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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돈 빌려가세요” 요즘 은행 가면 봉급생활자가 ‘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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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4일 서울 시내 한 하나은행 지점에 직장인 대출 안내책자가 비치돼 있다. 신용도가 좋은 직장인은 이 은행에서 최저 연 4.9%에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 [김도훈 기자]

증권사에 다니는 이모(39)씨는 요즘 부쩍 신용대출 광고에 시달린다. 일주일에 10여 건 들어오는 스팸 문자도 모자라 사무실로 대출 광고 팩스까지 들어온다. 최근엔 아예 전단지를 들고 사무실을 찾아다니는 은행 영업직원도 만났다. 그는 “친하게 지내는 은행 지점장도 ‘신용대출 받을 직장인 좀 소개해달라’고 조르곤 한다”며 “연리를 4%대로 해주겠다는 걸 보면 경쟁이 엄청 치열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월급쟁이’ 잡기에 나섰다. 불황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흔들리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직장인·공무원이 최고 우량 고객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우대금융 상품이 쏟아진다. 매달 고정 수입이 있는 연금 수급자까지 ‘포섭 대상’이 됐다. 직장인 우대 분위기는 특판 상품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올 하반기 들어서만 우리은행이 ‘iTouch 직장인 우대 대출’을, NH농협은행은 ‘NH직장인 월복리적금’을 출시했다. 일정액 이상의 소득만 증명하면 대출 금리를 낮게는 연 4% 중반대로 깎아주고, 적금 금리는 연 0.7%포인트까지 얹어준다.

 공무원 우대 상품은 더 성황이다. 최근 석 달 사이에 신한은행의 ‘참수리사랑대출’(경찰 공무원 대상 신용대출), 하나은행의 ‘나라수호 국군장병 적금’, 외환은행의 ‘가디언론’(소방·교정·경찰직 공무원 대상) 등이 나왔다. 연리 4.0%에 신용대출을 약속하는가 하면(참수리사랑대출), 무료 상해보험 가입을 내세우기도 한다(가디언론).

 직장인·공무원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로 안정성이 꼽힌다. 최근 자영업·기업대출 연체율이 크게 올라가는 반면 대기업 회사원이나 공무원 대상 신용대출 연체율은 흔들림 없이 최저 수준이다. 박해표 KB국민은행 여신상품부 팀장은 “은행 전체 신용대출 연체율은 1% 안팎이지만 교사 대상 신용대출 연체율은 0.15%, 공무원 대상 신용대출 연체율은 0.1%에 불과하다”며 “연체 걱정이 적은 직장인을 잡으려는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때문에 돈을 빌려가는 사람도, 맡기는 사람도 줄어든 것도 은행이 직장인에게 매달리는 이유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주택 거래가 되지 않으니 주택담보대출을 늘릴 수도 없고, 소득이 일정치 않은 이들은 예금을 들어도 금방 해지한다”며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예치하고 꾸준히 갚는 직장인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대상 신용대출 금리가 자꾸 내려가는 것도 그래서다. 회사가 지급 보증을 서는 협약 상품은 신용대출임에도 연 4% 초반의 금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윤종국 하나은행 리테일사업부 차장은 “입행한 지 16년인데 연 4%대 신용대출은 처음 본다”며 “수익이 낮더라도 부실 위험을 줄이는 게 은행의 최대 과제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월수입이 일정한 연금 수급자까지 귀빈 대접을 받을 전망이다. 하나은행은 4일 4대 공적연금(국민·공무원·군인·사학연금)이나 이 은행에서 출시한 연금을 받는 은퇴자를 대상으로 수시입출금계좌 ‘행복연금통장’을 내놨다. 연금을 이 계좌로 수령하기만 하면 언제고 돈을 넣고 빼도 잔액에 대해 연 2.2~2.5%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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