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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서울역·명동성당·배재학당, 근대는 살아 숨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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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국 철도의 시발점인 옛 서울역사의 야경. 서울역은 한국 근대문명의 상징이다. 서양문명의 유입지이자 일제 수탈의 통로였다. [신동연 선임기자]

근대를 산책하다
김종록 지음, 다산초당
420쪽, 2만4000원

바쁜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주변의 소중한 가치를 지나쳐버리기 쉽다. 흔히 접하는 학교와 병원·교회·은행·호텔이라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풍수』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등 역사소설로 주목받은 바 있는 김종록 작가가 우리 주변에 널린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 나섰다. 근대적 생활양식에 대한 인문답사를 시도했다.

 저자가 돌아본 문화유산은 모두 36곳. 늘 접하는 생활공간이라 문화유산이라는 표현이 좀 낯설기도 하지만, 서양문물을 본격 받아들이기 시작한 개화기 이래 지금까지 축적된 150년 세월의 무게를 새삼 다시 느껴보게 한다.

 일례로 철도역은 병원·학교·은행·백화점 등과 함께 출현한 대표적인 근대 시설물이다. 모든 역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인 서울역을 저자는 근대문명의 창구로 읽어낸다. 초창기 서울역 건설과 운영의 주체가 일본이었다는 점에서부터 시작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이들의 발자취가 궤도처럼 깔려있는 역사의 속살을 저자는 살며시 들추어낸다.

 누군가는 서울에서 새로운 도약을 하고 누군가는 역 주변을 떠도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운명의 교차로였던 점도 놓치지 않는다. 근·현대의 기억이 고스란히 저장된 서울역의 역사가 유라시아 대륙으로 계속 이어지는 미래의 바람까지 담아내고 있다.

 소설가 이상의 작품 『날개』에 등장하는 미스코시백화점이 국내 최초의 백화점이자 오늘날 신세계백화점으로 바뀌어온 흐름도 저자의 발길을 따라 되짚어 볼 수 있다. ‘한국의 바티칸’이라 할 수 있는 명동대성당, 한국 의료의 표준을 세운 서울대병원, 조선 근대화의 초석을 놓은 외국인들이 묻힌 양화진 선교사 묘원 등도 조명된다.

 책은 교육·문화, 종교, 정치·외교·금융, 시설, 생활 등 5개 주제로 구성됐다. 교육·문화 파트에선 정동 배재학당, 이화학당 같은 신교육 요람에서부터 한국고전번역원·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 등을 두루 돌아본다. 종교 파트에선 승동교회,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 대각사, 성공회 강화성당 등이, 정치·외교·금융 파트에는 정동 옛 러시아공사관, 미국대사관, 한국은행 등이 등장한다.

 저자는 “근대 현장 취재기가 쌓여가는 동안 열패감 속에서 이해했던 우리 근대사를 비로소 애틋하게 끌어안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010~2011년 중앙일보 일요신문 ‘중앙SUNDAY’에 연재한 ‘사색이 머무는 공간’을 보완해 묶어냈다. 중앙일보 신동연 선임기자가 촬영한 현장 사진도 우리 근대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창(窓)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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