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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전공자들 모여 고전 토론 … 사랑방 분위기 물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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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순천향대 CEO 강의실에서 솔 인문학 포럼 회원들이 독서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모임 ‘솔 인문학 포럼’이 2년째 꾸준히 활동 해오고 있다. 지난 달 23일 오후 7시. 천안상공회의소 6층에 있는 순천향대 CEO과정 강의실에서는 김종철(46)씨의 기타 반주에 맞춰 양희은의 ‘한 사람’이 잔잔하게 흘러 나왔다. 사회자 한성희(65)씨를 포함한 25명의 참가자는 조용히 노래를 부르며 서로 눈인사를 나눈 뒤 독서토론을 시작했다.

솔 인문학 포럼은 지난 2010년 7월에 논의돼 천안·아산 지역에서 인문 고전 독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조직한 모임이다. 지난해 2월 제1회 모임 때 마이클 셀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매달 네 번째 화요일마다 모여 독서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회원들은 미리 정해진 책을 읽고 발제자가 먼저 책 소개를 한 후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자유 토론을 하게 된다.

그동안 읽어 온 책은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등 20여 권에 이른다. 모두 한 번쯤은 들어보았지만 읽을 엄두는 잘 나지 않는 책들이다. 단순하게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 인문학 강좌가 아니라 회원들 스스로 고전을 읽고 발제를 하며 자발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40명이 넘는 회원들은 교수·목사·교사·문화해설사·변호사 등 그 직업군도 다양하다.

솔 인문학 포럼의 21번째 모임이었던 이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로 토론이 시작됐다. 3권의 책으로 무려 1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발제자인 박필순(46·여)씨가 한 달 동안 준비했다는 발제문을 읽으며 작가와 줄거리를 설명하자 회원들은 한 명씩 순서대로 책을 읽고 느낀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종교적인 고찰에서부터 현실과 연계해 비교도 하고 여러 가지 질문이 오가는 진지한 토론은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처음에는 한 달에 두 권의 책을 읽기로 하고 두 번의 정기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새벽 시간에 하는 모임은 책 이야기 외에도 소통할 시간이 모자라 저녁 모임으로 국한하게 됐다.

회원 간에는 친목관계가 좋아 서로 책을 나누고 기증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은 어느덧 20회를 넘었고, 그간의 자료를 정리해 ‘인문학 향연으로의 초대’라는 책을 묶어내기에 이르렀다.

아내와 함께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남매를 데리고 처음으로 참여했다는 양호성(42)씨는 “평소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참여하게 됐다”며 “책을 깊이 읽지 않고서는 참석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어려운 책에서 보편적인 주제를 이끌어내는 토론에 의외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인문학을 공부하며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혔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솔 인문학 포럼의 상임 대표를 맡고 있는 박종선(53) 대표는 “ 매회 20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는 ‘진정한 인문학 모임’이라 자부한다”며 “전반적인 문학·사회·철학 분야에만 치우쳐 토론하는 모임이 아니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인문학 정신의 폭넓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같은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이어 “솔 인문학 포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학자들이 모여 심각하게 토론하거나 지식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여러 생각을 공유하는 모임”이라며 “책을 읽고 난 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작은 용기만 가진 분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홍정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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