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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약의 시대 … 월 이자 20만원 버거워 적금·보험 다 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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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서울 영등포에서 남편과 식당을 운영하는 서모(43)씨는 지난달 월 10만원씩 5년 넘게 넣던 연금보험을 깼다. 원금보다 50만원이나 적게 돌려받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난해 보증금 1억원, 월세 40만원짜리 아파트로 이사 오느라 5000만원을 대출받은 게 화근이었다. 장사가 안되면서 매달 20만원의 이자도 갚기 어려워졌다. 서씨는 “올해 초엔 만기를 반년 남긴 2년짜리 적금도 깼다”며 “이제 남은 거라곤 생명보험 하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고에 시달려 적금이나 보험을 깨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25일 시중은행 4곳(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고객이 중도해지한 정기적금 계좌는 116만9527개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90만2050개)보다 30% 가까이 늘었다.

 보험을 해약하는 사람도 급증했다. 스스로 원해서 해약하는 것은 물론 두 달 넘게 보험료를 내지 못해 자동 해약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상반기 동안 약 18만1000건이던 주요 손해보험사 4곳의 저축성 보험 해지 건수는 올 들어 25만3000건으로 40% 늘었다. 생명보험사에 가입한 상품을 깬 고객도 같은 기간 10% 정도 많아졌다. 저축성 보험은 중도 해지하면 원금을 100% 회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3개월 이내 해지 때에는 환급금이 없고, 1년 만에 해지하면 원금의 66%가량만 돌려받는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보험 해지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늘어난 가계 빚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가계부채 증가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저축은 줄고, 돈이 필요해 또 빚을 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경희 상명대 금융보험학부 교수는 “저축성 보험은 중도 해지 때 손해가 커 생활비에 쪼들려도 가능한 한 계약을 유지하는 게 보통”이라며 “저축성 보험 해지가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불황의 그늘이 짙어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양재혁 외환은행 WM센터 팀장은 “적금이나 보험은 만기 전에 깨면 100% 손해이기 때문에 여유자금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절대 건들지 않는 상품”이라며 “그만큼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은 “돌려받는 돈이 더 적은 보험보다는 은행 적금을, 보험 중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가입한 상품, 투자나 저축 목적으로 가입한 보험의 해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며 “생활이 빠듯할수록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비한 보장성 보험은 가능한 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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