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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62> 독일인 셰프 크램플의 오토바이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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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타고 인적이 드문 국도를 달리다보면 혼자만에 감상에 빠지고는 한다. 경기도 하남 미사리조정경기장 근처에서 잠시 포즈를 취했다. 청춘의 우상, 제임스 딘이 된 것처럼.

스물두 살 때 고향을 떠나 타지를 전전하며 생활한 나에게 오토바이는 유일한 취미이자 어디든 함께하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2011년 가을. 서울의 호텔로 부임한 뒤 나는 출퇴근용으로 야마하FZ8을 샀다. 교통량이 많은 도심에서 타기에도 무난하고 스피드도 충분히 낼 수 있는 중간급 오토바이였다. 20대 이후 줄곧 중고 오토바이만 타다가 모처럼 산 ‘신상’이라 더 애착이 갔다.

매일 아침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했다. 일터에 도착해 헬멧을 벗고 셰프 복장으로 갈아입으면 마치 최고의 바이커에서 최고의 셰프로 변신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운이 불끈 솟아 그날 하루도 활기차게 일할 수 있었다.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듯한 출퇴근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쯤, 직장 동료와 남한산성에 있는 ‘낙선재’라는 한식당에 가게 됐다. 자동차로 길을 지나다 보니 오토바이를 타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오토바이를 몰고 그 길을 무작정 찾아갔다. 기억을 더듬으며 도심을 빠져나가자 무척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졌다. 바로 경기도 하남이었다. 나는 첫눈에 하남에 반하고 말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서울~하남 구간은 은 한국 바이커들도 애용하는 유명한 라이딩코스였다. 나는 요행으로 그런 길을 우연히 알게 됐던 것이다.

요즘도 나는 거의 매 주말 하남에 간다. 오전 9시 서래마을의 집을 나서 한강을 따라 6번 국도를 탄다. 반나절이면 하남에 도착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과 산, 조용한 시골 풍경이 정겹고도 아름답다. 강물 냄새, 풀 향기, 시골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참 좋다. 독일 고향집 생각이 간절히 날 만큼. 숲이며 언덕, 쭉 뻗은 대로 등 다양한 길을 통과하는 여정이어서 심심하지도 않다.

하남 가는 길에 자주 들르는 카페가 있다. 나는 늘 테라스 자리에 앉아 드립 커피를 마시곤 한다. 열심히 라이딩하고 난 뒤 마시는 커피 한잔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햇살을 받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거나,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이들 사진을 꺼내보기도 한다. 큰아들이 올해 일곱 살, 둘째는 한 살이다. 이런 평화로운 휴식이 있는 하남 라이딩은 일주일간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상이며, 재충전이다.

하남 어디쯤에서 멋진 풍경을 만났다. 정확한 위치는 알 길이 없었지만 한참 동안 그 정취에 빠져있었다.

한국은 라이딩하기 좋은 길이 참 많다. 서울에서 강원도 평창으로 가는 길이 특히 멋지다. 6번 국도를 쭉 따라 하남을 지나면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횡성을 지나 평창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나온다. 그중에서도 횡성과 평창 사이의 길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감동적이다. 온몸으로 피톤치드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횡성이나 평창에 가면 꼭 한우를 먹는다. 셰프라는 직업상 식재료와 원산지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런 점에서 횡성 한우는 지역에서 철저히 관리해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한우를 먹으며 우리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원산지가 분명한 식재료를 보다 많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 생각하긴 힘들다. 즉석에서 숯불을 달궈 구운 고기가 입안에서 살살 녹을 때면 ‘사고회로’가 멈추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분위기 또한 특별하다. 나는 야외 자리가 있는 한국 고깃집을 정말로 사랑한다. 횡성에서나, 서울에서나.

요즘은 페이스북 오토바이 동호회 ROK RIDERS(facebook.com/groups/rokriders)에서 라이딩 정보를 얻는다. 한국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적의 바이커가 정보를 교환하는 영문 사이트다. 전국 각지의 라이딩 후기나 오토바이에 대한 문의도 올리고, 각종 용품을 사고팔기도 한다. 나 역시 틈날 때마다 접속해 오토바이나 괜찮은 라이딩 코스에 대한 힌트를 얻곤 한다.

지금 내 최대의 목표는 오토바이를 타고 부산에 가는 것이다. 부산을 거쳐 배로 제주도에 가서 섬 일주를 하는 게 꿈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차근차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조만간 꼭 도전할 작정이다. 하루하루, 가슴이 설렌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기획

안드레아스 크램플(Andreas Krampl)

1973년 독일 뵈블링겐 출생. 93년 독일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회핑언’에서 요리를 시작해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하인츠 빙클러’를 거쳐 이스라엘·노르웨이·자메이카·인도·두바이·중국 등 19년간 전 세계 호텔을 누비며 경력을 쌓았다. 2005년 총주방장으로 임명됐고 2010년 리츠칼튼 베이징과 JW 메리어트 베이징의 총주방장을 동시에 겸임했다. 2011년 10월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의 총주방장으로 취임해 호텔 내 모든 레스토랑을 지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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