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깡통주택 대란' 뇌관으로 지목된 4지역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경기도 파주·용인시, 인천 청라·영종지구가 깡통주택의 ‘트리거(trigger) 4’로 지목됐다. 집값이 주택 대출도 갚지 못하는 수준으로 떨어질 위험이 커 금융·부동산 시장 혼란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리거는 권총 방아쇠처럼 특정 현상을 일으키는 촉매제를 말한다.

 부동산 시장 상황에 정통한 전문가 120여 명으로 구성된 부동산시장 모니터링그룹(RMG)은 4일 3분기 보고서를 내고 이같이 밝혔다. RMG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건국대 부동산·도시연구원이 운영하는 전문가 포럼이다. RMG는 “파주 등 4곳은 아파트값이 분양가보다 떨어지고 거래도 부진해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가 대두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진단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네 곳이 ‘트리거 4’가 된 이유는 두 종류로 나뉜다. 파주·용인은 중대형 아파트의 몰락이, 청라·영종은 기반시설 부족이 원인이다. 2009년 5억원에 분양한 파주 운정신도시 132㎡(40평) 아파트는 최근 거래가가 3억8000만원으로 하락했다. 2억원을 빌려 이 아파트를 분양받은 주부 이모(43)씨는 “원금은 못 갚고 이자만 내고 있다”고 말했다. 출구도 없다. 회사원 장모(46)씨는 “서울 동작구 집을 전세 주고 파주 아파트 잔금을 냈는데 지금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1년 넘게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RMG에서 경기 북부 지역을 총괄한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파주에선 가계부채 문제가 집주인을 넘어 세입자·은행에 영향을 주는 2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거치 기간이 끝나면서 이자만 내던 대출자가 원금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 왔고, 거래 부진으로 예전 집을 못 팔아 전세금을 빼주지 못할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전국적으로 원금상환이 시작된 주택담보대출은 올해 19조원, 내년 25조원, 2014년 37조원이다.

 용인은 전체 아파트의 70% 이상이 중대형이어서 심리적 위축이 더 크다. 용인 수지구에선 최근 1년간 중소형(전용 85㎡ 이하) 아파트값은 2.14% 내렸으나 중대형은 6% 하락했다. 용인의 한 은행 지점 차장은 “아파트값이 분양가보다 낮아져 원금 갚기가 힘들다며 추가 금리(0.5%포인트)를 물면서 상환을 연장하는 고객이 있다”고 말했다. 손재영(부동산학) 건국대 대학원장은 “용인은 전형적으로 서울의 종속 변수인 시장”이라며 “서울이 살아나지 않으면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태”라고 우려했다. 인천의 청라·영종지구는 각종 개발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아파트값이 분양가 밑으로 하락했다. 인천시 등을 상대로 집단 소송이 제기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근식 건국대 연구원은 “접근성이 낮은 영종지구는 사실상 고립된 시장이어서 자체 회생 동력이 적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라지구는 송도 신도시를 모델로 삼아 대형 평형을 많이 지은 것이 이중고를 낳고 있다.

 ‘트리거 4’가 속한 경기도는 전체적으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빚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경기도의 아파트값(아파트 실거래가 지수 기준)은 2007년 1월에 비해 1.7% 올랐다. 같은 기간 주택 대출은 44.5%나 급증했다. 경기도 주택담보대출(은행권 기준)은 102조원을 넘었다. 같은 기간 서울은 아파트값이 3.2% 오르고 주택 대출은 12.3% 늘었다. RMG를 총괄하는 손재영 원장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아파트는 분양가상한제를 피해 2007년 밀어내기 식으로 쏟아져 나온 아파트”라며 “잘못된 규제가 부른 참상”이라고 말했다. 이상영 교수는 “이를 방치하면 깡통주택발 가계부채 대란이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RMG는 보고서를 통해 양도세 중과 폐지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서울에선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경기도에선 보금자리주택 공급 조절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부동산시장 모니터링그룹(RMG) 지난해 3분기 부동산학과 교수, 부동산 개발·금융 전문가, 중개업자 등 120여 명으로 구성된 협의체. 통계 분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부문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를 통해 시장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분기마다 발간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