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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룸살롱 황제 결혼식 날 온 사람이…'경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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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 강남 일대 유흥업소 밀집 지역은 밤의 왕국이다. 이 왕국의 밑바닥엔 ‘삐끼’와 ‘웨이터’가 넘쳐난다. 거기서 정상에 오르는 건 꿈같은 일. 꿈을 이룬 자가 신화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까지 단 두 사람만이 그 자리에 올랐다. ‘룸살롱 원조 황제’ 또는 ‘강남 김박사(※박사는 룸살롱 업주를 뜻하는 은어)’로 불리는 국내 최대 규모 룸살롱 ‘어제오늘내일(YTT)’의 실소유주인 김종채(52)씨와 ‘룸살롱 황제’로 통하는 이경백(40)씨다. 김씨는 강남의 웨이터, 이씨는 웨이터보다 한 급이 낮다는 ‘삐끼’ 출신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일군 밤의 왕국은 2년 전 느닷없이 터진 한 사건을 계기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왕국을 떠받쳐 왔던 룸살롱 아가씨들의 반란 때문이었다. 검찰과 경찰의 강도 높은 수사 끝에 이씨와 김씨는 차례로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이씨와 공생 관계를 이뤄왔던 경찰관들의 존재가 드러나 66명이 징계를 받고 18명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로 비화됐다. 이를 두고 “몰락한 황제의 복수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특히 이씨는 지난 7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뒤 사설 도박장을 개설하고 다른 유흥업소를 경찰에 신고하는 등 재기를 위한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런 그를 경찰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경백과 경찰 간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지 사장 내세워 신분 숨겨

2010년 2월 서울 서초경찰서에 실종신고 한 건이 접수됐다. 집을 나간 딸 A(18)양이 몇달째 소식이 없다는 부모의 신고였다. 서초서 수사팀은 A양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에서 강남 유흥업소 구인광고 번호로 전화한 흔적을 발견했다. 며칠간의 추적 끝에 경찰은 서울 논현동의 룸살롱 ‘로데오’에서 여성종업원으로 일하던 A양을 찾아냈다. 이 가게의 실소유주는 이경백씨였다. A양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가게에서 성매매를 강요받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곧바로 이씨를 긴급 체포했다. 하지만 검찰이 체포를 승인하지 않아 이씨는 석방됐다.

 그러자 당시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서울청 형사과에 직접 이경백 사건 수사를 지시했다. 서울청 수사팀은 이후 3개월간 70여 개의 관련 계좌·장부를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 가게의 여종업원들도 협조했다. 그 결과 이씨가 42억여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 미성년자를 고용한 혐의를 찾아냈고 이씨는 그해 6월 구속됐다. 10여 년간 갖은 수법으로 법망을 피해오던 이씨가 결국 자신에게 부를 가져다준 아가씨들에 의해 덜미가 잡힌 셈이다. 그러나 그의 구속은 이씨와 경찰 간의 긴 싸움의 서막에 불과했다. 조용히 수감 생활을 하던 이씨는 올해 초 자신이 뇌물을 건넨 경찰관들의 명단을 검찰에 진술하며 “혼자 죽지 않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이후 18명의 전·현직 경찰관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원조 황제’ 김종채씨가 수사선상에 오른 것도 이때였다.

 지난해 김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강남 힐탑호텔 지하 룸살롱(‘시마’)을 정리하며 그 지분을 이씨에게 팔았다. 하지만 이씨가 돈을 주지 않아 갈등을 빚어왔다. 이씨가 올해 초 검찰에 이 문제를 거론하며 “김씨 측에게 갈취폭력을 당했다”고 하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김씨는 지난달 불법 성매매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씨와 김씨는 둘 다 ‘큰손’이지만 성장 방식은 달랐다. 이씨보다 업계 선배인 김씨는 ‘정통 코스’를 거쳤다. 강남 나이트클럽 웨이터에서 시작해 1980년대 중반 서울 강남 힐탑호텔의 룸살롱 지분을 인수하면서 탄탄한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2010년 YTT를 세워 ‘룸’ 180개에 여성 접대부 1000여 명을 풀가동하는 기업형 룸살롱 시대를 열었다. 이에 비해 이씨는 90년대 후반 술집에 손님을 데려오는 ‘삐끼’부터 시작해 2000년대 초 룸살롱 영업에 뛰어들었다. 이어 10년도 안 돼 북창동·강남 일대에 약 20개의 유흥업소를 소유, 운영했다. 폭넓은 인맥과 혁신적 영업 방식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이씨의 가장 큰 인맥은 검찰·경찰 인사들이라고 한다. 과거 이씨를 수사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에서 검찰 고위 간부 사무실 번호가 있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측근은 “본인 스스로 국세청은 물론 법원까지 인맥이 있다고 과시했다”고 전했다. 특히 경찰과의 인연은 오래됐다. 2003년 이씨의 결혼식 주례는 전직 경찰청 고위 간부가 섰다고 한다. 인맥 형성의 매개는 뇌물 및 접대 공세였다. 그는 본인뿐 아니라 주변 업주들에게서 갹출해 경찰에 상납했다. 2010년 당시 이씨 구속에 공을 세워 진급했던 경찰 간부는 이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현재 수배 중이다.

 2009년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던 주상용씨의 사촌도 이씨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지난 4월 검찰에 구속됐다. 단속하는 경찰관들이 뇌물을 받았으니 수사와 처벌이 쉬울 리 만무했다. 더욱이 이씨는 ‘가짜 소유주(바지사장)’를 내세우고, 세무·회계사 등을 고용해 수입 추적을 어렵게 했다. 자신이 업소 소유주란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범행 입증은 어려웠다.

 단속은커녕 오히려 경찰이 이씨 때문에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2007년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씨의 룸살롱 불법 영업 관련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담당 수사관들이 강남 룸살롱 업주들에게 접대 받은 사실을 안 이씨가 이를 언론에 흘렸다. 또한 특수수사과 직원들이 전국 유흥업소에 지분 투자한 자료를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이를 경찰에 넘겼고 경찰은 내부 감찰을 벌여 이경백 수사팀은 와해됐다.

‘경백이법’ 상술 다른 업소도 따라 해

이후 이씨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서울 논현동 ‘로데오’ 등 강남과 북창동, 경기도 부천 일대에 약 20개 업소를 운영하며 연간 1000억여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경영 수완도 남달랐다. 이씨는 2000년대 초 ‘양주 1병에 맥주 무제한 공짜’란 영업 기법을 도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맥주 무제한 기법은 술값에 부담을 느끼던 손님들을 끌어들였다”며 “박리다매 전략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손님만 볼 수 있는 특수유리를 통해 여종업원을 고르는 ‘매직 미러’, 초저녁에 온 손님은 값을 깎아주는 ‘조조할인’ 등의 마케팅 기법도 썼다. 이씨와 함께 룸살롱을 운영한 B(42)씨는 “30여만원에 술자리와 성매매가 가능한 ‘풀살롱’도 이씨가 처음 운영했다”며 “그의 상술은 ‘경백이법’이라 불리며 업소 대부분이 뒤따라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런 혁신적 영업 때문에 업계에선 그가 ‘스티브 잡스’로까지 불렸다고 한다.

 그의 전성기는 2010년 경찰에 구속되며 서서히 막을 내린다. 당시 이씨는 경찰 비리를 말하겠다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재판 중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뒤 도주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자체 감찰로 이씨와 자주 통화한 경찰 66명을 적발하고 그중 6명을 파면·해임, 33명을 징계했다. 수사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지난해 7월 다시 붙잡힌 이씨는 11월 1심에서 징역 3년6월,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씨가 무너지자 그의 룸살롱 왕국도 경영 악화를 겪으며 하나 둘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씨는 지난 3월 반격에 나섰다. 항소심 중 이씨는 검찰에 자신이 뇌물을 준 경찰관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에 논현지구대 근무자 등 전·현직 경찰관 18명이 구속됐다. 과거 자체 감찰로 징계까지 했지만 이씨에게 돈을 받은 경찰관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은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정작 이씨는 7월 항소심에서 풀려났다. 재판부가 “성매매 알선·조세포탈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경찰은 반발했다. “검찰 등 다른 기관도 이씨에게 뇌물을 받았을 텐데 경찰 혐의만 드러났다”며 “이씨가 경찰에 돈을 준 부분을 추가 기소하지 않은 건 봐주기”라고 주장했다.

 이씨의 판정승으로 끝날 줄 알았던 양측의 싸움은 최근 재개됐다. 재기를 노리는 이씨가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고 북창동 유흥업소들을 경찰에 신고하며 협박해 금품을 갈취했다는 등의 혐의로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다. 지난달엔 2010년 가짜 담보 서류를 만들어 20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로 경찰이 이씨를 소환 조사하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사건 수사에 인력을 집중 투입했다. 과거 이씨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기세다. 하지만 경찰조직 전체에서 이씨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린다. 이씨의 진술로 검찰에 구속된 경찰관은 대부분 지구대 등에 근무하는 하위계급이었다.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이씨가 이들에게만 뇌물을 줬을 가능성은 낮다. 고위 간부들에 대해선 일부러 말을 안 했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대·고시 출신 고위 간부 중엔 이씨에게 고마워하는 이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반면 동료의 피해를 본 순경 출신들은 이씨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한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일지

2010년 6월  서울지방경찰청, 이씨를 룸살롱 미성년자 고용 및 세금 포탈 혐의로 구속

7월  서울중앙지검, 이씨를 42억여원의 세금 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

8월  조현오 경찰청장, 이씨와 유착 의혹 있는 경찰관 66명 적발

9월  이씨, 재판 중 보석금 1억5000만원 내고 석방된 뒤 도주

2011년 7월  이씨, 지명수배 상태에서 룸살롱 운영하다가 검거돼 재구속

11월  서울중앙지법, 이씨에게 징역 3년6개월, 벌금 30억원 선고

2012년 3월  서울중앙지검, 이씨 소환해 경찰관들에 대한 뇌물공여 여부 조사

4월  서울중앙지검, 이씨로부터 뇌물 상납받은 전·현직 경찰관 18명 구속

7월  서울고등법원, 이씨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

9월  서울지방경찰청, 이씨의 불법 도박장 운영, 금품 갈취 혐의 수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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