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사람들

盧·MB정부서 요직…가장 출세한 ‘늘공’ 김대기

  • 1956년 11월 16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71회)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서울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서울대 재학 시절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옛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고시 합격 당시 만 22세에 불과했다. 이후 기획예산처에서 예산 업무 경험을 쌓다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6월부터 1년간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다시 기획예산처로 복귀해 재정운용실장을 지내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차관급인 통계청장으로 영전했다.


    이후에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청와대 정책실장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공직을 물러나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를 맡았다가 윤석열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이 됐다.


    아내 이윤정 씨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남은 미국 텍사스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 공무원들 사이에선 정통 경제관료로서 가장 출세한 인물로 꼽힌다. ‘늘공’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직급인 1급은 물론이고 차관에 이어 장관급(대통령실 정책실장, 대통령비서실장)을 두 번 맡은 화려한 이력 때문이다.


    예산‧기획 업무 경험이 풍부하다. 기획예산처 국장 시절 임대형 민자사업(BTL) 도입에 관여했고, 예산과 기금을 포함한 통합재정을 통해 재정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의 가장 두드러진 강점은 여러 정권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험이다. 서기관 시절인 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시작으로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을 보좌했다.


    꼼꼼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성격에 소탈하고 친화력이 좋아 두루 신뢰를 받는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전 정권 인사’로 찍혀 위기를 맞았을 때 여러 경제 관료들과 동료들이 만류해 통계청장에 보임됐다. 직급으로는 영전이었지만, 한직으로 좌천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후 문체부 2차관으로 발탁되면서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이후 2011년 2월 이 전 대통령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임명으로 공석이 된 경제수석에 김대기를 발탁했다. 이어 이듬해(2012년) 8월에는 장관급 직책인 청와대 정책실장을 겸하게 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부처 간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며 그를 적임자로 꼽았다.


  • 김대기는 윤 당선인과 큰 접점은 없는 인물로 분류된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도 윤 당선인과 경쟁하던 최재형 경선후보 캠프에 경제분야 참모로 합류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김 비서실장의 오랜 기획‧예산 업무 경험과 여러 정부에서 청와대 근무를 경험한 이력을 높이 샀다고 한다. 작지만 정책 조정 기능에 충실한 대통령비서실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경제에 관한 김 비서실장의 식견과 경험도 코로나19 이후 악화일로의 경제 상황과 맞물려 강점으로 부각됐다. 윤 대통령은 김 비서실장을 인선하면서 “경제전문가이면서 정무감각을 겸비하고 있고, 다년간의 공직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할 적임자라 판단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