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사람들

“최고 아니면 최초는 잊힌다”…尹의 입 김은혜

  • 김은혜는 윤석열 대통령실 홍보수석비서관이다. 1971년 1월 6일 서울시 성동구에서 태어났다. 선화예고를 거쳐 1989년 정신여고를 졸업했다. 고등학생 때 음대를 염두에 뒀는데 주 악기는 플루트였다. 이후 진로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1993년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MBC 기자로 입사했다. 2012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2006년 유형동 김앤장법률사무소 국제변호사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하나를 뒀다. 남편인 유 변호사는 미국 UC버클리와 코넬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기자이던 부친이 주카이로 한국영사관 공보관으로 근무할 때 이집트에서 태어났고, 3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았다고 한다.


    김은혜는 실패를 모르는 원조 알파걸로 꼽힌다. 언론인 시절 김은혜는 지존파 연쇄살인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사건 보도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최초 정당 출입 여기자, 최초 여기자 출신 앵커 등 최초 기록을 수없이 제조해냈다. 이어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이후 KT 커뮤니케이션실장으로 옮겼다. 2014년 MBN 앵커로 언론 전선에 복귀했지만 이후 다시 정치권에 입문하며 제21대 총선에 출마, 분당갑에서 당선된다.



    윤석열 대통령과는 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첫 합을 맞췄다. 2021년 11월 선대위 대변인에 임명된 뒤 4개월간 윤 대통령의 언론 창구로 활약했다. 윤 대통령의 지역 일정마다 동행하며 후보의 메시지와 대 언론 활동을 직접 챙겼다. 당시 대변인단 인원이 수십명이었지만 윤 대통령이 김은혜 대변인에게 1박 이상의 중요 일정에는 반드시 함께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선대위 대변인, 공보단장을 거쳐 당선인 대변인까지 지낸 자타공인 ‘윤석열의 입’으로 활동한 김은혜는 2022년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지만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석패했다. 정부 출범 후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20%대로 내려앉고 대통령실 업무가 총체적 난국에 빠지자 2달여 만에 홍보수석비서관으로 복귀했다.

  • @MBC


    1993년 MBC에 입사한 김은혜는 사회부 기자들이 담당하는 경찰서 출입을 오래했다고 한다. 여기자가 많지 않던 초임 시절, 경찰서 형사들이 성폭력 조서 등을 내밀며 낯뜨거운 농담을 해도 김은혜는 여자보다는 기자로 보이고 싶어 도리어 대담하게 굴었다고도 한다. 김은혜는 1994년 지존파 연쇄살인 사건 보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보도 등 굵직한 대형보도를 이어나간다.


    1999~2000년 ‘뉴스데스크’의 앵커를 맡았으며 이후에도 ‘뉴스 24’, ‘뉴스투데이’ 등의 앵커로도 활약했고, 청와대로 옮기기 직전까지 보도국 정치1팀 차장으로 외교통상부에 출입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초대 외신담당 제1 부대변인을 맡았다. 이후 2009년 4월부터 1년여간 제2 대변인을 역임했다. 이후 청와대를 나와 41세의 나이로 2010년 1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KT 커뮤니케이션실 전무로 이직했다. 사내·외 소통을 담당하는 업무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2014년 MBN 앵커로 언론에 복귀했는데, 같은 MBC 출신 김주하가 2015년 MBN에 특임이사 겸 앵커로 이직하며 같은 방송국에서 조우하게 됐다. 이때 김은혜는 자신보다 후배가 이사를 먼저 달았다는 점에 항의했고 곧이어 특임이사를 달 수 있었다고 한다. 지는 걸 싫어하는 김은혜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0년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아 분당갑에 출마해 1128표(0.72%p)차 초접전 끝에 현역이던 김병관 민주당을 의원 누르고 당선됐다. 정치권의 한 인사에 의하면 김은혜의 공천 과정에 당시 보수통합을 추진한 박형준 부산시장(전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친이명박계’로 실제 당시 박 시장이 진행하는 인터뷰에 김은혜를 동행했고, 김은혜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박 시장의 옆에 서서 자리를 지켰다는 후문이다.


    김은혜의 MBC 한 기수 후배는 “김은혜는 양지(陽地)를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초는 최고가 아니면 역사로 사라져버릴 수 있다”고 스스로도 말할 만큼 뚜렷한 목표지향과 근성, 승부욕, 상승심이 돋보이는 캐릭터라는 해석이다.


    김은혜는 아들이 태어났을 무렵 열흘에 한 번씩 집에 들어와 아이를 재워 아들이 자신을 못알아본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주변인들은 “워커홀릭으로 보일 만큼 일을 정말 열심히 한다”, “기자 출신답게 현장을 직접 찾아 자료를 수집하고 발품을 아끼지 않는다”고 김은혜를 평가했다.

  • @연합뉴스


    김은혜는 ‘직업이 대변인’이라 할 정도로 오랫동안 기자들 앞에 서왔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청와대 외신 부대변인과 대변인을 지냈고, 청와대를 나와서는 KT 공보실장 겸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혁신통합추진위원회 대변인을 맡았고, 곧바로 이어진 김종인 비대위와 4‧7 재‧보궐선거 대변인도 역임했다. 2022 대선 국면에서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후보로 선정되자 선대위 대변인과 공보단장을 맡았고, 당선 후에는 당선인 대변인까지 수행하며 총 7차례 대변인직을 경험했다. 낮은 목소리와 강한 어조 때문에 여전사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친화력이 좋고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갖추면서도 외향적 성향이어서 기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다. 꼼꼼하면서도 과감하다는 평을 듣는다.


    기자 재직 시절, ‘약한 자에게 약하고, 강한 자에게 강하자’라는 신념을 되새기곤 했다고 한다. 실제 대선 과정에서 이러한 모습이 도드라진 적이 있는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논란을 두고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해지자 성남도시개발공사의 김문기 개발1처장이 검찰수사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는 ‘고인을 모른다’며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이에 2022년 2월 말, 고(故) 김문기씨의 유족이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김은혜가 이 자리에 함께했다. 고인의 영상이 공개되자 유족들은 눈물을 터뜨렸는데 김은혜 또한 옆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오랜 사회부 기자 생활로 타인의 아픔에 깊게 공감하는 모습이었다는 후문이다.

     

    2021년 12월 31일 제21대 국회의원 재산공개에서 김은혜는 216억1515만7000원을 신고했다. 건물 170억5665만5000원, 토지 명목으로 1억752만7000원, 예금‧채무‧채권 55억7218만8000원을 신고했고 주식 6억454만5000원, 회원권 등 1억9000만원, 정치자금 21만4000원, 자동차 등 부동산 준용권리 3908만원을 신고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재산신고 16억원이 누락된 것이 밝혀지며 선거 막판에 설화를 겪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