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70일, 무슨 일 벌어졌나

우크라이나 전쟁 A to Z

우크라이나 전쟁의 서막

  • 지난 2월 24일 오전 5시(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특별 군사작전’ 결정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당시엔 70일이 넘는 장기전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죠. 대체 어쩌다, 21세기 유럽에서 육·해·공군이 총동원된 침략 전쟁이 벌어지게 됐을까요.

    러시아는 지난해 11월 약 9만 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서방도, 우크라이나도 ‘늘상 반복되던 러시아의 군사 훈련’이려니 생각하는 분위기였죠. 모두의 예상과 달리, 러시아 병력은 철수되지 않고 19만 명(미국 추산)까지 늘어납니다. 서방의 경고에도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던 푸틴은 ‘설마’했던 침공을 감행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3일(현지시간) 연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뉴스1] 


    푸틴은 ‘나토의 동진(東進)’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란 주장을 반복해왔죠. 지난해 12월 푸틴은 연례 기자회견에서 “나토는 동유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뻔뻔하게 5번이나 우리를 속였다”면서 “안보에 대한 정당한 우려를 왜 협박이라 몰아붙이냐”고 강변합니다.
     
    우크라이나는 푸틴이 정한 ‘나토의 동진 저지선’입니다. 푸틴은 두 나라의 ‘역사적 친연성’을 내세우며 ‘사실상 한 나라’라는 논리를 펴왔습니다. 침공 사흘 전인 2월 21일, 푸틴 대통령은 길고 열정적인 TV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라고 강조했습니다. 9세기 우크라이나 땅에 세워진 키예프 루스가 벨라루스·러시아까지 아우르는 국가였다면서요.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황을 보면, 푸틴이 이곳을 ‘형제의 나라’로 여긴다는 사실은 믿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유럽과 아시아의 길목이자 흑해 연안에 자리한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 기름진 흑토에서 산출되는 풍부한 곡물을 포기할 수 없었던 ‘푸틴의 야욕’만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죠. 

  •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사임으로 대통령 대행에 임명된 푸틴의 2000년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푸틴은 무력을 통한 정치적 목적 달성에서 그 어떤 정치 지도자들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둬왔습니다. 그의 정치적 목적은 ‘장기집권’.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국민들의 강력하고 압도적인 지지율이 필요합니다.


    푸틴에게 전쟁은 ‘지지율 상승 기폭제’입니다. 정치 신인이었던 그는 2000년 2차 체첸전쟁을 이끌며 대통령 당선이라는 초고속 신분 상승을 경험합니다. 2008년엔 조지아를 침공해 5일 만에 항복을 받아내며 역대 최고 지지율(88%)을 찍었죠.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면서 다시 한번 푸틴식 성공 공식을 반복했습니다. 승승장구였던 이전과 달리 우크라이나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이번 전쟁도 그에게 ‘지지율 상승’이란 열매를 어김없이 안겨줬습니다.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에 따르면, 지난 4월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82%입니다.

전쟁 초기, 예상깨고 고전한 러시아

  • 개전 이전,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에 대해 “지구상에서 미국과 나토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군대”라고 평가했습니다. 2000년 푸틴의 집권과 함께 국방력 강화 정책이 시행됐기 때문이죠.


    세계 각국의 군사력을 비교하는 글로벌 파이어 파워(Global Firepower, GFP) 집계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에 이어 세계 군사력 순위 2위, 우크라이나는 25위입니다. CNN은 이를 두고 “다윗과 거인 골리앗의 전쟁”이라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북쪽과 동쪽·남쪽 3면에서 진격하는 러시아군 앞에,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그저 풍전등화처럼 보였습니다. 러시아군은 개전 9시간 만에 수도 키이우 북부까지 진입했고, 키이우 중심부에서 불과 9㎞ 떨어진 북부 오볼론스키에서 교전이 펼쳐졌습니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개전 이튿날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이 있지만, 러시아군의 키이우를 향한 진군이 계속되고 있다”며 “수도가 함락될 실제 가능성(real possibility)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 재블린 미사일을 사용하는 우크라이나군의 모습. [AFP=연합뉴스]


    전쟁 사흘째인 2월 26일. “키이우를 떠났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동영상을 올립니다. “나는 여기(키이우)에 있다. 모든 것을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무기를 놓지 않겠다”며 결연한 항전 의지를 전합니다. 이어 미국의 도피 제안을 받은 젤렌스키가 “내게 필요한 건 오직 무기, 무기, 무기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단 보도가 나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젤렌스키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만 22년을 거주한 한국인 김병범 선교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크림반도 침공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며 “이길 수 없어도 싸우겠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결연한 우크라이나인의 손에 서방은 무기를 쥐어줍니다. 특히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은 시가전에서 매복·기습 작전을 하는 우크라이나군에게 안성맞춤이었습니다. ‘키이우의 유령’으로 불린 우크라이나 공군이, 압도적 전력 우위인 러시아 공군에 제공권을 빼앗기지 않은 것도 ‘반전(反轉)’의 계기가 됐습니다.   


    우크라이나 네티즌들이 공유 중인 '성스러운 재블린 미사일'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트). [트위터 캡처] 

  •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공개한 어린 러시아군 포로들의 모습. [우크라이나 국방부 제공] 


    러시아군은 실책의 연속이었습니다. 생포된 러시아군 포로는 “여기가 어디냐. 나는 훈련 중인 줄 알았다”며 눈물을 흘리며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군수물자와 식량·연료 보급 차질 등 병참 문제는 군 사기마저 떨어뜨렸습니다. 속전속결을 계획했던 러시아군은 전쟁이 길어지자 연료와 식량을 제때 보급하지 못했고, 결국 키이우로 향하던 ‘64㎞ 러시아군 행렬’이 멈춰섰습니다. 러시아군의 통신은 우크라이나군에 번번이 도청됐습니다. 개전 두 달만에 장군 12명 사망이라는 현대사에 전례 없는 불명예 기록도 세우게 됩니다.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인 모스크바함이 침몰되는 일도 벌어집니다. 러시아의 새로운 부대 편제인 대대전술단(BTG)에 기반한 작전 자체가 문제였단 지적도 나옵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쟁을 치르며 탄생된 BTG는 신속기동과 단기간 화력 투사가 장점이지만, 보병·지원 전력이 부족해 장기간 작전 수행에서는 불리하다는 겁니다.

     

동부 전선으로 옮겨간 전쟁 2막

현재 우크라이나 전황은

  • 4월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가는 도로 모습. 최근 전투에서 파괴된 러시아 탱크가 도로 한가운데 서 있다.


    돈바스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대규모 공세를 잘 막아내는 중입니다. 하지만 러시아군을 밀어내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러시아군은 동부에서 조금씩 진군하는 중입니다.
     
    ‘최악의 전선’으로 불리는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선 우크라이나 방어군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고립된 상태입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접경국인 몰도바까지 침공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민네카예프 부사령관은 4월 22일 “돈바스와 남부 지역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확보하면, 트란스니스트리아로 가는 또 다른 진입로가 확보된다”고 말했죠.


    러시아가 5월 중순 도네츠크·루한스크를 병합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진행할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또 다른 러시아군 점령지인 헤르손에서도 비슷한 일이 진행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난 2014년 크림반도 침공·병합 절차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 5차 평화협상장에서 마주한 러시아-우크라이나 대표단의 모습. [아나돌루=연합뉴스] 


    평화협상은 지지부진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개전 초인 지난 2월 28일 협상을 시작해 지금껏 다섯 차례 마주 앉았습니다.
     
    4차 협상에선 15개 항목의 합의 초안을 만드는 등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초, 러시아군이 물러간 소도시 부차 등에서 민간인 학살 참상이 드러나면서 협상도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최근 “유감스럽게도 평화협상 진행은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평화협상이 교착상태”라고 말했죠. 다만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측 대표단이 매일 화상회의로 논의 중”이라며 대화는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전쟁의 여파는

  • 러시아 흑해함대 소속 순양함 모스크바함의 침몰 직전 장면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4월 17일(현지 시각) 트위터를 통해 공개됐다. [트위터 캡처]


    이번 전쟁은 SNS를 통해 시시각각 전 세계로 생중계됐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스마트폰으로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61%입니다.


    숨은 공로자는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입니다. 개전 초기 러시아군의 폭격에 우크라이나의 각종 인프라가 파괴되면서 인터넷도 마비됐었죠. 이에 머스크는 우크라이나에 인터넷 단말기와 배터리 등 스타링크 위성 서비스 지원에 나섰고, SNS 여론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 지난 4월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에서 한 여성이 러시아군에 끌려간 해군 출신 남편이 고문을 받고 살해된 사연을 전하며 오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부차 대학살'은 세계를 경악하게 했습니다. 4월 초 러시아군이 퇴각한 키이우 북부 도시들에선 수많은 민간인 시신이 나왔습니다. 다수가 양손이 뒤로 묶인 채 총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고문이나 성폭행의 흔적이 남은 시신도 있었습니다. 마리우폴에선 어린이와 노인, 임산부들이 대피했던 극장을 러시아군이 무참히 폭격했습니다. 당시 극장 마당에는 '어린이(дети)'라는 글자를 크게 써둬, 폭격하지 말아달란 표식을 해둔 상태였지만 러시아군은 이를 무시한 겁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전쟁을 피해 피란길에 나섰습니다. 5월 2일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를 떠난 피란민은 556만 명입니다. UNHCR은 연말까지 최대 830만 명이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러시아의 침략 전쟁은 유럽의 안보 지형을 뒤흔들어놨습니다. 북유럽의 중립국 스웨덴과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이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이들 나라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지만, 나토에는 가입하지 않았죠.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집단 안보 필요성을 절감하며 나토 가입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4월 28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만약 그들이 가입 신청을 한다면 절차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공급의 10% 이상을 담당해온 나라입니다. 전쟁으로 곡물 수출과 생산이 중단되자 전 세계 곡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죠.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3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12.6% 올라 159.3을 기록했습니다. 1996년 집계를 시작한 후 최고치입니다. 밀값 상승은 개발도상국의 정치 체제까지 뒤흔들 수 있습니다. 밀가루 가격 상승은 2010년 말 튀니지 ‘재스민 혁명’으로 시작된 아랍국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 중 하나였습니다.
     
    유럽은 새로운 에너지 공급처를 찾고 있습니다. 개전 이전까지 EU는 천연가스 수입의 40%를 러시아산으로 충당했을 정도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았죠. 침략국인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위해 똘똘 뭉친 유럽은 러시아의 석탄 수입은 막았고, 석유와 천연가스 금수 조치도 고민 중입니다. 5월 3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아프리카 등 수입선 다변화로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올해 안에 3분의 2가량 줄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