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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세베의 기적으로 골프 사상 최대 역전승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이 “세베!” “세베!” “세베!”를 외치다가 또 눈물을 흘렸다. 시카고의 파랗고 청명한 가을 하늘 위에서 지난해 타계한 유럽의 정신적 지주 세베 바예스트로스가 박수를 치는 듯 했다.

유럽이 골프사에 길이 남을 기적 같은 역전드라마를 만들면서 라이더컵을 지켰다. 유럽은 1일(한국시간) 미국 시카고 인근 메다이나 골프장 3번 코스에서 벌어진 라이더컵 최종일 싱글매치에서 8.5-3.5로 압승을 거두면서 최종 전적 14.5-13.5로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일궜다.

라이더컵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곤 한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미국에 뒤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유럽은 최근 9경기에서 7차례 이겼다.

라이더컵 둘째날까지 유럽은 최악이었다. 필승 조로 꼽은 로리 매킬로이와 그레이엄 맥도웰의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라이더컵에서 유달리 뛰어난 활약을 펼친 루크 도널드와 세르히오 가르시아 무적함대 콤비는 완전히 침몰했다. 유럽은 포볼경기 중반까지 패색이 짙었다. 12-4로 완패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마지막 두 조가 2포인트를 끌어왔다. 특히 마지막 5개 홀에서 모두 버디를 잡으며 한홀차로 승리한 이언 폴터의 모습은 유럽 선수들에게 전율을 일으켰다.

그래도 마지막날 6-10을 뒤집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과거 6-10에서 역전한 경우가 있기는 했다. 1999년 미국은 6-10으로 뒤지다 14.5-13.5로 드라마 같은 역전승을 만들었다. 그러나 홈경기였다. 갤러리의 천둥 같은 응원과 홈팀에 유리하게 코스를 조정하는 라이더컵에서 원정팀은 절대 불리하다. 또 99년 미국은 타이거 우즈, 데이비드 듀발, 필 미켈슨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다가 최종일 실력발휘를 한 경향이 있다. 팀워크가 좋은 유럽은 전통적으로 포볼과 포섬경기에서 강하고 싱글매치에서는 약한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유럽 캡틴을 지낸 닉 팔도는 “라이더컵에선 보름달이 뜰 때 대 역전이 일어나곤 했다”며 역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허튼 희망사항으로 보였다. 모두들 "원정 경기에선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라이더컵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곤 한다. 부진하던 루크 도널드가 미국의 대포 버바 왓슨을 잡은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필 미켈슨에 경기 내내 끌려 다니던 저스틴 로즈는 마지막 두 홀에서 믿기지 않는 퍼트를 거푸 넣으며 연속 버디를 잡아 한 타 차로 역전승했다. 웹 심슨에 경기 내내 끌려 다니던 이언 폴터도 17번 홀에서 기어히 역전에 성공해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일궜다. 경기 시간을 착각해 경기 직전 허둥지둥 경기장에 나타난 로리 매킬로이가 미국에서 가장 좋은 컨디션을 보였던 키건 브래들리를 꺾은 것도 의외였다. 이 대회에서 형편 없는 경기로 단 한 경기 밖에 뛰지 못했던 폴 로리가 6언더파를 치며 페덱스컵 우승자인 1000만 달러의 사나이 브렌트 스네데커를 5홀차로 무릎 꿇린 것도 그랬다.

유럽은 처음 5개 조를 모두 이겼다. 그러나 뒤에 있는 선수들이 너무 약했다. 미국은 잭 존슨과 더스틴 존슨이 승리를 일궈내며 다시 도망갔다. 나머지 조들도 대부분 미국이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철의 심장을 가졌다는 냉정한 선수인 짐 퓨릭이 마지막 2개 홀에서 줄 보기를 하면서 세르히오 가르시아에게 승점을 헌납했다. PGA 투어에서 가장 퍼트를 잘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스티브 스트리커는 17번 홀에서 2m가 안되는 파 퍼트를 넣지 못했다. 지독한 부진에 시달리던 마르틴 카이머는 마지막 홀에서 2m 퍼트를 넣어 14점을 확보, 라이더컵을 지켰다.

마지막 조에서 경기하던 타이거 우즈는 김이 빠졌다. 17번 홀까지 한 홀 차로 앞서고 있었지만 마지막 홀에서 짧은 파 퍼트를 넣지 못해 비길 기회도 얻지 못했다. 타이거 우즈는 이 대회에서 4전 4패를 기록했다.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올라사발이 라이더컵은 소중한 기억과 꿈이 만드는 대회라고 했고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올라사발은 "역전을 할 수 있었다는 진정한 믿음이 있었다. 이 우승은 유럽의 심장 같은 세베의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 유럽 기자들 모두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대회라고 평했다.

시카고=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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