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턴 캐넌(Western Canon)’은 서구 최고 명작들의 목록을 일컫는 말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작품들이다. 수백 권에 달할 수 있는 작품 중에서도 3대 작품은 유대교·그리스도교의 성경과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호메로스의
새 시대를 연 거목들 <26> 호메로스
흔히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서구 문명의 두 원천이라고 이야기한다. 호메로스는 헬레니즘의 원천이다. 호메로스는 원천의 원천인 것이다. 합쳐서 2만8000줄에 달하는
호메로스는 서구 문학, 특히 전쟁 문학, 귀향(歸鄕) 문학의 기원이다.
호메로스 작품에는 모든 게 있다. 폭력, 복수, 우정, 불륜…. 노골적인 성애 장면은 없지만 팽팽한 성적인 긴장감이 있고 섬세한 인물 묘사가 있다. 남녀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흐름도 현대의 주말 연속극 못지않게 포착했다. 영원한 젊음과 생명을 약속하는 미인을 뿌리치고 조강지처와 아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향하는 영웅도 있다.
고대·중세·현대 아우른 애독서 남겨
인도를 제외하고 당시 고대 세계의 서양과 동양 전체를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에게
고대 그리스도 교회의 교부들인 성 히에로니무스(?347~?419)와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내용상으로 너무나 훌륭한 호메로스의 작품들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혹시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많이 어긋나기도 하는 호메로스의 작품이 살아남은 이유는 오로지 그 작품성을 사랑한 민(民)과 지식인들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도 호메로스는 대히트였다. 중세 바그다드의 학자들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현대 세계에서 호메로스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트로이’(2004년)는 2억 달러 제작비를 들여 5억 달러를 벌었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7, 8세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 시인이다. 그러나 그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회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호메로스에 대한 전기 10편은 모두 위작일 가능성이 크다. 고대 문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가 맹인이었다고 주장한다. 원래 안과 질환이 있었는데 여행 중 실명한 것으로 그려진다. 한 가지 더, 비교적 확실한 것은 호메로스가 사용한 말이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어였다는 것이다. 플라톤이나 신약성경의 그리스어와도 다른 말이다.
호메로스는 ‘인질(hostage)’이라는 뜻이다. 태어난 곳은 알 수 없다. 많은 도시가 자기네가 호메로스의 고향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그가 바빌로니아 사람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호메로스는 소아시아 서해안에 있는 스미르나(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출신도 알 수 없다. 미천한 집안의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로마 오현제(五賢帝) 중 하나인 하드리아누스 황제(76~138)는 호메로스가 오디세우스의 손자라고 믿었다.
젊었을 때 호메로스는 지중해 지방 여러 곳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그는 에게해에 있는 이오스 섬에서 사망했다. 자신이 지었다는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여기 거룩한 호메로스의 머리를 흙이 덮고 있다. 그는 영웅들을 찬양한 사람이었다.”
모든 떠돌이 시인의 아버지
그의 직업은 음유시인(吟遊詩人)이었다. 이곳저곳 유력자들이나 잔치를 찾아 떠돌아 다니며 수금(竪琴·lyre)에 맞춰 시를 낭독했다. 호메로스는 중세 유럽에 나타난 남프랑스의 트루바두르, 북프랑스의 트루베르, 독일의 미네젱거의 대선배다. 서양 문학사에서 음유시인이라는 직종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셰익스피어(1564~1616)는 ‘에이번의 음유시인(The Bard of Avon)’이라 불렸다.
음유시인은 고달픈 직업이었다. 사실상 걸인에 가까웠다. 후세 사람들은 호메로스를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그의 삶도 ‘풍족’하게 만들어줬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호메로스가 시인학교 교장이 됐으며 수많은 도시들이 앞다퉈 그에게 명예시민권을 줬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기원전 65~8)는 그의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냐, 셰익스피어가 셰익스피어 작품들의 작가가 맞느냐 하는 논란과 닮은꼴의 논란이다. 지루한 싸움에 지친 영국 작가 모리스 베어링(1874~1945)은 이렇게 말했다. “
호메로스가 실존 인물이라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편집과 창작의 천재였다는 것이다. 그는 수백 년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음유시인들의 ‘작품’을 집대성해 통일성을 부여하고 자신의 창작을 덧붙였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유물들이 알려주는 8세기 그리스 문화와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호메로스는 패권 경쟁과 밀접하다. 로마가
국제어로서 프랑스어가 영어에 밀리게 된 것도 호메로스를 둘러싼 치열한 ‘번역 전쟁’에서 밀린 결과다. 프랑스어로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