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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들 만류에도 평양까지 가려던 MB, 결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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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09년 11월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의 3차 정상회담을 위한 양측의 비밀접촉 도중 북한이 우리 측에 5억∼6억 달러를 요구하는 바람에 회담이 무산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는 회담 장소와 의제에 대한 이견 때문에 무산됐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론 돈 문제가 결정적 원인으로 밝혀졌다.

 25일 외교안보 분야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2009년 11월 비밀접촉 장소에 나온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대뜸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필요하다’며 대가조로 5억~6억 달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김양건은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이런 내용으로 미리 준비해온 비밀양해각서를 내밀면서 우리 측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김대중 정부 때 6·15 정상회담을 하면서 북한에 5억 달러를 불법 송금했다가 노무현 정부 때 특검까지 한 마당에 이명박 정부가 거액을 주고 정상회담을 할 수는 없었다”며 “정상회담에 공을 들였는데 성사 직전 무산돼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09년 10월 초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정상회담 때 이 대통령을 따로 만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김정일이 이 대통령을 만나길 희망하고 있다”는 북한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뒤 남북 간에 정상회담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은 10월 17~19일 싱가포르에서 김양건을 수차례 만나 정상회담을 조율했다. 임 장관 외에 현인택(현 대통령 통일특보) 통일부 장관과 김천식(현 통일부 차관) 통일부 통일정책실장도 김양건을 여러 차례 접촉해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의를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의 정상회담이 모두 평양에서 열린 만큼 3차 회담은 남한에서 해야 한다는 청와대 참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 대통령은 “내가 가서 김 위원장을 만나야 핵 문제가 풀린다”며 북측 제안대로 평양행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양건의 대가 요구로 정상회담이 불발된 뒤에도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상당한 미련을 보였다”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본지는 현인택 특보와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일본 출장 중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의 측근은 “현 특보는 장관 재임 시절 (남북 비밀접촉을 위해) 해외에 나간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2009년 정상회담이 무산된 이유는) 북한이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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