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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다문화 아이들, 종일 흙장난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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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다문화 사회가 열리면서 다문화 가정을 위한 체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5일 어린이날 서울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린 ‘이주민 자녀와 함께하는 어린이날 무지개 축제’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4인 달리기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열두 살 현준이는 평범한 초등학교 5학년생이다. 또래 아이들처럼 축구도 좋아한다. 피부색이 약간 다를 뿐이다. 현준이네 엄마는 필리핀에서 왔다.

 현준이는 스스로를 뼛속까지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친구들은 현준이를 놀려댔다. ‘최현준’이라는 버젓한 이름 대신 ‘새깜둥이’라고 불렀다. 누구보다 씩씩했던 현준이도 그 말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좋아하던 축구도 할 수 없었다. 20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디지털 운동장. 12명의 초등학생이 ‘레인보우 FC’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고 공을 차고 있었다. 그 속에는 현준이도 있었다. 저마다 사연이 있는 아이들이 모였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일본·우즈베키스탄·중국·필리핀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이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운동은 편견과의 싸움이다. 축구를 좋아해도 운동장에서 급우들과 마음껏 뛰놀 수 없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조금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레인보우 FC에서 뛰는 아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강수일

 문제는 이런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다문화 아이들이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성남시에서 ‘피망 멘토리 야구단’, 고양시에선 ‘허구연 무지개 리틀야구단’이 창단되고 인천시에서 내년부터 ‘다문화 유소년 야구단’ 운영을 계획하는 등 조금씩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지만 지방은 여전히 조용하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초·중·고교 다문화 학생은 총 3만8678명(2011년 현재)이다. 이 중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지역에 사는 학생은 1만7585명(45.5%)이다. 이들은 스포츠 활동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임지우 한국다문화스포츠아카데미 사무총장은 “전북 임실에 갔더니 아빠·엄마가 일 나간 동안 아이가 하루 종일 땅만 파며 혼자 놀고 있더라”라며 “인프라가 갖춰진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지방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정부와 지자체가 진작 나섰어야 했다. 다문화 스포츠 정책을 전국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포츠가 다문화 아이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의 공격수 강수일(26)이 좋은 예다. 그는 얼굴도 모르는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던 그는 싸움꾼이었다. 강수일을 새롭게 살게 해준 것이 바로 스포츠였다. 축구를 시작하면서 그는 목표가 생겼고 살아가는 이유가 생겼다. 강수일은 “아직도 어머니는 내게 ‘축구를 하지 않았으면 깡패가 됐을 것’이라고 하신다”며 “축구를 통해 규율과 원칙을 지키는 생활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주영·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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