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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황제시대보다 심한 암투…韓이 더 제왕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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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일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장쩌민 전 국가주석(왼쪽)이 원자바오 총리를 쳐다보고 있다. [베이징 AP=연합뉴스]

“중국공산당 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중국에서 봉건 황제시대보다 더한 내부 권력 암투가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정치인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다. 뉴욕타임스가 원 총리 일가의 3조원대 재산을 폭로하면서 위선적인 면모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국 근현대사 전문가인 김명호(62) 성공회대 교수는 8일 개막한 18차 당대회를 전후한 중국 정치의 내막을 이렇게 읽어냈다. 청말에서 문화대혁명까지 격동기를 그려낸 『중국인 이야기』(한길사)의 저자인 김 교수가 본지에 흥미진진한 중국 정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인터뷰는 6일 서울 서소문 부영 고문실에서 진행했다.

김명호

 -중국 권력 이양기를 어떻게 보고 있나.

 “1989년엔 리펑(李鵬) 총리가 총 맞았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며칠 뒤 천안문(天安門)광장에 나타나 건재를 과시해야 했다. 그해 상하이에 있던 장쩌민(江澤民)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다음 날 베이징에 나타나 총서기가 됐다. 상상도 못할 일이 많았다. 나중에 장쩌민은 지인에게 ‘(내가 어떻게 총서기가 됐는지는) 나도 모른다’고 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도 9월 초 2주일간 잠적해 세계적 주목을 받는 효과를 봤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데.

 “권력 암투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내부에선 봉건 황제시대보다 더하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중국은 누가 지도자가 될지 앞일이 훤히 보이는데 한국 대선판도는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가장 극적인 장면이나 인물은.

 “보시라이(薄熙來) 낙마사건은 코미디 수준이었다. 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제2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이미지에 먹칠을 한 정치인은 원자바오다. 베이징의 둥자오민샹(東郊民巷) 거리에 으리으리한 옛 프랑스대사관 건물이 있다. 화궈펑(華國鋒) 전 주석이 살던 곳인데, 여기에 원자바오 일가가 산다는 소문도 있다. ‘서민 총리’ 이미지를 만들려고 잠바 입고 운동화 신고 다녔지만 일국의 총리가 해진 잠바 입을 필요가 있나. 쇼가 끝난 셈이다.”

 -누가 비수를 꽂았나.

 “전통적으로 중국의 권력 교체기에 장막 속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사건을 닮았다. 원 총리는 보시라이 사건에서 보듯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대신해 손에 피를 묻히며 처리한 일이 많았다. 아직 실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원의 이미지가 실추되면서 상대적으로 후가 살아나는 효과를 봤다.”

 -후 주석은 얼마나 실권을 행사했나.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최고권력을 행사했다. 굉장히 제왕적이고 21세기의 진짜 황제 같았다.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는 후계자 자리를 시진핑 부주석에게 밀렸다. 후는 황태자로 낙점받은 뒤 10년간 버텼고 10년간 황제로서 중국을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려놨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후 주석은 조지 W 부시 등 전 세계 수십 명의 국가원수를 한 줄로 세워놓고 황제처럼 알현을 받았다.”

 -시진핑은 어떻게 최고지도자가 됐나.

 “공산당에 등 돌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가장 적임자란 평가를 원로들이 했을 것이다. 장쩌민은 천안문 사태 와중에 상하이의 질서를 다잡았고, 후진타오는 철모 쓰고 티베트 시위를 진압해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천안문 시위 때 ‘중국에선 100만 명도 소수’라며 유혈진압 했다. 중국 지도자는 위기상황에서 잔인한 결단력을 보여야 하는 셈이다. 정치인이 순수하다는 것이 단점은 아니지만 장점으로 내세울 것도 아니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실현할 수 있느냐가 최고 덕목이다.”

 -시진핑은 개혁파인가.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을 비롯해 중국에서 개혁가들이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과거와 분명한 선을 그을 용기가 있는지 의문이다. 엄청난 변화는 없을 것이다.”

 -향후 10년의 관전 포인트는.

 “인민에게 얼마나 많은 권력을 부여할지 관심이다. 국민의 요구사항이 너무 많은 것이 큰 부담이다. 토지사유화, 호구 제한 철폐, 국유기업 민영화 등이 숙제다. 개혁·개방 이후 극심해진 빈부격차 때문에 덩샤오핑 시대의 경제성장 제일주의가 정당성을 잃었다. 시장의 룰에 따라 공정·공평을 실현하고 사회 불안요소를 잘 관리해야 평가받을 것이다.”

 -시진핑은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아들인데.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을 지낸 펑더화이(彭德懷)의 최고 참모였다. 후진타오는 남북한을 똑같이 냉정하게 대했지만, 시진핑은 아버지 때부터 북한에 친밀감이 있었다. 한국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인데 별로 낙관적이지 않다.”

 -중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태상왕(장쩌민)과 상왕(후진타오) 체제가 됐다.

 “진시황 없이 한고조가, 수양제 없이 당태종이, 장제스(蔣介石) 없이 마오쩌둥(毛澤東)이 가능했겠나. 그들의 뿌리는 같다. 장쩌민은 후진타오가 안정돼야 했고, 후진타오는 시진핑의 권력이 안정돼야 자기부정을 피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서로 불화하다 공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국 상무위원 숫자의 함의는.

 “중국에선 상무위원 숫자만큼 대통령이 있는 셈이다. 나라가 크다 보니 분야별 황제인 상무위원들이 연합정권처럼 권력을 분점한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한국이 더 제왕적이다. 중국엔 당장 내세울 최고지도자감이 수두룩하다. 한국은 대선 후보 셋이 나왔지만 오죽하면 누가 돼도 상관없다고 하겠나.”

 -국가주석 직선제는 가능할까.

 “서구적인 것이 가장 합리적이란 근거는 없다. 중국은 당분간 지금처럼 갈 것이다. 다당제가 허용되면 정당이 수만 개나 생길 것이다. 청말 민국시대에 다당제를 허용하자 한 사람이 8개 정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공산당의 수명은 얼마나 갈까.

 “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는데, 오래 살 것 같다. 공산당에 필적할 세력이 출현하지 않아서다. 혁명 정당답게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 장기판에 비유하면 위기 때마다 기막힌 한 수를 찾아냈다.”

 -미·중 차기 권력이 동시에 출범하는데.

 “21세기에 하나의 상징적인 기점이라 하겠다. 이제 세계는 미·중이 알아서 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시진핑 시대 10년 동안 중국이 완전한 부국강병을 실현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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