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000가구 재건축 어디로

초유의 공사 중단, 둔촌주공 사태의 모든 것

둔촌주공 재건축, 갈등의 서막


  •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은 기존 5930가구를 헐고 1만2032가구를 새로 짓는 사업입니다. 지상 35층의 아파트 동 수만 85개 동. 완공되면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가구)를 넘어 단일 단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아파트가 됩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죠. 공사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컨소시엄 형태로 공사에 참여하는 건설사만 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 등 네곳에 달합니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공사가 시작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둔촌주공은 2006년 정비구역이 지정된 지 11년만인 2017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습니다. 조합원들의 이주가 끝나고 바로 철거할 예정이었지만, 1급 발암물질로 꼽히는 석면처리 논란이 터집니다. 인근 주민들이 철거 현장에서 기존 작업계획에 누락된 석면 구간이 나온 것을 문제 삼은 겁니다. 결국 철거 공사는 1년 넘게 늦춰지다, 2019년 12월에서야 완료됩니다.    


    그런데 둔촌주공은 공사를 시작하고서도 분양 일정을 계속 잡지 못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 불릴 만큼 일반분양 물량만도 4786가구에 달합니다. 원래라면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선분양해서 사업비를 마련하는데요. 결국 공사가 50%가 진행된 지금에서도 둔촌주공은 분양을 못 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조합이 짓고 나서 분양하는 후분양을 택한 것도 아닙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 2019년 12월 조합은 총회를 거쳐 일반분양가를 3.3㎡당 3550만원으로 산정합니다. 그리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분양 보증을 신청합니다. 투기과열지구인 서울은 고분양가관리지역으로 HUG의 분양 보증을 받기 위해 고분양가 심사부터 받아야 합니다. 당시 HUG는 3.3㎡당 분양가로 2600만원을 이야기했다가 최종적으로 2978만원을 책정합니다. 조합이 원한 분양가보다 평당 약 600만원가량 쌉니다. 조합은 당연히 반발했죠. 둔촌주공은 송파구에 바로 붙어 있는 단지인데 HUG가 시세 비교단지를 강동구 안에서, 거리상으로 보면 더 멀고 오래된 단지를 기준으로 삼아 편파적으로 책정했다는 불만이 마구 터져 나왔습니다.    


    결국 분양가 갈등으로 일반분양은 계속 지연되다, 둔촌주공은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대상 사업지가 됩니다. 분양가상한제는 택지비, 기본형 건축비, 가산비 등을 더해 분양가를 정하는데, 분양가가 인근 시세 대비 70~80% 수준으로 책정됩니다. 조합에서는 땅값이 계속 오르는 만큼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분양가가 정해지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본 것이죠.  


    둔촌주공은 지난 3월 분양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합이 산정한 택지비에 대해 한국부동산원이 재검토하겠다고 나서면서 여전히 분양가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멈춰섰다

  • 뉴스1

    지난 4월 15일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공정률 52%로, 반쯤 지어지다 만 건물 곳곳에는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공사비 5586억원 증액을 둘러싸고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의 갈등이 극한으로 대립한 결과입니다.  2020년 6월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공사비를 2조6708억원에서 3조2294억원으로 늘리기로 계약했습니다. 물가가 오른 데다가 처음 계약 때보다 가구 수(1만1106가구→1만2032가구)가 늘어나고 상가 건물이 추가되는 등 공사비가 늘어나게 된 것 주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2개월 뒤 이 계약을 체결한 조합장이 해임됐고, 지난해 5월 새로 출범한 집행부는 이전 조합장과 시공사업단이 맺은 계약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무효라고 맞섭니다. 반년 넘게 갈등이 지속하자 시공사업단은 지난 2월 두 달 뒤에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예고했고, 결국 건설 장비와 인력을 철수해버렸습니다.  


    시공사업단은 지금껏 자체 조달해 투입한 공사비만 1조7000억원이고, 더는 ‘외상공사’를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공사비 증액 계약이 당시 조합 총회 의결을 통해 맺어졌고, 관할 구청의 인가까지 받았으니 문제없다는 입장이죠.  

  • 조합의 입장은 강경했습니다. 소송전부터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새 조합 집행부는 해당 계약이 이전 집행부의 잘못이라며 3월 증액 계약 무효 확인 소송을 걸었습니다. 또 공사가 중단되기 이틀 전, 조합은 대의원회를 열고 ‘조건부 계약해지 안건 총회상정안’을 통과시킵니다. 시공사업단이 열흘 이상 공사를 중단하면 별도 대의원회 없이 이사회 의결로 총회를 열어 계약해지 안건을 상정하겠다는 내용을 담았죠. 시공사를 해고하겠다는 것입니다. 외상 공사비 등 비용 문제는 분양만 하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인 거죠.  

    뉴스1 


  • 뉴스1

    둔촌주공의 일정이 꼬일수록, 정부 입장에서는 공급 물량이 아쉬운 상황입니다. 서울시의 민간아파트 분양 물량이 연 4만 가구 수준이라고 할 때, 둔촌주공 물량만으로 30%가 채워집니다. 공사가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내년 8월이면 입주했을 텐데, 이대로 가다가는 2024년 입주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서울시도 중재안을 냈습니다.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기존 계약의 유ㆍ무효를 더 논하지 않고 증액된 공사비에 대해 한국부동산원의 검증을 받아 계약을 변경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또 조합이 요구하는 마감재 고급화와 도급제 변경 요구를 수용하고 30일 안에 공사를 재개할 것을 시공단에 권고했습니다. 조합은 서울시의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시공사업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앞서 조합이 법원에 낸 ‘공사도급변경 계약 무효확인’ 소송과 공사계약변경을 의결한 총회 결정을 먼저 취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국토부와 서울시는 조합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전·현직 조합이 사전총회 의결 없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해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45조를 위반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는 조합의 소명을 듣고 검토를 거친 뒤 도정법 위반 혐의를 발견하면 관련 행정 조치를 내릴 예정입니다. 도정법 45조를 위반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합 임원이 도정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퇴임 사유가 됩니다.  

극단으로 치닫는 현장

  • 지난 5월 말 공사가 중단된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일부 구간에서 타워크레인 해체를 위한 사전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당초 시공사업단은 대여 기간이 끝나는 6월부터 타워크레인을 해체하기로 잠정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타워크레인을 제공한 한 협력업체가 어차피 공사가 중단된 만큼 장비를 철거해 다른 현장에 투입하기 위해 밑 작업을 시작한 거죠.    


    뉴스1 


    둔촌주공 현장에 설치된 타워크레인은 총 57대입니다. 모두 해체하려면 두세달 가량 걸리고, 해체한 타워크레인을 다시 설치하려면 수개월이 걸립니다. 그래서 타워크레인의 해체는 그야말로 공사가 장기간 파행됨을 상징합니다. 다행히 조합이 서울시의 중재안을 전격 수용한다며 한 발짝 물러섬에 따라, 시공사업단도 타워크레인 해체를 7월로 연기하겠다고 화답한 상태입니다.  

  • 연합뉴스


    그런데 문제는 돈입니다. 둔촌주공 조합은 현재 NH농협은행 등 17개 금융기관 및 PF로부터 7000억원가량의 사업비 대출을 받았습니다. 시공사업단이 관련 연대보증을 섰죠. 시공사업단은 8월 만기인 사업비 대출금 관련 보증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사태를 지켜보던 대주단은 대출액에 대한 만기 연장이 불가능하다고 조합에 통보했습니다. 이에 따라 둔촌주공 조합원은 8월까지 1인당 1억원이 넘는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공사중단으로 인한 손실액도 하루하루 쌓여가는 상황에서 조합원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조합 내부 갈등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8일 기존 집행부에 반발하는 조합원 모임인 ‘둔촌주공 조합 정상화 위원회(정상위)’는 현 조합 집행부에 대한 해임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힙니다. 시공사업단과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켜 공사가 중단됐고 장기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겁니다.  

    뉴스1 


    그렇다고 바로 집행부를 해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합장 및 임원 해임 안건을 발의하려면 전체 조합원 10분의 1의 동의를 얻어야 총회가 소집됩니다. 총회에서는 조합원 6123명 중 과반수가 참석해 이 중 절반 이상이 찬성해야 합니다. 정상위는 현 조합 집행부 교체를 위한 '해임 총회'를 오는 8월 안에 소집할 계획입니다. 또 정상위는 앞서 국토부와 서울시 실태조사를 근거로 둔촌주공 조합장을 포함한 집행부 10여명을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 트리마제. 중앙포토

    극단으로 치닫는 둔촌주공 사태를 놓고서 '제2의 트리마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서울 성수동의 고급아파트인 트리마제는 원래 지역주택조합이던 성수1지역주택조합이 추진한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데다가 시공사 두산중공업과 조합 간에 분담금 등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결국 사업이 지연되면서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조합이 부도났고, 사업부지는 경매에 부쳐졌습니다. 이를 두산중공업이 인수해 트리마제로 완공한 거죠. 조합원들은 사업부지와 분양권리를 박탈당하고, 현금청산을 받았습니다.  


    둔촌주공 조합은 시공사업단과 갈등을 빚으면서 7000억원의 사업비 대출을 갚아야 할 상황에 부닥쳐있습니다. 조합이 사업비를 변제하지 못하면 연대보증을 섰던 시공사업단이 대신 변제를 하고, 이후 구상권을 청구해 사업장이 경매에 부쳐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옵니다. 제2의 트리마제 사태가 되는 거죠.  


    하지만 경매절차는 쉽지 않습니다. 건물이 50% 이상 지어지고 권리관계가 복잡하다 보니 경매에 응찰할 이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만약 시공사업단이 부지를 낙찰받는다 하더라도 재건축 사업을 민간사업으로 바꾸는 등 처음부터 인허가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10년 이상 사업이 미뤄질 수도 있습니다.  

  • 뉴스1

    둔촌주공 사업장이 경매에 넘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달 중으로 나올 서울시의 2차 중재안이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의 마지막 정상화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조합원입니다. 조합이 금융권으로부터 대여하고 있는 이주비 대출 규모가 1조2800억원에 달합니다. 사업비 대출 7000억원 등을 포함해 이래저래 빌린 돈만 2조원이 넘으니, 이자로 나가는 돈만 연간 800억 규모입니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분담금만 억 소리 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공사가 재개될 가능성도 보입니다. 최근 둔촌주공 조합과 시공단은 공사비 증액 및 검증 절차 관련 합의문을 주고받았습니다. 2020년 6월에 체결한 공사비 증액분을 조합이 수용하되 이를 한국부동산원에서 검증하기로 했습니다. 시공단의 공사 중단으로 인한 손실 및 공사 기간 연장에 따른 비용 역시 한국부동산원 검증을 통해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공사 재개 시점은 불투명합니다. 조합과 시공단 간 시각 차이가 있습니다. 조합은 공사 기간 연장 및 공사 중단에 따른 비용 등에 관한 총회 의결을 거친 뒤 공사 재개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시공단은 설계 변경안이 확정돼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설계안 확정 없이 공사를 재개했을 경우 또 다른 설계 변경에 따른 비용 증가 및 공사 기간 변경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