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 1년 내내 똑같은 게 무슨 변동금리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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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직장인 이모(52)씨는 지난주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확인하고는 화가 단단히 났다. 3년 만기가 돌아온 변동금리 대출을 1년 연장한 지 11개월. 그동안 기준금리가 두 차례나 떨어졌지만 그의 대출금리는 전혀 움직이지 않은 5.73%였다. 은행 직원은 “만기 연장 상품이어서 변동 주기를 1년으로 잡았다”며 “중간에 금리 인하 요청을 했으면 내려줬을 것”이라며 말을 흐렸다.

 #31일 서울 역삼동 한 외국계 은행. 주택담보대출의 금리 수준을 묻자 “6개월 변동 기준으로 연 4.68%가 기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3개월마다 금리가 바뀌게 할 수는 없느냐”고 묻자 창구 직원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은행 정책상 3개월 변동 상품은 금리가 좀 높다. 6개월 변동금리가 훨씬 유리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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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늬만 변동금리’ 상품이 늘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에 은행이 대출금리의 변동 주기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변동 주기가 길어지니 금리가 하락해도 대출자는 바로 금리 인하 혜택을 받지 못한다.

 2년 전만 해도 시중은행 변동금리 상품은 90% 이상이 3개월 주기였다. 최근엔 가장 흔한 변동 주기가 6개월, 길게는 1년이다. 사실상 고정금리 대출과 비슷한 셈이다. 소비자는 “시장금리가 뚝뚝 떨어지니 대출금리를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꼼수를 쓰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한다.

 은행이 금리 변동 주기를 늘리기 시작한 건 대개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세계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며 금리 인하 전망이 나오던 시점이다. 일부 은행에선 3개월 주기의 변동금리 대출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국민은행은 올 들어 6개월 이상의 주기로만 변동금리 대출 상품을 팔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마찬가지. 지난달 신규 주택담보대출 중 3개월마다 금리가 바뀌는 대출 상품은 전체 변동금리 상품의 0.36%에 불과했다.

 자연히 시장금리가 떨어져도 대출 소비자는 그 덕을 보지 못한다. 이달 들어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대 초중반으로 떨어졌지만, 올 6월에 대출을 받았다면 여전히 연 5% 안팎의 금리를 물고 있는 셈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지금처럼 금리가 뚝뚝 떨어지는 시기에 고정금리나 1년짜리 변동금리 상품을 권하는 건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도 문제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박사는 “6개월, 1년마다 금리가 바뀌는 상품은 사실상 변동금리라고 부르기도 힘들다”며 “특히 금리가 내려가는 시점에 3개월 변동금리 상품이 사라지면 소비자로선 시장금리를 활용할 방법을 잃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 은행에선 금리가 오를 때면 대출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고정금리로 갈아타지 않겠느냐’고 권유하고 금리가 내리면 ‘변동금리로 갈아타라’고 권하는데, 한국은 반대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은행 측은 “가계부채를 안정화시키려는 당국의 지도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다시 오른다고 가정하면 변동 주기가 자주 돌아오는 게 소비자에게 불리하다”며 “고정금리 대출을 늘리고 변동금리 대출도 가급적 주기를 길게 가져가라는 것이 당국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단지 지표금리인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3개월 주기의 변동금리 대출이 더욱 힘을 잃고 있다”며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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