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발길 닿지 않는 민통선 안에…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콩이 자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8면

잘 익은 콩알이 깍지 속에서 수줍게 모습을 보여주었다. 추수한 지 사흘 정도 되는 콩으로 아직은 덜 말라 촉촉한 느낌이 꽤 남아 있다. 생명의 기운을 한껏 모아 이제 긴 겨울잠을 청하는 탱탱한 씨앗은, 어느 것이든 아름답다

분단 전엔 12개 면 거느렸던 장단군

나에게 장단은 각별한 기억이 있는 지명이다. 할머니가 늘 얘기했기 때문이다. “멀지도 않아. 금방이야. 기차 타고 문산 지나면 금방 장단, 그리고 나면 바로 개성이야.”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의 고향은 개성 아래쪽, 개풍군 임한면(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붙은 지명이다)이다. 38선 이남인 개성은 전쟁을 겪으며 휴전선 이북의 북한 땅이 되었다.

분단 전만 해도 장단군은 12개 면을 거느린 꽤 큰 군이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장단군이 반 도막이 나자 남한에서는 행정구역상 장단군을 없애고, 장단면을 비롯해 남아 있는 4개 면을 파주와 연천으로 배속시켰다. 장단면이란 이름은 겨우 남았으나 사람이 거주하지 못했으니, 대한민국 국민 머릿속에서 장단이란 지명은 거의 사라졌다. 이 지명을 되살려 놓은 것이 바로 ‘장단 콩’이다. 파주와 문산 지역에는 장단 콩을 내세운 두부·비지·콩국수·청국장 등 콩 요리 음식점들이 성업 중이며, 11월 16일에 시작하는 파주장단콩축제는 올해로 18회째를 맞는 성공적인 축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어디인들 콩 농사를 짓지 않는 지역이 있으랴. 장 담그고 콩나물 키워 먹는 콩은 쌀과 보리와 더불어 어느 농가이든 키우는 기본 품목이다. 그런데 장단 콩은 왜 특별히 유명할까.

육안으로는 햇콩인지 묵은 콩인지 구별되지 않지만, 11월에 콩을 씹어보면 건조된 정도로 햇 것과 묵은 것을 바로 구별할 수 있다. 수입 콩은 모두 묵은 콩이니, 11월에 햇콩을 사는 것이 국산 콩을 사는 비법이다.

장단 콩 이야기를 듣기 위해 경기도 파주 군내면 백연리 이장이자 통일촌 콩영농조합법인 이완배(60) 대표를 만났다. 그의 콩밭에서 만나는 길은 가까우면서도 먼 길이었다. 그의 집과 밭은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와 임진각에서 만나 그와 동행하는 방식으로 민통선 안의 군내면 통일촌으로 들어갔다.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고 군인들만 조금씩 오가는 그곳, 싸늘한 가을 벌판은 유난히 고적했다. 논은 추수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콩밭도 추수가 한창이었다. 서리 내린 후에야 추수를 하는 서리태(속살이 연두색인 검은콩) 밭만 군데군데 푸른빛을 남겨두고 있었다.

통일촌이라 불리는 민통선 안의 마을에는 모두 40가구가 살고 있다. 이 대표는 1974년 정부 정책으로 처음 이곳에 마을을 건립할 때부터 들어와 농사지으며 살았다. 전쟁 통에 부모가 이곳에서 쫓겨나올 때 그는 어머니 뱃속에 있었는데, 20년 만에 되돌아간 것이었다. 콩밭 가는 길에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군부대 자리가 우리 집이었대요.”

추수가 한창인 콩밭에 도달해서야 그는 장단 콩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장단 콩은 1990년대에 유명해진 거예요.” 즉 대대로 이 지역에서 콩 농사 지어온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1913년 우리나라의 최초의 보급 콩 종자로 지정된 장단백목이 이 지역의 콩이니 이곳이 콩 농사를 많이 짓던 곳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은 물론 부모도 콩을 주로 생산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특히 1980년대만 해도 콩은 값이 무척 싸서 수지를 맞출 수 없었다. 그러다 90년대부터 콩 농사를 지어보니 기후와 토질이 콩 농사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콩의 질이 좋고 생산량도 흡족했다. 하지만 여전히 판로가 마땅치 않았는데,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콩 축제였다. 97년 제1회 장단콩축제를 열었는데 대성공이었다. 90년대에 들어서 건강식품으로 콩이 부각되었고, 중국산 콩이 아닌 국산 콩을 믿고 사고 싶어 하는 욕구도 한껏 커졌을 때였다. 게다가 바로 이 시기가 각 지역에서 축제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였다. 게다가 이곳이 어딘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민통선 안이고, 분단으로 아련하게 잊혀져 간 이름 ‘장단’을 다시 끄집어낸 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90년대 초 노태우 대통령 임기 말년에 남북합의서가 체결되고 난 몇 년 후였고, 김일성 주석 사후에 남북관계 경색에도 불구하고 민간의 남북교류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을 때였다. 비무장지대에 대한 호기심,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라는 인식 등이 맞물려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첫 해 콩 축제에 무려 5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민통선 안의 것이라면 돌멩이를 내놔도 사가겠다는 열기였어요.” 축제가 성공하자 콩 생산 농가가 늘었고, 이제 콩은 이 지역의 대표 농산물 중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물 잘 빠지고 일교차 크니 최적 조건

콩 추수가 한창이다. 콩은 파종과 김매기, 탈곡을 모두 기계로 하지만, 추수만은 사람 손으로 한다. “요기 가까운, 저 강 건너” 마을에 산다는 아주머니들의 말 속에 가깝고도 먼 비무장지대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좀 싱거웠다. 역사적 기록은 있으나 이미 끊어진 전통이었고, 축제를 통해 장단 콩 브랜드 가치가 다시 만들어졌다니 말이다. 이 지역의 콩을 유명하게 만든 판매전술로는 흥미 있는 이야기였지만, 그게 콩의 질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물어봤다. 정말 이 동네 콩이 맛있는지, 정말 맛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우선 배수가 잘 되는 토질에 무엇보다도 여름의 일교차가 크다. 콩이 잘 되기에 적합한 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콩의 육질이 단단하고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강하다는 것이다. 하긴 아무리 민통선이니 전통이니 해도 콩이 맛이 없다면 이렇게 계속 승승장구하기는 힘들다. 특히 축제에 몰려와 콩을 사가는 사람들은 주로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들, 평생 부엌살림에 닳고 닳은 베테랑들이다. 그런 아주머니들이 축제 때만 되면 배낭과 운동화로 준비 단단히 하고 아침 일찍 버스 대절해 찾아온다. 오후에 오면 자칫 콩이 다 떨어질 수도 있으니 일찍 가서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기후가 나빠 전국적으로 서리태가 유례없는 흉작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머니들이 더 극성이었다. 하루 판매 물량으로 내놓은 서리태가 오전이면 동이 나버렸단다.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벤트로 바람몰이 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터이다.

그래도 궁금증은 남았다. 일교차로만 말한다면 중국 북쪽 평야에서 흔하디 흔하게 나는 콩은 더 품질이 좋을 것 아니겠는가. “옳은 말이에요. 만주, 지금 연변, 길림 지역이지요. 거기 가보면 콩 농사 많이 짓고, 콩 질도 좋아요. 하지만 국산 콩으로는 이곳이 가장 콩 키우기 적합한 곳이에요. 남한에서는 최북단의 평야지대잖아요.”

씹어보면 덜 딱딱한 게 햇콩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났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모두 질이 나쁜 것은 아닌데, 단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것이 주로 싸고 질 낮은 것들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게다가 수입되는 중국산 콩은 대개 묵은 콩이다. 엄마가 해마다 1년 먹을 콩을 꼭 11월 중순에 한꺼번에 사두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밥에 두어 먹을 서리태 몇 되와 메주 쑤고 콩국수 해먹을 흰콩(백태) 두어 말은 있어야 한 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엄마에게는 중국산과 국산 콩을 구별하는 비법이 있었다. 반드시 11월 중순에 구입하며, 살 때에는 콩을 씹어보고 고르는 것이다. 완전히 건조되어 딱딱한 것은 중국산이거나 묵은 콩이다. 추수 직후인 11월에는 잘 말려서 육안으로는 거의 구별할 수 없다 하더라도 콩알에 수분 함량이 높고 덜 딱딱하다. 그래서 씹었을 때 덜 딱딱한 것이 햇콩이고 그것은 모두 국산 콩이라 믿어도 된다. 이듬해 봄이 되면 햇콩도 다 말라 딱딱해져서 중국산 묵은 콩과 국산을 구별하기 힘드니 콩은 반드시 11월에 사라는 것이 엄마의 충고였다.

통일촌에는 그곳의 콩을 재료로 한 두부·청국장·된장 등을 만들어 파는 소규모 공장이 있었다. 거기에서 만든 두부와 갓 추수한 흰콩 한 되를 들고 집에 돌아와 맛을 보았다. 흰콩을 불려 믹서에 간 다음, 김치와 약간의 고기를 넣고 비짓국을 끓였다. 비지는 콩물을 뺀 비지보다 이렇게 집에서 직접 갈아 끓이는 것이 훨씬 맛있다. 섬세한 콩 맛을 보기 위해 새우젓으로 간을 하지 않고 일부러 조선간장을 넣어 깨끗하게 끓였다. 와, 이 신선한 비지 맛! 이거 얼마만인가 싶다. 콩 특유의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참 좋다. 그래도 이건 워낙 신선한 햇콩이어서 그럴 수 있다고 한 번 더 의심을 해본다. 그럼 지난해 콩으로 만들었다는 두부는 어떨까. 사온 두부를 따끈하게 데워서 양념간장과 곁들여 한 점 입에 넣었다. 대기업에서 만들어 파는 두부에 비해 질감은 덜 매끄럽다. 비지를 덜 빼고 좀 거칠게 걸렀다는 의미다. 하지만 맛은 월등했다. 특히 두부를 만들어 놓으니 달착지근한 맛이 남다르다는 것이 한 입에 느껴진다. 이건 확실히 콩 자체의 본래 맛에서 좌우되는 것이다.

에라, 초겨울 추위가 으슬으슬 품으로 파고들지만 싱싱한 햇콩 비짓국 맛이 입에서 뱅뱅 도니 파주로 한 번 더 발걸음을 옮겨야겠다.

글=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