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안, 한 열차 타고도 안 만나 … 원탁회의 “힘 합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오른쪽)가 25일 대구시-경북도당 선대위 출범식에 참석해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있다. [뉴시스]

25일 낮 12시20분쯤 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후보가 함께 타고 있는 KTX 열차가 울산역에 도착했다. 문 후보는 울산선대위 출범식, 안 후보는 울산대 등을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다. 같은 시간에 기차를 탄 건 우연이었다. 하지만 내려가는 도중엔 열차에 동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 후보 모두 보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문 후보나 안 후보나 일부러 상대를 찾아가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울산역에 도착해서도 만남은 없었다. 사실상 서로 만남을 피하는 분위기였다. 문 후보 측은 “하차하면 자연스레 안 후보와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냥 가셨더라”고 했다. 반면 안 후보 측은 “문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데다 거리가 있어 승객들을 가로질러 가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는 열차의 3호차에, 안 후보는 8호차에 탑승했었다.

 두 후보는 전날 국회의원 정수(定數)를 줄이는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문 후보가 “좀 더 깊은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안 후보가 “국민의 인식과 괴리돼 있다”고 받아치면서다.

 두 진영에 냉기류가 돌고 있는 가운데 재야 원로 인사들로 이뤄진 ‘희망 2013·승리 2012 원탁회의’는 이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될 때는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힘을 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후보 등록(11월 25∼26일) 전에 단일화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22일 문화계를 비롯해 각계 인사 102명이 두 후보의 단일화를 재촉하는 성명을 낸 데 이어 야권의 원로 모임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탁회의는 2010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부터 지난 4·11 총선 때까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는 데 역할을 해왔다. 회견에서 원탁회의는 “무소속 후보는 정당정치의 헌법적 의미와 현실적 무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 정당 후보는 현재의 정당구조가 포괄하지 못하는 국민 의사를 반영할 새로운 제도·방안, 그리고 인적 쇄신에도 국민의 눈높이를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에겐 우회적으로라도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줄 것을, 문 후보에겐 이해찬 대표나 박지원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다시 생각해 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원탁회의의 좌장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제 (단일화를 위한) 소통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원탁회의 성원들과 양 후보 진영 사이에 다각적인 소통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탁회의의 요구에 대한 양 후보 측의 반응은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문 후보 캠프 진성준 대변인은 “원로들의 조언을 깊이 유념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안 후보 측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도 브리핑에서 “깊이 새겨듣겠다”고 했다. 그러나 박 본부장은 “선거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며 “기술적· 공학적·전략적으로 접근해선 안 되고, 시간을 정해놓고 따지는 것도 옳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안 후보는 울산 방문 도중 기자들이 “원탁회의에서 후보 등록일 전에 단일화를 촉구했다”고 하자 “(기자들 질문이) 무슨 말씀이신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답변을 피했다.

 울산 일정에 앞서 서울 구로동에서 열린 벤처기업인 행사에선 안 후보와 문 후보 측 박영선 공동선대위원장이 마주쳤다. 행사에서 두 사람은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박 위원장은 안 후보 면전에서 “(조금 전) 손석희 교수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왔는데 (나한테) 단일화에 대해 묻더라. (벤처기업인 행사에서 안 후보의) 옆자리에 앉게 됐는데 물어보겠다고 하고 왔다. (단일화가) 잘 돼야 할 텐데 말이죠. 제가 박원순 시장이랑 단일화 경험자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안 후보는 “아, 네…”라고만 한 뒤 말문을 닫았다. 안 후보 측근은 “문 후보 측의 계속되는 단일화 압박에 후보가 불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김경진 기자, 울산=류정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