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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려도 피는 꽃, 털머위야 반가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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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동항에서 행남등대 가는 길에서 만난 털머위 군락지. 만개한 털머위로 노랗게 빛나는 소나무숲.

지난 주말 문화체육관광부 자문교수단이 독도에 상륙했다면 이 지면은 독도 상륙기로 채워졌을 것이다. 온갖 허가 절차를 다 마친 다음이어서 여느 관광객과 달리 오랜 시간 독도에 머무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허탈하지만은 않다. 가을 울릉도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장면을 빚어내고 있었다. 아울러 여행기자의 관점으로 독도 관광법도 소개한다. 여태의 독도 기사는 역사책만 뒤적이거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게 태반이어서 생생한 여행 정보는 거의 없었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울릉도 가을 스케치

지난 주말 울릉도는 첫 단풍이 내려온 직후였다. 이번 주말부터 절정일 듯싶었다. 해안지대는 아직 푸르렀지만 내수전 전망대나 나리분지에 올라 성인봉 일대 산자락을 올려다보니 단풍 물든 가을 울릉도의 전경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나리분지는 완연한 가을의 모습이었다.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의 누런 들판은 한가로웠고, 성인봉 원시림 입구 울릉도 전통 가옥 투막집 주변 억새밭도 햇볕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 원시림으로 가는 길에는 만개한 울릉국화 수천 송이가 하얀 파도가 일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울릉도에 가을이 왔다는 건 사실 바다가 먼저 일러준다. 밤마다 오징어 배 수백 척이 울릉도를 에워싸고 수평선에서 ‘어화(漁花)’를 밝히면 이 외진 섬에도 가을이 들었다는 뜻이다. 울릉도 오징어는 가을부터 겨울까지가 제철이다.

2 성인봉 자락에 막 단풍이 내려앉았다. 3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 지대인 나리분지의 가을 전경. 4 독도 동도와 서도 사이에 서 있는 삼형제굴바위. 독도를 상징하는 풍경 중 하나다.

이른 아침 저동항. 오징어 배가 들어오는 시간 저동항은 모처럼 활기를 띤 표정이었다. 밤새 오징어를 길어 올린 배가 차례대로 항구를 들락거리며 오징어 그득한 상자 수십 개를 부리면 경매사부터 상인까지 금세 10여 명이 모여 어판장에서 즉석 경매를 했다. 주인이 정해진 오징어는 항구에 모인 아낙들에게 바로 전달됐고, 아낙들은 익숙한 손길로 내장을 걷어내고 대나무 대에 20마리씩 엮어 말릴 준비를 마쳤다. 모든 과정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오징어 철이 막 시작한 참이어서 그런지 울릉도에서도 오징어는 비쌌다. 말린 오징어 상품(上品) 한 축이 7만원이 넘었고, 도동항에 모여 있는 횟집은 오징어 회만 따로 팔지 않았다. 모둠회를 시켜 겨우 맛본 오징어는 그래도 맛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도동항 좌안도로를 걷다가 만났다. 도동항에서 저동항까지 2.6㎞ 길이의 해안 산책로가 조성돼 있는데 도동항 왼쪽으로 난 길이라 하여 좌안도로라 불린다. 이름은 옹색하지만 울릉도를 대표하는 트레일이다. 특히 저동항 근처 철제 해안도로는 해안절벽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져 기하학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해안절벽에 세운 27m 높이의 원형식 계단을 내려가야 하고, 바다 위에 철제 도로를 세운 까닭에 바닥 틈새로 바다가 보여 제법 담력도 필요한 길이다.

도동항에서 행남등대로 가는 길. 해안을 따라 걷다가 내륙으로 들어와 소나무 숲을 지날 때였다. 동해를 바라보며 완만하게 누운 언덕배기를 오르는데 소나무 숲 아래가 햇살을 받아 샛노랗게 반짝이고 있었다. 국화인가 싶었는데 털머위였다. 온통 노랗게 물든 언덕 앞에서 울릉군청 최이한 문화관광과장이 “자연 군락지”라며 자랑을 늘어놨다.

“털머위는 울릉도를 대표하는 가을 꽃입니다. 9월부터 11월까지, 눈이 내려도 꽃이 핍니다. 소나무 아래에선 풀이 자라지 못하는데 털머위는 거뜬히 버텨냅니다. 생선 먹고 탈이 나면 털머위를 달여 먹기도 합니다.”

가을 울릉도는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찬란하다. 고개를 들면 기암괴석 불끈불끈 솟은 산자락이 붉게 타오르고, 고개를 숙이면 울릉국화부터 해국·털머위까지 온갖 야생화가 흔들흔들 춤을 춘다. 밤 바다에는 오징어 배가 밝힌 불이 별처럼 박혀 있고, 이른 아침 저동항은 울릉도 주민의 펄떡이는 삶이 있어 눈부시다. 가을, 울릉도에 가야 하는 이유다.

독도 관광 올 가이드

5 나리분지에 있는 투막집. 원래 사람이 살던 집인데 지금은 모형만 남아있다.

이제 독도를 관광할 차례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87.4㎞ 떨어져 있다. 독도 여객선은 사동항에서 출발하는데 독도 앞바다까지 두 시간쯤 걸린다. 대아고속해운 등 4개 해운회사가 독도 여객선을 운항한다. 기상 상태가 양호하면 하루 6차례, 성수기에는 하루 8차례 배가 뜬다. 울릉도에서 성수기는 5~6월, 8~9월이다. 7월은 장마와 태풍 때문에 결항률이 높고, 날이 추워지면 파도가 높아진다.

모든 독도 관광객이 독도에 상륙하는 게 아니다. 입도율이 63%이므로 나머지 37%는 여객선이 독도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 선회 관광으로 만족해야 한다. 항해 중에는 갑판으로 나올 수 없어 독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는 것도 쉽지 않다.

입도율이 예상보다 높은데, 여기엔 통계의 허점이 있다. 독도 여객선이 울릉도를 출발한 경우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날씨가 안 좋아서 배가 아예 뜨지 못 하면 입도율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독도 상륙이 가능한 날짜는 1년에 110일 정도다.

독도는 조선시대에 삼봉도(三峰島)라 불리기도 했다. 세 개 봉우리가 있는 섬이라는 뜻인데, 독도는 해발 98.6m의 동도와 해발 168.5m의 서도, 부속 도서(만조 기준으로 1.5㎡ 이상 면적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암초) 89개로 구성돼 있다. 동도와 서도 사이에 삼형제굴바위라 불리는 암초가 있는데, 다른 암초보다 우뚝 솟아 있어 이 암초까지 포함해 세 개 봉우리로 칭한 듯 보인다.

6 이른 아침 저동항 풍경. 갓 시작한 오징어 철 덕분에 새벽 어항은 활기차고 분주했다.

울릉도청에 따르면 하루 독도 관광객은 성수기 기준으로 1000명 정도다. 독도 여객선 정원이 200~300명이니까 성수기에 하루 8회 배가 뜨면 하루에 2000명 이상이 독도를 관광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계산은 계산일 뿐이다. 문화재청이 1회 470명, 하루 1880명으로 상륙 인원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지난해 숫자를 크게 늘린 것이다.

국토 끝 섬 관광자원화 사업을 재개한 문화체육관광부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독도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문위원으로 이번 독도 답사에 참여한 황정환 독도·울릉학연구원장은 “울릉도나 포항 등지에 독도를 체험할 수 있는 대체 시설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관광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97년 개장한 독도박물관 관람이다. 독도의 역사와 독도가 한국 영토인 이유, 일본 주장의 허구를 밝히는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독도를 두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날이 아주 맑은 날이면 도동에 있는 독도 전망대에서 독도가 보인다. 울릉도는 육안으로 독도를 바라볼 수 있는 지구에서 유일한 땅이다. 일본에서 독도와 가장 가까운 시마네현(島根縣) 오키섬(隱岐諸島)은 독도와 157.5㎞ 떨어져 있다.

독도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다. 현재 어민 김성도(72)씨가 서도에 살고 있고, 독도경비대 40명이 동도에 상주하고 있다. 6월이면 괭이갈매기 2000여 마리가 서도에서 알을 부화한다. 독도 관광 성수기이지만 괭이갈매기 보호를 위해 독도 상륙 인원에 제한을 두기도 한다.

두 눈으로 바라본 독도가 궁금하신가. 800m 떨어진 바다 위에서 감흥을 받으려면 감수성 풍부한 시인이나 가능하지 않을까. 멀미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싶다.

●여행정보=울릉도 가는 배는 모두 세 곳에서 뜬다. 강원도 강릉과 동해 묵호항, 그리고 경북 포항. 기상조건이 양호하면 포항과 묵호에서 하루 두 번 배가 뜨고 강릉에서 하루 한 번 운항한다. 울릉도 여행은 여전히 패키지 여행상품이 대세다. 울릉도 관광 인프라가 아직 부족한 상태여서다.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면 배편부터 울릉도 현지 교통, 숙소 등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다만 독도 관광은 추가 요금(성인 4만5000원, 어린이 2만2500원)을 내야 한다. 홍익여행사(ktxtour.co.kr)가 11월 30일까지 운영하는

2박3일 상품의 경우 주말 기준 29만9000원부터 39만5000원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숙소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02-717-1002. 울릉도에는 향토색 짙은 음식이 많다. 약소불고기·홍합밥·따개비밥·오징어내장탕·명이나물 등 뭍에서는 맛보기 힘든 별미다. 도동항 인근에 식당이 몰려 있다. 울릉군청(ulleung.go.kr) 054-791-2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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