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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날밤 사우나 데려가…" 中관광객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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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4일 한국을 찾은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 20여 명이 “관광 첫날 사우나에서 하룻밤을 지낼 뻔했다”며 주한 중국대사관을 찾아가 항의한 일이 벌어졌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새벽 입국한 요우커 28명은 “호텔에서 묵을 줄 알았는데 가이드가 별다른 설명 없이 사우나로 안내했다”며 서울 중구 중국대사관 영사부를 찾아 항의했다.

 4박5일간 제주도와 판문점 등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3일 밤 중국 톈진(天津)을 출발한 관광객들은 4일 오전 1시30분쯤 청주공항에 도착했다. 2시30분쯤 공항을 나온 뒤 가이드 강모(43)씨가 “인근 사우나에서 쉰다”고 안내했다. 그러자 관광객들은 “애초 계약 내용과 다르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중국 여행사와 함께 이번 여행을 진행한 H여행사 측이 급하게 경기도 파주의 한 호텔을 예약하고 이동을 제의했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우리를 홀대한다”며 중국대사관으로 찾아갔다.

 관광객들은 이번 여행에 1인당 5000위안(약 88만원)을 냈다. 가이드 강씨는 “관광객들이 ‘1박을 못했으니 5분의 1인 1000위안(17만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중국대사관의 중재로 중국 여행사가 1인당 500위안(약 9만원)을 배상하는 걸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H여행사 측은 “청주공항 인근 숙박시설은 모두 차 있었고 일정상 아침 일찍 관광이 시작돼 첫날은 사우나에서 잠시 쉬는 걸로 돼 있었다”며 “중국 여행사가 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 중국인 관광객은 “분명히 출발 전에 4박 모두 호텔에서 투숙할 거로 알고 있었다”며 “한국에 와서 난데없이 사우나에 가자고 해 놀랐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은 이날 오후 제주도로 가 관광 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폭증하는 요우커에 비해 부족한 숙박시설 등 한국 관광의 열악한 인프라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지난 추석 연휴 동안 관광업계는 ‘요우커 특수’를 누렸다. 추석 기간이 중국의 황금 연휴와 겹쳤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추석과 10월 1일 건국기념일 연휴가 이어지며 지난달 29일부터 7일까지 최대 9일간 휴일이다. 많은 요우커가 이 기간에 한국을 찾았다. 실제로 추석 연휴가 시작된 지난달 29일부터 3일까지 중국인 관광객은 제주도에만 3만2939명이 찾아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추석 연휴(2만663명)보다 59.4%(1만2276명)나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을 맞을 시설은 무척 부족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외국인 관광객은 연평균 10% 이상 증가세를 보였지만 관광 숙박시설 증가율은 3~4%에 그쳤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중 80%는 수도권을 찾았으며 총 3만6000여 실의 객실이 필요했다. 하지만 공급은 2만8000실에 그쳐 8000실이 부족했다.

 이계희(관광학) 경희대 교수는 “단체관광객 수용이 가능한 객실이 서울 2만4000, 인천·경기 1만3000, 강원지역 2만, 부산 7800여 개 정도에 불과해 연휴 기간에 중국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수용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영세 여행사들의 열악한 관광상품도 문제다. 국내 한 메이저 여행사 관계자는 “문제가 된 H여행사의 4박5일 일정에 5000위안 정도 가격으로는 숙박시설이나 음식 등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사들이 단기적 이익을 위해 가격 덤핑 경쟁으로 관광상품의 질을 떨어뜨리게 되면 중국 관광객들에게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줘 결국 요우커들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호·손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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