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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인류는, 무모했으나 위대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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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나크 신전 제1탑문을 지나면 약 23m 높이의 커다란 원형 기둥이 즐비하다. 100m 공간에 16열로 134개의 기둥이 들어서 있다. 각 기둥마다 파라오의 이름과 행적이 상형문자와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수천년 전 사막 한복판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을까. 기둥을 지나는 관광객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사진 이집트관광청 서울사무소]

하늘로 치솟은 오벨리스크, 넙죽 엎드린 거대한 스핑크스, 돌기둥으로 이어진 웅장한 신전….

200여년 전 이 땅을 밟은 프랑스의 정복자 나폴레옹은 그 화려함과 신비로움에 넋을 잃었다. 뒤를 따르던 병사들도 걸음을 멈추고 탄성을 질렀다. 이집트의 룩소르(Luxor). 이 도시가 럭셔리(Luxury·명품, 사치품)의 어원이 됐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초의 여성파라오 핫셉수트의 사원부터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카르나크 신전까지. 이집트를 분주히 돌아다녀야 만날 귀중한 유적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일종의 고대문명 종합세트인 셈이다.

룩소르는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60㎞ 떨어진 나일강 상류에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테베’라 불리며 멤피스에 이어 이집트 신왕조의 수도 역할을 한 도시다.

수많은 그리스 신화의 무대가 됐던 신비로운 땅. 이집트가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살아있는 파라오’로 추앙받으며 30년간 철권통치를 했던 호스니 무바라크가 지난해 2월 물러났다. 자유와 인권에 목말라한 시민들의 쾌거였다.

그러나 혁명의 과실은 민중들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정치 지도자들은 우왕좌왕했고 시민들의 삶은 달라진 게 없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들도 생겨났다. 수도 카이로에선 한두 차례 심각한 유혈충돌도 있었다. ‘아랍의 봄’ 이후 우리 정부가 이집트를 ‘여행자제’ 권고 지역으로 묶어놓은 이유다. 최근 정부는 시나이 반도(여행 제한)를 제외한 이집트 대부분 지역을 중국·스페인·필리핀 등과 같은 ‘여행 유의’ 단계로 하향 조정했다.

이집트관광청 한국사무소 안영주 소장은 “요즘 현지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이집트는 편안하고 안전하게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집트는 다른 이슬람 국가와 달리 개방적이고 자유롭다. 젊은 여성들은 히잡이나 스카프를 두르지 않고 거리를 활보한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소녀, 스키니진을 입은 여대생도 많다. 차가운 초겨울 바람이 마음까지 파고드는 지금, 시원한 그늘이 있는 이집트의 뜨거운 햇살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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