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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큰소리치면 지는 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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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2년 전인 2010년 10월 4일 기획재정부 회의실. 재정부를 상대로 현장 국감이 열렸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첫 질의자로 나섰다. 그는 전날 재래시장에서 직접 사온 배추와 양배추·상추를 들고 나왔다.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번쩍였다.

 “(배추를 들어 보이며)이 배추가 얼마짜리인지 아십니까?”(전 의원)

 “상당히 비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윤증현 당시 재정부 장관)

 “얼마 전에 신문 머리기사로도 났잖아요. 이게 1만5000원짜리 배추입니다.”(전 의원)

 전 의원은 “물가가 그야말로 폭등 수준을 넘어서 물가 폭탄이 서민경제를 완전히 초토화하고 있다”며 정부를 매섭게 추궁했다. 당시는 신선식품 가격이 폭등하면서 ‘금(金)배추’ ‘금상추’라는 말까지 나돌 때였다. 전 의원의 ‘활약상’은 다음날 신문에 큼지막한 사진과 함께 게재됐다. 일부 언론은 ‘국감 인물’로 그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재정부 관료들은 그해 국감을 단지 ‘배추 국감’으로만 기억한다. 물가정책에 질의가 몰리면서 다른 사안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다. 덕분에 물가와 크게 상관없는 재정부의 다른 실·국 공무원은 국감장의 무뎌진 공격에 쾌재(?)를 불렀다는 후문이다. 재정부의 한 관료는 “언론에 부각되는 것도 좋겠지만 ‘한건주의’식 국감이 국정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오늘부터 19대 국회 첫 국감이 시작된다. 국회가 상시 상임위 체제로 바뀌면서 국감의 긴장도가 다소 떨어진 건 사실이다. 그래도 국민의 대표가 국민의 공복(公僕)에게 기관별로 집중해서 묻고 따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감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19대 국회는 초선 의원이 거의 절반이다. 생애 첫 국감을 앞두고 ‘열공 모드’에 빠져 있을 것이다. 이들은 국감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 부처에 대한 의원들의 국감 요구 자료를 훑어봤다. 어떤 자료를 요구했는지를 보면 의원과 보좌관의 내공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아직은 ‘글쎄요’다. 통계청 홈페이지에 가면 다 있는 공개 데이터를 굳이 부처에 요구한 의원들도 있었다. ‘○○에 대한 최근 ○년간 자료 일체’ 식의 자료 요청도 많았다. 이건 아직 ‘정밀 타격’할 준비가 안 됐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정책 판단의 근거나 향후 정책 방향을 따지는 자료 요구는 아쉽게도 별로 없었다.

 경제부처의 관료들에게 물었다. 대체 어떤 의원이 당신을 긴장하게 하느냐고. 한 관료는 “정확한 통계나 근거를 들이대면서 논리적으로 정책을 비판하면 우리도 아프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의원들의 공통점은 괜히 목소리로 힘 빼지 않는다는 거다. 호통 한번 치면 속은 잠깐 시원할지 모르지만 듣는 관료들은 고개 숙이고 웃는다. 빈 깡통이 요란한 법이라고, 이런 의원일수록 콘텐트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임기 말 관가(官街)를 바짝 긴장하게 하는 진짜 ‘국감 인물’이 이번에 많이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