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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순례길, 500여년 전 중세로 시간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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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돌고 도는 것일까. 루터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 아이슬레벤에서 운명처럼 최후의 설교를 마치고 숨을거뒀다. 아이슬레벤에서 그는 여전히 종교개혁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었다. 루터의 동상 오른쪽의 종탑은 그가 마지막 설교를 한 성 앤드루 교회다.

족쇄란 건 때론 눈에 보이지 않는다. 좋은 족쇄가 있을까마는, 가장 나쁜 족쇄 중 하나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주술’처럼 채워져 버린 족쇄다. 교회가 면죄부를 남발했던 15세기가 바로 그랬다. 족쇄를 찬 건 무력한 신도들이었고, 열쇠를 쥔 건 교황과 사제들이었다. 종잇조각에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고 적고, 그걸 거금에 팔았다. 신의 이름으로…. 모두들 침묵했다. 대들어선 안 되는 절대자였고 교회였고 교황이었다.

 그 족쇄를 부숴버린 게 독일의 종교학자 마틴 루터(1483~1546)다. 면죄부는 틀려먹었다고, 교회는 개혁돼야 한다고…. 그게 1517년 종교개혁을 촉발한 ‘95개조 반박문’이다.

교회의 부패를 정면으로 꼬집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1518년에는 라틴어 원본을 읽지 못하는 일반 신도들을 위해 독일어 요약본도 출간됐다.

 루터는 설득했다. 개인에게도 믿음의 자유가 있고, 진심으로 믿으면 면죄부 따위는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서를 읽기 쉬운 독일어로 번역했고, 문맹을 깨치기 위한 학교를 세울 것을 건의했으며, 여성도 배워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그릇됨 앞에서는 물러섬이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도했든, 아니든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해 개인주의와 근대화의 씨앗을 뿌렸다. 2017년은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을 촉발(1517년 10월31일)한 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해서 독일관광청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를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루터 10년’으로 정했다. 올해는 그 5년째 되는 해다. 그 사이 루터가 뿌린 개혁의 정신이 얼마나 현대에 되살아났을까. 그 현장으로 week&이 다녀왔다.

글·사진=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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