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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어리지만 … 나는 동물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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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세계 동물의 날인 4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명예 사육사’로 임명된 신수성씨가 아기 사자를 안고 있다.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신씨는 2008년부터 매주 에버랜드 동물원을 찾아 동물 그림을 그려왔다. [뉴시스]

소년은 동물원이 좋았다. 서너 살 때 어머니가 끄는 유모차를 타고 처음 동물원을 갔을 때부터였다. 등에 혹이 난 낙타는 신기했고 싸움을 하듯 서로 입을 크게 벌려 포효하는 호랑이들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매주 한 차례 이상 혼자서 동물원을 찾았다. 집에 와선 그림책 속의 동물을 따라 그리며 동물원에서 본 동물들을 떠올렸다. 동물화가(animalier) 신수성(27·서울 용산구 한남동)씨의 이야기다.

 신씨는 일곱 살 정도의 정신연령을 지닌 발달장애인이다. 신씨의 부모는 아들의 장애 사실을 유치원에 다닐 무렵 알게 됐다. 신씨의 어머니 이정례(51)씨는 “우리 부부가 재일교포 출신이라 아이도 한국말이 서툰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유치원 교사가 ‘발달장애가 의심된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중학교 때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

 부모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이 없던 신씨를 변하게 한 곳은 동물원이었다. 틈만 나면 동물원을 찾아가 앵무새, 펠리컨, 사막 여우, 기린 등 다양한 동물을 관찰했다. 동물원은 부모의 손을 잡고 가거나 혼자 찾았다.

 그는 동물 우리 한 곳에서 1시간 가까이 머물며 동물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봤다. 그러곤 머리에 새겼다. 집에 돌아와서는 동물의 모습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그는 “동물들이 먹고 생활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며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이렇게 그린 동물 수만 해도 256마리에 달한다.

신수성씨가 그린 침팬지 그림.

 동물과 교감하며 발달장애가 호전된 그는 대학 측의 배려로 청강문화산업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2008년 2월 대학을 졸업한 뒤부터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연간회원에 가입했다. 이후 이틀에 한 번꼴로 동물원을 찾았다. 사육사들도 자주 방문하는 신씨를 눈여겨봤다. 동물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관찰 능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에버랜드 서정식(35) 사육사는 “신씨가 ‘쟤 아파 보인다’ ‘피곤한 것 같다’고 지적하는 동물 대다수가 실제 수의사에게서 치료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이후 사육사들도 신씨에게 직접 동물을 만지게 하고 설명도 해주었다. 자연스럽게 ‘PAT(Pet as theraphy·사람과 동물 간 상호교감을 이용한 치료법)’ 치료가 이뤄진 것이다. 이후 신씨는 사육사들을 ‘형’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따랐다. 내성적이던 성격도 활달하게 변했다.

 신씨는 지난 7월 서울 명륜동의 한 화랑에서 동물 그림(70여 점)으로 전시회를 열고 동물화가로 정식 데뷔했다. 작품은 생동감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씨의 어머니는 “에버랜드 사육사들이 도와준 덕분에 아들이 사회성을 갖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에버랜드 동물원은 4일 세계 동물의 날을 맞아 신씨를 ‘명예 사육사’로 임명했다. 에버랜드 권수완 동물원장은 “신씨가 동물전문 화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용인=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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