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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1억5000만원 체납자 사무실엔 1억짜리 이우환 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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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금 1억5000만원을 체납한 인터넷교육업체 A사. 지난달 이 회사 서울 본사에 국세청 숨긴재산 무한추적팀 조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조사관들은 사업장을 힘들여 수색할 필요가 없었다. 사무실 벽에 떡하니 목표물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가로 100㎝, 세로 80㎝ 캔버스에 두 개의 점. 생존한 국내 미술가 중 인지도 1위 작가인 이우환씨 작품 ‘조응’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이 업체가 국내 경매회사에서 1억원에 낙찰받은 작품이다. 이우환 작가는 2007년 ‘점으로부터’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94만4000달러(당시 약 18억원)에 낙찰돼 생존 한국작가 중 최고가 기록을 세운 거장이다. 국세청 조사관이 그림에 노란색 압류딱지를 붙이려고 하자, 놀란 A사 대표가 막아섰다. A사는 체납세금 전액을 한꺼번에 납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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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세청은 지난달 고액체납자 30명의 집과 사무실을 수색해 23점의 미술품을 압류했다고 4일 발표했다. 압수된 미술품의 평가액은 확인된 것만 총 3억5000만원에 달한다. 체납자가 보유한 기록은 있지만 실물을 찾지 못한 미술품은 계속 추적 중이다. 국세청이 체납세금 징수를 위해 미술품 기획 수색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대지 국세청 징세과장은 “부동산·금융자산이 아닌 골동품, 미술품으로 재산을 숨기는 트렌드가 있다는 게 확인돼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고 말했다.

 수천만, 수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이들은 세금 낼 돈은 없어도 고가 미술품을 소장할 여유는 있었다. 미술품은 숨기기 쉽고, 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아 재테크 수단으로도 제격이었다. 종합소득세 5000만원을 체납한 소아과 병원장 B씨는 조선 후기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의 ‘영모도’(7000만원)를 집에 걸어뒀다가 압류당했다. 한 경매회사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전광영 작가의 대형 작품 ‘집합’에도 노란 딱지가 붙었다. 3000만원이 없다며 세금을 안 냈던 사업가 C씨가 9000만원에 낙찰받아 보관해온 작품이었다. 일본 조각가 히로토 기타가와의 ‘린카 수오’(4000만원)도 4000만원을 체납한 법인 사무실에서 발견돼 압류됐다. 압류 미술품은 체납자가 세금을 내지 않으면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공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국세청은 체납자가 수입해 왔지만 아직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구사마 야요이의 ‘펄른 플라워’(1억2000만원)와 데미언 허스트의 ‘부티릭 앤하이드라이드’(1억2000만원)를 추적 중이다. 또 68억원을 체납한 유흥업소 운영자가 프랑스에서 사온 유명 악기제작자 장 밥티스트 비욤의 첼로(1억2000만원)도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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