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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 女論

공창제 폐지 운동 앞장섰던 김말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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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대학 교수

“인신매매 금지령이 포고되자 유곽의 여인들이 자유인이 되어 거리로 나왔지만…그날부터 재워주는 곳도 먹여주는 사람도 없는 형편이었어요(…) 전과 마찬가지로 여인들은 빚을 얻어 쓰고 포주는 여인을 착취하고 유곽은 훌륭히 부활을 하였지요. 공창 폐지 연맹이 조직된 원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공창을 폐지하자 그러나 공창을 근본적으로 구원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자는 데 우리 연맹의 목적이 있는 거야요.”(김말봉, ‘화려한 지옥’)

 1930년대부터 소설가로 활동했던 여성 작가 김말봉(金末峯)은 해방 직후 폐창(廢娼)운동에 온 힘을 쏟았다. 폐창운동은 1916년 일제에 의해 강제 도입된 공창제를 ‘일제의 잔재’로서 청산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1946년 6월 조선부녀총동맹은 ‘공사창 폐지를 위한 대책 좌담회’를 열고 성판매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생활대책 마련과 이들에 대한 인격 존중의 태도를 주장했다. 그리고 8월에 ‘폐업공창구제연맹’을 결성해 성매매여성들의 갱생 운동에 앞장섰는데 이 단체의 회장을 맡은 것이 김말봉이었다.

 ‘화려한 지옥’은 김말봉이 폐창운동을 하던 시기에 ‘부인신보’에 연재했던 소설로 공창이었던 주인공 오채옥이 갱생하는 과정을 그렸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이듯 김말봉은 단순히 공창제 폐지만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공창들의 폐업 후 갱생을 위한 지원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성매매 여성들이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근본적인 폐창운동이기 때문이다.

 최근 강력 성범죄가 언론에 과잉 노출되면서 ‘소외된 남성들의 성욕 해소’나 ‘성범죄의 근절’을 위한 대책으로 공창제의 도입이 다시 거론되는 듯하다. 이런 주장은 결국 성폭력 범죄를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 남성들이 성욕을 해소할 곳이 없어서 저지르는 사건’으로 한정해 버림으로써 우리의 일상 속에 만연해 있는 수많은 성폭력들은 은폐해 버린다. 그런 편협한 시각으로 공창제를 추진해 봤자 성범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한편 성매매가 근절되지 않는 현실을 근거로 공창제 도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집창촌 폐쇄 후 성판매 여성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재론의 여지는 있다. 단 성매매를 허용하든 금지하든 간에 이 논의 과정에서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성판매 여성들의 인권과 생계다. 왜 그들이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가를 사회구조적으로 점검하고 이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