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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채 발견 소백산 여우 배 속엔 소화 덜 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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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방사한 지 일주일 만에 민가의 아궁이에서 죽은 채 발견된 토종 암컷 여우 모습. [연합뉴스]

소백산에서 방사된 지 일주일 만에 민가의 아궁이에서 죽은 채 발견된 토종 암컷 여우의 부검 결과가 8일 나왔다. 추위나 굶주림 때문이 아니냐고 분분하던 사인은 ‘호흡부전’으로 잠정 결론 났다. 국립공원 야생동물의료센터는 아궁이의 재가 여우의 기도를 막아 호흡 곤란에 빠진 것으로 분석했다. 호흡 곤란을 느꼈다면 본능적으로 부엌에서 빠져나왔을 텐데 암여우는 왜 피신하지 않았을까. 연구원들은 여우의 배 부분에서 발견된 내출혈 흔적에서 단서를 찾아냈다. 외부 충격으로 인한 내출혈이 저혈압·쇼크를 일으켜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숨진 여우는 삵과 같은 경쟁종과 다투거나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외부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종복원기술원 권철환(52) 원장은 “충격을 받은 여우가 아궁이를 숨기에 좋은 굴로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우의 배 속에서는 먹이인 쥐가 발견됐다. 굶어 죽은 것은 아니란 의미다.

 아궁이에서 여우가 발견됐다는 보도를 접한 동물애호가들은 여우가 추위 때문에 죽은 게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생후 8개월 된 새끼 여우를 하필이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10월 말에 방사한 게 사인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철운 종복원기술원 중부복원센터장은 “봄에 태어나 가을에 어미 품을 벗어나는 여우의 라이프사이클을 감안한 것”이라며 “몽골 붉은여우의 경우 영하 수십 도에서도 먹이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권철환 원장은 “함께 방사된 수컷은 암컷과 달리 첫 방사지점 1㎞ 범위 안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추위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 여우가 어떻게 방사지점에서 5㎞ 떨어진 고개 너머까지 이동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여우는 방사에 앞서 먹이 채취와 사람을 피하는 요령을 2개월 동안 집중 훈련했다.

 권철환 원장은 “암컷이 너무 일찍 죽어 안타깝다”면서도 “토종 여우를 야생으로 되돌려 놓는 방사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방사된 여우가 야생에서 생존하는 확률은 캐나다 등 외국의 경우 20% 정도에 불과하다. 종복원기술원은 내년에 암수 5쌍을 추가 방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멸종위기 1급인 붉은여우 방사 프로젝트는 지리산 반달가슴곰과 설악산 산양에 이은 백두대간 멸종위기 동물의 세 번째 종복원 사업이다. 종복원기술원은 연간 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020년까지 개체 수를 50마리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연구원들은 방사 이후 여우가 실제 굴을 파고 사는지, 먹이를 어떻게 잡는지, 행동 반경은 얼마나 되는지 등 모든 행동 특성을 수집,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던 토종 여우가 1960~70년대 쥐잡기 운동으로 야생에서 사라졌다고 추정한다. 쥐약 먹은 쥐를 잡아먹고 여우까지 멸종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자연상태로는 2004년 강원도 양구에서 수컷의 사체 한 구가 발견된 게 마지막이다. 현재 동물원 등 국내에 있는 붉은여우는 30마리 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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