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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첫 승 … 괴력의 ‘장타소녀’ 장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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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초등학교 6학년 때 300야드를 날렸던 ‘장타 소녀’ 장하나(20·KT)가 프로 데뷔 2년 만에 우승해 화제다. 장하나는 지난 10월 28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KB금융 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장하나는 8년 전인 2004년 11월, 한국을 처음 찾았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7·미국)가 극찬했던 그 소녀다. 당시 우즈 앞에서의 280야드의 드라이브샷을 날렸고, 우즈의 매니지먼트사였던 IMG 관계자들로부터 비용을 댈 테니 미국으로 유학 오라는 권유를 받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자 골프계의 잠룡’으로 불렸던 그는 프로 데뷔 후 호된 성장통을 겪었다. 드라이버 입스(불안감·두려움)로 방황하다가 2년 만에 다시 장타자로 돌아왔다.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검도·수영·스키로 몸 만들어

장하나가 자신의 최고 무기인 드라이버를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프리랜서 석정환]

 1992년생인 장하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01년 골프를 시작했다. 스케이트 선수였던 아버지 장창호(61)씨와 농구 선수였던 어머니 김연숙(61)씨를 닮아 어려서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고 힘 또한 남달랐다고 한다. 아버지 장씨는 300야드 가까이 날리는 장타자였고, 딸에게 클럽을 쥐여주고는 있는 힘껏 치라고 가르쳤다.

 어려서부터 공을 힘껏 때리라는 교육을 받은 장하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장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평균 270야드 정도를 날렸지만 6학년에 올라가던 해 전지훈련지에서 300야드를 날리기도 했다.

 남자아이들과 팔씨름을 해도 지지 않았던 장하나는 라운드도 남자 선수들과 했다. 올 시즌 한국프로골프투어(KGT) 대상을 수상한 이상희(20·호반건설)는 장하나의 단골 파트너였다. 장하나는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일부러 남자 선수들과 겨뤘다”고 말했다. 이상희는 그런 장하나에 대해 “남자애들을 이기려고 기를 쓰고 쳤다. 조금의 차이가 있었을 뿐 매번 남자애들과 거의 비슷하게 드라이브샷을 날렸다”고 기억했다.

 장하나는 사업을 했던 아버지 덕에 비교적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랐고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4년 정도 검도와 수영을 했고 겨울에는 스키를 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는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래서 신장 1m64㎝로 골프 선수치고는 큰 편이 아니지만 여자 선수로는 드물게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다.

 장하나는 “어려서부터 골프를 위한 몸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다. 검도와 수영, 스키도 몸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장하나의 몸은 단단한 돌덩어리 같다. 검도를 해 손목 힘이 좋고 웬만한 성인 남자 못지않은 허벅지에서 가공할 파워가 나온다. 골프전문채널 J골프에서 KLPGA 투어를 해설하는 박원 프로는 “장하나는 온몸이 근육 덩어리다. 파워에 비해 유연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여자 선수로는 파워를 따라갈 자가 없다”고 했다.

 장하나의 여자 선수 같지 않은 파워와 근육은 고기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장하나의 어머니는 20년 넘게 고깃집을 운영하면서 딸의 영양을 책임졌다. 장하나는 그 덕에 골프를 시작한 뒤 매일 고기를 먹었다. 지금도 산지에서 매일 공수하는 싱싱한 고기를 한끼 식사 때 3인분 정도 먹는다. 생고기도 좋아하는데 한 달에 두세 차례 양질의 육회 두 접시(600g 분량)를 가뿐히 비운다고 한다. 장하나는 “야채만 먹는 초식 동물과 고기를 먹는 육식 동물의 파워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드라이브샷 난조로 자신감 잃어

장하나는 아마추어 시절 크고 작은 대회에서 45승을 거뒀다. 300야드가 훌쩍 넘는 파 4 홀에서 1온을 하고, 공식 대회에서 310야드를 기록한 적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04년 프로 대회(한국여자오픈) 최연소 출전 기록을 세웠고, 고 1 때인 2008년 익성배에서는 남녀 통틀어 역대 최저타(15언더파) 기록으로 우승했다. 장하나는 “드라이버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겁 없이 공격적으로 드라이버를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2010년 프로로 전향한 뒤 가장 자신 있었던 드라이버가 골칫거리가 됐다. 2010년 2부 투어에서 활동한 그는 드라이브샷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15개 대회에서 상금랭킹 8위.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낸 장하나는 “2부 투어는 도그레그 홀로 구겨진 코스가 많다. 잘 맞은 드라이브샷이 OB가 나면서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드라이브샷 난조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장하나는 지난해 정규 투어 19개 대회에서 세 차례밖에 톱10에 들지 못했고 상금랭킹 32위에 머물렀다. 한 대회마다 평균 2~3개의 OB를 냈고, 한화금융 네트워크클래식에서는 마지막 날에만 무려 7개의 OB를 기록하기도 했다. 장하나는 “스코어를 잘 내기 위해 똑바로 치려다 보니 거리가 줄었고 드라이버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잃었다.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어떻게 어드레스를 해야 할지 걱정됐다”고 말했다.

 올 시즌 상반기는 최악이었다. 장하나는 상반기 6개 대회에서 다섯 차례나 컷 탈락했다. 드라이브샷 비거리가 확 줄면서 200야드를 간신히 넘길 때도 많았다. 억지로 스윙을 하려고 하면서 스윙은 점점 망가졌고, 드라이버 입스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체중 15㎏ 늘리며 장타 되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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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기술에 비해 심리가 약하다고 평가한다. 심리적인 기복이 심해 성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장하나는 전반기 시즌을 마친 뒤 멘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태릉선수촌에서 근무하는 김병현 박사를 찾아가 양궁·사격 선수들과 함께 심리훈련을 받았다. 양궁과 사격은 침착함과 순간적인 집중이 중요하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장하나는 “너무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으며 골프를 쉽게 생각했다. 거만해졌었고 감당하기 힘든 풍파도 겪었다”며 “그 전의 나는 무서운 게 없었지만 요즘은 생각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스윙에도 변화를 줬다. 옛 스승인 김창민 프로를 찾아간 장하나는 예전의 스윙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좋아졌다. 파워가 좋고 스윙 스피드가 웬만한 남자 골퍼만큼 나오는 장하나는 전형적인 히터형 스윙을 한다. 어드레스 때 하체 쪽에 무게중심을 둔 뒤 백스윙과 다운스윙 때 단단한 하체로 리드해 파워를 내고 자신 있게 클럽을 휘둘러준다. 김창민 프로의 지도를 받은 장하나는 오버스윙을 줄이고 중심축을 더 꼬아주는 스윙으로 교정했다. 스윙을 만들어 치지 않고 오른손을 많이 써 세게 휘둘러주는 장타 본능도 되찾았다. 김창민 프로는 “프로가 된 장하나는 살을 10㎏이나 빼고 자신의 캐릭터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체중을 15㎏ 늘리고 장타자의 캐릭터를 찾도록 했다”고 말했다.

 
퍼팅 정교함 기르는 게 숙제

 멘털과 스윙에 변화를 준 장하나는 하반기 다섯 번째 대회인 한화 금융네트워크 클래식에서 시즌 첫 톱10에 들었다. 러시앤캐시채리티 클래식 4위,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3위에 올랐고 KB금융 스타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장하나는 “장타를 날리고 100야드 이내의 웨지샷으로 붙여 버디 기회를 만들면서 골프가 쉬워졌다”며 “부진 이전에 비해 드라이브샷이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올 시즌 장하나의 KLPGA 투어 드라이브샷 공식 기록은 253.38야드로 15위다. 하지만 장하나는 “공식 기록은 대부분 드라이버가 아닌 페어웨이 우드를 잡았을 때 측정된 것”이라며 “기록보다 평균 20야드는 더 날린다. 제대로 잰다면 나보다 더 거리가 나가는 선수는 없다”고 말했다. 장하나는 KB금융 스타 챔피언십에서 드라이브샷 평균 277야드로 전체 1위에 올랐다.

 장하나의 롤 모델은 존 댈리(46·미국)와 수잔 페테르센(31·노르웨이)이다. 장타에 쇼맨십을 겸비한 댈리와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페테르센처럼 되고 싶어 한다. 장하나는 “골프는 장타를 치고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라며 “장타자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건 큰 축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장하나는 비거리를 더 늘리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최장타자로 꼽히는 더스틴 존슨과 겨뤄보고 싶다”며 “얼마나 차이가 나고 어떻게 하면 더 장타를 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코치인 김창민 프로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장하나는 마음먹으면 300야드는 거뜬히 날릴 수 있지만 비거리는 지금도 충분하다. 미국 투어에서 뛰는 선수들과 맞서려면 100야드 이내의 샷과 어프로치, 퍼팅의 정교함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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