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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노무현이 구시대의 막내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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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논설실장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구시대의 막내’라 불렀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맏형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새 시대의 건설자’가 아니라 ‘구시대의 파괴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새 시대를 세우기 전에 과거를 부정하고, 부수고, 치워, 터를 마련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곰곰이 돌이켜 보면 파괴자는 노 대통령 이전에도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를 해체했다. ‘군정 종식’을 내건 그는 이것으로 군인들이 집권하던 시대를 완전히 끝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뒤를 이은 노 대통령은 과거의 권위를 깔아뭉개고, 판결과 역사 해석을 뒤집고, 언론의 영향력을 재편했다. 그야말로 파괴자의 막내라 부를 만하다. 그러면 구시대는 언제 끝나는 걸까.

 올 대선에 나선 세 후보는 모두 ‘새 시대’를 외친다. 이제 드디어 구시대를 넘어 새 시대로 넘어가는 걸까. 박근혜 후보는 당 이름까지 ‘새누리’로 바꿨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노 대통령을 패러디해 ‘새 시대의 맏형’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도 ‘새 정치’를 가장 앞에 내세웠다. 이쯤 되면 새로운 대한민국 멋진 미래가 화려하게 그려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투표일을 겨우 40일 정도 남긴 오늘까지도 그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던 김대중 대통령만큼의 정책이나 노무현 대통령 정도의 결단력조차 없다. 그저 이미지와 즉흥적 달콤한 약속들만 난무한다.

 세 후보가 그동안 제기해온 이슈들은 온통 ‘과거’다. 50년 전으로 돌아가 박정희의 행적을 파헤치고, 역시 고인(故人)이 된 노무현의 발언록을 뒤진다. 내놓는 정책이란 것도 구시대의 막내와 판박이다. 문재인 후보는 ‘노빠의 재림’이란 평가마저 듣는다. 안철수 후보의 언행은 ‘구시대’에 대한 비판뿐이다. 미래에, 자신이, 어떻게 하겠다는 건 없다. 박근혜 후보 역시 박정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너무 어려워한다.

 겨우 과거를 벗어난 게 있다면 정치공학적 행보다. 여론조사로 표를 계산하고, 그 표를 흥정하고, 순위를 뒤집는 것이 최대 이슈다. ‘가치 공유’란 멋진 말을 해놓고, 그것이 ‘특정인 집권 저지’란다. 투표 시간 연장 논의에서도 유권자의 권리는 뒷전이다. 다른 방법이나 다음 선거 적용은 관심이 없다. 당장 며칠 뒤 선거에서 이기느냐 마느냐부터 계산한다. 나라의 근본 틀을 바꿀 개헌 문제마저 집권을 위한 보조수단으로 삼고 있다. 미래의 한국을 위한 설계도, 야망도,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는 격변기를 맞고 있다. 미국과 중국, G2가 모두 권력 교체기다. 일본도 조기 총선 가능성이 거론되고, 북한은 김정은 체제를 다지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주도하기는커녕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비전을 보여주는 후보조차 없다. 세계 경제가 최악의 위기에 허덕이고, 한국도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지만 성장과 일자리는 알맹이 없는 구호뿐이다. 대기업 때리기, 규제 강화, 선심성 퍼주기 약속 같은 달콤한 말만 늘어놓는다. ‘금 모으기’ 같이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호소를 기대하기는 애당초 글렀다.

 40~50년이면 바닥날 것이 뻔한 국민연금이 국가가 지급을 책임진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성장은 외면하면서 연금까지 세금으로 메워줄 자신이 있는 걸까. 아니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얹어놓겠다는 배짱일까. 의료비 상한제를 약속하면서 그러려면 건보료를 3배 이상 올려야 한다는 말은 왜 피하는 걸까. 재정 안정을 위해 욕을 먹으면서까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개혁하려 애쓴 노무현 정부보다 뒷걸음질이다. 박근혜 후보도 야당의 선심공약에 끌려 다니기는 마찬가지다.

 ‘작은 감자들의 잔치’라는 자조가 나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대선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의 축제가 아니라 차악(次惡)의 선택으로 전락한 건 비극이다. 지도자에게 비전이 없다면 원로들이라도 꿈을 불어넣어줘야 한다. 그런데 재야원로라는 분들마저 단일화라는 정치공학만 지상과제로 제시한다. 선거가 끝나고 뒤에서 조종하면 된다는 뜻일까. 선거에서 국민의 판단을 구하지 않는 감춰진 ‘국정 구상’이 있다면 더욱 위험하다.

 당내, 혹은 진영 내 후보 경쟁에서는 선명성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파당적 세력끼리 결정하기 때문이다. 후보 확정을 늦추는 게 유감스러운 이유다. 단기간에 쥐어짠다고 큰 그림이 그려지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단일화 이후 남을 한 달 정도라도 국가적 과제를 토론하고,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대선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