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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어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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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요즘 과천은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저기 빨갛게 노랗게 타오르고 있다. 대다수 경제부처들이 세종시 이전을 앞두고 있어선지 때로는 처연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단풍에 취해서일까. 때아닌 색깔론이 도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24일 안철수 후보에 대해 “안 후보가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복지 확충 재원에 대해 ‘능력대로 내고 필요한 만큼 쓰자’는 식의 대답을 했는데 이는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주창하며 사용한 슬로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색깔 논쟁을 하자는 차원이 아니다”고 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게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설명하면서 했던 말은 맞다. 안 후보 주장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왜 그게 문제인가. 전문가들은 “뜬금없다”는 반응이었다. 소득(능력)에 따라 세금을 매기거나 이용료를 받아 조성한 재원으로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게 복지의 기본개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복지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특정 문구를 인용해 사회주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며 “기술적이고 세밀한 설계가 필요한 복지 논의를 생산적이고 건전하게 이끄는 데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1980년대 마르크스는 불온함의 상징이었다. 그의 책을 출판했다고 출판사 사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그 시절, 마르크스 때문에 애꿎은 막스 베버가 고생한다는 우스개까지 돌았다. 수시로 대학 주변에서 검문검색을 하던 경찰이 마르크스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인 막스 베버를 혼동한 탓이라는 그럴 듯한 설명과 함께였다. 암울했던 시절이 끝났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념에 민감했다. 2003년 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 인수위와 재계가 껄끄러웠던 적이 있다. 전경련 임원이 외신 인터뷰에서 인수위에 대해 “사회주의적(socialist)”이란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기사를 작성한 외신기자는 “한국 사회의 민감한 반응에 놀랐다”며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영어권 사람들에겐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단어가 아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학자 마르크스’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글로벌 위기를 촉발한 파생상품이 마르크스의 ‘허구적 자본’ 개념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색깔론에 대해선 “시대에 얼마나 뒤떨어졌는지 모른 채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참에 김 본부장에게 따끈한 제보 하나 드린다. 과천정부청사 1동 기획재정부 도서실에도 마르크스의 『자본』이 꽂혀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마르크스에 얼마나 ‘오염’됐는지 재정부 관료들의 사상도 한번 검증해 보셨으면 한다. 아울러 붉게 타오르는 과천의 단풍과 마르크스와의 관련성도 내친김에 검증해 보심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