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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진단] 전문가에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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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03년 한반도는 제2의 북핵 위기를 맞을 것인가. 북한이 지난해 10월 핵 개발을 시인한 이래 북핵 사태는 미국과 북한 간의 정면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 도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 노무현(盧武鉉)정부 출범을 맞아 한.미, 한.일, 한.중 관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돈 오버도퍼(미국.존스홉킨스대)교수와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일본.시즈오카대)교수, 쑹청유(宋成有.중국.베이징대.동북아연구소)교수를 통해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흐름을 짚어봤다. 다음은 서면질의에 대한 3인의 답변을 좌담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북핵사태

-미국이 추진하고 있듯이 북한 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이관, 대북 경제봉쇄 조치를 취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보십니까.

▶돈 오버도퍼=미국이 채찍만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이에요. 1994년 핵 위기 때도 미국은 북한에 대해 채찍과 당근을 혼합해 결국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어요. 또 남한과 일본.중국 등 동북아 3국도 미국의 대북 압박 일변도 정책에는 반대하고 있어요. 내가 지난해 11월 도널드 그레그 전 대사와 함께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관리들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보장할 경우 농축 우라늄 핵 개발을 중단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했어요. 당사자인 남한은 물론 일본과 중국이 '조용한 외교'를 통해 부시 행정부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즈미 하지메=일본이 기존의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과 별도로 북.일 안전보장협의 개최를 북한에 강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대북 경제지원과 함께 북한의 아시아개발은행(ADB) 가입 등의 당근을 제시해야 합니다.

▶쑹청유=북핵 문제를 평양 입장에서 볼 필요가 있어요. 미국이 북.미 제네바 합의에서 약속된 대북 중유 공급을 중단하고 전쟁위협을 제기하자 북한이 항의 표시로 핵시설 봉인을 제거한 것입니다. 지금 북핵 문제가 너무 워싱턴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한.중이 좀 더 긴밀히 협력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영변 핵시설을 폭격할 것으로 보십니까.

▶이즈미='끝장을 보는' 북한 지도부의 기질을 감안할 때 북한은 미국을 겨냥해 한층 '협박 수위'를 높일 겁니다. 북한이 외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핵 개발을 계속할 경우 안보리를 통해 대북 경제제재를 취할 수밖에 없어요. 일본도 경제제재에 동참할 것입니다. 또 최악의 경우 미국이 영변 핵 시설에 대해 '외과수술적 폭격'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어요.

▶오버도퍼=북한이 상황을 악화시키면 미국도 단계적으로 대응 수위를 높일 겁니다. 우선 경수로 사업을 중단시키고 북핵 문제를 안보리로 이관, 대북 경제봉쇄 조치를 취할 겁니다.

▶쑹청유=만일 북핵 문제가 안보리로 넘어가 대북 경제제재를 논의한다면 중국으로서는 기권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 외교관계

-일부 관측통들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수평적 한.미 관계'를 주장한다는 점을 들어 한.미 관계가 불편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오버도퍼=지난해 7월 서울에서 노무현 후보를 만났습니다. 盧후보는 "한국이 상당히 변했으므로 한.미 관계도 변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를 변화시킬지는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또 한.미 관계를 변화시키려면 한국민의 견해 못지않게 미국민의 견해 또한 중시할 필요가 있어요. 盧당선자가 방미 경험이 없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부시 대통령도 해외방문 경험이 거의 없는 인물이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외국 정상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요. 또 특정 사안에 대해 부시 대통령과 盧당선자의 견해가 다르더라도 인간적으로 친분을 맺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봐요. 외교에서 이 같은 현상은 아주 흔한 일이에요.

▶이즈미=노무현 차기 정부와 부시 행정부 간에 어느 정도의 마찰 가능성은 피할 수 없다고 봐요. 노무현 정부가 91년 채택된 '남북 비핵화공동선언' 이행을 북측에 강력히 요구하지 않는 한 부시 행정부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또 미국이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선에 호응할 가능성은 있지만 한국민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개정은 곤란할 것입니다. 따라서 한.미는 다소 '불편한 관계'를 지속할 공산이 큽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일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요.

▶이즈미=과거 정치 및 경제 교류 중심이었던 한.일 관계는 문화.사회 교류를 중심으로 하는 '담담한 관계'로 바뀌어 갈 것으로 봅니다. 양국이 다층적인 한.일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98년 채택한 '한.일 공동선언'을 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도 그리 순탄치 않을 것 같습니다. 역사인식을 둘러싼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을 걸로 봅니다.

-후진타오(胡錦濤)총서기 시대를 맞아 북한과 중국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요.

▶쑹청유=북.중 특수 관계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양국은 사회제도와 정치체제가 유사한 '동반자'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해 공산당 16차 당대회에서 '시대와 함께 나아간다(與時俱進)'는 방침을 채택했어요. 중국은 전통적인 중.북 우의를 강화하면서 그때 그때 상황을 보아가며 적절히 조정해 나갈 것으로 봅니다.

*** MD 효과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2004년 알래스카에 미사일방어망(MD)을 실전배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한반도에도 MD를 배치하려 할까요.

▶오버도퍼=지난해 말 발표된 MD는 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것입니다. MD 배치에 찬성하는 일본은 미국과 손잡고 연구.개발을 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 계획에 반대하고 있어요. 주한미군 방어용으로 한국에 배치되는 것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장거리 미사일 방어망이 아니라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한 단거리 미사일 요격체계로 알고 있습니다.

▶쑹청유=중국에 미국의 MD 프로젝트는 '양날의 칼'이에요. 미국은 겉으로는 태평양 연안지역과 아시아권 동맹국 방어를 위해 MD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공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어요. 또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뒤 이를 MD추진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중국을 겨냥한 것입니다. 일부 미국 인사들은 벌써부터 '중국 위협론'을 대놓고 거론하는 실정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대량살상무기 경쟁을 할 뜻이 없어요. 따라서 중국은 인접국가는 물론 모든 국가가 MD에 참여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의 MD 참여도 바라지 않습니다. 특히 중국은 과거사를 감안, 일본의 MD 참여를 크게 우려하고 있어요. 같은 인접 국가지만 한국과 일본의 MD 참여는 다소 성격이 다른 것으로 중국은 보고 있어요.

*** 주한미군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 한국 내 반미 시위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반미 시위가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감축과 기능 축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오버도퍼=한국 사회에서 급격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어요. 지난해 7월 이화여대와 고려대 학생들을 만났는데 학생 대부분은 북한을 '적이 아니라 불쌍한 친척'으로 인식하고 있더군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감소하면 주한미군의 감축을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북한 핵 위협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곤란하죠. 한국민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미국은 70년대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부터 주한미군 철수를 계획해 왔어요. 또 90년대 초 아버지 부시 대통령 재임기간 중 주한미군 감축 계획이 수립됐지만 93~94년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지는 바람에 계획이 중단됐어요.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군론이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양빈(楊斌) 체포로 막을 내린 북한의 신의주 경제특구는 올해 재가동될까요. 또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이 북.중 국경 지대에 탈북자 수용소를 건설할 계획은 없는지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언제쯤 이뤄질까요.

▶쑹청유=북한의 신의주 경제특구는 그 자체로도 성공 가능성이 낮을 뿐더러 랴오닝(遼寧)과 중국 동북3성 경제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어요. 경제특구를 성공시키려면 북한은 중국의 개혁.개방 사례를 참고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 북한이 추진하는 4개 특구 중 개성특구의 성공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개성은 서울과 인접해 있어 자금과 선진기술 및 경영 노하우를 끌어들여 단시간 내 실효를 거둘 수 있어요. 탈북자 수용소 건설은 임시 방편에 불과합니다.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이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경제를 회생할 수밖에 없어요. 탈북자는 중국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문제입니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적절한' 상황이 되면 중국을 방문할 것으로 봅니다.

진행.정리=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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