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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셰일 가스 혁명이 다가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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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전 세계 산업지도가 다시 그려질 조짐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셰일 가스(shale gas) 붐이 에너지 혁명을 넘어 주요 산업의 판도를 뒤바꾸기 시작했다. 문을 닫았던 미국의 철강과 석유화학 공장이 힘차게 재가동하고 있으며, 셰일 가스 관련 분야의 고용도 80만 명 수준에 육박했다. 미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이 기대 이상의 2%를 기록한 배경에는 부동산 시장 회복과 함께 셰일 가스 붐도 단단히 한몫했다.

 셰일 가스는 지하에 퇴적된 셰일(혈암)층에 저장된 메탄가스를 말한다. 그동안 채굴 기술이 없어 외면받았으나 10여 년 전부터 사정이 변했다. 물과 모래, 화학약품의 혼합액을 고압으로 분사하는 수압파쇄법과 수평으로 가스를 뽑는 신기술도 개발됐다. 전 세계 잠재매장량 645조㎥로 20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셰일 가스가 상용화된 것이다. 셰일 가스의 장점은 뛰어난 경제성이다. 1MMBtu(약 25만㎉의 열량을 내는 가스량)에 12달러가 넘던 천연가스 가격이 한때 2달러까지 떨어졌을 정도다. 또한 에틸렌 제조원가가 30% 이상 낮아져 나프타를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셰일 가스 돌풍은 아직 미국에만 머물고 있다. 가스 파이프 등 수송 인프라가 완비되지 않은 데다 미 정부가 수출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LNG선 발주가 급증하는 등 셰일 가스가 세계 에너지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날이 멀지 않았다. 미국은 천연가스에서 25%인 셰일 가스 비중을 2035년까지 49%로 늘릴 계획이다. 미국은 석유와 석탄 중심의 에너지 시장이 30년 후에는 석유(32%)와 가스(27%)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셰일 가스 혁명은 이제 시작 단계다. 아직은 셰일 가스가 난방과 발전에서 석탄을 대체하는 수준이지만 머지않아 수송 연료, 화학 소재로도 각광받을 게 분명하다. 이에 따라 벌써 차세대 에너지로 각광받던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고 있다. 반면 전 세계 화학기업들은 셰일 가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미국의 다우케미컬은 해외에 치중했던 투자전략을 바꿔 2017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에 세계 최대인 연산 150만t 규모의 에틸렌 공장을 짓고 있다. 유럽 화학기업들마저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미국에 공장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셰일 가스 혁명은 우리에게 양날의 칼이다.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로선 원유와 석탄 값이 떨어져 적지 않은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대형 조선업체들도 최근 LNG선 특수로 한숨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한국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셰일 가스 덕분에 부활하기 시작한 미국 기업들과 힘겨운 국제 경쟁을 벌이는 부담을 안게 됐다.

 우리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의 셰일 가스 매장량은 36조㎥로 미국을 넘어 세계 최대다. 지금은 쓰촨(四川)성 등 매장지역에 가스 생산에 필요한 물이 부족해 주춤대고 있을 뿐이다. 중국은 2009년 첫 굴착에 성공한 데 이어 적은 물로도 셰일 가스를 뽑을 수 있는 신기술을 확보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이 셰일 가스 상용화에 성공하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석유화학은 물론 철강, 조선 등 한국의 주력산업들을 위협할 수 있다. 거꾸로 파이프라인을 통해 우리가 이웃의 중국산 셰일 가스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면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미국의 셰일 가스 혁명을 남의 일처럼 부러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셰일 가스는 에너지 분야를 넘어 전 세계 경제 질서를 재편할 파괴력을 갖고 있다. 우선 태양광, 풍력에 치중했던 차세대 에너지 전략부터 대폭 손질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셰일 가스가 촉발시킨 전 세계 산업 재편의 물결을 제대로 타지 못하면 언제 낙오할지 모른다. 정부와 기업들이 셰일 가스 지분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물론 향후 셰일 가스 혁명의 파급력을 면밀히 분석해 기회는 포착하고 위협 요인은 줄이는 쪽으로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