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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그림 같은 음식, 시가 있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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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시간이 돈인 사람들에게 밥을 팔았다. 빨리 먹고 빨리 일하러 가야 하는 사람들. 그래서 아버지는 ‘한 그릇 음식’이 최고의 외식 메뉴라고 믿었다. 빠른 회전을 위해 음식 종류도 늘리지 않았다. “고객을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게 아버지의 원칙이었다. 식당을 물려받은 아들도 아버지의 뜻에 따랐다. 장사는 점점 더 잘됐다. 그리고 꼭 20년이 되던 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모던 코리안 파인 다이닝’이 아들의 새 목표였다. 문화와 예술을 접목시킨 고품격 한식 요리를 세계 무대에 내놓겠다는 거다. 아들의 새 식당에선 음식이 나오는 데에만 두 시간 넘게 걸렸다. “왜 이렇게 복잡하냐” “손해가 뻔할 텐데…” 아버지는 납득이 잘 안 됐다. 그리고 1년여. 이제 아버지는 아들을 인정한다. “깊은 대화를 나누려면 이런 음식이 필요하겠구나.”

‘신선설농탕’ 창업주 오억근(79) ㈜쿠드 회장과 아들 오청(46) 사장. 추석을 앞둔 주말, 아들은 아버지 앞에 추석상을 차려 냈다. 지난해 8월 자신이 문을 연 한정식집 ‘시·화·담’에서다. 그림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부자(父子)의 이야기는 깊어지고 길어졌다.

1 모듬전. 아홉 가지 전 위에 색색의 식용꽃을 얹었다.
2 삼색 송편. 쑥과 백년초로 색을 냈고, 잣·깨·콩으로 소를 만들어 빚었다. 곁들인 차는 송순(松筍) 효소차다.

20전21기…“굶지 않으려 명절도 잊었지”

명절에 빠질 수 없는 음식, 전이 나왔다. 흑임자전, 육원전(동그랑땡), 고추장떡, 감자전, 해물부추전, 녹두김치전, 된장두부전, 단호박전, 새우전 등 아홉 가지 전을 도예작가 이능호의 접시 위에 올려 내놨다. 전 위에는 패랭이꽃, 체리세이지꽃, 로즈마리꽃, 야생딸기꽃, 분홍부추꽃, 금잔화, 토마토꽃, 블루세이지꽃, 고추꽃 등 색색의 식용 꽃을 얹어 장식했다. 눈부터 호사다.

“예전엔 명절도 모르고 살았지. 가족을 굶기지 않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오억근 회장은 1933년 전남 광산군 지죽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했다. 열여섯 살 머슴살이를 시작으로 생업에 뛰어들었다. 열아홉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시장 지게꾼, 연탄배달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중국집 종업원을 거쳐 서른한 살에 서울 보광동에서 중국집을 냈다. 자신의 첫 가게였다. 장사가 제법 잘됐다. 이젠 먹고살려나 싶었는데, 1년 만에 건물 주인이 가게를 비워달라고 했다. 그 뒤로 마흔여덟이 될 때까지 고단한 삶이 또 이어졌다. 시작했다 망하고, 시작했다 망하고…. 아들 셋을 낳아 기르는 동안, 스무 번 넘게 망하고, 또 망했다.

3 말린 과일과 연근칩·우엉칩 등을 올린 주전부리 상. 오억근(오른쪽) ㈜쿠드 회장·오청 사장 부자(父子)의 얼굴을 문지영 작가의 도자기 위에 고운 설탕가루로 그려넣었다.

“명절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으니까, 가족과 추억 남기기 그런 건 상상도 못했지. 너희들한테 지금도 미안하다. 부모 노릇 제대로 못해서….”

하지만 아들의 기억은 그리 팍팍하지 않다.

“어느 해엔가 여름방학 때 포천에 있는 절에 갔었잖아요.” “그래, 아는 사람이 있어서 너희들만 맡기고 왔었지.” “아버지랑 강 건너 그곳 절에 갔던 길이 아직도 생각나요. 형이랑 동생이랑 모두 초등학생일 때였는데, 정말 신났어요.”

고생은 거짓말처럼 끝이 났다. 81년 잠원동에서 기사식당으로 문을 연 ‘신선설농탕’이 이른바 ‘대박’이 난 것이다. 하루에 팔리는 설렁탕이 1000 그릇을 넘어갔다. 손님상에 김치 갖다 줄 틈도 없었다. 오 회장은 상에 매립형 김치통을 설치해 손님이 직접 꺼내 먹도록 아이디어를 냈다.

증편으로 만든 떡 샌드위치. 오이지를 담은 벼루 모양 그릇은 이현규 작가의 작품이다. 오이지 위에 얼음을 얹은 뒤 블루세이지 꽃잎을 살짝 올려 운치를 더했다.

“배가 부르니 지식에 목마르더라”

떡상은 독특했다. 붓글씨가 씌어진 한지를 깔고, 그 위에 떡 샌드위치를 올렸다. 막걸리를 발효시켜 만든 증편 속에 불고기와 야채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다. 마요네즈 대신 잣 소스를 사용했다. 곁들인 오이지는 벼루 모양의 접시에 담았다. 떡 샌드위치 옆에는 먹을 장식으로 놔뒀다. 종이와 먹과 벼루. 서당에서 떡을 해 책거리를 하던 풍습을 연상시키는 장치다.

오억근 회장은 평생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봤다. 고향 서당에서 3년 동안 동냥글을 배워 천자문만 겨우 익혔다. 92년 둘째 아들인 오청 사장에게 잠원동 ‘신선설농탕’을 맡겼다. 성공 길에 접어든 지 10년. 한참 돈 버는 재미에 빠질 법도 했을 텐데, 돌연 식당에서 손을 뗀 것이다.

“생계 걱정이 없어지니까 갑자기 ‘내가 왜 사는가’란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 점점 우울해지고, 나중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지. 참,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거야. 이제 장사도 잘되는데 이런 세상 버리고 죽을 순 없잖아. 내가 왜 이러나, 곰곰이 따져보니 무식해서 그런 거였어. 공부를 안 해서지.”

환갑을 앞둔 아버지는 스물여섯 살 아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철학책을 읽었다. 이해가 안 돼 골치가 아팠다. 안 되겠다 싶어 덮고 우주와 물질과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과학책을 들었다. 논리적이고 명쾌한 과학에서 공부의 재미를 느꼈다. 그 뒤 다시 철학책을 읽었다. 그렇게 3년 동안 여섯 권의 책을 닳도록 반복해서 읽었다. 그제서야 정서가 안정됐다.

“사람은 음식과 지식을 먹고 살아야 돼. 몸엔 음식이, 머리엔 지식이 들어가야 되는데 난 평생 음식만 먹고 살았으니, 지식에 목말랐던 거야.”

오 회장의 본업은 그 뒤로도 줄곧 공부다. ‘사람물리학연구원’이란 연구소까지 차렸다.

오청 사장은 한양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공학도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은퇴를 선언한 이후 아들은 주방에 들어가 설렁탕 끓이는 법부터 배웠다.

“업무 인수인계 과정이 전혀 없었잖아요. 뭘 믿고 그러셨어요?” “설렁탕을 믿었지.”

아버지가 물려준 가게 하나를 아들은 불리고 또 불렸다. 현재 신선설농탕은 직영점 33곳을 비롯해 서울·수도권 42곳에 매장이 있다. 또 ‘신선설농탕’ 뿐 아니라 구이전문점 ‘우소보소’, 한정식당 ‘수련’, 인테리어 브랜드 ‘이노데코’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2001년엔 이를 총괄하는 회사 ㈜쿠드를 세웠다.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한식 세계화를 목표로 고급 한식집 ‘시·화·담’을 이태원과 인사동에서 운영하고 있다.

“내 상상 이상으로 키워놨으니, 참 대단해. 덕분에 나도 회장 자리에 앉았고. 하하.”

풍성한 가을 분위기를 낸 막걸리상. 안주로 내놓은 두부 두루치기를 오리모양 그릇에 담았다. 친환경 오리농법을 연상시키는 소품이다.

기부하느라 강남에 땅 한 평 못 사

술상은 한 폭의 풍경화였다. 실하게 여문 벼 이삭과 삼베옷 입힌 허수아비를 장식해 마치 논 한 마지기를 식탁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쌀막걸리에 두부 두루치기, 더덕절임, 야생돼지감자 장아찌 등이 안주로 올라왔다. 소쿠리 안에는 찐 알감자와 고구마·옥수수·밤, 통마늘구이 등의 주전부리를 담았다. 바쁜 추수철. 땀 흘리는 옆 논 농부에게도 “같이 먹자” 나누고 싶은 새참 상이다.

오 회장은 고생 끝에 얻은 부(富)를 독식하지 않았다. 92년부터 97년까지 당시 KAIST에 있었던 조장희 박사 연구실을 도운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조 박사와는 일면식도 없던 그였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돈이 없어 MRI 연구가 중단될 처지라는 사정을 접하고 무작정 연구실로 찾아갔다.

그의 선행은 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이 된 조 박사가 2007년 본지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연재하면서 알려졌다.

“(…) ‘연구실을 도와주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고, 더구나 그렇게 남루한 차림새의 사람이 나를 돕겠다고 나설 줄은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기부가 활발한 미국에서도 그런 경험을 못했다. 그는 설렁탕 반찬으로 주는 김치만 하루 200만원어치를 쓸 정도로 식당이 잘된다고 했다. ‘그러면 초전도 MRI에 열이 나지 않게 하는 액체 헬륨을 채워주면 좋겠다’고 내가 말했다. 당시 한 달에 한 번씩 액체 헬륨을 보충했는데 그때마다 400만~500만원 들었다. 그는 좋다고 했다. 그때부터 오씨는 97년 내 연구실 문을 닫을 때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그만한 돈을 통장에 입금했다. (…)”(본지 2007년 10월 18일자 31면)

98년 조 박사가 광주과학기술원의 초빙교수로 부임한 뒤엔 외국인 전용식당 건립 기금으로 1억50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외국인이 오면 식사 대접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조 박사의 고민을 듣고서다.

이렇게 수억원씩 기부할 형편이라 해서 돈이 펑펑 넘쳐났던 건 아니었다. 오 회장은 평생 자가용 한 번 못 굴렸고, 강남 한복판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강남에 땅 한 평 못 샀다. 부자지간의 돈 계산도 확실히 했다. 95년 오청 사장이 도곡동에 지점을 내면서 아버지에게 3억원을 빌렸다. “군대 월급까지 모았던 철저한 품성을 믿고 빌려줬다”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1년2개월 만에 이자까지 쳐서 모두 갚았다.

아버지의 ‘나눔 DNA’는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오 사장은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 소사이어티’의 회원이 됐다. 1억원 이상 기부·약정한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자식 보라고 기부한 건 아니었는데…” 같은 길을 걷는 아들을 아버지는 돌려돌려 칭찬했다.

꿀맛 나는 농부의 밥상을 재현한 상. 아홉 가지 찬을 광주리에 담아냈다. 뜨끈뜨끈한 밥 한 술에 열무된장무침 한 젓가락척 걸쳐 먹고 싶어진다.

귀 얇은 부자…“남의 말 잘 듣는 게 성공비결”

밥상은 ‘농부 들밥’ 컨셉트로 차렸다. 쇠고기볶음을 올린 두부전. 잣을 박은 김말이 장아찌, 오이소박이, 연근장아찌, 머윗대 들깨무침, 표고버섯볶음, 창난젓갈, 보리를 넣은 열무된장무침 등 아버지가 좋아하는 반찬 아홉 가지를 옹기 그릇에 갖추갖추 담았다. ‘시·화·담’의 반찬은 먹는 사람의 취향에 맞춘다. 외국인에게는 호박선·잡채 등 비교적 냄새가 덜 나는 찬을 내고, 채식주의자가 오면 고기 재료는 뺀다.

부자(父子)가 남의 눈치를 볼 때가 있다. 먹는 사람의 입맛에 맞출 때다. 먹는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음식을 만든다. 설렁탕 전문점을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다.

1 진짜 떡이 들어있는 떡갈비 ‘솔잎 가리병’. 갈비살 속에 가래떡을 집어넣었다. ‘가리병’은 떡갈비의 옛 이름이란다.
2 녹두전병. 초간장을 스포이드에 담아내 전병 위에 뿌려 먹도록 했다.
3 홍시소스죽순채. 드라마 ‘대장금’에도 등장했던 음식이다.
4 서울 이태원동 ‘시·화·담’에선 도예 작가들의 그릇을 사용한다. 사진은 와인 보관 용으로 만든 문병식 작가의 작품인데, 그대로 두고 봐도 좋아 그냥 비워뒀다.
5 ‘시·화·담’엔 꽃을 올린 음식이 많다. 주방 뒤 베란다에서 로즈마리·금잔화 등 식용꽃을 키워 쓴다.

“처음엔 기사식당이었어. 택시기사들이 ‘근처 설렁탕집에 손님이 많으니 여기서도 설렁탕을 팔라’는 거야. 시간 없는 기사들이 기다렸다 먹기 힘드니까 말이지.”

맛 내는 비법도 손님들을 통해 배웠다. 요리 도중 깜빡 잠이 들어 평소보다 설렁탕을 오래 끓인 날, 손님들은 맛있다며 반색했다. 그 뒤로 신선설농탕 표준 조리시간은 길어졌다. 고기 양도 손님들의 반응을 보고 맞췄다.

“택시기사들이 참 고마워. 음식에 대해 조언도 많이 해줬고, 방방곡곡 다니며 식당 홍보도 해줬지.”

아들은 냄비 들고 설렁탕 사러 온 손님들에 맞춰 94년 포장용기를 개발했다. 국물음식에 웬 포장이냐며 주변에선 말렸지만, 포장판매 이후 매출은 30%나 늘었다. 스스로를 “귀가 얇은 CEO”라는 아들에게 가장 많이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역시 아버지다.

“일단 밥이 맛있어야 돼. 새 쌀로 밥을 하면 향기가 나. 냄새 맡아보면 금방 알지. 꼭 도정한 지 1주일 이내 쌀을 써라. 음식은 언제든지 적게 준비하고. 팔다가 떨어지면 손님한테 이해를 시키고….”

“네, 네….” 설렁탕집 경력이 어느새 아버지 두 배에 이른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간섭’을 흔쾌히 받는다.

추석상을 앞에 둔 오억근(왼쪽) 회장과 아들 오청 사장. 가난 이야기, 나누는 얘기를 하면서 두 사람은 연방 웃음을 터뜨린다.

이날 추석상엔 서너 가지 요리가 더 올라왔다. ▶곱게 다져 양념한 갈빗살에 가래떡을 넣어 구운 떡갈비 ‘솔잎가리병’ ▶과자처럼 바삭 구운 녹두전 위에 곶감 살구말이와 식용꽃, 새싹채소, 순금가루 등을 뿌려 낸 ‘모던녹두전병’ ▶죽순과 생률, 볶은 쇠고기, 숙주, 미나리 등을 차례로 쌓아 미니케이크처럼 모양을 낸 뒤 달콤한 홍시소스를 얹은 ‘홍시소스죽순채’ 등이다.

“음식에 시가 있네. 사색을 유도하는 음식이야. 만든 사람 정성이 읽혀.”

조심스레 아버지의 표정을 살피던 아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아버지로부터 받는 최고의 추석 선물, 최고의 덕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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