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드립니다.” 흥신소의 홍보 문구가 아니다. 정부가 운영 중인 사업단이 추구하는 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 국산 글로벌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 ‘시스템통합적 항암신약개발사업단’(이하 항암 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정부가 단일 질병으로 사업단을 발족한 것은 처음이다. 이곳에는 항암제 개발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이들의 역할은 산․학․연이 개발 중인 항암 후보물질의 제품화 가능성을 점치고 구체화 시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을 가려, 묘목으로 키워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재정은 물론 연구개발․임상시험․법률․특허․산업화 등 모든 분야의 국내외 전문가 자문과 지원을 책임진다. 세계는 암과의 전쟁 중이다. 20~30년 후에는 2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는 보고가 있다. 암 예방은 쉽지 않다. 선진국과 굴지의 다국적 제약사들이 항암제 개발에 올인(All in)하는 이유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항암제는 대부분 미국․유럽․일본에서 개발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전체 연구비 5조 중 2조를 항암제 개발에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가 이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항암 사업단을 출범시킨 지 1년이 넘었다. 이미 수차례의 공모를 통해 8개 항암 후보물질을 선정하고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김인철 항암 사업단장은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들여온 고가의 항암제에 의존하고 있다”며 “사업단은 혁신적인 국산 항암제를 개발해 항암 주권을 찾기 위해 발족했다”고 말했다. 항암 주권 찾기에 나선 항암 사업단을 들여다보자.
■20시간 릴레이 회의하며 ‘노블 타깃’ 선정
항암 사업단은 국가 암 정복 10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발족했다.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에 둥지를 튼 이곳에는 16명의 항암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사업단에는 5년간 1200억 원의 정부 연구개발비를 포함, 총 2,40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초기 임상시험을 마친 글로벌 항암신약 후보물질 최소 4건을 민간에 기술이전하고, 1개 이상의 글로벌 항암 신약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항암 신약 1개가 상업화되면 연 약 8000억 원의 매출액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사업단의 계산이다.
현재 항암 사업단은 4차례에 걸친 공모를 통해 8개의 항암 후보물질을 선정해 연구하고 있다.
공모에 참여한 곳은 대학·연구기관·제약사·벤처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후보물질을 심사할 때면 사업단은 시퍼렇게 날이 선다.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열고 몇 차례에 걸쳐 검증한다. 위원회는 대학 교수·제약사 연구소장·임상시험 전문가·병리과 전문의·변리사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됐다. 이틀에 걸쳐 약 20시간의 릴레이 회의를 하기도 한다.
항암 사업단 김인철 단장은 “항암 후보물질들의 질(質))이 예상보다 훨씬 높다. 현재 출시된 항암제와 전혀 다른 새로운 작용기전을 보이는 ‘노블 타깃(noble target)’도 있다”고 말했다.
노블 타깃 물질이 항암제로 개발되면 최초의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이자 첫 표적항암제인 글리벡처럼 글로벌 항암제가 될 수 있다.
항암 사업단 전문 위원회의 평가에 인정은 없다. 공모에 내놓은 후보물질을 찾아낸 산․학․연은 이 물질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단은 누구나 개발할 수 있는 ‘미 투 제품(me too drug)’이어서 시장성이 없거나 제품화 가능성이 희박한 물질에 대해선 단호하게 “연구를 중단하라”고 자문 한다.
현재 사업단의 공모에 선정돼 연구가 진행 중인 물질은 폐․혈액․간․췌장 암 등 다양하다. 이중 비소세포폐암 두 가지 물질은 임상 2상 시험에 진입했고, 교모세포종은 1상 시험이 진행 중이어서 항암제 개발이 가시화 되고 있다.
항암 사업단 박영환 사업개발 본부장은 “악성흑색종, 혈액암, 간암, 췌장암에 효과를 보이는 항암 후보물질은 현재까지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될성부른 나무 찾아 떡잎부터 키워
항암 사업단의 취지는 산․학․연에서 찾아낸 수많은 항암 후보 물질 중 옥석(玉石)을 가리는 일이다. 연구개발(R&D)과 투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국내 제약산업은 그러지 못했다.
김인철 단장은 “국산 항암제가 4개 개발됐지만 해외진출은 차치하고 거의 폐기처분 상태에 있다”며 “항암 후보물질 중 제품화 가능성과 시장성이 있는 것을 가리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고 말했다.
미국의 자료에 따르면 항암 신약의 개발 단계별 실패율은 임상 1상, 2상, 3상, 승인까지 각각 27%, 60%, 33%, 9%다. 일반 신약보다 훨씬 높다.
박영환 본부장은 “항암 후보물질을 발견하면 기존보다 부작용이 적고 효과 좋은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해 200~300개의 시험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암 사업단은 이 같은 물음에 답을 주기 위해 발족했다. 김인철 단장은 “신약 가능성이 높은 항암 후보물질을 사업단과 물질 소유자가 공동으로 개발해 임상시험 초기 단계까지 숙성시켜 다시 산·학·연에 기술 이전한다”고 설명했다. 항암제 개발의 발목을 잡는 임상시험 단계의 병목현상을 해소하는 것이다.
김 단장은 이어 “양질의 국산 항암제가 개발되면 고가의 수입 제품에 의존하던 항암제 약가 부담을 덜고, 수출 활로를 모색해 복지와 보건의료산업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사업단의 운영 구조는 연구결과에 관계없이 연구비를 끝까지 지원하는 정부의 기존 사업과 확연히 다르다. 박영환 본부장은 “어렵게 신약 후모물질을 찾아도 90%는 실패한다. 지원 후보 물질로 선정돼도 연구 과정에서 경쟁력이 없으면 조기 탈락(fast drop)시킨다”고 말했다. 항암 사업단은 초기 공모에서 선정한 항암 후보물질 중 하나를 탈락시킨 바 있다.
■사업단 규모 16명이 고작?
항암 사업단에는 현재 16명의 관련 전문가가 상근한다. 이렇게 단출한 조직에서 글로벌 항암제를 발굴해 키운다는 게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김인철 단장은 “항암제의 연구개발․임상시험․법률․특허․산업화와 관련된 약 30개의 국내외 전문가 단체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박영환 본부장은 “미국 NCI 출신이 만든 연구기관, 벤처의 항암 전문가들이 자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항암 사업단의 업무는 글로벌 전문가 그룹과 연계해 아웃소싱으로 진행된다. 사업단이 선정한 항암 후보물질의 임상시험은 국립암센터를 비롯해 경쟁력 있는 국내외 의료기관의 시설과 인적자원을 활용한다. 항암 사업단 정인철 사무국장은 “사업단이 선정한 항암 신약 후보물질이 가장 적합한 임상시험센터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항암 사업단에 상근 중인 전문가들도 이 분야 최고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인철 단장은 국내 첫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제품인 ‘팩트브(항생제)’의 개발을 주도했다. LG생명과학의 CEO를 역임했다. 대웅제약 연구본부장을 지낸 박영환 본부장은 미국 머크 감염질환연구소 책임연구원이다. 또 조기원 바이오신약본부장, 김문환 화합물신약본부장, 김정용 임상개발본부장 등 국내외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이외에 이진수 국립암센터 원장, 방영주 서울대병원 교수, 폴 번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의대 종양내과 교수 등이 자문을 맡고 있다.

■“한국 제약기술 가치 올라갈 것”
항암 사업단은 일단 2015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사업단은 점차 미국․스위스 등의 신약개발 전문그룹과 네트워크를 확대할 예정이다. 로슈․노바티스․아스트라제네카․사노피 아벤티스 등 항암제의 60~70%를 점유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과도 협력관계를 다질 방침이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국내 제약산업의 국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터를 닦는다는 계획이다. 정인철 사무국장은 “국내 제약기술 이전료는 너무 평가 절하돼 있어 항암 후모물질들이 헐값에 유출되고 있다”며 “제약기술을 수출할 때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겠다”고 말했다.
항암 사업단은 공모에서 탈락한 항암 후보물질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박영환 본부장은 “선정되지 못한 항암 후보 물질 대부분이 조금만 다듬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며 “물질을 개발한 산·학·연에 자문 서비스를 지속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인철 단장은 항암 사업단이 한시적으로 운영될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알려진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관계자가 방한했을 때 사업단의 성격에 대해 소개했더니 놀라워했다”며 “세계가 함께 풀어야할 숙제인 암을 정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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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하 기자 unha@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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