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월의 멋진 날 부른 ‘젊은 언니·오빠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합창대회가 끝난 뒤 활짝 웃고 있는 청노실버앙상블합창단. [권혁재 기자]

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제1회 전국실버합창단 경연대회. “네가 있는 세상. 살아 있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연보라색 연주복으로 단장한 청노실버앙상블합창단(이하 청노합창단)이 마지막 노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마치자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단원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등을 두드려줬다. 이갑식(82)·이각종(80)씨는 무대에 내려와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이각종씨는 “옆에 친구(이갑식씨)가 다리가 아파 계속 손을 잡아줬다”고 말했다.

 2년 전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들어진 청노합창단은 충북 대표로 국립합창단이 주최하는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시상식 무대에는 서지 못했다. 하지만 33명의 단원들은 서로에게 전하는 얘기를 노래로 부르고는,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70·80대 노인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헌신하며 꾸려온 합창단이기에 더욱 그랬다.

 올해 초 합창단에 합류한 이영순(76·여)씨는 수백만원하는 피아노를 기부했다. 침샘암으로 6번에 걸쳐 수술을 받은 김영수(75·여)씨는 안면 장애가 있었지만 한 번도 연습을 거른 적이 없다. 김씨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30년 동안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2006년 수술을 한 뒤론 집에서만 지냈다”며 “제대로 발음을 하지 못하는데도 누구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아 고맙다”고 말했다.

 합창단을 기획한 이영미(53·여)씨도 후천적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 이씨는 “청력을 잃기 전 초등학교 때, 마루에 울리는 풍금소리를 가장 좋아했다”며 “어르신들이 부르는 노래가 저한테는 교실의 풍금 같은 아름다운 소리”라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아코디언 강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이씨는 할머니·할아버지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합창단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합창단 지휘는 청주시립합창단의 피규영씨가 해주고 있다. 그 역시 청주시립합창단을 맡기 2년 전 심장수술을 받아 힘든 시기를 보낸 적이 있다.

 창단 2년밖에 안 됐지만 청노합창단의 활동은 기성 합창단 못지 않다. 올 3월 충북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전국프로여자농구대회 오프닝 공연에서 애국가를 불러 ‘젊은’ 관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기획자 이씨는 “전국 무대에 데뷔했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