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사람들

연대 도서관서 끈끈해졌다…尹 정치로 이끈 권영세

  • 권영세는 현직 통일부 장관이자 국회의원이다. 1959년 2월 24일(음력)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 신석초, 대동중, 배재고, 서울대 법학과, 동 대학원을 거쳐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을 졸업했다.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1989년 수원지검 검사로 공직에 몸담았다가 1998년 서울지검 부부장을 끝으로 검사복을 벗고 정계에 입문했다. 검사로 재직한 기간은 10년 남짓하다. 따라서 다른 검사 출신 정치인과 달리 검찰 세계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정치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기 관리에 능한 정치인이자 중도 실용 노선에 입각해 동료 정치인은 물론 언론인과도 두루두루 유대를 맺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21대 총선에서 서울 강북(용산) 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국민의힘 의원으로 4선의 관록을 자랑한다.



    2002년 8월 서울 영등포을 보궐선거에서 당시 이회창 총재가 이끌던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권영세의 정계 입문은 장인인 고(故) 유도재 전 청와대 총무수석의 후광이 컸다는 후문이다. 유 전 수석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랜 복심(腹心)이자 정치적 동반자다. 권영세 정계 입문 직전 한나라당 대표이던 서청원 전 의원을 비롯한 민주계 중진 인사들의 지원 사격이 가능했던 것도 유 전 수석의 존재감을 말해준다. 권영세 부부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권력 포인트를 잡아 집요하게 배팅하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권영세 개인의 정치적 감각과 의지, 주변의 후광이 조화를 이룬 케이스라 하겠다. 권영세 측은 “정치 인생 동안 특정 계파에 몸담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동시에 단 한 번도 아웃사이더였던 적은 없는 독특한 스타일”이라고 자평한다.

  • 43년 지기인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77학번인 권영세는 서울대 3학년이던 1979년 법대 내 형사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해 신입생으로 입학한 윤석열을 형사법학회로 인도한 사람이 권영세다. 학생 윤석열이 사람이 듬직하고 의리도 강해 보여 학회로 이끌었다는 후문이다. 3학년 학회장 선배라는 존재는 신입생에게 한때 하늘과 같은 존재로 각인됐을 법하다. 이후 집이 서울 마포인 권영세와 부친이 연세대 교수인 윤 대통령은 연세대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한 인연도 쌓았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2021년 7월 국민의힘이라는 정치권 내 메인스트림 합류를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윤 전 총장 입당 직전인 그해 6월 국민의힘 대외협력위원장이던 권영세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으로 정치를 하지 않으면 실수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영입 무드 조성에 앞장섰다. 나아가 7월 3일 윤 전 총장과 따로 만나 ‘제3지대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입당을 권유했다. 


    @연합뉴스


    당시 당내 대권 주자였던 홍준표 의원이 당 외부의 윤 전 총장을 연일 비판하는 등 견제에 나설 때다. 언행이 신중하기로 소문난 권영세는 “남 욕 많이 하는 분 치고 잘 되는 꼴 없다”며 “본인 얘기나 좀 하셨으면 좋겠다”고 홍 의원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며 윤 전 총장을 엄호했다. 그해 7월 30일 윤 전 총장 입당 당일 영접한 사람도 권영세다. 입당 후 대선후보직을 거머쥔 윤석열 후보는 2022년 1월 국민의힘 선대본부 개편 과정에서 선거대책본부장과 당 사무총장에 권영세를 임명, 선거운동 관리와 살림살이를 그에게 맡겼다. 대선 당시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 사이의 갈등을 풀어내면서 선거 캠프의 청년 조직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대선 승리 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