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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앞에서 짝짜꿍’납북 작곡가 정순철 노래비 건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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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충북 옥천의 정순철기념사업회 유정현 회장(왼쪽)과 조정아 사무국장이 옥천문화예술회관 앞에 설치된 짝짜꿍 노래비 앞에서 선생의 업적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누구나 기억하는 ‘졸업식 노래’의 한 구절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우리말로 만든 졸업 노래가 없던 때 탄생돼 민족의 마음까지 달래준 노래다. 이 곡의 노랫말을 ‘반달’의 작사가 윤석중(1911~2003) 선생이 붙였다는 것은 어느정도 알려져 있지만 작곡자가 충북 옥천 출신의 정순철(1901~?) 선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순철 선생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9일 옥천에서 열린다. 2008년 옥천지역 문인과 교사들이 정순철기념사업회를 만들면서 시작된 ‘짝짜꿍 동요제’에 맞춰 9일 정순철 노래비가 세워진다. 정순철은 소파 방정환 선생과 함께 어린이 운동을 주도한 대표적 인물이지만 한국전쟁 중 납북됐다.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정지용(1902~50) 시인이 전시 납북된 뒤 한동안 문단에서 잊혀졌던 것과 비슷한 경우다. 정지용의 고향도 충북 옥천이다.

정순철

 옥천군 청산면에서 태어난 정순철은 동학 교주 최시형 선생의 외손자다. 초등학생 무렵 상경한 그는 천도교(동학의 후신)도 친척집에 머물며 손병희 선생의 배려로 보성중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손 선생의 사위인 방정환과 일본 유학을 떠나 음악을 공부한다. 이후 방정환, 손진태, 진장섭, 고한승 등과 ‘색동회’를 만들어 어린이 문화운동을 펼쳤다. 1923년엔 잡지 ‘어린이’를 창간, 창작 동요를 보급했다.

 정순철은 29년 첫 번째 동요집 『갈닙(잎)피리』를 출간했다. 그의 아들 문철씨가 소장하고 있는 갈닙피리 복사본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까치야’ ‘길 잃은 까마귀’ ‘여름비’ ‘봄’ ‘우리 애기 행진곡’ 등 동요 10곡이 실려 있다.

 ‘엄마 압헤서(앞에서) 짝짝꿍’으로 시작하는 우리 애기 행진곡은 윤석중의 시 ‘울든(던) 언니 웃는다’에 곡을 붙인 것으로 후에 ‘짝짜꿍’으로 곡명이 바뀌었다. 일본 유학 후 중앙보육학교(중앙대 전신), 무학여고·성신여고 등에서 음악교사로 일하던 그는 50년 9월 25일 후퇴하던 북한군에 납북됐다. 그 후 그의 행적, 생존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5회째를 맞는 이번 동요제엔 전국 14개 팀이 참가한다. 노래비에는 그의 대표 작, 짝짜꿍 가사와 업적 등이 새겨진다. 기념사업회 유정현 회장은 “동요의 고장 옥천을 알리고, 정지용 선생과 함께 옥천을 대표하는 정순철 선생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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