닮았죠. 조화를 생화처럼 만드는 기술이 아무리 좋아지고 있다고 해도, 향기와 아름다움은 생화를 따라갈 수 없다고요. 사실 백열전구는 전력 효율이 매우 안 좋아 오래전 시장에서 퇴출당한 조명이에요. 전력 사용량 중 5%만 빛을 내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95%는 뜨거운 열에너지로 방출해요. LED와 비교하면 백열전구의 에너지 효율은 8분의 1 수준, 제품 수명은 25분의 1에 불과하죠. 정부는 이러한 이유로 2014년 가정용 백열전구 생산을 규제했어요. ━ #디자인 조명 시대를 준비하다 필라멘트를 동그랗게 여러 번 꼬아 제작하기도 한다. 사진 일광전구 "외국처럼 국내에서도 머지않아 인테리어용 부분 조명 시장이 개화할 것이라고 믿었어요. 3~4년 전부터 시장의 방향성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실내 공간에서 조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죠." '번개표' 브랜드로 잘 알려진 금호전기, 남영전구 등 국내 백열전구 제조사들이 모두 LED로 사업을 전환합니다. 단 한 곳, 일광전구만이 백열전구 생산을 멈추지 않았어요. 규제 대상이 아닌 산업·장식용 전구로 바꿔 판매했죠. 어딘가에선 백열전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였죠. 사진 일광전구 홀로 남은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한가지뿐. '합리적인 가격에 디자인과 품질이 우수한 조명'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제품의 가짓수를 줄이고 디자인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브랜드 로고부터 제품 디자인까지 소비자 취향에 맞춰 모두 바꿨어요. 해외 유명 브랜드와 겨뤄도 부족함이 없는 제품을 만들어내겠다는 다짐이었어요. 유리구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깎거나 입으로 불어 만들기도 하고, 필라멘트를 동그랗게 여러 번 꼬아 회오리 촛불 모양을 재현하기도 했죠. 심플하지만 디테일이 살아있는 디자인이 집, 공간 꾸미기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2030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더현대 서울에 입점, 글로벌 유수의 브랜드 제품들과 나란히 전시될 수 있었던 이유도 디자인의 힘 덕분이었죠. 매년 2월에 개최되는 국내 최대 디자인 전시회인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에 총 6번 연속으로 출품했고, 제품을 눈여겨본 백화점 매장 측이 입점해달라고 요청했대요. 코로나19 확산으로 내부 공간에 대한 가치가 올라가면서 매출도 상승세를 타고 있어요. ━ #목표는 글로벌 지난해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일광전구 제품들이 전시된 모습. 사진 일광전구 "백열전구를 판매하는 회사는 앞으로도 일광전구가 유일할 겁니다. 회사가 존속하는 한, 우리는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백열전구를 계속해 공급할 거예요. 언젠가 촛불을 찾듯, 백열전구를 찾게 돼 있어요." 최근엔 중대한 결정을 내렸어요. 지난달 14일을 끝으로 백열전구 생산을 잠정 중단한 것. 백열전구 제조사가 사라지니 부품 제조사 등 생태계가 완전히 소멸했고, 국내외에서 원자재 조달이 어려워진 탓이에요. 대신, 지난해 출시한 인테리어 조명기구 'IK시리즈'에 백열전구의 감성을 담으려 노력할 계획이에요. 생산은 멈췄지만,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재고가 남아있어서 백열전구 판매도 계속할 예정입니다. 일광전구의 인테리어 조명 '스노우맨'. 사진 일광전구 목표는 한국을 넘어 외국에서 이름을 널리 알려 부가가치가 높은 조명을 수출하는 것. 일광전구는 한때 백열전구 생산량의 80%를 수출했어요. 오랜 시간 백열전구를 만들어왔지만, 인테리어 조명 쪽에선 후발주자인 일광전구,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해외 유수의 디자인상도 여러 차례 받으면서 힘을 기르고 있어요. 김 대표는 "지방의 작은 중소기업이 60년간 한 가지 제품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시대에 맞게 유연하게 변해왔기 때문이다. 진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3년 이내에 세계 3대 디자인 쇼에서 상을 받아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고 했어요.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디자인을 개발해 한국을 대표하는 조명 브랜드가 되겠다는 일광전구의 꿈, 이뤄질 수 있을까요? ━ #뱀발: 아이디어의 아이콘 사진 언스플래시 저효율 조명기기인 백열전구는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지고 있지만, 전력 효율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하찮게만 취급할 제품은 아닌 거 같아요.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엔 아이디어의 상징으로 살아남아 있거든요. 애니메이션과 광고에선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 주인공의 머리 위 백열전구가 반짝 불이 켜지죠. 19세기 말, 백열전구의 등장으로 비로소 빛을 통제하게 된 당시 상황을 독일의 역사학자 에밀 루트비히는 이렇게 정리했어요.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발견한 이후 인류는 두 번째 불을 발견했다. 인류는 이제 어둠에서 벗어났다"고요. 김 대표에 따르면 130여년 전과 현재 백열전구의 제조 과정은 동일합니다. 에디슨이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규격의 제품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거예요. 한 세기 이상을 견뎌낸 아이디어 상품, 조금은 특별해 보이지 않나요? 비크닉 야쿠르트 아줌마 유니폼 힙하게 바뀐 이유 [비크닉] 1시간마다 가격 바뀐다, 삼성도 주목한 '똑똑한 편의점' [비크닉] '고디바'는 귀족부인 이름이었다…명품 초콜릿이 된 비결 [비크닉] [비크닉] 장난감을 뛰어넘은 90살 레고의 매력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
야쿠르트 아줌마 유니폼 힙하게 바뀐 이유 [비크닉]
자 오늘은 퀴즈부터 갈게요. 이 패션 화보, 어느 브랜드 광고일까요? 실용적인 디자인이 아웃도어 룩 같기도 한데요. 정답은 바로 한국야쿠르트(hy)입니다. 우리가 알던 야쿠르트 아줌마가 옷이랑 느낌이 완전 다르죠? 그전에 하나 바로잡고 갈게요. 한국야쿠르트가 최근 사명을 ‘hy(에치와이)’로 바꿨어요. 한국 야쿠르트는 왜 회사 이름, 유니폼도 바꾸는 걸까요? 비크닉 브랜드 소개팅에선 hy 박문순 디자인 팀장을 만나고 왔습니다. ━ 아쿠르트색에서 벗어나기 1970년대 야쿠르트 아줌마 유니폼 [hy 제공] 사실 야쿠르트 아줌마 유니폼이 바뀐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야쿠르트 아줌마가 처음 등장한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조금씩 달라졌어요. 그런데 색상이며 디자인까지 모두 확 바뀐 건 처음이래요. 회사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건데요. 회사가 어떻게 달라질지 유니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대요. 가장 큰 변화는 색상입니다. 그동안은 야쿠르트를 떠올리게 하는 베이지와 살구색이 중심이었는데요. 이번엔 처음으로 딥 그린색을 넣었어요. hy 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 ‘프레딧’을 떠오르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해요. 프레딧은 ‘정직한 신선 유기농 선별샵’이라는 콘셉트로, 야쿠르트뿐만 아니라 유제품, 건강기능식품, 신선식품, 화장품까지 판매하고 있어요. 친환경을 강조하기 위해 로고와 홈페이지 곳곳에 진한 녹색을 쓰고 있죠. “이번 유니폼 리뉴얼을 통해 프레딧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프레딧을 떠올릴만한 색상을 넣었고, 상의 패턴엔 나뭇잎을 본뜬 리프커브 라인(Leaf Curve line)디자인을 적용해 ‘신선’과 ‘친환경’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강조했죠.” hy(옛 한국야쿠르트) 프레시 매니저 유니폼 바지가 없어진 것도 특징이에요. 일하는 분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자유롭게 하의를 선택할 수 있게 됐어요. 또 현장에서 여러 물품을 넣을 수 있는 조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반영해 사계절 입을 수 있는 조끼도 만들었대요. ━ 아줌마 아닌 매니저로, hy의 큰 그림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명칭은 3년 전에 사라졌어요. hy는 2019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야쿠르트 아줌마 대신 ‘프레시 매니저’를 쓰겠다고 했거든요. 아줌마는 중년 여성을 얕잡아 부르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고, 아무래도 전문성이 떨어져 보여서였죠. 하지만 지금도 길을 가다가 야쿠르트를 판매하시는 분을 보면 본능적으로 ‘야쿠르트 아줌마다!’ 싶잖아요. 야쿠르트 아줌마 50년 역사가 만든 엄청난 각인 효과지만, 새로운 기업으로 도약하는 hy입장에선 숙제이기도 해요. 회사는 야쿠르트도, 아줌마도 모두 떼고 싶어하거든요. 왜냐고요? 야쿠르트만으로 지속해서 성장하기 어렵잖아요. hy는 1만여 프레시 매니저의 촘촘한 네트워크를 내세워 종합 유통 기업으로 변화하려고 해요. 요즘엔 발효유, 간편식뿐만 아니라 구매 패턴이 일정한 면도기, 화장품, 여성용품을 배송하며 그 영역을 넓히고 있어요. 배송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감한 투자도 하고 있어요. 최근엔 신선라스트마일 서비스를 고도화하기 위해 새로운 냉장 전동카트 '코코 3.0'도 선보였고요. 1170억 원을 투자해 논산에 물류센터를 짓기도 했죠. hy의 냉장 전동 카트인 코코 3.0. 코코3.0은 2014년 첫 선을 보인 코코의 3세대 모델이다. [hy 제공] 유니폼을 바꾼 건 회사 미래 비전을 담은 일종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방문 판매 비중이 높은 저희 회사에 매니저 유니폼은 기업의 이미지를 고객에게 직접 알릴 수 있는 중요한 홍보 수단이에요. 그래서 회사가 큰 변화를 예고할 때마다 유니폼도 달라졌죠. 회사가 젊어지고 있다는 걸 소비자들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 “미라클 모닝 실천하며 돈도 번다” MZ세대 매니저 야쿠르트 아줌마가 매니저로 불려야 하는,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이유가 또 있어요. 매니저의 연령대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2030대 매니저는 2017년 22명에 불과했지만 올해에는 반 년 만에 179명이 등록했다고 해요. 프레시 매니저가 젊은층에 주목을 받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고요? 실제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소율 (31) 씨를 만나봤어요. 이 씨는 일을 하면서 ‘미라클 모닝’을 실천할 수 있어 가장 좋다고 했어요. 이른 아침에 일어나 독서·운동 등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해요. “보통 일이 6시에 시작되는데요. 아침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어서 좋아요. 코로나 19 이후 2개 이상 일을 하는 N잡러들이 늘어나면서 젊은 분들도 많이 시도하는 것 같아요.” 오후 12시쯤 업무를 마치면 이 씨는 영어학원에서 상담교사로 변신해요.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프레시 매니저 경험이 나중에 자기 일을 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했어요. “일하다 보면 행복한 일이 많이 생겨요. 아침에 밥 먹고 가라는 할머니도 계시고요, 커피 사 먹으라고 용돈 쥐어주는 분도 계세요. 아침 시간을 쪼개 돈을 벌면서도 이렇게 사랑도 받네요.” 바뀐 유니폼에 대한 코멘트도 잊지 않았어요. “딥 그린색이 얼굴을 더 밝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옷이 젊어지니까 제게 더 잘 맞는 기분이에요. ” ━ 실제 입어보니 유니폼 디자인은 제이청(J.chung)의 정재선 디자이너가 담당했어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고 예쁘게 소화하기 좋은 디자인으로 유명한 분이죠. 제이청 옷은 hy 유니폼과 묘하게 닮았어요. 유니폼과 일상복의 경계가 되게 만들었다는 게 확 와 닿았죠. 제이청의(J.chung) 정재선 디자이너의 옷 [제이청 홈페이지 캡처] 새 유니폼, 저도 한번 입어봤습니다. 제가 입은 건 동복 아우터였는데요. 허리를 예쁘게 조여주는 게 트렌치 코트 느낌이 나면서도 은근히 따뜻하더라고요. 금장으로 된 지퍼가 고급스러워 보였어요. 올해 처음 생겼다는 동계 모자도 써봤는데요. 챙이 넓지 않아 승마 모자 느낌도 났어요. 실제 입는 분들의 반응도 좋대요. 회사 온라인 사보에는 ‘실용성과 세련미가 돋보인다’, ‘영업도 잘될 것 같다’, ‘평상복 느낌이 나서 좋다’, ‘어두운색이라 때 탈 걱정 안 해서 좋다’는 등 긍정적인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20년 넘게 프레시 매니저로 활동 중인 윤복예 씨는 “사계절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인 조끼가 가장 맘에 든다”면서 “전반적으로 젊은 느낌이라 일터에서도 신날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기자가 직접 입어본 hy 프레시 매니저 동복 아우터. 나가며 쿠팡, SSG 등 배송에 특화된 유통 플랫폼 홍수 속에서 hy만의 경쟁력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50년 배송 노하우입니다.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명칭은 사라졌지만, 1970년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쌓아온 신뢰는 hy만의 자산이죠. 최근엔 신한 카드를 배송하는 서비스도 시작했는데요. 프레시 매니저의 탄탄한 인프라를 이용해 다양한 배송 서비스를 선보일 것 같아요. 야쿠르트 제조를 바탕으로 쌓아온 발효 기술도 있습니다. 발효유 시장 1위는 윌, 2위는 야쿠르트로 모두 hy 제품이에요. 시장 전망도 좋아요. aT 식품산업통계정보(aTFIS)에 따르면 국내 발효유 시장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9% 수준의 성장세를 보여요. 작년 발효유 시장 규모는 1조 9400억원인데 5년 뒤에는 2조2500억원으로 커질 거라고 합니다. 게다가 최근 '일반식품 기능성 표시제'가 시행되면서 발효 기능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할 기회도 생겼어요. 여기서 그치진 않겠죠. 프레딧 슬로건이 '건강한 라이프, 매일 매일 프레딧'인만큼 기존 발효 기술을 응용해 밀 키트나 간편식 등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듯합니다. 문득 10년 뒤 프레시 매니저 유니폼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지네요. 비크닉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
1시간마다 가격 바뀐다, 삼성도 주목한 '똑똑한 편의점' [비크닉]
━ #INTRO: 편의점 풍경이 달라졌다 안녕하세요. 지갑은 얇지만 사고 싶은 건 넘치는 박영민 기자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편의점 자주 가세요? 저는 하루 두 번 꼭 편의점에 들러요. 출근길엔 삼각김밥과 바나나우유를 사 먹으며 주린 배를 채우고, 퇴근길엔 과자랑 맥주를 한 봉지 가득 사서 들어가야만 비로소 하루가 제대로 끝나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집 앞 편의점 모습이 좀 달라졌어요. 사장도, 직원도 없는데 손님들만 가득해요.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무인 시스템을 도입한 편의점이 증가하고 있어요.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과 같은 상시·심야 무인 점포수는 올해 상반기 전국 4000여곳에 달했어요. 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주요 편의점 4개사의 무인 점포 3000여곳을 더하면 총 7000여곳으로 늘어나죠. 200여개였던 2019년보다 35배나 증가한 겁니다. 오늘은 색다른 아이디어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무인 편의점 한곳을 소개해드릴게요. 제품 가격이 하루에 24번이나 바뀌는 혁신적인 실험이 벌어지는 이곳, 오늘 비크닉의 주인공은 ‘프라이스랩’입니다. 서울 용산에 위치한 AI 편의점 ‘프라이스랩’. 사진 박영민 ━ #1시간마다 바뀌는 가격 올해 5월 서울 용산에 문을 연 프라이스랩은 삼성전자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투자를 받아 창업한 스타트업 ‘치즈에이드’가 만든 무인 편의점입니다. 직원은 총 7명으로 작은 규모죠. 그런데 직원 구성이 일반적인 유통기업이랑은 좀 달라요. UI·UX 디자이너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있죠. 편의점에 개발자가 왜 필요하냐고요? 답은 프라이스랩 안에 있습니다. 이 편의점의 무기는 1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총 24번 바뀌는 가격이에요. 유통기한, 재고량, 선호도 등 소비 데이터와 요일·시간대별 유동인구, 날씨 등 공공 데이터, 주변에서 비슷한 제품을 구할 수 있는지 여부 등 상권을 분석한 데이터로 가격을 조정해요. 프라이스랩의 상품 가격은 1시간 간격으로 바뀐다. 사진 박영민 상품 정보는 실시간으로 상품 앞에 붙어 있는 가격 표시기에 반영돼요. 그런데 이 가격 표시기마저 친환경적입니다. 일반 편의점에선 상품 정보를 변경할 때 종이나 플라스틱을 갈아끼우잖아요. 프라이스랩에선 자체 개발한 ‘가시광 통신 전자가격표시기’를 사용해요. 전자종이처럼 디지털로 글자와 숫자를 보여주는 방식이죠. 치즈에이드가 삼성전자에서 사내 벤처 프로그램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도 이 가시광 통신 기술 덕분입니다. 소비자의 사용방법은 간단해요. 스마트폰으로 프라이스랩 앱을 다운로드하면 쇼핑 준비 완료입니다. 앱으로 상품 바코드를 찍고 등록해놓은 카드로 결제하면 끝이에요. 처음 앱 설치 이후 인기 상품 5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이 중 한 개를 선택하면 해당 제품을 한 달간 하루에 한 번씩 반값으로 구매할 수 있어요. 매일 한 번씩 편의점에 방문해서 하루 한 번 총 30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거예요. 이건 프라이스랩 관계자가 알려준 팁인데요, 매일 오는 게 귀찮으면 오늘 오후 11시 59분에 방문해서 하나를 사고, 1분간 기다렸다가 다음날 오전 12시가 되면 또 하나를 살 수 있죠. 앱으로 상품 바코드를 찍으면 등록한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사진 박영민 ━ #편의점에서도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할 수 있을까 시시각각 바뀌는 가격, 장점은 뭘까요? 소비자는 필요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고, 판매자는 골치 아픈 폐기물을 확 줄일 수 있죠. 폐기물이 줄면 버리는 양도 줄어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요. 편의점과 같은 식품 유통업계의 가장 큰 고민은 ‘폐기’를 어떻게 줄이느냐입니다. 재고가 많이 생길수록 폐기물을 처리하는 비용도 늘어나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약 550만톤 규모의 식품이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졌어요. 이를 처리하는 비용만 자그마치 1조원이 넘었죠. ‘재고를 줄이는 지속 가능한 소비, 편의점에서도 가능할까’. 프라이스랩을 만든 치즈에이드는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어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신선 제품의 가치는 시간과 공급량에 따라 계속 변하는 반면, 오프라인 매장 제품의 가격은 바꾸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처럼 실시간으로 바뀌는 가격을 편의점에 적용해 소비자에게 가격 선택권을 제공하고, 폐기물의 양도 줄여보자 결심했어요. 온라인에선 늘 최저가를 검색하잖아요. 반면, 오프라인 마트에선 소비자에게 가격 선택권이 없죠. 소비자들은 오프라인에서도 더 나은 가격 선택권과 지속 가능한 친환경 쇼핑 경험을 원해요. 20~30대가 선호하는 신선식품으로 진열장을 꽉 채웠다. 사진 박영민 ━ #진열대 채우는 법도 특별해 상품 구성도 일반 편의점과 달랐어요. 우유, 치즈 등 유제품부터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밀키트와 육류까지. 진열대엔 20~30대가 선호하는 신선식품들로 가득합니다. 마트나 편의점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브랜드의 식료품들이라 눈도 즐겁죠. 이계림 치즈에이드 이사는 “1인 가구가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선 식품을 위주로 콘셉트를 잡았다. 트렌드를 파악하면서 계속 메뉴를 바꿔가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어요. 필요한 상품이 있으면 채널톡으로 의견을 주고 받고, 판매 구성도 조금씩 바꾸고 있어요. 프라이스랩은 제일 먼저 이 근방에서 살 수 없는 물품이 무엇인지 알아봤대요. 쌀이나 생선을 파는 곳이 별로 없더랍니다. 쌀을 내놓으면 잘 팔리겠죠? 그런데 프라이스랩은 쌀이 왜 안 팔리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대요. 그제서야 동네에 커다랗게 자리한 청년주택이 보이더래요. “청년주택에 사는 1인 가구는 집에서 밥을 잘 해먹지 않아요. 요리할 때 냄새가 심한 생선도 마찬가지고요. 쌀과 생선보다는 간편식, 그리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제품들을 들여놓게 된 이유입니다.” 5개월간 점포를 운영해 보니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도 보였대요. 점심엔 주로 샐러드를 사러 오는 직장인들이 많고, 저녁 6시 이후엔 귀갓길에 할인 상품을 사기 위해 찾아오는 고객이 많아요. 상품이 신선하다는 반응, “이런 가게가 우리 집 근처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았답니다. ━ #나는 어떤 소비를 하는 사람인가 “실시간으로 변하는 가격을 경험해 보고, ‘나는 어떤 소비를 하는 사람인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프라이스랩에서 어떤 경험을 하면 좋겠냐는 질문에 이 이사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는 이어 “친환경적인 소비를 하고 싶은 사람은 유통기한이 도달한 제품을 좀 더 싼 가격에 구입하고, 신선한 제품을 선호하는 사람은 돈을 좀 더 내는 각기 다른 경험들도 재밌을 것 같아요”라고 제안했어요. 지금은 1호점 뿐이지만, 프라이스랩은 연내 5호점까지 점포 수를 늘릴 계획이에요. 우선 강남에 직장인들이 오가면서 건강한 샐러드나 간편식을 즐길 수 있는 편의점을 열 예정입니다. 얼마 전만 해도 많은 제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이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업체마다 판매 가격이 조금씩 달라요. 미래엔 모든 제품마다 상황에 맞춰 가격이 변화할 것입니다. 프라이스랩이 가장 앞서 나아가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소비’를 외치는 프라이스랩. 팬데믹 이후 온라인 쇼핑 소비 트렌드 속에서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이들의 실험,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무인 유통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진 언스플래쉬 ━ #뱀발: 무인(無人)이 드리운 그림자 무인 상점을 만든 건 기술의 발전입니다. 바코드와 QR코드를 인식하는 스캐닝 기술, 이미지와 영상을 인식하는 패턴 인식·센싱 기술,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음성 인식 기술,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기계공학, 구입 이력과 행동 패턴을 분석하는 딥러닝 기법, 시스템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IT 솔루션 등 다양한 기술이 무인 시스템에 적용돼있어요. 기술의 탑이 높아질수록 그림자도 짙어집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소외되는 계층이 늘고 있어요. 프라이스랩에서도 제품을 구입하려면 반드시 스마트폰이 있어야 해요. IT 기기에 취약한 고령자, 모바일 결제를 할 수 없는 미성년자를 어떻게 수용할지는 프라이스랩과 같은 무인 상점의 숙제입니다. 결제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도 해결해야 할 문제죠. 무인 시스템의 핵심인 키오스크의 확산이 고용 인구 감소를 가속할 것이란 경고도 있어요. 한국고용정보원은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 보고서에서 2025년 키오스크의 기술 대체효과로 인해 국내 노동자의 약 70%인 18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내다봤어요. 미래의 기술이 우리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 주는 이기(利器)가 될지, 직업의 파괴자가 될지는 잘 지켜봐야겠습니다. 비크닉 [비크닉] 장난감을 뛰어넘은 90살 레고의 매력 덤플링(dumpling) 아닌 '만두' 즐기는 글로벌 힙스터 [비크닉 영상] 100년간 젤리만 팠다, 하리보의 이유 있는 고집 [비크닉] 600번대 번호표 비밀...더현대 서울 어떻게 '팝업 맛집' 됐을까 [비크닉]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
덤플링(dumpling) 아닌 '만두' 즐기는 글로벌 힙스터 [비크닉 영상]
몇 년 전만 해도 '한식 세계화가 어려운 이유'가 언론사들의 단골 기삿거리였습니다. 맛의 표준화가 어렵고 조리법이 복잡하며, 문화콘텐트 개발에 게으르다는 등의 이유가 꼽혔죠. 최근 영화·드라마·K팝 등 한국 콘텐트가 확산하면서 K 푸드 진입 장벽은 한층 낮아졌습니다. 무관심이 관심거리가 되고, 두려움이 호기심이 됐죠. 지난해 K 푸드 수출액은 사상 최초로 100억 달러를 넘어서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요. 김, 한국 장류, 라면, 김치, 만두 등이 성장의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K 푸드의 열광 뒤엔 한식 세계화를 향한 여러 기관과 기업의 K-푸드 진출 고군분투가 담겨있는데요. 비크닉에선 세계인들이 특별한 날이 아닌 일상에서 한식을 즐기게 하기 위해 가장 앞장서서 달려온 'K 푸드 자존심' 비비고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 글로벌 한식을 일상으로 한국의 대표 음식 비빔밥. 여러 재료가 뒤섞이면서 맛이 어우러지고 영양의 균형까지 잡히는 건강식입니다. 비비고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한국 식문화 글로벌 확산'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지난 2011년 출범한 세계 한식 통합 브랜드입니다. 브랜드명을 '비비고'로 만든 데에는 비빔밥처럼 건강한 한국의 가공식품을 전 세계 누구나 손쉽게 먹을 수 있게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습니다. 전 세계인의 식탁에 한식을 올리는 건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오래전부터 품은 꿈이자 큰 그림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한식이 세계 식문화의 주요 카테고리를 차지하게 되리라 확신하고, 비비고라는 이름으로 '한국 식문화 글로벌 확산'의 첫걸음을 내디딘 거죠. 브랜드 비비고는 '비빔'과 영어 '고(go)'를 합친 합성어에서 비롯됐다. 서로 다른 것이 만나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CJ제일제당 시작은 '만두'였습니다. 중국·일본식 만두와 달리 얇은 피, 고기와 야채가 조화롭게 섞인 꽉 찬 소를 강조하며 CJ제일제당은 덤플링(dumpling·만두의 영문 표기명)과는 다른, 한국만의 창의적 '만두'를 선보였습니다. 연이어 내놓은 비비고 햇반, 치킨, 김, 김치, K 소스는 각 잡힌 무거운 한식이 아닌 누구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건강한 한식을 퍼뜨리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식 고유의 가치를 지켜나가면서 융합해 우리 것으로 만드는 점을 한식의 경쟁력으로 꼽았습니다. 이규민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부학장(외식 경영학 박사)은 "식품 기업들이 (그동안) 창의적인 도전을 많이 해왔다"며 "프라이드치킨이 독특한 한국만의 양념(K 소스)을 만나서 외국인이 가장 체험하고 싶은 한식 1위가 됐다는 건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콘텐트와 K 푸드의 공통분모는 결국 '비빔' '융합'"이라며 "반도에 있어 대륙과 해양 양쪽 문화를 받아들이고 융합하는 데 능하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 유전자 틀로 보면 지금 한식도 과거처럼 좁은 의미가 아니라 훨씬 개방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만두를 뜻하는 영문 덤플링(Dumpling) 대신 한국어 발음 만두(MANDU)를 그대로 표기한 비비고 제품. 사진=CJ제일제당 ━ 덤플링 아닌 '만두(Mandu)'가 가능했던 이유 아무리 좋은 제품이어도 유통이 잘 돼야 소비자의 식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특히 냉동식품은 콜드 체인 확보가 관건인데요. CJ제일제당은 2018년 미국 현지 냉동식품 업체 쉬완스 컴퍼니를 인수합니다. 미국 내 17개 생산 공장과 10개 물류센터, 다양한 B2C 유통채널을 확보한 회사였는데요. 코로나 19 팬더믹 시기, 식품업계도 국내외 생산·수출이 주춤해졌지만 쉬완스를 품에 안은 CJ제일제당은 미국 시장에서 오히려 날개를 달았습니다. 고기와 야채가 고루 섞인 한국 만두는 건강한 가공식품이라는 이미지를 확립하면서 쉬완스 유통망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2022년 현재 미국 시장에서 비비고 만두 단일 품목으로 연 매출 3조원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비비고 만두를 집어 들고 있다. 사진=CJ제일제당 ━ K 컬처와 K 푸드의 시너지를 내다 '단순 노출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계속해서 반복 노출할수록 호감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인데요. CJ그룹은 2012년부터 미국 LA, 뉴욕, 일본 도쿄 등에서 이어온 세계 최대 K 컬처 페스티벌 KCON, 세계적인 프로 골프 대회 더 CJ 컵 등 각종 대규모 이벤트를 열며 '비비고' 브랜드를 대중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했죠. 한국 음식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맛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겁니다. 지난 10월 20일부터 나흘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콩가리 골프 클럽에서 열린 PGA투어 정규대회 더 CJ컵에서도 비비고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코스 중간 두 군데 마련된 '비비고 코리안 키친'은 식사 시간 전후로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갤러리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비고를 상징하는 대표 메뉴 만두(Mandu)를 비롯해 한국식 닭강정(Korean Crunchy Chicken)이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지난 10월 20일부터 나흘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콩가리 골프 클럽에서 열린 PGA투어 정규대회 더 CJ컵에서 갤러리들이 비비고 제품을 즐기고 있다. 사진=CJ제일제당 드라마, 영화 속에 등장하는 K 푸드는 스토리와 맞물려 더 진가를 발휘합니다. 단순 제품 배치, 노출에서 나아가 식품에 얽힌 이야기를 자연스레 극에 녹이기도 하는데요. 콘텐트 자체 제작과 식품 생산이 동시에 가능한 CJ그룹은 복합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셈이죠. 정 평론가는 "이제는 한국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 평하는 데서 나아가 (글로벌 소비자들이) 그 음식을 즐기는 T.P.O(시간·장소·목적)까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며 "드라마 등 콘텐트를 통해 한식을 즐기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전해주면서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지금 한식 세계화 단계는)1에서 10으로 생각하면 5를 넘었다고 본다. 1에서 5까지 오는 데 오래 시간이 걸렸지만, 5에서 10으로 가는 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속화될 수 있다"며 "배고픔을 채우는 기능적 측면에서 나아가 한식을 먹으면서 다채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에서 극 중 주인공이 비비고 왕교자 만두를 조리하고 있다. 사진=CJENM ━ 자발적 '선택' 이어지려면 K 푸드 확산세는 거세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해 여전히 노력할 부분도 많습니다. 일방의 한식 '전파'가 아닌 자발적인 그들의 '선택'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각국 소비자들의 식문화에 쉽게 어우러질 수 있는 차별화 전략도 뒷받침돼야 합니다. CJ제일제당은 이미 비비고 만두로 성공을 거둔 미국 사례를 교과서 삼아 유럽 시장 역시 만두, 햇반(가공밥), 치킨, 김 등 전략 상품 중심으로 세를 키울 계획입니다. '비비고 김'은 유럽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반찬 개념이 아닌 간식(스낵)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바삭한 식감을 한층 개선하고 먹기 좋게 스틱 형태로 제품 외형을 바꿨습니다. 씨 솔트(Sea Salt), 코리안 바비큐(K-BBQ), 핫칠리(Hot Chili) 등의 맛도 개발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식문화가 보수적인 유럽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기 위한 현지화 전략입니다. 유럽 시장 확장을 위해 비비고가 내놓은 김 스낵 제품. CJ제일제당은 반찬 개념이 아닌 간식(스낵) 개념으로 접근하기 위해 식감을 한층 개선하고 먹기 좋게 스틱 형태로 제품 외형을 바꿨다. 사진=CJ제일제당 정 평론가는 "K 푸드가 '힙(hip)'한 음식이 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야' '한식이야' 어깨에 힘을 주는 거로 끝날 게 아니라 글로벌 사회 문화 전체 분위기를 식품 기업이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죠. 또, "요즘 글로벌 문화는 모두 '다양성'을 우선 가치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다양성 안에 한국 음식도 하나의 선택지로서 제대로 각인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글로벌 한식 일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중앙일보 중앙일보 기획·취재=김민정 기자 영상=박재현 PD
-
100년간 젤리만 팠다, 하리보의 이유 있는 고집 [비크닉]
안녕하세요. 브랜드 소개팅 전문 정세희 기자입니다. 여러분 BTS 뷔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뭔지 아세요? 싱글 앨범 콘셉트 클립에서 이걸 먹어서 난리가 났잖아요. 가수 성시경도 이 브랜드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가서 상도 탔대요. 알고 보니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즐겨 먹은 간식이었다고 하더라고요. 힌트 드릴게요. 곰돌이 모양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젤리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으면 하루 1억개 이상 생산되고 있대요. 눈치채셨죠? 오늘 만나볼 브랜드는 무려 100년간 젤리 한 우물을 파며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구미 젤리의 원조, 하리보입니다. 하리보 골드베렌 이미지 [사진 하리보] ━ 껌 가고 젤리 시대가 왔다 하리보 얘기에 앞서 한국 젤리 시장을 좀 살펴볼게요. 젤리의 상위 시장은 ‘츄잉 푸드’ 시장인데요. 말 그대로 씹는 간식이에요. 젤리뿐만 아니라 껌, 캐러멜, 육포 등이 있죠. 그동안 츄잉 푸드 하면 사실 껌이었는데 이젠 달라졌어요. 젤리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거든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한국 젤리 시장 규모는 2013년 693억에서 작년엔 3000억으로 급증했어요. 유통가에선 ‘껌 가고 젤리 시대 왔다’는 분위기가 퍼진지 꽤 됐다고 해요. 코로나 19 이후 재택근무가 늘면서 집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식을 많이 찾게 되고, 유튜브에서 젤리 먹방 등이 유행하면서 그 인기가 많아졌다는 분석이 많아요. 단무지, 삼겹살 젤리 등 다양한 모양의 젤리가 출시되면서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얘기도 있고요. 흥미로운 분석도 있어요. 껌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계속 씹을 수 있어 가성비가 좋지만, 국민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덜 팔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글로벌 젤리 기업들이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아시아를 잠재력 큰 시장으로 보고 있대요. 최근 젤리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간식으로 떠오르면서 숙취 해소, 비타민 등 다양한 기능성 제품도 출시되고 있어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해요. ━ 잘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용기 자, 이제 하리보 얘기를 해볼게요. 하리보는 2014년 공식 수입된 이후 2년 뒤부터 매해 구미 젤리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지난 8월 기준 한국 시장 점유율은 43.4%로 거의 절반에 달하죠. 2위가 오리온 마이구미(13.3%), 3위가 트롤리(10.3%)예요. 소비자들은 구미 젤리 하면 하리보를 떠올린다는 거죠. 알고 보니 하리보는 창립된 지 100년이 넘은 장수기업이었어요. 더 놀라운 건 긴 세월 젤리 하나만 파고 있다는 거예요. 이 정도로 잘 나가면 다른 간식류도 하고 싶을 것 같은데 말예요. 우리나라만 해도 과자 파는 곳에서 젤리 만들고 아이스크림도 만들고 여러 가지 다 만들잖아요. 사업영역을 넓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니콜라이 카르푸조프 하리보 CCO(Chief Commercial Officer)는 “과자나 사탕은 우리보다 잘 만들 기업이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맡겨도 충분하다”면서“우리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과일 젤리를 생산하는 것’”이고 설명했어요. 앞으로도 하리보가 가장 잘하는 일에 집중할 거래요. ━ 초창기 하리보 곰 젤리에는 털이 있었다? 1922년 하리보 댄싱베어의 모습 [하리보 유튜브] 하리보의 시그니처는 곰돌이 모양인데요. 1922년 창립자 한스 리겔이 지역축제에서 곰이 춤추는 걸 보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고 ‘이거다’ 싶었대요. 당시 버전을 보면 털 모양도 있어서 진짜 곰 같아요. 이를 더 통통하고 작게 만든 것이 바로 지금의 ‘골드 베렌(Goldbren)’ 이에요. 골드베렌이 100살 생일을 맞아서 한국에서 최초로 생일 파티를 열었어요. ‘하리보 골드베렌 100주년 생일 기념전’이 서울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지난 13일 개막했거든요. 개막 하루 전인 12일, 전시를 기획한 피플리 이명호 기획자를 비크닉이 만나고 왔습니다. ━ 웃음을 잃은 어른들을 위한 곳 [하리보 골든베렌 100주년 전시장 입구 모습 사진 피플리 김명호 기획자] [하리보 골든베렌 100주년 전시장 모습 사진 피플리 김명호 기획자] 전시회장을 들어가는 순간 젤리 덕후의 방이 펼쳐집니다. 보통 젤리 하면 어린이 간식이라고 떠올리기 쉬운데, 세련된 침대 이불이나 정돈된 책상을 보면 꼭 어른의 것 같기도 했어요. 알고 보니 기획자가 일부러 의도한 것이었어요. “독일에서 허리 굽은 할아버지가 젤리 매대에서 뭘 먹을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울컥한 적이 있어요.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광경이었지만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어요. 어쩌면 쫄깃쫄깃하고 귀여운 이 간식은 어른들에게 더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가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가장 신경 쓴 건 사람들이 동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대요. “쿨한 게 힙한 것으로 통하는 요즘엔 소리 내 웃는 것이 어색해졌어요. 이곳에서만큼은 남의 눈치를 안 보고 마음껏 행복하게 웃길 바랐어요. 웃는 것이 자연스러운 곳이 될 수 있도록 곳곳에 재밌는 요소를 듬뿍 넣었습니다.” 실제 전시회에는 프로젝션 맵핑, 동작 인식 센서, 디지털 액자, 스톱 모션 등 다채로운 방식의 미디어아트가 펼쳐졌어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AR 체험, 미니게임, 기념사진 촬영 등의 인터랙티브 콘텐트도 만나볼 수 있었어요. 그가 전시회에서 가장 공들인 장소는 ‘야생 젤리 구역’이래요. 젤리가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나무에 맺혔다가 자연으로 뻗어 나간다는 이야기를 미디어 아트로 표현했는데요. 풀과 꽃 사이에 통통 튀기듯 움직이는 형형색색 젤리가 살아있는 듯했어요. ━ 독일로 직접 날아가 손편지, 그렇게 성덕이 되었다 왼쪽부터 크리스찬 발만(Christian Bahlmann) 하리보 수석 부사장, 이명호 피플리 기획자, 코스타스 블라초스 (Kostas Vlachos )하리보 해외사업 총괄책임자, 차범근 전 축구감독, 정태문 피플리 대표 사진 이명호 기획자 이 기획자가 하리보 전시를 처음 기획한 건 약 4년 전이라고 해요. 2018년 지인들과 전시회 아이템 회의를 하던 중 테이블 위에 있던 하리보 젤리가 눈에 들어왔대요. 원래 젤리를 좋아하던 그는 “이 치명적인 2등신이라면 남녀노소 좋아할 수밖에 없고, 100년간 지속한 에너지라면 이야깃거리도 많겠다”는 확신이 생겼대요. 다짜고짜 본사에 전시회를 함께 열자고 e메일을 보냈대요. 답장을 기다리던 그는 89세 할머니와 함께 직접 하리보 본사가 있는 독일로 떠납니다. 독일까지 갔지만 그는 결국 담당자를 만나지 못했대요. 아쉬운 마음에 직접 손편지를 써서 본사, 공장, 뮤지엄 등에 두고 왔대요. ‘하리보가 전 세계에 뿌린 행복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기회를 주세요. PS. 생애 마지막 여행이 될 저희 할머니와 함께 독일까지 왔는데 이 정성이 전달되길 바랍니다. ’ 어떻게 됐냐고요? 무려 넉 달 만에 하리보 측에서 “곧 한국으로 가니 미팅을 하자”는 답장을 했대요. 하리보에서도 떠오르는 한국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던 찰나에 반가웠던 거죠. 이 기획자는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새삼 느낀 게 있대요. “그냥 보면 귀여운 곰돌이 젤리구나 싶을 수 있겠지만요. 그 안에는 독일 기업의 엄청난 장인 정신이 있었어요. 하리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자부심이 대단했거든요. 1.5센티 이 작은 젤리가 전시회를 채울 만큼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콘텐트를 제공하듯,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나가며 젤리의 인기는 계속될 것 같아요. 젤리를 좋아하던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도 꾸준히 젤리의 팬이 된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사실, 어른들의 젤리 사랑에는 스트레스가 한몫하지 않았나 싶어요. 스트레스 받으면 단 게 당긴다고 하잖아요. 이게 근거 없는 말이 아니더라고요. 단맛은 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해 행복감을 주는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나온대요. 그리고 씹는 행위는 자율신경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정신적인 만족을 준다고 하는데요. 저만 봐도 일이 안 될 때 젤리를 먹지, 일이 잘될 때 먹진 않거든요. 하리보가 1960년에 기존 광고 카피 ‘하리보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줍니다’에 ‘그리고 어른들도요’라고 추가한 건 신의 한 수인 것 같네요.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
600번대 번호표 비밀...더현대 서울 어떻게 '팝업 맛집' 됐을까 [비크닉]
안녕하세요. 브랜드 미식가 박이담 기자입니다. 여러분, 더현대 서울 가보셨나요? 아마 대부분이 “그렇다”고 대답하실텐데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수치가 그렇게 나옵니다. 더현대 서울에서 올해 구매 건수가 1400만건을 돌파했어요. 구경만 하고 오시는 분들도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방문자 수는 30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미 더현대서울은 처음 개장한 지난해에 연 매출 8000억원을 넘어서면서 큰 주목을 받았어요. 2년 차인 올해도 흥행이 계속되는 분위기인데요. 특히 MZ세대가 흥행의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매출 대부분이 MZ세대로부터 나오고 있어요. 올해 9월 기준 2030세대가 현대백화점 카드 매출의 64%를 차지한다고 하네요. MZ세대는 왜 더현대 서울을 찾아 지갑을 여는 걸까요?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이희석 현대백화점 영패션팀장을 만나봤습니다. 이희석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영패션팀장. 사진 현대백화점 ━ MZ를 끌어당기는 엔진, 팝업스토어 더현대 서울에서 MZ세대가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바로 지하 2층 ’크리에이티브그라운드’입니다. 이곳은 기획 단계부터 MZ세대를 겨냥해 만들어진 공간이에요. 이곳에는 성수동이나 신사동에서나 볼법한 힙한 브랜드들이 가득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람이 몰리는 곳은 팝업스토어에요. 팝업스토어는 짧은 기간 운영하는 임시 매장을 말합니다. 인터넷 웹페이지에서 떴다가 사라지는 팝업 창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죠. 크리에이티브그라운드에는 팝업스토어가 총 세 군데에 있어요. 지하철과 연결된 출입구 바로 앞에 있는 ‘팝업 아이코닉’, 그리고 층 깊숙한 곳 좌우에 ‘팝업 웨스트’ ‘팝업 이스트’가 있습니다. 더현대 서울 지하2층에 위치한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의 도면. 지하철 출입구와 좌우 에스컬레이터 앞에 팝업스토어 3곳이 배치됐다. 사진 현대백화점 이희석 팀장은 크리에이티브그라운드의 초기 기획부터 운영까지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팝업스토어를 “MZ세대가 더현대 서울로 방문하도록 하는 핵심 공간”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팝업스토어를 찾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다른 브랜드 매장에도 방문하기 때문에 주변에도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까지 한다고 합니다.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내는 겁니다. “저희는 팝업스토어를 ‘엔진’이라고 표현합니다. 새로운 트렌드의 발신지 역할을 하면서 고객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이곳에 세개의 엔진이 있어 낙수효과가 상당합니다. 팝업스토어 주변 브랜드 중에는 매출이 두배 가까이 증가한 곳들도 꽤 됩니다.” 지난해 2월 더현대 서울이 문을 연 후 지금까지 173개의 브랜드가 팝업스토어를 진행했어요. 마뗑킴, 그레일즈, 쿠어, 디스이즈네버댓 등 온라인에서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끈 패션 브랜드는 물론 잔망루피나 뉴진스 같은 캐릭터와 아이돌도 이곳을 거쳤습니다. 더현대 서울은 인기 있는 팝업스토어에서 대기표를 발급하는데, 수백명이 동시에 몰리면서 600번대 대기표도 빈번하게 등장한다고 합니다. “MZ세대에게 팝업스토어는 온라인으로만 만나던 브랜드와의 놀이 공간입니다. 택배 박스로만 만나던 물건을 직접 고를 수 있고, 브랜드를 만든 인플루언서와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또 신상품이나 한정판 제품 등 다양한 프로모션에 참여할 수 있어요.” MZ세대 사이에서 더현대 서울의 팝업스토어의 위상이 높아지자 이곳에 입점하려는 브랜드들의 경쟁도 치열해졌습니다. 팝업스토어는 보통 1주에서 2주 정도 열리는데요. 내년 3월까지 이곳 입점 스케줄이 다 찼다고 합니다. 지난 3월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뽀롱뽀롱 뽀로로의 캐릭터 '잔망 루피' 팝업스토어가 입장하려는 고객으로 붐비고 있다. 사진 현대백화점 ━ 더현대가 브랜드를 발굴하는 법 더현대 바이어들은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기 위해 치열하게 ‘손품’을 팝니다. 주로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데, 핵심은 ‘광신도’급 충성 고객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브랜드를 찾아내는 겁니다. 손품은 3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시작은 패션 플랫폼. 무신사나 W컨셉 등 감도 높은 국내 브랜드가 몰려 있는 플랫폼에 접속해 판매 랭킹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해 주목할만한 브랜드가 있는지 확인해요. 그다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차례. 특히 플랫폼에서 발견한 브랜드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을 면밀히 살펴보죠. 이때 단순히 브랜드들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를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지는 않아요. “인스타그램이 등장한 초반에 이용자들은 이 서비스가 처음이다 보니 여러 계정을 쉽게 쉽게 팔로잉(구독)합니다. 하지만 지금 인스타그램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거든요. 이제는 팔로잉했던 계정을 언팔로잉(구독 취소)하는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브랜드가 최근에 팔로워 2만을 만들었다면, 옛날에 팔로워 10만을 만든 브랜드보다 훨씬 충성도 높은 팬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띈 브랜드의 팔로워 수 변화를 꾸준히 추적합니다. 뿐만 아니라 댓글과 좋아요 수도 데이터화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피드를 올렸을 때, 어느 정도 반응이 나오는지도 충성 고객 수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손품의 끝은 자사몰을 살펴보는 단계입니다. 자사몰은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이커머스용 홈페이지를 말해요. 여기선 브랜드의 성장 역량을 엿볼 수 있죠. “자사몰을 보면 해당 브랜드의 정체성이 나타납니다. 어떤 브랜드는 수많은 상품을 빠르게 올리는 데만 치중합니다. 단순한 ‘셀러’라는 느낌만 주죠. 반면, 어떤 브랜드는 이미지 한장 한장에 정성을 기울입니다. 브랜드 이미지에 적합한 모델을 골라 사진을 찍고, 그 사진도 감도 있게 자사몰에 배치하는 거죠. 이런 브랜드는 앞으로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합니다.” 지난 9월 열린 국내 스트리트 브랜드 '그레일즈'의 팝업스토어에 고객들이 줄지어 서있다. 사진 현대백화점 손품이 끝나면 마지막 관문, ‘발품’이 남았습니다. 업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평판 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화점은 이미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잖아요. 이들 브랜드 담당자들과 만나, 관심 있게 보던 브랜드에 관해서 물어봅니다. 브랜드를 만든 이는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졌는지 말이죠.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브랜드에 비로소 팝업스토어 제안을 합니다. ━ 흥행을 위한 시공간 전략 지난 7월 열린 스윔웨어 브랜드 '써피'의 팝업스토어에 미국 캘리포니아 해변을 연출한 포토스팟이 설치돼 있다. 사진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은 팝업스토어를 더욱 흥행시키기 위해 시·공간적 측면에서 차별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간 전략입니다. 더현대 서울은 새로운 팝업스토어를 목요일에 시작합니다. 통상 백화점은 외부 업체와 함께하는 행사를 금요일마다 교체해요. 백화점을 찾는 고객들이 금·토·일요일에 가장 많기 때문이죠. 이 시간대에 맞춰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여 초반 매출을 극대화합니다. 하지만 더현대 서울은 팝업스토어를 여는 브랜드가 MZ세대에게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들은 충성고객과 온라인으로 활발한 소통을 합니다. 팝업스토어 오픈 소식을 라이브방송이나 SNS로 알리면 첫날인 목요일도 흥행 효과를 누릴 수 있죠. 이어지는 주말에 내방한 고객들로부터도 매출 증대 효과를 얻을 수 있고요. 팝업스토어의 골든 타임을 3일에서 4일로 늘리는 전략이죠. “브랜드가 미리 팝업스토어를 한다고 자사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면 바로 댓글 수백개가 달립니다. 당일 라이브 방송까지 하면 목요일에 충성 고객들이 몰려와 매출이 크게 올라요. 통상 목요일 매출은 금요일의 30~40%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목요일 매출이 커지면서 전체 매출이 커지는 효과가 생겼어요. 앞으로는 시작일을 목요일에서 수요일로 하루 더 당길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간 전략도 참신합니다. 더현대 서울의 팝업스토어는 ‘사진 맛집’을 지향합니다. 입점한 브랜드가 자신만의 특색을 살린 포토 스폿을 만들도록 해요. 고객들이 이곳의 인증샷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자연스레 온라인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어요. 기존 백화점의 지하층 팝업스토어가 별다른 인테리어 요소 없이 상품만 보여주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죠. “브랜드의 DNA가 느껴질 수 있으면서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포토스폿을 연출하는 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간이 재미있거나 고급스럽거나 힙하거나 아기자기하거나. 이 중 하나라도 포인트가 있어야 고객들이 사진을 찍습니다. 천편일률적인 마네킹은 아예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마네킹 회사 몇 개 뿐입니다. 모양이 다 비슷해요. 마네킹 쓰면 기존 백화점과 다를 바가 없어요.” 더현대 서울은 브랜드가 팝업스토어 공간을 연출할 때 직·간접적인 지원을 합니다. 그동안 열었던 100여개 팝업스토어의 공간 연출 자료들을 제공해 줘요. 브랜드들은 이를 기반으로 자기만의 새로운 차별점을 더해 독특한 공간을 연출합니다. 팝업스토어 경험이 부족한 브랜드에는 이곳에서 여러 번 작업을 함께한 인테리어 회사까지 연결해 준다고 합니다. 지난 9월 있었던 '바잇미'의 팝업스토어의 포토스팟에서 한 방문자가 자신의 반려견 사진을 찍고 있다. 박이담 기자 팝업스토어는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더현대 서울을 ‘MZ세대가 오는 백화점’으로 만들어냈죠. 사실 백화점은 젊은 층이 온라인으로 이동한 뒤, 중·장년층만이 남아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갑이 두툼한 현재의 고객은 확보했지만, 미래 고객 확보가 불투명했죠. ‘백화점의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요. 그런데 더현대 서울은 팝업스토어를 통해 미래 고객인 MZ세대를 백화점으로 다시 데려오는 데 성공한 겁니다. “더현대 서울을 계기로 오프라인의 반격이 시작될 수 있다고 봅니다. 쇼루밍(Showrooming, 물건은 사지 않고 보기만 하는 행위)이 오프라인의 위기를 불러왔는데, 지금은 팝업스토어에서 역쇼루밍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비디오가 나오면서 영화관이 망한다고 했는데, 영화관은 데이트석도 만들고 팝콘을 팔고 여러 영화를 볼 수 있는 멀티플렉스가 되는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며 다시 활황 시대를 맞이했었죠. 오프라인 쇼핑 매장도 공간에 여러 콘텐트를 가져다 놓으면 제2의 활황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에 머물던 브랜드들에 팝업스토어는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디딤돌이 됩니다. 여전히 거대한 시장인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작용하는 거죠. 이곳을 찾은 고객을 상대로 브랜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오프라인 쇼케이스 역할을 합니다. 또 오프라인 매장의 운영 역량과 고객을 동원 능력을 증명해 내고, 대규모 투자를 받아 대형 브랜드로 성장하는 모멘텀을 맞이하기도 하고요. 팝업은 온라인에선 잠시 뜨고 사라지지만, 더현대 서울에선 꾸준히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엔진이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온라인에 주도권에 빼앗겼던 오프라인의 반격까지 끌어내고 있죠. 앞으로는 또 어떤 동력을 만들어낼지 기대됩니다. 박이담 기자 park.idam@joongang.co.kr
-
'알루미늄' 상처날수록 더 멋지다? 고급 여행가방의 대명사 [비크닉]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좋은 브랜드를 탐닉하는 윤경희 기자입니다. 코로나 19로 잠시 잃어버렸던 여행을 다시 찾아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여행’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건은 아마도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인 러기지(luggage)일 겁니다. 우리에겐 ‘트렁크’나 물건을 옮긴다는 의미의 ‘캐리어’란 말이 더 익숙한데요, 이 가방을 돌돌 끌고 시작하는 여정은 설레임 그 자체죠. 그런데 가방이라고 다 같은 가방이 아닙니다. 특히나 가방이 무겁거나 길이 험할 때는 ‘좋은 여행 가방’이 절실해 집니다. 물건의 안전한 보관과 내구성, 부드러운 바퀴의 움직임과 핸들의 고정력까지 기능적인 면은 물론이고, 여행의 감성을 높여주는 디자인과 브랜드 철학까지 놓칠 수 없습니다. 많은 여행 가방 중에서도 고급 여행 가방의 대명사는 바로 ‘리모와(RIMOWA)’죠. 오늘은 바로 이 리모와의 세계로 들어가보려 합니다. 올해 전개하는 리모와의 인제니어스쿤스트(Ingenieurskunst) 캠페인. 사진 리모와 여행용 러기지가 해외여행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민간 항공기 시대가 열리면서 비행기에 적재하기 적합한 딱딱한 사각 박스 모양의 캐리어가 각광받기 시작했죠. 이전까지의 박스형 가방과 다르게 끌고 다니기 좋게 바퀴도 달았고요. 이 안에 수트를 잘 접어 넣으면 주름지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어 ‘수트케이스’라고도 불립니다. 특히 세계의 부호들은 고급 수트케이스를 사용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초경량 은색 알루미늄 소재로 만든 러기지가 여행가방계의 럭셔리로 자리 잡았죠. 네, 맞습니다. 바로 리모와입니다.. 럭셔리 캐리어의 시작 리모와는 1898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엔 나무로 만든 여행용 가방 회사였어요. 어느 날 공장에 화재가 나 모든 재료가 소실되고 알루미늄 금속 부품들만 남았죠. 이를 본 설립자 파울 모르스첵(Paul Morszeck)는 불에도 견디는 가벼운 금속을 이용한 여행용 가방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개발에 착수합니다. 이 즈음 아들 리차드 모르스첵이 사업을 함께 하게 되는데요. 그는 개발에 힘을 쏟은 결과, 1937년 금속 소재로 된 수트케이스를 발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아는 리모와 알루미늄 캐리어의 첫 모델입니다. 리모와란 이름은 당시 자신의 이름을 따서 바꾼 회사명 ‘리차드 모르스첵 바렌차이헨(Richard Morszeck Warenzeichen)’의 앞 글자를 딴 만든 것이에요. 바렌차이헨은 상표(트레이드마크)란 뜻의 독일어로, 한글로 풀이하면 ‘리차드 모르스첵 표’ 정도가 되겠네요.. 그루브 디자인에 영감을 준 융커스의 비행기. 사진 리모와 리차드는 소재뿐아니라 디자인에서도 혁신을 이끌어냈어요. 1950년대 브랜드를 상징하는 디자인 ‘그루브’ 무늬를 가방에 접목했죠. 그루브는 길게 파인 홈(그루브)을 나란히 배치하는 디자인 스타일로, 동체 전체를 금속으로 만든 독일 항공사 융커스의 F13 비행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죠. 리차드는 이를 알루미늄 소재에 적용해 여행용 트렁크를 만들었고, 알루미늄의 가벼움과 견고함에 표면의 마모 방지와 미학적 가치까지 더합니다. 리모와의 알루미늄 러기지는 당시 영화감독과 사진작가 등 예술가들의 눈에 먼저 들어요. 부서지기 쉬운 고가의 촬영 장비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 알루미늄 소재의 리모와 가방은 더 없이 좋은 보호장비였어요. 이들의 리모와 사랑에 창립자의 3대손인 디터 모르스첵은 1976년 세계 최초로 방수 처리된 열대 지방용 카메라 케이스를 개발하기도 했고요. 지구촌 각지를 돌며 가방에 상처가 날수록 오히려 리모와는 더 멋있어졌어요. 표면에 난 상처는 그만큼 여행을 많이 했다는 증표이기도 했으니까요. 감각 좋은 아티스트들이 사용하는 모습에 일반인들도 이 가방에 열광하게 되면서, 리모와는 럭셔리 캐리어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클래식 러기지에 담긴 진화한 그루브. 사진 리모와 독일 엔지니어링의 예술을 보여주다 리모와는 예술적인 캠페인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작가와의 협업으로 캐리어를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가방을 소재로 예술 작품을 만들기도 해요. 이를 통해 120년 넘게 이어온 혁신과 장인정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번엔 ‘독일 엔지니어링의 예술’을 주제로 한 캠페인 ‘인제니어스쿤스트(Ingenieurskunst, 엔지니어링의 예술)’를 전개하고 있어요. 독일의 엔지니어링은 세상 어느 곳으로든 평생의 여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리모와 캐리어의 본질이라는 것과 최고의 기능성을 보장해주는 소재 및 제조 공정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캠페인의 지금의 리모와를 있게 한 1930년대 ‘클래식’ 제품과 이를 소재로 만든 움직이는 키네틱 작품이에요. 설치 작품에는 실제 클래식 제품의 리벳 6000개, 양극산화 알루미늄 180장, 그리고 클래식 캐빈 수트케이스의 쉘(껍질)이 사용됐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의 풀처럼 알루미늄 판이 물결치고, 풍차의 한 부분처럼 수트케이스 쉘이 회전하는 등 로봇처럼 움직이는 키네틱 작품이 세계 곳곳을 순회하며 몰입형 AR체험이나 이미지로 보여져요. 예술로 독일 엔지니어링을 표현하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보여주죠. 캠페인의 설치 작품에 담겨 있는 의미도 놀라워요. 이번 키네틱은 제품에 들어가는 크롬, 매트 등 다양한 피니싱과 재질을 가진 재료들을 가지고 브랜드의 엔지니어들이 섬세한 수공업이나 중장비를 사용해 가방을 만드는 한편의 교향곡 같은 관계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리모와의 마케팅 본부장 에밀리 드 비티스는 “아이코닉한 러기지를 탄생시킨 철두철미한 장인정신에 대한 경의”라고 설명했어요. 움직이는 알루미늄 패널을 여러 개 배치해 만든 키네틱 작품. 사진 리모와 다프트 펑크, 아노말리 베를린...창의성 담다 이번 캠페인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아노말리 베를린’과 협업했어요. 캠페인 필름에는 세계적인 일레트로닉 듀오 뮤지션 ‘다프트 펑크’의 곡 ‘어라운드 더 월드(Around the World)’를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했는데, 독일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가 관현악 버전으로 새롭게 연주했습니다. 리모와는 이 과정을 결혼을 뜻하는 독일어 “호흐차이트(Hochzeit)”라고 말했는데요, 리모와 엔지니어들이 하나의 가방을 만들기 위해 2개의 알루미늄 쉘을 처음으로 결합했던 순간을 그렇게 표현한다고 합니다. 비행기 활주로에 줄지어 설치한 인제니어스쿤스트 캠페인의 키네틱 작품. 사진 리모와 캠페인의 소재가 된 ‘클래식’ 모델. 사진 리모와 캠페인과 함께 클래식 모델도 한층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했어요. 1930년대의 모습에 현대인의 여행 패턴을 녹여냈죠. 손잡이엔 그립감을 높여줄 수 있도록 가죽 핸들을 달고, 이를 파프리카·오션·허니 등 8가지 색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어요. 이와 함께 바퀴도 사용자가 원하는 것으로 고를 수 있어 사용자의 취향에 맞게 커스텀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바퀴엔 완충 장치가 달린 축과 볼 베어링을 장착한 휠 시스템을 탑재해 안정성과 이동성을 높였고요. 미국 입국시 문제가 없도록 TSA(미국교통안전청) 잠금장치도 장착했어요. 이음새에 틈을 없앤 설계로 안전성도 높였습니다. 리모와는 올해 또다른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7월부터 판매한 모든 수트케이스의 모든 기능을 평생 보장하는 ‘평생 보증 서비스’를 론칭한 겁니다. 일반적인 캐리어의 품질 보증 기간은 1년이죠. 여행의 평생 동반자가 되겠다는 리모와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비크닉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 단 '2초'면 된다, 인스타그램으로 사람들 홀린 무신사 비법 [비크닉] 떡볶이에 와인 마시는 동네마켓 있다? 요즘 입소문 난 그곳 [비크닉] 이 핸드크림 다 써봤지? 韓 연매출 914억, 스킨케어계의 애플 [비크닉]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Voice Matters(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 MZ세대 신드롬에 빠져 놓친 진짜 문제 "나이 들어 쓸모없어지니 무슨 재미로 사노." 여든이 넘긴 할머니가 읊조리던 말들이 부쩍 와 닿는 요즘입니다. 밀레니얼 세대 후기에 해당하는 제가 나이듦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다소 이른 감도 없지 않아 있는데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고령 인구 비중 증가 속도를 보면 그리 때 이른 고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해 12월 기준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은 16.6%. 3년 뒤인 2025년에는 20.6%를 차지하며 초고령사회로 진입합니다. 2025년에는 5명당 1명이 노령 인구라는 뜻이죠. 사실 고령화 진행 속도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노인, 나이듦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입니다. '에이지즘(Ageism·연령차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인의학 전문의 로버트 버틀러가 1969년 일찌감치 제시한 용어로, 나이에 따른 고정관념을 빗대 표현한 말입니다. 노화는 종종 혐오와 부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늙으면 사고가 폐쇄적으로 바뀌고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대표적 관념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진행되는 신체 노화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할 때는 물론 도움(부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구 5명당 1명이 노령 인구가 되는 현실 앞에 노인을 그저 부양의 대상으로만 여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노인 역시 사회의 일원으로 공존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활기차게 뛰어오르는 젊은 세대와 지팡이에 의존해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노인의 그림자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고령화 진행 속도보다 중요한 건 노인, 나이듦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사진 픽사베이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어도 삶의 목적의식이 분명하면 삶의 질은 달라집니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해서 이뤄내면 그 속에서 보람, 의미를 찾고 '자기 효능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여전히 '쓸모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 자체가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뜨거운 MZ세대 담론만큼이나 모든 인간의 공통 과제라 할 수 있는 나이듦에 대해서 우리는 보다 체계적인 준비가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MZ세대의 특징은 이렇다'라는 분석과 평가는 즐비하지만, 노년에 대한 언급과 고민은 현저히 낮다는 말이죠.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센터는 책 『에이지 프렌들리』를 통해 "최근 많은 기업이 ESG 경영을 추진하지만 대부분 환경에 치우쳐져 있다. 시장의 주 타깃도 MZ세대에 머물러 있다"며 "(ESG, MZ세대 담론만큼이나) 사회정책이 집중해야 할 곳은 고령화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 초고령사회에 대처하는 브랜드의 자세 기업, 브랜드가 시니어 시장을 대하는 대표적 방법은 그들을 시장 소비자로 인식하는 겁니다. 보유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노인 맞춤형으로 최적화하거나 혹은 아예 특화 상품을 별도 개발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려 합니다. 시니어를 직접 제품 생산 공정에 개입시키고 시장에 ‘참여’하게 하는 거죠. 이들의 손길이 깃든 제품은 당당히 시장에서 제값에 팔려 수익이 되고, 그 수익은 또다시 시니어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이 됩니다. SK하이닉스가 지난 2020년 12월 내놓은 교복 업사이클링 브랜드 '리버드(RE:BUD)'는 이 같은 선순환 구조와 궤를 같이합니다. 리버드는 Re(다시), Birth(탄생), Upcyle(새활용), Dream(꿈)의 네 단어를 조합해 만들었는데요. 해마다 적잖게 버려지는 교복을 가방·지갑 등 새로운 패션 상품으로 새활용(업사이클링)하고, 그 과정에 노인들의 손길이 더해진다는 측면에서 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착한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충북 청주 시니어클럽에 소속된 한 어르신이 교복 원단을 재봉틀로 바느질하고 있다. 수명을 다 한 교복은 이 같은 어르신들의 작업과 디자이너의 전문적인 손길을 통해 가방이나 지갑 등 새로운 패션 상품으로 재탄생한다. 사진 SK하이닉스 리버드 버려진 교복이 새로운 상품으로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손길이 닿아야 합니다. 우선 교복 상태에 따라 분류해서 깨끗하게 세탁해야 하죠. 새 제품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교복을 해체하고 패턴에 맞춰 재단해야 하기도 하고요. 이 과정을 다양한 연령대의 시니어들이 함께 해주고 있는 겁니다. 현재 리버드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 시니어 클럽과 손잡고 그곳에 소속된 65세 이상 어르신을 생산 과정에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청주는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반도체 생산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는 남다른 인연의 도시이기도 한데요. 2018년 SK하이닉스는 교복을 기증받아 어르신들이 수선, 세탁해 시중가의 10%로 재판매하는 '행복 교복' 사업을 이곳에서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활동을 보다 확장, 시니어들의 손길이 깃든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탄생한 것이죠. 어르신들이 사용하지 않는 교복을 해체, 재단하면 디자이너가 감각을 발휘합니다. 리버드는 현재 두 개 라인으로 구분해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요. 줄무늬 패턴 등 교복 원단 특유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서 작은 동전 지갑, 파우치 등을 만든 기본(베이직)라인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른 소재의 교복 여러 개를 혼합해서 가방 등을 만드는 퍼센트 라인입니다. 얼핏 보면 해당 제품 원단이 버려진 교복에서 비롯된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원단을 적당한 비율(%, 퍼센트)로 조화롭게 배치한 것이죠. 줄무늬 패턴 등 교복 원단 특유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만든 카드, 동전 지갑. 사진 리버드 전혀 다른 소재의 교복 여러 개를 혼합해서 만든 리버드 '퍼센트' 라인의 가방. 사진 리버드 교복 해체 작업 자체는 그리 세밀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상당히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에요. 리버드와 어르신들의 공생은 이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과거 양장점을 운영하셨던 분 등 봉제 기술을 가진 베테랑 어르신들이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보이고 있거든요. 특히 빼어난 봉제 기술 보유자는 가방, 파우치 등 직접적인 상품 디자인과 생산까지 힘을 보태기도 합니다. 손근열리버드 대표는 "다시 쓸모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에 본인이 일조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어르신들이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귀띔했습니다. 현재 리버드는 29cm, 텐바이텐, 지그재그 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해 있는데요. 아직 판매량이 눈에 띄게 높지 않지만, 보다 많은 시니어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손 대표는 "해체작업, 단순 봉제작업을 넘어 시니어 분들의 참여 범위를 넓히려 하고 있다"며 "일례로 어르신들의 손 그림과 손글씨를 활용한 제품을 준비 중이다"고 전했습니다. 차근차근 시니어 참여 정도를 확대해 청주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 어르신들의 참여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충북 청주 시니어클럽에 소속된 어르신들이 버려진 교복을 해체, 재단, 재봉하고 있다. 사진 리버드 ━ 다양성 포용성을 말하는 기업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이것 요즘 기업들은 저마다 D&I(Diversity and Inclusion,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갖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D&I는 신체적 특성, 인종, 나이, 성별 등과 관계없이 각기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품는 것을 말하는데요. 사회와 일상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둘러보면 여전히 자신의 '쓸모 있음'을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시니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껏 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회의 일원으로 품으며 공존할 수 있는 해법들을 치열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습니다. 부양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도록, 갇히지 않고 세상과 끊임없이 호흡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기회가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연륜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하나. 우리는 모두 늙습니다. 자신의 노년이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Bicnic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
단 '2초'면 된다, 인스타그램으로 사람들 홀린 무신사 비법 [비크닉]
'10만원으로 풀착장하기', 'T.P.O(시간·장소·상황)에 맞는 스타일링', '발목 양말로 페이크 삭스 만드는 팁'. 론칭 5개월 만에 조회 수 50만회를 넘긴 영상이 부지기수다. 10~15초 짧은 영상을 통해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을 광고하는 패션 커머스 무신사의 인스타그램 릴스(Reels) 이야기다. 무신사와 케이스티파이는 인스타 마케팅을 잘 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두 곳의 마케팅 담당자에게 활용 노하우를 들었다. ━ 승부는 단 2초…무신사가 릴스 만드는 법 무신사 홍정은 숏폼콘텐츠팀장(왼쪽), 김하은 SNS마케팅팀 파트장(오른쪽). 사진 무신사 무신사는 인스타그램이 지난해 2월 숏폼(짧은 영상) 서비스 릴스를 국내에 출시하자 발빠르게 프레임을 전환했다. 지금은 한 달에 60~70개의 릴스를 생산해낸다. 덕분에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도 34만9000명으로 크게 성장했다. 홍정은 무신사 숏폼콘텐츠팀장은 짧은 순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영상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게 폭풍 성장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시청자들은 참을성이 없어요. 단 2초 안에 승부를 내지 못하면 지루해하거든요. 영화, 광고, 인상 깊은 사진 등 시각적으로 임팩트 있는 것에 주목해요." 제작 과정은 여타 콘텐트 제작과 다르지 않다. '기획-촬영 준비(모델 섭외, 장소 물색, 스타일링, 소품 준비)-촬영-편집'이라는 프로세스를 거친다. 하나 특별한 것이 있다. 오직 스마트폰으로 촬영한다는 것. 홍 팀장은 "스마트폰 카메라엔 DSLR 풀 프레임 카메라와는 다른 묘한 감성이 있다"며 "일반적인 쇼핑 영상은 디자인 요소로 가득하고, 셀럽이 나와도 기업에서 만든 광고란 인식이 있어서 인스타그램에선 잘 안 먹힌다. 오히려 보통 사람이 찍은 듯한 영상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무신사 인스타그램 이미지. 그래픽 박현아 ━ 대가도, 수수료도 없다…무신사의 릴스 서비스 무신사는 입점 브랜드를 위한 콘텐트를 제작하면서 어떠한 대가나 수수료도 받지 않는다. 당장 매출이 적고 영향력이 크지 않아도 무신사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좋아할 브랜드를 위해 릴스를 제작한다. 입점 브랜드가 하기 어려운 일을 대신해주는 것으로 성장한 무신사의 '브랜드 퍼스트(Brand First)' 경영 철학의 일환이다. 김하은 무신사 SNS 마케팅팀 파트장은 "입점 브랜드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고 브랜드와 상생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신사 채널은 '쇼룸'이자 일반인 크리에이터들에겐 성장의 무대다. 무신사는 일반인 모델 '무신사 크루'를 모집해 크리에이터로 키우고 있다. 릴스와 무신사 라이브에 고정적으로 얼굴을 비추면서 크루들의 팬덤도 생기고 있다. 최근엔 신진 뮤지션과도 협업을 늘리고 있다. 가수 '데미안', 래퍼 '지호지방시' 등이다. 전반적으로 릴스 자체의 반응도 좋았고, 아티스트와 브랜드 모두 만족한 협업 사례였다. 홍 팀장은 "내년엔 본격적으로 크리에이터 집단을 키울 생각”이라며 “이들이 등장하는 콘텐트의 가치도 올라가고, 그것이 브랜드에도 도움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케이스티파이다움' 널리 알리다 케이스티파이 인스타그램 이미지. 그래픽 박현아 글로벌 테크 액세서리 기업인 케이스티파이(CASETiFY)는 2019년 인스타그램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매해 평균 세 자릿수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 케이스티파이의 슬로건인 'Show Your Colors(너의 색깔을 보여줘)'와 '케이스티파이다움'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임연희 마케팅팀 매니저는 "브랜드·크리에이터·소비자가 한 계정에 모여 콘텐트를 통해 주고받는 이야기가 제품 개발에 반영된다"면서 "브랜드가 소비자와 민첩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인스타그램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케이스티파이는 개개인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케이스로 제작하는 '커스터마이징 디자인'으로 유명해진 브랜드다. 협업 디자인부터 제품 홍보를 위한 콘텐트 제작까지, 크리에이터와 협업에 힘쓰는 이유다. 임 매니저는 "콜라보레이션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브랜드와 크리에이터의 동반 성장"이라며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그들이 전 세계에서 주목받을 수 있도록 육성하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 인스타그램 챗봇으로 1만개 제품 문의 해결 케이스티파이는 올해 인스타그램 내에 챗봇을 도입해 고객 문의에 대응하고 있다. 브랜드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인스타그램에서도 문의가 늘고 있어서다. 인공지능(AI)이 질문을 해결해준다. 임 매니저는 "케이스티파이는 모든 제품을 해외로 배송하는데, 챗봇 도입 전엔 고객과 배송 관련 문의를 e-메일로 주고받아야 했다"면서 "이젠 배송 위치 등의 정보를 소비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또 "단순 피드 포스팅에 그치지 않고, 제품 관심도에 따라 세밀한 타게팅을 할 수 있도록 제품 태그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스타그램에선 게시물당 최대 20개의 제품 태그를 달 수 있다. 태그를 누르면 제품의 세부 정보가 보이고, 숍(Shops) 등 상품 구매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다. 1만여개 제품 중 필요한 걸 손쉽게 찾도록 해 자연스럽게 구매로 연결하는 방법이다. ◈ 인스타그램은 월간 활성 이용자수가 20억명에 달하는 SNS다. 2010년 이미지 중심의 소셜 미디어로 출발, 최근엔 릴스에 주력하고 있다. 모기업 메타에 따르면 이용자들은 인스타그램 이용 시간의 20%를 릴스 시청에 쓴다. 비크닉 떡볶이에 와인 마시는 동네마켓 있다? 요즘 입소문 난 그곳 이 핸드크림 다 써봤지? 韓 연매출 914억, 스킨케어계의 애플 성수동 검은 'ㅅ' 건물의 정체…'몸값 4조' 무신사의 이런 실험 "인생사진 건진다"…뙤약볕에 몇시간 줄서도 웃음 터지는 이곳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
떡볶이에 와인 마시는 동네마켓 있다? 요즘 입소문 난 그곳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좋은 브랜드를 탐닉하는 윤경희 기자입니다. 최근 유럽에선 패션위크가 한창입니다. 지난주 런던에 이어 다음 주엔 파리에서 패션위크가 열려요. 아쉽게도 올해는 못 갔지만, 유럽에 출장을 가면 꼭 시간을 내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숙소가 있는 동네의 그로서리 마켓이에요. 그로서리 마켓은 커피와 간단한 먹을 거리를 파는 식료품점입니다. 편안한 차림으로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산책길에 잠시 앉아 커피와 빵을 먹고, 그날그날 필요한 소소한 식료품을 사는 동네의 사랑방 같은 곳이죠. 동네의 한가로움과 일상이 녹아 특유의 분위기를 가집니다. 우리로 치면 동네 슈퍼+동네 카페를 결합한 개념인데, 하나의 브랜드가 된 곳으로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타치 마켓’이 잘 알려져 있어요. 최근엔 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성격의 공간이 속속 생기고 있어요. 오늘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보마켓’을 소개하려 해요. 동네의 일상을 담는 브랜드이자 공간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생활밀착형 동네 마켓'을 지향하는 보마켓 경리단점. 사진 보마켓 소소하지만 유용한, 동네 사람들이 필요한 걸 파는 가게 2년 전 패션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야외에서 떡볶이에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멋진 공간이 생겼다’는 입소문이 돌았어요. 보마켓의 2호점인 경리단점이었죠. 떡볶이에 와인이라니, 생소한 조합이지만 구미가 당겼어요. 가게 안에 있는 와인을 골라 빵이나 떡볶이를 사서 같이 먹어도 되고, 가게에 설치한 팬트리에서 먹고 싶은 치즈나 감자칩 같은 간단한 안줏거리를 집어와서 먹어도 되는, 자유롭고 캐주얼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그런데 이곳,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다른 한쪽에는 심플한 디자인의 그릇과 플라스틱 쟁반, 그물 장바구니, 러그 같은 아기자기한 생활용품까지 팔아요. 이곳의 업태를 뭐로 정의해야 할지 고민되는 부분이죠. 동네 슈퍼이자, 편의점이자, 식료품 가게이자, 브런치 카페. 이곳을 만든 유보라 대표는 이런 공간들을 한데 합친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공간 분류로는 딱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보마켓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냐는 질문에 유 대표는 “생활밀착형 동네 마켓”이라고 답했어요. 2014년 문을 연 보마켓 1호점(남산점)의 입구. 사진 보마켓 보마켓의 시작은 2014년 유 대표가 살던 ‘남산맨션’이라는 남산 끝자락에 있는 작은 아파트 단지부터예요. 100가구 남짓이 사는 외딴 섬 같은 단지인데, 남산이 만들어내는 운치는 좋았지만 주변에 대형마트나 카페 등 상업시설이 없어 일상생활엔 불편함이 있었어요. 가깝게 식료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아파트 1층에 있던 슈퍼마켓이었는데, 그곳이 그만 문을 닫아 버린 겁니다. 유 대표는 그 자리에 자신이 즐겨 먹지만, 그 동네에서 사기 어려운 식료품을 직접 팔기로 했어요. “시작은 생수 좀 마음 편하게 먹어보자-였어요. 당시엔 지금처럼 식료품 배송이 쉽지 않았거든요. 생수 한 병을 사려 해도 차를 타고 나가야 했어요. 어린 시절 갈 때마다 기분 좋았던 수입 과자 가게의 기억을 떠올려, 제가 동네 가게에서 사고 싶은 콜라나 와인, 꽁치통조림과 시리얼, 수세미 같은 수입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들여놓고 팔게 됐죠.” 퇴사 후 창업 같은 인생 2막의 결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말 그대로 '우리 동네에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가게를 만든 겁니다. 인테리어와 상품 구성도 직접 친구와 놀면서 했어요. 가게를 차리기로 마음 먹고 3달 동안 친구와 텅 빈 가게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여기엔 뭐를 놓을까’ ‘색은 뭐로 칠할까’하며 지냈답니다. 그러던 하루 할머니 한 분이 아파트에서 내려오시더니 “대체 문을 언제 열 거냐. 가게 열기 기다리다 죽겠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때 알았어요. 나만 이런 가게가 필요한 게 아니었구나. 다른 아파트 주민들도 슬리퍼를 신고 쉽게 가서 먹을 것을 사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는 것을요. 정신이 번쩍 들어 속도를 내 가게를 오픈했어요.” 보마켓 남산점의 냉장고. 동네 주민들이 슬리퍼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와서 사고 싶어했던 신선한 우유, 채소, 과일 등 싱싱한 먹을 거리들을 판다. 사진 보마켓 UX 디자이너가 풀어낸 ‘생활밀착형 마켓’ 보마켓은 지금 가장 인기 있는 공간 중 하나로 꼽힙니다. 힙한 공간을 찾는 MZ세대부터 3~4인 가구 동네 주민까지 이곳을 찾아요. 하지만 보마켓의 ‘명성’만 듣고 방문한 사람 중엔 실망감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어요. 입이 떡 벌어지는 세련된 공간 디자인이나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물건을 갖춘 곳은 아니거든요. 파는 음식은 햄버거·샌드위치·샐러드·떡볶이 같은 가벼운 메뉴들이고, 판매하는 생활용품도 어떻게 보면 소소하다 할만한 것들이죠. 그런데요. 자꾸 눈이 가고 발길이 향한다는 사람이 많아요. 브랜드는 이들과 협업하고 싶어 줄을 서고요. 이유가 뭘까요. 여기엔 유보라란 사람을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은 보마켓에 전념하고 있지만, 유 대표는 자동차 UX(사용자 경험) 디자이너로 오랜 경력을 쌓았어요. 대학에선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 후 한국과 일본 자동차회사에서 근무하며 콘셉트 카를 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엔 집 짓기 놀이를 가장 좋아했던 소녀였데요. 코로나 19가 퍼지기 전 3년간 근무한 일본에선 오모테산도, 나카메구로 지역에 살았어요. 일본 중에서도 라이프스타일 문화가 풍부한 곳으로 손꼽히는 동네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한국에 돌아온 그는 일본에서 접했던 ‘좋은 동네 마켓’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어요. 그는 그 시작과 끝은 “보마켓을 찾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제가 만약 라이프스타일과 연관된 분야에서 일했거나 이게 직업이었다면 시각이 달랐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직종이 자동차라는 무거운 분야이다 보니, 오히려 고객의 행동을 더 많이 관찰하게 됐어요. ‘왜 이걸 좋아하지’ ‘왜 저렇게 하시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판매할 상품을 구성하고, 동선을 잡아요." 보마켓의 유보라 대표. 보마켓의 ‘보’는 유 대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사진 본인 제공 UX디자이너로서 사용자의 관심과 움직임을 관찰하고, 경험을 설계했던 노하우를 그대로 동네 마켓에 녹여 낸 거예요. 그래서 보마켓 집기는 대부분이 움직이기 쉬운 것들이에요. 시기에 따라, 고객의 관심에 따라 진열 방법을 다르게 바꾸기 위해서요. 얼마 전에는 경리단점의 잘게 나누어져 있는 진열장을 하나로 텄답니다. 고객들이 더 편하게 그릇과 상품을 집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죠. 사료·배식그릇 등 강아지 용품은 강아지가 가게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코를 들이대는 곳에 놓고, 크레파스는 아이들의 시선이 닿는 조금 아래쪽 선반에 배치합니다. “저는 이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물건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의 시선에 맞춰서 상품을 놓아야 쉽게 볼 수 있잖아요.” 타깃 고객의 시선에 맞춰 정리돼 있는 잼, 과자 등 식료품들. 사진에 보이는 책은 보마켓이 참가해 미래 주거의 컨셉을 제시한 '2022 하우스 비전'의 책이다. 윤경희 기자 보마켓 신촌점. 사진 보마켓 마켓의 물건에도 사용자 관점과 유 대표의 철학이 담겨 있어요. '그냥 예쁜 것'이 아니라 '예쁜데, 쓰면 좋은 것'으로요. 이제 매장에는 창업 당시 취급했던 수입 제품에서 이젠 사용할수록 가치 있는 국내 브랜드 제품으로 바뀌고 있어요. 예를 들어 생분해되는 '라브아'의 섬유유연제, 자연 원료를 고집하는 '아로마티카'의 샴푸나 '희녹'의 탈취제 같은 것들이죠. 요즘 세련된 편집숍마다 취급하는 '솔트레인' 치약은 보마켓만을 위한 상품을 만들었는데요, 치약 개발에만 유 대표 입 안이 헐 정도로 3개월 동안 테스트를 했데요. 그러면서 종이 패키지는 다른 상품과 다르게 코팅 처리를 안 한 무광 패키지도 만들었고요. '포장할 수밖에 없다면, 재활용될 수 있도록 코팅이라도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답니다. 또 매장 음식에 사용하는 채소는 농업회사 '만나CEA'에서 공급하는 것을 쓰고, 성수점은 '존쿡델리미트'의 햄을 사용합니다. 두 회사 모두 소리 없이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생산·유통 공정을 실행하는 회사들입니다. ‘동네 맥락’ 담긴 어른들의 놀이터 보마켓에서 동네 사람들은 단순한 고객이 아닙니다. 마켓에 놓을 물건을 고르는 머천다이저(MD)이자, 공간의 콘텐트를 만들어가는 기획자죠. 유 대표는 이들이 원하는 것을 보고 듣고, 여기에 자신의 바람과 감각을 담아 정리해 보여줍니다. ‘주인이 좋아하는 예쁜 것들’을 보여주는 편집숍이 아니라, ‘이용자가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하는 공간인 겁니다. 동네 사람들의 취향이 담긴 생활밀착형 플랫폼이라 말할 만해요. “마케팅도 브랜드 전략도 없었다”고 말하지만, 유 대표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지켜보고(고객 리서치), 이를 자신의 색깔로 해석한 상품을 선정하고(상품 기획), 이를 발 빠르게 내놔 반응을 보고(AB 테스트), 실제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을 골라 본격적으로 판매(상설화)하는 과정을 본능적으로 실행하고 있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 티보 에렘이 그린 보마켓과 강아지 장미. 사진 보마켓 특히 단골은 보마켓의 콘텐트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예요. 먼저 보마켓에서 판매하는 그림 카드를 볼까요. 1호점의 전경과 가게 밖을 내다 보고 있는 강아지 그림(유 대표의 반려견 장미. 실제로 늘 이 모습으로 가게에 앉아 있었다)인데요, 남산맨션에 3개월간 머물던 일러스트레이터 티보 에렘이 그렸어요. 티보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그린 작가로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서 주인공 최우식이 그린 그림의 원작자이기도 하죠. 아침마다 보마켓에 와서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는 그에게 유 대표가 가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고, 일상 속 건물과 식물을 소재로 삼아온 그는 흔쾌히 수락했어요. 6년간 1호점을 운영해온 유 대표가 경리단길에 2호점을 낼 때도 그랬어요. “멀리서 오는 손님들 앉으라고 자리를 양보하는 동네 주민들을 보니, 그분들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 매장을 하나 더 내야겠더라고요. 그랬더니 주변에 먹을만한 빵집이 없다고, 빵집도 만들어 달라 하셨어요. 어떡해요, 만들었죠.” 보마켓이 운영하는 5개의 매장은 같은 곳이 없어요. 브랜드 컬러와 톤은 유지하되, 매장마다 음식 메뉴와 선보이는 상품이 다릅니다. 인테리어와 상품 진열 방식도요. 프랜차이즈처럼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고 그대로 확산하면 쉬울 텐데, 굳이 지점마다 차별화를 두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의 기본이 동네 마켓이니, 지역별로 다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네가 가진 맥락이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고, 어떤 것들을 찾는지요.” 보마켓 서울로점은 만리동의 100년 넘은 건물에 자리 잡았다. 레스토랑 '베리키친'과 함께 있어, 장을 볼수도 다이닝을 즐길 수도 있는 공간. 사진 보마켓 가장 최근에 생긴 5호점 신촌점. 20대가 많은 동네 특성에 맞춰 기존 보마켓과는 다르게 깔끔하고 미니멀한 컨셉을 택했다. 사진 보마켓 가장 최근에 문을 연 신촌점은 SK D&D의 코리빙 하우스 브랜드 ‘에피소드’ 1층에 자리 잡았어요. '동네 생활밀착형'을 강조하는 유 대표는 이곳에 매장을 열면서 아예 집을 이곳으로 옮겼어요. 직접 이 동네 주민이 되기로 한 거죠. “여기 와서 동네를 계속 돌아다녔어요. 이 근처에 편의점, 동네 슈퍼, 다이소, 심지어 백화점까지 근처에 있는데, 우리는 그곳과는 다르게 가야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 이곳에 살면서 동네 주민이 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겠더라고요. 지금은 매장이 많이 비어있는 상태예요. 이곳의 기존 상권과 상생하면서 주민들이 놀러 올 수 있는 공간을 그리며 천천히 채워가고 있습니다.” 일본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좋은 디자인이란 ‘생활’이라는 살아있는 시간의 퇴적이, 필연성에서 비롯된 형태를 한층 완성시켜주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의 이야기는 디자인뿐 아니라 공간과 브랜드에도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네 사람들의 생활에 그 근간을 두고 있는 보마켓이 매력적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가 되겠다는 보마켓, 앞으로 또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기대해 봅니다. 비크닉 이 핸드크림 다 써봤지? 韓 연매출 914억, 스킨케어계의 애플 [비크닉] 성수동 검은 'ㅅ' 건물의 정체…'몸값 4조' 무신사의 이런 실험 [비크닉] 그 흔한 토스터·선풍기 10배 주고 산다…발뮤다 '감성가전' 비결 [비크닉] "인생사진 건진다"…뙤약볕에 몇시간 줄서도 웃음 터지는 이곳 [비크닉]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
"인생사진 건진다"…뙤약볕에 몇시간 줄서도 웃음 터지는 이곳 [비크닉]
안녕하세요. 브랜드 소개팅 전문 정세희 기자입니다. 여러분 인생네컷 찍어보셨어요? 혹시 ‘그게 뭐냐’고 하실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요즘 Z세대가 줄 서서 찍는 셀프 사진 스튜디오 브랜드예요. 창립 5년 만에 매장 수가 300여개 넘고요. 작년 한 해 이용자 수만 1800만명이라고 해요. 고화질 휴대폰을 놔두고 왜 굳이 아날로그 사진을 찍는지 궁금하시다고요? 이번 브랜드 소개팅은 인생네컷을 운영하는 엘케이벤처스 이호익 대표를 만나봤습니다. ━ Z세대의 새로운 놀이 문화 인생네컷 매장 앞에서 고객들이 줄 서 있는 모습. 사진 인생네컷 인생네컷 고객들이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인생네컷 인생네컷은 요즘 MZ세대가 친구를 만나면 밥을 먹듯 꼭 하는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어요. 사진을 찍겠다고 이 더운 날 몇 미터씩 줄 서기를 하는 광경도 흔해요. 즐기는 방법도 함께 진화하고 있어요. 마음의 준비를 못 하고 카메라 앞에 서면 어색한 표정을 짓고 경직된 자세를 취하기 쉽잖아요. 몇번 실패를 겪은 상급자(?)들은 미리 인터넷에서 인원 수별 인생네컷 포즈 팁을 보고 같이 연습도 해요. 친구 얼굴에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린다거나, 다 함께 귀를 당겨 원숭이처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등 다양한 포즈를 연습하다 보면 그 자체로 재밌겠죠? 이처럼 인생네컷은 사진관을 찾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어요. “사진관에서 우리는 항상 진중했어요. 대부분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목적인지라 의상을 맞추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했죠. 처음 보는 사진가 앞에서 어색하게 웃어야 했고요. 말 그대로 사진 찍기 참 힘들었어요. 그렇다고 스마트폰은 너무 쉬워요. 쉽게 찍고 지우면 그만이었잖아요.” 기존 사진관의 번거로움과 휴대폰 사진의 남발성에서 오는 아쉬움을 해소하는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한 거죠. 일상을 손쉽게 기록하고 싶어하는 시대의 요구와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요. “아이가 중학생만 돼도 가족사진은커녕 모이는 것도 힘들잖아요. 그런 아들이 인생네컷을 찍을 때는 얼굴을 들이 밀어준단 말이에요. 금전적으로도 가볍고, 보정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편하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거죠.” ━ 몇 시간씩 기다려도 들어가면 웃음 터지는 신기한 곳 인생네컷 고객들이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인생네컷 처음 인생네컷은 사진 장비(키오스크) 하나로 대구에서 시작했어요. 매장도 따로 없이 사람 많이 지나다니는 골목에 세워뒀대요. 지하철역에 놓인 증명사진 기계처럼요. 그런데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던 그 증명사진 기계와 달리 인생네컷으로 찍으면 얼굴이 묘하게 예쁘게 나왔어요. 사람들 사이에선 정말 ‘인생 사진’이 나온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요. 우연히 인생네컷을 접한 이 대표는 ‘이거다’ 싶었대요. 당시 인생네컷을 제조·유통하던 대표에게 찾아가 서울·경기 총판을 맡겠다고 연락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왜 사진을 찍는지는 이해가 안 갔어요. 젊은 친구들이 사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니까 안경집 사장, 식당 주인 등 주변 상인들이 다 나와서 무슨 일이냐며 구경했어요.” 더 신기한 일은 그 작은 기계 안에서 벌어졌다고 해요. “여름 뙤약볕이 얼마나 뜨거워요. 숨 막히는 더위에 기나긴 줄을 서서 겨우 깡통 같은 곳에 들어가면, 이상하게도 꺄르르 꺄르르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들어가는 사람마다 1, 2분 정도 난리가 났어요. 그걸 보고 이 기계가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소리치게 하는 ‘롤러코스터’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으악’하는 괴성은 안 나오지만요. (웃음)” 하지만 이 대표는 인생네컷의 전망에 많은 기대를 걸지 않았어요.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라도 내리면 망할 줄 알았답니다. 겨울에 저 쇳덩이를 만지면 당장 손이 시릴 텐데 누가 찾을까 싶어서요. 그런데 그 줄은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어요. 지금까지도요. ━ 고데기 하고 화장 고치는 만남의 장소 인생네컷 매장에 꼭 필요한 화장대. 밝은 조명 아래 머리를 만질 수 있는 빗, 고데기 등이 놓여있다. 사진 인생네컷 지금과 같은 오프라인 매장을 만든 것은 거리에서 고생하던 젊은 친구들이 생각나서였대요. “답답한 깡통기기 안에 들어가겠다고 줄 서 있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괜히 죄짓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돈을 벌고 있다는 게 미안했어요. 그것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요. 그래서 이들이 더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그는 2017년 4월 인생네컷 전국 사업권을 포함, 모든 권리를 인수했어요. 그리고는 바로 그해 겨울 청주, 부평, 안산, 인천 등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스타벅스가 성공한 건 커피에 공간을 입혔기 때문이잖아요. 단순히 커피만 파는 게 아니라 쾌적하고 아늑한 곳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했죠. 인생네컷이 단순히 사진 찍는 곳이 아니라 만남의 장소가 됐으면 했어요. 친구 만나기 전에 고데기하고 거울 보면서 화장도 고칠 수 있는 편안한 곳이요.” 사실 이 대표가 인생네컷을 인수하고 매장으로 사업형태를 전환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모두 반대했다고 해요. 이미 인기 있는 상권에 장비가 다 들어간 상태라 더는 확장 가능성이 없다고 본 거죠. 하지만 이 대표는 ‘된다’는 확신이 있었답니다. 직접 몸으로 쌓은 경험에서 나온 촉이 발동했죠.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무인 자판기 시장에 관심이 많았대요. 소주에 타 먹는 녹차 맛 액상 자판기를 운영해보기도 하고, 군대에 납품하는 라면 자판기 사업도 준비하고요. “사업적으로 자동판매기는 비용이 적게 들어 운영 부담이 적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자판기가 아무리 잘 나가도 하나의 ‘브랜드’로 알려지는 건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인생네컷은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스스로 바이럴 되고 있더라고요. ‘인생사진 건지는 기계’로요. 나중에 사진 자판기는 못 팔지언정, 인생네컷이라는 브랜드는 키울 수 있겠다 싶었어요.” ━ 옛날 스티커 사진이랑 비교하지 말아 주세요 2000년대 유행이었던 스티커 사진. 사진 JTBC 드라마 '경우의 수' 사실 스티커 사진은 이미 유행한 적 있어요. 1990년대 말에 등장해 2000년대 초반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휴대폰이나 다이어리에 스티커 사진 한장 안 붙인 사람이 없었죠. 하지만 이 대표는 당시의 스티커 사진기와 비교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고요. “스티커 사진 판매기가 나온 지 20년이 넘었는데요. 기억에 남는 브랜드가 있나요? 없을 겁니다. 이름도 없었어요. 스티커 사진 찍으러 가자고 했지, 인생네컷 하러 가자곤 안 했잖아요.” 사람들에게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해요. 고유의 정체성이나 철학이 없는 채로 죽어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말하죠.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물건만 파는 장사와 달리 어떤 가치를 만든다는 거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거예요. 반면 당시 스티커 사진 시장은 일본 사진을 카피해 들여놓기 바빴죠. 돈은 벌었을 지 모르겠지만 감동은 주지 못했어요.” 그는 일상을 재미있게 기록하고 추억할 수 있는 MZ세대의 문화 구심점이 되겠다는 철학을 세웠다고 했어요. “스티커 사진 회사에는 기기 고장을 수리하는 부서는 있을지 몰라도, 소비자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부는 없었을 거예요. 저희는 사진 프레임은 물론 공간의 작은 요소까지 고객들의 이야기를 반영하려고 해요. 문화라는 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거니까요.” ━ 인생네컷의 무기, 역시 소통 지금의 핑크색 간판 인생네컷이 나오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대요. 좋은 공간을 선사하겠다는 욕심에 접근성은 무시한 채 건물 3층에 100평짜리 매장을 꾸며보기도 하고, 지금 컨셉과는 전혀 다른 화이트와 우드톤의 인테리어를 시도해보기도 하고요. 그 중 고수하던 게 있어요. 바로 사진 고유의 감성이에요. “처음 저희가 유명해진 건 뭐니뭐니해도 인생사진을 건진다는 것 때문이었잖아요. 물론 과거 자판기 시절 프로그램은 다 바꿨지만 그때의 톤은 그대로 가져가려고 해요.” 요즘엔 가장 만족할만한 얼굴이 나올 수 있도록 개별 보정 값을 만들어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해요. 예쁘게 나오는 칼러 톤이나 개인이 특별히 보정하고 싶은 데이터를 앱에 저장해두면 자동으로 기기와 연동되는 거죠. 또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려고 애쓴다고 해요. 혹시 기존 프레임이 지루하게 느낄까 하는 마음에 밸런타인데이, 광복절, 삼일절 등 한정판 프레임을 선보여봤는데 반응이 좋았대요. “실제 한 고객에게서 ‘오늘 여자친구와 100일인데 프레임을 만들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받고 100일 프레임을 만든 적도 있어요. 이후 더 다양한 니즈를 반영하고자 앱을 출시했어요. 앱에는 300~400개의 프레임이 있는데요. 그것도 모자라 직접 만들 수 있게끔 했어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프레임이죠.” 한글날을 기념해 선보인 '인생넉장' 프레임. 사진 인생네컷 ━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처럼, 전 세대가 협업해야 요즘 브랜드가 성공하려면 MZ세대를 사로잡아야 한다잖아요. 그는 MZ를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젊은 친구들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강박은 갖지 말라고 조언했어요. “사실 조직에서 Z세대가 많다고 해서 그들이 MZ세대를 완벽하게 대변한다고 볼 순 없어요. 그리고 기성세대라고 고리타분하지만은 않죠.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실천할 힘이 있으니까요. 저희 회사에는 20대 초반 친구도 있고 50살 넘으신 분도 있어요. 이들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게 제 할 일이죠.” 실제 브랜드 활동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를 많이 시도하고 있어요. 사진 찍기 10초 전 영상, 스냅 디지털 파일 등이 대표적이에요. 인생네컷에서 찍은 사진을 NFT 공간에서 디지털 창작물로 나오게끔 하는 새로운 도전도 하고 있죠. 앞으로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사진 문화 플랫폼 기업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해요. ━ 사람 또 찾게 하는 건 결국 진심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재차 말하던 이 대표도 자부하는 게 있었어요. 진심으로 사람(고객)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싶었다는 것. “어떤 심오한 철학으로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저 더운 날 고생하는 친구들이 내년에 다시 이 경험을 하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꼭 사진 찍지 않아도 되니 편하게 놀다가는 곳,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곳이 됐으면 했어요. 무슨 동심 어린 생각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단언컨대 이 마음은 브랜드에 저해요소가 되지 않아요. 왜냐면요. 결국 사람들이 또 찾을 거 아녜요.” 머무는 시간을 늘려 결국 사진을 찍게 하는 게 전략 아니냐고요? 이 대표는 만약 그렇다면 기계당 회전율을 높였을 거라고 답했어요. 인생네컷은 ‘한 철 장사’가 아닌 ‘인생 단골’을 만드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면서요. “한팀이 사진 찍고 한 2분 안에 빨리 나오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가게 하는 게 돈을 빨리 버는 방법이겠죠. 그건 단기간에 이익은 얻을 수 있어도 브랜드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이용’만 하면 결국은 쉽게 식상해질 거거든요.” ━ 나가며 코로나 19 때문에 함께 수업도 잘 못 듣고 마음껏 어울려 놀지 못했던 MZ세대에게 인생네컷은 사진찍기라는 미션을 함께 수행하는 놀이터가 아닐까요? 카메라 앞에서 모두가 실컷 웃고,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 친구들도 만나고, 성공적인 포즈를 핑계 삼아 다음 약속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요. 이곳이 놀이터라면 길고 긴 줄 서기도 이해가 가요. 재미있는 놀이 기구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수다 떨듯,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요. 평생 갈 추억이 될 사진을 위해 기꺼이 줄 서 있는 모습이 낭만적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인생네컷의 꿈은 전 세계에서 K-포토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미 베트남과 태국 등에서 20여개 매장이 있다고 해요. 해외에서도 들어가면 웃음 끊이지 않는 매력적인 장소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게요.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